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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 (암으로 사망)
조회수 | 4,064
작성일 | 09.12.10
여러분은 아들 또는 형제 그리고 친구를 갑자기 잃고 슬퍼하십니다. 그의 마지막 길을 전송하고자 아픈 마음으로 여기 오셨습니다. 특히 부모님을 중심으로 한 가족들은 수많은 길을 그와 함께 걸어오셨습니다. 그 많은 길들 중에는 기쁘고 즐거웠던 날들도 있었으나 또 한편으로 병고와 걱정과 염려의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그 어려운 시기들을 잘 이겨내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너무나도 빨리 그리고 홀연히 여러분보다 먼저 먼 길을 혼자 떠났습니다. 여러분들도 더 이상 어쩌지 못하는, 함께 할 수 없는 길을 떠났습니다. 이에 우리는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을 뿐입니다. 여러분과 비슷한 상황에서 사람을 잃고 슬퍼했던 어떤 사람이 그 참담한 심정을 아래와 같이 표현하였습니다.
  
“너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구나, 나는 고개를 숙이고 슬퍼하네, 내 말이 여전히 네게 다다를 수 있을 지 알 수 없구나! 이제 너는 나의 도움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겠지. 내 느낌은 공허할 뿐이란다. 나의 한 부분이 너와 함께 죽었단다. 그래도 너는 내 가까이에 여전히 남아있단다. 아직도 나는 너의 따스한 온기를 체감한다. 마치 해가 서산을 넘어간다 해도 돌로 된 벽은 얼마동안 그 온기를 간직하듯이, 나 또한 너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단다. 아직도 난 너의 말을 들으며 낮은 소리로 ‘엄마’하는 소리가 내 귓가에 맴돈다. 이제까지 우리는 함께 살았었지만 이제 나는 혼자가 되었단다. 서로 위해주고 서로를 염려해주는 일도 이제 그만 두어야겠지. 이제는 그 뒷얘기와 생각만 할 뿐이다. 생이 얼마나 짧은지, 너의 인생이 무엇이었는지 누가 헤아려 볼 수 있을까? 수많은 귀중한 순간들을 내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나는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단다. 내 생각은 너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것에 맴도는구나. 이제 더 이상 너를 중심으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겠구나. 내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를 나는 알고 있단다.”
  
저는 지금 여러분이 견뎌내는 위와 같거나 비슷한 고통스런 마음이 그렇게 빨리 없어지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고통은 순식간에 들이닥치지만 지나가기는 더딥니다. 아픔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님처럼 여러분 가까이에 머물고 여러분 마지막 날에 와서야 떠나갑니다. 슬퍼하거나 자신의 슬픔을 몰아내지 않는 사람은 마치 다른 이편에서 저편으로 건너다니는 사람과 같습니다. 저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이 이미 건너갔던 곳으로 가는 것이고 이편으로는 고인과 함께 지내던 삶의 시간으로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이편에서 저편으로 또는 저편에서 이편으로 건너다니는 것은 살아가는데 중요한 관점이 됩니다. 왜냐하면 여기에서는 여러분께 속했던 것들이 부서져 버렸지만 천상에서는 그것을 되살려 주고 보완해 줍니다. 여기서는 어떤 가치 있는 것들을 잃어버렸지만 천상에서는 그것을 찾아주고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는 누가 우리로부터 떠나갔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필요로 합니다. 사람들은 그의 뒤를 따라갑니다.
  
그러나 천상에서는 그 사람은 살아 있습니다. 더구나 떠나간 사람을 기루어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는 그는 언제나 살아 있습니다. 이처럼 천상에서는 건너가고 건너오는 발걸음이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께서 고인과 대화를 하고자하거나 사진을 들추어 볼 때 또 편지를 다시 한 번 읽어보거나 하느님 앞에서 원망스런 기도를 드리려고 하면 언제나 “왜?”, “무엇 때문에?” 라는 질문에 걸려 넘어지게 됩니다.
  
왜 주님, 내 아들입니까? 왜 하필이면 내 가족, 내 친구가 그렇게 되어야 합니까? 그가 왜 벌써 죽어야 합니까? 왜 우리는 아직도 살아 있습니까? 왜 내 아들이 그런 병에 걸려야 합니까? 왜 다른 사람은 아닙니까? 왜 세상에 그렇게 많은 고통과 불의가 있습니까? 왜 행운의 기회가 공평하게 나누어지지 않습니까? 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기도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까? 도대체 하느님은 계시기나 하십니까? 이처럼 수많은 의문과 원망이 내 안에서 생겨납니다.
  
저는 우리가 고통을 겪을 때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극도의 괴로움에 직면해서 위의 질문들을 제기하는 것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적합한 대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에 저는 한 가지 사실만을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귀한 아들의 고통과 죽음은 결코 하느님께서 주시는 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느님은 어떤 좋은 일을 하시기 위해 나쁜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고통과 좌절, 방황과 죄, 잘못, 인간적인 부족함과 비인간적인 잔인함을 결코 원하시지도 그렇게 정하시지도 않으십니다. 고통과 죽음에는 그 어떤 시원한 대답도 있을 수 없습니다. 차라리 함께 겪는 고통과 함께 하는 죽음 자체가 대답이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거부하지 않으시고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는 것은 바로 그분의 죽으심에 함께 하는 것이고,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부활에 또한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시작과 마침에 이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주님께서 계십니다. 이제 우리는 그분께 희망을 둘 수 있습니다. 고통 받는 사람은 언제나 노예와 같은 삶을 살지 아니하고 병자는 언제나 병고에 시달리지 않으며 죽은 이들은 언제나 죽음의 세계에 갇혀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박해하고 죽이는 사람이 승리하지 않고 그리스도께 희망을 두는 사람이 결정적으로 승리하는 것입니다.
  
슬픔에 잠긴 유가족 여러분!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고인은 평소에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를 믿었고 사랑했음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비록 부모님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나 부모의 가슴에 못질하고, 땅에 묻기보다 가슴에 묻게 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하느님의 손길은 고인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너무나 갑자기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기에 원망스럽지만 이제 우리는 그 원망을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맡기고 간청으로 바꾸십니다. 하느님은 그를 당신 천상복락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대구대교구 사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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