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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춘천/의정부]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다
조회수 | 137
작성일 | 23.02.01
[원주]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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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의 후대 작품인 탈무드에서는 자녀를 부모의 소유가 아니고 하느님의 소유이며 부모에게 잠깐 맡긴 것으로 설명합니다. 이 정신은 구약의 토라에서 비롯되어 맏자식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비록 가난하게 태어나시어 소나 양 대신 비둘기로 제물을 바치는 예식에 참여하시지만 그 당시 율법의 관례를 따르신 것이었습니다. 이 율법의 정신은 자식을 부모의 것이 아닌 하느님 소유로 바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 태어났을 때처럼 정결예식에서도 몇몇 사람들에게만 드러내시고 조용히 예식을 치르십니다. ‘거룩하다’라는 용어에는 ‘다른 것과 구분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세상 것과 구분해서 하느님께로 되돌린다는 뜻도 있습니다.

우리는 차를 구입해도 또 집을 장만해도
성물을 구입해도 ‘방사를 놓는다’라는 변하지 않는 관습어를 쓰지만
그 뜻도 역시 하느님 소유로 돌린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나의 삶,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도 다 주님 것으로 되돌린다면,
우리는 자유롭고 또 복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이 구약의 정신이 예수님의 삶에서 더욱 완성되는 신비를 묵상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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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정인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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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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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를 입학하기 위해서 치른 논술 시험의 질문이었습니다. ‘복음삼덕’ 에 맞추어 자신의 사제 상을 서술하시오. 시험장은 도서관의 미디어실입니다.

칸막이 책상에 앉았고, 먼저 복음삼덕이 무엇인지를 떠올렸습니다. 다행히 그것이 성직자, 수도자들과 같이 봉헌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덕임을 기억해 내었습니다.

그것은 세 가지 덕목입니다.
청빈과 정결 그리고 순명입니다.

펜을 쥔 손에 힘을 주었습니다. 세 가지 덕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단어 풀이를 했습니다. 가난한 삶과 순결함, 마음으로부터의 복종이 떠올랐습니다.

불현듯, 인사이동으로 본당을 떠나셨던 수녀님이 떠오릅니다.
새벽 미사를 마치고, 바퀴가 달린 가방 하나를 끌고 신자들과 인사를 나누셨습니다. 저는 버스터미널까지 배웅을 나갔기에, 버스에 오르시는 수녀님을 끝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홀연히 부름을 받고 떠나시는 수녀님의 단아한 미소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짐은 보잘것없이 적었고, 가벼웠습니다. 아쉽고 서운한 저의 마음과 달리 평온하고 나긋한 목소리에서 갈라지지 않은 초연한 마음을 엿보았습니다. 어디로 가시는지 여쭈어보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가시는 곳이 하느님께서 정해주신 길임을 확신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불러주셨고 이끌어 주신다는 말씀을 남겨주셨습니다.

지금은 주문진에 있습니다. 본당에서 사목하는 신부로 살고 있습니다. 뒤에는 소금강이 있고, 앞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처음의 시험 문제를 다시 읽고, 이제껏 잘 써 내려가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깊은 한숨이 나왔습니다. 옆 창문으로 사목 센터를 내려다 봅니다. 선배 신부님을 떠올려봅니다. 공소에 계신 할아버지 신부님께서 올해도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거실 벽에 걸려있는 주교님 사진도 봅니다. 옆에 교황님도 봅니다. 죄송합니다. 떠오름 안에서 오늘의 복음 말씀이 들립니다.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주님께 바쳤다.

가장 소중한 것을 주님께 바쳤으니, 더 가질 것도, 마음이 갈릴 필요도 없을 테지요. 더욱이 내 주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길이니 기쁘게 받아들이셨을 터, 이 세 가지 덕은 결국 한 가지를 봉헌함으로써 주어지는 은총이겠습니다.

봉헌 축일입니다. 우리 각자는 저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특별한 모습으로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고 있습니다. 여러 단체와 모임뿐 아니라 평일 미사 참례와 아침·저녁 기도를 바침과 같은 노력이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기억하시어 매우 값진 사랑으로 받아서 후하게 돌려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아기를 봉헌하는 부모의 마음을 잘 간직하십시오. 가장 소중한 것을 주님께 드리는 거룩한 덕행을 이어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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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이지목 안셀모 신부
2020년 2월 2일 주보에서
  |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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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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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키 예언자는 예제키엘 예언자가 예시했던 예루살렘 성전을 떠났던 주님의 영광이 다시 돌아오시게 되었음을 재차 천명합니다.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말라 3,1)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을 등진 댓가로 혹독한 유배의 쓴 잔을 마셨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다시 시온으로 돌아오는 날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시련과 수모의 지난 날들이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 하느님께 제물을 바칠 때 구원의 날을 위한밑거름이 되었던 사실을 예언자는 일깨워줍니다.

말라키 예언자는 말합니다.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서 있을 수 있겠느냐? 그는 제련사의 불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 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말라 3,2-3)

그래서 그들은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솔로몬의 시절처럼 제물을 바치며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루카는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하는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성전에서 하느님께 바칩니다.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 아이는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는 규정1)을 따른 것입니다.

나자렛에서 가브리엘 천사가 예고한대로 마리아는 잉태하고 아기를 낳고 여드레 날에 천사가 일러 준대로2) 성전에서 아기 이름을 예수라고 짓습니다.

예식이 거행되는 동안 시메온이라는 의인이 아기와 부모 옆에 있었던 것입니다. 루카복음은 시메온이 그 자리에 오게 된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본문은 그에 대해서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루카 2,25-27)

구약에서 ‘성령’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익숙하지가 않습니다. 하느님과 독립적으로 구분되는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을 두 팔에 받아 안고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2,29-32)

시메온은 이어서 아기의 부모님을 축복하고 나서 어머니 마리아게 말합니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2,34-35)

아기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사람의 법을 따를 필요가 없지만 구약의 법에 따른 모든 예식을 마치고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갑니다.

주님 봉헌축일을 맞아 교회는 ‘축성 생활의 날’로 제정하여,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 수도자들을 기억하고 또한 미래의 수도 성소자들 성소를 위해 특별 지향을 갖고 기도하는 날입니다.

오늘 본당에서는 전례에 쓸 초를 축성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비록 우리가 완전한 준비를 못했다하더라고 오늘 우리자신과 우리 가정을 하느님께 봉헌해야 하겠습니다.

문득 사십 여 년 전 군중신부 시절 사단 지역을 사목을 할 때입니다. 외딴 사제관에서 어머니가 심심하다고 동네 교우가 강아지 한 마리를 선물했습니다.

그 강아지는 어머니에게는 식구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그 강아지가 크면서 점점 특징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얼굴은 한쪽은 희고 다른 쪽은 검은데다 입은 이가 어긋나서 늘 벌린 것 같아 그 이름이 ‘뻐덩이’가되었습니다.

뻐덩이는 밤늦게 전방에서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주인 자동차 소리를 용 캐 알아챕니다.

하루에도 수 없이 큰 도로로 지나가는 자동차들이 많을 텐데도, 용케도 주인 차 소리를 알아 듣고 동네 어귀까지 마중 나와 이리 뛰고 저리 뜁니다.

그제야 어머니는 아들이 돌아 온 줄 알고 사제관 앞 나와 반갑게 기다리십니다.

못생긴 ‘뻐덩이’가 주인에게 할 줄 아는 것은 온 몸을 다해 꼬리를 열심히 흔드는 것과 진흙 투성이의 발을 주인 바지가랭이에다 문질며 반갑다고 매달립니다.

어머니는 그러는 ‘뻐덩이’에게 뭐라고 하시지만 그 녀석은 소용이 없이 바지에다 자기 털을 붙여가며 열심히 흙칠을 더 합니다.

그래도 주인이 좋다고 매달리는 뻐덩이가 싫지 않고 반갑기만 합니다.

뻐덩이를 생각하면 하느님 앞에 있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면서 내세울 것이라고는 결점 투성이에다 죄스러움의 모습이지요.

뻐덩이처럼 주님을 사랑한다고 매달리는 모습을 사랑의 주님께서도 받아주시리라는 희망뿐입니다.

우리는 당장 내세울 것도 없는 처지이지만 부족한 이대로 주님께서 하느님 성전에 당신을 바치셨듯이 우리 자신을 주님께 봉헌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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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느님께 맏아들을 봉헌하는 규정(탈출 13,2.12.15)과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산모의 정결례를 위해 속죄 예물을 바친다. 예수님의 부모는 양 한 마리를 바쳐야 하는데 “그러나 양 한 마리를 바칠 힘이 없으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두 마리를 가져다가, 한 마리는 번제물로, 한 마리는 속죄 제물로 올려도 된다.”(레위 12,8)라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배려의 법을 따른 것입니다.

2)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호 오노마 아우투예순 ὸ ὄνομα αὐτοῦ Ἰησοῦν)’하여라.”(루카 1,31; 마태 1,21)라고 말한다. 마태오는 이어서 이사야의 예언(이사 7,14)을 인용한다. “‘그 이름을 임마누엘(τὸ ὄνομα αὐτοῦ Ἐμμανουήλ)’이라‘ 하여라.”(마태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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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정인준 신부
2021년 2월 2일
  |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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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반대 받는 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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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은 상극입니다. 그래서 어둠은 빛을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빛이 있는 곳에는 어둠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기 예수님은 어둠이 가득한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를 어둠이 가만둘 리가 없습니다. 빛을 꺼뜨리지 않으면 자신들이 소멸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둠의 세력은 빛이신 아기 예수님을 맹렬히 반대하고 공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언자 시므온은 이 사실을 정확히 꿰뚫어보았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 표적이 되고 말았고 결국 죽임을 당하기까지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뒤를 따라 세상의 빛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밝히려는 빛이 아무런 저항 없이 쉽고 편안하게 밝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안이한 생각일 것입니다.

우리들도 선하고 올바르게 살려는 우리들의 거룩한 원의를 반대하고 공격하고 꺾으려 하는 어둠의 세력과 필연적으로 맞부딪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심 깊게 열심히 살려고 할수록 갖가지 유혹이 더 생기고부당한 오해나 비판, 비난, 공격 등을 받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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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강동진 신부
  |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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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삶의 봉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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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봉헌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주도권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유다인들이 아기를 봉헌하는 것도, 하느님께서 주신 아기임을 인정하는 동시에 앞으로도 아기를 하느님께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얼마나 ‘충실히’ 봉헌하느냐가 하느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러내는 표지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께 받은 것이 물질만이 아니듯 우리가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는 것이 반드시 물질만은 아니다. 우리가 받은 시간 · 재능 · 에너지, 심지어 마음까지도 우리가 봉헌할 수 있다. 그래서 아침과 저녁기도 · 삼종기도 · 성체조배 · 묵주기도와 같이 시간을 내어 드리는 기도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봉헌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나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데 내가 가진 재능과 능력과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도 나를 봉헌하는 것이다.

수도 생활은 다른 말로 ‘봉헌생활’ 이라고 부른다. 삶의 전부, 순간순간을 모두 봉헌하는 삶이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도 삶의 순간순간을 봉헌할 수 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묵주기도를 바친다면 그 순간의 나를 봉헌하는 것이다. 일을 할 때도 기도로 시작하고 끝맺는다면, 그것 역시 봉헌하는 것이다. 내 일상을 하느님께 봉헌해 변화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하고 하느님의 일을 하는 데 시간을 내는 그만큼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미리 맛볼 수 있다. 그것은 봉헌생활을 하는 수도자만 맛보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이 봉헌하는 그만큼 맛볼 수 있다. 내 일상을 봉헌하면 삶 전체를 봉헌하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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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이진원 신부
  |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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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내 성당에서 하느님과 신자분들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는 이학민 안드레아 신부입니다. 모든 교구 신자분들께 하느님 사랑의 인사를 전합니다. 시간을 되뇌어 보니,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를 서품 성구로 삼아, 주님께 봉헌된 사제가 된지 일년하고 꼭 이틀이 지났습니다.

오늘 “주님 봉헌 축일”을 맞이하여, 당신의 삶에로 이끌어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다시 한번 주님께 제 영을 받아달라고 떼써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성모님께서 자신의 가장 소중한 아기를 하느님께 봉헌한 사건을 듣게 됩니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 사건 이전에 하느님께서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우리 곁으로 보내주신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오늘 성모님이 예수님을 하느님께 봉헌한 사건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셔서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 놓는 마음과, 인간이 하느님을 사랑해서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 놓은 마음이 만나는 사건입니다. 하느님과 인간이 서로 사랑해서, 서로에게 내어준 사랑의 봉헌물 예수님, 그러한 예수님은 사랑 하나로 이 세상을 구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본질인 사랑, 우리가 이 사랑의 결정체인 예수님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행복하게 자신의 것을 서로에게 내어 줄 수 있을까요?

본당에서 어린이와 청소년 미사 강론 끝에 꼭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그 말을 전합니다. 얘들아 사랑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서로 뻘쭘하고 당황하던 시간을 거쳐, 차츰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과 말투가 변해가며, 사랑하는 마음이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하느님과 이웃에게 내어 놓은 최고의 봉헌물은 예수님의 사랑이었음을 기억하게 됩니다.

오늘 하루, 주님 봉헌 축일을 지내면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내어주신 사랑에 감사하고, 우리 역시 사랑의 마음을 되돌려 드리는 은총 가득한 시긴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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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이학민 안드레아 신부
  |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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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봉헌은 만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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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헌은 만남입니다. 화려한 세상에
가리어진 세상을 품은 소박한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세상의 요란한 소음 한 가운데에서
참된 삶으로 부르시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봉헌은 비움입니다. 삶의 여정 안에서 쌓여가는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모든 것을 벗어내는 것입니다.
나의 지식, 나의 재물, 나의 지위, 나의 욕심 그
리하여 내가 가진 무엇이 아니라, 바로 내가 하느님과 마주서는 것입니다.

봉헌은 채움입니다. 나의 자그마한 마음 안에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믿음과 희망을 담는 것입니다.
나의 보잘것없고 흠 많은 삶을
하느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열정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봉헌은 드러냄입니다.
하느님의 빛으로 환하게 된 나를 세상의 어두움을 비추는
자그마한 빛으로 내어놓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품 안에서 따스함 한껏 머금은
나를 세상의 차가움을 녹이는 자그마한 온기로 내어놓는 것입니다.

봉헌은 나눔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서
모든 이에게 나누어지길 바라셨던 선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을 나의 것인 양 내 안에 품지 않고
기쁘게 아낌없이 나누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빈 손 빈 마음이 되어
모든 것을 새롭게 채워주실 하느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봉헌은 아름다운 여정입니다. 만남, 비움, 채움, 드러냄, 나눔,
그리고 다시 만남.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삶 안에서 단 한 번이 아닌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할 열정 가득한 다짐이며 생기 넘치는 몸짓입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이 땅 위에서 아름다운 삶이 끝나고,
다시 하느님 품으로 돌아갈 때까지
언제나 어디서나 이어져야 할 아름다운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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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상지종 신부
2016년 2월 2일
  |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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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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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낳으신 분께 내가 안긴다네
나를 보시는 분을 내가 바라본다네
나를 느끼시는 분을 내가 느낀다네
나에게 주시는 분께 나를 드린다네
나에게 오시는 분께 내가 나아간다네
나를 품으시는 분을 내가 품는다네
나와 하나이신 분과 내가 하나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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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상지종 신부
2022년 2월 2일
  |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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