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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대림 12월 22일 독서와 복음 (마니피캇 ; 성모님의 노래)
조회수 | 148
작성일 | 22.12.21
▥ 제1독서 : 한나가 사무엘의 탄생을 감사드리다.
▥ 사무엘기 상권 1,24-28

그 무렵 사무엘이
24 젖을 떼자 한나는 그 아이를 데리고 올라갔다. 그는 삼 년 된 황소 한 마리에 밀가루 한 에파와 포도주를 채운 가죽 부대 하나를 싣고, 실로에 있는 주님의 집으로 아이를 데려갔다. 아이는 아직 나이가 어렸다.
25 사람들은 황소를 잡은 뒤 아이를 엘리에게 데리고 갔다.
26 한나가 엘리에게 말하였다.“나리! 나리께서 살아 계시는 것이 틀림없듯이, 제가 여기 나리 앞에 서서 주님께 기도하던 바로 그 여자입니다.
27 제가 기도한 것은 이 아이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드린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아이를 주님께 바치기로 하였습니다. 이 아이는 평생을 주님께 바친 아이입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그곳에서 주님께 예배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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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1,46-56

그때에
46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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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께서는 찬미의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마리아의 노래’입니다. 당신께 일어난 일을 생각하면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천사의 발현을 목격했고, 그에게서 아기를 갖게 되리란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 아기는 보통 아이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교만에 빠질 수 있었지만 마리아께서는 마음을 다잡습니다.

그러곤 천사의 귀띔으로 엘리사벳을 방문합니다. 그녀 역시 기적의 아이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두 분은 무슨 이야기를 하셨겠습니까? 대화의 내용을 남긴 것이 ‘마리아의 노래’입니다. 가난하고 비천한 이를 높이시는 주님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살면서 ‘생각지 않은 축복’을 체험합니다. 어려운 일이 쉽게 풀렸고, 모르는 이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확실한 실패인데도 예기치 않는 사건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때 어떤 마음이었습니까? 우연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는지요? 축복을 ‘우연한 것’으로 여기면 교만이 됩니다. 주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내치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마리아의 노래는 수도자들의 매일 기도에 들어 있습니다. 가난과 겸손을 늘 기억하라는 무언의 가르침입니다. 우리 역시 ‘마리아의 노래’를 매일 읽으면 ‘삶이 곧 축복’임을 깨닫게 됩니다. 교만해지지 않고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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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08년 12월 22일
  |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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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께서 복되신 분으로 일컬어지시는 것은 그분이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셨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엘리사벳의 증언대로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보잘것없는 시골 여인들이었던 엘리사벳이나 마리아께서 복된 여인들로 기록된 것은 바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엘리사벳의 찬미가를 듣고 화답하신 ‘마리아의 노래’는 가난한 이들의 염원이 절실히 담긴 신앙 고백입니다. 그 찬미가는 예수님을 통하여 자유와 해방을 주시러 오시는 하느님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가난한 이들의 애절한 노래이며 기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시고, 불의한 사회 구조와 질서를 뒤집어엎으시어 역사 속에 새로운 변혁을 이룩하십니다. 그리하여 가난한 이들과 억압받는 이들은 해방되어 참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곧 오실 아기 예수님은 세상과 인간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인생길과 인간 역사를 새로운 방향으로 바르게 이끌어 주십니다. 마리아께서는 당신 태중에 계시는 그분께 인류를 대신하여 지극히 간절한 심정으로 찬미를 드리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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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0년 12월 22일
  |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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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른 이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할 때에 기쁨을 느낍니다. 더욱이 하느님께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때에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성모님만큼 하느님의 사랑과 신뢰를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 복음의 ‘마리아의 노래’는 하느님께 받은 사랑과 신뢰에 대한 환희의 노래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감사하며 사는 일이 무엇인지 알려 주십니다.

앤서니 퀸이 주연한 ‘길’이라는 오래전의 흑백 영화를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주인공 잠파노가 유치장에 들어가자 주인공의 여자 친구인 젤소미나는 실의에 빠집니다. 그러자 주인공의 친구가 그녀를 위로해 주려고 돌멩이 하나를 손에 쥐어 들고 이렇게 말합니다. “젤소미나, 돌멩이 하나에도 의미가 있어. 이 돌멩이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세상 모든 것에도 의미가 있을 수 없어.” 돌멩이 하나에도 의미가 있다면 하느님의 모상인 우리는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요?

‘마리아의 노래’를 들으면서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헤아려 봅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낮고 천한 우리를 보살피시면서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궁핍과 질병, 두려움과 불안 등 온갖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참으로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생각한다면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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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2년 12월 22일
  |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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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깊어지면서 성탄절이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눈이 내리기를 바랍니다. 설경을 감상하려는 욕심에서가 아닙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노래를 들으며 도시의 달콤한 성탄절을 즐겨 보고자 해서도 아닙니다. 얼굴에 와 닿는 눈송이의 차가운 감촉의 힘을 빌려서라도 순수하고 가난한 마음에 가 닿지 못하게 하는 오랜 미망과 욕심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눈 내리는 날에 구유의 아기 예수님을 찾아가는 것을 상상하다가 흑백 사진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여행길에 한 작은 미술관에서 우연히 만났던 마리오 쟈코멜리의 ‘나에게는 얼굴을 쓰다듬을 손이 없다.’라는 작품입니다. 1960년대 이탈리아의 한 작은 도시의 신학교에서 찍은 이 연작 사진들 속에서는 신학생들이 눈 내리는 날 해맑게 웃으며 뛰놀고 있습니다. 검은 수단이 하늘의 축복과도 같은 눈송이와 잘 어울리고, 그들에게서 날아오를 듯한 즐거움과 상쾌함이 느껴집니다. 순수함과 단순함이 큰 기쁨을 선사한다는 점을 깨닫게 하는 사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차가운 겨울날 누추한 마구간에서 가난한 부모의 아이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말씀의 강생은 그 누구보다도 먼저 가난한 이들의 기쁨이며 구원이라는 것을 보게 하시려는 하느님의 섭리라는 점을 묵상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마리아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성탄절의 정신이 여기에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비천한 이와 굶주린 이들을 배불리시고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는 하느님을 기쁨에 넘쳐 찬미하십니다. 성탄절을 앞두고 우리의 마음과 삶에 들러붙어 있는 욕심과 교만의 옷을 벗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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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4년 12월 22일
  |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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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마리아의 노래’로서 우리가 자주 바치는 기도입니다. 이 노래를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머무르고 싶은 점은,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라고 마리아가 고백한 대목입니다. 이는 주님께 나아가려면 철저한 겸손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전능을 드러내심으로써 교만한 자에게 부끄러움을 알게 하시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겸손한 자세를 지닐 때만 주님을 알아 뵐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세상의 어떠한 계급이나 특권도 물리쳐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힘없고 무시받는 이들을 높이시고, 세상의 권력가들을 끌어내리시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귀하고 평등하다는 의식을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주변의 그 어떠한 착취와 탐욕도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배고픈 이들과는 먹을 것을, 사랑이 필요한 이들과는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불의와 부패를 물리쳐야 합니다.

이처럼 ‘마리아의 노래’는 매우 아름답지만, 그 속에는 우리 의식의 전환을 요구하는 새로운 선언이 들어 있습니다. 교만함과 특권 의식을 포기하고 나눔을 실천해 나갈 때 우리는 새로이 태어나는 아기 예수님을 뵙게 될 것입니다. 앞날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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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매일미사 2016년 1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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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예언자의 어머니 한나는 실로의 성전으로 돌아와, 불임에서 벗어나 아들을 낳게 해 달라는 그녀의 청을 들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녀는 주님께 아이 사무엘을 바친 다음 ‘주님의 여종’ 마리아의 찬미가를 반영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마리아는 아름다운 노래(마니피캇)를 통하여 하느님의 위대함과 가난한 이들과 버림받은 이들을 위한 그분의 특별한 사랑을 노래합니다.

대림 시기에 가장 탁월한 기다림의 표상인, 나자렛 동정녀 마리아의 입술로 바치는 노래는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영적 탁월함의 기준이며 동시에 선택된 백성의 믿음, 성조들과 후손에게 하신 하느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살아왔던 그 열망과 세상의 기다림에 대한 요약입니다. 마리아의 입을 통하여 표현되는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부활 신앙의 관점에서도 마리아의 노래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루카는 나자렛 동정녀의 입술로 메시아 해방의 기쁨을 노래로 부르게 합니다. 정해진 옛 질서가 그리스도에 힘입어 변화됩니다. 이 세상의 교만한 자들, 통치자들 그리고 부유한 자들보다 먼저 선택된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 비천한 이들과 굶주린 이들이 새로운 질서 안에서 하느님 역사의 주인공이 됩니다. 마리아가 부른 마니피캇의 말마디 안에서, 세기의 평판, 구원받은 공동체의 속삭임, 가난한 이들의 기쁨과 희망, 그리스도에 의해 해방된 이들이 인정하는 놀라움이 내면에서 들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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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매일미사 2018년 1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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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독서와 복음은 하느님의 선물이 가져다준 기쁨과 놀라운 믿음을 지닌 여인들의 찬미가를 들려줍니다. 우선 루카 복음서는 엘리사벳을 만난 마리아가 부른 ‘마리아의 노래’를 전합니다. 이 노래는 성령으로 가득 찬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여인들 가운데에 가장 복되시며”(1,42) “주님의 어머니”(1,43)라고 기쁘게 칭한 데에 대한 마리아의 답이었습니다. 게다가 엘리사벳은 하느님의 선물을 조건 없이 받아들인 마리아의 믿음을 선언하며 마리아의 찬미를 유도합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1,45)

자신이 ‘주님의 어머니’가 됨을 기리는 마리아의 말은 엘리사벳에 대한 답례를 넘어 하느님께 바치는 찬미가였습니다. 사실 이 노래는 상황과 주제 그리고 작성법의 세 가지 측면에서 ‘한나의 노래’(1사무 2,1-10 참조)와 비슷합니다. 오늘 독서는 이 찬미가를 부르기 직전, 한나가 주님께 기도하여 얻은 아들 사무엘을 약속대로 주님께 바치려 엘리 사제를 찾아가 예배를 드린 장면입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하느님께서 마리아에게 베푸신 수직적인 자비와, 비천한 이들과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속에 이루어지는 주님의 수평적인 자비를 찬양하며, 마지막 구절에서 하느님의 구원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권능으로 동정녀가 지극히 거룩하신 분의 아들을 잉태하게 하시지만 그것은 세상의 구원을 위한 보편적인 사건으로서의 의미를 지녔던 것입니다. 간절한 기다림 속 회개의 시간인 대림 시기의 막바지에 ‘마리아의 노래’를 다시 불러 봅니다. 우리가 더욱 겸손해지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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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박기석 신부
매일미사 2020년 1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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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마리아의 노래’를 소개합니다. 어제 복음에서 마리아의 방문을 받은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면,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칭송에 노래 형식으로 응답합니다. 이 노래는 이스라엘에게 드러내신 하느님의 역사를 찬양하면서 그분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언이기도 합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주님을 향한 찬송으로 시작합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을 찬송하고 그분을 구원자로 고백합니다. 마리아에게 하느님께서는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큰일을 완성하시는 전능하신 분으로서 당신의 강함을 보여 주시려고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를 누리는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셨으며, 부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또한 마리아는 자비하신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마리아에게 하느님께서는 낮은 이들을 높이시고 굶주린 이들을 배불리시는 자비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백성들에게 베풀어 주시리라고 예언합니다.

하느님의 최종 목적은 세상의 권세와 부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권세에 취하여 교만하고 부유한 이들이 당신의 구원 계획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들을 낮은 위치에 두고자 하십니다. 자신을 비천한 종으로 낮추신 마리아께서 하느님께 순종하시어 주님의 어머니가 되셨듯이, 하느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시어 약하고 가난한 이들을 구원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마리아를 통하여 실현된 ‘역전’을 중심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하느님 체험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사건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 모두 마리아처럼 낮은 이가 되어 하느님의 위대함과 자비를 찬양하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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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정진만 안젤로 신부
매일미사 2022년 1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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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4   [수도회] 구원의 빛  [4] 480
1593   [부산/전주/광주/청주] 돌아봄의 눈은  [4] 579
1592   [수원/원주/대전] 시메온이 아기 예수를 알아봄  [3] 78
1591   [인천/서울] 그리스도를 평생 기다려왔던 한 분  [5] 508
1590   (백) 성탄 팔일 축제 내 제5일 독서와 복음 (예수님은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  [8] 2262
1589   [수도회]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셨다.”  76
1588   [광주/부산]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1] 549
1587   [수원] 이제 우리는 “높은 곳에서 온 별”을 맞이하게  65
1586   [인천/서울] 내 안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벽은  [2] 685
1585   (자) 대림 12월 24일 독서와 복음 (즈카르야의 노래)  [8] 2214
1584   [수도회] 같은 생각과 말과 행동  [3] 549
1583   [청주/전주/광주/부산] 아기의 이름은 요한  [4] 687
1582   [의정부/대전/수원] 그리스도인의 현실  [3] 68
1581   [서울/인천] 이제 곧 성탄입니다  [4] 685
1580   (자) 대림 12월 23일 독서와 복음 (세례자 요한의 탄생지는 '아인카렘'(포도밭의 샘)  [6] 2499
1579   [수도회] 심연(深淵)의 근저(根底)까지  [8] 126
1578   [광주/전주/부산/청주] 마리아의 노래가 현대 여성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4] 128
1577   [수원/의정부/대전] 마리아의 노래-하느님 찬미가  [3] 104
1576   [인천/서울] ‘성모찬송’(Magnificat : 찬미하다. 찬양하다)  [5] 125
  (자) 대림 12월 22일 독서와 복음 (마니피캇 ; 성모님의 노래)  [8]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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