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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새옹지우(塞翁之牛)’
조회수 | 19
작성일 | 18.07.02
[인천]  ‘새옹지우(塞翁之牛)’

언젠가 어떤 책에서 읽은 내용이 생각납니다. 어떤 의사 선생님의 체험을 적은 책이었는데, 아마 소제목이 ‘새옹지우(塞翁之牛)’였던 것 같네요.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느 날 밤 병원 응급실에 어떤 할아버지가 소에 받쳐서 실려 왔답니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는 고통에 힘들어 하시면서도 계속해서 ‘이 놈의 소, 내가 낫기만 해봐라 당장 잡아 묵을기다.’ 말씀하시더랍니다. 자신이 애지중지하면서 길렀던 소한테 받친 것이 억울하셨던 것이지요.

아무튼 엑스레이를 찍으면서 각종 검사를 하는데, 갈비뼈가 부러진 것 외에 새로운 것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위암. 이 위암이란 것은 말기가 되어서야 자각 증세가 있다고 하네요. 따라서 초기에 병원을 찾아와서 치료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요. 그런데 이 할아버지께서는 소에 받쳐서 검사를 하던 중에 초기 단계의 위암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래서 쉽게 치료할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께 이 의사 선생님께서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그 소 아직도 잡아 드실꺼에요?”
그러자 그 할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데요.
“잡아먹긴. 나를 살렸는데... 내 자식 삼았어요.”

자신을 들이 박은 소로 인해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지만, 이로 인해서 더 큰 병을 찾을 수 있었지요. 그래서 제목이 새옹지마(塞翁之馬)가 아닌 ‘새옹지우(塞翁之牛)’였던 것이지요.

우리의 삶 안에서 이러한 경우는 상당히 많지요. 그런데 문제는 지금의 나쁜 상황만을 바라보면서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 차 있는 내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상황에서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삐딱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마치 오늘 복음에 나오는 토마스 사도처럼 말이지요.

토마스 사도는 동료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예수 부활의 소식은 분명 기쁜 소식이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토마스 사도는 이 소식을 받아들이지 않지요. 왜냐하면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지 않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나 주님의 일은 완결이란 없습니다. 죽음을 통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지만, 부활이라는 또 다른 사건을 통해서 우리를 위한 구세사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지요.

후에 토마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행복은 바로 믿음으로써 내가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불행도 내 자신이 만들어 냅니다.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꿔보세요.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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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고서 수영장으로 운동을 하러 갑니다. 지난 5월부터 시작을 했으니 벌써 3개월째가 되지요. 이렇게 운동을 하면서 체중도 꽤 많이 줄였고, 또한 아침에 운동으로 시작을 하니 하루를 보다 더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고서 수영장으로 가기 때문에 일기예보를 꼭 보고서 출발을 합니다. 특히 요즘 일기예보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실시간 예고가 있기 때문에 이것을 보면 비가 오는지 오지 않는지를 알 수 있고 이로써 자전거를 타고 갈 것인지 아니면 차를 타고 갈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거든요.

어제 역시 새벽 방송을 마치고서 인터넷으로 일기예보를 보았지요. 8시부터 비가 온다고 합니다. 수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에 비가 온다는 것이지요. 갈등이 생겼습니다. 자전거를 탈 것인가 아니면 차를 타고 갈 것인가……. 그러한 갈등 속에서 창밖을 보니, 금방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는 저의 느낌을 믿기로 했지요. 더군다나 일기예보가 정확하게 맞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수영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가면서 저는 크게 후회했습니다. 평소에 잘 맞지 않는 일기예보가 지금은 왜 이렇게 잘 맞는지요? 정말로 정확하게 8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거든요.

비를 맞으면서 자전거를 타고 오는데, 이러한 생각이 들어요. 분명히 제게 경고를 했는데 그래서 비를 맞지 않을 수 있도록 해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저의 쓸데없는 고집으로 이렇게 비를 맞으면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요.

생각해보니 주님께도 이러했던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쓸데없는 고집으로 엉뚱한 길로 갈 때가 참으로 많았다는 것이지요. 바로 믿음의 부족이었고, ‘나’라는 틀에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치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토마스 사도처럼 말이지요.

토마스 사도는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하는 말,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라는 말을 믿지 않지요. 대신 그는 사람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세상의 법칙을 굳게 믿었지요. 또한 자신이 직접 보고 만지지 못했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정말로 부활하셨지요. 그리고 토마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주님께서는 세상의 법칙을 믿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법칙을 믿고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나’라는 틀에 갇혀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틀에서 자유로움을 느끼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 점을 기억하며 실천할 때, 우리는 오늘 주님의 말씀처럼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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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신학생 한 명이 성소국 사무실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머리카락을 너무 짧게 자른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어색해 보이더군요. 다른 사람들도 이 신학생을 향해서 머리카락을 왜 이렇게 짧게 잘랐느냐, 너무 어색하다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 신학생이 휴대전화에 있는 어떤 사진을 보여주면서 억울하다는 말을 합니다.

이 신학생은 미용사에게 휴대전화에 저장되어 있는 모델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모델처럼 머리카락을 잘라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시원하게 머리카락을 자른 모델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지요. 사진을 잘 보니 분명히 비슷하게 이발했습니다. 그러나 왠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스타일이 신학생에게는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이 모델과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면 자기도 멋있을 것 같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지요.

어쩌면 우리들의 일상 안에서 이 신학생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항상 세상의 기준을 내세워서 그 틀 안에만 맞추려고 합니다. 남의 모습만을 부러워하고, 그렇게만 살면 행복할 것이라 착각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러한 세상의 틀 안에 우리를 가두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틀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가장 적합하고 멋있는 모습으로 살 수 있도록 하시는 분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축일을 지내고 있는 토마스 사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뽑으신 제자로써 능력도 많고 용기도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세상의 기준으로 모든 판단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의심하고 믿지 못했던 것이지요. 다른 모든 제자들이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라고 증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라면서 믿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틀에서 벗어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안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그 틀 안에 스스로를 가두면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 틀을 벗어나 주님을 향해 그리고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로 그때 눈으로 보고 직접 만져봐야 믿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보지 않고 또 만져보지 않아도 믿을 수 있는 혜안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이제는 세상의 틀에만 맞추는 내가 아닌, 주님의 틀에 맞추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매 순간,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라며 고백하면서 주님과 함께 할 수 있게 됩니다.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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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서해안에 위치하고 있는 태안반도의 조그만 마을에 있습니다. 주변을 걸으면서 바빴던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서 글도 좀 쓰고 강의준비도 하려고 온 것이지요. 점심시간이 되어서 주변의 식당을 찾아갔습니다. 그 식당에는 여러 가지 메뉴가 적혀 있었거든요. 인상 좋아 보이는 사장님께 “사장님, 무엇을 먹으면 잘 먹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사장님께서는 “다 맛있으니까 좋아 하시는 것을 주문하세요.”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닷가에 왔으니 ‘회덮밥’을 주문하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날씨가 좋지 않아서 배가 나간지 꽤 되었거든요. 따라서 지금 있는 생선은 그렇게 싱싱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드시겠다면 드리겠지만 기왕이면 좋은 음식을 드셨으면 좋겠네요.”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굴밥’은 어떤 지를 물었습니다. 이번에도 “지금 있는 굴이 너무 작아서 굴밥 드시면 후회하실 거예요.”라는 것이 아닙니까?

정직하게 장사를 하는 주인을 보면서 기분이 점점 좋아졌습니다. 솔직히 저 같은 뜨내기손님에게 좋지 않은 것을 준다고 한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잘 팔리지 않는 것을 팔면 가게로서도 더 좋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손님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나 고맙고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이 가게에서 제가 먹을 수 있는 가장 비싼 것 하나 주세요.”

제일 비싼 것이 생선구이더군요. 그런데 이 역시 말립니다. 저 혼자서 먹기에는 양이 너무 많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냥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것을 손님에 대한 배려의 마음을 기억하면서 기분 좋게 다 먹었습니다.

내 자신을 신뢰하고 배려해 주는 상대방의 마음을 보게 되면 참으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반대로 나를 믿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그때는 함께 하는 그 시간이 그렇게 행복하지 않습니다.

토마스는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주님을 뵈었다는 말에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히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죄책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주님을 배신했다는 마음, 주님의 수난과 죽음에 함께 하지 못했다는 죄스러움에 주님을 다시 뵈어서는 안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정말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토마스 앞에도 나타나셔서 말씀하시지요.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주님의 사랑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했던 토마스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진실로 깨닫게 되지요.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사랑에 제대로 응답하는 것이며 주님을 기쁘게 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데 자신의 전부라 할 수 있는 생명까지 봉헌합니다.

주님께 기쁨을 전해드릴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주님께 대한 굳은 신뢰의 마음이 내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것입니다.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2018년 7월 3일
  |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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