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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아버지를 잃고 슬퍼하는 유가족 여러분,
조회수 | 3,147
작성일 | 09.12.10
남편과 아버지를 잃고 슬퍼하는 유가족 여러분,
고인은 분명 가족 여러분께 완전히 속한 분이셨습니다. 왜냐하면 고인은 바로 여러분 가정의 가장이요 남편이며 아버지였기 때문입니다. 유가족 여러분과 비교하면 우리 모두는 제 삼자가 됩니다. 고인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은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고인과 이야기를 나누셨을 뿐 아니라 함께 사셨습니다. 그럼으로써 그분의 사랑과 보살핌뿐만 아니라 그분의 염려와 걱정, 그분의 한계와 연약함까지도 직접 체험하셨습니다. 여러분만이 고인이 여러분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그분의 자리와 의미를 가늠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여러분의 슬픔과 괴로움 앞에서 침묵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가족 여러분, 고인은 오늘 여러분과 함께 슬퍼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속하신 분이었습니다. 고인은 살아생전에 우리와 같이 말했고 함께 기도했던 우리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또한 그분의 모습을 그리워하고 그분의 빈자리를 생각하며 마음 아파합니다. 그분은 우리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분 또한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짧은 시구의 대상이었습니다.

  “당신은 왔다가 희미한 발자취를 남기고 가셨습니다.
  이 땅 위에 잠시 머무는 손님처럼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십니까?
  단지 우리는 하느님의 손에서 왔다가
  하느님의 손으로 되돌아감을 알 뿐입니다.“

잠시 머무는 손님, 우리 모두는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깨달음을 가지기도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사고와 감정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사고와 느낌은 “속지마라! 이 세상에서의 삶은 내가 체험하고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실재다. 다른 모든 것은 환상이고 꿈일 뿐이다.”하고 말합니다. 이에 반해 전혀 다른 방향이 하나 있습니다. 곧 “우리는 이 지상의 삶을 간직할 수 없다. 아무도 시간을 멈추게 할 수 없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 보이는 것은 또한 부서질 수도 있는 것이며 손에 잡히는 것은 지나가 버리는 것이다. 지금 여기 있는 것은 언젠가 없어져 버리고 만다. 우리 모두는 잠시 머무는 과객일 뿐이다.
  
그러므로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하고 가늠할 수 있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는 말인가? 이 세상만이 있을 뿐인가? 내가 살고 있는 이 인생의 시간뿐이란 말인가? 하는 질문을 우리는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반대의 증거, 곧 우리가 계산하고 가늠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실재가 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음악과 같은 예술입니다. 음악은 하늘의 소리이며 예술은 세기를 흘러갑니다. 두 번째는 가장 확실한 것으로써 사랑입니다. 유가족 여러분은 여러분의 남편이자 아버지께서 비록 여러분 곁을 떠나셨다 하더라도 그분을 사랑하기를 그만 두시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은 그분의 죽음을 뛰어 넘어서 그분을 계속 사랑하실 것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그러합니다. 사랑은 죽음을 뛰어 넘습니다. 사랑은 죽음에 대항하는 가장 강한 반증이며 우리의 사고와 계산으로는 도저히 파악되지 않는 실재에 대한 가장 강한 증거가 됩니다. 종교적인 언어로 표현하면 세상의 모든 실체는 끝없는 사랑으로 감싸여 있으며 그 살의 주체는 바로 앞의 인용한 시의 주인이신 하느님이십니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단지 하느님의 손에서부터 와서 하느님의 손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임을 알 뿐이네.”
  
이 진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비춥니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마음으로 느낍니다. 인간은 무에서 생겨나지 않고 하느님의 손길에서 생긴 존재입니다. 인간은 다시 무로 되돌아가지 않고 하느님의 손길로 되돌아갑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마치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심연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은 우리가 통과하는 문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손님이 아니라 고향을 찾는 것입니다. 인간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고통 겪었던 그 모든 것이 죽음으로 없어지지 않고 하느님 곁에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 주위에 떠오르는, 우리가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수많은 물음들, 곧 나는 누구인가? 하필이면 왜 내가 이런 운명을 당해야 하는가? 왜 사람은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왜 사람은 그렇게 죽어야 하는 가? 하는 이 모든 의문에 대해 우리 앞에 고요히 누워 계시는 고인은 그 해답을 벌써 알고 계십니다.

“당신은 왔다가 희미한 발자취를 남기고 가셨습니다.
  이 땅 위에 잠시 머무는 손님처럼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십니까?
  단지 우리는 하느님의 손에서 왔다가
  하느님의 손으로 되돌아감을 알 뿐입니다.“

대구대교구 사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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