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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주/부산/청주] 마리아의 노래가 현대 여성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조회수 | 127
작성일 | 22.12.21
교회 안팎의 현대 여성들, 특히 한국의 여성들은 오늘날 누구보다도 큰 변화를 겪으며 살고 있습니다. 과거의 전통적인 여성상(수동적이고 순종적이며 가부장적인 구조에 익숙한 여성상)이나 가치관과는 사뭇 다른 여성상과 가치관이 삶 속에 차츰 관철되고 있다는 것은 비단 젊은 여성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닙니다. 한국 사회 여성들의 변화 과정을 민감하게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부응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 교회의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입니다. 이런 점에서 현대 여성들에게 여성으로서 마리아가 지닌 의미가 무엇인지를 성찰하는 것은 그 뜻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마리아의 노래가 현대 여성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참으로 풍요합니다. 마리아는 많은 평범한 여성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이른바 ‘화려한 공주과’의 여성이 아닙니다. 한때 한국 여성들의 집단적 현상이기도 했던 ‘공주병’은 어떤 의미에서 일종의 정신적 성형수술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많은 여성이 자신의 내적·외적 가치와 변화를 사회적으로 상품화된 여성의 이미지를 추구하는 것으로 성취하려고 하지만 그 끝은 마치 성형수술의 부작용처럼 나타날 가능성이 많습니다.

‘비천한 신세’인 마리아는 장차 굴절되고 성형된 사회적 가치를 전복시키실 예수님의 길을 온몸과 마음에 품고 따름으로써 하느님께서 큰일을 이루실 수 있도록 했습니다. 게다가 마리아는 보잘것없고 배고픈 이들의 자리에서 주님의 자비와 약속을 굳게 믿고 살았던 희망의 여성이었으며 부요한 이들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교만을 꺾으실 하느님의 힘에 의지했던 믿음의 여성이기도 합니다. 보잘것없고 비천하며 겸손한 시골 처녀 마리아의 입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산상설교(마태 5,1-­12 참조)와 지상설교(루카 6,20-­26 참조)를 다시 한번 새롭게 듣는 듯합니다.

제가 보기에 여성 마리아의 이런 모습은 모든 시대 안에서 자유·평등·평화·인권을 진지하게 추구했던 선구자적인 모든 여성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마리아의 삶은 모든 시대, 모든 여성에게 충분히 설득력이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영원토록 기억될 것이며 마침내 온 백성과 온 여성이 마리아를 복되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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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김정용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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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가슴 설레는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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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여간 소란스러운 것이 아니어서,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좀 더 머물렀으면 하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이제 가 주었으면 하는 손님도 있습니다. 어느 손님이라도 손님은 손님일 따름이기에, 첫날은 반갑지만, 둘째날은 슬슬 지겨워지고, 셋째날부터는 ‘언제 가려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런 마음을 알았던지, 성서 여러 곳에서 손님의 처지가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십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도, ‘한 곳에 오래도록 머무르지 말라’는 뜻을 담아 말씀하십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파견된 이가 결코 짐이 되지 않을 것’을 강조합니다. 초대교회 안에서도 어김없이 강조되는 것 중의 하나가 신세질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손님의 처지가 아니라 주인의 처지일 때는 ‘설레는 기다림으로 맞이하라’고 하십니다.

예수께서도 가장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이 하나를 맞이하는 것이 당신을 맞이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초대교회 이후로 교회는 모든 이에게 조건없는 환대를 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성 베네딕토가 ‘방문객은 그리스도로서 환영받을 것이다’라고 한 것처럼, 놀랍게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된 봉쇄수도원의 수도자들도 손님을 따뜻이 맞이하는 것은 잊지 않았습니다. 주인이시면서 손님처럼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면서, 가난한 이들의 소망을 대신하는 성모님은, 설레는 마음을 담아 ‘어서 오시라’(환대, welcome)고 노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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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박동진 신부
  |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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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인간은 약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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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복음에서 엘리사벳이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던 마리아를 찬양하며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자, 마리아는 기쁨에 넘쳐 전능하신 하느님의 구원 역사에 감사하며 찬미가를 부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온 찬미가는 ‘마리아의 노래’ 또는 ‘마니피캇’이라고도 하는데, 이 노래는 과거에 이스라엘 안에서 보여 준 하느님의 위업을 제시하며 그분의 약속이 반드시 성취될 것임을 알려줍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마니피캇은 종말론적인 찬미가라 할 수 있으며, 신약성서에서 가장 아름다운 찬가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 감사의 찬가를 읽는 그리스도교 신자는 누구나 마리아와 더불어 기뻐 용약하도록 초대받게 되는데, 일찍부터 이 찬미가는 서방교회 성무일도의 저녁기도와 동방교회 아침기도 안에 도입되었고, 마르틴 루터는 마니피캇 주석에서 마리아를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겸손과 하느님 경외심의 표본이라고 찬미하기도 하였습니다.

루카 복음의 저자는 하느님의 돌보심을 체험한 마리아의 찬미 기도를 우리에게 전해주면서, 그리스도 교 신앙인은 누구나 하느님의 위업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마리아와 같이, 하느님이 우리 안에 살아 계심을 느끼고 믿도록 합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크게 세부분으로 나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마리아의 노래 첫 부분에서는 하느님을 ‘주님, 나의 구원자, 전능하신 분, 거룩한 이름을 지닌 분’이라고 표현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이 이해하는 하느님의 모습이 종합되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찬양하는 하느님은 한마디로 ‘구원의 하느님’입니다. 그분은 결코 저 멀리 떨어져 사는 신이 아니라 인간에게로 향하는 분이시고, 힘과 권능으로 가득 찬 살아 계신 하느님입니다. 또한 한 사람 한 사람을 굽어 살피시는 아주 인격적인 분이심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느님 앞에 비천한 존재요, 종이며, 그분을 두려워해야 할 존재임을 알려줍니다.

모든 인간은 필연적으로 서로에게 의지해야 하는 동시에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에 구원을 필요로 합니다. 자신을 낮추고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을 깨닫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겸손한 태도입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는 자만이 하느님의 충만함에 희망을 걸고 그분이 이루는 구원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만하고 권세 부리는 자들과 부요한 자들은 아쉬움을 모르기에 하느님을 찾아나서지 않고, 무엇을 희망하기가 어렵게 됨을 마리아는 두 번째 부분에서 알려줍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마리아의 노래 세 번째 부분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믿는 이들에게 하신 약속을 결코 저버리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노래합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창세기 17장에서 하느님은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으시며 ‘너는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나는 나와 너 사이에, 그리고 네 뒤에 오는 후손들 사이에 대대로 내 계약을 영원한 계약으로 세워,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의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 나는 네가 나그네살이하는 이 땅, 곧 가나안 땅 전체를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영원한 소유로 주고, 그들에게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 라고 하셨습니다.

땅과 후손과 이스라엘 대대로 당신이 그들의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고 하신 그 약속과 자비를 영원히 지속시키는 하느님이심을 마리아는 고백합니다.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깊이 생각하고 큰 의미를 헤아려 보는 사람은 마리아처럼 자연스럽게 경탄의 찬미가를 부르게 되고, 그럴 때 내 삶 전체를 그분께 맡기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약하기에 전능하신 하느님께 의지해야 하고, 겸손한 마음을 지닐 때 하느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실 수 있습니다. 약하고 비천하고 굶주린 이들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은 오늘도 나의 하느님이 되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의 앞길을 인도해주심을 믿으며 언제나 하느님께 찬양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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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최재현 베드로 신부
  |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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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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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노래’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바치는 ‘감사기도’입니다.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이 찬미가에서 우리가 놓치면 안 되는
중요한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회개’와 ‘구원’은
우리가 ‘능동적인 삶’으로 실천해야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점입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인간들이 스스로 움직이기를 바라십니다.
(마태오 복음 25장에 있는 ‘탈렌트의 비유’가 바로 그런 가르침입니다.)
‘회개’는 ‘내가 능동적으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구원’도 구원받기를 원하고 구원받으려고
‘능동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이 받게 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루카 1,46ㄴ-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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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라는 말은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주님께 감사드리고, 주님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태오 22,37).”라는 계명에 연결됩니다.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에서 ‘마음이
기뻐 뛰다.’라는 말은 ‘굉장히 큰 기쁨’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구원자 하느님’이라는 말은 ‘심판자 하느님’의 반대말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17).”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신앙생활은 심판을 안 받으려는 소극적인 생활이 아니라,
구원을 받으려는 적극적인 생활입니다.
“당신 종의 비천함”이라는 말은, ‘구원받기 전’의 인간들의
불쌍하고 가엾고 비참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마태오 4,16).
‘굽어보셨다.’라는 말은 하느님의 ‘구원 의지’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지금 표현으로는 ‘나’로 되어 있지만, ‘마리아의 노래’는 마리아 개인의
사적인 노래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모든 신앙인의) 기도입니다.>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누리게 되는
참되고 영원한 행복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큰일’은 ‘위대한 일’, 즉 ‘구원’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는,
우리가 믿는 하느님만이 ‘참 하느님’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라는 말은,
주님을 제대로 섬기는 사람들만 구원받을 수 있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내리지만,
받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만 받게 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루카 1,51-55).”“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루카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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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한 자들, 통치자들, 부유한 자들’은 ‘구원’에 관심 없는 자들,
자기는 틀림없이 구원받는다고, 또는 구원받았다고 자만하는 위선자들,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을 상징합니다.
‘비천한 이들, 굶주린 이들’은 구원받기를 갈망하고,
구원받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이 말들은 기득권층과 소외계층을 대조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구원사업은 계급투쟁이 아닙니다.>
“흩으시다. 끌어내리시다. 빈손으로 내치시다.”는 ‘심판’을 뜻하고,
“들어 높이시다.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다.”는 ‘구원’을 뜻합니다.
<우리를 ‘들어 높이는’ 일은 주님께서 하시지만, 우리 쪽에서도
올라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묵시록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나는 부자로서 풍족하여 모자람이 없다.‵ 하고 네가 말하지만,
사실은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 내가 너에게 권한다. 나에게서 불로 정련된 금을 사서
부자가 되고, 흰옷을 사 입어 너의 수치스러운 알몸이
드러나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제대로 볼 수 있게 하여라(묵시 3,17-18).”

지금 통치자의 자리에 앉아 있고, 지금 부유하게 살고 있는 것은,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일입니다.

세속의 권력과 재물과 명예는 구원받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구원받는 것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될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가난하고 비천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
‘구원의 특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유하든지 가난하든지 간에 회개하는 사람만이 구원받게 됩니다.>
‘회개’는 자신이 구원받아야 할 처지에 있는 가엾은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나는 죄인이 아니다. 그러니 회개할 필요가 없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가난하든지 부유하든지 간에 그 교만과 위선 때문에 구원받지 못합니다.
여기서 ‘당신 종 이스라엘’이라는 말과 ‘아브라함과 그 후손’이라는 말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겸손하게 회개하고,
구원받기 위해서 능동적으로 노력하는 신앙인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라는 말은,
엘리사벳이 출산할 때까지 마리아가 곁에 있어 주었음을 나타냅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출산을 도와주고,
세례자 요한의 출생을 본 다음에 집으로 돌아간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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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
2022년 12월 22일
  |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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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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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방문하게 되었고 엘리사벳의 칭송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입을 열어 전능하신 분을 찬양합니다. 이 마리아의 노래를 ‘마니피캇’ (magnificat) 이라고도 부릅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루카1,46). 하고 시작합니다. 은총에 대한 감사가 무엇보다도 앞서고 있습니다. 비천한 여종이 목숨 걸고 순명했을 때 세상은 그를 복된 여인이라고, 거룩하신 어머니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전능하신 하느님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비천한 마리아를 돌보시는 것과 같이 오늘 우리의 비천함도 돌보십니다. 우리도 하느님께 찬미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시편을 보면 다윗은 “주님, 제 마음 다하여 찬송하며 당신의 기적들을 낱낱이 이야기하렵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이시여, 저는 당신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당신 이름에 찬미 노래 바칩니다”(시편9,2-3).

사무엘 상권2장1절을 보면 한나가 기도합니다. “제 마음이 주님 안에서 기뻐 뛰고 제 이마가 주님 안에서 높이 들립니다. 제 입이 원수들을 비웃으니 제가 당신의 구원을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목자들은 자기들이 듣고 보고 한 것이 천사들에게 들은 바와 같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돌아갔고(루카2,20), 치유 받은 병자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벌떡 일어나 깔고 있던 요를 걷어들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루카5,25). 사도들도 축복하시면서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께 경배하며 기쁨에 넘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날마다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습니다(루카24,51-53).

이렇게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한 이들은 무엇보다도 감사와 찬미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엘리사벳도 젊은 날에 아이를 배지 못하는 ‘돌계집’이라고 손가락질 받았지만, 주님께서 그 부끄러움을 벗겨 주셨습니다. 그야말로 주님께서 여인의 비천함을 굽어 보셨습니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루카1,25).

그리고 마리아는 겸손하게 말합니다.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은 “전능하신 분께서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루카1,49).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루카1,50). 하며 희망을 안겨 줍니다.

그분의 자비가 구체적으로 교만한 자를 흩으시고, 통치자를 끌어 내리시고 부요한 자를 빈손으로 내치십니다. 그리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시고 굶주린 이들을 배불리십니다. 또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루카1,55). 하늘의 법이 이뤄집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 나에게도 그분의 자비가 여전히 주어집니다. 우리가 요구할 자격이 없을 때에도 하느님은 자비는 여전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어떤 처지에 있든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에게 찬양 제물을 바치고 지극히 높으신 분에게 네 서원을 채워 드려라”(사람이 하느님께 바칠 제물은 감사하는 마음이요, 사람이 지킬 것은 지존하신 분에게 서원한 것을 갚는 일입니다.)(시편50,14). 그러므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콜로3,17). 마리아의 겸손과 감사를 사는 오늘이기를 희망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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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반영억 신부
2022년 12월 22일
  |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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