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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부산]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조회수 | 549
작성일 | 15.12.20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같도다….”

(작사·작곡 미상, ‘희망가’ 중에서)

일본 강점기를 살았던 사람들이 불렀던 노래입니다. 막걸리 한잔에 휘청거리듯 그렇게 시대를 살며 세상살이의 절망스러움을 뱉어낸 노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혹자들은 퇴폐적이라고 말하지만 희망을 품고 살기에도 버거운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어떤 희망가보다 더 절절합니다.

사람들은 시대마다 그 시대의 그늘을 노래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시대의 그늘을 어떻게 노래하고 있을까요? “돈 벌어 돈, 내 사랑 안 뺏기려면은/돈 벌어 돈, 큰소리치고 싶으면은/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생각해도/돈 없고 빽 없으면 찬밥 신세! 돈!”(The Solist, ‘돈 벌어 돈!’ 중에서) ‘돈 벌어 돈!’이라는 노래입니다. 사랑도 사람도 돈보다 못한 시대라고 말합니다. 인정하든 안 하든 시대의 물결은 이미 그리로 넘어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즈카르야의 노래는 과연 우리 시대의 대안적 희망가가 될 수 있을까요? 어느 시대든지 굴절된 시대의 뒷자리엔 늘 고약한 배설물이 남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죄와 죽음’입니다.(루카 1,77과 79 참조) 그리고 죄와 죽음의 차가움은 세상을 다스리는 그 무엇도, 그 어떤 힘에 의해서도 풀리지 않는다는 것 또한 시대의 엄연한 진리입니다. 죄와 죽음의 그늘 밑 어둠을 벗어나려는 인간의 모든 수고와 노력은 그 앞에서 헛되이 좌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즈카르야는 하느님께서 스스로 죄와 죽음의 깊은 곳에 찾아와 세상의 어둠을 녹여 당신 백성을 해방시키시고 세상에 구원의 빛을 비추실 것이라고 노래합니다.(루카 1,68.78-­79 참조) 즈카르야의 입이 열리고 혀가 풀리듯 얼음장 같은 세상의 밤이 풀리리라는 희망의 노래입니다. 하느님, 영원한 희망이신 그분께서 우리의 깊은 절망 속에서 몸소 노래하시니 그런 희망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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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김정용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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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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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오늘 밤에 이 땅에 오시는 예수님께 경배를 드리며 평화방송 애청자 여러분께도 기쁜 성탄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 밤은 구세주의 탄생으로 세상이 기뻐할 것이고, 그를 믿는 자에게는 하느님의 큰 축복이 내려오는 평화의 밤이 될 것입니다.

구세주 빨리 오사 어두움을 없이하며 동정 마리아에서 탄생하셨도다. 원조들이 범죄한 후 성조에게 허락하신 메시아를 보내소서. 어지러운 세상에 방황하는 우리들의 간구함을 들으사 보내주옵소서.

대림시기에 주님께서 오시어 우리를 구해주시기를 간절히 청하는 마음으로 불렀던 성가입니다.

첫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고 모든 사람이 또한 죄를 범함으로써 악의 세력에 물든 세상은 오직 하느님만이 처음 상태로 되돌릴 수 있으십니다.

‘사실 그 한 사람의 범죄로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지만, 은총과 의로움의 선물을 충만히 받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하여 생명을 누리며 지배할 것입니다.’라는 로마서 5장 17절의 말씀처럼 오늘 오시는 예수님을 통하여 세상은 새롭게 변할 것이며, 더 이상 죄와 죽음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할 것임을 믿습니다.

오늘 복음 내용은 아들을 가질 것이라는 천사의 말을 믿지 못한 사제 즈카르야가 말을 못하게 되었다가 요한이 태어나고 난 후 입이 열려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루카 복음에만 나오는 이 찬가는 ‘즈카르야의 노래’ 또는 라틴어 첫 글자를 따서 ‘베네딕투스(Benedictus)’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 노래는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째부분은 구원의 시작을 알리는 하느님을 찬미하며 그분께 감사의 노래를 드리는 내용이고, 둘째부분은 예언의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하느님의 약속이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공생활 안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현될 것인지를 알려줍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아주 중요한 주제였는데, 즈카르야의 노래는 그분의 백성이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맞게 응답하도록 그들을 초대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노래의 처음과 끝은 ‘에피스켑세타이('επισκ'εψεται)’라는 히랍어 말로 연결되는데, 이는 ‘찾아오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기에 하느님께서 먼저 인간을 향해 또 인간을 위해 내려오셨고 찾아와 주십니다. 이처럼 구원은 하느님 편에서 이루어지고, 당신 백성이 죄에서 해방되어 두려움 없이 당신을 섬기고, 거룩하고 의롭게 되도록 하려는 하느님의 의도를 즈카르야의 노래는 알려주고 있습니다.

또한 하느님은 홀로 일하는 분이 아니시기에 당신의 구원 계획이 한 아이를 통해 준비되기를 바라십니다. 다시 말하면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을 위해 백성들을 준비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을 즈카르야 노래 후반부에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즈카르야의 노래가 설명하려는 것이지만, 보다 더 근본적인 메시지는 예수님의 메시아적 역할을 분명히 밝히는 데 있습니다. 이 노래는 79절에 ‘평화’라는 말로 끝맺음을 함으로써, 하느님은 예수 안에서 평화의 궁극적인 의미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이처럼 즈카르야의 노래는 당신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와 확고한 구원 의지를 증언하고 있으며, 이 증언은 루가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중심 주제인 구원의 보편주의와도 직결됩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죄를 용서받아 구원되기를 바라시고 우리를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당신 아들을 보내주십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새롭게 변화될 것입니다.

구세주 오심을 믿고 그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에게는 하느님의 큰 축복과 평화가 내려오는 오늘,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시는 예수님을 경배하며 하느님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날이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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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최재현 베드로 신부
  |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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