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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청주] 세례자 요한과 헤로데
조회수 | 142
작성일 | 22.08.29
세례자 요한과 헤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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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 예언자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아합 왕에게 갔을 때,
아합 왕은 엘리야 예언자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합니다.
“이 내 원수! 또 나를 찾아왔소?(1열왕 21,20)”

아합 왕은 미카야 예언자에 대해서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자는 내 일을 두고 좋게 예언하지 않고
나쁘게만 예언합니다(1열왕 22,18).”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를 원수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그 예언자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원수라고 생각하는 자들이고,
사실상 하느님을 원수라고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예언자들이 “좋게 예언하지 않고
나쁘게만 예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즉 듣기 좋은 말은 안 하고, 듣기 싫은 말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을 대하는 헤로데의 태도가 바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마르코 6,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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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데가 세례자 요한을 붙잡아서 감옥에 가둔 것은
요한이 하는 말이 듣기 싫어서 요한의 입을 막으려고 한 일입니다.
헤로데는 자기가 헤로디아와 결혼한 일에 대해서
죄의식 같은 것은 전혀 느끼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헤로데는 세례자 요한을 ‘원수’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면 안 된다는 율법을 만든 하느님도
원수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 자들에 대해서 바오로 사도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이미 여러분에게 자주 말하였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데,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끝은 멸망입니다. 그들은 자기네 배를 하느님으로, 자기네 수치를
영광으로 삼으며 이 세상 것만 생각합니다(필리 3,18-19).”

자기네 배를 하느님으로 삼는다는 말은, 자기의 욕망과 욕심을
채우는 것만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악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자기가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도 않습니다.

회개하라는 말을 듣기 싫어하는 자들을
두 종류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죄를 지은 적 없다. 내가 한 일은 죄가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만 양심을 불편하게 만드는 말은 듣기 싫은 사람들.
(양심이 불편하다면, 회개를 하면 될 텐데, 왜 회개하라는 말을 거부할까?
아마도 자기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괴로움이,
양심이 불편한 것보다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헤로데는 어느 쪽에 속할까?
그는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은 느끼지 않고,
자기가 죄를 지은 적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세례자 요한을 죽인 것으로 멈추지 않고 예수님도 죽이려고
한 것이나(루카 13,31) 나중에 예수님을 직접 만났을 때
예수님을 업신여기고 조롱한 것을(루카 23,11) 생각하면,
그는 동생의 아내와 결혼한 일에 대해서도, 또 그것을 꾸짖는 세례자 요한을
죽인 일에 대해서도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은 느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헤로데는 자기가 왕으로서 권한을 행사했을 뿐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르코복음 6장 20절,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라는 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 말은, “헤로데는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있는
백성의 여론이 두려워서, 요한을 죽이는 것을 잠시 보류했다.
그리고 요한의 말이 듣기 싫었지만 경청하는 척 했다.” 정도로 해석됩니다.
또 26절의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이라는 말은, 세례자 요한을
죽이는 것을 괴로워했다는 뜻이 아니라, 딸을 상대로 헛된 맹세를 한 것을
손님들이 비웃을까봐 괴로워했다는 뜻입니다.

오늘날에도 헤로데 같은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세례자 요한 같은 예언자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세례자 요한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세상에 선포하고, 회개하라고 촉구하면서,
스스로 회개의 모범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에도 헤로데 같은 자들은
세례자 요한 같은 예언자들을 싫어하고 미워하고 박해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복을 받아 누리는 방법’에 관해서만 말하는 사람은
인기를 얻는데, 회개를 말하는 사람은 인기도 없고, 기피 대상이 됩니다.
바로 그것이 ‘거짓 예언자’가 늘어나는 이유입니다.
만일에 미움과 박해를 받는 것이 무서워서 회개하라는 말을 못한다면,
그것도 ‘거짓 예언자’의 모습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헤로데를 회개시키지 못하고 허망하게 죽은 것에 대해서
회의를 품을 수도 있고, 의구심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예언자가 왜 그렇게 무기력한가? 또 하느님의 말씀은
죄인 하나를 회개시키지 못할 정도로 힘이 없는 말씀인가?”
‘헤로데’ 라는 사람 하나만 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이 헤로데를 공개적으로 꾸짖었기 때문에,
헤로데와 같은 죄를 지은 다른 사람들은 회개했을지도 모릅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랬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사야서를 보면,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야 예언서 55,10-11).”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들 가운데에서,
또 하느님의 예언자들이 하는 일들 가운데에서 ‘헛일’은 결코 없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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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모세 신부
2022년 8월 29일
521 76.4%
현명한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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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하고 잘난 사람이 많으면 힘들어 집니다. 왜냐하면 자기 잘난 맛에 살기 때문입니다. 주장을 굽힐 줄 모르고 계산을 잘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우선적으로 챙깁니다. 그리고 상대를 의식하다가 얼굴이 굳어집니다. 그러나 바보와 함께하면 살기가 수월합니다. 그들은 계산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손해를 봐도 손해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챙길 줄도 모르고 웃으며 살아갑니다. 어쩌면 그들이 진짜 똑똑한 사람입니다.

오늘 기억하는 성 요한 세례자는 바보였습니다. 인간적인 계산을 하였더라면 헤로데 왕에게 잘 보여 자기의 권세를 누릴 수도 있었는데 해야 할 말을 서슴지 않고 했습니다. 옳고 그름을 명확히 했습니다. 요한은 헤로데 임금이 임금으로서 해서는 안 될 부정한 결혼을 하였다는 잘못을 지적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목이 베어져 죽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볼 때는 정말 바보였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목숨보다도 하느님의 뜻 안에 머물러있는 것이 행복이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눈에 바보가 될지언정 하느님을 놓치지 않길 희망했습니다. 그리고 빛이 되었습니다.

헤로데 왕은 모든 권력을 가지고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힘을 지녔지만 지혜도 없었고 헛 똑똑이입니다. 경솔한 말 한마디 때문에, 그리고 헛된 맹세 때문에 요한의 목을 베도록 명령하였습니다. 몹시 괴로웠지만 결국은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고 위신과 체면을 선택하는 계산을 하고 말았습니다. 해서는 안 될 일을 함으로써 하느님 앞에서는 그야말로 멍청한 바보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함부로 맹세를 할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큰 고통을 가져올 것인지를 안다면 쉽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성공을 기대하지 말고 어떤 처지에서든지 하느님을 선택하는 현명한 바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창세기26장에 보면 우물을 파는 이사악의 얘기가 나옵니다. 중동지방에서 우물은 한 부족의 운명이 달린 것이기에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물을 판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물길을 잡는 것도 그렇고 또 모래땅에서 우물을 파기란 어려움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이사악은 일곱 개나 팠습니다. 열심히 파 놓으면 주위 사람들이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러면 조용히 자리를 옮겨 또 파고 그러다 보니 일곱 개나 파게 되었습니다.

똑똑하고 잘 난 사람은 우물을 파지 않고 파 놓은 우물을 차지하려 머리를 썼습니다. 그러나 이사악은 그런 풍조에 물들지 않고 바보가 되어 우물파기에 열중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나의 종 아브라함을 보아서 내가 너에게 복을 내리고 네 후손의 수를 불어나게 하겠다”(창세26,24).하시며 이사악과 함께 하셨습니다.이사악은 그곳에 천막을 치고 그의 종들은 그곳에서도 우물을 팠습니다. 결국 바보 이사악이 승리하였습니다. 우물을 빼앗았던 사람들은 똑똑한 것 같았지만 불행하게 살았습니다. 바보처럼 우물을 빼앗기고 또 빼앗겼던 이사악은 이미 주 하느님을 차지했습니다.

복음에 보면 죽은 이는 요한 세례자이고 살아있는 자는 헤로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죽은 자는 헤로데요, 살아있는 이는 요한 세례자입니다. 성 요한 세례자나 이사악이 바보처럼 보였지만 현명한 바보, 진짜 똑똑이입니다. 그러나 똑똑하고 잘 난 것처럼 보인 사람들은 헛 똑똑이였습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하느님을 선택하는 현명한 바보, 지혜로운 사람이 되길 기도합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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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반영억 신부
2020년 8월 29일
  |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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