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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서울/의정부] 넓은 마음을 주십사고 하느님께 청하자
조회수 | 2,087
작성일 | 09.03.18
어제(2007년 3월 18일)는 본당에 사순 특강이 있었습니다. 몇 주 전, 저는 사순 특강을 하시는 신부님께 11시 미사와 함께, 미사 후 1시간 정도의 강의를 해달라는 부탁을 미리 드렸지요. 그래서 그 신부님께서는 10시 20분쯤 성당을 찾아 오셨고, 저희는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10시 40분쯤 되었을까요? 사무실로부터 인터폰이 울립니다. 오늘은 고해성사를 주지 않느냐는 전화였지요. 저는 대화를 마치고 급하게 고해소로 들어갔고, 특강을 하시는 신부님께서 미사를 하는 동안 고해성사를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순 판공 기간이라 많은 교우들이 성사를 보십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어요. 한 60명쯤 고해성사를 보셨을 즈음, 너무 급하게 고해소로 들어왔고 더군다나 커피를 마셔서인지 아랫배가 무거워지면서 화장실을 가고 싶은 충동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60명이나 성사를 주었으니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을 것 같아서 ‘조금만 참자.’ 라는 생각을 갖고 계속해서 고해소에 머물렀습니다. 20명 정도 성사를 더 준 뒤, 얼마나 더 계시는 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만큼 저는 급했거든요. 그래서 살짝 문을 열고 밖을 보니 2명이 계셨습니다.

‘그래, 조금만 더 참자. 2명만 성사 주면 된다.’

그런데 막 들어오신 분께서는 왜 이렇게 시간을 끄는지요.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저는 급해 죽겠는데, 이분께서는 계속해서 똑같은 말만 하시면서 시간을 끄시는 것입니다. 그 순간 이 분이 얼마나 미웠는지 모릅니다. 드디어 마지막 한 명. 이 분도 너무나 길게 성사를 보십니다. 그리고 이 분에 대해서도 안 좋은 생각이 들더군요.

이 분까지 성사를 드리고 밖으로 나가는 순간, 그 사이에 또 한 분이 와 계셨습니다. 땀이 납니다. 그리고 그 분이 정말로 미웠습니다. 간신히 이분 성사를 드린 뒤, 사제관으로 엉거주춤 자세로 뛰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에는 사목회 임원 중 한 명이 저를 붙잡고 말을 겁니다. 그 순간 이 분도 너무나 미웠습니다.

아무튼 큰 사고는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짧은 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미워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갖게 된 생각. 미움은 먼 곳에 있지 않으며, 너무나도 쉽게 행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미움이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양아버지인 성 요셉 대축일입니다. 요셉 성인께서 자신의 배필인 성모님의 잉태소식을 들었을 때 어떠하셨을까요? 인간의 지식으로 성령으로 아기를 잉태하였다는 소식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의로운 요셉은 성모님이 너무나 미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에 신고하여 사람들의 돌에 맞아 죽도록 만들 생각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남모르게 파혼하여 성모님이 살 수 있도록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너무나도 미웠겠지만, 미움을 미움으로 표현하지 않고 사랑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꿈에 나타난 천사의 말에 따라 성모님과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합니다.

미움은 너무나 쉽게 우리를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 미움을 이길 수 있는 길은 바로 사랑뿐입니다. 요셉 성인이 보여주었던 사랑을 기억하면서, 내게 다가오는 모든 사람들을 맞아들일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주님께 청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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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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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어떤 분으로부터 “50대 여성에게 꼭 필요한 네 가지가 무엇인지 알아요?”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뭐가 필요할까?’를 생각했는데, 제가 남자라 그런지 딱히 떠오르는 것이 별로 없더군요. 꼭 필요한 네 가지는 ‘돈, 건강, 친구, 딸’이라고 합니다. 이 중에서 특이한 것은 바로 ‘딸’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질문도 하시네요.

“그렇다면 50대 여성에게 꼭 필요 없는 한 가지는 무엇일까요?”

50대 여성에게 필요 없는 한 가지는 글쎄 ‘남편’이라고 하네요. 경제력이 없어지는 50대의 남편이 이제는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 “50대 남편에게 꼭 필요한 다섯 가지는 무엇일까요?”를 생각해보세요. 저는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돈, 명예, 친구, 자녀, 아내를 떠올려 보았지요. 그런데 정답은 이것이라고 하네요.

“마누라, 집사람, 와이프, 아내, 부인”

힘이 점점 없어지는 남편에게 아내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많은 이들이 내 가까이 있는 사람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지요. 마냥 내 곁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섣부른 판단과 단죄를 자주 하며, 이로써 상대방에게 지우기 힘든 아픔과 상처를 남기곤 합니다. 하긴 고해성사를 듣다보면 ‘남을 미워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데, 그 대상은 멀리 있는 사람이 결코 아닙니다. 주로 내 곁에 있는 사람, 내가 너무나도 잘 아는 가족 안에서 그 미움의 감정이 가득 하더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한국 교회의 수호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이신 성 요셉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요셉 성인은 우리의 가정을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당신의 모범을 통해 가르쳐 주시는 것 같습니다. 즉, 그는 미움으로써 가정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십니다.

결혼도 하기 전에 아기를 가진 약혼녀를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더군다나 그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었다는 말을 하는데, 과연 믿을 수 있었을까요? 그런데 요셉 성인은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하신 말씀,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는 말을 그대로 따릅니다.

사실 꿈을 그대로 따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꿈에 직장 그만 두고 모든 재산을 팔라고 하면 그대로 따르겠습니까? 개꿈 꿨다고 하면서 기분 찝찝하다는 말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 성인은 꿈대로 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사랑’ 때문입니다. 그 사랑으로 마리아를 믿을 수 있었고, 요셉 성인은 성 가정을 만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우리들의 가정 안에서 내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바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 이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사랑으로 불가능한 것도 가능할 수 있으며, 이 사랑으로 모든 아픔과 시련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랑으로 이제는 내게 가장 가까운 가족을 받아들이십시오. 우리 가정 역시 나를 통해서 성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조명연 신부
  |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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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대전으로 강의를 다녀왔습니다. 조금 멀더군요. 더군다나 오늘은 성서40주간 강의가 있는 것은 물론, 교육지도를 하러 교구에 들어가야 합니다. 따라서 걱정과 함께 어제의 강의 부탁을 괜히 받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대전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성당을 가득 매운 열심한 신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또한 이렇게 부족한 나를 그 먼 곳에서까지 불러주었다는 사실 하나에 감사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잘 다녀왔습니다.

만약 제가 힘들다는 이유로 책임감 없이 어제의 강의를 펑크 냈으면 어떠했을까요? 생각하기도 싫은 일들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아무튼 힘들어도 해야 할 것은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책임감은 사람사이에서 뿐만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꼭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이제 중학생인 딸이 엄마에게 사정을 합니다.

"엄마, 친구들이 내 이빨이 너무 못생겼다고 매일 놀려. 나 치아 교정 좀 해 줘."

엄마는 단호하게 "안 돼. 그거 너무 비싸!"라고 말씀하시자 딸은 울면서 이렇게 말해요.

"이게 다 엄마 때문이야. 엄마가 날 이렇게 낳았잖아!"

그러자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하네요.

"너 낳았을 때, 너 이빨 없었어."

정말로 그렇지요? 갓난아기 때에 이빨이 있나요? 없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이 모든 것이 특히 이렇게 못생긴 치아는 자기를 낳은 엄마 탓이라고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책임은 바로 치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자기 탓인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들은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하려 할 때가 많습니다. 내 가족에게, 내 이웃에게……. 그리고 더 나아가서 하느님께 그 책임을 전가합니다. 잘못되는 것은 다 남의 탓이고, 잘된 것은 내 탓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결국 문제는 바로 나에게서부터 시작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성모님의 배필이신 성 요셉 성인 축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요셉 성인을 그렇게 비중 있게 다루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분에 대한 성경의 증언을 보면 그가 얼마나 책임 있는 행동을 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모님과 파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혼을 통한 사랑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성모님과 결혼합니다. 그리고 평생 가족을 지키기 위해 책임감 있게 행동하십니다. 그래서 이집트로 피난도 가고, 조그만 마을 나자렛에서 목수를 하면서 가정을 지키십니다. 이 모든 책임있는 모습이 바로 천사가 명령한 대로 행하는 의로운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지금 나의 책임감은 어떠할까요? 책임감 있는 행동은 조금 피곤할 수는 있지만, 큰 보람을 갖게 합니다. 그러나 나의 편함을 위한 책임감 없는 행동은 나의 마음은 물론 이웃의 마음까지도 아프게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부르시지요. 그러나 그 주님의 부르심에 제대로 응답하는 길은 책임감 있는 나의 행동에서 시작됨을 요셉 성인을 통해서 발견하게 됩니다.

생각하는 것은 쉽고 실천하는 것은 어렵다(괴테).

조명연 신부
  |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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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형제님께서 동창회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이 동창회는 부부 동반으로 이루어지는 모임이었지요. 그런데 자기 아내에게 너무나 애교 있게 말하는 동창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동창은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꿀 같은 당신, 설탕 좀 줄래요?”

“설탕 같은 당신, 꿀 좀 줘요.”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것이 너무나도 보기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아내에게도 이런 식으로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내에게 베이컨을 달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요.

“돼지 같은 마누라, 베이컨 좀 줘요.”

아마 부부싸움을 신나게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남편의 의도는 그렇지 않았겠지요. 그러나 어떤 말을 쓰느냐에 따라서 좋은 마음에서 나온 말을 통해서도 싸움은 분명히 나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말과 생각이란 이렇게 부족합니다. 따라서 부족한 인간의 말과 생각을 따르기보다는 완전한 하느님의 말과 생각을 따르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기념하는 성모님의 배필이신 성 요셉 성인께서는 바로 인간의 말과 생각을 따르기보다는 하느님의 말과 생각을 따르는데 평생을 바치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율법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더 중요하게 여겨서 성모님을 아내로 맞아들였고, 평생 동정을 지키면서 성가정을 일구셨던 것입니다.

요셉 성인의 이 모습을 기억할 때, 요셉 성인은 신앙인 중에서도 프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철저히 주님의 말씀과 생각을 따를 수 있는 여유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에 반해 우리의 모습은 너무나도 부족한 아마추어가 아닐까요?

여러분들은 동네축구와 프로축구의 차이점을 아십니까? 동네축구는 공이 있는 곳에만 사람들이 몰려 있습니다. 그에 반해 프로축구에서는 공이 있어야 할 곳으로 사람들이 달려간다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아마추어에서 벗어나려면 지금의 상황에만 집착해서 어렵고 힘들다고 불평과 불만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프로축구에서는 공이 있어야 할 곳으로 사람들이 달려가는 것처럼, 우리 역시 주님의 뜻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야 아마추어를 벗어나 프로다운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프로이신 요셉 성인과 같은 믿음과 겸손을 본 받아야 하겠습니다.

조명연 신부
  |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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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글을 하나 읽게 되었는데, 함께 공유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이렇게 적어 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여섯 마디 말은 "내가 정말 잘못했다는 사실을 나는 인정합니다."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다섯 마디 말은 "당신은 정말 훌륭한 일을 했습니다."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네 마디 말은 "당신은 이걸 어떻게 생각하나요?"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세 마디 말은 "당신에게 이것을 부탁드립니다."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두 마디 말은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한 마디 말은 "우리" 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지 않은 한 마디 말은 "나"라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말들을 잘 쓰고 있었을까요? 혹시 가장 중요하지 않은 말만 골라서 사용하고 또 실천하고 있었던 ‘나’는 아니었을까요? 결국 중요한 말을 잘 사용하는 사람은 내가 아닌 ‘너’를 그리고 ‘우리’라는 공동체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잘 알면서도 내가 기준이 되어 ‘너’와 ‘우리’라는 공동체에 아픔과 상처를 줄 때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그러나 가장 중요하지 않은 한 마디 말인 ‘나’만을 강조하며 살아갈 때, 하느님의 일은 결코 이 세상에서 이루어질 수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오늘 우리들이 기념하는 성 요셉을 통해서 분명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셉 성인은 자신의 약혼녀가 아기를 잉태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지요.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으며, 처녀인 자신의 약혼녀가 아기를 가졌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철저하게 율법을 지켜왔던 성인이었기에, 당시 율법에 따라 사랑하는 마리아를 고발해서 간음한 여인이 당해야 하는 공개 처형을 시키는 것이 당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 성인은 자신만의 기준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성모님을 먼저 생각했고, 더불어서 성모님이 잉태한 아기 예수님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즉, ‘나’보다는 ‘우리’라는 기준을 따랐기에, 꿈에 나타난 천사의 말씀대로 성모님을 아내로 맞이하여 하느님의 뜻이 이 세상에 펼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나’ 안에서만 절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나’보다는 ‘우리’ 안에서 하느님 뜻이 완성됨을 기억하면서 ‘우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더욱 더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조명연 신부
  |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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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지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대한 답으로 대부분 ‘행복’을 뽑았다고 합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르다고 해도 원하는 것은 거의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바로 ‘행복’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까요?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 많은 재산과 직장에서의 높은 지위, 자신만을 사랑하는 배우자가 있을 때, 공부를 잘 하는 자녀를 보는 것, 건강하게 사는 것, 사람들로부터 젊어 보인다는 말을 듣는 것,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알아내는 것.

이를 10년에 걸친 데이터를 축적하면서 조사한 결과 위에 열거한 내용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커다란 목표를 이루었을 때,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일을 해냈을 때 등등의 일들이 행복하게 할 것 같지만, 이런 일들은 이루기도 힘들지만 또 실제로 그리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극단적인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환자들에게 매일 그날 일어났던 좋은 일을 세 가지씩 기억해내서 적도로 했답니다. 예를 들어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았다.’, ‘길을 가다가 구석진 곳에 홀로 피어있는 들꽃을 발견했다.’, ‘너무나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등등 일상 삶 안에서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작업을 통해서 극단적인 우울증 환자들의 94퍼센트가 증세가 호전되었다는 것입니다.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단하고 거창한 것들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보다는 지금 내게 주어지는 일상 안에서 사소한 것들을 실천하면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것들이 행복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성모님의 배필이신 성 요셉 대축일을 지냅니다. 요셉 성인은 묵묵히 하느님의 뜻에 맞춰서 자신의 일에 충실하셨지요. 그래서 성모님을 아내로 맞이하셨으며,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이집트로 피난도 가셨습니다. 또한 나자렛으로 돌아와서는 목수를 하면서 가족을 부양했습니다. 맨 처음 성령으로 잉태하신 성모님을 받아들인 것은 아주 특별한 행동이기는 했지만, 그 외의 것들은 모두 가장으로 일상 삶에서 행해야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인성녀들은 요셉 성인이 가장 행복한 삶을 사셨고 가장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 성모님과 함께하는 삶을 사셨고,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지켜보시는 가운데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나의 일상 삶 안에서 주님과 성모님을 초대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주님, 성모님과 함께 하면서 일상 삶 안에서의 의미들을 찾다보면 분명히 행복이 바로 내 옆에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 인천교구 조명연 마태오 신부 : 2016년 3월 19일
  |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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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사고로 잃으신 어떤 자매님이 생각납니다. 뜻밖의 사고였기 때문에 얼마나 커다란 슬픔이었는지 몰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도 많이 원망을 할 수밖에 없었지요. 이렇게 외로움과 슬픔에 잠겨 있을 때, 같은 본당의 많은 형제자매님들께서 찾아와서 기도를 해주셨고 큰 위로를 주신 것입니다. 세상에 자기 혼자만 버려졌다고 생각했는데, 본당 형제자매님들의 사랑을 받다보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천사로 보였습니다.

그 후부터 이 자매님께서는 어떠셨을까요? 세상에 미운 사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다 소중한 사람이고 그래서 더욱 더 열심히 성당에서 봉사활동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큰 기쁨을 간직하면서 힘차게 살 수가 있었지요.

뜻밖의 고통과 시련이 찾아오면 우리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원망을 하게 되고, 불평불만으로 세상을 살게 됩니다. 이 고통과 시련을 넘어서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에 있었습니다. 이 자매님께서 이웃의 사랑에 큰 힘을 얻어서 기쁘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처럼, 고통과 시련은 사랑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고 그 너머에 있는 기쁨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요셉 성인을 떠올려 보았으면 합니다. 주님의 천사로부터 성모님을 아내로 맞이하라는 메시지를 들었을 때 어떠하셨을까요? 기뻤을까요? 아니면 괴로웠을까요? 아마 요셉 성인은 너무나 기뻐하면서 천사의 말을 따라 하느님의 계획을 따랐을 것입니다.

성경에도 나와 있듯이, 요셉 성인은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가졌다는 마리아를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기를 가졌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볼 때, 간음을 저지른 것처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죄 중에 있는 마리아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행동이 되기에 남모르게 파혼해야 할 결정을 했던 것이지요. 사랑하는 마리아와 파혼해야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커다란 고통과 시련의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그에게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들이라는 천사의 명령을 받았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마리아에 대한 큰 사랑으로 인해 이 고통과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사실 꿈을 꾼 것을 가지고 그대로 따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꿈에 전 재산을 팔아서 도박장에 가서 도박을 하라고 한다면 따르시겠습니까? 마찬가지로 꿈에 아내로 맞이하라고 했다고 해서 그대로 따른다는 것은 큰 무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의 내용을 그대로 따른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고통과 시련은 ‘사랑’을 통해 극복됩니다. 이 사랑이 성자의 아버지가 되는 커다란 영광을 가져다주었습니다.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2017년 3월 20일
  |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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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묵묵히 따르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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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인 요셉의 믿음은 대단했습니다. 마리아의 순종도 요셉의 협조가 없었다면 허사였을지 모릅니다. 꿈에서 천사가 전해주는 이해할 수 없는 말만 믿고 현실의 엄청난 짐을 지기에 모든 것이 무모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성가정(聖家庭)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을 묵묵히 따랐습니다. 빛나는 삶은 아니었지만 전적으로 예수님을 위해 봉헌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축일의 중심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요셉 성인을 바라볼수록 예수님을 더 깊이 만나게 됩니다. 과연 내 삶의 중심에도 얼마나 예수께서 계시는지 묻습니다. 살면서 만나는 ‘이해할 수 없고’ 고통스런 십자가를 그분을 위해 얼마나 묵묵히 지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논리와 이유를 앞세운다면 요셉도 마리아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고, 우리가 예수님을 만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나의 실천 : 주님,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 닥쳐오더라도 평화와 기쁨을 누림은 제 마음이 당신께 향해 있게 때문임을 압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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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유경촌 신부
2009년 3월 19일
  |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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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버지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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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친구들의 아버님이 부쩍 많이 돌아가신다. 세월의 흐름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하나 둘씩 아버지를 잃어가는 친구들, 그리고 어느새 아버지가 되어 아버지의 삶을 사는 친구들을 바라보게 된다. 씩씩하게 상주 노릇을 하는 친구들에 비해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나는 저 친구들처럼 아버지와 작별을 잘할 수 있을까? 아버지가 안 계신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가끔씩 아버지와 통화를 할 때 몇 마디 인사를 나누고 나면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어머니 좀 바꿔주세요”로 그 어색함을 피한다. 마음속에 있는 따뜻함을 친근하게 전하는 데 아버지나 그 아들이나 영 낯설어한다.

「사랑의 기술」로 유명한 에리히 프롬은 인간이 성장하는 데는 두 가지 사랑이 필요하다고 한다.

어머니 사랑과 아버지 사랑이다.

어머니 사랑은 “네가 어떤 처지에 있던지, 네가 상처 받고 시름할 때도, 혹 네가 큰 잘못을 하고 내게 돌아온다 할지라도 나는 너를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주고 사랑해”라고 말해주는 사랑이다.

아버지 사랑은 “네가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봐. 네 능력을 발휘하고, 네 좋은 점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 봐. 그러면 넌 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어”라고 말하는 사랑이다.

사실 복음서에서 요셉 성인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오늘 마태오복음처럼 예수님의 탄생을 전하는 자리에서 잠깐 소개되고, 루카복음에서 예루살렘에 아들 예수와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는 이야기를 끝으로 복음서에서는 요셉에 대한 언급이 사라진다. 요셉을 소개하는 형식 역시 그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보다는 성모 마리아의 관계에서, 아들 예수와 관계에서 마리아의 배필로 구세주의 양부(養父)로 소개될 뿐이다.

늘 성가정의 배경처럼 소개되는 요셉의 모습은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드러나지 않게, 서투른 감정 표현으로 우리 삶에 가장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는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 내게 이 세상을 헤쳐 나갈 힘이 있음을 묵묵히 깨우쳐 주는 우리 아버지의 모습을 아들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파스카 축제를 지내고 복음서에서 배경으로 물러나 버린 요셉한테서 볼 수 있지 않는가? 오늘 하루는 세상의 모든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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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최성기 신부
  |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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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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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가 혼인도 하기 전에 잉태를 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간음으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요셉은 그렇게 의심했을 것이고 그 때문에 파혼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중하게도 자신이 의심한 바를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요셉이 마리아가 간음을 저질렀다고 다른 이들에게 말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주지하다시피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일은 수습하기가 대단히 어렵게 되었을 것입니다. 근거 없이 오해를 하고 헛소문을 낸 결과가 되니까요. 그러니 요셉은 참으로 현명하게 처신한 것입니다.

요셉의 이러한 태도는 항상 눈여겨보고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편견에 의해 어떤 사람에게 오해를 품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당사자의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않고 근거없는 소문에 의해 안 좋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또 사실인지 아닌지 알아보지도 않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품은 나쁜 인상을 그대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그것이 사실이 아니면 어떻게 수습합니까? 근거없이 험담한 것을 어떻게 보상합니까?

그러므로 요셉 성인처럼 안 좋은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입니다.다른 사람에 대해 늘 좋게 생각하려고 애를 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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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강동진 아로이시오 신부
  |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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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눈이 모두 잘 보이던 사람이 어느 날 사고가 나서 한쪽 눈을 못 보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한쪽 눈을 못 보게 된 것을 행복하다고 생각할까요? 아니면 불행하다고 생각할까요? 그렇다면 이런 상황은 어떠할까요? 앞을 보지 못하던 사람이 각막 기증자가 나타나서 한쪽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행복하다고 생각할까요? 불행하다고 생각할까요?

똑같이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지만, 누구는 불행하다고 말하고 또 다른 누구는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결국, 행복과 불행은 다른 사람이나 다른 조건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행복을 만드는 ‘나’를 보지 못하고 남 탓, 환경 탓, 주님 탓을 외치면서 행복하지 못한 ‘나’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 ‘나’는 누가 통제를 할 수가 있을까요? 당연히 ‘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의 행복도 내가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주님 탓, 남 탓, 환경 탓 등 외부에서 그 이유를 찾다가는 화만 나고 절망 속에서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내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내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를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외적인 조건들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나만의 행복을 만들 수 있습니다.

성모님의 남편인 동시에 예수님의 아버지이신 요셉 성인 대축일인 오늘, 요셉 성인에 대해 묵상을 해 봅니다. 성모님과 약혼한 뒤에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그에게 큰 혼란을 주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아직 같이 살기도 전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잉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또 꿈에 성모님을 아내로 맞이하라는 천사의 명령을 들었을 때, 그 뒤에 이어지는 모든 사건은 보통 사람들이 평생을 통해서도 겪을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특히 성경에 요셉을 의로운 사람으로 나오듯이, 율법에 어긋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 상황에 고뇌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불행하다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요셉 성인은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성모님을 아내로 맞아들이고, 성가정의 수호자가 되어 예수님과 성모님을 보호하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합니다. 불행의 이유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행복의 상황으로 받아들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곁에서 임종하는 이의 수호자이며 거룩한 교회의 보호자로 계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의 이유는 분명히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의 이유만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행복을 만드는 ‘나’를 바라보는 데 집중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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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2020년 3월 19일
  | 03.19
459 58%
이미 저희 본당에서 강론을 들어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의 아버지는 외국에서 일을 하셨으므로 자주 뵙기 힘든 분이었습니다. 한국에 들어오셔서 집에 머무시는 시간은 고작 서너개월 뿐이었을 뿐, 아버지는 항상 외국에서 활동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저에게 친구와도 같으신 분, 언제나 가깝게 느껴지는 분이었습니다. 시간이 될 때마다 가족들에게 전화를 주셨고 무엇보다 자주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성실한 신앙은 어머니 못지않게 저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한 추억 중 유난히 기억나는 장면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휴가를 나오신 아버지와 함께 노래를 부르던 순간입니다. 아버지는 기타를 치며 흥에 겨워 춤을 추고 누나는 피아노를 치는 식이었는데, 그 노래들은 제가 아버지를 통해 배운 동요들 혹은 오래된 가요들이었습니다.

대표적인 노래로는 오빠 생각, 섬집 아기, 등대지기, 바위섬과 같은 곡들이었는데 서정적인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불러주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배꼽을 잡고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가사들을 하나 둘 곱씹어 보면 여기에는 공통된 주제가 있습니다. 아마도 유명한 곡들인 만큼 대부분 가사를 아실 텐데 1절만 뽑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 주는 자장 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얼어붙은 달 그-림자 물결 위에- 차고
한 겨울의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이 노래들의 공통적인 주제는 외로움, 혹은 사랑하는 마음이고 비교적 쓸쓸한 정서가 담겨있습니다. 아버지가 이러한 노래를 우리에게 왜 들려주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타지에서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외로움을 담아 고요히 읊조렸던 노래를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들려주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이것은 막연한 제 추정일 뿐, 명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아버지가 하늘나라에 계시기에 직접 물어볼 수 없는 탓입니다.

특별히 이 노래들 중에서도 등대지기의 가사가 저에게는 마음에 와 닿습니다.

얼어붙은 달 그림자 물결 위에- 차고 한 겨울의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어쩌면 아버지의 삶이란 이러한 등대지기의 삶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가끔은 가족들에게 말할 수 없는 얼어붙은 달그림자가 삶에 드리워질 때가 있었을 것이고, 때로는 한 겨울의 거센 파도 같은 시련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동떨어진 삶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 것인지 저는 몇 년의 유학생활을 하면서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다시금 묵묵히 우리 가족들과 마음으로 함께 해 주신 아버지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요셉 성인 대축일입니다. 그리하여 오늘의 복음 말씀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온화한 아버지 요셉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요셉의 삶 또한 묵묵한 등대지기의 삶이었음을 느끼게 됩니다.

사실 우리는 주로 순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성모 마리아를 본받아야 할 분으로 이야기합니다. 한편 이에 비해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을 키운 아버지 요셉에 대해서는 종종 너무 쉽게 지나쳐 버리곤 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오늘의 말씀에 집중해보면 바로 아버지 요셉 역시 성모 마리아 못지않게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신 분이었으며 과묵한 태도 안에서 예수님의 생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전승에 의하면 요셉은 마리아에 비해 나이가 아주 많았다고 전해집니다. 평소에 성실함과 의로움으로 마을에서 평판이 좋던 요셉에게 마리아의 잉태는 인간적으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로인해 마주하게 될 사람들의 비난이 충분히 두려웠을 법 합니다.

특별히 누군가 자신의 흉을 볼 때, 혹은 사랑하는 이에게 어떤 오해가 있을 때, 우리의 마음은 굉장히 불편합니다. 누구나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길 원하고 사랑하는 이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가장 기본적인 우리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잉태와 아기 예수님의 탄생 사건은 요셉에게 있어 우리가 겪는 이러한 어려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컸을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처녀가 임신할 경우 돌로 쳐 죽이기 까지 하는 문화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안에서 끊임없이 사람들에 의해 제기될 아기의 출생에 대한 험담, 자신이 사랑했던 약혼자 마리아에 대한 배신감. 더불어 설사 성령으로 잉태되었다 한들 갖가지 부정한 소문들을 견디어 내야 하는 심리적인 고통. 일생동안 이 모든 것을 감내했을 아버지 요셉을 생각하면 참으로 마음이 슬프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가 파혼을 남몰래 결정하자 천사가 나타나 요셉에게 이야기 합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이에 요셉은 천사의 명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이 행동은 결코 단순한 응답이 아닙니다. 이는 자신과 관련된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신앙으로 떨쳐버리는 큰 용기가 기반이 된 응답입니다.

그럼으로써 요셉과 마리아의 순명은 우리 인간 모두의 운명을 구원으로 이끌어줄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는 대답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요셉은 자신의 피가 섞이지 않은 하느님의 외아들이세상에 오셨음을 받아들이고 이를 소중히 여기며, 침묵 중에 가정을 지키고 아기 예수님을 사랑으로 돌보신 분이었습니다.

비록 나이가 많은 와중에 성가정을 이루어 예수님의 공생활 전에 돌아가셨으므로 성경에는 얼마 나오지 않지만 예수님이 세상에 열매를 맺는 데에 있어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하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우리는 오늘 이러한 요셉의 순명의 자세, 그리고 묵묵히 성가정을 이루고 지켜낸 그분의 따뜻한 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저마다 한 명의 등대지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끔은 우리의 삶에 얼어붙은 달그림자가 드리워질 때가 있을 것이고, 때로는 한 겨울의 거센 파도 같은 시련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 안에서 제자리를 지키며 이를 버티어 낼 때, 우리는 더욱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묵묵히 구원의 씨앗을 세상에 뿌린 아버지 요셉의 마음처럼--.

“요셉이 파혼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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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방종우 야고보 신부
2020년 3월 19일
  | 03.20
459 58%
거울을 보면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이 보입니다. 웃으면 거울 속에 비친 나도 웃습니다. 찡그리면 거울 속에 비친 나도 찡그립니다. 거울 속에 비친 주름, 눈, 코, 입, 귀, 머리카락이 바로 나의 모습입니다. 거울은 거짓말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울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나의 의식, 마음, 생각, 신념입니다. 내가 온 길을 보면 내가 가야 할 길이 보입니다. 내가 온 길이 절망, 어둠, 두려움, 욕망의 길이었다면 앞으로 가야할 길은 슬픔, 분노, 갈등, 고독의 길이 될 겁니다. 내가 걸어온 길이 인내, 온유, 희생, 친절의 길이었다면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보일 겁니다. 믿음, 희망, 사랑, 나눔의 길이 될 겁니다.

사순시기는 나의 삶을 십자가라는 거울에 비추어보는 겁니다.

삶이 극단적이라면 길가에 뿌려진 씨와 같습니다.
누군가의 비난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애써 가꾼 사랑의 밭을 망쳐버립니다. 좋을 때는 모든 것을 줄 것 같이 행동하지만, 자존심이 상하면 모든 것을 부술 것처럼 행동합니다. 예수님을 배반했던 유다의 삶이 그렇습니다.

삶이 거짓과 위선이라면 돌밭에 뿌려진 씨와 같습니다.
타인의 희생을 발판 삼아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모래 위에 세운 집과 같아 진실의 빛이 비추면 곧 무너지고 맙니다. 남의 눈에 있는 작은 티는 들추어내지만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감추려합니다. 율법과 계명을 말하지만 실천하지 않았던 위선자들의 삶이 그랬습니다.

삶이 이웃을 억압하고, 무시한다면 가시밭에 떨어진 씨와 같습니다.
가야파는 대사제였지만 자신의 권위와 능력으로 예수님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빌라도는 총독이었지만 자신의 권력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했습니다. 많이 배웠고, 많이 가졌지만 ‘갑질’의 삶을 사는 사람이 그렇습니다.

요셉 성인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약혼한 처녀 마리아가 결혼 전에 잉태한 것을 알았던 요셉 성인은 조용히 파혼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법대로 하면 요셉은 마리아를 상대로 고소를 할 수도 있었습니다. 당시의 법은 무척 엄격하였기 때문에 마리아는 재판을 받고 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요셉이 기분대로 사는 사람이었으면 자신 앞에 놓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리아의 집에 찾아가서 한바탕 소동을 벌였을지도 모릅니다. 요셉 성인이 법대로 했다고 해도, 기분대로 했다고 해도 당시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은 명백히 마리아의 잘못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마리아를 고발하지도 않았습니다. 마리아의 집에 찾아가 한바탕 난리를 치지도 않았습니다. 말 할 수 없었던 마리아의 입장을 생각하였고, 조용히 파혼만 하기로 하였습니다. 사실 이 정도만 해도 커다란 배려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면 요셉은 이제 또 다른 삶을 살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의로운 삶’을 뛰어넘어서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요셉은 꿈에서 가브리엘 천사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잉태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대로 살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 역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온 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 또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했습니다. 유명한 겟세마니의 기도입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고난의 잔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나사렛 성가정은 모두 ‘하느님의 뜻’을 중심에 놓고 살았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 신앙은 은총을 주며, 그 은총으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을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의 뜻보다는 나의 뜻이 먼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때가 많습니다. 출세와 성공이 삶의 기준이 되곤 합니다.
왜 공부를 하는지를 생각하기 전에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고 이해되는 세상입니다.
돈이 삶의 중심이 되는 세상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위해서 돈을 벌고, 돈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돈의 노예가 되어서 양심을 팔고, 사람을 속이고, 소중한 것들을 멀리합니다.

오늘 성 요셉 대축일을 지내면서 나의 삶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지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성 요셉 우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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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2020년 3월 19일
  |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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