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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설, 이 좋은 날에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조회수 | 177
작성일 | 23.01.18
[대구] 설, 이 좋은 날에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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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설"입니다. 설날의 의미와 기쁨을 생각해 봅니다. 설날이 되면 모든 가족이 함께 모이고 이웃 또한 만남의 기쁨 을 나눕니다. 산업화로 인한 핵가족화로 떨어져서 살아온 우 리들이 부모님이 계신 고향 집으로 모여 옵니다. 그리고 살아 온 각자의 삶의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웃고, 서로 고마워하곤 합니다. 이야기 속에서 가족들의 깊고 끈끈한 사랑을, 이웃의 소중함을 느끼고 확인합니다. 특히 이 중에는 차례(茶禮)를 지 내면서 기억하는 조상님들에 대한 기억은 가족들을 묶어주고 일치시키는 자리가 됩니다.

요즘처럼 개인 이기주의가 심한 이때에 서로를 기억한다는 것은 더구나 제사를 통해서 살아있는 우리들과 우리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조상님들 생각하면서 우리들의 뿌리를 생각하므로 하느님을 느끼고 찾는 행위는 더욱 소중하고 갚진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느님의 은총이듯이 우리가 잊지말아야 할 일 또한 고마운 가족, 이웃, 세상 나아가 하느님께 감사드릴 일입니다. 우리들은 자기 혼자 태어나지 않았고 스스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어렵고, 고통스럽고, 힘들다해도 내가 우리로 살아갈 때 우리들은 서로를 통해서 격려를 받고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좋은 날, 설날이지만 우리들을 있게하신 조상님들 나아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심을 생각하면서 그분들과 일치하기 위하여 오늘 복음말씀처럼 "준비하고 있어라"는 당부의 말씀을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우리들은 고도산업화 사회에서 앞만 보고 바쁘게만 내달려 왔습니다. 왜 이렇게, 무엇 때문에를 자신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말입니다.

이제 옆도 바라보고, 아래 위도 바라보면서 조금은 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살아야겠습니다. 그래야 지금 내가 어떤 자리에서 어떻게 서 있는가를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준비"는 다름 아닌 깨어서 자기가 서 있어야 할 자리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 몫을 책임있게 살아가야 함을 말씀하시고 계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조상님들은 항상 당신을 자신을 위해서 뿐 아니라 자식을 우리를 위해서 깨어 준비하고 사셨습니다. 끊임없는 다른 나라로부터 침략과, 6.25로 철저하게 파괴된 이나라를 지금 이만큼 물질적으로 잘살게 만들었습니다. 후손들인 우리들은 지금의 이 외적인 결과에 우리들의 속 내면을 채워서 내면 속이 꽉찬 그야말로 충실히 영글은 우리를 조상님과 하느님께 바칠 수 있어야만 하겠습니다. 우리들은 어느 누구도 예외없이 조상님들처럼 주님께서 허락하신 이 세상의 삶을 정리하고 떠나 주님 앞에 서야할 날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을 "결실에 붙여진 존재"라고 했습니다. 각자의 결실을 주님께 봉헌해야 합니다. 그 봉헌이 우리들에게는 기쁨과 보람으로 주님께 영광으로 바쳐져야 하겠습니다.

이 기쁜 설날에 서로의 좋은 것만 생각하고 조상님들의 가르침을 서로 나누고 기쁨을 키워서 가족이, 이웃이, 사회가 생기를,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축복의 날"로 이 한 해를 지혜롭고, 성실히, 준비하고 살아, 2006년이 내 생애에 보람되고 소중한 한 해였구나를 기억할 수 있게 살아갑시다. 이렇게 소중하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게 우리를 지켜 주시고, 함께 하시는 주님께 기도드려 봅니다. 교우님 기쁘고, 즐겁고, 소중한 설날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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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이응욱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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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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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설 명절입니다. 올 한 해 동안 모든 교형자매님들의 가정에 하느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아울러 하느님 품으로 우리보다 앞서가신 모든 가족들에게도 하느님께서 당신의 특별한 자비를 베풀어주시길 기도합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설날이 되면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인사하면서 한 해 동안 축복을 빌어주는 아름다운 풍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새해인사말의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주 놀라운 사실들이 숨어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먼저 이 축복을 비는 인사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만 하는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이 축원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만나는 사람 어느 누구에게나 복을 베풀어주는 인사입니다. 어린이도 아주 연세 높으신 어르신께 축복을 해드릴 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 서먹하던 사람들끼리도 복을 빌어줄 수 있습니다. 또 먼저 이 인사를 받으면 같은 말로 그 상대방에게도 복을 빌어주게 됩니다. 이 인사를 통해 모든 사람이 서로의 복을 빌어주게 되며, 모두가 한마음이 되고 함께 행복해지게 됩니다. 우리 민족의 이 새해풍습 안에는 이렇게 놀라운 지혜와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에게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하는 이 설날인사말에는 우리가 받을 복이 다른 사람이 빌어서 내려주는 것이지 결코 자신의 노력이나 원의에 의해서 획득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도 함께 포함되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받을 복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만 주어지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신기한 사실을 일찍이 깨닫고 설날인사를 이렇게 하도록 풍습으로 만들어 놓은 듯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서로 빌어주는 이 복은 누구에게서 오는 것인지 이제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분명하게 밝히지 않은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성경에 의해 풀려집니다.

오늘 1독서에서 주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는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그들이 이렇게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이 구약의 말씀 안에 우리가 받는 복이 누구에게서 오는 것인지가 밝혀집니다. 복은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조상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이 인사는 사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 주시는 복을 빌어주는 인사인 것입니다.

교형자매 여러분, 새해에 주님의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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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한영수 F.하비에르 신부
  |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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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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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나이 세는 방법이 만 나이로 통일되었습니다. 이제는 나이 먹는 게 싫어서 떡국을 물릴 일도 없어진 셈입니다. 사실 광대한 세상에서 작디작은 존재일 뿐인 인간에게, 나이 한두 살이 그다지 큰 의미를 지니지 않을 터입니다. 제2독서에서 말하듯, 사람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야고 4,14)같은 존재니까요. 아무리 계산이 빠르고 철두철미한 모사꾼이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제 앞일을 다 헤아리지는 못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희 날수를 헤아리도록 가르치소서. 저희 마음이 슬기를 얻으리이다”라고 기도하는 화답송 시편은, 제 수명을 단 하루도 제 힘으로 늘릴 수 없는 인간의 겸손한 고백입니다.

인간은 앞날뿐만 아니라 지난날과 오늘을 헤아리는 데도 서투릅니다. 많은 이들이 지난날 기울였던 자신의 수고와 노력은 과대평가하고, 하느님과 사람들로부터 받은 것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했다고 투덜거립니다. 내가 누리는 오늘이 결코 내 힘만으로 얻어진 것이 아닌데, 마음대로 써도 되는 나만의 소유인 양 허투루 보내기도 합니다. 그처럼 한편으로는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며 셈이 빠른 척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하루 앞도 헤아리지 못하는 우리에게 새해 첫날 복음은 우리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하느님 안에서 짚어보도록 초대합니다.

먼저 루카복음 구절은 우리가 어디에 희망을 두고 무엇을 바라야 할지 알려줍니다. 오늘 복음 구절을 포함한 루카복음 12장 전체와 16장은 현세적 재물에 대해서 줄곧 말합니다. 재물은 예나 이제나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던 안전장치였습니다. 또 재물은 쓰는 사람의 욕구를 채우는 단계를 넘어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세상이 그러하니, 차안대(遮眼帶)를 쓴 채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욕망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도 늘어갑니다. 어쩌면 더 많은 보상과 더 많은 재물을 추구하는 영혼의 기갈(寄褐)은, 실은 불안한 미래 앞에서 흔들리는 나약함의 다른 표현일지 모릅니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재물이라도 쌓으면 평안과 평화를 얻을 수 있으리라 착각하는 것이지요. 오늘의 나를 살게 해주신 하느님의 은총과 다른 이들의 수고를 외면하고, 또 내일의 나를 살게 하시는 하느님의 보호를 잊으면서 인간은 재물과 현세적 보상에 집착합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또 다른 형태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내주셔서, 재물이 아니라 하느님께 기대는 삶이 어떤 것인지 알려 주셨습니다. 하느님 백성의 역사 안에는 소유에 집착하지 않고 현세의 보상에 매달리지 않으며 뚜벅뚜벅 신앙의 길을 걸어간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가진 것을 버리고 고향을 떠나 하느님을 따른 아브라함부터 이집트 노예살이를 끝낸 모세, 그리고 수많은 예언자들이 그랬습니다. 결정적으로 하느님께 온전히 의지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 1,1-2)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결정적으로 알려주신 것은, 하느님께서 어떤 상황, 어떤 처지에서든 우리를 지켜주시고 함께하시며 이끌어주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설교와 기적과 치유로 뭇 사람들의 주목을 받던 성공의 시간에만 하느님과 함께 계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함께하심을 실감하기 어려웠던 병자, 죄인, 배척받는 이들과 더불어 계시면서 그분의 현존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결정적으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의 순간까지 시종일관 하느님께서 함께하심을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 곧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삶이 하느님으로부터 왔으며 하느님과 함께하고 있고 또 하느님 안에서 완성되리라는 것을 배우고 깨친 이들입니다. 오늘날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 가운데도 재물이나 현세의 보상에 관계없이 하느님께 의지하며 제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채색 소박한 옷차림으로 수도생활에 매진하는 이들, 양들을 위해서 제 것을 아끼지 않고 헌신하는 사목자들, 가정과 직장에서 남이 알아주든 말든 제 몫을 해내는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이들이 오늘 복음이 말하는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루카 12,36)일 것입니다. 그들이 기대고 바라는 참된 보상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어주실”(루카 12,37) 하느님 바로 그분뿐입니다.

이 참된 보상을 기다리며 설날 미사에 바치는 본기도는 제1독서에 등장하는 아론의 축복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 새해 축복들은 우리가 새해에 받을 복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주님께서 지켜주시고… 은혜를 베푸시며… 평화를 베푸시리라”(제1독서; 민수 6,24-27) 올 한해, 주님의 축복 안에 머무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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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박용욱 미카엘 신부
가톨릭신문 2023년 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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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함으로 하느님 축복의 열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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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민수 6,24)

음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설 명절에 어른들은 새해 인사를 드리는 이들에게 덕담을 해줍니다. “새해에도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지기를…”, “새해에도 건강하기를…” 또 어른들께도 명절 인사를 드리면서 새로운 한 해에도 건강과 평안함을 빌어드리는 전통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도 많은 순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려주기를 청합니다. 완전하지 못한 인간이기에 늘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많은 순간 우리는 하느님의 축복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한순간의 요행처럼 생각하고 청하기도 합니다.

땅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축복이 어떻게 열매 맺는지를 잘 이해하게 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축복인 충분한 햇볕과 알맞은 날씨, 그리고 제때 내리는 비를 간절히 청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축복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인간적인 수고를 통해 잘 준비할 수 있도록 애를 씁니다. 비록 어떤 이유로 원했던 날씨가, 간절했던 비가, 필요했던 햇볕이 충분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하느님을 원망하기보다는 또 다른 뜻을 찾으며 자기 몫의 수고를 묵묵히 해나갑니다.

오늘 제1독서를 보면, 이스라엘 민족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하느님의 축복을 청하라는 하느님의 명을 받게 됩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민수 6,24) 새로운 문화와 신앙적인 환경에서도 필요한 하느님의 축복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분을 향한 신뢰를 잊지 않도록 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이야기하는 행복한 종은 이처럼 어떤 환경에서도 주인을 향한 마음을 잃지 않는 종을 의미합니다.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주인을 기다리며 묵묵히 자신의 책임에 충실한 종, 그렇게 준비된 종은 주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된 종입니다. 그것은 제2독서의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야고 4,15)라고 고백할 수 있는, 그래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것을 성실히 실행하는 종의 모습입니다.

새해 첫날인 설 명절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선물인 당신의 축복에 감사드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빌어주고 청하는 하느님의 축복은 분명 우리의 성실함을 통해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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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석상희 요셉 신부
2023년 1월 22일 주보
  |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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