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평일강론 (짝수해)

평일강론

홀 수 해

짝 수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49 79.6%
[수도회] 존재 자체의 선물
조회수 | 54
작성일 | 18.07.11
[수도회] 존재 자체의 선물

좋아하는 사람은 빈손으로 와도 반갑습니다. 존재 자체가 참 좋은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좋아하지 않는 이는 아무리 큰 선물을 갖고 와도 그다지 반갑지 않습니다. 오히려 짐스럽기까지 할 겁니다. 마음이 담기지 않은 선물보다 마음이 담긴 따뜻한 말 한마디가 백배 낫습니다. 문득 아주 예전에 어는 분에게 동양란을 선물 받고 즉시 써드린 글이 생각납니다.

“당신 존재의 향기 하나만으로 충분합니다. 존재 자체만으로 향기롭고 평화로운 난(蘭)같은 당신입니다.”

그렇습니다. 존재 자체가 최고의 선물입니다. 하느님은 바로 우리 존재 자체를 사랑하시고 원하십니다. 하느님 앞에 가지고 갈 건, 우리의 존재 자체인 믿음, 희망, 사랑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늘 1독서에서 당신을 배신한 백성들을 향해 호소하시는, 일방적 짝사랑에 지친 하느님의 호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나는 타오르는 내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고 에프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끊임없이 존재를 선물하시는 하느님이요, 그 선물이 거부되었을 때 하느님의 실망은 얼마나 크겠는지요? 무한한 연민과 인내의 하느님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고, 다만 존재 자체만 선물하라 하십니다.

“앓는 이들을 고쳐주고 죽은 이들은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은 깨끗하게 해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주님으로 충만한 내 존재가 바로 하늘나라요, 이런 존재를 선물할 때 발생하는 기적이요 치유입니다. 주님께 거저 받은 내 존재의 선물이니, 이웃에게 거저 내 존재를 선물하라 하십니다.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내 존재의 선물과 더불어 주님의 평화를 선사하라 하십니다. 사실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가진 것 없어 주지 못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내가 하느님의 선물로 존재하는 한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내 존재를 선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유에 덮여 보이지 않는 우리의 존재 같습니다. 소유에의 집착이 존재를 상실케 합니다. 알게 모르게 소유에 오염되고 변질되어가는 마음들 같습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서의 존엄한 인간의 ‘존재 가치’가 ‘상품 가치’로 전락된
오늘날 자본주의의 현실입니다. 소유냐 존재냐, 돈이냐 하느님이냐,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선물은 존재 자체의 선물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 말씀과 성체로 당신 존재를 온전히 우리에게 선물하시며, 우리 역시 전 존재를 주님께 봉헌합니다.

“주님, 주님의 얼굴을 비추소서. 저희가 구원되리이다.”

주님 얼굴을 우리에게 비추시므로 우리 모두 치유 받아 구원되는 복된 미사시간입니다. 아멘.

▦ 베네딕도회 이수철 신부
449 79.6%
▬ 너와 상관이 없어 ▬

발에 묻은 먼지를 터는 장면을 생각해 보면 괜히 웃음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신발 없이 맨발로 다녔을 텐데 몸을 굽혀 발에 있는 먼지를 털고 떠나가는 사람들을 보았다면 저 같으면 웃음이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서학자들은 좀 다른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발에 묻은 먼지’는 의역이고, 원래는 ‘발의 먼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발에서 튀어 옷에 묻었을 먼지라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장터나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정의로운 삶을 살 것을 촉구한 후에 걸치고 있던 겉옷을 벗어 경고의 표시로 먼지를 털었다고 합니다.(느헤 5,`13;욥기 38,`13) 그러니까 이 말을 지키지 않으면 너희도 이 먼지처럼 털려나가 하느님과 아무 상관 없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경고성 행동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정말 사람들에게 ‘너는 나와 아무 상관이 없어’라고 선언하는 분이실까요? 오늘 미사 중에 읽은 호세야 예언서에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네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네가 너무 불쌍해서 간장이 녹는구나.” 이런 안타까움이 발의 먼지를 털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녹아 있습니다.

“오늘 너희는 그의 말씀을 듣게 되리니 너희는 마음을 완고하게 굳히지 마라”(시편 95,`7-8)는 주님의 목소리를 우리는 매일 아침에 귀기울여 들어야겠습니다. 그 귀기울임은 바로 샬롬, 곧 평화와 은총과 행복과 사랑을 향한 새로운 첫걸음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홍영선 신부 (성공회 서울대성당)
  | 07.11
449 79.6%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도 돈도 지니지 마라.”(마태 10,9)

▬ 우리가 가장 예수님을 닮을 때 ▬

한 피정 강의를 가서 느낀 것입니다. 오신 분들 얼굴을 쭉 한번 훑어보니 금방 필이 오더군요. 많은 분들께서 나름대로 ‘한 사연’씩, ‘한 십자가’씩 지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마음 터놓고 하소연할 곳은 하느님뿐이라고, 최종적인 해결책은 그분만이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안 분들이었기에 다들 편안해보였습니다.

열심히 하느님께 매달리는 모습들, 간곡히 부탁드리는 모습들, 간절히 하느님의 은총을 기다리는 모습들 앞에 저도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분들 앞에 어쩔 수 없더군요. 원칙만을 되풀이해서 강조할 수밖에.

“여러분들, 부디 힘내십시오. 그리고 십자가가 너무 무겁다고 느껴질 때 마다 꼭 기억하십시오. 우리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를 기꺼이 지면 질수록 우리는 가장 예수님을 빼닮은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비록 힘겹지만 지금 우리가 지고 있는 이 십자가야말로 우리를 하느님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가장 큰 은총의 도구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부부는 닮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왜 닮습니까? 매일 같은 음식을 먹어서? 같은 비누를 써서? 같은 아파트에 살아서?

닮는 가장 큰 이유는 동고동락(同苦同樂)하기 때문입니다. 같이 울고 같이 웃고, 같이 고통당하고, 같이 십자가를 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십자가 불평불만하지 말고 꿋꿋이 견뎌나갈 때,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얼굴은 거룩하신 주님의 얼굴로 변모되어 있을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가 하느님 대전에 나아갔을 때, 당신과 꼭 빼닮은 우리의 얼굴을 보신 예수님께서 엄청 기뻐하실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사목실습의 현장으로 파견하시면서 몇 가지 중요한 지침과 행동강령을 전달하십니다.

복음 선포를 하면서 절대로 민폐 끼치지 말 것을 당부하시는가 하면, 복음 선포에 장애가 되는 사람들과 싸우거나 다투어서 분란을 일으키지 말 것도 당부하십니다.

그리고 복음 선포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이렇게 요약해서 전달하십니다.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쫒아내어라. 너희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 교회가 취해야할 노선이 무엇인지 아주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고통 받은 사람들, 너무도 큰 십자가 앞에 어쩔 줄 몰라 서성이는 사람들, 환자들과 임종자들에 대한 치유 활동 및 위로, 봉사, 이를 통한 하느님 나라의 선포, 바로 그것입니다.

보다 적극적인 하느님 나라의 선포를 위해, 가난하고 불행한 백성들을 위한 투신을 위해 교회는 늘 자신의 발밑을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교회의 몸집이 비대해지면 비대해질수록, 소유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청빈생활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자기 한 몸 챙기기에 바빠집니다. 가난한 이웃들을 향한 봉사, 복음 선포와도 같은 본질적인 사명에서 멀어집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당부하시는 것입니다.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도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 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 07.11
449 79.6%
[수도회]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10,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 내어라.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열 두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분부하신 말씀이시다. 즉 사도들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그들의 사명을 알려주신 말씀이다.

과연 사도들이 사람들에게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면 그 소식을 듣고 기쁘게 받아들일까? 가끔 전철에서 "예수를 믿으십시오. 예수 믿고 천당에 가십시오."라고 외치는 사람을 볼 때가 있다. 그러나 나를 비롯하여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혀 관심이 없이 지나쳐 가거나 아니면 이상한 사람이라는 눈빛을 주면서 지나간다. 사실 "하늘 나라"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끌지 못한다. 이 세상에서 사는 일도 바쁜데 무슨 하늘 나라에 대해서 생각할 틈이 어디 있느냐는 반응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관심 있는 것은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지 하늘 나라에 가서 행복하게 사는 일이 아니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하루 24시간을 지내면서 하늘 나라에 대해 생각하고 지내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 또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거의 이 세상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고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가를 생각하며 살지 하늘 나라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을 두고 있으며 하늘 나라에 가서 산다는 것을 갈망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이처럼 "하늘 나라"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큰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지 못한다. 이처럼 하늘 나라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한다는 일이 과연 의미 있는 일인가?라는 회의를 갖을 때도 있다

그렇다면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과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사실 우리 자신들도 하늘 나라에 대해 말하면서 이 세상에서 좀 착하게 사는 이야기 이외에 새로운 것을 이야기 하지 못한다. 그리고 하늘 나라에 대해 사람들이 호감을 갖을 수 있도록 재미있고 기쁘게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우리 자신들도 아직까지 하늘 나라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 그리고 가까이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기 위해서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눈으로 확인되고 기뻐하고 놀랄 수 있는 일들을 하라고 분부하셨는지 모른다. 즉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표지로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살려 내고 불치의 병이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나병 환자들을 깨끗이 고쳐 주고 마귀들을 쫓아 내도록 하셨는지 모른다. 정말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면 사람들이 놀라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에 대해 기뻐할 것이고 놀라워 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만 두더라도 아마 복음을 선포하는 우리 자신부터도 놀랄 것이다. 그러니까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앓는 이들을 고쳐주고 죽은 이들을 살려내며 나병환자들을 고쳐 주는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이라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할 수 있고 또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고 믿을 것이다. 정말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면 오늘 복음을 전하는 일은 얼마나 신이 나고 보람있는 일이겠는가?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면 아마도 교회는 사람들로 넘쳐날 것이고 예수님이 음식을 먹을 겨룰 조차 없었다고 할만큼 성직자 수도자들은 교회를 찾아 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해 눈코 뜰새없이 바쁠 것이다. 교회를 짓는 일도 쉬울 것이며 시노드 같은 번잡스러운 일도 필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오늘 날 교회가 또 복음을 선포하는 성직자 수도자 신자들이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지만 앓는 이들을 고쳐주지도 못하고 죽은 이들을 살려내지도 못한다는 데 있다. 이런 기적이 일어나야 할터인데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들도 힘 빠지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도 아무런 기쁨을 맛보지 못하고 또 놀라지도 않는다. 아무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니 하느님한테 받은 은혜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고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못한다. 그래서 모두가 맥빠지고 조금 교회에 나오다가 이런 저런 핑계를 되고 떠나가고 있다. 이것이 오늘 우리 교회가 안고 있는 어려움이다. 아니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선포해야하는 하늘 나라란 무엇인가? 무엇을 선포한다는 것인가? 과연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앓는 이들을 고쳐주고 죽은 이들을 살려내고 나병환자들을 깨끗이 고쳐 주고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하늘 나라란 하느님이 계시고 하느님의 법에 의해 다스려지는 나라이고 그 하느님의 법은 복음이다. 따라서 하늘 나라를 선포한다는 것은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이다. 하늘 나라란 이 세상의 법에 의해 다스려지는 나라가 아니라 하느님의 법인 복음에 의해 다스려지는 나라이다. 지금까지 이 세상의 가치관, 행복관에 의한 삶에서 복음의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나라이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이 선포하신 복음에 의해 내 삶의 의미를 깨닫고, 내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야 하는 지를 깨닫는 삶이다. 복음을 모르는 것이 지금 우리가 앓고 있는 병이며, 복음에 의한 새로운 삶을 살지 않고 세상 것에 얽매여 살고 있는 것이 죽은 이들이며 나병 환자들인 것이다. 반대로 이 세상 것에 의한 삶이 아니라 복음에 의한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 앓고 있는 병에서 치유 받는 것이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남이며 나병에서 깨끗이 치유 받는 것이다.

사도들은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가까이 온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각자가 해야할 일이다. 소를 강가에까지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게 하지는 못한다. 마찬가지로 사도가 하늘 나라를 가까이 가져다 줄 수는 있지만 그 가까이 와 있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은 각자가 해야 할 일이 아니다. 오늘 우리가 가까이 와 있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은 선포된 복음을 깨닫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복음을 내 마음에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그 때부터 서서히 그 동안 내가 앓고 있던 병들이 치유되고 죽었던 내 영혼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할 것이며 나병이 깨끗이 낫고 마귀가 나가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 성 바오로회 유광수 신부
  | 07.11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 권력은 민중을 두려워해야  [5]
1506   [기타] 사람을 살리는 일  4
1505   [대구/부산] 우리는 어떻습니까?  [1] 4
1504   [수도회] 일꾼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4
1503   (녹) 연중 제25주간 수요일 독서와 복음  2079
1502   [부산] 예수님과 형제 되기  [1] 5
1501   [인천] 예수님은 모든 것을 하나로  [1] 6
1500   [수도회] 대안 가족  [1] 8
1499   (연)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독서와 복음  2010
1498   [기타]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712
1497   [대구] 9월은 순교자 성월입니다.  834
1496   [부산] 나의 존재 이유  678
1495   (녹)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독서와 복음  508
1494   [대구]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  17
1493   [인천] 주님께서는 씨만 주십니다.  14
1492   [수도회] 십자가를 살다  [1] 14
1491   (녹) 연중 제24주간 토요일 독서와 복음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1] 1752
1490   [수도회] 예수님을 따르는 여인들  [1] 6
1489   [서울/인천] 예루살렘 여인들의 헌신적인 도움  [1] 5
1488   [대구] 예수님께서는 두루 다니시다.  4
1 [2][3][4][5][6][7][8][9][10]..[76]  다음
 

 

평일강론

홀 수 해

짝 수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8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