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대축일/명절강론

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9 58%
[부산/수원/전주/제주/원주/청주]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조회수 | 2,787
작성일 | 09.03.24
오늘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입니다. 오늘 루카 복음에서는 하느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시어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인한 예수의 잉태사실을 알리고,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하는 마리아의 순종을 보게 됩니다. 또한 제1독서인 이사야서 7장 10절 이하에서 주님의 탄생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예언되었던 대로 주님은 동정 마리아를 통하여 오늘 잉태되고, 앞으로 10달 후인 12월 25일 탄생하시게 됩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인해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 놓으셨죠. 그분께서 이 땅에 오셔서 33년 동안 지상에서 하신 많은 기적과 가르치심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귀중한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대대로 보관하고 전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의무,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증거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매일 미사를 통하여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체험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예수의 진면목을 볼 수 없었을 것이고, 또 예수의 위대한 잉태의 기적의 의미 또한 제대로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 부활에 극적으로 개입하신 영원하신 분의 힘이 그분의 잉태의 역사에도 개입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왜 대천사 가브리엘을 나자렛이라는 작은 동네의 한 처녀인 마리아에게 보내셨을까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가 그 뜻을 모두 헤아릴 수 없지만, 결국 동정 마리아는 구세주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로서 하느님의 그 뜻에 오로지 함께 하시는 위대한 분이심을 알게 됩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가브리엘 대천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성모님은 몹시 당황했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시고 난 후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하고 대답하십니다. 우리는 성모님을 생각할 때마다 언제나 그 겸손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과연 우리는 그러한 겸손의 신앙 모습을 우리 생활 속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한번 생각해 봅니다.

프랑스의 작가 아나톨 프랑스의 작품 중에 ‘성모님의 곡예사’라는 짧은 단편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바르나베라는 곡예사 이야기입니다. 바르나베는 가련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도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성모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길거리에서 한 수도원 원장을 만나게 됩니다. 신세 한탄을 한 바르나베는 그를 불쌍히 여긴 수도원장에 의해서 수도원에 들어가게 됩니다. 수도원에는 많은 수도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모님을 위해 책을 쓰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양하는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성모님을 찬미하는 송가를 짓기도 하였지만 단순하고 무식했던 곡예사는 자신이 성모님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몹시 슬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다른 수도자들이 성모님을 위한 토론이나 신학에 열중하고 있는 시간이면 그는 슬그머니 빠져나가 성당에서 시간을 보내곤 하였습니다. 그의 거동을 수상하게 여긴 수도자들은 바르나베 수사를 감시하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바르나베 수사가 성모님 앞에서 거꾸로 서서 접시를 돌리고 열두 개의 칼을 가지고 곡예를 부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신성 모독이라고 분개한 수도자들이 뛰어가 막 끌어내리려는 순간 성모님이 갑자기 제단 위에서 서서히 내려와 자신의 푸른 옷자락으로 바르나베 곡예사가 흘린 땀방울을 닦아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나톨 프랑스의
이 단편처럼
우리들은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각자의 재능을 부여받은 사람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느님에 관해 연구하고 막연히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보다는 하느님으로 받은 재능을 주님과 함께 최대한 발휘하는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십니다. 그 대표적인 모습을 취하신 분이 바로 성모님이셨던 것입니다. 하느님을 위하는 최선의 길이 과연 어떤 것인가를 분명히 가르쳐 주십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하찮고 가여운 곡예사의 솜씨도 그것은 하느님께서 그에게만 내려준 최고의 달란트였고, 그것이 하느님을 위하여 쓰여졌을 때 더욱 아름답게 빛이 났습니다.

우리는 때로 나 자신이 하느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럴 때 그저 성모 마리아처럼 묵묵히 하느님의 뜻을 알아나가고, 받아들이는 믿음의 삶이 필요합니다. 오늘하루 나의 재능을 다하여 우리의 삶을 살아나가는 것, 돌아서서 아쉬움에 몸부림치기보다는 오늘 이 시간과 내일의 희망을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늘 하느님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오늘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을 맞이하여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고 하는 성모님의 지극하신 겸손의 신앙을 다시 한번 묵상하면서 우리의 마음에 새겨, 우리 역시도 하느님의 뜻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희망해야 하겠습니다.

----------------------------------------------------------

부산교구 백성환 신부
459 58%
주님의 뜻대로 저에게 이루어지소서.

주님의 성탄 대축일(12월 25일)에서 거꾸로 아홉 달이 되는 오늘, 교회는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께서 보낸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성자를 잉태할 것을 기별 받은 일을 경축한다. 이것이 주님의 탄생예고 대축일(3월 25일)이며, 다른 말로는 성모영보(聖母領報)대축일이다. 출산(出産)이 있으면, 당연히 수태(受胎)가 있어야 하는 법, 그렇다고 오늘의 대축일이 9개월 정도의 임신기간이라는 인간적인 계산에서 그 첫날을 단순히 축하하자는 의미는 아닌 것 같다. 성모 마리아 신심이 남달리 강했던 동방교회가 이미 550년경부터 3월 25일을 성모영보대축일로 지낸 것을 보면, 오늘 축일의 의미가 대단히 컸다는 짐작이 간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인간과 세상의 구원은 이미 천지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계획이다. 우리는 구약의 역사를 통하여 이 구원계획의 수행 또한 하느님께서 스스로 주도하셨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때가 왔을 무렵,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셨다.(갈라 4,4 참조) 이 사건을 오늘 복음이 보도하고 있다. 여섯 달 전에 즈가리야를 찾아가 세례자 요한의 수태를 알렸던 가브리엘 천사가 이번에는 마리아에게 가서 그녀가 하느님의 아들이요 메시아의 어머니로 간택되었음을 전한다. 이 전갈은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28절)는 마리아에 대한 천사의 인사말씀으로 시작되었다. 당황한 마리아가 곰곰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천사의 전갈이 이어졌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30-31절)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성취를 위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음이 선포되는 순간이었다. 하느님 편에서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처녀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요셉과 약혼만 했지 아직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지에서 마리아는 당황함 속에서도 침착하게 그 가능성에 대하여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천사는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가진 엘리사벳의 경우를 설명하고, 마리아가 하느님 아들의 어머니가 되는 일에 ’성령 하느님’이 굳센 보증이 될 것임을 약속한다.

흔히 약속이나 계약을 할 때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큼직한 인감도장이 찍힌 서류도 없고 보증서도 없다. 오직 ’성령 하느님’이 그 보증이다. 이제 결정은 마리아에게 달렸다. 그러나 마리아는 모든 것을 믿음과 순명으로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1,38)하고 대답하였다. 이는 단순한 대답이 아니다. 이는 마리아가 자신을 깡그리 바쳐 하느님께 드리는 것이며, 온 인류를 들어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맞아들이는 일이다. 이로써 마리아의 역할은 분명해 졌다. 마리아가 바로 하느님의 구원협조자(coredemptrix)로 간택된 것이다. 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 하느님께서 세상을 구원하는 일, 하느님 스스로가 인간이 됨에 있어 인간을 협조자로 선택했다는 것, 이는 하느님 신성(divinitas; 神性)에 우리 인간성(humanitas; 人間性)이 참여함이며, 동시에 하느님의 신성이 인성을 취하심이다. 따라서 오늘은 마리아뿐 아니라 우리 전(全) 인류가 함께 기뻐할 수 있는 날이다. 그러나 그 전에 우리도 마리아처럼 당당히 "Ecce ancila Domini"(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fiat mihi secundum verbum tuum!"(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즉 "fiat voluntas tua!"(주님의 뜻이 저에게 이루어지소서) 하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하리라. 이는 결코 소극적인 관망이 아니라 적극적인 수용임을 알아야 한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이 땅위에서 얼마나 많은 언어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입으로 바쳐지는 기도인가? 누구든지 이 기도를 바치는 사람은 그 옛날 천사와 마리아의 만남 안으로 들어가 이 만남을 다시금 살아 숨쉬게 한다. 누구든지 이 기도를 바치는 사람은 천사와 함께 인류구원의 시작과 성취를 기뻐하게 되며, 동시에 성모 마리아의 믿음과 순명을 자신의 것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이 기도는 마리아와 함께 지고(至高)의 하느님께 드리는 믿음과 순명의 서원(誓願)이다. 누구든지 이 기도를 묵주에 실어 바치는 사람은, 비록 자신이 죄인이라 할지라도 손에서 손으로 자손만대에 이 서원(誓願)을 물려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박상대 신부
  | 03.25
459 58%
마리아의 고백 -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여러분의 가정에 하느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날입니다.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이라고 하는 날입니다. 12월 25일부터 아홉 달을 앞으로 역산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탄생도 한낱 인간의 모습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탄생에는 무언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하느님께서 마리아의 응답을 통해 사람이 되는 위대한 사실을 복음은 전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우리 주님 말고는 내가 어느 날에 태어나겠다고 예정된 사건은 한번도 없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 사람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역에 속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주님을 하느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느님이 친절하게도 우리 곁에 오실 것이라고 예고되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인간이 되어 오신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엄청난 축복을 가져다주는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인간이 되어 오셔서, 다시 아버지께로 되돌아가셨는데, 우리 인간도 하느님께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의 사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과 같이 되게 하기 위해서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위대한 일에 마리아가 등장합니다. 마리아는 동정으로써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천사의 말에 놀라고,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하느님의 뜻을 용감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라고 고백함으로 인해서 우리 모두가 살게 되었습니다. 마리아의 응답이 이제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이룰 수 있게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만약 마리아의 응답이 “예”가 아니라 “아니오”였다면 우리는 아직도 구원이 뭔지도 모르고 막연하게 살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마리아의 응답만이 하느님을 우리 인간사에 개입하는 위대한 사건이 되었으므로, 마리아의 태도는 우리 인간에게 신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모범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도 “말 한번 잘하면 천냥 빚을 갚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마리아 때문에 우리는 천냥 빚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고백해야 합니다.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그것이 진정 하느님의 뜻이라면 받아들여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믿지 못하기 때문에 하느님 뜻이 뭔지도 모르고 사는 것이 태반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삶 속에서 이미 하느님께 대한 충실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뜻을 알고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충실한 삶만이 우리를 풍요롭게 해줍니다. 마리아도 일상적인 삶 안에서 드러난 충실함 때문에 응답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리아처럼 늘 준비된 하느님의 체험이 우리 인류에게 엄청난 축복을 가져다 주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부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부활절도 잘 준비한다면 예수님의 부활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준비된 삶만이 주님의 탄생도, 부활도 체험할 수 있게 합니다. 내 자신이 조금 흐트러지거나 게으르게 된다면 우리에게 어떤 체험도 불가능하게 됩니다.

내 작은 일에서부터 충실하고 준비된 사람만이 큰 일을 이루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우리 안에서 구원 계획이 이루어지도록 우리 자신을 봉헌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우리도 늘 준비된 삶을 살아갑시다.

김두유 신부
  | 03.25
459 58%
사람을 찾는 하느님

교황 요한 23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평범한 시골 사제가 되기를 희망했던 안젤로 주세페 론칼리 신부가 교황이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그분의 겸손한 품성이 잘 표현된 감동적인 영화였다. 교황으로 선출되면서 그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활동하시도록 도와드리는 것이 필요하다.”

하느님은 당신의 사업을 위하여 인간을 필요로 하신다. 그분은 전능하신 분이시지만 당신 스스로 모든 것을 일사천리로 다 알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동의를 구하고, 인간을 통해 당신의 일을 수행하려 하신다. 인간을 하느님의 일을 함께하는 협력자로 삼으신 것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몸을 취해 세상에 태어나신 것은 인간과 함께, 인간을 통해 일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확실히 보여주는 사건이다.

무릇 신앙생활이란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관심을 깨달아 아는 것이며, 그 깨달은 바를 온 몸과 마음으로 응답하는 삶이다. 교황 요한 23세는 성령께서 활동하시도록 자신이 그분의 도구가 되는 것을 받아들였다. 동정 마리아는 천사가 알려준 하느님의 뜻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 줄 알면서도 기꺼이 그분의 도구가 되는 것을 허락한다. 마지못한 수용이 아니라 적극적인 수용이다. 그분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기에(37절) 우리는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그분의 뜻에 적극적으로 응답할 필요가 있다. 교황 요한 23세는 그런 신앙 행위로 복자품에 오르셨고, 시골 처녀 마리아는 모든 신앙인의 모범이요 세상의 어머니가 되셨다.

하느님은 우리를 찾고 계시고, 우리가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면 그분의 뜻이 우리의 삶으로 육화된다. 이로써 우리의 삶은 거룩해지는 것이다.

<원주교구 이동훈 신부>
  | 03.24
459 58%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1,38)

---

기도란 이런 것입니다.

어린 시골 처녀의 입에서 나온 흠 없는 기도.
화가 날 정도로 눈부신 기도입니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시간을 살아온 죄 많은 사제를
부끄러움에 고개 숙이게 만드는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구원의 대역사가 이루어지기 위해
시골 처녀 마리아 안에서 활동하신 성령을 느낍니다.

자신의 입으로 내놓은 그 엄청난 말의 무게를
어린 처녀는 이해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그녀가 선택한 것은
늘 ‘마음 속에 간직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루카2,19)

또 다시 희망을 가져봅니다.
늘 모자람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내 모습이지만,
그분께서 함께 해주신다면
내 삶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 될 것이라고.

그렇습니다.
모든 기도의 중심은 내어드리고 내맡기는 마음입니다.
기도라는 이름으로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그저, 모든 것을 그분 뜻에 맡겨드려야 합니다.
“예, 주님, 당신의 뜻을 따르겠나이다.”

<하늘호수 마리아>제공
  | 03.25
459 58%
어느 날, 한 형제님께서 자신이 왜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오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해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형제님은 무척 열심히 교회에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출근하던 직장은 성당 앞을 지나가야만 했습니다. 성당 앞을 지날 때마다 그는 많은 이들이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천주교는 성모님 믿는 종교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성모님에 대해서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왜 사람들은 저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할까? 성모님을 하느님처럼 섬기는 것일가? 언젠가는 나도 성모상 앞에 가봐야겠다.” 그는 이런 생각을 성모상 앞을 지날 때마다 했습니다. 그런데 출근할 때는 시간이 없어서 성모님 앞에 가지 못했고, 퇴근할 때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어두움이 내려 앉은 늦은 저녁에 드디어 성모상 앞에 나아갔습니다. 성모님은 두 손을 합장하고 시선은 하늘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모상 아래에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성서 말씀이 적혀있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잘못 알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성모님의 믿음을 따르려고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성모님 앞에서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는 마침내 성당에 나오게 되었고 성모님을 진실하게 따르며 성모님의 신앙을 본받고자 매일 묵주기를 바치게 되었습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성모님은 우리 신앙의 모범이십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찾아가 이렇게 인사를 합니다.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마리아는 이 말씀을 듣고 몹시 당황을 하게 됩니다. 천사를 보고 당황한 것이 아니라 천사가 자신에게 해 준 인사말에 당황을 한 것입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말합니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더더욱 마리아는 이해 못할 말씀만을 듣게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이 몸은 처녀입니다.”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성모님의 이 말씀 안에는 자신이 아직 완전히 순결한 처녀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천사는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그 거룩한 아기를 하느님의 아들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처녀로서 임신하게 될 일을 알립니다. 그리고 그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알립니다. 순간 성모님께서는 몹시도 혼란스러우셨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능력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계획이 한 순간에 바뀌고 있기 때문에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은 한계성을 지닌 인간에게나 불가능한 것이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 불가능한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약혼한 요셉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며, 처녀가 아이를 가진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보잘것없는 내가 하느님의 아들을 어떻게 품을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어지럽게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신앙인의 어머니는 자신의 뜻을 주장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찾았습니다.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를.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마리아는 모든 것은 하느님께 맡겼습니다. “저는 주님의 여종입니다.”이 종은 곧 노예란 뜻입니다. 종은 주인의 뜻을 따라야 하고, 주인은 종을 통해 자신의 뜻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신앙을 고백하셨습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말은 하느님 뜻에 모든 것을 맡긴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을 하는 동시에 마리아의 몸에 말씀이 강생하시고,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하느님은 이 강생을 마리아의 승낙을 조건으로 마리아를 예수님의 어머니로 삼으시고, 그녀를 온 인류의 구속사업의 협력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매일 매일 기도를 하고 있지만 그 기도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부끄러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내가 바치는 기도는 하느님의 뜻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기도가 아니라 내 뜻을 이루어 달라고 청하는 기도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협박하는 기도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주인이고, 누가 종인지 모를 정도로 나는 그렇게 행동하고 있습니다. “하느님! 이번 승진 인사에서 제가 승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이번에 승진만 하면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레지오도 들고, 감사헌금도 바치겠습니다. 하느님! 꼭 들어주셔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통해서 당신 구원 사업을 확장하시길 원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하느님의 뜻을 막고 오로지 내 뜻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어머니께서는 그렇게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에게 닥쳐올 일에 대해서 두려워하지도 않으셨고, 궁금해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오로지 하느님의 뜻만을 찾았습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사랑이신 주님! 이제 성모님의 신앙을 본받아 당신께 온 마음으로 고백하겠습니다 .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따르려 이 몸이 대령했나이다. 제 뜻만을 추구하던 이기심을 버리고, 당신의 뜻을 따르려 이 몸이 대령했나이다. 주님! 저를 도구로 써 주소서. 그리하여 저 또한 당신 나라 건설에 한 몫을 차지하게 하소서. 아멘.

▦ 누군지 모르나 고맙습니다.
  | 03.25
459 58%
[수원] 서약과 책임

----------------------------------------------------

혼인서약은 혼인하는 당사자들이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이런 식으로 서약을 합니다.

“나 신랑 아무개는 신부 아무개를 아내로 맞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하거나 병들거나, 부요하거나 가난하거나... 아내만을 사랑하고 신의를 지키며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것을 서약합니다.”

물론 신부의 서약도 이와 크게 다름이 없습니다.

이미 혼인서약을 하면서 두 사람은 그들이 함께 걸어가야 할 삶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임을 직감합니다. 그리고 힘들고 어려울 때가 오더라도 사랑엔 변함이 없을 것임을 미리 서약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혼인 서약은 죽을 때까지 그 사랑의 의무 안에서 살기를 결심하는 것이지 혼인식과 함께 끝나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성직자나 수도자들도 하느님 앞에서 서약을 합니다. 수도자들은 순명, 정결, 가난 서약을 하고, 수도자가 아닌 성직자들은 가난 서약은 하지 않습니다. 이 서약은 혼인 서약과 마찬가지로 죽기까지 지켜야 할 의무로 남습니다.

부부가 부부로 남기 위해서는 이 서약을 서로 존중하며 지켜야하는 것처럼 성직자나 수도자도 그렇게 남기 위해서는 본인들이 한 서약을 지켜야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서약을 다 잘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부부는 이혼하기도 하고 성직자와 수도자들은 옷을 벗기도 합니다. 이혼하거나 옷을 벗지 않는다고 해서 그 서약들을 완전하게 지키는 것도 아닙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우리는 서약했던 것들을 어긴 경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서약들이 지켜가기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은 가브리엘 대천사가 성모님께 나타나 주님의 뜻을 받아들일 것인지를 묻습니다. 오늘 축일을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이라 부르는데 사실 ‘예고’라는 말에는 그저 주님 탄생을 미리 알려준다는 의미가 있지만, 이 순간은 그보다 훨씬 중요한 순간입니다.

만약 성모님께서 천사의 말에 “예!”라고 대답하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온전한 방법으로 세상에 오실 수도 없으셨을 것입니다. 천사는 마치 사제가 혼인하는 신부에게 ‘아무개를 남편으로 맞아들이겠습니까?’라는 질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대답이 없다면 모든 게 허사가 됩니다. 이 순간은 인류 역사 안에서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성모님은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대답하십니다. 이렇게 해서 성령님의 힘이 성모님을 덮고 하느님이 사람이 되게 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5절 이하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그분은 세상에 오시며, “당신은 나를 위해 한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 예! 제가 당신의 뜻을 이루러 갑니다.”

이는 성자께서 세상에 내려오기 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성모님의 육체를 아들을 위해 마련하시고 아들에게도 그 육체를 받을 의향이 있는지를 물어보시는 것입니다. 아들은 성모님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다고 기꺼이 선언합니다.

이렇게 성자의 ‘예!’와 마리아님의 ‘예!’가 결합되면서 두 분이 한 몸이 되신 것입니다. 한 육체 안에 두 개의 심장이 뛰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육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계약입니다.

성모님께서 시메온에게 “당신의 영혼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라는 말씀을 듣기 이전에도 구원자와 한 몸이 되는 것이 어떠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는지 잘 아시고 계셨습니다. 물론 성자께서도 육체를 취하시기 이전에 육체를 취하는 것이 결국 어떤 고통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잘 아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종을 자신의 고향으로 보내며 아들인 이사악의 아내를 구해오라고 합니다. 그 종은 우물가에서 만난 레베카를 이사악의 아내가 될 것인지를 청하고 결국 승낙을 얻어냅니다.

교부들은 이 내용을 오늘 축일을 지내고 있는 가브리엘 대천사의 방문과 비유하였습니다. 즉,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이 종을 보내듯이 당신 아들의 신부가 될 사람의 동의를 받도록 천사를 보낸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보자면 오늘은 성자와 마리아와의 혼인서약일입니다.

두 분은 당신들이 하신 혼인의 서약을 한 치의 부족함도 없이 지키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본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혼인의 계약은 이제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그 분과 한 몸이 되는 것은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시밭과 십자가도 동시에 주어집니다. 우리의 혼인 서약은 세례 때 하였습니다. 세례 때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을 죽기까지 사랑하겠다는 서약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처럼 우리는 그 서약을 잘 지키며 살지는 못합니다. 그렇더라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인 성모님께서 영혼을 관통하는 고통까지도 감수하며 온전히 그 약속을 지키셨듯이 우리도 성모님을 본받을 결심을 하고 매일 성모님의 모습을 목표로 새롭게 변화되어가야 할 것입니다.

--------------------------------------------------

수원교구 전삼용 신부
  | 03.24
459 58%
오늘은 주님의 탄생 예고 대축일이다. 하느님께서 마리아의 응답을 통해 사람이 되시는 위대한 사실을 오늘 복음은 전해주고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다는 것은 곧 인간의 차원이 하느님의 차원으로 들어 올려졌다는 것이다. 즉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과 같이 되게 하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이다. 마리아의 하느님의 뜻에 대한 응답은 이제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이룰 수 있게 하였고, 그 마리아의 자세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모범이 되었다.

복음 : 루가 1,26-38: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탄생 예고가 이어지고 있다. 복음에서는 가브리엘 천사가 등장하는데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힘’이라는 뜻이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28절) 이런 인사는 남자가 들은 것이 아니라 오직 마리아에게만 주어진 인사였다. 주님께서는 그냥 마리아를 보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태어남의 새로운 신비를 통해 마리아에게로 내려오시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28절) 주님께서는 그냥 마리아를 보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태어남의 신비를 통해 마리아에게로 내려오시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천사를 바라보던 그 자리에서 하늘의 심판관을 몸에 받아 모시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하느님께서는 한 처녀를 당신의 어머니로 만드셨고, 당신 여종을 어머니로 삼으셨다. 온 세상도 하느님을 품지 못하지만 하느님은 온전히 그 품에 오시어 사람이 되셨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31절) 천사는 마리아에게 하느님께서 그녀 안에서 행하시는 거룩한 신비를 드러내 줄 아기에 대하여 말한다. 마리아는 처녀로서 어머니가 될 것이다. 그 아기는 하느님의 아들이자 사람의 아들이 되실 분이다. 예수라는 이름은 그분이 하시는 일을 의미한다. 그분은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고, 세상을 다시 창조하실 분이시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34절) 예수님의 탄생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다. 이 물음은 동정 잉태라는 신비에 대한 깊은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천사는 성령께서 마리아에게 내려오시어 잉태하리라고 한다. 마리아가 열매를 맺게 하신 분은 성령이시다. 물위를 감돌며 창조를 이루신 분도 성령이시다.(창세 1,2 참조)

마리아에게 내려와 그리스도를 잉태하게 하신 성령께서 이제는 새로운 피조물의 양식인 빵과 포도주에 내리시어,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거룩한 성찬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어 믿는 이들의 몸이 되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마리아의 잉태는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요한 1,13) 성령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그래서 우리를 해방시킨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38절) 마리아는 하느님께 순종함으로써 하와의 불복종을 되돌려 놓는다. 그리하여 한 천사였던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첫 번째 처녀의 타락이 다른 천사의 말을 받아들인 이 처녀 마리아의 믿음으로 극복되고 있다.

마리아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마리아는 평범한 한 시골 처녀였다. 우리와 같은 한 사람이고 평범한 삶을 사는 인간이었다. 그 마리아가 그렇게 하느님께 자신의 신앙을 고백할 수 있었다면, 우리도 마리아와 같이 고백하고 실천해야 한다.

----------------------------------------------

수원교구 조욱현 신
2017년 3월 25일
  | 03.24
459 58%
[전주] 지금 말씀대로 이루어지소서!

------------------------------------------------

하느님께서는 천지창조 이전부터 인류구원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당신의 섭리 안에서 인류가 구원되도록 하시기 위하여 한 민족을 선택하시고, 그들 안에 끊임없이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면서 그들을 인도하셨다.

때로는 그들에게 풍요와 번영의 축복을 내리시고, 때로는 그들을 사랑의 매로 벌하시면서 그들로 하여금 당신의 계획을 따르도록 인도하셨다. 또한 그들에게 예언자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를 약속하시면서 그들로 하여금 메시아를 기다리며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도록 이끄셨다.

그리고 때가 이르자 예언자들을 통하여 알려주신 대로 갈릴레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동네에 사는 처녀 마리아에게 천사 가브리엘을 보내시어 메시아의 탄생을 예고하셨다. 이에 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명함으로써 메시아의 강생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인류 역사 안에서 오직 한 사람 마리아만을 택하시어 그녀에게만 천사를 보내셨을까? 꼭 그렇다고 답할 수만은 없다. 오히려 마리아만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천사를 보았고, 마리아만이 천사가 전한 하느님의 말씀에 응답했다고 묵상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즉, 하느님께서는 스스로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에게 천사를 보내셨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이후부터 장구한 세월동안 티 없이 순수하고 의로우신 당신 아들을 세상에 보내심으로써 인류의 죄를 대신 기워 갚도록 하시기 위하여 수많은 천사를 사람들에게 보내셨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 보내신 천사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설령 하느님의 천사를 알아보았을지라도 천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묵상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먼저, 수많은 이스라엘 처녀 가운데 마리아만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천사를 알아보았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마태 13,14)는 말씀처럼 많은 이들이 천사를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도 알아듣지 못한다. 눈과 귀는 있지만 신앙의 눈과 귀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마리아는 하느님의 천사를 알아볼 수 있는 눈과 천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 즉 신앙의 눈과 귀를 지니고 있었다. 하느님께 나아가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신앙이 필요하다. 신앙 없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도 못하고, 하느님께 나아가기 어렵다.

마리아가 천사를 맞이한 상태는 몽롱하고 흐릿한 정신 상태나 꿈을 꾸던 가운데에서가 아니다. 그녀는 아주 또렷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천사를 맞이하였다. 그녀는 천사의 방문을 받고 천사의 말을 들으며 당황하긴 했지만, 천사의 말이 무슨 뜻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할 정도로 맑은 의식 중에서, 뚜렷한 자의식을 지닌 상태에서 천사를 만났다.

그리하여 그녀는 천사에게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사리에 어긋나는 점을 들어 반박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천사를 만나는 것 자체가 두렵고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벌벌 떨다가 아무 말도 못하기 십상이며, 자칫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녀는 당당하게 자신이 해야 할 질문을 서슴지 않고 했다. 이처럼 천사를 보고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깊은 신앙의 눈과 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느님 앞에서 떳떳한 자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처녀가 마리아였기 때문에, 그녀는 구세주의 어머니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아가 그녀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처녀였다. 천사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즉각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자신이 주(主)가 아니라 종이라는 사실, 그래서 종은 주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하며 사는 신앙인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주가 되기를 원하고, 모든 일에 있어서 주도권을 잡고,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하지만, 마리아는 자신이 주가 아니라 종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살았으며, 종으로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사는 신앙인이었다.

비록 그 길이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루가 2,35) 수밖에 없는 수난과 고통의 길, 십자가의 길일지라도, 주님의 뜻이 자신 안에서 이루어지기 위해 살아가는 신앙인이었다.

그 어떤 모욕과 박해, 죽음까지도 각오하며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살아가는 신앙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을 받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으며,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었으며, 영원히 사는 사람이 되었다.

사도 요한은 “세상도 가고 세상의 정욕도 다 지나가지만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1요한 2,17)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지나가버리고 없어져버릴 세상 것에 얽매이지 말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감으로써 영원히 사는 신앙인, 마리아처럼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기도하는 신앙인이 되자.

---------------------------------------------------------------

전주교구 경규봉 신부
  | 03.24
459 58%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은 성탄절을 기준으로 아홉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성모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하신 일을 경축하는 날입니다.(예수님 탄생 예고 즉시 잉태하신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대축일이라고 경축하고 있지만 당시의 실제 상황을 생각하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아주 작은 일이었습니다.(물론 마리아 자신이나 요셉에게는 심각하고 중대한 사건이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자렛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 그곳에서 살고 있던 평범한 시골 처녀 마리아. 마리아에게 누가 찾아왔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신경이나 썼겠습니까? 누가 관심 갖고 주목이나 했겠습니까?

마리아의 약혼자 요셉이 다윗 왕실의 후손이라고 해도 이미 망해버린 왕실이고, 직계 후손도 아닌 곁가지 후손이었고, 사람들 눈에 뜨이지도 않는 가난한 시골 목수일 뿐이었으니 요셉의 족보나 혈통도 그 당시에는 큰 의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 외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아기였는데, 그 아기가 태어날 때에는 이스라엘의 임금이 긴장하게 되고, 다시 몇 십 년 후에는 이스라엘 전체가 긴장을 하고, 또 좀 더 세월이 흐르게 되면 로마제국 전체가 긴장하게 됩니다.

문득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겨자씨의 비유가 바로 예수님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천사가 마리아를 찾아오고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하신 일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그야말로 작은 겨자씨 하나가 심어진 일이었는데, 그 작은 씨앗이 나중에는 온 세상을 긴장하게 만드는 큰 나무로 자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마리아를 밭으로 생각할 수 있고, 예수님을 겨자씨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예루살렘이나 베들레헴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자칭 예언자, 자칭 메시아가 나타나면 혹시나 하고 기대했다가 역시나 하며 실망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나자렛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곳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아주 조용히 인류 역사의 반전(反轉)을 계획하시고 실행하셨습니다. 생각해보면 예수님의 탄생은 그 어떤 영화나 드라마도 흉내 내지 못할 최고의 반전(反轉) 드라마입니다. 이스라엘만의 역사가 아니라 인류 역사의 반전 드라마입니다.

어쩌면 ‘희망’이라는 것도 그렇게 심어지고 키워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어느 누구의 눈에도 뜨이지 않는, 작은 씨앗 하나가 뿌려지는 것처럼 그렇게 희망의 씨 하나가 뿌려지고 조용히 자라면서 언젠가는 거대한 나무가 되기를 기다리는 것, 그런 것이 희망이 아닐까...

우리는 예수님 잉태의 첫 순간을 읽으면서 마리아의 두려움과 설렘과 기쁨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실감하지도 못합니다. 우리는 이미 복음서의 내용을 알고 있고, 묵시록까지 읽은 사람은 인류의 종말까지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 장면을 궁금해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심정은 어땠을까? 천사가 전해 준 몇 마디 설명 외에는 전혀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믿음 하나로 이 거창한 드라마를 혼자서 감당해야만 했으니... 아마도 칠흑 같이 어두운 밤바다에서 멀리 수평선에 보이는 아주 작은 불빛 하나를 향해서 작은 조각배를 저어가는 심정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너무 작고 희미해서 희망이라고 부르기에도 힘든 작은 불빛 하나.

그렇게 인류의 새로운 역사가 작고 조용하게 시작된 날이 바로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입니다. 마리아라는 밭에 예수님이라는 겨자씨 하나가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심어진 날.

40여 년 전 초등학생 시절, 당시 티브이라는 것도 없고 라디오가 유일한 낙이었을 때 인기 있었던 프로그램 중 하나가 ‘절망은 없다.’ 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매주 한 편씩, 절망을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한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를 드라마처럼 재구성해서 방송했는데, 그때 방송 시작 시간이 되면 아나운서가 주제 음악과 함께 항상 반복해서 낭독하던 말이 “지진으로 무너진 들에도 샘은 다시 솟고...”였습니다.

그 다음 구절이 잘 생각나지 않는데, 아마도 이사야서 42장 3절, “갈대가 부러졌다 하여 잘라 버리지 아니하고, 심지가 깜박거린다 하여 등불을 꺼 버리지 아니하며...(공동번역)” 그 구절과 비슷한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시절 6.25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한국인들에게 그 프로그램은 많은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고 기억합니다.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들이었고, 제목 자체가 ‘절망은 없다.’였으니...

그렇습니다. 절망은 없습니다. 스스로 절망하지 않는 한. 우리도 각자 자신의 가슴 속에 희망이란 이름의 작은 겨자씨를 심을 수 있습니다. 아니, 심어야 합니다. 언젠가는 온 세상에 그늘을 만들어 줄 거대한 나무로 자라기를 기대하면서.

----------------------------------------

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
  | 03.24
459 58%
[제주] 교회의 모습

-----------------------------------------

오늘 복음에서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라는 대목에 시선을 멈추어봅니다.

이 세상에 오시는 구세주의 탄생 예고 안에 삼위일체 신비가 나오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어떤 영감을 받고 이런 천사의 알림을 넣었을까요? 주님 탄생 예고 자체가 삼위일체 신앙고백 안에서 생각되어야 할 부분인 것은 이 예고 자체가 사람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대답했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여종 마리아의 응답을 들으셨습니다. 성령, 성부, 성자의 소식을 전한 가브리엘 천사 앞에서 두려움과 떨림 속에 조용히 응답한 마리아야말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가장 훌륭한 신앙인의 모범입니다.

교회의 모습, 신앙인이 걸어가야 할 길은 전능하신 하느님 앞에서 겸손해지는 일입니다. 머리로는 결코 알아들을 수 없는 신비이지만 겸손하면 우리 마음에 하느님이 찾아오신다는 사실입니다.

---------------------------------------------

제주교구 허찬란 신부
  | 03.24
459 58%
[청주] 순명

----------------------------------------

십자가의 성 요한은 ‘하느님께서는 수많은 일로 하느님을 섬기려고 애쓰는 것보다 극히 작은 순명과 복종을 더 좋아하신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에게 있어서 순명이란 내 뜻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수도자가 되겠다고 어떤 사람 두 명이 수도원을 찾아왔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두 사람에게 이렇게 명령을 합니다. “배추를 거꾸로 심어라.” 뿌리를 하늘로, 줄기를 땅으로 하여 심으라고 하는 이상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한 사람은 프란치스코의 말대로 순종했습니다. 또 한 사람은 “말도 안 된다”라며 제대로 심었습니다. 거꾸로 심은 사람은 수도원에 받아들여졌고, 제대로 심은 사람은 집으로 돌려보내졌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말합니다. “농사꾼을 뽑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합리적이냐 불합리적이냐 하는 것을 묻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농사를 아느냐를 물어 보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그것은 순종하는지 하지 않는지의 여부를 확인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도구가 되기 위한 관건은 순종입니다. 그러기에 성모님의 순종은 우리 신앙의 귀한 모범이 됩니다. 성모님의 순종으로 하느님의 뜻이 이 땅 위에서 승리했습니다.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순종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순종합니다. 순종하는 사람은 믿음이 자랍니다.

-------------------------------------------------

청주교구 김훈일 신부
  | 03.24
459 58%
[청주] 믿음에는 순명이 따른다

---------------------------------

성경을 보면,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루카1,30).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리아는 이해되지 않고 믿을 수 없는 이 말씀에 결국은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 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세상은 바로 마리아의 이 믿음과 믿음에 따르는 순명으로 인하여 구세주의 탄생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당시의 풍습을 생각하면 약혼한 처녀가 부모도 모르고 약혼자도 모르게 임신하여 배가 불러온다는 것은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처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리아의 응답은 죽음을 각오한 대답이었습니다. 사실 순종 없는 믿음은 그림의 떡입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1,37)고 하셨지만 인간의 협력을 요구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결코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른 복종이 없이 천명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이현주). 그렇다면 내가 있는 자리가 어디이든 주님의 뜻에 기꺼이 순명할 수 있는 믿음이 있다면 그 자리에 하느님께서 분명히 역사하십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당신이 쉼을 원하시면 저는 사랑으로 쉬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일하라고 명을 내리시면 저는 일을 하면서 죽고 싶습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일상 안에서 언제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더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지만 하느님께서는 선인이나 악인이나 모두에게 은총을 쏟아 부어주십니다. 그러나 은총을 알아채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느님의 손 안에 있는 연장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연장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도구가 되는 기쁨을 놓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마리아는 모든 것을 희생하고 감수하면서 단테의 표현대로 "처녀인 어머니로서의 고통", 그리고 "아들의 딸" 즉 하느님의 딸로서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하느님을 따르는 길에서 고통은 항상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천사가 마리아에게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루카1,35). 하였습니다. 바로 그 성령께서 우리에게도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우리를 덮어 죽기까지 믿음에 따르는 순명의 삶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따르는 경청의 달인이요, 행동하는 어머니이셨습니다. 우리도 일상 나에서 다가오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대로 행하는 성모님을 닮은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갈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신부
2017년 3월 25일
  | 03.24
459 58%
​​<​나를 낮추는 말보다
나를 높이는 말이 믿기 더 어렵다

----------------------------------------------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은 커다란 믿음의 시험을 받습니다.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으니까, 하느님의 어머니가 된다는 믿음의 도전입니다.

어찌 보면 그냥 “아멘!”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을 낮추는 말보다 높이는 말을 더 믿기 어려워합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 마리아께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라고 인사했습니다. 만약 누가 “나는 네가 어젯밤에 한 일을 알고 있다.”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섬뜩할까요? 이것이 나를 높여주시려는 하느님의 뜻을 믿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높아지면 그 높은 수준의 삶을 살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에 대한 믿음’을 낮추려 합니다.

즈카르야는 예언자의 아버지가 된다는 말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된다는 말도 믿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수행해야 하는 소명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래서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신체적 장애를 남과 다른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영국의 살아있는 비너스, 앨리슨 래퍼’의 이야기입니다. 래퍼는 두 팔이 없고 기형적으로 짧은 다리를 지니고 태어나 생후 6주 만에 거리에 버려져 19년 동안 복지시설에서 자랐습니다. 스물한 살 때 결혼했지만 남편의 폭력 때문에 9개월 만에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이후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의 몸으로 혼자서 아들 패리스를 낳았습니다. 그녀는 이런 상황에서도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입과 발로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 겸 사진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불편한 자신의 몸을 숨기지 않고 작품의 소재로 삼는 등 적극적인 방식으로 장애를 극복했으며, 2003년에 스페인 ‘올해의 여성상’과 영국 왕실에서 수여하는 ‘대영제국 국민훈장’을 받았습니다. 2005년에는 ‘세계 여성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장애를 갖고 태어났지만 행복하다. 장애인을 일컫는 ‘disable’이란 말은 사회에서 만들어 낸 것이지 앨리슨, 나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나는 그저 남들과 조금 다를 뿐입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전혀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래퍼는 작품 활동을 할 때마다 장애인의 몸이 정상인과 다르다는 것은 문제 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 다름이 내 몸을 특별하고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합니다. 그녀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장애인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사랑했으며, 나아가서 자부심마저 느꼈다고 말합니다. [출처: ‘안식일학교; 교과토의 자료, 제9과 자존감, 다음 카페]

사람의 삶의 질은 ‘자신이 어느 만큼 귀중한 존재이냐는 믿음’에 의해 결정됩니다.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된다는 것까지 믿으셨습니다. 사실 우리도 교회라는 가브리엘 천사를 만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는 나도 예수님과 한 몸이 되어 하느님을 모신 성전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말에 “아멘!” 하며 예수님을 우리 안에 모십니다. 이제는 우리가 사람의 수준이 아니라 하느님의 수준까지 올라가게 된 것입니다.

교리서는 “교회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단순히 그리스도인이 된 것뿐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 자신이 된 것”이라고 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우리의 머리로 보내 주신 이 은혜를 이해하십니까- 놀라고 기뻐하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가 된 것입니다. 사실 그분은 우리의 머리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지체이기 때문에 그분과 우리는 온전히 한 인간입니다.”(795)

정말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이면, 그분의 뜻을 따라주기는 해야겠지만, 하느님의 유일한 자녀와 한 몸으로서 두려울 것이 없어야 합니다. 하느님이 누구를 두려워하고, 무엇을 걱정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 믿음을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하느님은 성모 마리아에게서처럼 우리에게도 이 믿음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믿음이 나의 정체성이 되고, 나의 정체성만큼 변한 삶을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핵심이 담긴 교리를 하나 더 보도록 하겠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2베드 1,4) 하시려고 사람이 되셨다. ‘바로 이 때문에 ‘말씀’은 인간이 되시고, 하느님의 아들은 사람의 아들이 되셨다. 인간이 ‘하느님의 말씀’과 친교를 맺고, 자녀 됨을 받아들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려고 성자께서 인간이 되셨다.’ ‘그분은 우리를 하느님이 되게 하시려고 인간이 되셨다.’ ‘하느님의 외아들은 당신 신성에 우리를 참여시키시려고 우리의 인성을 취하셨으며, 인간을 신으로 만들기 위하여 인간이 되셨다.’”(460)

하느님께서 저희를 하느님이 되게 하셨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한 것입니다. 그 사람 안에서 하느님의 본성인 ‘사랑’이 나와 분명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있을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신다는 것까지 믿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들어 높여주시려는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있습니까?
하느님이 된다는 것까지 믿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성모 마리아의 믿음을 닮으신 것입니다.

--------------------------------------------

수원교구 전삼용 신부
2020년 3월 25일
  | 03.25
459 58%
[전주] 순종, 응답

------------------------------------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

우리 교회는 마리아의 응답과 동시에 예수님께서 잉태되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은 주님께서 성모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신 날이고, 실질적으로 인간 세상에 들어오신 날입니다. 따라서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은 성탄절만큼이나 중요한 대축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마리아의 응답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지, 또 얼마나 위대한 일이었는지를 강조하면서, 그 응답과 순종을 본받자는 말을 자주 하는데, 혹시라도 사람들 가운데에는 “왜 그게 그렇게 중요하고 위대한가?”라고 의문을 품을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 자료를 찾아보면, 마리아가 처한 상황보다 더 심각하고 복잡한 상황에서, 마리아보다 더 과감한 결단을 내리고 그것을 실행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마리아의 ‘응답의 결과’입니다. 그 응답 덕분에 이루어진 일의 위대함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응답한 그 날은 인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된 날이고, 모든 사람의 인생이 새롭게 시작된 날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은 관심도 없겠지만, 구세주께서 세상에 들어오심으로써 인류 구원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날이고, 구원받을 길을(또는 구원의 진리를) 알지 못해서 방황하던 인류가 그 길과 진리로 나아가기 시작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마리아는 자신의 응답과 순종의 위대함을 인식하고 있었을까? 충분히 잘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루카 1,48ㄴ-49).

아무 생각 없이, 즉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맹목적으로 응답하고 순종한 것이라면, 응답과 순종의 의미와 가치가 많이 떨어지게 됩니다. 자신이 무엇을 응답하는지, 그리고 응답의 결과로 어떤 일이 생길지를 잘 알고 있어야 응답의 결과로 이루어진 일의 위대함 만큼 응답 자체도 위대한 일이 됩니다.

사람들 가운데에는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라는 말 때문에, 혹시 “하느님의 뜻이니까(명령이니까) 어쩔 수 없이 복종한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라는 말은, 실제로 자유의지 없이 명령에 복종만 해야 하는 종이라는 뜻이 아니라, 종이 주인의 뜻에 따르듯이 그렇게 하느님의 뜻에 기꺼이 순종하겠다는 뜻입니다. 자유의지 없이, 즉 명령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복종한 것이라면, 그 복종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자유의지는 마리아의 응답과 순종뿐만 아니라, 모든 신앙인의 신앙생활에도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자유의지로 자유롭게 순종을 선택했고, 응답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인데, 신앙생활은, 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과 구원과 생명을 얻는 일은, 아무에게도 강요되지 않습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주님 탄생 예고’ 소식을 전한 일은, 무조건 따라야만 하는 명령을 전한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전한 일입니다.

‘부르심’은 ‘초대’입니다. 응답하기를 거절하는 사람을 강제로 끌고 가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특별한 사명을 맡기시는 ‘부르심’에 응답하기를 거절하는 일 자체는 죄가 아닌데, 응답했을 때 얻게 될 ‘큰 은총’을 얻지 못하는 일이 됩니다.

또 사람들 가운데에는,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루카 1,34)”라는 말 때문에 “혹시 마리아는 즈카르야처럼 천사가 전하는 말을 안 믿고 의심한 것은 아닌가? 아니면 믿었더라도 응답하기를 망설인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즈카르야가 천사에게 했던 말,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루카 1,18)”라는 말과 마리아의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는 말은, 뜻이 완전히 다릅니다.

즈카르야의 말은, “제가 그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라는 뜻입니다. 그는 자신과 엘리사벳의 나이가 많다는 점 때문에 아기를 낳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말은,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뜻입니다. 마리아는 동정녀인 자신이 아기를 낳으려면 약혼자인 요셉과의 결혼을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루카 1,35).”라는 천사의 대답은, “하느님께서 다 알아서 하실 것이니 네가 따로 할 일은 없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7).”라는 천사의 말은,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니 동정녀를 통해서 메시아가 태어나게 하실 수 있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망설였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자유의지로 기꺼이 순종하고 응답했더라도, 묵상과 기도도 하지 않고, 고민 같은 것은 전혀 하지 않고, 천사의 말을 듣자마자 즉시 응답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고, 아마도 천사의 말과 마리아의 응답 사이에 어느 정도 시간 간격이 있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충분히 기도하고 묵상한 다음에 응답했을 것이고, 천사는 재촉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마리아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천사가 한 말들은 전부 다 마리아로서는 상상한 적도 없는,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일에 관한 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메시아의 어머니가 되는 것은, 마리아 자신은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원한 적도 없고, 청한 적도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놀라고 당황하고 망설이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런 점에서도 마리아의 순종과 응답은 위대한 일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어떤 ‘특별한 부르심’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사제직에 대한 부르심이나 수도생활에 대한 부르심뿐만 아니라,
본당에서 어떤 직책이나 임무를 맡는 것도 모두 ‘특별한 부르심’입니다.) 그런 ‘부르심’을 받았을 때, 신앙인으로서 마리아의 순종과 응답을 본받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 기꺼이 참여하는 것은 하느님께 기쁨을 드리는 일이고, 동시에 내가 큰 은총과 큰 기쁨을 얻는 일입니다.

-----------------------------------

전주교구 송영진 신부
2020년 3월 25일
  | 03.26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523   [수도회] 내 인생의 동반자 성령  [6] 2160
522   [광주] 용서해주고 용서받는 일  [2] 2551
521   [전주] “오소서, 성령님”  [5] 2788
520   [군종] 명령과 성령  [5] 2424
519   [청주] “오소서, 성령님!”  7
518   [대전] “성령을 따라 사는 삶"  [3] 2837
517   [원주] 미운 오리새끼, 백조, 나  [1] 2857
516   [춘천] "성령을 받아라!"  [5] 2948
515   [의정부] 자연은 하느님 성령의 숨결  [9] 2971
514   [수원] 사랑과 일치의 성령  [8] 2692
513   [인천] 성령을 받아라!  [13] 3059
512   [서울] 우리를 살게 하시는 성령님  [15] 3308
511   [안동] 오소서 성령님  [7] 2749
510   [부산] 성령을 받아라  [12] 2902
509   [마산] 평화의 성령  [8] 2678
508   [대구] 우리의 신앙과 성령의 활동  [8] 2848
507   (홍) 성령 강림 대축일 독서와 복음  [12] 2284
506   [수도회] 함께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주님  [6] 635
505   [청주] 하늘과 하느님  [1] 39
504   [군종] 주님의 길, 영광의 길  [1] 607
1 [2][3][4][5][6][7][8][9][10]..[27]  다음
 

 

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05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