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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의정부/대전] 마리아의 노래-하느님 찬미가
조회수 | 104
작성일 | 22.12.21
마리아의 노래-하느님 찬미가 (루카 1,4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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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뛰니”(47절) 마리아는 자기 자신의 모든 것, 영혼과 마음으로 주님이신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느님의 모습은 하느님 자체가 아니라, 하느님의 모습이다. 이 하느님의 모습은 우리의 일과 생각과 말로 키울 때, 우리는 올바로 주님께 찬미를 드릴 수 있다. 우리의 모습 안에서 그분은 더 우리의 삶을 지배하시게 된다는 것이다. 그분이 우리의 주체가 되신다는 말이다.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48절) 이 말은 마리아의 겸손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온갖 복을 받은 것은 은총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즉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49절)이라고 한다. 하느님께서 마리아의 겸손을 굽어보셨고, 전능하신 분께서 그 여인에게 큰일을 하셨고,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다.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50절) 주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는 주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들은 주님의 자비를 입을 것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대대로’라는 말은 유다인이건 이방인이건 그리스도를 믿게 될 모든 나라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베드로는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사도 10,34-35)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51절) “당신 팔로”는 “당신의 힘을 쓰시어”라는 말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힘으로 통치자들, 높은 자리에 앉으려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교만함을 흩으시고 그들이 율법의 포로로 만든 이들을 당신 나라에 받아들이셨다. 이 통치자들은 하느님의 힘이 필요하지 않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필리 4,13)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 힘 있는 자들이다.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53절) 굶주리는 이는 겸손하고, 가난한 이다. 부유한 자는 교만하고 자기가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보려면 성전에서 빈손으로 내쳐지는 부유한 자 바리사이와 좋은 것들로 배부르게 될 굶주린 이를 볼 수 있다. 자신을 남과 비교하며 교만의 악취를 내뿜는 부자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했던 그의 마음은 그가 눈을 두지 못한 바로 그곳에 있었다.(루카 18,10-14 참조)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54-55절) 여기서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보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구원받은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그분이 거두신 이스라엘은 허울뿐인 교만해진 육에 따른 이스라엘이 아니다. 그 이름의 참뜻대로 당신의 성령을 좇아 살아가는 이스라엘이다. 하느님을 바라보며 그분을 믿고, 약속과 말씀에 따라 하느님의 아드님을 통하여 그분의 자녀가 된 이들이다.

또한, 이스라엘은 혈통에 따른 이스라엘이기도 하다.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믿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자비를 기억하시고, 그의 후손으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복을 받으리라는(창세 22,18 참조) 약속을 이루어 주셨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후손(히브 2,16 참조)이며 그분을 통하여 이방인들이 복을 받게 되는 우리 구세주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시어, 선조들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신 것이다.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56절) 마리아는 석 달 정도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며, 요한이 탄생한 다음 엘리사벳을 위해 봉사하시고 집으로 가셨다. 그리스도를 낳아주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었다. 성탄을 잘 준비한다는 것은 바로 마리아와 같이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다. 즉 사랑을 실천할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들에게 올바로 낳아줄 수 있다. 마리아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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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2020년 1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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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마리아의 노래에 덧붙이는 나의 찬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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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함께 하시는 주님, 당신께 찬미와 감사를 드립니다. 나를 완전하게 만드시어내 안에 나를 홀로 머물게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나의 보잘것없음과 부족함 때문에 당신을 향해 나를 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더 가짐으로써 주어지는 곧 사라질 행복이 아니라, 더 사람다워짐으로써 얻게 되는 참 행복을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더 높은 곳을 쫓는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불안한 삶이 아니라, 낮은 곳에서 벗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평화로운 삶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와 함께 하는 생기 넘치는 어울림을 방해하는 교만한 인간적 지식이 아니라, 삶의 참 의미와 길을 밝혀주는 지혜로 끊임없이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물질적 소유에 얽매여 삶을 메마르게 하지 않으시며, 나눔으로써만 채워지는 삶의 참 맛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이 찬미와 감사가내일도 모레도 이어져, 내 자그마한 삶 전체를 채울 수 있기를 희망하며, 당신의 아름답고 선한 뜻을 언제 어디서나 내 안에 간직하며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와 지혜를 청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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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상지종 신부
2015년 12월 22일
  |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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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만나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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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성모 마리아는 기쁨의 노래, 마니피캇을 노래합니다. 이 노래는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로 시작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성모님께서 아드님을 잉태하셨을 때, 혹은 낳으셨을 때, 혹은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셨을 때가 가장 기쁘셨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이때도 기쁘셨습니다. 하지만 성모님께서 기쁨의 노래를 부르신 것은 엘리사벳을 방문하셨을 때입니다. 이 ‘때’가 중요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성모님의 참 기쁨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우선 기쁨의 이유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이 기쁨은 존재론적 기쁨입니다. 아이들에게 부모가 없고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그것만큼 큰 고통은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부모를 찾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의 사랑을 확인하려 합니다. 그래야 마음의 평화가 오기 때문입니다. 이 마음의 평화가 오게 만드는 것은 부모가 주는 사랑의 증거, 곧 사랑의 선물입니다.

저는 저의 부모가 나의 참 부모임을 믿으려 할 때 가장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주는 사랑의 증거들, 예를 들면 나를 위해 일하셨을 부모의 발에 박인 굳은살을 볼 때 참 마음의 평화를 얻었습니다. 그때가 천국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잃고 무덤에 홀로 앉은 마리아 막달레나는 삶의 의미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니 기쁨에 찼습니다. 이것이 성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셨을 때의 기쁨입니다. 하느님께서 계시고 그분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느끼지 않으면 기쁘지 않습니다. 다른 기쁜 무엇을 찾아도 일시적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이 계시고 나의 창조자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증거를 원합니다. 그분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것입니다.

'금쪽같은 내새끼' 50회에 기괴한 장면이 나왔었습니다. 바로 엄마가 아이 둘을 쌍 수유하는 장면입니다. 여섯 살 딸과 모유를 먹어야 하는 갓난아기 동생을 동시에 모유 수유를 하는 것입니다. 여섯 살 아이는 분명 애정 결핍을 겪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 사랑을 느끼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엄마의 모유를 원합니다.

재밌는 것은 엄마가 때가 지난 아이에게 모유를 수유하면서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엄마는 엄마로 자녀에게 사랑 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게 기쁩니다. 그래서 단호하게 끊지 못합니다. 사실 아이보다 엄마가 더 기뻐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엄마도 부모로부터 애정 결핍의 감정이 있고 자녀에게 애정을 듬뿍 주면서 그 결핍을 채우려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117회에서는 더 기괴한 장면이 나옵니다. 모유 수유와 변을 닦아주는 것은 물론이요, 여섯 살 짜리 딸을 엄마가 업고 다닙니다. 엄마는 젖을 떼려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도 엄마가 자신의 엄마에 대해 애정 결핍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받았던 어렸을 때 어머니가 돌보아 주지 않은 상처를 자녀에게 주지 않으려는 행동입니다. 자녀는 엄마에게 업히고 젖을 먹으며 편안함을 느끼겠지만, 그렇지 못한 순간에는 불안함에 살아야 합니다.

따라서 참 기쁨은 부모로부터 사랑 받는다는 느낌을 넘어서야 합니다. 사랑 받아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모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엘리사벳을 방문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친교를 이루고 선교 할 때 더 완성된 기쁨을 느낍니다. 기도 안에서 관상까지 도달하여 주님의 사랑을 느낀들 무엇 하겠습니까? 그것이 이웃에게 전해지지 않으면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시간은 불안함에 휩싸입니다. 결국 내가 느낀 그 사랑을 전할 수 있는 부모와 같은 존재가 되었을 때 부모의 사랑을 가장 확신하게 됩니다. 부모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니 자녀에게도 참 사랑을 실천하지 못합니다. 젖을 떼지 못하는 것입니다.

개와 같은 짐승들은 때가 되면 단호하게 젖을 떼게 합니다. 더 큰 기쁨으로 새끼들을 보낼 줄 아는 것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기쁨을 제자들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그냥 그대로 예수님만 바라보고 있는 것보다 그 기쁨을 전하는 것이 더 큰 기쁨입니다. 기쁨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기도만 하는 것보다 그 기도한 것을 전할 때 더 큰 기쁨을 느낍니다.

성모님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시고 인사를 건넸을 때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하였고 태중의 아기도 기뻐 뛰었습니다. 곧 성모님께서 성령의 힘으로 누군가를 기쁘게 해 주셨을 때 가장 기쁘셨던 것입니다. 성령으로 잉태하셨을 때보다, 성령으로 누군가를 기쁘게 하였을 때 가장 기쁘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는 것보다 성령을 흐르게 할 때 기쁨이 완성됩니다.

항상 기뻐해야 하는 것이 하느님 뜻입니다. 내가 성령으로 기쁨으로 충만하고 다른 이를 성령으로 기쁘게 한다면 그게 가장 큰 기쁨입니다. 이 기쁨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울증에 자살 직전이었던 어떤 자매가 마더 데레사에게 상담을 요청하였습니다. 마더 데레사는 그 여인에게 상담해 주지 않고 자신의 봉사에 참여하게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한 달 만에 우울증이 가셨습니다. 성령님이 흘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힘으로 봉사하는 이들이 느끼는 기쁨입니다.

이런 대표적인 인물이 닉 부이치치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우울증은 타인을 기쁘게 해 줌으로써 극복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은 요한복음 9장을 읽으면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태생 소경이 다 하느님 뜻이 있어서 그렇게 태어난 것처럼 자신도 그렇게 팔다리가 없이 태어난 이유가 있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먼저 성령을 받아들이고 그 성령의 기쁨을 타인에게 전할 때 기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기뻐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세상에서 배우고 가야 할 유일한 것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은 예수님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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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2022년 12월 22일
  |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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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주님을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몸이 기억하고 영혼이 기억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루카 복음 1장 46-56절)

영혼에 깊이 새겨진 기억

병자 영성체를 다니다 보면 치매에 걸린 어르신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당신 이름도 잊어버리고,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는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당장 5분 전의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지요. 그런데 치매에 걸린 어르신들을 통해 놀라운 상황을 마주한 적이 있습니다. 이름도 모르고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시면서 어떻게 된 게 로만 칼라를 한 사제는 알아보신다는 겁니다. 그분들은 멀리서도 저를 알아보시고는 정성껏 성호를 그으시고, 함께 기도할 때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 등 주요 기도문을 또박또박 외우십니다. “그리스도의 몸” 이라는 말에 정확한 자세로 “아멘!” 하고 응답하시고는, 정성을 다해 성체를 영하시는 걸 보면 ‘치매 환자가 아니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병으로 지난 세월 쌓아온 날들에 대한 기억은 잃으셔도 신앙 안에서 몸에 밴 삶만은 잊히지 않는 것이 새삼 놀랍고 경이로운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설령 머리가 잊을지라도 주님을 찬미하며 살아왔던 기억들은 몸이 기억하고 영혼에 새겨지는 걸 눈앞에서 목격하니 기도하고 찬미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습니다. 그래야 모든 기억이 사라질 때 주님에 대한 사랑과 찬미만큼은 오롯이 살아 나를 통해 다시 주님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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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이승현 대건안드레아 신부
생활성서 2022년 1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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