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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서울/수원]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조회수 | 21
작성일 | 18.07.10
[인천]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지난 5월 달에 자전거를 타다가 다친 뒤에는 이제 복장을 모두 갖추어서 자전거를 탑니다. 전에는 ‘내게 편한 복장이 최고지…….’라는 생각으로 아무것이나 입고서 자전거를 타곤 했지만, 차가 많이 다니는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다보니 사람들의 이목을 확 끌 수 있는 옷을 입는 것은 물론 가장 중요한 머리를 보호하기위해서 헬멧은 꼭 착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지요. 그런데 이렇게 복장을 갖추고 자전거를 타면서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게 인사를 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에요.

사실 제가 자전거를 타는 강화 해안도로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서로 자전거 복장을 하고 있을 때에는 아주 반갑게 인사를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자전거 복장을 하지 않고 그냥 편한 복장을 입고 탔을 때에는, 그 누구도 아는 체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상대방이 ‘나처럼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이구나!’라는 사실을 자전거 복장을 통해서 알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아주 큰 소리로 “수고하십시오.”하면서 응원의 말도 건네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같은 뜻과 같은 지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너무나도 반갑겠지요. 그것도 힘들 때 만나게 된다면, 아마 더욱 더 큰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 점은 우리 신앙인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에요. 만약 내가 정말로 어렵고 힘들 때, 같은 신앙을 가지고 계신 분을 만나게 되면 어떨까요? 아마 그분으로 인해서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당신의 이름 아래 우리들이 모이길 원하셨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서로 같은 이름으로 모여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되기를 그래서 모두가 빠짐없이 행복하게 잘 살기를 원하셨던 것은 아닐까요?

오늘 복음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있습니까? 통계적으로만 봐도 상당한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그 수가 많은데, 아직도 추수할 일꾼이 적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지만 아직도 추수할 일꾼이 적습니다. 왜냐하면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숨기다보니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것은 물론, 그래서 주님과도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나는 과연 추수할 일꾼의 모습을 가지고 열심히 생활하고 있나요? 혹시 나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추수할 일꾼의 모습에서 벗어나, 추수될 곡식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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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한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내 수업이 재미없다고 하는 사람이 가끔 있는 것 같은데, 사실 내 수업이 재미없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재미없는 사람이다.”

솔직히 당시에는 이 말이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재미없으니까 재미없다고 하는 것이지, 재미있는데 누가 재미없다고 말하겠냐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보는 방식에 따라 같은 일이 재미있기도 하고 또 따분하기도 하다는 사실을 말씀해주시더군요. 즉, 따분한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친구는 정말로 따분한 과목인데도 아주 재미있게 공부를 합니다. 노래가사에 암기할 단어들을 대입해서 노래를 부르며 공부합니다. 어떤 친구는 10분간 엎드려서 잠자기, 매점에서 맛있는 것 사먹기 등 자신에게 작은 상을 내리면서 공부를 하기도 합니다. 삶을 재미있게 바라보는 재미있는 사람이다 보니 분명히 재미없는 과목도 아주 재미있게 공부를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긴 저 역시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강의를 시작하면 처음 분위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농담도 많이 하게 되고 일부러 방방 뛰어다니면서 강의를 합니다. 그런데 제 강의를 듣던 한 형제님께서는 이러한 강의방식이 자신의 마음에도 들지 않았나 봅니다. 인상을 쓰면서 팔짱을 끼고 저에게 강력한 눈빛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저히 못 참겠는지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 조금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말씀해주십시오.”

사과의 말씀을 드리기는 했지만 이제까지의 경험을 볼 때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제 강의 스타일을 어떻게 바꿀 수가 있겠습니까? 그냥 제 스타일대로 강의를 했고, 실제로 강의 분위기는 매우 좋았고 사람들의 만족도도 아주 높았습니다. 그러나 제게 건의를 했던 형제님께서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중간에 나가시더군요.

자신에게 맞지 않는 강의 방식이면 무조건 틀린 것일까요? 자신이 원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무조건 싫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처 주셨습니다. 나쁜 일이었습니까? 비난 받아야 할 모습일까요? 분명히 아닙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라고 비난합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예수님께서 가르치지 않고 또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통해 하느님을 체험한 사람들은 열렬히 환호하고 함께 하였습니다.

상대방에게 문제가 있다고 우리는 종종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상대방이 아닌 내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우리가 될 때 주님 안에서 진정으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2018년 7월 10일
  |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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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월드컵 16강에서 스페인은 러시아와 승부차기 끝에 패하였습니다. 스페인은 2002년 한국과 8강에서 만났고 역시 승부차기에서 패하였습니다. 당시에 기억이 나는 것이 있습니다. 마지막 승부차기를 마치고 환하게 웃던 홍명보 선수입니다.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히딩크 감독입니다. 히딩크 감독은 승부차기에 실패한 스페인 선수에게 다가가서 어깨를 다독거려주었습니다. 상대의 실축으로 우리가 8강을 넘어 4강으로 갈 수 있었지만 실수한 선수를 위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것이 어쩌면 스포츠를 통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진정한 모습 같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마귀 들린 사람들을 치유해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놀랐습니다.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권위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표징을 두고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마귀의 힘’을 빌려서 마귀를 쫓아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표징으로 자신들이 가졌던 권위가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자신들의 말은 듣지 않을 것 같은 질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을 우리의 현실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평창 동계 올림픽을 평양 올림픽이라고 얘기한 분이 있었습니다. 남북 단일팀 때문에 우리 선수들이 기회를 잃어버린다고 얘기한 분도 있었습니다. 올림픽의 성적도 중요하지만, 올림픽을 통해서 평화와 번영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것도 의미가 있고 소중할 것입니다.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났고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그것을 위장 평화 쇼라고 여기는 분도 있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남과 북의 만남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분은 북한에 속는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겨울이 가면 봄은 오기 마련입니다. 잘한 것은 잘했다고 축하해 주고, 못한 것이 있다면 대안을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신앙인들이 직면하는 유혹들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 역시도 이런 유혹 때문에 어려움을 겪곤 합니다. 예수님께서 유혹을 받으셨던 것처럼 우리도 많은 유혹을 받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교황님은 신앙인들이 직면하는 유혹 5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완고함에 빠지는 유혹입니다. 바리사이파와 율법 학자들처럼 많이 아는 것으로 남을 심판하고, 비난하려는 유혹입니다. 교회에 있는 가난한 이, 병든 이, 외로운 이, 잘못한 이들을 하느님으로부터 심판받아야 하는 사람들로 여기는 태도입니다.

둘째는 상처를 치유하기 전에 붕대부터 감으려는 유혹입니다. 붕대를 감으면 상처는 보이지 않겠지만 그것으로 상처가 치유된 것은 아닙니다. 민주와 자유는 하루아침에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묘약은 없습니다. 오랜 대화와 타협이 필요합니다.

셋째는 돌을 빵으로 만들려는 유혹입니다. 물질과 자본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물질과 자본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함께 나누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이고, 우리는 모두 영적인 형제요 자매임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넷째는 십자가에서 내려오려는 유혹입니다. 십자가는 차에 걸어 놓은 장식품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목에 거는 액세서리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무겁지만, 우리가 묵묵히 지고 가야 하는 천국의 열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창녀와 함께 지냈습니다. 많은 병자와 함께 지내셨습니다. 여러분 중에 가장 헐벗고, 아팠던 사람들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섯째는 교회의 유산을 포기하려는 유혹입니다. 하나이고, 거룩하며,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져 오는 교회는 변화되고 쇄신되어야 하지만 우리가 버려야 할 대상은 아닙니다. 목욕물을 버리면서 아이를 버리는 사람들은 없듯이, 교회의 전통과 정신을 잘 지키고 보존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마귀 들린 사람을 고쳐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 그러니 추수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우리는 모두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일구어가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 서울대교구 조재형 신부 : 2018년 7월 10일
  |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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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은 며느리를 빼앗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합니다. 양귀비도 권력욕이 있었기 때문에 내시와 짜고 왕비가 될 궁리를 합니다. 일단 내시는 임금에게 말해 양귀비를 비구니가 되도록 절로 보내버립니다. 며느리를 차지하는 것은 문제가 크지만 이미 비구니가 된 여인을 아내로 맞는 것은 비난이 적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도 양귀비가 꾸며낸 것입니다.

양귀비의 미모에 눈이 먼 현종은 나라를 위기에 빠뜨립니다. 양귀비의 친인척들을 나라 관리로 대거 등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정치를 해본 적이 없는 양귀비의 친인척들과 양귀비의 횡포 때문에 민심이 흉흉해지고 반란이 일어나서 양귀비는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그녀는 도망치기를 거부하며 목을 매 자살을 선택합니다. 사랑받은 죄 밖에 없다고 억울해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그녀의 나이는 당시 37세였습니다.[출처: ‘시아버지를 홀린 절세미인 양귀비의 실체’, 체널에이 어메이징 스토리, 유튜브](출처를 클릭하면 '유튜브' 동영상을 볼수 있습니다. -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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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기울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고 하여 ‘경국지색’으로 불렸던 양귀비. 그녀의 인생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일까요?

사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왕이 해야 하지만 그녀가 왕의 역할을 대신하려고 한 것에서부터 결정적인 잘못이 시작된 것입니다. 왕비는 왕을 이끄는 역할이 아니라 왕이 잘 이끌 수 있도록 내조하는 역할입니다. 이런 역할의 혼동이 한 나라의 운명을 망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양귀비보다 더 문제가 컸던 인물은 현종이었습니다. 그는 이끌어야하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이끌렸습니다. 애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세상을 이끌어야하는 인물은 세상에 이끌리는 인물이어서는 안 됩니다. 이끌다보면 그 방향으로 가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사랑스럽다고 그 사람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이끄는 위치에 서지를 말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여러 고을에서 마귀 들린 사람들과 병자들을 치유해 주시며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당신이 지금 수확을 하고 계신데 당신처럼 수확할 인물이 적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실 때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합니다.

사실 그들이 하느님을 철저히 믿는 이들로서 예수님을 도와야 하는 위치에 있었지만, 예수님을 판단하고 자신들은 손끝하나 까딱하지 않는 이들이었습니다.

다른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그들과 논쟁을 벌이시지만 오늘 마태오 복음에서는 그냥 무시해 버리십니다. 그들에게 좌지우지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추수꾼이 되면 이끄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자신을 이끌려는 이들에게 사로잡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제1독서, 호세야서에서 이와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탈출기를 설명하며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끌어내어 가나안 땅으로 이끄시는데 그들은 주님 대신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습니다. 자신들이 소가 되어 이끌려야 하는데 하느님을 소로 만들어 이끌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자아를 주인으로 섬기며 하느님을 믿으면 실제로는 하느님을 소처럼 이래라, 저래라 하며 이끌려고 합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희생 제물을 좋아하여 그것을 바치고 그 고기를 먹지만 주님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제 주님은 그들의 잘못을 기억하고 그들의 죄를 벌하리니 ‘그들은 이집트로 돌아가야 하리라.’”

이집트로 돌아가게 내버려두신다는 말은 아담이 선악과를 들고 있는 하와와 다시 관계를 끊는다는 것과 같습니다. 하와는 아담에게서 나왔습니다. 아담의 옆구리에서 빼낸 갈비뼈로 탄생시킨 것이 하와이고 하와는 아담의 협조자로 하느님께서 만들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와가 아담을 이끌려고 했던 때가 있습니다. 따먹지 말아야하는 선악과를 자신도 먹고 그것을 아담에게 먹어보라고 유혹한 것입니다.

분명 하지 말아야함을 알면서도 애정에서 벗어나지 못해 이끌어야 하는 위치에서 이끌림을 당한 아담은 하와와 함께 죄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아담의 상태로는 추수꾼이 될 수 없습니다. 동물에게 이름을 붙여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이름을 붙여준 동물이라도 자신의 위에 서게 된다면 가차 없이 이전 상태로 보내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이 끊음은 영원한 포기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마치 유산상속을 달라고 청하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유산상속을 주며 실컷 죄를 다시 져 보라고 허락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 아버지의 종이 되기를 원하면 언제든지 받아들여 줄 마음으로 놓아주는 것입니다. 죄의 쓰라림을 더 경험하기를 원하는 것도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다가 당신을 배반하도록 놓아주신 것도 이런 면에선 사랑입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들은 항상 적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일꾼들이 세상 것에 휩쓸리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선교의 의무를 지닙니다. 추수꾼으로 불리움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도 세상 것을 끊지 못해 추수꾼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끌리지 않고 이끄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러려면 세상 어떤 것에도 집착을 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2018년 7월 10일
  |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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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사람들은 마귀 들려 말못하는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왔다. 그는 말을 못했으므로 자신을 위해 청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이 그를 위해 예수님께 데려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귀는 그의 혀를 묶어 놓았고, 영혼도 차꼬를 채워 놓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에게 믿음을 요구하지도 않으시고 곧바로 그의 장애를 해결해 주셨다. “마귀가 쫓겨나자 말못하는 이가 말을 하였다.”(33절)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33절) 군중이 이렇게 놀라워 하니까, 바리사이들이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33절)고 비방을 한다. 군중이 예수님을 이스라엘에서 가장 위대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말못하는 사람이 말을 하고 한 때 그가 거부했던 분께 영광을 드릴 수 있도록 혀가 풀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스로 모순되는 말을 하며 예수님을 헐뜯는다. 이 말은 그들의 사악함에서 나온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헐뜯는 자들을 꾸짖지도 않으시고, 오직 선을 행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시려고 두루 다니셨다. 하늘 나라의 복음과 병 치유라는 두 가지 축복을 가지고 그들을 직접 찾아 다니셨다. 그것을 주시기 위해 작은 마을도 지나치지 않으시고 온갖 곳을 두루 다니셨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가엾이 여기셨다. 왜 가엾은 마음이 들었을까? 주님께서는 이 사람들이 더러운 영의 손아귀에 든 데다 율법의 짐까지 지고 있어서 가엾이 여기신 것이 틀림없다. 그들이 다시 성령의 보호 아래로 돌아가도록 도와줄 목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선물의 열매는 풍성히 준비되어 있는데 그것을 거둘 일꾼들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영의 선물은 아무리 많이 거두어도 줄지 않는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37-38절) 주님은 하느님께서 수확하는 일꾼들을 넉넉히 보내시어 성령의 선물이 준비하고 있는 것을 거두게 해 주십사고 기도하신다. 기도와 훈계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선물을 쏟아 부어 주신다. 풍성한 수확은 모든 믿는 이를 의미하고, 적은 일꾼은 수확을 위해 파견된 사도들과 그들을 본받는 사람들을 말한다.

주님의 이 말씀은 그 선물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려준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권한을 지니고 계심을 드러내신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이 청도 기도도 하기 전에 제자들을 사도로 지명하시며, 타작마당을 키질하여 알곡은 모아들이고 쭉정이는 버리는 분에 관한 요한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바로 그분 자신이 농부이며, 수확할 밭의 주인님임이 드러난다. 그분이 그들을 수확할 일꾼으로 파견하셨다면 수확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것이라는 것이다. 그분의 일꾼으로서의 삶을.

▦ 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 2018년 7월 10일
  |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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