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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서울]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
조회수 | 69
작성일 | 18.07.10
[인천]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
  
꿈을 파는 병원과 현실을 파는 병원이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을 파는 병원은 객관적으로 정확히 병세를 짚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이 약을 안 먹으면 큰일 납니다.”하면서 약과 함께 겁을 집어먹게 했지요. 한편 꿈을 파는 병원에서는 “에이, 별거 아니에요. 이 약 조금만 먹으면 금방 나을 거예요. 그러나 이것 몇 가지만 특히 조심하시면 더 빨리 나을 것입니다.”라고 말을 한다고 합니다.

병을 똑같이 낫게 한다면 여러분은 과연 어떤 병원으로 가시겠습니까? 정확하게 말을 해주기는 하지만 겁을 주는 현실을 파는 병원이요? 아니지요. 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꿈을 파는 병원으로 갈 것입니다.

그럼 이번에는 똑같은 제품과 똑같은 가격의 옷을 파는 A, B 가게가 있었습니다. 먼저 A가게는 고객이 옷을 고를 때 손님의 단점을 이렇게 지적해준다고 합니다.

“손님은 다리가 짧고 기형적으로 허리가 기네요. 따라서 이것이 어울리겠네요.”

하지만 B가게는 옷을 입기 전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대신 새 옷으로 갈아입은 뒤에 이렇게 말합니다.

“손님은 작고 귀여우셔서 이 옷이 참 잘 어울리네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가게를 주로 이용하시겠어요? 나의 단점을 꼭 집어서 이야기하는 A가게입니까? 아니면 나의 장점을 찾아주는 B가게 입니까?

희망을 전하는 사람은 항상 사람을 이끈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이렇게 사람들을 이끄는 희망을 전하는 사람보다는 절망을 전함으로써 사람들을 행복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람이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세상에는 희망이 없다면서 모든 것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더러 생깁니다. 하느님께 희망을 두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 사람, 사랑을 실천하려는 마음가짐은 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절망하는 사람, 믿으려 해도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 잘 믿지 못하는 사람 등등…….

이런 이들이 꽤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바로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는 오늘의 예수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들에게 희망, 사랑, 믿음을 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주님의 명령이 지금 우리 각자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은 부족합니다. 그래서 오늘 제1독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 그가 와서 너희 위에 정의를 비처럼 내릴 때까지.”를 기억하면서 주님을 찾고 주님께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기도와 함께 희망, 사랑, 믿음을 전하는 우리가 될 때, 이 세상에는 주님의 정의가 이 땅에 가득할 것이며, 또한 주님의 사랑 안에서 모두가 참된 행복을 체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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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초에 손을 다쳐서 깁스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얼마나 불편했는지 몰라요. 특히 그 중에서도 가장 참기 힘든 것은 깁스를 했던 팔의 가려움이었습니다. 깁스를 했으니 씻을 수 없는 것은 물론 긁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요. 따라서 한 달 뒤 깁스를 풀었을 때 제가 얼마나 시원했을까요? 저는 깁스를 풀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욕실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손을 닦았지요. 손목에 닿는 물의 느낌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 느낌에 감사하면서 손목에 비누칠을 신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물론 한 달 동안 씻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렇게 때가 많을지는 몰랐습니다. 씻는데 5분도 걸리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5분이면 충분히 모든 때를 벗고 깨끗한 몸의 상태로 돌아올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5분은 불가능했습니다. 몸 전체에 비해서 적은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양 팔일 뿐이었지만, 10분... 15분... 20분. 20분이 조금 넘어서야 양 팔을 모두 깨끗이 씻을 수 있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나오는 때가 더럽다고 차라리 씻지 않는 편이 낫다고 하면서 그대로 놔둔다면 어떨까요? 아마 계속해서 더러운 손의 모습을 간직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비록 나오는 때가 더럽더라도 꾹 참고서 때를 밀어야 깨끗해진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요.

우리들이 짓고 있는 죄의 모습도 이렇지 않을까요? 자신의 죄가 너무나 크다고 하면서 그래서 성당에 가기가 힘들다고 말씀을 하시는 분들을 종종 만납니다.

“나 같은 죄인이 어떻게 성당을 나가요…….”

하지만 죄인일수록 하루빨리 성당에 나가야 하는 것이지요. 마치 때를 하루 빨리 밀어야 손이 깨끗해질 수 있는 것처럼, 우리들의 죄 역시 하루 빨리 씻어야 깨끗한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생각하시지요. 그래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더러운 영을 제어하는 권한을 주심으로써,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그리고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이십니다. 하지만 이렇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문제라는 것이지요. 양을 물가로 데려가기는 쉬어도 억지로 물을 먹이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물가까지는 데리고 오셨습니다. 이제 그 물을 마시는 몫은 우리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주님의 의도대로 그 물을 열심히 마시고 있나요?

우리 몸에 나오는 때는 빨리 밀면 밀수록 하루 빨리 몸이 깨끗해집니다. 우리의 죄 역시 빨리 밀면 밀수록 하루 빨리 깨끗해진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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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기죽지 맙시다.

여러분의 자녀가 누군가에게 매를 맞고 다닌다면,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십니까? 자녀를 때리는 사람에 대한 분노보다, 맞고 다니는 자녀에게 더 화가 날 것이라 생각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은 세상에서 제일 잘 생기고, 똑똑하게 태어났습니다. 실제, 자녀들 역시 똑똑하게 자랐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자녀가 매사에 자신감이 없어 의기소침하고 어깨가 축 쳐진 모습으로 생활한다면 어떠하겠습니까?

‘왜, 그렇게 자신감이 없냐?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생활해라.’고 말씀하실 겁니다.

오늘 12사도를 부르시는 복음 말씀을 묵상하다보니, 우리가 자녀들에게 격려하고 용기를 주듯이, 하느님 역시 우리에게 그러하시지 않을까 묵상해 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그분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더러운 영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쫒아 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게 하는” 사도로 불림을 받은 것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요, 예수님의 형제자매로 불린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어쩌면 사도로 불림 받은 것보다 더 큰 특권을 부여 받은 존재로 새롭게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고,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예수님과 공동 상속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분의 자녀가 되었느니, 더 이상 의기소침하거나 기죽은채 살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정신적, 심리적인 요인으로 근심, 걱정, 불안을 느끼며 살아가지 말고, 그러한 것들을 당당히 물리치며 힘차게 살아야 합니다. 실제, 주위에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권고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가 병자를 고쳐주고 더러운 영인 악마를 쫒아낼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 앞에 너무 죽을죄를 지은 죄인처럼 그렇게 숨을 죽인채로 고개 숙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죄인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죽을 죄인이 아니라, 사랑받는 죄인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가 ‘너 죄인이야, 나에게 잘 보여, 그래야 구원받아!’ 라고 말하기 위해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자녀요, 사도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아무것에도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기쁘게 살아가거라. 너 스스로 너를 힘들게 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너를 힘들게 하지 않는단다. 너 스스로 아프게 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너를 아프게 할 수 있는 것은 없단다.’ 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우리를 부르시어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고 힘차고 당당하게 살아갑시다. 아멘.

▦ 서울대교구 이 찬홍 신부
  |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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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예수님의 제자 선발 기준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 성당이 앞으로도 백 년, 이백 년… 계속해서 시대를 살아갈 텐데 어떻게 하면 좋은 성당으로써 전통 있는 모습을 갖출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할 수 있을까”‘

누구나 인정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그런 교회의 기초를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사목자로서 여러 가지를 고민하기도 하지요. 여러분들의 생각에는 어떠한 성당이 가장 좋은 성당인 것 같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올 정도로 거대한 건축물을 자랑하고 예술의 극치를 모아 놓은 그런 성당일까요? 아니면 좋은 나무들로 꽉 차있어서 들어가면 편안하고 나름대로 기품이 넘치는 그런 성당이 좋은 곳일까요? 저는 이것도 저것도 다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좋은 성당은 복음을 담고 실천하는 신자들이 많이 모인 성당일 것입니다. 그런 성당이 좋은 성당이고 그러한 모습을 담고 있는 성당이 사람이 보기에도, 또 하느님께서 보시기에도 좋은 성당이지요.

결론은 역시 사람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좋은 성당을 이루는 관건은 결국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요즈음 많은 기업인들이 나라의 장래를 걱정합니다. 우리나라 경제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 앞으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를 놓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상의하고 연구하고 있지요. 지금까지 자동차, 반도체, 조선, 철강 등의 분야가 나라의 발전을 이끌어왔다면 이제부터는 무엇을 차세대 원동력으로 삼아야 되느냐를 오랜 시간 진지하게 논의했고 그 결론은 ‘사람?’으로 귀착이 되었습니다. 결론이 사람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뻔한 이치입니다. 그러한 결론을 그렇게 힘들여 얻는 모습이 어리숙해 보일 정도이지요.

한 나라가 크게 발전하려면 그 나라의 대통령이 덕망이 있고 지혜로운 사람이어야 합니다. 또 회사가 발전하려면 그 회사의 사장이 지혜로워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요. 요즈음 더러 뜻 있는 사람들이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원동력을 재평가하고 있습니다. 불합리한 독재자였다는 설과 함께 일부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공으로 이룩되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지요. 물론 그 말도 맞지만 무엇보다도 숨은 공은 국민들의 ‘교육열‘일 것입니다. 사람을 키우고자 했던 교육열이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됐고 특별한 자원과 축적된 기술이 없는 우리나라가 지금의 모습과 미래를 만들어갈 바탕을 만들었다는 것이지요. 역시 결론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 수 있고 또 공감하는 부분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삼십 년을 준비하셨고 이제 삼 년의 공생활을 하시는데 미래를 대비하기 위하여 제자들을 뽑으십니다. 당신이 떠나간 이후에도 하느님의 일을 지속할 사람들을, 다시 말해서 당신의 일을 물려줄 열두 명의 제자들을 뽑으신 것이지요. 그렇다면 열두 명의 제자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예수님께서 뽑으신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면 우리 본당 공동체가 하느님의 뜻 안에 살기 위해서 어떤 사람을 필요로 해야 하는지를 견주어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뽑으신 제자들의 면모를 보면서 우리 공동체에 어떤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지를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뽑으신 열두 사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스와 세리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마태10,2-4)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열두 명의 제자들이 우리의 마음에는 전혀 차지 않는 인물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일을 할 때 개인과 기업은 대부분 똑똑한 사람을 뽑습니다. 가장 유능해 보이는 사람을 뽑아 쓰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 선발 기준은 똑똑한 것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대부분 그 시대 사람들이 그랬지만 학식이 깊지도 않았고, 집안이 좋은 사람도 없었습니다. 재산이 많거나 인격이 출중하거나 리더십이 뛰어난 사람도 없었지요. 대체적으로 무식한 어부들이 제일 많았고, 항간에 소문이 안 좋았던 세리 마태오도 있었으며 혁명당원 시몬도 있었습니다. 제대로 된 인물이 없었지요.

특히 그 중에 수제자로 뽑아 놓은 인물이 베드로 사도인데 그는 제자단의 대표가 될 만큼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한꺼번에 망치기 십상인 다혈질의 사람에게는 리더십을 찾아보기가 어렵지요. 참고 인내할 줄 아는 사람에게 지도자의 자질이 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예수님께서는 반대로 하셨습니다. 학식과 지식과 재산도 없는 다혈질의 베드로 사도를 뽑으셨지요. 그에게 무슨 장점이 있어서 인정하신 것일까요? 우직하게 믿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충동적이었지만 목숨을 바쳐 따르겠다는 베드로의 충성심 하나는 남들과 달랐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눈여겨 보셨던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왜 똑똑한 사람을 제자로 뽑지 않으셨을까요? 신앙의 눈으로 돌아다보면 재산과 학식, 건강과 지혜 이 모든 원천은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고 하느님께서 걷어 가시지요. 그렇다면 당연히 하느님께 충성하는 사람이 제일 필요하지 않으셨을까요? 지식과 부가 아무리 많아도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라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과 하느님의 뜻을 충실하게 따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지요.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스승의 뒤를 이은 이 무식한 제자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열매를 맺고, 인류 역사 속에서 이천 년이 넘는 지속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천 년 그리스도교 역사의 장본인들은 이 무식한 어부들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 만든 기업도 100년, 200년을 넘기기가 어렵지요. 세월이 흐르면 망하고 망하지 않으면 주인이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천 년이 지난 지금도 변치 않고 지속되는 공동체가 있으니 바로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만든 그리스도교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과 사람의 생각은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만약에 우리 기준대로 제자들을 뽑았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똑똑한 사람, 많이 배운 사람, 권력과 재산을 쌓아놓은 사람들을 뽑아 놓았다면 아마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모두 도망가거나 포기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 빈털터리 예수라는 사람을 따라 다녀봐야 노숙자처럼 변두리 인생이 될 것이 뻔하다는 것을 똑똑한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지요. 또 학식과 지혜가 출중했다면 하느님의 뜻보다는 자기의 생각을 따랐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자기의 지식과 지혜로 모면하기 위한 변론을 하기에 바빴을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기초도 놓지 못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물론 생각일 뿐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생각과 하느님의 뜻은 다르고 하느님의 뜻을 따랐을 때 그 길이 지속된다는 것을 이천 년 그리스도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본당 공동체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똑똑하다거나, 재산이 많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실천하며 교회에 충성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채워 주시기 때문입니다. 반장, 구역장, 단체장, 사목위원 등 교회 봉사자를 새로 임명하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꺼려하면서 이렇게 말하고는 합니다.

’저는 신심도 부족하고, 지식도 없고, 리더십도 없어서…?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하느님의 부르심에 그렇게 쉽게 대답하는 것은 신자로서 생각해볼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미사에는 특히 성모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고 또 본받으려고 하는 레지오 단원들이 많이 보이는군요. 성모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게 하시고 가장 복된 여인이 되게 만든 바탕은 단 하나였습니다. 오로지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었지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

하느님의 뜻이라면 인간적인 모든 것을 접고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바로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을 낳고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는 거룩한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기초였습니다. 하느님의 뜻이라면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없어도 따르고 받아들이겠다는 성모님의 그 정신을 배우겠다고 지금 우리가 레지오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기도하면서 정작 어떤 일이 맡겨질 때는 ’바빠서요, 능력이 부족해서요, 하기가 싫은데요…“ 이런저런 핑계가 다 나오지요.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예“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신자가 많은 공동체가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공동체이고 그것이 가장 복음적인 공동체를 만드는 바탕인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뽑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열두 제자들을 중심으로 해서 이천 년 그리스도 교회의 초석을 만드셨고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이어가시겠다고 말씀하셨지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20)

제자들은 지식도 지혜도 재산도 권력도 없었지만 하느님의 부르심에 “예“하고 응답할 수 있는 믿음이 있었고 이 믿음이 바로 하느님의 크신 은총을 얻어 누릴 수 있는 바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복음적인 공동체에 요구되는 기본 요소이지요. 우리 성당이 백 년, 오백 년, 천 년의 전통을 지니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는 힘은, 하느님의 뜻이라면 성모 마리아처럼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하면서 받아들이고 항구하게 믿는 그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이지요. 그것은 본당 신부에 대한 순명도, 수도자에 대한 순명도 아닙니다. 하느님 안에서 나의 모든 것을 도구로 맡겼을 때 거기에서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이룰 수 없는 역사를 이루시고 결실을 맺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열두 제자의 부르심을 통해서, 또 그들의 일생을 통해서, 그리고 이천 년 그리스도교 역사를 통해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냥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뜻과 욕망을 접는 것은 그냥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기도하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뽑힌 열두 제자들이 이천 년 그리스도교 초석을 다졌듯이 바로 여러분들이 우리 성당 미래의 초석을 다지는 주인공이 되시리라고 믿습니다.

▦ 서울대교구 이기양 신부
  |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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