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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조회수 | 2,793
작성일 | 09.07.09
복음 : 마태 5. 1~8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복되도다!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고통은 그 자체로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 슬픔은 또한 결코 행복이 될 수 없습니다. 저는 고통으로 인해 삶이 파괴된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회의와 고통으로 스스로 생명을 끊는 사람도 알고 있습니다. 자기가 당하는 고통이 너무 힘에 겨워 하느님을 의심하며 신앙마저 잃어버린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만약 하느님이 계신다면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이 세상에서 생겨 날 수 있단 말인가?
  
어떠한 사람이 내외적 고통을 당해 그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그 사람에게서 가서 ‘너무 괴로워 하지마라’하고 말하기는 쉽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위로한다면 그것은 자주 자기방어일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스스로 다른 사람의 고통과 절망, 그리고 좌절을 견디어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의 고통에 적극 동참하려고 완전히 준비되어 있을 때에만 그 사람에게 희망적인 위로의 말을 할 수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으리라”하고 오늘 복음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분 자신은 고통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고통을, 질시와 반목, 증오와 고통, 고문과 죽음을 겪으셨습니다. 심지어 하느님마저도 자신을 버리셨다는 느낌을 가지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우리에게 행복선언의 이 약속을 하십니다. 바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하느님은 가까이 계신다고 알려 주십니다. “당신은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당신은 이겨낼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새로운 길에 대한 용기를 발견할 것입니다. 당신은 새로이 숨을 쉴 것이며 당신의 삶을 발견할 것입니다”하십니다. 분명 여러분도 고통으로 부서지고 하느님을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고통을 이겨내고 성숙해진 사람들, 자신의 운명을 이겨내는 가운데 그 신앙이 더 강해진 사람들도 알고 있습니다. 고통 없이는 인간적 성숙이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제대로 인식하고 있습니까? 아랍의 격언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언제나 태양 빛만 비춰지는 대지는 사막이 된다” 곧 고통은 언제나 괴로운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고통은 우리의 삶의 한 부분입니다. 어린이가 여러 가지 어려운 과정을 겪어내야만이 어른으로 성숙된다는 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이 고통을 이겨내고 그것을 이겨냈을 때만이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의 고통에 한 몫을 차지할 수 있고 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합니다. 그로 인해서 반대의 경우도 가능해 집니다. 그로 인해서 반대의 경우도 가능해 집니다. 즉, 죽을병에 괴로워하는 사람을 찾아가거나 또는 엄청난 시련을 겪는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떨 때는 제가 그들을 위로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로부터 제가 위로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로 인해 하느님의 손길을 새롭게 인식하기도 합니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이는 근본적으로 고통을 피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용기를 주는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예수님은 고통과 죽음을 찾아 나서지 않으셨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피아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사람을 위해서 해야만 한다면 고통과 죽음을 스스로 받아들이셨던 것입니다. 이에 십자가 그리스도 신앙의 표지가 되었습니다. 이는 희망이 없는 죽음의 십자가가 아니라 사흗날에 죽은 이로부터 부활하신 분께로 인도하는 승리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분께서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으리니”라는 약속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구약의 시편 저자는 지독한 괴로움 중에서도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애절한 기도를 드립니다.

“야훼여, 깊은 구렁 속에서 당신을 부르오니,
주여, 이 부르는 소리 들어 주소서.
애원하는 소리, 이 소리, 귀 기울려 들으소서” (시편 130. 1~2)


대구대교구 사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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