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대축일/명절강론

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47 45.6%
[광주] 받아 들임
조회수 | 88
작성일 | 19.01.03
[광주] 받아 들임

--------------------------------------------

새해 첫 주일입니다. 올해도 여러분 모두 주님의 사랑 안에서 복 많이 받으시고 가정에는 건강과 평화가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복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안 믿는 이들이야 잘 먹고 잘사는 것이 복이요, 몸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복이지만, 믿는 이들에겐 복이라는 개념이 그렇게 편협된 것이 아닙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그 안에 감추어 계신 하느님의 뜻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 복이요, 외롭고 눈물이 나도 우리와 동행 하시는 주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것이 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은 주님의 공현 대축일입니다. 예수님의 신성이 처음 공적으로 드러났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바라보는 이들을 통해서 공현의 의미에 접근해보겠습니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조상 대대로 내려온 믿음과 천사의 말을 믿고 받아들이는 목자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직하게 믿고 살아온 그들이기에 처음으로 예수님을 뵙고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이방인임에도 많은 준비와 노력으로 메시아를 기다렸고 경배한 동방 박사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신분이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찾아뵈온 메시아가 구유에서 태어난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위치, 환경, 명예 때문에 더 큰 가치를 버리려는 기득권을 가진 유대인의 모습 또한 발견합니다. 버릴 것이 너무 많음에도 버리지 못하기에 새로움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들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구원자가 아니라 걸림돌이 됩니다.

오늘 축일을 맞는 우리는 과연 어떤 선물을 드릴 것이며 또 어떤 선물을 받으실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늘 우리에게 많은 선물을 주고 계십니다. 단지 내가 받아들였느냐 그렇지 않았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내가 내 좋은 것만을 받아들이려 하기에 초라한 구유의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복음에서 찾아야 하는 보물은 “받아들임”입니다. 평범함 속에서 다가오는 예수님의 은총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며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이 있다면 일상 안에 계시는 그분을 발견하고 기쁘게 경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

▦ 광주대교구 장승용 베드로 신부
447 45.6%
[광주] 공인公人의 자세

----------------------------------------

희망찬 새해 2009년의 첫 주일은 주님공현대축일로 시작합니다. 공현公顯이라는 말이 잘 보여주듯 멜키올, 가스발, 발타살이라고 알려진 동방박사를 통해 이제 하느님의 모든 것이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이방인에게도 드러남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하늘과 땅의 왕권을 상징하는 황금,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께 바치는 제사에 쓰여 신성神性을 상징하는 유향, 죽은 자의 장례 때에 쓰여 참 사람의 인성人性을 상징하는 몰약, 이 세 가지 선물로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였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은 세 가지 선물만으로도 흡족하여 우리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시고, 죽기까지 한없이 사랑하셨나봅니다. 정작 우리는 지금 가진 것들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른 것을 찾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데, 늘 부족함을 탓하며 제 풀에 지쳐 쓰러지기도 하는데,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이 조그만 우리의 정성으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자기 홍보P.R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예전엔 나를 드러내지 않고 침묵하는 것이 미덕이었지만, 지금은 어떤 수단을 통해서든 자신을 알리려고 합니다. 어쩌면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기가 불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나를 알릴 수 있는 홍보수단도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반대로 우리 자신이 그 수단에 너무나도 많이 노출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미 좋든 싫든 공인으로 살아갑니다. 여러 매체를 통해 많이 알려진 사람만 공인이 아니라 그 매체를 이용하는 우리 역시 공인이 되어 다자간 소통 방식의 일원이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자신을 드러내는 자세가 중요할 것입니다.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연예인들의 말과 행동만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나를 드러내는 우리의 자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드러냄을 본받기 위해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로 그분을 선택한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나에게 흠이 되는 것은 감추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한마디 사과도 없고, 나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는 무조건 이해하기만을 원한다면, 나를 드러내기 위해 공동체의 희생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공인의 자세가 아닐 것입니다.

조그마한 우리의 정성을 어여삐 보시고, 모든 것을 드러내어 우리를 사랑해 주신 예수님과 같은 공인이 여느 때 보다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

▦ 광주대교구 김승제 방그라시오 신부
  | 01.03
447 45.6%
[광주] 길을 떠나자

-----------------------------------------------

주의 공현 대축일'을 전에는 '삼왕내조첨례'라고 했습니다. 즉 3명의 왕이 아침에 마구간에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을 뵈러 찾아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왕이라고 부르지도 않고 박사라 고 부르며 또한 그들이 주님을 찾아가 경배드렸다는 사실보다는 아기 예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여 주셨다는 의미를 더 강조합니다. '공현'이란 공적으로 드러내 보여 주셨다는 말입니다.

메시아는 사실 전인류를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아무리 '하느님의 백성'이라고는 하지만 꼭 유대인만을 위해서 오신 것은 아닙니다. 다만 유대인을 통해서 오셨을 뿐입니다. 그래서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도 먼저 유다의 목동들이 찾아가 경배드렸으며 이어서 이방인인 동방의 박사들이 찾아가 인사를 드렸습니다. 여기서 목동은 당시에 천한 수준이었으며 박사는 고상하고 품위있는 위치였다는 것이 아이러니컬합니다.

1독서에 보면 폐허된 예루살렘이 장차 하느님의 은혜로 얻게 될 미래의 영광에 대한 노래가 나옵니다. 그때는 강대국들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혀져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언제고 예루살렘을 일으키시어 만백성들이 보물들과 선물들을 가져오는 위대한 중심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언은 수백 년 뒤에 그대로 적중이 되어 하느님 의 아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태어나시고 이방인의 박사들이 전인류를 대표해서 보물을 들고 그분을 찾아가 경배를 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 때문에 그 이름이 빛나게 되었으며 또한 수백 년 동안의 치욕적인 사건들을 다 보상받았습니다. 드디어 믿음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하느님께서 직접 머무르시고 가르치셨던 선택받은 도시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인생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실패하고 잘못된 사람이라 해도 예수님 때문에 용서받고 사랑받게 되며, 또한 오랫동안 고통받아 온 모든 아픔들을 다 보상받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박사들의 그 용기와 희망과 끈기를 배워야 합니다.

복음에 보면 도대체 몇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뵙고 경배를 드렸는지 모릅니다. 다만 황금과 몰약과 유황이라는 선물을 통해 세 명이라고 추측을 하는 것이며 또한 그런 귀한 물건들이 주로 궁궐에서 사용하던 것들이기 때문에 왕들이 온 것이 아니냐 하고 짐작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왕이라기 보다는 박사나 현인, 혹은 학자라는 말 이 맞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도전은 큰 축복이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생각할 때 그들이 여행한 거리는 우리나라 남북의 삼천리 보다 더 먼 거리였으며 당시의 사정으론 굉장히 힘들고 위험 한 도박이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그들은 확신할 수도 없는 어떤 만 남을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신들의 생애를 투신합니다. 그리 고 가장 좋은 보물을 품에 간직하고 그분을 뵙기 위해 길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용기와 믿음과 인내 때문에 드디어 주님을 만났습니다. 소원 성취를 한 것입니다.

믿음이 사실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따라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기나긴 나그네 길입니다. 아니, 주님을 만나기 위해 정처없이 떠나는 여행길입니다. 그 길에서는 긴 장마 때문에 태양을 못 보는 경우 도 있으며 찬바람 때문에 잠 못이루는 아픔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믿음을 포기하고 싶은 절망 속에서 하느님을 원망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참고 걷게 되면 결국은 우리도 만나게 됩니다. 그리 고 우리가 무엇을 얻으려는 소망보다 우리의 것을 다 드리려는 열린 마음을 가질 때 그 감격과 기쁨이 큰 것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봤을 때 박사들의 행위를 보면 답답하고 어리석습니다. 도대체 바쁜 사람들이 고생스런 먼 길을 걸어서 어떤 아기를 잠깐 보고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선물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빈손으로 돌아갔습니다. 오히려 빈털터리가 됐습니다. 그러나 신앙 안에서는 모든 것을 다 얻었습니다. 다시 말해 주님을 봤다 면 세상을 다 얻어 가지고 돌아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 차롑니다.

우리도 '신앙'이라는 먼 길을 용기있게 걸어가야 합니다. 무엇을 얻으려는 소망보다 오히려 우리의 최고의 것을 바치려는 갸륵한 마음으로 올 한 해를 새롭게 출발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유대인이 아니라 바로 우리에게 드러내 주신 날입니다. 그래서 동방교회에서는 이 날을 성탄 축일로 지냅니다. 따라서 우리도 박사들처럼 용기있게 걸어가는 지혜를 배웁시다. 아무리 고달파도 희망을 가지고 참고 견뎌내는 믿음을 가집시다. 그러면 우리의 소망도 결국 채워질 것입니다. “야훼의 영광이 너를 비춘다."

------------------------------------------

▦ 광주대교구 강길웅 신부
  | 01.03
447 45.6%
[광주] 구유 - 십자가 - 감실

------------------------------------------------

주님 공현 대축일 즈음되면, 예전에 신학교에서 읽었던 「넷째왕의 전설」(에자르트 샤퍼, 분도출판사)이라는 책이 기억납니다. 내용은 이러합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별이 동방박사들에게만이 아니라 러시아의 한 임금(넷째왕)에게도 나타났는데, 신심 깊고, 다정다감하고, 인정 많은 넷째왕도 별의 인도를 받아 여행을 떠납니다. 아기 예수님께 드릴 꽤 값진 예물들을 말 등에 싣고 왕은 멀고도 고달픈 여행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여행 도중에 만났던 불행한 사람들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왕은 예물들을 하나하나 나눠주고 맙니다. 그러다 알거지가 돼 홀로 별을 쫓던 왕은 한 소년을 대신해서 노예선을 탑니다. 그리고 장장 30년 세월이 흐릅니다.

30년간 노예생활로 만신창이가 된 왕은 처음 노예선을 탔던 항구에 버려지게 됩니다. 그 왕은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다시금 별을 쫓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왕이 인도된 종착지는 아기 예수님이 탄생한 베들레헴이 아니라 골고타 언덕이었습니다. 기도 끝에 넷째왕은 십자가에 매달리신 분이 자신이 한평생 찾아다녔던 메시아임을 깨닫게 됩니다. 구세주 하느님을 자신의 눈으로 뵙게 된 넷째왕은 십자가 앞에 조용히 쓰러집니다. 그리고 빈손으로 왔다는 죄책감 때문에 모기만한 목소리로 이렇게 아룁니다.

“죄송합니다. 주님, 보시다시피 저는 아무것도 지닌 것이 없습니다. 주님께 드리려 했던 것들을 죄다 없앴습니다. 황금, 보석, 아마포, 그리고 어머니가 단지에 가득 채워주셨던 꿀까지도 모두 쓸데없이 낭비했습니다. 주님, 용서하소서. 그러나 주님, 저의 마음을 받아주시겠습니까?”

「넷째왕의 전설」을 읽고 묵상했던 것은 ‘아기 예수님의 구유 바로 그 옆에 십자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탄은 빛의 축제이며, 당연히 기쁨과 환희의 축제입니다. 그러나 그 빛, 기쁨, 환희는 영혼을 위한 것이지 단지 우리의 육적이고 감각적이며 외적인 기분을 흥겹게 하기 위한 것이 절대 아닌 것입니다. 1년에 단 한 번 휘황찬란하게 잘 꾸며진 구유 앞에 무릎 꿇는 것으로, 성탄절이 주는 외적 매력에 휩싸이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습니다.

이제 성탄의 기쁨을 우리 마음 깊이 간직하고, 또 다시 골고타 언덕이란 신앙의 정점을 향해, 예수님께서 지셨던 십자가라는 우리 인생의 최종 의미를 향해 다시금 먼 길을 떠날 순간입니다. 언제까지나, 한없이 구유 앞에서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이제 매일 미사 성제를 통하여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어 오시는 주님을 정성되이 모시며 우리네 삶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처럼 '주님 공현'은 우리에게 또 다른 떠남을 요구합니다.

아울러 이제 우리는 2012년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의 삶을 통해 채워 나가야 할 또 하나의 백지를 받아 들었습니다. 새해에는 동방에서 별을 보고 찾아온 박사들처럼 우리도 별을 볼 수 있는 눈을 떠야겠습니다. 신앙의 눈을 뜨고, 마음의 문을 열고 살아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초라한 데서 주님의 별을 볼 줄 아는 신앙의 눈을 지닐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셨듯이 우리 또한 우리의 신앙을 남 앞에 증거하라는 축일이기도 합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우리들의 소중한 신앙을 잘 가꾸고, 나아가서 이웃에게 전달할 수 있는 한 해가 되도록 서로 함께 버팀목과 디딤돌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넷째왕의 봉헌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바치는 사랑의 헌신보다 그분 마음에 드는 봉헌은 없기에 아마도 이것이 올 한해 우리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선물이 아닐런지 모르겠습니다.

------------------------------------------------------

▦ 광주대교구 고근석 솔로몬 신부
  | 01.03
447 45.6%
새해가 시작되면 많은 이들은 앞으로 생길 일에 대해 궁금해 합니다. 궁금함이 과한 어떤 이는 타로점이나 용하다는 점집을 찾기도 합니다. 자신과 자녀의 앞 날,사업 번창, 가족건강, 취업 가능성, 혼인 시기 등 걱정과 염려가 가득한 채 이들을 해결 해 줄 특별한(?) 답을 구하려 길을 찾고 싶어 합니다.

오늘 복음은 이런 마음이 투영되었는지 밤하늘의 별만을 보고 먼 길을 떠나와 구세주를 뵙게 된 동방박사들을 눈여겨보게 합니다.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의 지식과 정보 곧 아는 것만을 늘어놓을 뿐입니다. 더구나 헤로데는 구세주의 등장 소식에 기뻐하는 척 경배하고 싶어 하는 척 할 뿐 자신만의 계산을 하고 있습니다.

그 별을 보고 삶을 바쳐 따라간 영적 인간과 별을 보았지만 이해관계를 따지면서 머리로만 살아가려는 육적 인간이 대조적으로 그려집니다.

오늘 복음이 보여준 동방박사의 별 앞에 오늘의 나는 어떤 모습인지요?

그 별은 분명 걸음걸이로 옮기라는 나침반의 의미였습니다. 그 별은 내게 주어져 있는지 어디엔가 떠 있는지 확인차원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주님께로 향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해야 주님께서 기뻐하시는지 알고 있지만 아쉽게도 섣불리 주님께로 발걸음을 옮기기 어려워하는 우리에게 도전적인 질문으로 이미 하늘에 떠 있어 지시하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아는 만큼 보이지만 아는 만큼 실천하기는 어렵기에 그저 주님을 찾는 척 ‘거짓 발걸음을 보이는 나’는 아닌지요? 혹 그전에 주변에 빛 나는 꺼리들이 많아 내가 꼭 바라봐야 할 별 빛이 희미해져 있지는 않은지요?

오늘 복음의 마지막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는 동방박사들의 행위는 오늘의 의미를 더욱 김이 새겨줍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아닌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길 곧 주님 뜻대로, 주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대로, 주님께서 보내시는 그대로 기꺼이 믿고 가는데 있습니다.

올 한해도 우리 마음 안에, 내 삶 안에 주님의 빛을 따라가도록 꾸준히 나아가길 요청합니다. 그 가운데 주님과의 관계는 어제와는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

▦ 광주대교구 정영빈 레오 신부 : 2019년 1월 6일
  | 01.04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   [수도회] 부활의 아침, 설레는 마음  [12]
!   [군종] 하나의 밀알이 죽어 많은 열매를 맺다  [2]
!   [기타] 부활신앙으로 무장하자.  [3]
!   [전주] “아! 잔인한 4월, 잔인한 부활”  [2]
!   [광주]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24,48)  [2]
!   [마산] '부활 - 돌을 치우자' (요한 20,1 이하 참조)  [5]
!   [수원] 구원받은 자의 삶으로  [7]
!   [원주] 우리는 주님 부활의 증인  [2]
!   [청주] 부활 메세지  [3]
!   [대전] 부활은 인간에서 하느님 발견하기  [5]
!   [서울] 부활을 선포하는 사람들  [15]
!   [의정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마태 28,7)  [7]
!   [춘천] 부활을 믿고 복음 전할 의무  [3]
!   [인천] 신음하는 모든 피조물에게 부활의 기쁨이  [12]
!   [대구]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5]
!   [안동] 부활의 증인이 되십시오!  [11]
!   [부산] 부활신앙은 예수님으로 부터 빛을 받아 살겠다는 약속.  [14]
495   (백) 예수 부활 대축일 독서와 복음  [7] 2184
494   [전주/제주/청주] 지금 말씀대로 이루어지소서!  [4] 2322
493   [서울/수원] 하느님의 선택 : 평범성, 일상성  [7] 2332
1 [2][3][4][5][6][7][8][9][10]..[26]  다음
 

 

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05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