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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주님의 형제요 하느님의 자녀
조회수 | 154
작성일 | 19.01.08
[군종] 주님의 형제요 하느님의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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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하느님이신 예수께 세례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실 하등의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세례자 요한도 예수께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어떻게 선생님께서 제게 오십니까?"(마태오 3,14)

누가 하느님이신 예수를 죽일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영원히 죽지 않는 분이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께서는 자신의 죽음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이 일을 다 겪어 낼 때까지는 내 마음이 얼마나 괴로울지 모른다”(루가 12,50).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었고 죽을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께서는 물의 세례를 받으시고, 죽음의 세례를 받으셔야 했을까요?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전에 하신 말씀에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 "지금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하여라.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 세례자 요한에게 받은 예수님의 세례는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한 시작이었습니다. 이 뜻은 예수님께서 받으신 죽음의 세례 - 십자가 죽음에서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주님께서 받으신 요한의 세례, 주님께서 받으신 죽음의 세례는 결국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고자 하는 하느님의 뜻을 드러내는 하나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세례는 주님께서 받으신 세례에 동참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받음으로써 주님의 세례에 동참하게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부활할 희망, 구원을 받을 희망을 가지고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하여 우리는 주님의 형제가 되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립니다. 또한 세례를 통하여 우리는 주님의 형제로서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결심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들려오는 소리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주님의 세례에 동참하는 우리 또한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바로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내려오신 성령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주님의 일생동안 언제나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 또한 성령의 힘으로 살아간다면, 아버지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자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세례성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서로를 형제자매라고 부릅니다. 우리 각자가 주님의 형제요, 하느님의 자녀로서, 서로 형제자매라고 부른다면, 서로에게 책임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고 하느님께 어떤 핑계를 대었습니까?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사실, 형제는 서로를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단지 친한 사람이라서 형제자매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형제자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받으신 물의 세례, 그리고 죽음의 세례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해 이루어진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예수께서 이룩하신 구원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세례를 통하여 우리는 주님의 형제가 되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세례를 통하여 우리는 주님의 형제로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결심을 다지게 됩니다. 세례를 통하여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가 되었고, 서로에게 책임을 지고 지켜 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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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이종민 마태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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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눈높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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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지 17개월된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달리 혼자 떨어져 행동하며, 생명이 없는 물건을 좋아하며 마치 최면에 걸린 듯 자신의 몸이나 물건을 돌리거나, 흔드는 것과 같은 반복적인 행동에 몰두하고 말로 하는 의사소통은 물론 언어 이전의 몸짓 언어조차 없습니다. 가까이 다가가거나 안아주는 데에 대해서 무감각하며, 거의 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반응이 없어 의사를 찾아갔더니... ‘자폐증’이라는 진단을 내립니다. 치유할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로지 자신만의 세계에 머물기를 원하고 다른 것에는 관심 없는 자폐아를 정상인과 똑같이 키워내는 과정을 담고 있는 ‘아들 일어나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온 세상이 무너지더라도 상관없고 자신의 관심사만을 찾고 거기에 몰두하는 아들을 세상과, 사람들과 만나게 하기 위하여 부모는 아들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몇 시간씩 가만히 앉아 있는 아들 곁에서 똑같이 가만히 앉아 있다거나, 자신의 세계에 몰입한 채, 의미 없는 몸짓만을 계속 되풀이하는 아들 곁에서 부모는 아이를 따라하며 눈높이를 맞춥니다. 아들과 일치하려는 노력이 아들의 생각과 관심을 조금씩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고 부모는 아들이 자신만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길을 열어줍니다. 물론 몇 년이라는 긴 시간을 한결같이 아이의 생각과 관심에 눈높이를 맞춘 결과였습니다.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것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이유는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해서도 아니고, 인류를 대신해서 죄를 씻기 위함도 아닙니다. 이렇게 하여라 하며 모범을 보이기 위함도 아닙니다. 자신의 세계 속에 머물고 있는 자폐 아들과 눈높이를 맞추던 부모처럼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찾아 그렇게 낮아지십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허덕이고 있는 우리들과 눈높이를 맞추시는 한없는 낮아짐, 겸손의 모습입니다. 사람들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고자 하는 하느님 사랑의 드러남입니다.

하느님의 겸손은 예수님의 삶 전체를 통해 면면히 드러납니다. 구유에서 탄생하시어 죄인들과 세리들과 창녀들과 어울리며 그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모습, 급기야 겟세마니 동산에서의 고뇌를 거쳐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는 모습이 그러합니다. 죄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죄인인 인간과의 완전한 일치를 향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본래의 창조된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나야함을 가르쳐 줍니다.

세례 때 하느님을 믿으며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기로 다짐했던 그 약속을 매일매일 살아내는 것이 하느님의 겸손에 대한 우리의 응답입니다.

어떤 사람이 야훼의 산에 오르랴? 어떤 사람이 그 성소에 들어 서랴? 행실과 마음이 깨끗한 사람, 허망한 데 뜻을 두지 않고 거짓 맹세 아니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야훼께 복을 받고 하느님께 구원받을 사람이다. (시편 2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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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김준래(마르띠노) 신부
  |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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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교회는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르단 강가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모습을 우리에게 알려주며, 우리가 받은 세례의 의미를 다시금 새롭게 하여 살아가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주님 세례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가 세례성사를 통해 받은 은혜와 그 당시의 약속 등을 되새겨 보며, 지금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지, 다 같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오늘 복음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이 말씀은 단지 예수님께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사랑의 찬 말씀이십니다. 특히 세례 때 받은 충만한 은혜를 기억하며 하느님의 영광과 이웃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모두 하느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기도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았고 또 지금도 받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받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받은 세례를 기억하는 오늘, 우리는 하느님께 받은 조건 없는 사랑을 아무런 조건 없이 이웃에게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되돌려 받고 싶은 마음,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버려야 가능한 일입니다.

사실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 말로는 하느님의 영광을 얘기하며 행동하지만 결국 나의 이익을 생각하는 경우가 무척 많습니다. 자신이 행한 좋은 모습은 주위 사람들에게 들어나도록 의도적으로 행동합니다. 봉사할 때 의도적으로 티를 내고, 기도할 때 마음은 다른 곳에 있으면서 얼굴 표정은 거룩하게 보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마치 연극의 주인공과 같습니다. 겉과 속이 너무도 다릅니다. 오직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삶입니까? 무엇을 위한 삶입니까?

진정으로 나를 인정해야 할 분은 오직 한 분 하느님뿐이십니다. 아무도 나의 헌신과 봉사를 모를 지라도, 더욱이 그것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하느님께 인정받을 수 있으면 기뻐해야 하는 우리들이어야 합니다.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분으로 말미암고 그분을 위하여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을 당신의 넓으신 자비로 항상 도와주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아무런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세례를 받은 우리들이 당신을 닮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례를 받을 때 그렇게 살겠다고 마음깊이 다짐했습니다. 그러한 첫 마음을 끝까지 기억하고 변치 않도록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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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박재우(사도요한) 신부
  |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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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에 이어 주님 세례 축일은 바로 제2의 공현으로 당신 자신을 사람들에게 공적으로 드러낸 사건입니다. 성탄이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고, 주님 공현 대축일은 예수님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짐을 기념한다면, 오늘 주님 세례 축일은 예수님의 공적 생활의 시작 선언입니다. 그래서 교회 전례력은 오늘로 성탄시기가 끝나고 연중시기가 시작 됩니다.

루카 복음 2장을 보면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후 나자렛에서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을 뿐, 어떤 어린 시절을 보내고, 청년 시기는 어떻게 보냈는지, 그리고 세례를 받으시기 전까지 어떻게 사셨는지는 아무런 기록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예수님은 어머니와 함께 나자렛 시골 마을에서 목수 일을 하며 평범하게 사셨을 거란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이 세례를 준다는 소식을 듣고 갈릴래아 호수를 찾아가십니다. 그리고 거기서 세례를 받으시게 되는데 하늘에서 하느님의 소리를 듣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예수님은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고, 세상 사람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가르치고, 기적을 베풀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세례’ 라는 사건은 시골 마을에서 잠잠히 계셨던 예수님에게 하느님의 일을 시작하도록 변화시켜 준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의 세례 사건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입니다. 세례 받은 사람은 예수님처럼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례 받은 사람은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례 받은 사람은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처럼 세례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세례 받은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세례 받은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주님처럼 살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주님처럼 변화되어,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에게 다가가고,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용서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세례 축일을 기념하고 있는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도 예수님처럼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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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석현일 바오로 신부
  |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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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주님 세례 축일은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우리 또한 세례 때 받은 은총을 되새기며 주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반복되는 죄를 짓는 우리의 나약함 속에서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주님의 사랑을 바라봅니다.

세례로 태어난 우리 자신은 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나를 만드셨기에 우리는 정말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나는 내가 소중하고 사랑스러운데, 괜히 남들과 비교하다보니 내가 못나고 싫어지기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남들보다 운동을 못한다고 해서 내가 남들보다 계급이 낮다고 해서 내가 남들보다 가난하게 산다고 해서 내가 남들보다 잘못을 많이 저질러서 하느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있는 그대로를 소중히 생각하시고 우리를 보호하고 이끌어 주시는 사랑자체 이신 분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초라하고 부족해도 그러한 우리를 주님께서 사랑으로 보살펴 주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걸 확신하면 우리는 그 어떠한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주님만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세례를 받았을 때를 다시 한 번 기억해 보았으면 합니다. 세례를 통해서 하느님과 연결되고 새 생명을 받았는데, 나는 그 생명을 얼마나 잘 지켜내고 있는지. 그럼으로써 죄악에 물들지 않고, 하느님의 뜻에 맞게 생활하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오늘도 이 시간을 주님께서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는 세례의 은총을 간직하기 위해 예수님과의 끊임없는 관계 안에서 그 분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고, 그 힘 안에서 우리의 삶 역시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살려고 할 때 오늘 복음의 이 말씀이 진정으로 우리에게도 하시는 말씀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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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종교구 홍헌표 베드로 신부 2016년 1월 10일
  |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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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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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 ‘골목식당’이라는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는 TV에서 그것을 본 적이 없지만, 그 프로그램에 대한 여러 가지 글들 덕분에 대충 ‘아~ 이런 거구나’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의 내용 중에 마음에 와닿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지금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물어볼 데도 없어서 마치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서 목표점을 찍고 가는 것처럼 외롭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한 유명요리연구가에 의하면 자신은 프로그램을 통해 다른 것을 떠나서 방향만이라도 알려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장사할 때 요리법이나 이런 것보다는 ‘그 방향이 맞아’라는 확신만으로도 굉장한 힘이 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이 내용을 보면서 저는 과거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 고등학교 3학년 때가 떠올랐습니다. 사제가 되려는 마음을 먹고 열심히 예비 신학생 모임에도 나가고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 길이 맞는지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때 읽었던 성경구절이 오늘복음의 말씀이었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에게 하신말씀이지만, 저는 이 말씀이 나에게 해주시는 말씀 같았습니다. 그래서 자신감을 가지고 제가 선택한 이 길에 대해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연중 시기의 첫째 주일에 주님 세례 축일을 지냅니다. 그리고 이 축일은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신앙에서 두 가지 근본적인 질문에 올바로 대답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누구인가? 복음은 이에 대해 아주 명확하게 답을 주고 있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스러운 아들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하느님의 사랑스러운 자녀들입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이자 동시에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우선적으로 알아야 할 우리의 정체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미움을 받는 자녀도 아니고, 벌을 받는 자녀도 아닙니다. 하느님의 시기와 질투를 받는 자녀도 아니고, 당신의 욕심을 강요받는 자녀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위로와 확신을 줍니다.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또 다른 고통과 시련을 주기도 하고, 그래서 이 길이 맞는지 의심이 생길 때도 있지만, 그러한 우리를 하느님께서는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기에 앞서 세례를 받습니다. 이때 하느님께서는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때에 또다시 이 말씀을 하십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이 시점은 수난이 시작될 무렵이었습니다. 그리고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하느님께서는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당신의 구원사업을 완성하신 것처럼, 하느님의 이 말씀을 들은 우리에게서도 하느님의 구원사업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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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안영근 다니엘 신부 : 2019년 1월 13일
  |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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