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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광주] 말씀의 덕담
조회수 | 174
작성일 | 23.01.18
[전주] 말씀의 덕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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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설날 입니다.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정을 나누고, 웃 어른께 세배드리고, 웃 어른은 자녀들을 격려해 주시는 아름다운 덕담 입니다. 덧붙여 “소원 성취 하십시오” “영육의 건강 누리십시요”라는 따뜻한 마음들에 주님께서도 복음을 통하여 덕담을 주십니다. “행복하여라 깨어있는 종들.” 믿는 자들이 얼마나 듣고싶은 말씀입니까?

그런데 이 말씀을 깊이 새기기에는 현실의 인식이 더 필요하리라 여깁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솔직한 마음으로 찾아야 하겠습니다. 이를 시편을 통하여 살펴보면 “당신께서 휩쓸어가시면 인생은 한바탕 꿈이요, 아침에 돋아나는 풀잎 이옵니다. 아침에 싱싱하게 피었다가는 저녁이면 시들어 마르는 풀잎 이옵니다(시편 90,5 이하). 보잘 것 없는 것이라 적어 놓습니다. 사실 사람의 능력만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 고집할 때 한계를 느끼고, 그 지혜로 잘 살 수 있겠다 싶을 때 한낱 거품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인생은 기껏해야 칠십 년, 근력이 좋아야 팔십 년, 그나마 거의가 고생과 슬픔에 젖은 것, 날아가듯 덧없이 사라지고 말 사람들을(시편 90,10) 하느님은 알아주시고, 염려해 주십니다(시편 144,3). 나약하고 모자라는 저희를 일으켜 주십니다. 그 방법은 깨어있음 입니다. 이 말은 엄밀히 말하면 밤잠을 포기하는 뜻입니다. 일을 더 하기 위해(지혜 6,15), 또는 적으로부터의 기습을 막기위해(시편 127) 사용됩니다. 나아가 은유로서 사용되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경계하는 것이라든지, 무기력이나 태만을 물리치려는 노력을 뜻하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 모두 알 듯이 믿는 자들의 목적은 주님을 맞이하고 모시는 과정에서 깨어있음이 필요합니다. 물론 종말론적인 의미가 강하나, “주인이 언제올지 모르기 때문에 깨어있으시요.”(마태 24,42),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일과 쓸데 없는 세상 걱정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루카 21,34 이하)라는 말씀과 같이 현실적인 경계도 드러냅니다. 세상의 쾌락과 재물에 대한 초연함을 요구하시기도 합니다.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약속하신 주님을 맞이하고, 모시는 삶이 되도록 깨어있도록 합시다. 또한 “주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살아 가며 이런 일 저런 일을 해보겠다고 말하라.”(야고 4,15)는 가르침대로 온전한 의탁의 삶을 가지고 깨어있음으로 올 한해를 축복으로 시작하고, 축복으로 마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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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박종상 가브리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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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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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 12,3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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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을, “주님께서 내리시는 벌을 안 받으려면 깨어 있어라.” 라고 위협하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사람도 있을 것이고, “주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깨어 있어라.” 라는 희망과 격려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 말이 그 말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 신앙생활을 하는 태도는 크게 다릅니다.

주님이 무서워서 깨어 있는 경우에는 주님을 기다리는 일이 ‘고역’이 될 것입니다. 그 경우에는 주님이 도착한 뒤에도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랑도 없고, 기쁨도 없고, 희망도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억지로’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주님을 사랑해서 깨어 있는 경우에는 주님을 기다리는 일 자체가 ‘기쁜 일’이 되고, 주님이 도착하면 그 기쁨은 더욱 커집니다. 신앙생활은 그렇게 ‘사랑’과 ‘기쁨’으로 해야 합니다. 이것은 누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니고, 각자 스스로 노력해야 할 일입니다.

이 말씀은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인생살이 전체에 적용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신앙인의 인생은 “하느님에게서 와서 하느님에게로 돌아가는 나그네길”입니다. 하느님에게로 돌아가는 이 여행을, 마치 붙잡혀서 끌려가는 죄수처럼 억지로 걸어가는 여행으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사랑하는 주님을 만나러 가는 기쁨과 희망에 가득 찬 여행으로 만들 것인지...

죽지 못해서 억지로 사는 인생인지, 아니면 기쁨과 희망 속에서 사는 인생인지... 이것은 세속의 기준으로 생각할 일은 아닙니다. 물질적으로 부유해도, 또 세속적으로 출세하고 성공해도, 믿음이 없는 사람의 인생은 ‘허무’를 향해서 가는 방랑길이 될 뿐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는 신앙인의 인생은 인생살이가 가난하고 고달프고 힘들어도 ‘사랑’과 ‘희망’이 있기 때문에 끝까지 잘 걸어갈 수 있습니다. 신앙인의 인생은 결코 허무하게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설날’을 인생이라는 나그네 여행의 중간 점검 시간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또 신앙인으로서 자신의 신앙생활을 점검해 보는 시간으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지나간 한 해를 돌이켜보면, 계획대로 잘 된 일들도, 잘한 일들도, 만족하고 보람을 느끼는 일들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계획대로 안 된 일들도, 잘못한 일들도 있을 것이고, 아쉬운 일들도 있을 것입니다.

잘한 일들은 새해에도 더욱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 되고, 잘못한 일들은 새해에는 고치고 바로잡으려고 노력하면 됩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인간의 힘으로 붙잡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간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면서 걸어가야 합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 9,62).”

설날을 맞이해서, 서로 ‘복’을 빌어 주는 인사를 많이 하는데, 신앙인에게 최고의 ‘복’은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루카 1,28).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은, 모든 것을 다 가지는 것과 같습니다. 온 세상을 다 가지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복이고, 은총입니다. 주님은, 세상 만물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작가는 이렇게 찬미합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시편 23,1).”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시편 23,4).” 그런데 우리가 따로 특별히 빌지 않아도 주님께서는 언제나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주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늘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우리가 주님에게서 떨어져 있을 때가 많습니다.

믿음이 흔들리기도 하고, 한눈을 팔기도 하고, 세속의 소음들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유혹에 넘어가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기원하는 것은, 사실은 주님과 늘 함께 있도록 노력하라는 권고이고 격려입니다.

신앙인에게 두 번째로 좋은 복은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로마 8,24).”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로마 8,25).” 이 ‘희망’은 ‘믿음’의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모든 좋은 것들을 틀림없이 받게 된다고 믿기 때문에 그것들을 받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또 희망하기 때문에 믿고 있습니다. 주님의 약속은 틀림없이 이루어질 약속이기 때문에, 주겠다고 약속하신 그 좋은 것들을 이미 받은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믿음과 희망이 있다면 이미 구원을 받은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희망은 꼭 내세의 구원에 대한 희망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나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께서 작년보다 나은 올해를, 그리고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주신다고 믿고 있고, 또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과 희망은 우리가 계속 살아갈 수 있는 힘입니다.

만일에 믿음도 희망도 없다면 인생을 억지로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생겨도 믿음과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인은 ‘믿으면서 희망하는 사람’입니다. 신앙인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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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
2020년 1월 25일
  |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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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깨어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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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 복음 12장 35절-4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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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깨어 있어라.”라는 말씀은, “정신을 차리고 있어라.”, “한눈팔지 마라.”,“딴 생각에 빠져 있지 마라.”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주인이 ‘깨어 있는 종들’을 식탁에 앉히고 그들 곁에서 시중을
들 것이라는 말씀은, 하느님 나라에서 ‘큰 상’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은, 뜻으로는 “도둑이 몇 시에 오는지는 몰라도 오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집주인이 알면”입니다.

종말과 재림이 ‘언제’ 이루어질지는 모르지만,
틀림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예수님 말씀의 뜻입니다.
그러니 그날의 심판을 잘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그 준비는 곧 회개입니다.)

종말의 심판을 잘 준비하는 일은 종말이 오기 전에 해야 할 일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종말이 닥치면, 곧바로 심판이 시작될 것이고,
그러면 준비할 시간이(회개할 시간이) 아예 없습니다.

2) 예수님 말씀은, 종말과 재림이 아닌 상황에서도,
즉 평소의 신앙생활에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늘 깨어 있는 사람만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복(은총)을 잘 받을 수 있습니다.
한눈팔지 않고, 딴 생각에 빠져 있지 않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복(은총)을 받을 준비를 잘하고 있는 사람이 잘 받게 됩니다.
그런데 무엇인가를 청할 때에는 간절하게 청하면서도,
그것을 하느님께서 주시려고 할 때에는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주시는 것을 못 받게 됩니다.
그 경우에 자기가 받지 않아서 못 받았으면서도
하느님께서 기도를 안 들어 주신다고 불평합니다.

<미사참례를 예로 들어 볼 수 있습니다.
만일에 미사 시간 내내 졸다가, 또는 딴 생각을 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성찬의 전례 시간은 이미 다 지나가 버렸고, 영성체를 할 기회를 놓쳤다면, 그 상황에서 영성체를 하게 해 달라고 조를 수 있는가?
자기가 잘못해서 영성체를 못 한 것에 대해서 누구 탓을 할 수 있는가?
하느님의 복(은총)도 마찬가지입니다.
받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또는 받을 준비를 안 한 사람에게도
자동적으로 내리는 것은 아닙니다.
복(은총)을 받고 싶으면 깨어 있어야 합니다.>

3) 묵시록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는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 그러므로 열성을 다하고 회개하여라.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승리하는 사람은, 내가 승리한 뒤에 내 아버지의 어좌에 그분과 함께 앉은 것처럼, 내 어좌에 나와 함께 앉게 해 주겠다(묵시록 3장 19절-21절).”

예수님께서 ‘언제’ 문을 두드리실지, 그것을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니까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만일에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서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지 못하면,
예수님께서는 그냥 가버리실 것입니다.
(문을 두드리는 일은 예수님께서 하시고, 문을 열어드리는 일은 우리가 합니다.
만일에 딴 생각에 빠져 있다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못 듣고,
그래서 제때에 문을 열어드리지 못하면,
그것은 예수님을 모시기를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고
모두 구원하려고 애를 쓰시는데, 무한정 기다리신다는 뜻은 아니고,
언제인지는 몰라도 ‘하느님께서 정하신 어떤 시점까지만’입니다.

어떻든 은총은, 늘 깨어 있으면서,
그것을 받으려고 능동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만 받게 됩니다.)

4)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서로 주고받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인사말도 “주님께서 주시는 복을 잘 받기 위해서 항상 깨어 있으십시오.”라는 격려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5) 우리는 ‘내가’ 받기를 바라는 ‘복’이 정말로 ‘복’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생선을 주시는데 뱀을 달라고 청하는 것은 아닌지, 달걀을 주시는데 전갈을 달라고 청하는 것은 아닌지, 좋은 것을 주시는데 그것은 안 받으려고 하고 나쁜 것을 달라고 청하는 것은 아닌지, 잘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루카 복음 11장 11절-13절).

잠언에 나오는 다음 기도는 우리에게 좋은 모범이 됩니다.

“저는 당신께 두 가지를 간청합니다. 제가 죽기 전에 그것을 이루어 주십시오. 허위와 거짓말을 제게서 멀리하여 주십시오.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지 않으시면 제가 배부른 뒤에 불신자가 되어 ‘주님이 누구냐?’ 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가난하게 되어 도둑질하고 저의 하느님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잠언 30장 7절-9절).”

이 기도는 바오로 사도의 다음 권고에 연결됩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합시다.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자들은 사람들을 파멸과 멸망에 빠뜨리는 유혹과 올가미와 어리석고 해로운 갖가지 욕망에 떨어집니다. 사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다니다가 믿음에서 멀어져 방황하고 많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있습니다(티모테오 1서 6장 8절-10절).”

전에 한때 우리나라에서 “부자 되세요.” 라는 인사말이
새해 인사로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IMF 체제에서 모진 고통을 겪은 뒤라서 그런 인사말이 유행한 것인데,
그 사정은 이해가 가지만, 만일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자 되기만을 바란다면 그것은 ‘악’이고, 그 ‘악’을 인사말로 삼는 것은
축복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복은 선에서 비롯되어서 선한 열매를 맺는 것이고,
그 자체로 선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을 빌어주는 일도 선을 빌어주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복을 받은 줄 알았는데 악한 결과로 끝난다면,
그것은 복을 받은 것이 아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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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
2021년 2월 12일
  |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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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깨어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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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최대 명절 중의 하나인 음력 정월 초하루 설날입니다. 원대한 꿈을 가득 담은 태양이 솟아올랐습니다. 설이 되면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지난해를 반성하고 우리에게 생명과 삶을 베풀어주신 조상님들을 기억하며 새로운 한 해 동안을 신앙인으로서 하느님의 생각과 말씀에 따라서 충실하게 살아갈 것을 결심합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깨어있어라”하고 가장 중요한 덕담을 해주십니다.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깨어서 맞는다면 돌아온 주인은 그 종을 보고 오히려 그를 식탁에 앉히고 시중을 들어줍니다. 참으로 행복할 것입니다. 이런 깨어 기다림은 의무가 아니라 사랑이고 축복이며 그분의 뜻을 기억하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리 준비하고 깨어 있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순간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항상 오시고 계시지만 우리가 깨어 있지 못하면 만날 수가 없습니다. 깨어 있을 때만 그분을 뵙고 함께 살 수 있는데 마귀의 유혹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이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며 깨어 있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다가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주님께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이고 교회에 순명하고 열심히 봉사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뒤에서 불평하지 말고 서로 예의를 지키며 매일의 삶 속에서 내면의 소리를 들으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며 최선을 다해서 생활하도록 합시다. 이러한 모습이 설날에 우리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덕담인 ‘깨어 있어라’는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올해의 화두로 삼고 영원을 바라보면서 기쁘고 가치 있게 생활하며 삶이 순탄하지 않고 주변 환경이 협조하지 않더라도 진정한 행복을 향해 용기를 내어 씩씩하게 살아봅시다.

복된 설날을 맞이하여 가족과 함께 행복한 날 되시고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하느님의 축복을 가득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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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신영철 베드로 신부
2023년 1월 22일 주보
  |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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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을 맞이하기 위해 서로의 종이 된 각자의 사랑을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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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든지 끊임없이 복을 주고자 하십니다. 이 복을 주시기 위해 하느님께서는 심지어 종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전합니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루카 12,37) 과연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자, 인간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시어 종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필리피서는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리피서 2,6-7)

종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마음. 바로 사랑입니다. 이 마음속에서 사랑을 발견합니다. 어떻게 주인이 종이 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지 않는다면 혹은, 사랑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많은 분들이 이 사랑 때문에 가족의 종이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가족의 종이 되어 사랑하고자 합니다. 가족 때문에, 사랑하는 마음으로 손이 많이 가지만, 기꺼이 명절을 준비하고 보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가족이 복을 받는다면, 가족이 행복해진다면, 기꺼이 종이 되는 내 부모님의 모습 속에서, 내 배우자의 모습 속에서, 다른 가족들의 모습 속에서 그 사랑을 바라봅니다.

우리는 사랑 때문에 서로의 종이 됩니다. 그 사랑을 보는 주인은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 사랑을 보는 종은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 사랑을 보는 상대방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자체가 우리의 복이 되어 자리합니다.

설을 맞이하는 오늘, 설을 맞이하기 위해 서로의 종이 된 각자의 사랑을 알아봅시다. 그 알아봄은 우리의 기쁨과 복을 충만하게 하리라 믿습니다. 이러한 은총이 우리에게 허락되기를 함께 청해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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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임범동 사도 요한 신부
2023년 1월 22일 주보
  |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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