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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니모 성인은
조회수 | 2,737
작성일 | 09.11.24
독서 : 로마 8,18-25
복음 : 요한 4, 1-18

지금 우리는 고인이 되신 (      )와 작별하기 위해서 여기에 모였습니다. 세상에서의 이 작별은 더 이상 기약할 수 없는 마지막 작별이기에 마음이 더 아픕니다. 유가적 여러분에게는 아내요 어머니인 고인의 죽음이 고통스럽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크나큰 슬픔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죽음의 소식을 접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접하는 죽음과 유가족 여러분이 겪는 죽음과는 크나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겪는 아내나 어머니의 죽음은 나의 죽음이지만 우리가 매일 듣는 죽음의 소식은 남의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죽음에서야 우리는 비로소 죽음의 비통함을 직접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이 죽음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갈 뿐 아니라 내가 일구어 놓은 모든 관계를 앗아가 버립니다. 이성적으로는 나이가 들면 죽음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지만 마음으로는 그것을 인정하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당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말을 남기셨다고 합니다. “내 어머니께서 우리 곁을 떠나셨다는데 대해 우리는 슬퍼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녀가 하느님 곁에 계시면서 계속해서 우리 가까이 계실 수 있음에 우리는 기뻐하며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말씀은 죽은 이들이 단순히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신앙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죽은 이들은 하느님 곁에서 계속해서 살아계시며 하느님의 현존을 통해서 죽음을 뛰어 넘어 우리 가까이 계십니다.
  
오늘 여기 있는 우리들은 이 같은 신앙을 나눕니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삼사드릴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감사드릴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가족 여러분에게는 슬픔 때문에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더라도 여러분이 겪으시는 슬픔은 내적 평화를 선사하는 위로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인처럼 하느님 곁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믿는 사람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삶이 성공하는 것은 모든 이에게 당연히 주어지진 않습니다. 고인은 하느님을 믿었고 하느님께 희망을 두었습니다. 신앙과 희망은 그리스도 신자들을 특징짓게 합니다. 신앙은 세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드러나지 않는 실체, 곧 살아계시는 하느님을 봅니다. 신앙은 이 세상 안에서 내가 지금 벌써 시작할 수 있는 영원한 고향, 곧 미래가 있음을 희망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에서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희망의 하느님이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은 우리 희망의 뿌리이십니다. 일시적 실망과 좌절을 메워 주는 그런 희망이 아니라 수많은 난관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고향으로 계속 가는 길에 대한 희망이십니다. 언젠가 새 날이 오면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우리는 이 희망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하겠습니까?”라고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의 죽음을 접하고 그의 말없는 시신을 마주 대하면 우리 안에서는 체념적인 질문이 던져집니다.
  
“도대체 무엇이 남아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스스로가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도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도대체 죽고 나면 어떻게 되는가?” 우리가 찾아내는 모든 대답은 어쩔 수 없이 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와 같은 한계를 가지고 이 세상에 살았던, 우리 손으로 묻어야만 하는 고인만이 그 대답을 알고 있습니다. 고인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살아생전에 하느님께 자리를 만들어 드리고 하느님을 믿고, 언젠가 우리에게 자리를 주실 하느님을 바라는 사람은 하느님께서도 당신의 생명과 사랑 안에서 그를 받아 주실 것입니다.”하고 말입니다. 우리의 고인은 이런 신앙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이 신앙은 또한 오늘 슬퍼하는 우리를 위로해 줄 것입니다. 이 신앙은 성 예로니모의 말씀을 우리 마음 안에 새겨 줄 것입니다.
  
“내 어머니께서 우리 곁을 떠나셨음을 슬퍼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녀가 하느님 곁에 계시면서 계속하여 우리 가까이 계실 수 있음에 우리는 기뻐하며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대구대교구 사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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