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대축일/명절강론

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2 56%
[광주] 우표붙이기
조회수 | 220
작성일 | 17.10.17
[광주] 우표붙이기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 이 말씀을 오해해서 들으면 선교라는 말이 폭력적인 단어가 되어버린다. 가령, 길거리에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쳐대는 사람들의 폭력성이 있다. 이런 구호를 외치는 사람은 나름대로 자신이 선교하고 있다는 소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믿기만 하면 천국행이라는 말은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선교는 편지 보내기에 비유해 볼 수가 있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적고,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의 주소를 잘 표기하였더라도, 이것만으로는 편지가 상대편에게 도달하지 않는다. 우표를 붙여야 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 역시 우표가 있어야 한다. 말로만 믿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기 삶으로 실천하는 자세가 바로 신앙인에게 우표이다. 이 우표가 있어야 제대로 전달된다.

또한, 선교는 누군가에게 사탕을 주는 것과 비교해 볼 수 있다. 맛있으니 먹어보라고 말하면서 강제로 상대방의 입에 넣는다면 그것을 선교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탕을 주면서도 자신 스스로 그 맛을 맛보고 어떤 맛인지 알고 상대방에게 주어야 한다. 자신은 사탕 맛도 모르면서 남에게만 이 사탕 맛있으니 먹어보라고 말하는 것, 자신은 하느님 안에서의 기쁨을 모르면서 믿으라고 말한다는 것, 그것은 참된 의미의 선교가 아니다. 모든 민족에게 가서 신자가 되게 하라는 것, 이것 또한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자칫 선교라는 말로 상대방을 정복하려 하고 그 사람의 정서나 문화를 없애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선교는 하느님 없는 곳에 하느님이 있다고 알리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 없는 곳에 하느님이 있게 하는 것, 예수님 없는 곳에 예수님이 있게 하는 것처럼 선교를 오해할 수 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하느님을 아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나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곳, 어디에나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다. 그래서 선교는 이미 그 사람들이 하느님과 함께 있는데, 단지 그 함께 있는 분을 향해 하느님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그분이 하느님이시라고, 단지 이름을 모르고 있었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선교라는 말 아래 어떻게 선교하고 있는지 반성해 보았으면 한다.

► 광주대교구 김일두 베드로 신부
452 56%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내리신 사명을 받았습니다. 바로 ‘선교사명’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따라나설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나섰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바로 내적 ‘비움’ 에서 시작됩니다. ‘비움’ 이라는 내적 삶을 통해 그 안에 주님을 향한 에너지로 가득 채워 갈 때 우리는 예수님을 따른다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능동적인 모습, 생동감이 넘쳐나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삶 안에 주님을 향한 기쁨이 넘쳐 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기쁨을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다는 것’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삶, 이것이 바로 기쁨이며 우리가주님을 따르는 이 유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얻는 작은 기쁨들이 모여 이 세상을 변화하는 에너지로, 주님의 복음을 실천하는 삶으로 승화될 것입니다.

‘선교’는 하느님의 백성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임무입니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선교하기 위해 모인 공동체이며 선교를 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생명력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선 공생활을 마치시면서 제자들을 불러 모아 마지막 파견 명령을 내리실 때 보고 듣고 깨달은 것을 모든 민족들에게 전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이 어떤 이들에게는 버거 움과 두려움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가장 확실한 위로와 희망이 있었기에 세상 속으로 파견되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 28,20)

우리는 남에게 무엇인가를 전달할 때 내 마음 안에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가진 확신을 누군가에게 전할 때,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공감이 생기게 되고 그 공감은 사림들의 마 음을 움직이게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주님께 대한 내적 기쁨과 확산 그리고 열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기쁨 없이 사는 사람이 주변의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없듯이 주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 안에서 살고 있지 않다면 우리가 전하는 믿음은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 광주대교구 김준오 베드로 신부 - 2017년 10월 22일
  | 10.21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   [부산]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7]
!   [수원] 세례자 요한  [2]
476   [의정부] 신앙의 살아있는 이정표, 세례자 요한  30
475   [춘천] 고귀한 사명  27
474   [안동] 세례자 요한을 닮는 삶  25
473   [인천] 하느님의 뜻을 따름  [7] 2389
472   [마산] 세례자 요한의 탄생과 죽음의 의미  [3] 152
471   [서울] 너는 나의 종, 너에게서 나의 영광이 빛나리라  [6] 2470
470   [대구] 보이지 않는 믿음을 요구하실 때  [2] 2167
469   [전주] 그리스도를 준비하고 드러내는 요한  44
468   [대전] 세례자 요한의 이름  193
467   [광주] 주님께 영광을 바치는 작은 자  43
466   [수도회] 배터리가 다 닳아져 가는데도  [12] 2299
465   (홍)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6월24일) 독서와 복음  [11] 7080
464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예수 성심 대축일  [2] 2199
463   [마산] 누구의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5] 2150
462   [광주/대전] 2007년 사제성화의 날 ‘성시간’ 자료  [4] 2362
461   [부산] 하느님께서 인간을 위해 먼저 기도하고 계셨다  [5] 2309
460   [대구] "무엇이 행복한 삶인가?’  [3] 2270
459   [서울] 열절한 사랑의 샘  [2] 2187
1 [2][3][4][5][6][7][8][9][10]..[24]  다음
 

 

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05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