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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7일 : 성녀 안젤라 메리치
조회수 | 2,861
작성일 | 06.01.27
성녀 안젤라 메리치 (1470~1540)

수호성인

안젤라 메리치는 최초의 교육 수녀회인 우르술라회를 조직한 사람이다. 그는 수녀회를 창립하면서 우르술라를 수호 성인으로 모시고, 수녀회의 이름도 그에게 헌정하였다. ‘수호 성인’은 천상 은혜의 전구자요 보호자다. 가톨릭 교회는 개인은 물론 직업, 전문 분야, 의료 부분, 사회 제도, 국가 등 어디에나 수호 성인을 모시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배가 아플 때 도와 주는 성 에라스모에서부터 한국 교회의 수호자이신 성 요셉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까지 수없이 많은 수호 성인들이 있다. 가톨릭 신자들은 세례성사나 견진성사를 받을 때 수호 성인을 정하고 그의 이름을 본명으로 받게 되는데, 이 수호 성인들은 각자의 삶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다. 이 책에서 만나게 되는 성인들 중 몇몇은 당신의 개인적인 친구나 수호 성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수호 성인은 영적 여정의 길잡이로서 우리가 도움을 요청하면 언제든지 우리에게 응답해 주신다. 성인들의 응답이 항상 우리가 바라는 때에 바라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소망이 하느님의 뜻 안에 있는 것이라면, 수호 성인은 언제나 우리를 위해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확신해도 좋다. 성인들과 계속 만나는 것은 신앙을 성숙하게 하며 우리를 사랑 안에서 자라게 해줄 것이다. 나의 수호 성인은 누구인가? 만약 없다면 어느 성인을 택하고 싶은가? 수호 성인의 보호에 나를 맡기겠다.

생활성서[작은 거인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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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라 메리치 성녀(1474-1540년)는 이탈리아의 작은 형제회 회원으로서 우르술라 동정회의 창설자로서 베네치아 공화국의 데즌차노에서 태어나 브레샤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1524년부터 이스라엘 성지를 순례하면서 큰 감동을 느껴, 1535년 팔레스타인에 우르술라 동정회를 창립하였다.

이것은 가톨릭 교회 최초의 여자 교육 수도회였다. 사망 직후부터 브레샤 주민들은 안젤라 메리치를 성녀로 공경하였고,

1768년 교황 클레멘스 13세가 시복하고, 1807년 비오 7세가 성인으로 선포하였다.

가톨릭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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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안젤라 메리치는 이탈리아 북부의 가르다(Garda) 호수 남쪽 데센자노(Desenzano)에서 태어나 경건한 신앙인으로 교육받았다. 어려서부터 성인전을 즐겨 읽었고, 성인들의 금욕 생활에 감명을 받아 금욕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13세 때 첫영성체를 한 후 평생 동안 동정을 지킬 것을 결심하였는데, 쌍둥이같이 자라던 15세의 언니와 브레시아 시민이라는 귀족 작위와 넓은 땅을 가진 영주였던 아버지 조반니(Giovanni Merici)와 어머니를 연달아 여의고 외삼촌의 보살핌을 받으며 5년간 휴양지로 유명한 살로(Salo)에서 살게 되었다.

그 후 성녀 안젤라는 작은 형제회 재속회(3회)에 입회하여 기도와 가난, 극기의 생활을 철저히 실천하며 자신을 이웃을 위한 속죄의 제물로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부모처럼 돌보아주던 외삼촌의 사망 후 고향 데센자노로 돌아온 성녀 안젤라는 이웃에게 봉사하며 살았는데, 특히 주위의 가난한 아이들을 모아 기도와 신앙생활을 지도하였다. 1516년 안젤라는 두 아들을 잃고 슬퍼하는 브레시아의 귀족 파텐골라(Patengola) 가족을 위로하러 브레시아에 갔다가 그들의 청으로 그곳에 머물게 되었다. 이곳에서 성녀 안젤라는 죄인들의 영혼을 위하여 속죄와 금욕생활을 하는 한편 고향에서와 같이 청소년들에게 종교 교육을 실시하였다.

1524년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고, 다음 해 로마를 순례한 뒤 그녀는 교황 클레멘스 7세(Clemens VII)에게 동정녀들의 모임을 시작하고자 하는 뜻이 있음을 밝히고 허가를 받아 브레시아로 돌아왔다. 카알 5세와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1528년 브레시아가 점령당하자 크레모나(Cremona)로 피난을 간 그녀는 그곳에서 심한 병을 앓다가 다시 건강을 회복하였다. 1530년 전쟁이 끝나 브레시아로 돌아온 성녀 안젤라는 뜻을 같이 하는 12명의 동정녀들과 함께 이듬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었다. 그리고 1535년 11월 25일 28명의 동정녀들은 브레시아의 성 아프라(Afra) 성당에서 영성체를 하고 성녀 안젤라가 만든 규칙에 따라 청빈, 정결, 순명을 지키는 회원이 될 것을 서명함으로써 '우르술라회'가 공식적으로 설립되었고, 1537년 성녀 안젤라가 초대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들은 특히 소녀들의 교육에 투신하고자 하였다. 가톨릭 여성 교육을 표방한 수녀회는 우르술라회가 첫 번째이다. 초기에 그들은 가족을 떠나지 않고 자신들의 삶의 자리에서 수도복이 아닌 단순한 복장으로 환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직접 방문하여 그들에게 봉사하였다. 성녀 안젤라는 1540년 1월 27일 사망하여 성 아프라 성당에 묻혔고, 1768년 교황 클레멘스 8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807년 5월 24일 교황 비오 7세(Pius V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가톨릭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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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라 메리치 / 원어명 Angela Merici

Angela Merici(1474∼1540). 성녀. 축일 1월 27일. 이탈리아의 프란치스코회 회원. 우르술라동정회 창설자. 베네치아공화국의 데즌차노(Desenzano)에서 태어나 브레샤(Brescia)에서 세상을 떠났다. 처음에 프란치스코회 제 3회에 소속되어 수년간 소녀교육과 여환자 간호에 헌신하고 있다가, 1524년부터 이듬해에 걸쳐 팔레스타인 성지를 순례하면서 감동을 느껴, 1535년 팔레스타인에 우르술라동정회를 창립, 1537년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이것은 가톨릭 교회 최초의 여자교육수도회였따. 사망 직후부터 브레샤 주민들에 의해 성녀로 추앙받았고, 1768년 교황 글레멘스 13세에 의해 시복(諡福), 1807년 비오 7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다.

가톨릭대사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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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라 메리치는 레이크 가르다에서 태어나 어릴 때 고아원에 맡겨졌다.
그녀가 성장한 후 프란치스꼬회(작은 형제회) 재속 3회원이 되었고
이 때부터 인근의 마을 어린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이 일이 크게 성공하여, 그녀는 1516년 브레쉬아로 초청되어 일을 계속하게 되었다.
성지와 로마를 순례한 뒤 그녀는 브레쉬아에서 계속 교리를 가르쳤고, 크레모나 전쟁 때까지 계속하였다.
1535년, 안젤라와 일단의 동료들이 브레쉬아의 성 아프라 성당에 모여 하느님께 자신들을 봉헌하여 봉사 활동을 하리라 다짐하였다.
그들은 특히 소녀들의 교육에 투신코자 하였다.
이것이 우르술라회의 출발인데, 여성 교육을 표방한 수녀회는 이 수녀회가 첫번째이다.
처음에는 공동체 생활이나 서원도 없었고 수녀복도 입지 않았다.
이런 현상은 안젤라의 사후 거의 4반세기까지 계속되었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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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안젤라 메리치의 유언에서

그분은 만사를 은혜로이 대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원장님들과 자매들이여,
여러분은 무엇보다 먼저 여러분의 자매들은 보살피고 다스릴 때 하느님의 도우심을 받아 오직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영혼들의 구원에 대한 열성으로 이끌려지는 저항과 마음 상태를 얻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 이중의 사랑에다 기초를 두어야만 여러분의 보살핌과 다스림은 선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우리 구세주께서는 복음서에서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나무, 즉 좋은 마음과 사랑으로 불타는 영혼은 선하고 좋은 일밖에 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 성 아우구스띠노는 말했습니다.
"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원하는 바를 하십시요."
즉, 사랑과 애덕을 지니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원하는 바를 하십시오.
이 말은 분명히 "사랑은 죄를 범할수 없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에게 또 권합니다.
여러분의 각 자매들이 지닌 특성을 참작하여 그들의 이름만이 아니라
그들의 성격과 마음 상태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새겨 간직하십시오.
여러분이 그들은 참된 사랑으로 사랑한다면 이렇게 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것입니다.
육신의 어머니들은 천 명의 자녀들을 갖고 있다 해도
그 자녀 하나하나를 마음속에 새겨 그 중에 한 사람도 잊지 않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참된 사랑의 열매입니다.
또 자녀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들 각자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커집니다.
이보다 더 풍부한 모성을 지닌 영신의 어머니들은 이와 똑같이 할 수 있고 또 해야 합니다.
영적인 사랑은 혈육에서 솟아 나오는 사랑보다 더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원장님들이여, 여러분이 여러분의 자매들을 참되고도 생동적인 애덕으로 사랑한다면,
모든 자매들 하나하나가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에 새겨져 있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오만과 거친 태도가 아닌 사랑과 겸손과 자비로 자매들을 이끌어 주어,
모든 이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에 따라 기쁘게 대하십시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에게서 배워라."
또 지혜서에 나오는 말씀에 의하면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은혜로이 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여러분은 또 모든 이들을 가능한 한 온유하게 대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특히 강제력을 사용하여 목적을 이루려 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자유를 주시고 어느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으시며
오직 암시를 주시고 부르시고 권고하실 뿐입니다.
때로는 한층 더 엄격한 권위를 행사해야 할 때도 있겠지만,
상황의 중요성과 개개인의 필요와 성격을 고려하여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도 우리는 다만 영혼에 대해 사랑과 열정으로 이끌려져야 합니다.

가톨릭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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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라 메리치는 자선의 면에서나 교육의 면에서
커다란 업적을 남긴 성녀로서 1474년 3월 21일 북 이탈리아의 덕망있는 부호 [메리치]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신심이 두터웠던 그녀는, 당시 세력을 펼치고 있는 新 異敎主義에 대항하여 싸우기 위해서는
가족 단위의 신앙 유대가 견고히 서야만 함을 절감하고 장래 가정의 어머니가 될 같은 또래의 소녀들을 모아 [우술라] 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일반 신앙 도덕의 앙양과 소년 소녀의 교육을 목적으로
한 수도원 내에 기거를 같이하며 힘을 합하여 박애 육영 사업에 종사하기로 마음 먹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안젤라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우술라] 수도원의 시초이다.
소년 소녀의 문화적 정도를 성인의 수준까지 끌어 올리면서 안젤라 메리치는
가정의 정신에 새로운 혁신을 불러 일으켰으며
결혼한 신자의 가정에 사랑 안에서 더욱 친밀한 결합을 이룰 수 있는 정신적 기초를 확립하였다.
그러나 오늘 날까지 소년 소녀의 교육과 가정의 문제는 심각하게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성바오로딸수도회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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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라 메리치 동정은 자선의 면에서나 교육의 면에 커다란 종적을 남긴 성녀로서
1473년 3월 21일 북 이탈리아의 덕망있는 부호 메리치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닮아 의지가 강하고 어머니를 닮아 신심이 두터웠고,
그 뿐 아니라 이 아이에게는 특별한 하느님의 성소와 보호가 있다는 것을 양친을 어느덧 알고 있었다.
그랬던 만큼 그녀가 겨우 13세에 동정의 종신 서원을 발했다는 것도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수많은 성인 성녀의 예처럼 안젤라도 주님의 뜻에 의해 일찍부터 교통의 십자가를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즉 15세 때 그리운 부모를 여의고 나서 또 가장 사랑하던 언니마저 세상을 떠나 아주 고독한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어느 날이었다.
의탁할 데 없는 데다 적적함에 못 이겨 안젤라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하느님께 기도를 바치고 있는데,
갑자기 성모 마리아께서 많은 천사들의 호위를 받아가며 발현하셨는데,
잘 보니 그 중에는 언니의 모습도 섞여 있었다.
그와 동시에 안젤라의 마음에는 “네가 걷기 시작한 길을 어디까지나 걸어야 한다.
그러면 너도 언젠가는 우리의 즐거운 단란 속에 낄 수 있을 것이다”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를 듣자 이상하게도 지금까지의 마음의 적막한 감이나 슬픔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명랑한 마음의 기쁨 그녀에게 충만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곧 그보다 더 심하고 혹독한 시련이 안젤라에게 닥쳐왔다.
그것은 이제까지 천사와 같이 정결하던 그녀의 마음에
악마의 소행인지 더러운 생각이나 상상이 자꾸만 머리에 떠올라
밤이나 낮이나 그녀의 마음을 산란케 하고 번뇌와 고민에 허덕이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끝까지 하느님을 신뢰하고 그와 같은 악마의 공격에 굴하지 않았다.
그녀는 열렬히 기도하고 자주 단식재를 지키고 엄중히 자신의 몸을 다스리며 필사적으로 지옥의 무리들과 싸웠다.
마침내 시련의 시기가 지나자 그녀의 마음에는 다시 깊은 천상의 평화가 충만하게 되었다.
안젤라는 매일 영성체를 모시며 사랑하는 주 예수와 일치하는 생활을 하며,
또 수도원에는 들어가지 않았을 지라도
상속받은 재산을 모두 가난한 이들에게 희사하고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세운 제3회원이 되어
수녀처럼 검소한 극욕 극기의 생활을 했다.
그녀가 자신의 사명을 깨달은 것은 이때인데,
그 뒤 자신의 물건을 희사하기도 하는 등 자선 사업의 활동을 시작했다.
물론 이와 같은 탄복할만한 행위가 반향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다.
곧 그녀에게는 같은 뜻을 가진 소녀 수명이 모여와서 그녀의 지도하에 숭고한 박애 사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안젤라가 당시 살고 있던 곳은 고향의 마을이 아니라 브레쉬아 시였는데,
마침 독일에서 일어나 순식간에 전국에 퍼진 마르틴 루터의 이단은
급류와 같은 힘으로써 브레쉬아를 거쳐 이탈리아에도 침입하려고 했다.
하느님께서는 이 이단의 탁류를 막기 위해 안젤라 등의 사업을 한 방파제로 사용하셨다.
즉 그녀가 무죄한 아이들의 마음에 정성을 들여 심어준 그리스도교의 진리는
후에 자라서도 소멸되지 않고 이단의 함정에 빠지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 영성에 관해 교훈을 받으러 오는 이들 중에는
학식면으로는 훨씬 그녀보다 훌륭한 신학박사나 신분이 높은 귀족들도 있었다.
그녀의 감화력은 무척 위대해 그가 성녀라는 것을 느끼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브레쉬아 시의 백작 두 사람은 다년간 원수로 지내오며 어떠한 사람이 중개해도 화목하지 않기를 고집해 왔으나,
안젤라가 그들에게 십자가를 보이며 두 세 마디의 말을 하자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음인지
두 사람은 서로 상대자를 포옹하고 눈물을 흘리며 서로 죄를 용서하며 그 후부터는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를 보더라도 그녀의 감화력이 얼마나 컷던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그 뒤 브레쉬아에 있는 안젤라의 동료는 점차 증가했으므로
그녀는 하느님의 뜻인 줄 알고 일반 신앙 도덕의 앙양과 소년 소녀의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우르술라회라는 수도원을 창립하기로 결정하고
1535년 11월 25일, 12명의 동료들과 더불어 새로이 수도 서원을 세워 규정한 회칙을 지킬 것을 맹세했다.그러나 종전과 같이 회원의 마음대로 어린이를 모으고 병자를 간호하고 빈민을 돌보고 죄수들을 위로할 수 있도록 당분간은 각자 친척집에 이속하며 공동생활은 하지 않았으나 수도회가 크게 발전해 2년 동안 회원수가 76명이나 증가했으므로 드디어 한 수도원 내에 기거를 하며 힘을 합해 박애 육영사업에 종사하기로 했다.
이것이 안젤라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한 우르술라 수도원의 시초이다.
안젤라의 성덕은 임종시에 한층 더 빛났다.
그때 그녀는 겸손한 마음에서 성 프란치스코의 통회의 의복을 입고 한 묶음의 볏짚 위에 누워
“성부여, 내 영혼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라는 말을 최후로 숨을 거두어
영원한 복을 누리기 위해 천국으로 향했다.
때는 1540년 1월 27일이었다.

대구대교구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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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술라회 / [영어]Ursulines

1525년 메리치(St. Angela Merici)가 이탈리아의 브레스치아 (Brescia)에서 창립한 수도회로,
최초의 교육 수녀회다.
1544년 교황 바오로 3세는 각자 자기의 집에 살면서 가운데 종사하는 처녀들의 수도회로 이 회를 공인하였고,
1572년 교황 그레고리오 3세는 보로메오(St. Charles Borromeo)의 요청에 따라
우르술라회원들이 공동생활을 하고 단식서원을 할 수 있게끔하였다,
1612년 이후 파리의 우르술라회는 성식서원을 하는 수도회로 바뀌었고,
성 아우구스티노 회칙을 수정한 생활규칙을 회칙으로 채택하였다.
1900년 전세계 우르술라회가 로마에 모여 대회를 개최하고 다양한 우르술라회치 통일을 시도하였다.
이후 많은 수도회들이 로마수족(修族) 으로 통합되었다. 로마수족은 단식서원을 한다.
로마수족 이외에도 25개의 우르술라회가 있다. 이들 중에는 성식서원을 하는 수도회 들도 많다.

가톨릭대사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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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27일 : 성녀 안젤라 메리치  [8] 2861
29   [수도회] 세월이 정답입니다  [4] 1102
28   [인천] 일꾼의 기준  [4] 880
27   [수원/서울/의정부/청주] 주님 밭의 일꾼  [5] 939
26   1월 26일 : 성 디모테오와 성 디토 주교  [5] 3008
25   1월 25일 : 성 바오로 개종  [10] 3250
24   1월 24일 : 성 프란치스코 드 살  [3] 2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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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1월 22일 : 성 빈첸시오  1817
21   1월 21일 : 성녀 아녜스  [6] 3321
20   1월 20일 : 성 파비아노  2127
19   1월 19일 : 성 울프스턴  1789
18   1월 18일 : 프리스카  2007
17   1월 17일 : 성 안토니오  [4] 2543
16   1월 16일 : 성 호노라토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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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월 14일 : 성 사바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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