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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나비는 거저 되는 것이 아니듯이…”
조회수 | 3,290
작성일 | 08.07.03
찬미 예수님,
가끔 나서는 뒷산 산책길에 만나는 나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신비로우리만큼 아름다운 하느님의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늘거리는 아름다운 날개 짓이나 한지 같은 날개의 곱고도 오묘한 색깔, 잡아도 없는 듯 여리고 가벼운 나비의 모습은 누구나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하지만 이런 나비가 애벌레가 변해서 된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누가 이 아름다운 나비의 모습을 보면서 애벌레의 징그러운 모습을 연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잘 연상되지 않는 이 사실에서,
우리는 너무도 중요한 교훈 하나를 얻게 됩니다. 사실 움직임조차 흉하고 징그러운 애벌레가 너무도 아름다운 모습의 나비로 바뀌는 그 변화는 결코 그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깜깜하고 흉한 꼬치 속에 갇혀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면서까지 애벌레는 처절한 몸부림을 치지만, 끝끝내 참는다면 마침내는 아름다운 새 생명으로 태어나 그 인고의 세월이 헛되지 않았음을 인정받게 된다는 것이 바로 나비의 변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일 것입니다.

신앙의 박해가 풍미했던 1836년.
이러한 교훈을 삶으로 보여준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꽃 같은 열다섯의 나이로 당시로는 낯설고 머나먼 땅, 마카오로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열정 하나로 사제의 꿈을 품고 떠난 젊은이였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기후도 음식도 문화도 맞지 않는 그 이국땅, 어쩌면 영영 살아서는 못 돌아올지도 모르는, 약속된 것 하나 없는 그 땅에로 미련 없이 떠난 젊은이였습니다. 풍토병에도 걸리고, 영양실조에도 걸리고, 풍랑도 만나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습니다.

무엇보다도 9년이라는 기나긴 인고의 세월 끝에
사제 서품을 받은 지 채 1년도 되기 전에 결국 그 젊은이는 신앙의 박해 앞에서 참수형으로 새남터의 한 줌 이슬로 남게 되는 불운의 한 젊은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그 젊은이의 삶을 보고 아무도 불운의 삶이라고 기억하지만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처럼 세상의 미움과 박해 앞에서도 끝까지 참는 사람이었기에 구원과 승리의 화관을 쓰신 아름다운 순교자요, 수많은 한국 교회의 성직자들과 신앙인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새 생명을 얻게 된 젊은이라고 기억합니다.

그 젊은이가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대축일로 기억하는 한국의 최초의 사제이자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입니다.

오늘은
인고의 노력으로 찬연한 아름다운 새 생명을 얻게 되는 나비와 같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의 그 숭고한 삶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이러한 오늘 우리 또한 예수님 사랑에 힘입어,
참으로 끝까지 참고 인내하는 신앙인으로서의 인고의 시간을 통해 참 신앙인으로 거듭나야 함을 절실하게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안일함에 젖어 그 어떠한 고통도 피해가려고만 노력하는 사람의 신앙은 더 이상 나비처럼 변하지 못하는 애벌레 신앙이요, 이미 죽은 신앙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편리와 쉽게 타협하는 우리들입니다.
당장의 욕심에 신앙은 언제나 뒷전으로 밀어내기 쉬운 우리들입니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쉽게 하느님을 원망하는 우리들입니다. 작은 시련 앞에서도 좌절하고 포기하는 우리들입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오늘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은, 마치 애벌레가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처럼 어떠한 세상 유혹 속에서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내일에 대한 희망만 있다면, 우리는 그 숱한 삶의 어려움을 딛고 다시 한 번 아름답게 태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너희는 나 때문에 세상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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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이형국 아우구스티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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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의지를 내려놓기--증거

언젠가 마카오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김대건신부님께서 공부하셨던 신학교 조그마한 정원에 서서 그 어린 소년들이 이 낯선 땅에서 얼마나 고향이 그리웠을까 생각하며 마음이 저려왔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무엇이 이 낯선 땅까지 소년 김대건을 찾아오도록 하였을까요? 도대체 무엇이 청년 김대건 신부님으로 하여금 조그마한 목선에 몸을 싣고 깊은 심연의 바다를 건너게 하였을까요?

지금 세상엔 ‘경제 살리기’가 마치 우상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입니다. 잘 살게 해 주겠다는 한마디 허망한 거짓 약속 하나에 온 나라가 마치 귀신에 홀린 듯 빠져드는 모습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물질적인 풍요, 그것이 최상의 가치가 되어버린 것 같지만 우리가 오늘 기념하는 김대건 신부님은 오히려 그 반대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편안하고 평범한 삶을 뒤로한 채 거친 중국 대륙을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가로질러 가셨습니다. 마카오 현지의 민란을 피해 필리핀 마닐라로 피신하기도 하였습니다. 같은 동기가 열병으로 죽어 감을 슬픔으로 지켜보기도 했을 것입니다.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하고 무력한 신분에 스스로를 던지신 분, 그분이 바로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십니다.

물질적인 풍요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항상 먼저 ‘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복음은 스스로의 능력과 의지마저 내려놓으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끌려갈 때조차도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10,19) 하십니다.

사실 나의 의지를 전적으로 내려놓는다는 것은 자신을 완전히 비울 때 가능합니다. 나 자신의 능력조차 완전히 포기하고 비울 때 그 자리에 “아버지의 영”(10,21)이 차지하고 말씀을 대신하시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이 되고 도구가 되는 법입니다. 또한 능력을 포기하고 의지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절대적인 믿음이 없이는 곤란합니다. 하느님의 도구가 된다는 것은 그래서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것이 됩니다. 이 세상의 환난과 멸시와 박해 안에서도 하느님께서 반드시 승리하심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증거자의 유일한 힘이 됩니다. 그것이 때로는 외로울지라도, 때로는 고통스러울지라도, 때로는 죽음으로 내 몰릴지라도…

세상에 대한 의지를 포기하고 스스로 가장 무력한 자가 되는 것! 스스로 박해를 받는 자가 되는 것!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에”(로마 5,5) 가능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오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이신 김대건 신부님을 닮아 증거하는 삶이란 결국 하느님의 사랑을 온 몸으로 기억해내고 사는 것입니다. 이런 삶에로 162년 전 기꺼이 목을 내 놓으신 안드레아 신부님이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루가 6,22-23ㄱ)

신종호 베니딕토 신부
  |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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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조심하여라

형제 자매 여러분, 안녕 하십니까?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 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1821년에 충청도에서 태어나셨고, 15세인 1836년에 중국 마카오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845년 8월 17일에 사제서품을 받으셨으며, 1846년 9월 16일에 순교하시고, 1925년 7월 5일에 복자위에 오르셨으며, 1984년 5월 6일에 시성되셨습니다. 비록 그분의 생애는 짧았었지만, 그분이 한국천주교회에 끼친 신앙적 유산은 이제 모든 사람들이 성인으로 받들어 모실만큼 위대하였습니다. 무엇이 이토록 그분의 삶을 후세 사람들에게 존경받도록 하였습니까? 그것은 그분이 자신의 온 생애를 전적으로 주님께 의탁하신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곧 그분이 위대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을 이 땅에 보내주신 ‘주님만이 홀로 위대하시다.’라고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속으로 파견하시면서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지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주일에 주님께 들은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라고 하신 말씀과 대조적이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하신 것과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마라’고 하신 말씀은 전혀 다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조심하라’는 것은 사람들이 우리를 주님과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해 방해한다거나 훼방을 놓는다거나 이간질한다거나 혹은 모진 박해를 가해서 주님과의 일치의 끈을 끊어버리도록 강요하기 때문에 그러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깨어 있으라.’ 하신 말씀입니다. 반대로 ‘두려워하지 마라’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제자로서, 주님의 자녀로서 ‘기쁘고 떳떳하게’ 말할 것을 말하고 행동할 것은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바로 ‘조심해야 할 순간’에 철저하게 조심하신 분이시며,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순간’에 두려워하지 않으신 분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김대건 신부님은 체포되어 의금부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고 순교하실 날을 손꼽으면서 조선교구의 모든 교우들에게 옥중에서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벗들이여,....(중략)...하느님의 은혜로 세상에 왔고, 또 하느님의 더 큰 은혜로 세례를 받은 덕으로 그분 교회의 신자가 되어 우리는 참으로 귀중한 이름(세례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열매를 맺지 못하면 이 이름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교회에 들어 온 것이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배교자가 되어 하느님께 배은망덕한 죄인이 될 것인데, 그분의 은혜가 풍성한 만큼 이 배은망덕은 더 미움을 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농부를 보십시오. 적당한 때에 밭을 갈고 거름을 주고 하면서 자신의 추위와 더위와 고생에 대해서는 크게 염려를 하지 않습니다....(중략)...재앙으로 인하여 겁을 내지 마시고, 용기를 잃지 말고 하느님을 섬기는 데에 뒷걸음을 치지 말며....비록 우리가 여럿일지라도 여러분의 마음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애덕을 잊지 마시고, 서로 참고 도우며,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불쌍히 여기실 때를 기다리십시오......”

김대건 신부님의 이 말씀은 오늘 주님의 말씀과 무척 닮아 있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 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그러니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우리를 하느님과 이간질 시키고, 훼방 놓고, 하나가 되지 못하도록 하는 사람들을 언제나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그 이외에는 모든 것을 김대건 신부님처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께 온전히 우리 자신을 바쳐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세례를 받아 세례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올바른 삶의 태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장마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오늘 김대건 신부님의 대축일 잘 보내시고 주님 안에서 언제나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

신대원 요셉 신부
  |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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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첫사제 김대건(안드레아) 신부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를 기념하는 날이다. 교황 베네딕도16세께서 예수성심대축일(6월19일)부터 1년간 사제의 해를 선포하셨으며, 한국의 첫 사제 김대건 신부님의 삶을 되새겨 보는 것은 모든 신자들과 사제들에게 큰 의미가 있고 소중하다고 본다.

김대건 신부님은 1821년8월21일 충정도 솔뫼에서 순교자 집안의 후손인 김재준(이냐시오)과 모친 고 우슬라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1836년 여름 경기도 용인 은이공소에서 나 모방 불란서 신부에게 영세를 받았다. 15세의 어린나이로 명석한 재주와 굳센 기질과 열심한 믿음을 인정받아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최양업, 최방제와 함께 마카오로 유학을 떠났다. 팔가자에서 부제품을 받고 1845년1월15일 조선에 잠시 입국하여 교회를 돌보고 지도를 작성하며 순교자들의 자료를 정리하고 성직자들의 입국로를 개척하고 다시 상해로 가서 조선교구 3대 주교인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로 서품되었다.

“의식은 상해에서 20~30리 떨어진 교우촌 금가항(金家港) 소성당에서 거행 되었습니다. 4명의 서양신부, 1명의 중국인 신부가 참석하였고, 또 거기에 교우들이 무리를 지어 참석하였습니다... ... 조선인 첫 사제를 볼 때 우리의 기쁨이 어떠하였는지 당신께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1845년 다블뤼 신부의 서한)

1845년8월31일 상해를 출발해 40여 일 만에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10월12일 강경 부근 황산포에 도착, 서울로 왔다. 그 인근, 용인 지방까지 교우촌을 방문하였고 성사를 집전하였다. 신부님은 주교님의 지시로 선교사 영입을 위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다 6월5일 순위도(巡威島)에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 40여 차례 혹독한 심문을 받았고 9월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하였다.

김대건 신부님은 짧은 삶을 사셨지만 조선교회와 교우들을 사랑하였고 온갖 고난과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도 언제나 하느님의 가르침에 충실하였으며, 하느님의 자비와 성모님의 도우심을 굳게 믿었다.

“교우들아! 그에 어울릴만한 열매를 맺으라, 주께서 은총으로 강생 구속하여 고귀한 피로서 우리를 기르신다.”(옥중서한)

성 아오스딩은 “형벌이 순교자를 만들지 않고 원인이 순교자를 만든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당하는 고통 그 자체보다도 지향하는 바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김대건 신부님은 믿음으로 환난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였으며(로마 5.3) 옥중에서도 교우들에게 끝까지 견디어내어 구원을 얻을(마태 10.22)것을 격려하였다.

“교우들아! 이런 황당한 시절을 당하여 마음을 늦추지 말고 도리어 힘을 다하고 역량을 더하여 마치 용맹한 군사가 병기를 갖추고 전장에 있음같이 하여 싸워 이길지어다.”(옥중서한)

사제의 해를 맞아 이런 신부님의 충실한 믿음과 열정적인 사랑과 용기 있는 삶을 모든 신자들과 사제들이 본받아야 할 것이다.

대구대교구 주보에서
  |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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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과 VIP

사막의 땅 어촌이었던 두바이가 물류 항공 관광인프라를 갖춘 국제중계무역과 중동의 금융 중심지로 환골탈태하고 있고, 반면국제적인 수준의 개방성을 수용하지 못한 대한민국의 IT산업은 자칫 스마트폰 시장에서 낙오자가 될 위기에 처해있다. 국가는 물론 지역과 조직 그리고 개인까지 매순간 도전과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조직은 살아남지만 그렇지 않으면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래서 ‘변화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변화의 본질을 파악하여 전략을 짜고, 그 전략에 따른 역할을 제대로 이루어낼 때 조직은 살아남는다.

‘변화의 리더십’에는 VIP형 인재가 요구된다. VIP형 인재는 Vision(비전)을 제시하고 Innovation(혁신) 마인드와 Passion(열정)을 가슴에 품는다. 한국천주교계에서 VIP형 인재로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김대건 신부님은 비전이 명확하고 충실한 믿음으로 열정적인 삶을 사셨다.

Vision- 신부님은 참수당하기 전에 "나는 이제 마지막 시간을 맞았으니 여러분은 내 말을 똑똑히 들으십시오! 내가 외국인들과 교섭한 것은 내 종교와 내 하느님을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천주를 위해 죽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내게 시작되려고 합니다…" 우리에게 이보다 확실한 비전은 없다.

Innovation- 1845년 8월 31일 상해를 출발해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40여 일만에 강경부근 황산포에 도착, 서울로 왔다 그 인근, 용인지방까지 교우촌을 방문하였고 성사를 집전하였다. 신부님은 주교님의 지시로 선교사 영입을 위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다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 40여 차례 혹독한 심문을 받았고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하였다.

Passion- 김대건 성인은 비록 짧은 삶을 사셨지만 조선교회와 교우들을 사랑하였다. 온갖 고난과 추위와 굶주림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였으며(로마5,3) 옥중에서도 교우들에게 끝까지 견디어 내어 구원을 얻을(마태10,22)것을 격려 하였다.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VIP형 리더십, 충실한 믿음과 열정적인 사랑과 용기 있는 삶을 모든 신자들과 사제들이 본받았으면 좋곘다. 그리고 우리 자신도 비전을 세우고 자기혁신을 통한 열정적인 삶으로 21세기를 이끌어가는 VIP형 인재가 되도록 노력하자!!

박강수 로무알도 신부
  |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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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이 단어를 접하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말씀들을 묵상하며, 저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가슴 깊이 남아 계속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독서와 복음의 말씀들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은 이야기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다가 돌에 맞아 죽게 된 즈카르야, 환난과 인내와 수양을 이야기하시는 바오로 사도, 박해와 미움, 가족 간의 분열을 말씀하시는 예수님…. 왜 이런 말씀 가운데에서 ‘희망’이라는 단어를 자꾸 떠오르게 하셨던 걸까요?

‘희망’은 사전에 “앞일에 대하여 좋은 결과를 기대함”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앞일’이란 현재 나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아직은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의 일입니다. 현재에 일어나지도 않은 것과 관련된 것이 ‘희망’이라면 이 희망은 현재의 삶과는 상관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희망은 미래에만 있지 않고 현재의 내 삶에 ‘행복’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존재합니다. 앞으로 나에게 이루어질 좋은 어떤 것에 대한 기대는 지금의 나를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는 가장 큰 용기와 원동력이 됩니다. 그래서 ‘희망을 가진 사람’은 오지 않은 미래라는 막연한 삶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현재라는 행복의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과 지극한 어려움 중에 있는 사람들일지라도 하느님께 자신의 희망을 둔다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구원에 희망을 둔다면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오히려 행복을 갖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직전에 이런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나는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영원한 생명을 시작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죽은 뒤에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천주교를 신봉하시오.” 그 분이 가지셨던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은 죽음도 깨뜨리지 못하는 행복을 주었고, 그 행복을 알기에 모든 이가 그 행복의 삶을 함께 살아가기를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또 신부님의 삶은 신앙의 후손인 우리들에게 또 하나의 희망이 되어줍니다. 스스로 하느님께 모든 희망을 걸고 살아가셨던 그 확신에 찬 삶이 또 하나의 희망이 되어 우리가 더 행복하고 더 희망하고 살아갈 수 있는 인도자가 되어줍니다.

교형자매 여러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에 하느님께 우리의 모든 희망을 두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결심했으면 합니다. 또 우리의 행복한 삶의 모습이 누군가에게 또 하나의 희망이 되기를 다짐했으면 합니다. ‘희망함과 희망됨’의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청합니다.

<대구대교구 이정욱 신부>
  |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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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우리 삶의 길잡이 김대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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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님의 가문은,
충청도 내포의 사도 이존창의 권유로 그와 함께 서울 명례방 김범우 토마스에게 배워서, 한국천주교 창립 때인 1784년부터 1785년 3월 사이에 천주교에 입교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역대박해 때마다
많은 수난을 당했으며 12명에서 14명의 순교자와 많은 증거자가 탄생했습니다. 특별히 성 김대건 신부님의 아버지 성 김제준 이냐시오, 당고모 성녀 김 데레사, 증조부 복자 김진후 비오, 그리고 대구에서 순교하신 종조부 복자 김종한 안드레아를 배출한 가문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최방제 방지거, 최양업 도마와 함께 우리나라 사상 처음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1836년12월 3일 마카오로 유학길에 올라 6개월 28일의 긴 걸음 끝에 이듬해 6월 7일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한국인 최초의 근대적 서양학 해외 유학자로 신학뿐 아니라 신학을 공부하기 위한 기초 초중등 과정을 이수하고, 라틴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영어,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고, 또 당시의 국제정세도 보고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1845년 8월 17일 상해 김가항 성당에서
10명도 안 되는 조국 동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페레올 주교님의 집전으로 한국인 첫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1849년 부활 다음 주일에 사제로 탄생한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님보다도 4년이나 앞선 것입니다. 하지만 김대건 신부님은 청국 땅에서 조선교구로 부임할 날을 기다리고 있는 메스트르 신부와 동료인 최양업 부제의 입국로를 찾아 나섰다가

순위도에서 체포되어,
1846년 9월 16일 서울 새남터에서 26세의 젊은 나이로 군문효수형에 처해져 순교하게 됩니다. 사제로 서품되고 1년 1개월여 만의 일입니다.

어린 소년이 짚신을 신고 걸었을 한겨울 7개월의 유학길,
이국에서의 유학 생활, 이국땅에서 들었던 아버지의 순교와 문전걸식하시는 어머니의 비참한 삶에 대한 소문, 내 나라로 돌아오는 험난한 여정, 나라에 잡혀서 겪었을 무수한 고초들…

사람들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유학생으로 배운 학문들을 아깝다고 생각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부님은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만일 이 험하고 비참한 세상에서 우리가 우리의 가장 높으신 주인과 창조주를 알지 못하면 우리가 태어난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느님을 알고 천국을 차지하는 것이 진짜 삶이라고 알려주시고 보여주신 김대건 신부님은 우리 삶의 길잡이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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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김영철 라우렌시오 신부
2020년 7월 5일 대구대교구 주보에서
  |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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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   [수도회] 참 보화를 얻기 위해 썩어 없어지는 밀알  [5] 198
509   [청주/수원] 죽으면 열매를 맺는다  [3] 164
508   [인천/의정부/서울] 이웃과 함께하는 삶  [3] 155
507   (홍)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8월 10일)독서와 복음  [10] 162
506   [대구/전주/춘천] “너는 이것을 믿느냐?”  [3] 1685
505   [수도회] 깨지고 금간 항아리  [8] 1897
504   [수원/부산]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5] 1587
503   [인천/의정부/서울]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간직합시다.  [4] 1580
502   (백) 성녀 마르타 기념일 (7월 29일) 독서와 복음  [10] 1943
501   [수도회] 윗자리는  [11] 1884
500   [전주/대구/부산] 주님을 향한 열정의 사도 야고보  [3] 2368
499   [춘천/수원/청주] 남을 섬길 줄 아는 사람이 될 때 모든 것에서 자유  [6] 1955
498   [인천/서울/의정부] 욕심  [9] 2023
497   (홍) 성 야고보 사도 축일 (7월 25일) 독서와 복음  [10] 1614
496   [수도회] 성인들의 삶은 우리를 성덕으로 부르는 강한 초대장  [6] 1668
495   [부산/마산] 주님의 목소리를 귀 기울려 듣자  [3] 1731
494   [서울/수원/의정부] 예수님을 간절히 사랑했던 여인, 부활의 증인이 되다  [5] 2005
493   [청주/춘천] 사랑의 방식  [6] 1754
492   [대구/전주] 라뽀니 선생님  [4] 1633
491   [인천] '바쁘다’라는 말을 하지 맙시다.  [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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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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