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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하늘 나라
조회수 | 79
작성일 | 18.07.10
[수도회] 하늘 나라

하늘 나라는 딱 이것이다라고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다양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늘 나라는 장소적 개념뿐 아니라 어떤 영성적인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오늘 말씀을 보면 그와 반대로 하늘 나라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가오는 하늘 나라는 ‘끝 날이 다가왔음’을 의미하기보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삶이 하느님 나라와 같은 상태를 의미하기에, 언제든 우리 삶을 통하여 하늘 나라가 드러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다가 오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우리 안에 있다고까지 말씀하십니다. 죽은 후에나 가는 곳, 저 하늘 저편에 있을 것같이 멀리만 느껴지기보다, 그분과의 삶을 지금 나도 함께할 수 있다는 선언으로 여겨집니다. 비록 그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가능성의 겨자씨일지라도 말입니다. 로마서 14장 17절에서처럼 ‘하느님의 나라는 물질적 개념이 아닌 정신적 영성적인 상태의 삶으로 표현’됩니다. 만일 내 안에 조그마한 사랑이나, 평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요인이 있고 또 그것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갈 때, 그러한 삶은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겨자씨와 같은 생명의 씨앗이 되어 실재적이고 아름다운 하늘 나라가 되어갈 것입니다.

▦ 떼제 공동체 장경선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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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이름

저는 열두 사도들의 이름을 읽으면서 그 속에서 제 이름을 발견합니다. “야고보·요한·필립보·바르톨로메오·토마스·마태오`….” 이렇게 나열되는 이름을 들으며 사도들의 이름이 아주 일상적인 평범한 이름이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도들의 이름에서 무슨 특별한 자격이나 조건에 합당한 사람들이란 느낌이 들지 않고 제가 매일 만나는 이웃과 교우들의 이름 같은 기분이 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예수께 제자로 부름받은 사도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며 어떤 경우는 보통 수준도 못 되는, 세상에서 천대받은 세리 같은 ‘하류인생’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그분과 함께 지내면서 가장 영광스러운 사도들이 된 것입니다. 저는 사도들의 이름을 들으면서 주 예수께서 저를 부르시는 소리를 듣습니다. 사도들의 이름은 제 이름이며 제 동료들의 이름이며 저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교우들의 이름입니다.

저는 주님께서 저를 부르는 소리를 들으며 놀람과 감격에 떨어야 합니다. 그리고 제 동료 사제들의 이름을 들으며 주님께서 그들을 사도로 부르셨다는 것에 같이 놀라고 함께 무릎 꿇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저는 교우들의 이름을 부르며 주 예수께서 그들도 같은 사도직으로 부르고 계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함께 “가서 하늘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해야 합니다.

▦ 홍영선 신부(성공회 서울대성당)
  |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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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공동체를 떠나고 싶을 때

형제들과 함께 하는 수도공동체 생활, 생각할수록 정말 묘한 생활입니다. 얼마 전,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생활에 양념을 조금 치기 위해 형제들과 가까운 공원으로 소풍을 갔었지요.

가는 곳 마다 다들 의아한 눈초리들이었습니다. 이 평일 대낮에 왠 건장한 젊은이들이 우르르 몰려다닐까, 별로 재미있을 일도 없는 것 같은데, 왠일로 얼굴들은 좋아주겠다는 표정일까? 왜 저리도 낄낄댈까, 하는 얼굴들이었습니다.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한울타리 안에서 동고동락한다는 것, 때로 하나의 도전이기도 합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 가만히 살펴보면 때로 성장의 장소이며, 은총의 장소, 형제적 친교가 이루어지는 사랑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때로 진한 상처를 주고받는 고통의 장소이며, 끔찍한 죽음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다행히 요즘에 와서야 이런 ‘기특한’ 생각이 조금 하고 있습니다.

나를 죽여야 형제가 살고, 공동체가 살고, 교회가 살고, 결국 예수님께서 사시는구나 하는 생각 말입니다. 반대로 나를 고집하고, 나를 내세우려하고, 나를 우선시할 때, 형제가 괴롭고, 공동체가 힘들어지고, 예수님께서 머무실 자리가 없어지는구나 하는 생각.

사실 이런 깨달음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던 시절, 형제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 생활, 너무나 힘겨웠습니다. 너무나 고달프고 팍팍한 나머지 이렇게까지 살아야 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형제들을 한명 한 명 바라보면 저만 빼고 다 나쁜 ○이었습니다. 다들 왠지 이상해보였습니다. 역시 저만 빼고. 자신의 발밑을 바라보기보다는 늘 형제의 결점만 집중적으로 바라봤습니다. 주님의 자비와 은총, 도우심을 기대하기보다는 부족한 형제만 탓했습니다.

요즘에야 깨닫는 바이지만, 많은 겨우 저는 형제들안에 있는 제 자신의 모습을 견디기 힘들어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그리도 혐오했던 형제들의 결함이 사실 제 결함이더군요.

오늘도 저는 부족한 형제들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형제들의 부족함은 정말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크게 부족한 저를 바라봅니다. 부족함도 어느 정도라야 하는데, 너무도 부족하군요. 이런 기도가 저절로 나옵니다.

“하느님의 섭리, 하느님의 손길은 찬미 받으소서.

부족한 저를 사랑으로 채우시기 위해 형제를 불러주신 하느님, 영광 받으소서. 발 좀 인간 되라고, 제발 좀 더 갈고 닦으라고, 당신 사랑의 도구로 형제를 보내주신 하느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선택하십니다. 뽑아놓고 보니 너무도 부족하고 부족했던 제자 공동체였습니다. 나약하고 결함 많은 제자들, 어쩌면 그렇게 우리와 똑같은 제자들의 면면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의도를 생각합니다.

역설적이게도 결핍이 많은 곳에, 병약한 사람이 많은 곳에, 죄인이 많이 모인 곳에 비례해서 하느님 자비가 풍성히 내립니다.

상처가 심한 곳에, 눈물이 많은 곳에, 고통의 강도가 큰 곳에, 십자가의 무게가 무거운 곳일수록 주님의 사랑은 흘러넘칩니다.

오늘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공동체, 부족한 인간들이 모인 곳이니만큼 부족한 것이 너무도 당연합니다. 때로 너무나 실망스러워서 떠나고도 싶습니다. 같은 배 타는 것을 이제 그만 포기하고 싶습니다.

그런 순간 늘 기억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부족하기에 다가오십니다. 우리가 불완전하기에 그 결핍을 채우러 오십니다. 형제란 도구를 지니고 말입니다. 우리의 상처가 크기에, 죄인이기에, 그래서 안타깝기에 우리를 해방시켜주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 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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