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축일강론

축일강론 코너 ( 월별로 찾고자 하시는 축일을 검색하시면 됩니다... )

 

 일자별 칮기    l  1 월  l  2 월  l  3 월  l  4 월  l  5 월  l  6 월  l  7 월  l  8 월  l  9 월  l  10 월  l  11 월  l  12 월  l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49 67.6%
10월 04일 :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조회수 | 3,055
작성일 | 05.10.04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1181~1226)

죽음

성인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에 대해서는 한 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다. 부유한 가정 생활을 포기하고 가난한 수도자가 된 프란치스코의 이야기는 수없이 많은 책으로 출판되었고 연극으로, 영화로 만들어졌다. 프란치스코는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가장 독특한 사람 중의 하나일 것이다. 프란치스코의 자유로움은 그리스도교 신자거나 아니거나 할 것 없이 700년 이상 동안 한결같이 사람들의 마음과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성 프란치스코는 모든 피조물 안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보았다. 그가 노래한 ‘태양의 찬가’는 죽음을 앞두고 큰 고통을 받으면서 만들어졌다. 그는 세상의 모든 피조물에 대해 감사했고 특별히 죽음을 자매로 부르면서 간절히 죽음을 기다렸다. “… 내 주여! 당신의 모든 피조물 그 중에도, 언니 해님에게서 찬미를 받으사이다. 그로 해 낮이 되고 그로써 당신이 우리를 비추시는, 그 아름다운 몸 장엄한 광채에 번쩍거리며, 당신의 보람을 지니나이다. 지존이시여!… 내 주여! 목숨 있는 어느 사람도 벗어나지 못하는 육체의 우리 죽음, 그 누나의 찬미 받으소서. 죽을 죄 짓고 죽은 저들에게 앙화인지고, 복되다, 당신의 짝없이 거룩한 뜻 좇아 죽는 자들이여! 두 번째 죽음이 저들을 해치지 못하리로소이다. …”(최민순 신부 역) 나는 죽음을 준비하면서 살고 있는가? 죽음이 다가온다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겠다. 하늘에 있는 나의 친구, 성인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므로.

생활성서 [작은 거인들] 중에서
449 67.6%
프란치스코 성인님은 주님의 말씀대로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심으로써 교회를 쇄신시키신 분입니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 박해시기가 끝나고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과 로마제국의 식민지 국가들의 국교가 됨으로써 교회는 많은 재산을 희사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그 많은 재산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기보다, 더 큰 성당건물을 짓고 성사 집전과 교회법의 테두리안에서 신자들의 조직을 관리하는 측면의 사목정책으로 교회 안에서 예수님의 말씀과 정신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흔히 '면죄부'라고 잘못 알려져 있는 '전대사' 문제, 이른바 베드로 성전을 짓기 위해 헌금하는 사람은 헌금의 양에 따라 죄를 사해준다는 일도 이 때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루터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교회의 정책을 반대하면서 각 지방에서 신성로마제국에서 독립하려는 토호정치세력과 손을 잡으면서 교회가 분열되기 시작했습니다. 개신교의 여러 분파들, 성공회라는 영국교회 등.

이러한 시대상황 속에서 교회를 떠받친 두 분의 성인이 있었는데 한 분은 설교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하신 도미니코 성인님이시고 다른 한 분이 바로 우리 본당의 주보성인이신 프란치스코 성인님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 31. 33) 하신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 40) 하신 주님의 말씀에 따라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을 돌보며 일생을 사셨습니다. 자신의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져 가난해진 프란치스코의 삶은 여러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고, 많은 이들이 가난한 이들을 돕는 프란치스코 성인님께 존경과 희사를 해서 가난한 교회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가난한 교회, 가난한 이들이 언제라도 찾아와 기도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교회가 바로 가난한 교회이며 프란치스코 성인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며 이룬 교회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도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구역이나 단체다 하는 구분과 대조도 없이 신자 누구나 복음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여 실천하는 가난한 교회가 됩시다.

서울대교구 심흥보 신부
  | 10.04
449 67.6%
마태 21 33-43

프란치스코 성인님 하면 우리는 얼핏 가난을 연상한다. 프란치스코 성인님이 가난을 선택한 이유는 주님을 향한 사랑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성인님이 행한 그 가난은 그저 가지지 않는 가난이 아니라, 형제들에게 나누어주었기 때문에 없어진 가난이다.

우리 모두는 현세를 살고 있다. 가족과 친척, 친지들과 함께 살고 있다. 프란치스코 성인님은 우리에게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가족을 버리거나 포기하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의 편익을 버리고 자기 가족 친지 이웃들에게 더욱 더 봉사하라고 한다. 열심히 벌어서 형제들과 나누라고 한다 가능하면 자기 가족 친척 뿐만아니라 이웃 심지어는 동식물을 비롯한 자연과도 나누기를 원한다. 우리는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눔으로써 프란치스코 성인님의 가난 정신을 산다. 성인님은 내가 얼마나 많이 알고, 좋은 것을 많이 가지고 있는가 보다, 얼마나 이웃들과 나누는가를 보고 기뻐한다.

그리고 동시에 성인님은 우리가 없어서 기죽고 불행하다고 느끼지 말고 오히려 가난할 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생명과 가족, 친지, 우정, 사랑, 평화를 채워주신다는 것을 알아채고 감사하라고 한다. 이렇게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하느님께서 내게 선물로 주신 '내 인격과 내 생애, 나 자신'을 형제들과 나눔으로써 우리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들이 평화를 누리기를 원한다.

오늘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말한다.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으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하느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필립 4, 6-7)

진정 필요한 것은 주님께서 채워주리라 믿고, 오늘 이렇게 살아있음을 주님께 감사드리며, 주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짐으로써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갈망하며 또 그렇게 투신하면, 주님께서는 기꺼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와 함께해주실 것이고 우리는 주님과 함께함으로써만 간직할 수 잇는 평화를 누릴 것이다.

우리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상기한다. "무엇이든지 참된 것과 고상한 것과 옳은 것과 순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과 덕스럽고 칭찬할 만한 것들을 마음 속에 품"(8절)고 "나에게서 배운 것과 받은 것과 들은 것과 본 것을 실행하면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9절)

서울대교구 심흥보 신부
  | 10.04
449 67.6%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가난하게 태어나심으로써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의 위안이 되셨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필립 2,6)라고 말하고는 그 의미를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은혜로우신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부요하셨지만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분이 가난해지심으로써 여러분은 오히려 부요하게 되었습니다."(2고린 8,9)라고 밝힌다. 이렇게 예수님의 가난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의 것을 다 버리고 우리와 똑같은 처지가 되신 하느님 사랑의 표징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부잣집 아들이었지만 자기에게 돌아올 재산을 모두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에게 나눠주고 자신은 구걸하여 빌어먹음으로써 자연과 가난한 이들과 형제되어 일생을 사셨다. 그는 생산구조와 분재구조를 제도적으로 개혁하지는 않았지만, 세상의 분배구조를 이탈하고 자기에게 분배된 재화를 재분배함으로써 경제구조와 그 경제구조가 지배하던 당시의 사회와 종교를 개혁하셨다. 프란치스코 성인님은 세상을 버리고 주님을 선택함으로써, 물질보다 주님의 말씀을 사는 가난을 취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현대 세계를 사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가난해지셨고 프란치스코 성인님은 주님을 선택하셔서 주님의 뒤를 따라 가난한 이들의 형제가 되셨다. 프란치스코 성인님의 가난을 이어받은 그 수도회의 삶을 우리는 '공유' 개념 안에서 찾는다. 현세적인 물질의 소유자는 있되 함께 사용한다는 것이다. 주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 더 이상 자기 것을 자기 것으로 한정하지 않고 자기의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도록 내어놓은 삶이다. 우리네 일반인의 삶에 연결하여 쉽게 말한다면 가족의 범위를 확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세상 모든 이를 가족으로 삼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란치스코 성인님께서 형제를 구하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내어준 가난 즉 자기 공여를 주님의 삶에서 발견하고 실현하고자 했다면 오늘날 우리의 일상에서도 형제들을 구하기 위해 양보와 포기와 용서와 희생을 선택해야겠다.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으니, 너희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서울대교구 심흥보 신부
  | 10.04
449 67.6%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이 되게 하소서.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저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남겨주신 <평화의 기도>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기도문이지요. 오늘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입니다. 󰡐아시시󰡑는 이탈리아의 움브리아주(州) 페루자현(縣)에 있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지방 도시로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어 움브리아 평야의 평화로운 경치를 바라볼 수 있는 무척 아름다운 곳입니다.

저는 프란치스코 축일이 되면 아시시의 순례 여행이 떠오르곤 합니다. 아시시를 둘러보고 그 곳에서 좀 더 떨어진 󰡐또디󰡑라는 작은 마을에서 일박을 할 때는 재미있는 일도 있었지요. 아시시 보다도 더 외지고 아름다운 마을 또디에서 식사를 하고 산책을 하러 나갔는데 그 마을 꼬마들이 모두 나와 저를 신기하다는 듯이 구경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동양 사람을 처음 본 모양입니다. 산책하는 길 내내 많은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왔다 갔다 하면서 계속 쳐다보던 기억이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습니다.

프란치스코는 교회가 하느님의 일보다는 세상일에 관심을 두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였던 중세 시대 때 정신적인 지주의 역할을 했던 성인입니다. 1182년 이탈리아 아시시의 부유한 포목상의 아들로 태어난 프란치스코는 그 당시에 모든 사람들이 그랬듯이 기사가 되기 위해 1202년 아시시와 페루자 사이의 전쟁에 참여하였다가 포로가 되어 많은 보석금을 내고 석방됩니다. 이후에도 예전과 같이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던 프란치스코는 생사를 오가는 중병을 앓게 됩니다. 이 때 병상에서 하느님을 깊이 체험하게 된 프란치스코의 삶은 크게 변화됩니다. 이제는 이 세상의 출세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것을 결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그는 동굴 안으로 들어가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과거의 죄를 통회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아시시로 말을 타고 돌아오던 중 우연히 나병 환자들을 만났는데, 본능적으로 나병 환자 곁을 피해가고 싶었지만 그는 곧바로 말에서 내려와 나병 환자를 포옹하고 자선을 베풀었을 뿐만 아니라 다시 그들을 만나러 오겠다는 약속까지 하였습니다. 그런 후 프란치스꼬는 다미아노 성당 앞을 지나다가 성당 안으로 들어가 나무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프란치스코야, 쓰러져 가는 나의 집을 수리하여라.󰡓그 말씀은 그리스도 교회를 말하는 것인데 프란치스코는 글자 그대로 다미아노 성당을 수리해야 한다고 이해하였습니다. 곧바로 그는 그의 말과 장비들을 팔아 성당 수리비용을 마련하여 주임 사제에게 봉헌했으나 그가 거부하였으므로 성당 창문 옆에다 돈을 놓고 떠나갔습니다.

얼마 후 주임 사제와 성당 수리를 함께 하기로 협의하고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프란치스코의 아버지는 매우 화가 나서 프란치스코의 행동의 부당성과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시 법원과 교회에 의뢰하는 바람에, 프란치스코는 만인들 앞에서 결정적으로 자신의 정당성과 앞으로의 활동을 천명해야 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아시시 주교와 군중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내 말을 들으십시오. 지금까지 나는 베드로 베르나르도네를 나의 아버지라고 불러왔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나는 그에게서 받은 돈과 의복들을 돌려줍니다. 이제 나는 하늘에 계신 유일한 아버지 한 분만을 섬길 것입니다.󰡓

이처럼 그는 가족들과 이별을 하였고 주교는 그에게 망토를 건네주며 십자가를 걸어 주었습니다.

그 날 이후 생을 마칠 때까지 평생을 프란치스코 성인은 가난한 탁발승의 모습으로 살아갔습니다.

성경의 부자 청년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 무릎을 꿇고 묻지요.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마르10,17)

예수님께서 율법의 계명들을 말씀하시자 그 사람은 주저 없이 답합니다.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마르10,20)

그러자 그를 유심히 바라보시고 대견해 하시던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르10,21)

부자 청년은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마르10,22)고 성경은 전하고 있지요. 결국 그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세상에 남았습니다. 어리석은 부자일 뿐이었지요.

프란치스코 성인이 그 많은 유산과 창창한 세상의 미래를 버리고 하느님을 따랐을 때 사람들은 모두 그를 향해 어리석다고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부분은 하느님께서 다 채워주셨지요. 오늘 날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재산이 얼마인지는 하느님도 모를 정도라고 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세상에서의 성공만을 따라 살았다면 온 세계에 펼쳐진 수도회의 번영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초라한 결과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접고 하느님을 따르면 이처럼 부족한 부분은 하느님께서 다 알아서 채워주십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리석은 부자 청년의 전철을 밟지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가난 속에서 어떠한 사람보다도 자유롭고 평화롭게 사셨던 성인 중의 한 분이 프란치스코 성인이시지요.

사실 가난은 불행한 것만은 아닙니다. 어쩔 수 없는 가난은 불행이고 아픔이지만 자발적인 가난, 복음적인 가난은 축복일 수가 있습니다. 우리 시대가 지금 참으로 안타깝고 불행한 이유는 없어서 각박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너무나도 풍요로운데 기인합니다.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사람은 금방 비만해집니다. 비만은 만병의 근원이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너무나도 물질적으로 풍요롭기 때문에 정신과 영혼은 빈사 상태를 헤매고 육신은 끊임없는 탐욕으로 갈증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끊임없는 갈증이 정신과 영혼을 황폐하게 이끌고 이기적으로 만들지요. 비만이 만병의 근원이듯이 세상의 것을 더욱 차지하고 누리려는 욕심과 지나친 물질적인 풍요가 갈수록 사람을 안타깝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부모 자식간이나 형제간, 이웃 간에 탐욕이라는 불순물이 끼어 들어 편안하지도 않고 사랑이나 우애는커녕 왕래도 없는 비인간적인 관계로 치달아 가고 있지요.

이러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프란치스코 성인의 자발적인 가난은 참으로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모든 것을 움켜잡아 육신에 너무 많은 살이 붙으면 몸과 정신은 무기력해집니다. 바른 육신과 맑은 정신을 지니려면 비만으로부터 탈출해야 하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가진 것을 서로 나눠야합니다. 지금부터라도 잘 쓰는 계획을 세우십시오. 형제나 부모,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 얼마씩 나누겠다는 계획을 세워서 실천한다면 모든 관계에 서서히 온기가 돌고 사랑과 신뢰의 관계로 회복이 될 것입니다. 이 시대의 비인간화와 세상 곳곳에 퍼져나고 있는 죽음의 문화에서 우리가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길밖에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우리 삶의 중심이 되었을 때 이 세상은 상생의 문화로 흐르고, 우리 모두가 함께 잘 살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행복은 소유나 소비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소유를 통해 행복을 찾으려 한다면 그것은 우상숭배일 뿐이지요.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바르게 쓰는 법을 아는 사람입니다.

프란치스코는 1224년 9월 라 베르나 산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처럼 오상을 몸에 지닐 수 있었고, 1226년 10월 3일 유언을 마친 프란치스코는 요한 복음의 수난기를 읽게 하였고, 자신은 시편 43장을 노래하며 저녁에 포르치운쿨라에서 임종하셨습니다. 그의 유해는 10월 4일 아시시에 있는 산 조르죠 성당에 안장되었습니다. 2년 뒤 1228년 7월 16일 교황 그레고리오 9세에 의해 시성되었고, 1230년 5월 25일 엘리야가 그를 기념하여 지은 지금의 프란치스코 대성당에 이장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셨습니다.

오늘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 축일을 맞아 좀 덜 먹고 덜 쓰고 욕심을 줄이는 삶을 살 때 우리 삶이 더욱 평화로워질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의 삶이 어리석은 부자 청년이 아닌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서울대교구 이기양 신부
  | 10.04
449 67.6%
멀고도 먼 과제, 자기 해방의 실현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 신자들뿐만 아니라 타종교인들, 무신론자들에게서까지 존경과 흠모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축일을 경축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프란치스코를 일컬어 ‘제2의 그리스도’ ‘새로운 복음사가’라고 칭하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그는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추종하기 위해 자신의 생애 전체를 바쳤습니다. 읽고, 느끼고, 받아들인 복음을 자신의 온 몸으로 실천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 전체를 걸었던 것입니다.

개신교 역사학자 폴 사비티에는 프란치스코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교회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성인입니다.”

프란치스코와 여러 측면에서 ‘코드’가 맞았던 마하트마 간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백년마다 한 번씩 프란치스코가 태어난다면 인류의 구원은 보장이 될텐데...”

다음의 일화를 통해 우리는 그가 온몸으로 실천했던 복음적 가난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를 따르는 형제들이 하나 둘 모여들던 초창기시절이었습니다. 하루는 어떤 농부가 프란치스코와 형제들이 숙소로 삼고 있는 헛간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그 헛간에 당나귀를 들여놓아야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자신들의 안방에다 당나귀를 들이겠다는 농부의 말에 제자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러자 성깔이 만만치 않았던 농부 역시 단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농부는 형제들을 향해 입에 담지 못한 욕설을 마구 퍼부었습니다. 묵묵히 듣고 있던 프란치스코는 농부를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여, 이제 그만 두시오. 우리가 살던 곳을 차지하시오. 우리 형제들은 이 땅에서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얼굴을 돌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은 당나귀와 자리다툼하기 위함이 아니고 당신의 복음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자 갑시다. 어디 밤샐 곳이야 있겠지요.”

안타깝게도 프란치스코는 44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른 죽음의 이유는 다름 아닌 철저한 복음의 실현 때문이었습니다. 험난했던 복음전파 여행, 계속되는 과로, 그로 인한 위장병, 간장병, 각혈, 눈병...

프란치스코는 죽음이 서서히 다가옴은 깨닫습니다. 그러자 형제들에게 남길 유언서를 쓰기 시작하는데, 한 구절 한 구절 감동적이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내가 여러분을 늘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우리의 거룩한 귀부인 가난을 받으십시오.

모든 사람들에게 굽히며,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사랑하십시오.”

프란치스코에게 있어 가장 독특하고 감동적인 측면은 만인형제애(萬人兄弟愛)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 모든 사람, 모든 대상은 형제이며 사랑의 대상이었습니다.

심지어 자신에게 다가오던 죽음에게조차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어서 와요. 자매인 죽음이여!”

프란치스코 회헌에는 이런 표현도 있습니다.

“그대들에게 오는 사람 모두, 그가 친구이든 원수이든 강도든 도둑이든 모두 형제로 맞아들여야 합니다.”

프란치스코가 내린 ‘가난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이란 선택과 결단은 당시 사회의 통념이나 상식을 완전히 초월하는 특별한 결단이었기에 그가 직면했던 어려움이나 헤쳐 나가야했던 도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새로운 복음적 길을 확신했던 프란치스코였지만 꾸준히 그 길을 걸어가기란 정녕 힘겨웠습니다. 그도 결국 어쩔 수 없는 한 나약한 인간이었기에 불확실성과 어둠사이에서 방황도 많았습니다. 제대로 된 빛을 찾기까지 일생동안 고달프고 힘겹고 외로운 투쟁을 계속해왔습니다.

그의 생애는 길고도 지루한, 그러나 완만하나 꾸준한 상승곡선을 그린 신앙여정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가난의 특징은 사회적응의 실패로서의 가난, 어쩔 수 없이 맞이하게 된 비참하고 궁색한 가난이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세속적 안녕과 물질만능주의의 예속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자기해방의 도구로서 가난을 선택한 것입니다.

완벽한 가난을 자신의 삶에 적용함을 통해 대자유인이 된 프란치스코는 가난으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부담이나 초조감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졌기에 만민의 형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 10.04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   성 레제르 
32   10월 31일 : 복자 말론의 무시안  1570
31   10월 30일 : 성 알폰소 로드리게스  1502
30   10월 29일 : 바르톨로메오 데 라스 카사스  1882
29   10월 28일 : 성 유다(타데오)  [5] 2910
28   10월 27일 : 복자 루도비코 과넬라  1661
27   10월 26일 : 성 시드  1425
26   10월 25일 : 성 가우덴시오  1470
25   10월 24일 : 성 안토니오 마리아 클라렛  1727
24   10월 23일 : 카페스트라노의 성 요한  1393
23   10월 22일 : 헤라클레이아의 성 필립보  1568
22   10월 21일 : 복녀 아녜스 갈랑드  1444
21   10월 20일 : 성녀 베르틸라 보스카르딘  1688
20   10월 19일 : 성 이사악 조그  1593
19   10월 18일 : 성 루카  2550
18   10월 17일 :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1883
17   10월 16일 : 성녀 헤드비히  1488
16   10월 15일 : 예수의 성녀 데레사  [1] 2349
15   10월 14일 : 복녀 마리 푸스팽  1954
14   10월 13일 : 복녀 아고스티나 피에트란토니  1551
13   10월 12일 : 성 윌프리드  1553
12   10월 11일 : 성녀 마리아 솔레다드  1542
11   10월 10일 : 성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2022
10   10월 09일 : 성 루도비코 베르트란  1476
9   10월 08일 : 성녀 타이스  1413
8   10월 07일 : 복녀 지아나 베레타 몰라  [1] 1986
7   10월 06일 : 복녀 마리 로즈 뒤로쉐  1982
6   10월 05일 : 복자 카푸아의 라이문도  1572
  10월 04일 :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5] 3055
4   10월 03일 : 성 토마스 켄틀루프  1465
3   10월 02일 : 성 레제르  1487
2   10월 02일 : 수호 천사 기념일  [11] 3472
1   10월 01일 :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2816
1
 

 

축일강론 코너 ( 월별로 찾고자 하시는 축일을 검색하시면 됩니다... )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9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