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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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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공평화의 동체인 인류 가족
조회수 | 2,974
작성일 | 08.01.04
오늘은 주님이신 아기 예수님의 공현 대축일이다. 공현(公顯)이란 “공식적으로 나타내 보이다”는 뜻으로서, 예수님께서 온 인류를 위한 구세주로 드러나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오늘 복음의 내용은 유일하게 마태오 복음서에서만 나오는 것으로서 이방인인 동방의 세 박사가 예수님을 찾아뵙고 그분께 선물을 드리며 그분을 경배하는 모습을 통하여 성탄의 의미를 더욱 깊게 한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빛’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어두움을 속속들이 비추시고 구원의 주님으로 오신다는 것을 밝혀 준다.

동방의 세 박사, 가스팔, 발다살, 멜키엘이 하늘에 나타난 이상한 큰 별을 보고 그 별빛을 따라 베들레헴의 말구유에서 나신 아기 예수님을 찾아뵙는다. 고대 사람들은 신생아가 태어날 때마다 하늘에 새로운 별이 생긴다고 믿었다. 그래서 새로이 반짝이는 별이 생겨나면 분명 훌륭한 사람이 태어난다고 믿었다.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이상한 별도 이러한 역할을 한다. 그 별은 유다 지방만이 아니라 온 세상을 밝히고 있었다. 그래서 동방의 박사들이 그 별을 따라 갔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정작 헤로데를 비롯한 왕궁 사람들의 눈에는 그 큰 별이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왜일까?

사실 헤로데와 왕궁의 사람들도 그 별을 보았을 것이다. 그 별은 유다에도, 그리고 동방에도,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별을 보았지만 그 별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이 열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현실적인 삶만을 바라보고 있던 예루살렘 사람들, 자신의 권력에 집착하고 있었던 헤로데와 그의 측근들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아기 예수님의 별을 볼 여유가 없었었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현실의 안락한 삶에 머무르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반면에 동방의 박사들은 그 별을 보았고, 별을 의미를 알고 그것을 따라가 마침내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영광을 얻었다. 동방의 박사들이 별을 보고 그 의미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편안한 현실의 모습이 아닌 무엇인가 더욱 깊고 높은 것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별을 보았고 그 빛에 모든 것을 걸고 길을 떠나 마침내 세상의 구원자이로 오신 아기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늘날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 사랑의 증거인 별을 보여 주고 계신다. 그러나 이 증거의 표지를 전혀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보고도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으며, 깨닫고도 별반 달라지지 않는 사람도 있다. 사실 그리스도의 신비는 권력이나 물욕, 이기심에 눈이 먼 사람에게는 절대로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신비를 상징하는 ‘별’은 겸허하게 마음을 비운 사람, 자연과 역사 안에서 항상 하느님의 뜻을 찾는 사람들에게만 보이기 마련이다.

이제 우리도 주님의 별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 별은 간절히 주님을 찾는 깨끗하고 겸손한 마음 있을 때 은총의 선물로 우리에게 보인다. 그리고 그 별을 본 사람은 선물을 준비하여 주님을 만나러 떠나야 한다. 동방의 세 박사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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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고준석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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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구원자로 드러난 아기 예수

오늘은 예수님의 성가정에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 오셨습니다. 멜키올, 발타살, 가스팔로 불리는 동방박사들입니다. 동방박사들은 하늘에 나타난 큰 별을 보고 예수님을 찾아와 경배 드리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오늘을 '주님 공현(公顯) 대축일'이라 부르는데 공현이란 '나타나다'는 뜻으로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난 예수님께서 유다인을 넘어 온 세상의 구세주로 드러나심을 기념하는 대축일입니다. 성탄의 기쁨이 유다인에 국한되었다면 공현은 예수님께서 만민의 구세주로 드러난 의미 깊은 날이므로 어쩌면 우리에게 더 큰 축일인지도 모릅니다.
 
메시아의 탄생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지만 가장 박대한 사람을 꼽으라면 헤로데 왕이요, 정성된 준비로 잘 맞이한 사람으로는 동방박사를 지목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헤로데 왕은 70살이 다 된 나이 많은 임금이었으며 경륜과 지혜가 부족하여 사방에서 도전을 받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유다인들이 왕에 도전하면서 반기를 들었고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을 신축하는 등 노력했지만 왕권은 마음먹은 대로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헤로데 임금은 예민해져갔지요. 그 즈음에 동방박사들이 찾아와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마태 2,2)하고 물었으니 헤로데 임금으로서는 기절초풍할 노릇이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마태 2,3).
 
오늘 복음이 그때의 놀라움을 잘 전해줍니다. 불안에 떨던 헤로데 임금은 수석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아놓고 그리스도께서 나실 곳이 어디인지를 찾게 하고 관심을 표명하는 척하지만 결국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이와는 반대로 동방박사들은 밤하늘의 별을 보며 하늘의 뜻을 살피다가 때가 되어 베들레헴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고대했던 대로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 예수님을 보고 기쁨에 넘쳐 엎드려 경배하며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봉헌합니다. 구세주를 만나 뵌 이들은 벅찬 감동을 간직한 채 자기들 나라로 돌아갑니다.
 
똑같이 메시아의 탄생을 알고 있었지만 결국 수천 년 기다려온 구세주 메시아를 만나 뵌 사람은 동방박사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예수님과 가까이에 있어도 관심이 다른 곳에 있으면 만날 수도 없고 예물을 드릴 수도 없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면 아무리 먼 곳에 있어도 주님을 만날 수 있고 찬미와 감사의 예물을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신 아기 예수님께 어떤 예물을 드릴 수 있을까요?
 
샌디에고의 한 병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온 몸이 마비된 윌리엄 마틴이라는 환자가 입원을 했습니다. 아침마다 찾아오는 고통 속에서 그는 몸을 뒤척이지도 못하고 땀을 닦지도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극도의 고통을 덜기 위해서 많은 양의 약을 먹어야 했는데 약의 부작용으로 눈물샘마저 말라버리고 말았습니다. 돌보는 간호사들조차도 그의 힘겨운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외면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 어느 날 안타까움에 외면하는 간호사를 보며 마틴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슴을 파고드는 고통을 참기는 어렵지만 나는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고통은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나 삶의 어려움은 있습니다. 남보다 내 남편이 무능하다거나, 내 아내가 살림을 소홀히 한다거나, 남의 자녀는 다 잘하는데 내 자녀는 형편없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정은 생지옥이 되지요. 이렇게 남과 비교해 잘못된 것만을 찾아 낸다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어 지금까지의 삶에 만족하고 감사를 드리다보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주변에 얼마나 감사할 일이 많은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가족은 그 존재 자체로도 감사의 근원이 되고 힘이 되는 것입니다. 삶이 바뀌지요.
 
오늘 오신 주님께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고통을 예물로 봉헌하는 삶을 살기를 결심하면 어떨까요?

이기양 신부
  |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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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빛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동방에서 온 세 박사에게 자신을 처음으로 드러내어 세상에 당신의 존재를 공개한 날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유다인 출신의 그리스도교 신자 공동체를 위하여 복음을 썼습니다. 그는 당시의 신앙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고, 신앙 교육을 위해 복음서를 서술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복음서는 모든 신자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특히 유다인 출신 신자들이 유다교 신앙의 맥락 안에서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즉, 당시의 독자들이 예수님을 약속된 메시아이며 다윗의 후손인 왕으로서 인정케 하기 위한 목적으로 복음서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오 복음은 유다인의 민족 역사인 구약성서를 많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동방박사는 유다인이 고대하던 메시아를 인식한 전 세계 이방인의 첫 대표자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주의 공현 대축일은 모든 인류가 처음으로 ‘하느님 백성’으로 하나가 된 기념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동방의 세 박사는 별의 인도를 받아서 예수님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은 우리도 항상 별의 인도를 받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별이 때로는 하느님의 말씀이기도 하고, 때론 부모님일 수도 있고, 때론 어떤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도 이사야 예언자는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너를 비춘다. 온 땅이 아직 어둠에 덮여, 민족들은 암흑에 싸여 있는데, 주님께서 너만은 비추신다”(이사 60,1-2)라고 예수님의 탄생과 어둠 속에 살고 있는 민족에게 구원의 빛을 예언하십니다. 따라서 우리 자신도 그리스도의 또 다른 별이 되어 세상을 비추는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주님의 빛을 받아서 세상의 어둠을 비추는 별이 되어야 합니다. 별은 주위가 어둡고 깜깜할수록 더욱 빛이 납니다. 세상이 어두울수록 신앙인은 세상의 빛이 되어야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주님 공현 대축일’의 의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루하루의 새날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다시 한 번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시고, 일년 내내 여러분 모두 영육간에 건강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정진석 니콜라오 대주교
  |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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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박사들의 모습

해마다 성탄 시기에 우리가 묵상하는 ‘동방박사 이야기’는 아무리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신비스러운 내용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요즘으로 따져보면 과학자, 더 구체적으로는 천문학자인 듯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과학의 세계는 실재하는 모든 자연 현상을 관찰, 실험, 분석하여 그 안에 있는 보편적인 원리를 규명합니다. 여기에서 아비켄나는 “각 사물의 진리란 그 사물에 설정되어 있는 그 존재의 특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이성의 진리를 찾던 박사들이 어떻게 유다인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마태 2장 참조)을 알아보는 신앙의 진리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인간의 육체성과 연대한 물질 세계가 하느님의 영역에 속하게 되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곧 우주 만물은 신비로 감싸고 하느님의 계시(에페 3,3 참조)가 되었으며 ‘신의 암호’가 된 것입니다. “하느님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에페 4,6).

박사들은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요한 1,14)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 나선 구도자요 순례자의 전형입니다.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2). 그런데 왜 선택된 백성인 유다교의 지도자들과 예루살렘 시민들은 메시아가 태어난 것을 알고서도 경배하지 않은 걸까요? 무엇보다도 그들은 현세적인 메시아를 원했습니다. 즉, 자기 나라와 백성을 주변의 강대국들에게서 보호해 줄 힘 있는 군주를 더 바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들레헴처럼 작은 고을에서 태어날 어린 왕자, 힘없는 사람들을 섬기러 육화한 ‘연약하신 하느님’을 거부한 것입니다.

유다인들의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서도 드러납니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 논문 사건에서 보인 자세가 그렇습니다. 과학자의 연구 결과에 의혹을 제기하고 객관적이고 검증된 연구 자료를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국익에 도움이 되고 경제부과효과가 크다는 이유로 그 진위를 살펴볼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에게 돌팔매질을 했습니다. 이런 광기에 무서운 전율마저 느꼈습니다.

객관적으로 엄연한 진실을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대신, 각자 편협한 가치관을 진리의 척도로 삼아 고수하려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오늘 복음에 나오는 유다인들의 비극을 봅니다. 이런 혼란 중에서 우리 신앙인들은 얼마나 복음의 정신과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서 이 사건을 관찰, 판단하고 실천하였습니까?

각자의 자세를 돌아보면서도 낙담하지 않고 이 사회의 앞날에 희망을 품는 것은 그 일방적인 국민 여론의 위력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규명하려고 애쓴 소수의 깨어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런 창조적인 소수에게서 동방박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구요비 욥 신부
  |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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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별을 찾는 사람들

지금으로부터 30년은 되었을 것입니다. 신학생 시절 어느 해 겨울 방학에 서울역 앞 양동에서 봉사체험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양동에는 몇 분의 수녀님들이 그 지역에 거주하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수녀님들도 처음에는 그곳 사람들의 텃세에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자취조차 없어졌지만 당시 서울역 앞 양동에는 해방이후 형성된 유곽이 즐비했고 판자를 세워 지은 집들이 가득했습니다. 윤락 여성, 걸인, 고아, 장애인들도 많이 살았습니다.

양동을 처음 찾았을 때 ‘서울에 이런 곳도 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받고 버림받았으며 가난과 병에 지친 사람들이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작은 희망조차 없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수녀님들이 이들의 벗이 되어 함께 살고 계셨던 것입니다. 나는 양동에서 만난 맹인 할아버지가 한 말을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나는 하느님이 누군지, 정말 계신지도 몰라. 그런데 수녀님들이 우리들 곁에 오셔서 우리들을 위해 사시는 것을 보면 하느님이 계신 것 같아. 수녀님들이 믿는 하느님이니까.” 그 당시 양동 사람들에게 수녀님들은 오늘 복음에 나오는 그분의 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현재도 우주의 끝이 밝혀지지 않아서 우주에 존재하는 별의 숫자를 정확히 모른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그 많은 별 중에서 그분의 별을 발견한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드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천 년 역사동안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아가 오실 것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핍박과 고통의 삶 속에서도 꿋꿋하게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메시아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구세주인 예수님께서 태어난 것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들은 머나먼 동방의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2)”라는 동방 박사의 말을 듣고 비로소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법석을 떱니다.

동방박사들은 아주 먼 곳에 있었지만 그분의 별을 보았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나요? 오히려 지척에 있던 유다인들은 그분의 별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왜 별을 못 보았을까요? 혹시 너무 가까이 있어서였을까요? 아니면 욕심에 눈이 어두워졌거나 별을 찾는데 게을러지지는 않았을까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그분의 별은 어디에 있을까요? 어쩌면 손이 닿을 곳에 있을지 모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태어나실 곳, 베들레헴은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입니다. 우리는 무수한 별들 중에 그분의 별을 찾아야합니다. 물론 저절로 찾을 수는 없습니다. 동방박사들처럼 많은 수고와 노력이 따를 것입니다. 그래도 다행히 예수님께서 당신을 진리요 길이라고 가르쳐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도 예수님을 보고 그분을 따라간다면 생명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 자신도 다른 이들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분의 별이 되어야 합니다. 올 한해 나와 이웃 안에서 그분의 별을 자주 발견하기를 소원합니다.

허영엽 신부
  |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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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

오늘 제대 앞 구유의 모습이 좀 달라졌습니다. 저 멀리, 산 넘고 물 건너서 동방박사 세 분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와 선물을 드리며 경배합니다. 오늘은 지금까지 세상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아기 예수님이 멀리에서 베들레헴 마구간으로 찾아온 이방인들에 의해 온 세상에 구세주로 드러나는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이 주일을 끝으로 성탄이 마감됩니다.
 
오늘 주님 공현 주일을 맞으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탄생을 확인하고 또 구세주를 눈으로 직접 보고 찬미하는 은총을 누린 사람들은 예수님 가까이에 살고 있던 유다인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분명 동방박사들에게는 별을, 그리고 헤로데와 유다인들에게는 성경학자들을 통해 구세주가 태어나실 곳이 유다의 땅 베들레헴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서 경배를 드렸던 사람들은 동방박사들뿐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은 왜 바로 곁에 계신 예수님을 뵙지 못한 것일까요?
 
조선 정조 때 문장가인 유한준(兪漢雋)은 이런 글을 남겼다고 합니다.
 
"지즉위진애 애즉위진간 간즉축지이비도축야(知則爲眞愛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관심을 갖는 만큼 보이고 또 사랑하는 만큼 깊이 볼 수 있습니다. 수많은 인파 속을 지나가도 그 안에 사랑하는 사람이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바로 알아보게 됩니다.
 
구세주 예수님은 유다인들의 바람과는 전혀 다르게 초라한 마구간에서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고요히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한 순간에 로마 군인들을 쳐부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일등 국민으로 그들을 빛내주는 대신 고통 받고 버림받은 사람들 곁에서 위로와 희망을 주시며 그들과 함께 사셨습니다. 그것도 33년간이나 말입니다. 아무리 옆에 있어도 관심이 없으면 알아볼 수 없고 만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성탄 축제를 벌써 마지막 주 남겨두고 있는데 우리는 과연 오신 구세주 예수님을 만나 뵈었습니까?
 
동방박사들의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동방박사를 예수님께로 인도한 것은 '별'이 아닙니다. 별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입니다. 믿음이 별을 찾아낸 것이지요. 동방박사들은 자신들의 욕망으로 메시아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믿고 기다렸기에 하늘의 별을 보고 주님을 찾아 뵐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내 욕망이 이루어지는 곳에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내 욕심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주님을 만나려고 합니다.

"내 소망이 이루어지면 믿겠습니다."
 
"내 기도가 응답되면 믿겠습니다."
 
이것은 유다인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신앙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병자 안에 계시고, 외롭고 가난한 노인들 안에 계시며, 심지어는 보기만 해도 미움이 솟구치는 내 원수 안에 계십니다. 그들 안에서 말씀을 실천하는 이들이 주님을 만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래 전 기억입니다. 어느 날 예비신자 한 분이 찾아와 흰 봉투 하나를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님, 첫 월급을 탔습니다. 그 중의 일부를 넣었는데 가난한 사람을 위해 쓰여졌으면 좋겠습니다."
 
교리 공부를 시작한지 3개월 밖에 안 된 예비신자의 이 흰 봉투는 제게 큰 의미를 던져주었습니다. 그도 자기의 것을 나누기까지 갈등이 없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배웠기에 나누고 싶었고 나누면서 더욱 주님을 체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말씀이 실천되는 곳에서 주님을 체험하는 은총의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기양 신부
  |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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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자연 안에 있는 하느님의 언어

메시지를 전하는 꿈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마태 2,12) 꿈의 신성한 출처는 성경의 맨 처음부터 맨 끝까지 나타납니다. 창세기는 꿈의 요소로 가득하고, 성경은 묵시록으로 마감하는데, 묵시록은 그 자체로 완전한 환시입니다. 창세기에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는 중요한 현시로 시작하는 몇 가지 가장 아름다운 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해 질 무렵, 아브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는데….”(창세 15,12-21) 꿈에서 요셉은 형들의 곡식 단들이 빙 둘러서서 큰절하였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37,5-11 참조) 시종들이 저마다 뜻이 다른 꿈을 꾸었고, 요셉은 꿈을 풀이해 줄 사람으로 초청을 받았습니다.(41,16.25 참조) 창세기에서 꿈은 하느님의 인간과의 의사소통 방법들 가운데 하나로써 간주하였습니다. 솔로몬의 지혜 선물은 꿈을 통해 왔습니다.(1열왕 3,5 참조)또한 성경은 자주 천사의 출현을 꿈이나 환시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요셉은 꿈을 꿉니다.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마태 1,20; 2,13.19 참조) 후에 아기 예수님을 발견하고 경배했던 동방 박사들은 꿈을 통해 지시를 받습니다.(마태 2,12) 우리는 중요한 행동을 하는 경우 모든 결정이 꿈을 통해 하느님께서 내리신 계시에 기초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메시지를 전하는 자연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왔습니다.(마태 2,2) 동방 박사들은 별을 연구했고 별들을 통해 메시지를 알아들었습니다. 우리도 자연과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들려주는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종의 경계를 넘어서는 대화는 인간 공동체보다 더 큰 세계의 일원으로써 우리가 갖는 생득권의 일부분입니다. 도마뱀, 새, 고라니, 소나무, 바람, 또는 바위와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수천 명의 새로운 친척들, 곧 야생의 매혹적인 존재를 막 발견한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새나 메뚜기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어리석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 자연에 기초한 사람들은 곰과의사소통하지 못하거나 별의 노랫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깁니다. 자연 안에서 벙어리와 장님이 되는 우리는 우리가 우리를 낳은 세상으로부터 얼마나 소외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평범한 시·공간이 성스러운 것으로 변화되는 체험을 하기 위해서 자연으로 가십시오. 주의를 끄는 것에 초대를 받았다고 느낄 때까지 방황하십시오. 그것은 덤불, 풀잎, 돌, 개미탑이 될 수도 있고 무지개나 별자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앉아서 가깝게 그것들을 관찰하고 일기에 적으십시오. 그리고 자연에 당신 자신을 소개하고 가장 깊은, 가장 친근한 진실을 말하십시오. 평범한 인간언어 이외에, 노래, 시, 비언어적인 소리, 이미지, 감정, 몸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 귀, 눈, 코, 피부, 직관, 느낌, 그리고 상상력으로 시오. 자연은 우리에게 방대한 교실에서하늘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입니다.

문종원 베드로 신부
  | 01.06
466 18.8%
오늘은 예수님의 성가정에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 오셨습니다. 멜키올, 발타살, 가스팔로 불리는 동방박사들입니다. 동방박사들은 하늘에 나타난 큰 별을 보고 예수님을 찾아와 경배 드리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오늘을 '주님 공현(公顯) 대축일'이라 부르는데 공현이란 '나타나다'는 뜻으로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난 예수님께서 유다인을 넘어 온 세상의 구세주로 드러나심을 기념하는 대축일입니다. 성탄의 기쁨이 유다인에 국한되었다면 공현은 예수님께서 만민의 구세주로 드러난 의미 깊은 날이므로 어쩌면 우리에게 더 큰 축일인지도 모릅니다.

메시아의 탄생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지만 가장 박대한 사람을 꼽으라면 헤로데 왕이요, 정성된 준비로 잘 맞이한 사람으로는 동방박사를 지목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헤로데 왕은 70살이 다 된 나이 많은 임금이었으며 경륜과 지혜가 부족하여 사방에서 도전을 받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유다인들이 왕에 도전하면서 반기를 들었고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을 신축하는 등 노력했지만 왕권은 마음먹은 대로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헤로데 임금은 예민해져갔지요. 그 즈음에 동방박사들이 찾아와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마태 2,2)하고 물었으니 헤로데 임금으로서는 기절초풍할 노릇이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마태 2,3).

오늘 복음이 그때의 놀라움을 잘 전해줍니다. 불안에 떨던 헤로데 임금은 수석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아놓고 그리스도께서 나실 곳이 어디인지를 찾게 하고 관심을 표명하는 척하지만 결국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이와는 반대로 동방박사들은 밤하늘의 별을 보며 하늘의 뜻을 살피다가 때가 되어 베들레헴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고대했던 대로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 예수님을 보고 기쁨에 넘쳐 엎드려 경배하며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봉헌합니다. 구세주를 만나 뵌 이들은 벅찬 감동을 간직한 채 자기들 나라로 돌아갑니다.

똑같이 메시아의 탄생을 알고 있었지만 결국 수천 년 기다려온 구세주 메시아를 만나 뵌 사람은 동방박사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예수님과 가까이에 있어도 관심이 다른 곳에 있으면 만날 수도 없고 예물을 드릴 수도 없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면 아무리 먼 곳에 있어도 주님을 만날 수 있고 찬미와 감사의 예물을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신 아기 예수님께 어떤 예물을 드릴 수 있을까요?

샌디에고의 한 병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온 몸이 마비된 윌리엄 마틴이라는 환자가 입원을 했습니다. 아침마다 찾아오는 고통 속에서 그는 몸을 뒤척이지도 못하고 땀을 닦지도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극도의 고통을 덜기 위해서 많은 양의 약을 먹어야 했는데 약의 부작용으로 눈물샘마저 말라버리고 말았습니다. 돌보는 간호사들조차도 그의 힘겨운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외면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 어느 날 안타까움에 외면하는 간호사를 보며 마틴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슴을 파고드는 고통을 참기는 어렵지만 나는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고통은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나 삶의 어려움은 있습니다. 남보다 내 남편이 무능하다거나, 내 아내가 살림을 소홀히 한다거나, 남의 자녀는 다 잘하는데 내 자녀는 형편없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정은 생지옥이 되지요. 이렇게 남과 비교해 잘못된 것만을 찾아 낸다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어 지금까지의 삶에 만족하고 감사를 드리다보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주변에 얼마나 감사할 일이 많은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가족은 그 존재 자체로도 감사의 근원이 되고 힘이 되는 것입니다. 삶이 바뀌지요.

오늘 오신 주님께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고통을 예물로 봉헌하는 삶을 살기를 결심하면 어떨까요?

이기양 신부
  |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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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셋, 어린 시절 손꼽아 기다리던 날들이 있습니다. 성탄과 축일이나 생일에 선물을 기대하며 며칠이 하 루 같이 지나갔으면 하고 바랐던 그 시절의 모습은 미소를 짓게 합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마음은 항상 설렘을 가져옵니다.

오늘 우리는 이제나저제나 하는 마음으로 여행을 하는 세 사람의 소식을 듣습니다. 가스파르, 멜키오르, 발타사르라는 동방 박사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유다의 임 금, 모든 사람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을 뵙고 경배한다는 열망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여행 중에 겪게 된 여러 가지 위험과 굶주림, 목마름, 외로움도 기쁨으로 이겨 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별을 따라온 그들은 그토록 손꼽아 기다리던 아기 예수님을 뵙고 경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정성껏 준비 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린 다음 자기 고장으로 돌아갑니다. 세 사람의 동방 박사들이 예수님을 찾아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당신 자 신을 동방 박사들에게,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드러내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신 이 놀라운 일이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일깨워 줍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알아본 것은 아닙니다. 또 한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받아들인 것도 아닙니다. 헤로데와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 역시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습니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이 에서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기 예수님을 배척할 뿐이었습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한 줄기 빛이 올바른 방향을 알려줍니다. 세상의 어둠, 삶의 어둠, 마음의 어둠을 거둬내기 위해 오신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우리 눈의 비늘, 마음의 비늘을 떼어내고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그분은 보이지 않으나 우리 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의 삶에 빛이 되어 주시고, 힘이 되 어 주심을 믿고 희망합니다. 동방 박사들이 별을 따라 예수님께 왔다면, 우리는 세례라는 믿음과 희망의 별을 따라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성경 말씀과 성찬의 신비 안에 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바치는 은총의 직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이웃의 육체적, 영적 굶주림과 목마름에 함께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이웃을 통해 우리에게 오시고 당 신을 드러내고 계십니다. 구유에 누워계신 아기 예수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그분의 계심을 일러주는 별, ‘시대의 징 표’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당신을 세상에 드러내신 공현 사건은 오늘도 우리 신앙인의 삶을 통해 계속되어야 합니다.

▥ 서울대교구 조성풍 아우구스티노 신부 2016년 1월 3일
  |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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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푸른 겨울밤 하늘, 총총히 빛나는 별들 중에 유난히 반짝이는 별이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그 별을 알아봅니다. 별의 인도로 예루살렘에도착한 박사들이, 경배를 드릴 유다인의 왕이 어디에 계시냐고 묻습니다. 이 말을 듣고 예루살렘이 온통 술렁거립니다. 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자기 자식까지 죽인 헤로데 왕은 당황합니다. 이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정확한 때를 알아본 다음,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부탁합니다. “가서 경배해야 할 아기를 잘 찾아보시오. 나도 가서 경배할 터이니 찾거든 알려 주시오.”

물론 이는 별이 나타난 때에 태어난 아기를 제거하기 위한 계략입니다. 이 순간 우리는 태어날 아기를 중심으로, 서로 대치되는 움직임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의 왕권에 노예가 되어 탄생한 아기를 제거하려는 헤로데의 모습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마음을 활짝 열고 탄생한 아기예수께 경배하기 위하여 자기가 있는 곳을 떠나는 동방박사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선명하게 대비되는 두 가지의 모습을 통해서 성령께서는 새해에 우리가 어떠한 태도로 살아가야 할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어집니다. 왕의 부탁을 듣고 박사들은 길을 떠납니다. 그때 동방에서 본 그 별이 그들을 앞서가다가 마침내, 그 아기가 있는 곳 위에 멈춥니다. 이를 본 박사들은 대단히 기뻐하면서,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경배를 합니다. 그리고 보물 상자를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립니다.

말씀은 계속 이어집니다. 박사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하느님의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해서 자기나라에 돌아갑니다. 하느님께서도 자기라는 것에 갇혀 마음의 문이 굳게 닫혀 있는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으셨는지 그를 피하도록 인도합니다.

성령께서는 2017년 새해 벽두에 단도직입적으로 우리각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떠나라!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떠났듯이….

그렇습니다. 새해에는 나를 끝까지 사랑과 용서로 비추시는 별이신 주님을 바라보며 떠나는 것입니다. 나를 지금까지 옭아매고 노예화 시켰던 것이, 내 안에 들어있는 그 어떤 것(지나친 집착, 탐욕. 욕망 등)이었다면, 거기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떠난 만큼 자유가 나를 감쌉니다. 내 안에 평화가 스며듭니다. 때로는 그 어떤 미련이, 허전함이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주님의 빛이 채워집니다.

오늘 독서의 한 부분입니다.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자,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마음을 활짝 열고 힘차게 떠납시다. 주님의 인도 안에서 축복의 한 해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 서울대교구 홍성만 미카엘 신부 : 2017년 1월 8일
  |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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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님 공현(公顯) 대축일입니다. 예전에는 ‘삼왕내조축일(三王來朝祝日)’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이날에 교회는 아기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강생하신 사실이, 세 명의 동방 박사들을 통하여 온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지게 된 것을 기념합니다.

1. 별

독립운동가인 윤동주(尹東柱) 시인이 쓴 ‘별 헤는 밤’의 한 구절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 별 하나에 사랑과 / 별 하나에 쓸쓸함과 /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 별 하나에 시(詩)와 /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여기서 시인은 ‘별’을 자의식(自意識)을 바라보는 도구로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2 참조)라고 말한 동방 박사들의 얘기를 들려줍니다. 여기서 그 별은 정말로 존재했을까? 어떤 유형의 별이었을까 하는 물음이 자연스레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게 됩니다.

이에 대하여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별자리가 원동력이며 외적이고 내적인 떠남을 위한 첫 신호(信號)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마음의 감동을 느끼지 않았다면, 신호는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했을 것입니다”라고 「나자렛 예수」에서 설명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설령 여러 사람이 어떤 별을 동시에 본다손치더라도 모두가 똑같이 생각하고 느끼지 않을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입니다.

2. 동방 박사 세 사람

지난 12월 17일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여든 번째 생신날이었습니다. 그날 교황님께서는 성 베드로 광장 주변에 있는 노숙자 여덟 명을 숙소로 초대해 아침 식사를 함께하셨습니다. 이어서 로마에 거주하시는 추기경님들과 함께 특별 미사를 봉헌하셨습니다. 교황님께서는 미사 중에 “지난 며칠 동안 나이 드는 것이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고 고백하시면서 “제가 평온하고, 깊은 신앙심으로, 풍성하고, 기쁘게 지낼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라고 말씀을 마치셨습니다.

교회의 전승 안에서 동방 박사들의 이름은 멜키오르, 발타사르, 가스파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이 등장하는 성화(聖畵)를 살펴보면, 그들의 면모에서 온 인류가 드러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멜키오르는 노년(老年)과 백인(白人)을, 발타사르는 중년(中年)과 흑인(黑人)을, 가스파르는 청년(靑年)과 황인(黃人)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 그들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동방 박사 세 사람의 모습을 통하여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되는”(에페 3,6) 삶을 찾아 살아야 하겠습니다.

3. 세 가지 예물

마태오 복음사가는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고 전해줍니다.(마태 2,11 참조) 전통적인 해석에 따르면, 이 예물들은 예수님께서 참사람(몰약)이시고 참하느님(유향)으로서 하늘과 땅의 왕(황금)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한편 성서학자 아르멜리니(F.Armellini)는 몰약(沒藥)이 지닌 의미를 ‘주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인간’이라고 덧붙여 줍니다.(아가 1,12; 3,6; 4,6.14; 5,1.5 참조) 그러므로 몰약은 하느님의 정배(定配)인 아름다운 이스라엘이 풍기는 사랑의 향기를 뜻합니다.

이렇게 볼 때에 현대를 살아가는 하느님 백성에게 이 세 가지 예물은 향주삼덕(向主三德), 곧 믿음(유향)과 희망(왕)과 사랑(몰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신망애(信望愛)의 삶을 주님께 봉헌함으로써 “우리 위에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우리 위에 나타나는”(이사 60,2 참조) 모습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교형자매 여러분, 주님 공현 대축일을 지내면서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어떤 봉헌을 주님께 드리며 살았는지 다시금 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 서울대교구 정연정 신부 : 2017년 1월 8일
  |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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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새해에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공현이란 ‘나타남 혹은 나타내어 보여줌’이라는 뜻으로, 주님 공현이란 말은 주님께서 스스로 당신 자신을 공적으로 세상에 나타내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복음에서 동방박사들은 먼 길을 찾아서 아기 예수님을 찾아 경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별을 보고 구세주의 탄생을 알아내고, 먼 곳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 와서 구세주를 찾았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별의 인도로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구세주를 만난 것에 기뻐하면서 예물을 드렸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유다인이 아닌 이방인이었습니다. 이는 유다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공경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즉, 예수님은 유다인들만의 구세주가 아니라 모든 이의 구세주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평생 찾아야 하는 분입니다.

동방의 세 박사는 아기 예수님께 선물로 황금, 유향,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황금은 가장 값어치 있는 선물로 당시에는 임금께만 바치는 보물이었습니다. 이는 아기 예수님을 이 세상의 진정한 왕으로 알아보았다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또한 유향은 사제들이 제사 때 분향하는 일종의 향료로, 기도의 상징입니다. 제사 때 향을 피워 분향을 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하느님께 올려바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몰약은 시체에 바르는 방부제의 일종으로, 슬픔과 고난을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 고난과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실 분임을 알아보았다는 위대한 예언이 담겨 있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아기 예수를 구경거리나 호기심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참된 예배와 경의를 표했습니다. 그들은 별의 인도로 찾아낸 구세주의 탄생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최대의 정성으로 예물을 봉헌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동방박사들은 진리를 찾으려고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머나먼 길을 별을 보고 찾아와 예루살렘에서 구세주의 탄생을 알아냅니다. 오늘 복음에서 아기 예수님은 포대기에 싸여 말구유에 누워 계셨습니다. 한없이 작고 약한 구세주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구원의 보편성과 개방성이 신비롭게 담겨있습니다.

우리가 평생 찾아야 하는 것은 바로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자체이시며 선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며 우리를 행복에 다다르게 해주십니다. 주님은 진리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자에게 발견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진리가 바로 주님께로 가는 길입니다. 우리도 올 한 해 동안 진리를 찾고 진리 안에서 사는 사람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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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교구 염수정 추기경 : 2019년 1월 6일
  | 01.05
466 18.8%
1984년 성인이 되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한국을 방문하였습니다. 103위 성인의 시성식을 위해서 방문하였습니다. 당시는 한국교회 설립 20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103위 시성식과 한국교회 설립 200주년의 공식 표어는 ‘이 땅에 빛을’이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선교사 없이 자발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였습니다. 1784년 시작된 교회는 많은 박해를 겪었고, 순교자가 있었지만 신앙을 지켜왔고, 103위 성인을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시 신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기억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여의도에서 있었던 ‘103위 시성식’입니다. 교황님과 사제단이 제대로 입장하는 동안 통로에서 안내를 맡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교황님의 신학교 방문이었습니다. 저의 자리는 통로 쪽에 있었고, 교황님께서 제대로 입당하실 때 제 옆을 지나가셨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게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부족함이 많았던 제가 신학교를 잘 마치고 사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땅에 빛이 되신 103위 성인의 전구하심이라 생각합니다.

5년 뒤인 1989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두 번째로
한국을 방문하였습니다. 당시 한국교회는 제 44차 세계성체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세계 성체 대회(International Eucharistic Congress)는 전 세계의 성직자, 평신도가 성체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높이고,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대회입니다. 103위 시성식이 한국교회를 알리는 자리였다면 성체대회는 한국교회의 능력을 보여주는 자리였습니다.

성체대회의 공식 표어는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였습니다.
저는 당시 군대를 다녀왔고 복학하였습니다. 기억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여의도에서 있었던 ‘성체대회 폐막미사’입니다. 저는 제단에 올라가서 미사에 참례하였고, 성체 분배를 하였습니다. 5년 전인 시성식 때는 통로 안내를 맡았지만 성체대회에서는 성체분배를 하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괌에서 온 참가자들의 안내였습니다. 덕분에 성체대회의 많은 행사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벗이셨던 돔 헬더 카마라 대주교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여러 나라의 공연도 보았습니다.

25년 뒤인 2014년에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한국을 방문하였습니다.
아시아 청년대회와 124위 시복식을 위해서 방문하였습니다. 시복식의 공식 표어는 ‘일어나 비추어라.’였습니다. 당시 한국은 ‘세월호 참사’로 많은 아픔이 있었습니다. 교황님은 세월호 희생자의 손을 잡아 주셨고, 희생자의 가족에게 세례를 주셨습니다.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는 교황님의 말씀은 세월호 유족들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한국교회는 교황방한 준비위원회를 발족하였습니다.

교구청에 있던 저는 감사하게도
방준위에서 ‘영성신심분과’를 맡았습니다. 기억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기도문 제작’입니다. 교황방한과 시복식을 위한 기도문을 제작하였고, 교회의 인준을 받아서 나누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순교자들의 영성을 기억하는 자료집 발간입니다. 함께 하였던 분과위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30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통로 안내자, 성체 분배자에서 분과 위원장이 되었습니다. 이 땅에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평화를 일어나 비추는 것이 제게는 영광이었습니다.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아주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습니다. 멀리 동방에서 별을 따라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서 온 세 명의 박사이야기입니다. 멜키올과 발다살 그리고 가스발입니다. 동방박사들이 먼 길을 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인도해준 ‘별’을 따라 왔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공, 명예, 권력, 부와 건강이라는 별을 따라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별은 참된 진리의 별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넘어지고, 남을 속이게 되고, 분쟁과 갈등으로 공동체를 파괴하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따라가야 하는 별은 무엇이어야 할까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자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황금, 유향, 몰약’을 선물로 준비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드릴 선물은 무엇이어야 하나 생각합니다. 우리가 드려야 하는 첫 번째 선물은 첫 예물은 희생이었으면 합니다. 두 번째는 인내였으면 좋겠습니다. 세 번째는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는 마음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2021년도에는 ‘말씀’의 별을 따라 ‘희생, 인내, 감사’의 선물을 준비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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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조재형 신부
2021년 1월 3일
  |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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