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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감사의 마음
조회수 | 2,887
작성일 | 07.09.28
오늘 우리는 하느님께 그 동안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드리면서, 또한 우리에게 생명을 얻고, 생명의 길을 가도록 신앙을 전해주시고, 이 땅을 물려주신 조상들의, 또 친지들의 영혼들을 위해 이 자리에 함께 모였다. 우리 조상들은 오늘 추석을 지내면서 일년 동안 제 때에 비를 주시고, 태양을 비추어 주시어 오곡이 풍성하게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해 주심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또 조상들의 은덕을 기억하면서 제사를 지내온 분들이다. 그리하여 이 날은 모두가 넉넉한 마음으로 술과 음식을 서로 나누며 지냈던 것이다.

고향을 찾아 부모님께로 많은 분들이 가기도 했지만, 또한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이 때를 기해서 자리를 함께 한 가족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그분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면서 더욱 가족들 간에 화목한 사랑의 성가정이 되도록 기도하여야 하겠다. 이렇게 서로 가족들이 만나는 것은 기쁘고도 감사하여야 할 일이다. 그러니 우리도 언제나 감사드리며 사는 생활이 되어야 하겠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저녁에 하루 동안의 모든 은혜에 감사드리고, 한 주간을 마치면서 주일 미사를 봉헌하면서 감사드리고, 한 달을 감사하면서 지난 날 모두를 감사드릴 수 있는, 그래서 오늘 추석,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더 잘 살 수 있도록 해야겠다.

이렇게 지나간 모든 것에 감사드리면서 우리는 우리 선조들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 더욱 열심히 기도할 수 있다. 또한 우리의 형제들, 은인들과 친척들 모두를 기억해 드릴 수 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 신앙 안에 우리의 모든 형제였던 이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모든 일에 있어 감사드리는 마음을 갖고, 먼저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드리기로 하여야 하겠다. 아무리 조그만 일이라도 인도해 주신 하느님께 진정으로 감사를 드리며 그분께 찬미와 영광을 바칠 수 있을 때, 우리는 보다 적극적인 신앙생활도 할 수 있다.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에서도 먼저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드리도록 하면서 그 외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더불어 주실 것을 믿으며 항상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 모두는 우리가 가진 바를 이웃과 나누며 주님께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다짐하는 오늘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기쁨이 넘치는 한가위가 되도록 하자.

오늘 복음에서 이 부자가 왜 어리석은 자가 되었는가? 세상의 재물이 모든 것이라고 믿었던 때문이다. 자기의 재산이 자신의 모든 것을 보장해 주는 것으로 생각을 하였다. 그 순간에 그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 영적으로 파산을 했다고 하셨으며, 하느님의 눈에는 그가 전혀 부자로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장 큰 비극은 육체적 죽음보다는 영생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산은 무엇이건 좋은 것이다. 주님께서 만드신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옛 성인은 재물이란 것이 사용하는데 있는 것이지, 소유하는데 있지 않다고 하였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결심을 주님께 바치며, 지금까지의 모든 주님의 은혜, 그리고 우리보다 먼저 돌아가신 조상들과 부모 형제 친척 은인들이 주님의 생명에 참여하시도록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드리며, 지난 1년간의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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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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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기묘한 이야기

예로부터 우리 민족에게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마땅히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 첫째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고(孝), 둘째는 형제간에 우애롭게 지내는 것이며(悌), 셋째는 자녀들을 자애롭게 돌보는 것입니다(慈). 가족을 이루는 구성원들이 서로 사랑하고 아끼면서 화목하게지내는 것보다 더 소중하고 값진 것이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문제는 몰라서 못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알면서도 안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부모 입장에서 보면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말은 하지만, 아무래도 더 예쁜 자식이 있고 더 정이 가는 자식이 있기 마련입니다. 또, 더 기대가 되는 자식이 있고, 더 미더운 자식이 있기 마련입니다. 반면에 미운 오리 새끼도 꼭 하나쯤은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은연중에 차별을 하게 됩니다.그래서 좀 덜 잘나고, 덜 예쁘고, 덜 미더운 자식은 이래저래 치이다가 마음의 상처를 잔뜩 받습니다. 왜 나만 미워하느냐? 도대체 나에게 해준 것이 뭐냐? 마음 가득 부모님에 대한 미움을 안고 살아가다보면 자기보다 더 사랑받는 형제에게 그 미움이 고스란히 전가되기 일쑤입니다.

별것 아닌 일로 트집을 잡고 다툼을 벌이면서 화풀이를 합니다. 부모에게 공평하게 사랑을 받지 못한 것도 억울한데 싸움에서까지 질 수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못난 놈이 성질까지 나쁘다고 야단치는 부모님의 뭇매입니다. 부모는 누구나 자식이 잘 되기를 희망합니다. 건강하고 화목하게 안정적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모든 자식이 똑같이 공평하게 잘 살아준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당연히 차등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더 잘 사는 자식이 있고, 그렇지 못한 자식이 있습니다. 출세도 하고, 돈도 많이 벌고, 잘나가는 자식이 있는가하면, 하는 일도 변변치 못하고 늘 기운 없이 풀이 죽어 있는 자식도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부모는 힘들게 사는 자식에게 마음이 쓰입니다. 형제끼리 서로 돕고 나누면서 잘 살아주면 좋으련만, 그것도 눈치가보여 대놓고 이래라 저래라 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서로 알아서 잘 돕고 살아주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부모에게 상처를 받고 자란 사람이 커서 부모가 되면 그 상처를 고스란히 자녀들에게 대물림 한답니다. 참 기묘하죠? 부모의 자애로움이 형제들 간에 우애를 가져오고 자연스럽게 부모에게 효도를 하게 됩니다. 반대로 부모의 차별이 형제들 간에 다툼을 일으키고 결국은 불효를 하게 합니다. 기묘하죠?

한가위입니다. 형제들이 모여 음식을 준비하고 나누면서 부모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가족의 사랑을 나누는 아름다운 명절입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자리에서 기묘한 이야기는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내가 풀어나가는 기묘한 이야기는 공평한 자애로움일까요? 아니면 차별 속에 상처를 주고받는 씁쓸한 아픔일까요? 우리 모두에게 마음 따뜻한 한가위이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 수원교구 이근덕 헨리코 신부
  |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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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인 ‘한가위’입니다.

한가위는 중추절, 가배, 중추 그리고 추석 등으로도 불립니다.
또한, 일 년 중 달빛이 가장 좋다 하여 월석이라고도 불립니다. 한가위의 ‘한’은 ‘크다’는 뜻이 있으며, ‘가위’는 8월의 한 가운데, 또는 가을의 가운데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크다’와 ‘가운데’라는 말이 합해진 한가위는
‘가을의 한 가운데 있는 큰 날’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추수의 계절 가을의 중심인 한가위가 되면 우리 조상은 줄다리기, 소싸움, 고사리 꺾기, 강강술래, 씨름 등 다양한 놀이문화를 즐겼습니다. 또한, 결실의 계절답게송편과 토란국, 닭찜, 누름적, 화양적 등 풍성한 음식을 차려놓고 마을잔치를 열어 그동안의 고생을 풀어냈습니다.

옛 성인들의 지혜서인
‘벽암록’이라는 책에는
“줄탁동기”라는 명언이 등장합니다.

알속에서 자란 병아리는 부리로 껍데기 안쪽을 쪼아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오려고 하는데, ‘줄’은 바로 병아리가 알껍질을 깨기 위하여 쪼는 것을 가리킵니다. 어미 닭은 품고 있는 알 속의 병아리가 부리로 쪼는 소리를 듣고 밖에서 알을 쪼아 새끼가 알을 깨는 행위를 도와주는데, ‘탁’은 이렇게 어미 닭이 알을 쪼는 것을 가리킵니다.

추수의 계절을 즐기는 한가위도
인간의 노력과 하느님의 도우심이 맞닿아 풍성한 결실을 볼 수 있었음을 알고 즐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콩 한 쪽도 나누어 먹는 선한 심성을 지녔던 조상의 지혜를 물려받은 우리도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이웃과 나누는 자비의 마음을지니고 실천한다면 더욱 풍성하고 기쁨이 넘치는 한가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탐욕에 빠진 어리석은 부자와 같은 모습으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다시금 경고하십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카 복음 12장 15절).”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우리는 개인적 욕심을 끊고, 이웃과 나누는 사랑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살아간다면 하늘에서 들려오는 이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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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박희훈 신부
  |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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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나눔으로 관계의 빈곤을 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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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교구청에 장례미사가 있어 갔다가
오산성당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서울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아보았습니다. 어떤 보험회사의 어여쁜 아가씨 음성이었습니다.

저는 보험은 관심 없다고 말하고 끊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5천 원짜리 상품권이 당첨되었으니 꼭 이메일을 확인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보험 상품 한 가지만 설명을 해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러실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일단 들어보시고 결정하시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이미 많은 보험을 들어놓아 더 이상 보험이 필요 없는 사람처럼 생각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 달에 3만 5천원을 내면
다른 보험이 들어있어도 상관없이 모든 질병의 모든 병원비가 지원되고 나중에 원금도 되돌려주고 사망하게 되면 2억 5천이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20년만 부으면 평생 혜택을 볼 수 있고, 특별히 이미 보험을 가입한 사람들도 다른 보험 가입 여부에 상관없이 돈이 지급되기 때문에 보험이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드는 아주 좋은 상품이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워낙 설득력 있게 설명해 주어서 제가 사제가 아니었으면 아마 그 보험을 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모든 의료비가 제가 속해 있는 곳에서 다 나온다고 설명을 해 주고 좋은 보험이기는 하지만 저에게는 필요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분이 이렇게 좋은 것을 왜 들지 않느냐고 의아해 하기에,
그냥 “저는 보험을 들지 않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람이 미래에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보험을 하나도 안 들고 사시는 분이 있느냐고 매우 신기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분을 이해시키기 위해 제가 천주교 신부라고 신분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그 분도 매우 끈질기게 개신교 전도사님들도 그 보험에 많이 가입했다고 하면서 성직자들도 미래에 대비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저는 전도사분들은 가족들이 있으니 보험이 필요하지만 저희 같은 사람은 혼자 살기에 보험이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돈이 있어도 쓸 데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부모님을 잡고 늘어졌습니다.
제가 죽으면 2억 5천이 부모님께 가게 되는데도 들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마치 제가 죽기를 바라는 것처럼 부모님까지 잡고 늘어지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모든 것을 하느님 뜻에 맡기고 살기 때문에 부모님도 주님께서 잘 보살펴 주실 것이고, 그런 돈이 없어도 저희 부모님은 부족함 없이 잘 사시고 계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저는 이런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는 사제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참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으로 그 자매와의 대화를 마쳤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한가위 미사 때마다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보게 됩니다.

부자는 소출을 많이 거두어서
더 큰 창고에다 곡식과 재물을 모아놓으려고 하지만 사실 오늘이 그 부자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부자는 이미 남들보다 재물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런데 왜 더 많은 재물을 모아두려고 하는 것일까요?
아무리 부자라고 하더라도 불명확한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아직도 부족하기 때문에 참으로 부자가 아니라 가난한 것입니다. 지금 삼성가에서 재산싸움을 하고 있는데 저는 그들도 가난해보입니다. 아직도 돈이 부족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 우리 책상 서랍을 열어봅시다.
혹은 책장이나 옷장을 열어봅시다. 1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이 얼마나 되는지 살펴봅시다. 아마 상당히 많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미래에도 사용될 확률이 매우 적습니다. 만약 그것들을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면 그 사람들이 매우 감사하게 사용할 수 있었을 텐데, 그냥 ‘혹시’라는 생각 하나 때문에 나도 사용하지 않고, 꼭 필요한 사람들도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어리석은 부자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미래를 위해 비축해 두다가 자신도 사용하지 못하고 남들을 위해 좋은 일도 한 번 하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이란 뜻입니다.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나눌 줄 모르는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가난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미래에 대해 그렇게 불안해하고
자꾸 더 가지려고만 하는 것일까요?

이는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입니다.
하느님도 사람도 나의 미래를 완전히 책임져줄 수 없음을 스스로 느끼기 때문에 빈곤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즉 물질적인 빈곤감의 근본적 원인은 관계의 빈곤감에서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약삭빠른 청지기의 비유에서
오히려 재물을 사용하여 관계의 빈곤을 채우라고 말씀하십니다. 관계의 빈곤은 상대를 위해 나의 소유를 나누어가질 때 해결됩니다. 하느님은 당신 자신을 우리와 공유하시고, 우리도 하느님께 우리가 가진 것을 봉헌합니다. 모든 관계는 자신의 것을 나눌 때 이루어집니다.

저는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것을 바칠 수 있어야 더 가까운 관계인 것을 알았으면서도, 요즘 하느님께 저의 시간 중 졸린 시간만을 바쳐서 성체조배 하면서도 자주 졸았던 것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만약 오늘 같은 명절 때 자녀들이 부모에게 오면서
손에 아무 것도 들고 오지 않았다면 아무래도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관계는 주는 것이 없이는 형성되지 않습니다.

일해서 번 돈을 하나도 가져다주지 않는 남편이 아내와 좋은 관계가 될 수 있을까요? 내가 가졌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그것을 나눔으로써 관계의 빈곤을 극복하라고 하느님께서 주신 밑천인 것입니다.

대구교구의 최영배 신부님 강의를 요즘 듣고 있습니다.

그분은 처음에 길에서 냄새가 나서 아무도 다가가려 하지 않는 행려자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집에 모시고 와서 씻겨주고 사제관에서 함께 재워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행려자 숙식시설을 만들게 되었고, 지금은 아프리카에도 이런 시설을 계획 중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신부님이 처음 신학교를 들어가시려고 할 때
신체검사에서 불합격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고등학교도 검정고시로 통과하고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늦게야 신학교에 지원하게 되었는데 고혈압이 있어서 불합격 판정이 났던 것입니다. 당시에 자신이 공장에 나가야 해서 예비신학생 모임에 끝까지 함께 있을 수 없었는데 성소국장 신부님이 출석체크를 해 주고 자신은 빠져나와 공장에서 일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불합격되었으니 괴롭기도 하면서 자신을 그렇게까지 밀어준 성소국장 신부님께 미안하기도 하셨던 것 같습니다.

교구청에서 불합격 소식을 듣고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어서 점심, 저녁도 안 먹고 교구청에서 추위에 떨며 밤 10시까지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소국장 신부님이 차를 몰고 돌아오실 때 차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말씀드리고 싶었던 단 한 마디를 하셨습니다.

“신부님 그동안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다른 희망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오직 이 말씀만을 드리기 위해 12시간 정도를 떨며 기다렸던 것입니다. 이에 감동한 성소국장 신부님은 자신을 데리고 방으로 가서 먹을 것도 주고, 밤에 주교님을 찾아가 잠도 못 자게 하면서 2시간 동안이나 그 학생을 합격시켜 달라고 졸랐다고 합니다. 결국 주교님으로부터 신체검사 재검을 받아오면 그렇게 해 주겠다고 허락을 받고 자신이 아는 병원에 가서 의사의 가짜 진단서를 만들어 주교님께 드리고 합격을 시켜주어서 지금의 신부님이 되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성소국장 신부님은 자신이 낙제했음에도 불구하고 12시간이나 자신을 기다렸다가 감사의 말을 해 주었던 그 청년이 도리어 고맙고 미안해서 굳이 할 필요도 없는 고생을 하면서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주었던 것입니다.

만약 사람도 작은 감사의 마음을 주는 것에 대하
그렇게 감동하고 더 많은 복으로 갚아주려는 마음이 있다면 하물며 하느님이야 우리가 감사할 줄 알 때 어떠한 것으로 갚아주시겠습니까? 못된 소작인들의 비유에서 주인에게 도조를 바치기를 원치 않아 망한 그 소작인들처럼, 혹은 오늘의 부자처럼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만이 미래를 걱정하기 때문에 걱정하는 대로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처럼 자신의 아들까지 아낌없이 봉헌할 줄 아는 이에게는 복을 하염없이 내려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신 것입니다.

오늘같이 풍요로운 한가위 날 감사할 줄 압시다.
감사해서 하느님께 봉헌하고 이웃과 나눌 줄 압시다. 물질로 관계의 풍요로움을 창출합시다. 물질을 위해 관계의 빈곤을 초래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악은 관계의 빈곤함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한가위의 의미는 풍요한 재물을 이용해 관계의 풍요로움을 창조하는 때여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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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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