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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제 혀가 거짓을 꾸미지 않고, 진실 되게 하소서.
조회수 | 63
작성일 | 22.08.29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이리 가져다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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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세례자 요한의 수난 기념일입니다.
그는 참으로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고난을 받았습니다.
사실 바오로 사도가 말한 것처럼, 고난은 그리스도인의 특권인가 봅니다.

그는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찌 보면, 한 푼 춤 값으로 팔려버린 그의 목숨은 참으로 억울한 죽음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비록 폭군이 그의 머리는 베었어도 그의 소리는 벨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혀는 잠잠하게 만들었지만 그 소리는 가라앉힐 수는 없었습니다.
예언자의 소리는 가로막는다고 가로막히는 소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의인과 악인의 극한 대조를 보여줍니다.
한편에는 음모를 꾸미며 속임수를 쓰며 악의에 찬 헤로디아가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헤로데가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는 진실하고 강직하며, 어떤 거짓에도 굴하지 않는 세례자 요한이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불경스러운 세 가지 죄악에 대해서 듣습니다.
파렴치한 생일잔치, 소녀의 음탕한 춤, 임금의 무모한 맹세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 맹세는 결국 무고한 의인의 죽음을 불러들입니다.

헤로데와 헤로디아는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생각했지만,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과 하느님의 영광을 생각했습니다.
오로지 진실을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결국 올가미에 걸려 넘어진 이는 의인이 아니라 폭군이었습니다.
거짓을 꾸미는 악인의 혀는 결국 자신이 쳐놓은 덫에 걸려 넘어지고,
진실한 의인의 혀는 영광의 관이 씌워졌습니다.

1945년, 히틀러의 암살계획에 연루되어 나치에 의해 사형 당한
디트리히 본회퍼는 '고난에 관한 설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의인이 고난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하느님 의식을 세상 속으로 가져온 까닭이다”

그렇습니다.
그는 하느님 의식을 세상 속으로 가져 온 바람에 고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월이 흐를지라도 폭군의 죄악을 고발하는 의인의 외치는 소리는 계속될 것입니다.
비록 혀가 잘려도, 온몸이 혀가 되어 외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숨 막히게 외치고 있는 예언자들의 소리를 듣습니다.
오늘 세례자 요한이 외치는 소리는 교종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무관심의 세계화’가 우리에게 남을 위해 우는 법을 빼앗아 가버린
이 시대에 남을 위해 우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진리와 정의를 위해 우는 법을 말입니다.

하오니, 주님!
제 혀가 진정으로 사랑하여 울게 하소서.
눈물 흘리는 이들의 소리를 듣고 울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샘 기도>

주님!
제 혀가 거짓을 꾸미지 않고, 진실 되게 하소서.
타인을 뭉개지 않고, 자신을 뭉개어 내어주게 하소서.
제 혀가 어둠을 가르는 불혀가 되고, 진리를 밝히는 말씀의 쌍날칼이 되게 하소서!
헛된 맹세로 덫에 걸려들지 않고, 침묵에 묶어 두어도 의로움을 외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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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이영근 신부 2022년 8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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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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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예언자의 자신의 운명에 대한 외침은, 구약의 마지막 대 예언자 세례자 요한에게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주셨다. 그분께서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시고 당신의 손 그늘에 나를 숨겨 주셨다. 나를 날카로운 화살처럼 만드시어 당신의 화살 통 속에 감추셨다.”(이사야서 49장 1~2절)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에게 날카로운 칼같은 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존재 자체로 날카로운 화살같은 사람이었습니다.

허세로 가득한 헤로데의 불륜과 악행 앞에 세상 모든 사람들은 잠자코 있었습니다. 그러나 존재 자체로 날카로운 화살 같던 사람, 날카로운 칼같은 입을 지녔던 사람 세례자 요한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헤로데에게 아무런 가감없이 마음에 담고 있던 말을 건넵니다. 한 두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에 걸쳐서!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마르코 복음 6장 18절)

그 결과 다가온 것은 깊은 지하 감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머리는 참수되어, 헤로데의 생일날 마치 하나의 메뉴처럼 쟁반 위에 올려져 잔치석상에 올라왔습니다.

통상 아무리 악한 왕이라 할지라도 생일 때는 옥에 갇힌 사람들을 풀어주는 게 통상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헤로데의 마케론 요새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향연이 계속되고 축하 분위기가 고조되던 어느 순간, 위대한 설교가 세례자 요한의 목이 올라온 것입니다.

참으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요? 줄줄이 올라오는 잔치 음식 가운데 세례자 요한의 머리도 떡 하니 따라올라온 것입니다. 헤로데의 허세와 헤로디아의 잔악함 앞에 할말을 잃게 됩니다.

사악한 한 여인의 분노와 시기질투로 인해 목이 쟁반 위애 얹혀지는 조롱으로 가득한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백번 생각해도 이해하기 힘듭니다.

악인들은 저리도 떵떵거리고 히히덕거리며, 호의호식하면서 장수를 누리는데, 무죄한 의인은 저리도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다니, 의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깊은 회의감을 느낍니다. 그런 상황은 2천년 세월이 흐른 지금도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의 죽음도 일맥상통합니다. 배반자 유다와 율법학자들·바리사이들의 계략에 의해 그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세상 둘도없는 참혹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발도 땅에 붙이지 못한채, 공중에 높이 들어 올려진채, 그렇게 눈을 감으십니다.

세례자 요한은 존재 자체로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예수님의 죽음을 예고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 예수님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 눈에 이해하지 못할 죽음입니다. 허무한 죽음, 무의미한 죽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결코 허무하지도, 무의미하지도 않았습니다. 두분의 죽음은 더 큰 삶, 더 큰 생명을 이 땅 위에 도래하는데 크게 일조한 위대한 죽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지혜서 3장 4, 6절)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죽어가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겠습니다. 허세와 우유부단으로 가득한 헤로데의 삶은 아닌가요? 사악함과 교활함으로 가득한 동물적인 삶은 아닌가요? 단 하루를 살아도 참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하루하루를 정의와 진리 안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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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2020년 8월 29일
  |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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