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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거저 주어라.”
조회수 | 24
작성일 | 18.07.11
[인천] “거저 주어라.”  

어느 날 다윗 왕이 궁중의 한 보석 세공인을 불러 명령을 내렸습니다.

“나를 위하여 반지 하나를 만들되 거기에 내가 매우 큰 승리를 거둬 그 기쁨을 억제하지 못할 때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어라. 그리고 동시에 그 글귀가 내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는 나를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하느니라.”

보석 세공인은 명령대로 매우 아름다운 반지 하나를 만들었지요. 그러나 그곳에 적어 넣을 적당한 글귀가 생각나지 않아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혜롭다는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지요.

“임금의 황홀한 기쁨을 절제해 주고 동시에 그가 낙담했을 때 힘을 복돋워 드리기 위해서는 도대체 어떤 말을 써 넣어야 할까요?”

그러자 솔로몬은 곧바로 대답했습니다.

“이것 역시 곧 지나가리라!”

“임금님이 승리의 순간에 이것을 보면 곧 자만심이 가라앉게 될 것이고, 임금님이 낙심 중에 이것을 보면 이내 표정이 밝아질 것입니다.”

솔로몬의 지혜가 돋보이는 순간이 아닌가 싶네요. 정말로 모든 것은 다 순간이고, 곧 지나가 버리는 것임을 알 때, 우리는 성공이나 승리의 순간에도 지나치게 흥분하거나 교만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패나 패배의 순간에서도 지나치게 절망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우리들은 그 순간에 얼마나 집착을 하고 있는지요? 분명히 곧 과거의 한 사건에 불과한 일들인데도 불구하고, 그 과거에 빠져나오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지요?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그리고 병자를 치유해주고, 마귀를 쫓아내는 권한을 주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지요.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바로 제자들의 교만을 염려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병자를 치유하고 마귀를 쫓는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이지요. 따라서 이렇게 남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한다고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거저 받았음’을 분명히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절망도 염려하셨던 것 같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세상의 기준으로 봤을 때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지요. 따라서 그들의 출신 성분을 알고 우습게 보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만날 때 얼마나 힘들까요? 바로 그 순간에는 발의 먼지를 털어냄으로써 그 사람과 그 마을에 상관없음을 표시하라고 하시지요.

주님께서는 우리들 모두가 과거에 연연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대신 하느님 나라라는 확실하고 분명한 미래를 위해서 지금 이라는 현재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이 말을 기억하면서 지금을 행복하게 만드는데 최선을 다 하십시오.

“이것 역시 곧 지나가리라!”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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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개구리 심성을 드러내는 인간 ▬

우리는 어린이들에게 교육을 시킬 때 사용하는 ‘청개구리 이야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압니다. 특별한 교육이 없어도 그 정도는 웬만한 사람이라면 아는 아주 평범한 이야기가 된지 오래된 것입니다. 하지만 지혜가 발달해서 그런 이야기를 안다는 것과 그 이야기를 통해서 실천해야할 것들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것과는 차원을 달리합니다.

사람이 보이는 특성의 한 가지는 ‘강한 자 앞에서는 약하고, 약한 자 앞에서는 강하게 보이는 것’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사실은 그 드러나는 모습이 반대가 돼야 할 텐데, 사람들의 삶에서 드러나는 모습은 반대입니다. 그와 비슷한 이야기가 복음서에도 나옵니다. ‘일만 달란트나 되는 빚을 탕감된 사람이 그 돈의 1/600,000에 해당하는 100데나리온의 빚을 탕감해주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은 쉽사리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늘 선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노리개가 됩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해봐야 달라지는 일이 크게 다른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그 간단한 유혹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합니다.

호세아 예언서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 역시 비슷합니다. 그들이 비록 하느님의 선택을 먼저 받았던 사람들이었기는 하지만 그들도 역시 자기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인지라, 그들을 바라보는 하느님의 마음을 애달프게 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 삶의 문제점을 지적한다면, 자신은 항상 옳은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정직하지 않은 사람이 정직하게 산다고 말하는 세상은 돌이킬 수 없는 세상일지도 모릅니다. 개과천선하여 바뀔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힘들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입니다.

자신의 삶을 바꾸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방법은 없습니다. 성당에 늘 나오시는 여러분의 삶이 잘못됐다는 소리로 알아듣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누군가 내 앞에서 자기 발의 먼지를 털고 내 삶에 대하여 실망을 하고 힘겨운 이야기를 하고 가는 사람이 없는지를 잘 살피고 올바른 길로 가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몽둥이를 부르는 삶이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삶이 진정으로 복을 부르는 삶인지 올바로 알 수 있어야 할 일입니다.

▦ 좋은 글을 제공하신 분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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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 열 두 제자들의 파견 : 예수님은 하느님의 능력을 주어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세 가지를 말씀하신다.

1.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2. 전대에 여행비를 가지고 다니지 말라
3.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1. 당시에는 유대인들의 선생을 랍비라고 했는데 랍비들은 율법을 가르치는 일에 금전을 받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율법이 란 모세가 하느님께 거저 받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모세를 무상으로 가르치신 것과 같이 그대도 그렇게 가르쳐라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서 하늘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여라. 앓는 사람은 고쳐주고 죽은 사람은 살려 주어라. 나병환자는 깨끗이 낫게 해주고 마귀는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하신 것은 바로 유대인들의 관습에 있는 말을 하신 것이다. 즉, 우리가 하느님과 구원에 대해 알고 있는 풍부한 은혜를 다른 이에게 가르칠 때 거저 가르쳐 주라고 하신 것이며,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주님을 아는 이의 특권이 기도 하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자신의 삶의 기쁨 때문에 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임을 우리는 체험한다.

2. 전대라는 것은 허리띠를 말한다. 유대인들이 띠고 다니던 허리띠는 폭이 넓어서 그 속에 돈을 넣고 다니곤 했기 때문에 허리띠란 곧 전대, 여행 주머니를 말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전을 넣어 가지고 다니지 말 것이며 식량 자루나 여벌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도 가지고 다니지 말아라" 하신 것은 하느님의 나라를 전하는 사람의 첫째 관심사는 물질이 아니라 하느님이라는 것을 태도로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인간적인 것에 마음을 쓰지 말고 하느님만을 온전히 신뢰하라는 말씀이다.

3. 일꾼이 자기가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랍비는 율법을 가르치는데 있어서 보수를 받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을 참으로 듣는 이들이라면 그 랍비의 생활을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의무였다. 그들의 규정을 보면, 랍비를 후원하는 것은 모든 유대인의 사회적 의무다. 랍비가 하느님의 일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자연히 자기의 일에 등한히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후원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즉 하느님의 사람은 물질적인 것에 결코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된다는 사실과 하느님의 백성은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을 합당하게 돌봐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사와 백성에게 동시에 다같이 의무를 부과하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마음으로 이러한 자세로 살아가고 있는지 나 자신을 성찰하면서 또한 우리 전체 공동체가 이러한 자세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여야 할 것이다.

▦ 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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