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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피를 나누다
조회수 | 2,930
작성일 | 08.07.03
초등학교 3학년과 6학년 두 아들을 둔
아버지가 있었는데 큰아들이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했다.

피를 너무 흘려 살기가 어렵다는 의사의 말에 아버지는 자신의 피를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들의 피가 ‘RH-’라는 흔하지 않은 피여서 아버지나 어머니와는 맞지 않았으며 병원에서도 쉽게 구할 수 없었다. 마침 동생의 피가 형과 같아서 어린 동생의 몸에서 피를 뽑아야 할 상황이 되었다.

아버지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준식아, 네 형이 죽어간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단다. 내 피를 주고 싶어도 줄 수 없어 안타깝구나. 네가 형에게 피를 좀 줄 수 있겠니? 그러면 형이 살아날 수 있단다.” 한참을 생각하고 아버지와 형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던 준식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침대에 누워 있는 아이에게서 간호사는 피를 뽑았다. “이제 됐다. 일어나거라!” 안쓰럽게 바라보던 아버지의 말에도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일어나라니까!” “아빠, 나 언제 죽어?”, “뭐야? 네 피를 형에게 주면 너는 죽고 형은 살아나는 줄 알았어?” “응.” 그 대답에 기가 막힌 아버지는 아들을 끌어안고 한참이나 울었다.

“친구들(벗)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사랑은 없다”(요한 15,13).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셨고 순교자들은 주님을 위해 피를 흘렸다. 사랑과 믿음을 증거하기 위해 피를 흘려 죽는 것을 순교(殉敎)라고 한다. 옛 교우들은 치명(致命)이라고도 했는데 하느님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뜻이다.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모두를 바치는 것이다.
몸과 맘, 재산과 명예, 자신의 재능과 장래의 멋진 계획까지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아끼는 것들, 그리고 자신의 삶과 활동을 기쁘게 바치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살겠다는 약속이며 각오다.

그래서 순교는
사랑의 극치이며 가장 큰 삶의 표현이다. 순교는 신앙행위의 가장 높은 단계이고, 신앙을 증거하는 일 가운데 이만큼 크고 완벽한 것은 없다. 그래서 순교자들을 믿음의 증인들이라고 말한다.

순교는 가장 큰 은혜이다.
하느님의 은총이 모여 무서운 힘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 순교다. 마치 햇빛이 한 곳으로 모이면 뜨거운 열이 생기는 것처럼, 은총의 초점으로 이루어지는 순교는 언제나 장렬하고 우리에게 열렬한 신심을 일깨워 준다.

“이런 군란도 역시 천주의 허락하신 바니 너희 감수 인내하여 위주하고 주께 슬피 빌어 빨리 평안함을 주시기를 기다리라. 나는 하느님을 위해 죽으니 내 앞에는 영원한 생명이 시작할 것이다”(성 김대건 안드레아의 ‘옥중서한’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성인을 기리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의 순교 신앙을 본받아 이 땅에 정의와 평화가 넘쳐나게 기도하여, 이웃에게 봉사하는 것이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은 성인의 말씀처럼 피를 나누지는 못하지만,
신앙의 결단에 따라 땀을 흘리는 인내로 이웃과 생명을 나누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나누는 사람에게 언약하셨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오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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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박문식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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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또 다른 순교

아버지와 사별, 어머니의 재가로 생이별 끝에 보호시설에 입소한 어린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나마 형제가 한 시설에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었는데,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인해 형제는 또 다시 떨어져야만 했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고, 우여곡절 끝에 저희 집에 온 동생은 눈만 떴다 하면 형 걱정이었습니다. 자신은 여기서 그럭저럭 지내는데, 형을 이리로 데리고 오면 안 되겠냐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동생의 간절한 기도 덕분인지 얼마 전 극적으로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동생 소원이 이루어진 날, '남북이산가족 상봉 저리 가라'였습니다. 동생은 얼마나 극진히 형을 챙기는지 모릅니다. 식사 시간에도 형을 자기 바로 옆자리에 앉게 하고는, 이것저것 반찬을 집어 형 밥숟가락에 얹어주며 "형,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어!"라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형제가 다시 만나 혈육의 정을 나누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얼마나 마음이 짠해왔는지 모릅니다. 그 누군가가 아무리 극진한 사랑을 쏟아붓는다 하더라도 부모 사랑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저 어린 것들이 부모없이 한평생 고생고생하며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한숨부터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애써 슬픔을 지우고, 눈물을 감추며, 활짝 웃으며 그렇게 세상을 견뎌나가는 아이들 모습을 보면서, 지나친 논리 비약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아이들이 저보다 훨씬 더 낫다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고달프고 우울한 현실과 잘 맞서고 있는 이 아이들은 이 시대, 또 다른 순교자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열악한 상황에서도 아이들 얼굴을 해맑습니다. 얼마나 싹싹한지 모릅니다. 만나는 사람들을 얼마나 살갑게 대하는지, 그래서 어른들을 얼마나 기쁘게 해주는지 모릅니다.

오늘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대축일입니다. 신부님께서 직접 쓰셨던 서한집을 영적독서로 읽으면서 그분 생애가 인간적 눈으로 볼 때 얼마나 신산(辛酸)했는지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오랜 사제 양성기간을 마치고 그토록 학수고대했던 사제의 꿈을 이룬 김대건 신부님의 귀향길은 금의환향의 꽃길이 아니라, 끔찍한 옥살이와 서슬 퍼런 칼날만이 기다리고 있는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혹독한 추위, 거센 풍랑, 탈진과 굶주림을 겨우 겨우 이겨내며 김대건 신부님은 몇번이나 조선 입국을 위한 탐색여행을 시도했습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조선에 입국한 신부님께 어찌 부모님 소식이 궁금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들려오는 소식은 정녕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구르게 할 소식이었습니다. 이미 부친은 참수당하셨고, 모친은 의탁할 곳조차 없어 이곳저곳 떠도는 부랑인 신세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소식, 가슴 미어지는 소식 앞에 김대건 신부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큰 뜻을 품은 신부님이셨기에 목자 없이 방황하는 조선의 양떼들을 위해 다시금 훌훌 털고 일어서십니다. 다가오는 죽음과도 같은 현실을 기꺼이 직면하십니다.

이 세상에 두발을 딛고 서 있었지만, 이미 하느님 나라를 살고 계셨던 분, 죽음 그 너머에 있는 부활을 미리 내다보셨던 분, 절망 가운데서도 환한 얼굴로 희망을 바라보고 계셨던 분, 그래서 죽음과도 같은 암담한 현실 앞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기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갔던 김대건 신부님이셨습니다.

매일 다가오는 암담한 현실과 끝도 없는 시련을 참아내는 일, 나 자신의 비참함을 기꺼이 견뎌내는 일, 신앙의 눈으로 그 열악한 현실과 똑바로 직면하는 일, 아무리 주어진 상황이 어려워도 긍정적으로 마음먹는 일,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일은 이 시대 또 다른 순교의 얼굴입니다.

처형당하기 직전 쓰신 유언과도 같은 옥중 서한의 말미 부분이 이번 한 주간 우리들 삶의 양식이 되면 좋겠습니다.

"공경하올 신부님들, 안녕히 계십시오. 머지않아 천국에서 영원하신 아버지 하느님 대전에서 다시 만나 뵙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분의 이름 때문에 묶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형벌을 끝까지 이겨낼 힘을 저에게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묶인 조선의 교황 파견 선교사 김 안드레아 올림."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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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오늘 복음은 주님께서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기 직전 그들을 준비시키고자 들려 주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이 인간적으로는 너무 어둡고 힘겹게 들립니다. 제자들은 세상을 위해서 생명의 복음을 전할 것인데 정작 세상은 그들을 거부하고 고문하고 죽일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실까요? 오늘 복음 바로 직전에 그 대답이 나옵니다. “이제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은 마치 양을 이리 떼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마태 10,16). 세상은 이리떼가 모여 있는 곳이며 세상은 빛보다는 어둠을 더 사랑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특별히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면서 듣게 되는 복음입니다. 이 복음이 채택된 것은 김대건 성인께서 이 복음의 정신을 그대로 살아가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성인의 다음 편지를 통해서 이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내려오사 스스로 헤아릴 수 없는 고난을 참아 받으셨습니다. 그 고난으로써 성교회가 세워졌고, 이 성교회도 십자가와 많은 고난 속에서 발전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박해는 천주께서 주시는 시련입니다. 세속과 마귀를 쳐 이기면 덕과 공적을 쌓을 수 있습니다. 재앙에 겁내지 말고, 용기를 잃지 말고, 천주를 섬기는 데서 물러나지 말고, 오로지 성인들의 자취를 밟아서 성교회의 영광을 늘이고, 주의 충실한 병사이며 참된 시민임을 증명하여 주시오…. 다시 한 마디 하고자 합니다…. 박해는 천주의 허락하심이 없이는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하오니 마땅히 천주를 위하여 힘차게 참아 주십시오.”

이 편지를 통해서 우리는 성인께서 온전한 순교의 신앙을 갖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실제적인 질문을 해 보십시다. 요즘 세상에도 예수님의 제자라 해서 박해를 받는 일이 있을까요? 김대건 성인 시절에는 신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엄청난 박해를 받았는데 오늘날도 그러한가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정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닌 주님께 속한 자로서 행위한다면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주말에 가까운 친구들끼리 모여서 놀러 가는데 성당에 가기 위해서 그 모임에 빠진다면 우리는 즉시 답답하고 분위기 깨는 사람으로 취급을 받을 것입니다.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상인들이 모두 다 저울을 속이는데 우리만 주님의 제자답게 정직하게 장사하려한다면 미움과 박해를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만 이 세상의 행동양식이 아니라 주님의 행동양식으로 살려 하면 세상으로부터 미움받을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예수회 송봉모 토마스 모어 신부
  |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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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있어야 하는 법

가톨릭교회는 순교자들이 뿌린 피를 기초로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초대교회가 그랬습니다.
어려움을 딛고 초대교회가 활짝 만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순교자들이 흘린 피 때문이었습니다.
한국 교회 역시 순교자들의 피를 빼고 아무 것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분들이 흘리셨던 피의 대가가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인 것입니다.

순교의 영예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더군요.
열심 했던 시절, 저는 눈만 뜨면 ‘어디 순교할 기회 없나’
샅샅이 살펴보고 다녔지만, 그런 기회란 여간해서 만나기
힘들더군요. 순교의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먼저
시대가 협조해줘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허락하셔서
은총을 베푸셔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만큼 순교의 영예를 얻기란 어렵습니다.
순교는 그리스도인들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은총입니다.
순교는 스승이신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 가장 확실하게 따르는
영광스런 길입니다. 순교는 인간이 하느님께 도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는 대사건입니다.
순교란 인간의 극점이 하느님임을 엄숙히 선포하는 신앙고백입니다.
결국 순교는 예수님을 가장 완전히 본받는 은혜로운 일,
그분의 참 제자가 되는 길이기도 합니다.

순교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살아생전 모든 것 다 이웃에게 내어 놓고 늘 빈손으로 하느님께
나아갔던 사람입니다.
늘 떠날 준비가 된 상태에서 홀가분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갔던
사람 입니다. 결국 하느님을 위해 자신조차 버린 사람입니다.
그런 분들이었기에 순교의 기회가 왔을 때 그리도 홀연히 이승을
놓아 버릴 수가 있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 순교자들은 그렇게 기쁜 얼굴로, 행복한 표정
으로 그 고통스러웠던 순교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셨던 것입니다.
그분들의 삶은 수난 가운데서도 평화로웠으며, 극심한 결핍 가운
데서도 일말의 아쉬움도 없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신앙은 얼마나 확고했었는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다들 놀랄 지경이었습니다.

스물 다섯, 참으로 꽃다운 나이입니다. 참으로 아까운 나이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요즘으로 치면 아직도 자기 앞가림조차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이 많은 나이 아닙니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직전, 김대건 신부님께서 남기신 말씀
한번 들어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저는 죽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위한 죽음이기에 절대로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이제 곧 영원한 생명이 제 안에서 시작되려고
합니다. 여러분, 행복해지고 싶습니까? 방법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하느님을 믿으십시오.”

옥에 갇혀 계시면서 신자들을 위해 쓰셨던 서간에서는 이렇게
격려하고 계십니다.

“세상이 교회를 공격하고 파괴하기 위해 무슨 짓을 할지라도
물러서지 마십시오. 그들은 절대로 교회를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마지막 관문인 박해와 죽음, 잘 견디어 내고
이겨내어 우리 모두하느님 대전에서 다시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현대의 순교자는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오늘날 순교란 순간순간
죽고 순간순간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순교란 죽은 사람처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입니다.
죽은 사람은 어떻게 처신합니까? 그저 묵묵 부답입니다.
모욕을 줘도 침묵합니다. 멸시를 당해도 침묵합니다.
그저 하느님 자비와 은총만을 바랄 뿐입니다.

현대의 순교는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자신을 내어 놓는 일입니다.
한번 두 번이 아니라 열 번 스무 번, 끝도 없이 내어 놓은 일입니다.

뭘 내어 놓을 것입니까?

전혀 없을 것 같지만, 곰곰이 따지고 보면 얼마나 내어 놓을 것이
많은지 모릅니다. 시간을 내어 놓고, 재능을 봉헌하고, 재산을
나누고, 삶을 봉헌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슬펐던, 너무나 안쓰러웠던, 그리도 아쉬웠던 김 대건 신부
님의 생애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눈물로 씨 뿌렸던 김 대건
신부님의 황량하고 거칠었던 이승의 삶을 기꺼이 받으시고 기쁨으로
곡식을 거두도록 허락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더 이상
박해도 고문도, 굶주림도 울부짖음도 없는 영원한 행복의 나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셨으니
저희도 십자가의 길을 따르나이다.

주님께서 저희를 위해 십자가 지셨으니
주님의 십자가를 조금이나마 나누도록
저희가 감당할 십자가를 지워 주실 때
투덜거림 없이 받아 안으리라 다짐하나이다.

주님,
주님께서 저희에게 맡겨 주시는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게 하소서.
아멘.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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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앙 물고

"가련한 인생들, 저는 감히 주교 각하께
저의 어머니 우르술라를 부탁드리옵니다.
저의 어머니는 10년 동안 못 본 아들을
불과 며칠 동안 만나 보았을 뿐 또다시 홀연 잃고 말았으니,
각하께 간절히 바라건대,
슬픔에 잠긴 저의 어머니를 잘 위로하여 주십시오.”

김 대건 신부님의 23번째 서한의 내용입니다.
주님께 가는 마지막 길에 어머니를 주교님께 부탁하는 내용이
마치 예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어머니를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는 것 같습니다.
성 김 대건 신부님과 어머니 우르술라의 사연도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의 사연 못지않게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어머니 우르술라는 1798년 태어나 1864년 한 많은 생을 마쳤는데
김 씨 집안으로 시집 온 때부터 기구한 인생이 시작됩니다.
그러니까 1830년 시아버지 김 택현이 신앙 때문에 죽고
1836년 열 다섯 어린 나이의 아들은 기약 없이 중국으로 떠나고
1839년 기해박해 때 남편 김 제준이 붙잡혀 참수형을 당하고
남은 가족은 박해를 피해 도망 다니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야말로 신앙 때문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그것이 사위의 밀고 때문입니다.

남편의 죽음, 쫓기는 삶도 너무도 고통스러웠겠지만
이 모든 고통을 안겨 준 사위로 인한 마음고생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고통은
이 모든 고통을 허락하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고통일 것입니다.

우리 주변의 삶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처음으로 신앙을 가지게 된 사람에게 우환과 환난이 닥치는 경웁니다.
그중에서도 미신을 믿다가 신앙을 가진 경우,
하느님을 믿어서 오히려 불행하게 됐다고 신앙이 흔들립니다.
복을 받으려고 하느님을 믿었는데
하느님을 믿어 오히려 불행해진다면 신앙이 흔들리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겠지요.

그런데 참으로 묘하게도 하느님께서는 당신께로 나아가는 사람에게
축복을 예비하지 않고 오히려 가혹한 시련을 예비하십니다.
저도 이런 면에서 예외는 아니었고
저의 수도원 다른 형제들도 이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느님께로 가는 중요한 길목마다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생겼습니다.
늘그막에 얻은 이사악을 제물로 바칠 것을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시는 것처럼
하느님은 참으로 가혹한 하느님이십니다.

이때 우리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까지 하느님을 믿어야 하나?
이렇게까지 당신을 선택하기를 하느님은 바라시나?
자기 가족을 다 잃고 당신을 얻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은 무엇인가?
그것도 사위의 밀고로 가족이 깨지는 고통을
당신을 믿는 사람에게 허락하시는 하느님의 뜻은 무엇인가?
꼭 그렇게 해야만 직성이 풀리시나?
이 무슨 악취미인가?
하느님은 당신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꼴을 못 보시고 꼭 벌을 주시는 분인가?

주님께서도 전혀 아니라고는 하지 않으십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그러나 당신께 오는 사람에게 가족 이별과 가족 해체의 고통을 주심은
악취미 때문에도 아니고 벌도 아닙니다.
죽기 전에 정 떼기를 하듯 정을 떼라는 것이고
당신 이외의 사람은 미워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미움은 미움이로되 하느님을 사랑하는 미움인 것입니다.
하느님 아니라면 내 가족을 미워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꼭 그렇게 가족을 미워하며 하느님을 사랑해야 합니까?
안타깝게도 그래야 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 하느님보다 내 가족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내 가족에게 복 주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데,
내 가족에게 복 주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사실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가족에게 고통을 주시는 하느님을
미워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내 가족 때문에 사랑하고 내 가족 때문에 미워하는 분이라면
그 하느님은 하느님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하느님이고 나의 주님이라면
하느님 때문에 가족을 사랑하고
하느님 때문에 가족을 미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먼저 하느님께 가고 늦게 하느님께 가는 사람이 있을 뿐
인간은 누구나 하느님께 가고 언제고 하느님께 가며,
그리고 죽을 때 다 두고 가듯이
하느님께 가는 사람은 누구나 가족과 이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먼저 그리고 앞서 하느님께 가는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그리고 다른 사람 보기에 가혹하게 가족과 이별합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과 성모 마리아에게
가장 가혹한 가족 이별을 하도록 하셨고
성 김 대건 사제와 어머니에게 그러하게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주님은 이들에게 구원을 약속하셨으며
신앙에 있어서 앞서 간 사람들은 이것을 굳게 믿고
이를 앙 물고 주님을 따라 간 사람들입니다.

▶ 작은 형제회 김찬선 신부
  |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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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를 작정하고

천주교 박해시대 당시 조선이란 땅은 동방 선교사들에게 있어서 "죽음의 땅"이었습니다. 일단 들어가면 100% 죽음이 확실한 사자굴과도 같은 선교지가 조선이었습니다. 따라서 조선에 선교를 지원했던 서방 선교사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조선으로 입국을 하셨지요. 조선으로 떠나기 직전 선교사들은 죽음 준비작업들을 하셨습니다. 부모님께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는 눈물의 작별의 편지들을 쓰셨지요.

동료사제들, 자신의 주교님께 하직 인사를 올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장엄한 유서를 남기고 조선으로 건너오셨던 것입니다. 조선에 입국하셨던 선교사들의 발걸음은 그야말로 형극의 길이자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선교사들의 조선행(朝鮮行)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무죄한 어린양의 발걸음이었습니다. 조선 땅에 발을 들여놓으셨던 모든 선교사들의 길은 오직 처절한 십자가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예수님의 길이었습니다.

이런 선교사들로부터 사제수업을 받으셨던 김대건 신부님 역시 이런 숙연한 분위기를 어찌 파악하지 못하셨겠습니까?

김대건 신부님의 입국 역시 목숨을 건 길, 일단 들어오면 100%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꿈결조차 그리웠던 고국의 산천, 입국을 위해 그 숱한 나날들을 기다려왔던 조국인데...이제 그 고향 땅에 들어가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처참한 죽음이라니...참으로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박해가 가라앉을 때까지 좀 기다렸다가 천천히 입국할 수도 있었습니다. 박해의 세월이 지나가기를 기대하면서 다른 학문을 공부할 수도 있었습니다. 아쉽지만 입국을 뒤로 좀 미루고 중국에서 사목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대건 신부님의 뇌리 속에는 오직 목자 없이 길 잃고 방황하는 동포들의 고통만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목자 없어 서러운 민중들 한 가운데로 투신할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김대건 신부님의 길, 예정된 죽음의 길, 굶주림과 고문, 갖은 조롱과 처참함만이 기다리고 있는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면서 다시 한번 제가 가고 있는 길을 반성합니다.

죽기를 작정하고 시작한 사제의 길이었습니다. 양보하고 희생하는 일은 기본이라는 것을 알고 시작한 수도자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작은 것 하나 양보하지 못하고 티격태격되는 제 모습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그 하찮은 고통 앞에서도 세상이 끝난 듯이 불평불만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제 삶이 참으로 한심하기만 합니다.

오늘 하루 김대건 신부님처럼 죽기살기로 하느님께 봉헌된 삶을 살지는 못하더라고 평소보다 좀 더 희생하고 좀 더 자신 대해서 죽는 "작은 순교"를 실천하는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 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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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자루 같은 사제

후배 사제들의 첫 미사 참석 때문에 남도를 한바퀴 돌았습니다. 첫 미사 강론을 해주신 아버지 신부님들께서 얼마나 의미 있는 강론들을 잘 준비하셨던지...이틀동안 들은 강론들을 묵상하고 또 묵상하면서 피정하는 마음으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아직도 제 귓가에 쟁쟁하게 남아있는 몇몇 말씀들을-새사제들에게 당부하신-잊을 수가 없어 소개합니다.

"고해소 안에서 절대로 화내지 마십시오. 한번 혼난 신자들이 다시 고백소를 찾겠습니까? 사제로서 가장 좋은 보속이려니 생각하시고 꾹꾹 눌러 참으십시오."

"혼배성사 때 절대로 화내지 마십시오. 가끔 신랑신부가 늦게 도착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긴장한 나머지 실수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당사자들에게는 일생에 한번 있는 축복의 순간이 아니겠습니까? 너그러운 마음으로 인내하십시오."

"사제는 빗자루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빗자루가 자신에게 주어진 몫(마당 쓰는 일)을 다한 후에 “내가 이만큼 열심히 일했는데!” 하면서 안방 한 가운데를 차지한 것을 보셨습니까? 빗자루는 빗자루일 뿐입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다했으면 다시 자신이 있을 자리인 구석에 가서 서있지 않겠습니까? 신부님, 부디 구석진 자리에 서있는 한 자루 빗자루가 되십시오."

"20년이 지나서야 느끼는 바입니다. 사제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하느님과의 끈을 놓지 않는 일입니다. 전기밥솥의 코드가 전원에서 뽑혀있는 상태에서 밥은 아무리 기다려도 지어지지 않습니다. 사제가 하느님과의 끈을 놓아버린다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과의 끈을 연결시키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기도입니다."

참으로 가슴을 파고드는 따끔한 말씀이었습니다. 새 사제들을 향한 진심 어린 충고의 말씀을 듣고 있노라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신부님들 말씀의 요지는 결국 겸손한 사제, 예수님과 신자들을 위해 희생하고 목숨을 바치는 사제, 즉 김대건 신부님 같은 사제가 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첫 미사를 끝내고 신자들에게 강복을 드리는 새 사제들을 바라보며 김대건 신부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새 사제 신분으로 사제생활을 마감한 분이시지요. 사제생활 1년 1개월 만에 순교하신 새 사제셨습니다.
김대건 신부님과 관련된 성가를 부르거나 서한을 읽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짠해오는 구절이 있습니다.

"동지사 오가던 길 삼천리 트였건만, 복음의 사도 앞에 닫혀진 조국의 문, 겨레의 잠 깨우려 애타신 그의 넋이, 이역의 별빛아래 외로이 슬펐어라."

사제가 되기 위해 마카오로 떠난 15세 어린 나이의 김대건 신학생에게 펼쳐졌던 상황은 장밋빛 탄탄대로가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용기가 가상했고, 꿈은 컸었지만 중학교 2학년 나이, 여리디 여린 소년의 눈앞에 비춰진 현실은 암담하기만 했습니다. 낯 설은 이국 땅에서의 기약도 없는 유학 생활,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낯선 언어, 낯선 풍습 안에서 살아가던 어린 소년은 숱하게도 많은 밤들을 이역의 별빛 아래 눈물지으며 보냈겠지요. 그 숱한 슬픔의 나날을 잘 극복하고 서품된 김대건 신부님은 안타깝게도 입국하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당국에 체포되고 맙니다.

순교 20일전에 주교님에게 쓰셨던 김대건 신부님의 옥중 서한에 소개된 어머님과 관련된 구절은 읽는 이의 마음을 안쓰럽게 합니다.

"저는 감히 주교님께 저의 어머니 울술라를 부탁드리옵니다. 저의 어머니는 10년 동안 못 본 아들을 불과 며칠 동안 만나 보았을 뿐 또 다시 홀연 잃고 말았으니, 주교님께 간절히 바라건데 슬픔에 잠긴 저의 어머니를 잘 위로하여 주십시오."

1년 1개월, 짧디 짧았던 김대건 신부님의 사제 생활은 그야말로 "환난과 역경, 박해와 굶주림, 헐벗음, 위험과 칼" 아래의 절박한 삶이었습니다. 관헌으로 압송되어온 김대건 신부님은 마치 수난 당하시는 예수님처럼 극도의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옷이 벗겨지는 치욕을 당하십니다. 수 천대의 매를 맞았고, 조롱을 당했으며, 짐승과도 같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런 극도의 고통을 김대건 신부님은 얼마나 의연하게 잘 견뎌내셨는지 다음의 옥중서간문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제게 이런 형벌을 주신 관장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관장께서 제게 내리시는 이 형벌을 통해서 저는 더욱 하느님 사랑을 느낍니다. 우리 하느님께서 관장 나리를 더 높은 관직에 올려 주시기를 빕니다. 저의 이 말을 들은 관장과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큰 소리로 저를 비웃었습니다. 그 후에 여덟 자나 되는 긴칼을 가져오기에 제가 즉시 그 칼을 잡아 제 손으로 제 목에 대니, 둘러섰던 모든 사람들이 또한 다 크게 웃었습니다."

죽음의 칼날 앞에서도 의연하셨던 김대건 신부님, 죽음의 칼날조차도 주님께서 주시는 것이려니 생각하고 기꺼이 수용하셨던 김대건 신부님이셨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던 김대건 신부님, 칼을 들이대는 사람에게조차 축복을 해주던 김대건 신부님이셨습니다.

▶ 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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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오늘의 순교>

언젠가 그리스도교가 우리나라 땅에 도입되는 과정을 같이 공부하던 형제들에게 설명했었는데, 다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깜짝 놀랐습니다. 가만히 따져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유래가 드물게 우리 한국 교회는 스스로 신앙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연구하면서 꽃을 피워나갔습니다.

물론 그리스도교가 우리나라에 정착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수차례에 걸친 대대적 박해가 있었고, 그 박해를 꿋꿋이 이겨낸 순교자들의 용기 있는 증거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순교라는 말을 떼어놓고 우리 한국 교회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잘 실감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모두는 자랑스러운 순교자들의 후손입니다. 우리의 피 안에는 순교자들의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 안에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순교 영성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토록 큰 은총이요 영예인 이 순교영성을 어떻게 우리 일상 안에서 실현시켜나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주변을 둘러보면 그 옛날 신유박해나 기해박해 때처럼 순교할 기회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그 어떤 제약도 없이 너무나 자유롭고 떳떳하게 신앙생활을 해나갈 수 있다는 것 참으로 큰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피와 땀을 흘리고 목숨을 바쳐 신앙의 토양을 일궈낸 우리 신앙의 선조들 덕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지금 우리 시대는 그 옛날 우리 순교자들이 지니셨던 바로 그 순교 영성을 간절히 요구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물질만능주의와 영성의 결핍의 결과인 다양한 형태의 소외와 불평등, 불의와 차별이 만연하는 이 시대는 우리 교회가 희생과 헌신을 통한 순교의 영성을 온 몸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대 꽃다운 나이의 사제, 거의 새 사제나 다를 바 없는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의 순교를 생각합니다. 때로 너무 아깝다는 생각도 많이 듭니다. 어찌 그리 시대를 잘못 타고 나셨을까, 하는 측은한 마음도 앞섭니다. 한국인 첫 사제로서 좀 더 연명하면서 한국교회의 기틀을 다지셨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봅니다.

그러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순교의 기회가 왔을 때 결코 단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당당하게 용감하게 자신에게 닥쳐온 영광스런 기회를 뒤로 연기하지 않고 즉석에서 수용했습니다.

이런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죽음이 무의미한 죽음이었을까요? 우리 모두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장 고결한 죽음, 가장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죽음으로 다들 평가하며 칭송합니다.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처럼 인간은 제한된 시간 안에 서 있으면서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입니다. 이 땅에 태어난 인류 모두는 단 한명의 예외도 없이 죽음 앞에 섰고 죽음을 넘어갔습니다. 따지고 보니 죽음이 있다는 것, 여간 큰 은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죽음 앞에서 겸손해집니다. 겸손 앞에서 본래의 자신을, 진정한 ‘나’를 찾습니다. 결국 죽음은 무의미한 인간의 삶을 의미 있는 삶으로 바꿉니다. 결국 인간은 죽음 앞에서 비본질적인 요소들을 떨치며 하느님께로 회심합니다.

따지고 보니 이렇게 중요하고 의미로 충만한 죽음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정말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냥 애완용 동물처럼 죽을 것인가? 화초가 시들어 말라죽듯이 죽을 것인가? 아니면 정말 의미 있고 보람되게 죽을 것인가? 그렇다면 의미 있는 죽음이란 과연 어떤 죽음일까?

가장 의미 있는 죽음은 아무래도 하느님을 위한 죽음이 아닐까요?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죽음처럼 말입니다.

오늘 내 삶의 자리에서 순교영성을 실천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생각해봅니다. 대단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특별한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매일 우리가 겪는 작은 불편들을 관대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기쁘게, 기꺼이 수용하는 일이 아닐까요? 견디기 힘든 고통이나 십가가가 다가올 때 순교하는 마음으로 견뎌내는 일이 아닐까요?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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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님은 증조부 때부터 천주교를 받아들여 대대로 순교자를 낸 신심 깊은 집안에서 1821년 충남 당진 솔뫼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솔뫼는 그의 증조부(복자 김진후 비오), 부친(성 김제준 이냐시오)을 포함 4대 11명이 순교의 꽃을 피운 곳입니다.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는 오늘 복음 말씀에서처럼 사위의 밀고로 체포되어, 아들을 국경을 넘겨 보낸 국사범으로서 온갖 잔악한 형벌을 받은 후에 서소문 밖에서 목 잘려 순교하셨습니다.

신부님은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고 우술라 사이에서 3남매 중 맏아들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비상한 재주와 굳센 성격, 진실한 신심을 드러냈던 신부님에 대해 모방 신부님은 “이 아이는 아마 천주께서 선택하신 아이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1836년, 열다섯 살 때에 세례를 받은 그는 모방 신부가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묻자, “남의 영혼을 구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밝히셨습니다. 그리하여 최양업 토마스와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고국을 떠나(1836.12) 육로로 마카오 신학교에 도착(1837.6)하여 4년간 철학과 신학 공부했습니다. 만주에 들른 그는 북경으로 가던 신자 김 프란치스코로부터 기해박해로 아버지는 참수를 당하고 어머니는 교우집을 떠돌아다니며 신세를 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앵베르 주교가 기록했던 박해의 기록과 모방신부와 샤스탕 신부의 편지, 그리고 목자를 보내줄 것을 청한 교우들의 편지를 받고, 그 길로 조선에 있는 메스트르 신부를 만나기 위해 변문을 향했습니다. 그 후에 여러 차례 입국하고자 시도했다가 실패했고, 장춘 소팔가자 성당에서 부제품을 받고서 선교사제의 입국을 돕고자, 마침내 1845년 1월에 온갖 고생을 겪고 압록강을 건너 입국하셨습니다. 그러나 홀로된 어머니도 뵙지도 못하고, 전교 신부님을 모셔오기 위해 몸이 불편한 중에도 온갖 고초를 겪으며 다시 상해로 갔고, 1845년 8월 17일에 상하이 김가항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그 후, ‘라파엘’ 호를 타고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와 함께 고국으로 돌아와 밤낮으로 열심히 사목하는 동시에 선교사제의 서해 입국 통로를 개척하다가, 1846년 6월 5일에 체포되셨습니다. 신부님은 당신의 뛰어난 외국어 실력과 학문을 아깝게 여긴이들이 인재로 쓰려고 수차례 회유를 하지만, “천주를 숭배해야만 한다. 이를 거절하면 죄를 면치 못한다.”고 답했으며, 교우의 이름을 대라 하면, “이웃을 사랑하라는 천주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짓”이라고 거절했습니다. 신부님은 모진 문초를 받으면서도, 옥중에서 신자들에게 믿음을 잃지 말고 하느님을 섬기며 고통을 참으라고 옥중편지를 통해 이렇게 신자들을 격려했습니다.

“천주를 알지 못하면 산 보람이 없습니다. 눈물로 씨 뿌린 농부가 추수하는 기쁨을 누리듯 신앙도 좋은 열매를 맺을 때 천국의 기쁨을 누립니다. 박해를 두려워 말고 천주를 섬기고, 순교자들을 기억합시다. 성인들의 발길을 따라 교회에 충실한 시민이 되고, 사랑의 일치로 주님 만나는 기쁨을 누리십시오.”

1846년 9월 16일, 사제품을 받은 지 1년 1개월 만에 한강가의 새남터에서 26세의 나이로 참수의 거룩한 순교의 빨마를 얻으셨습니다. 비록 짧은 생이었지만 그가 이 땅에 남긴 신앙의 씨앗은 여전히 한국의 신자들 안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조선대목구 제3대 대목구장인 페레올 주교는 추도사에서 이렇게 쓰셨습니다.

“그를 만나본 사람들이면 어느 누구나 그의 열렬한 신앙심과 성실한 마음에 존경심과 사랑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어떤 일도 안심하고 맡길 수 있었고, 늘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는 1949년에 한국 모든 성직자들의 수호자로 선정되셨고, 1984년 5월 6일에 성인으로 시성되셨습니다.

성인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신 “예수님 때문에” 모진 핍박과 수난 속에서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 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임금으로부터 배교할 것을 강요당하는 상황에서도 “임금 위에 또 천주께서 계시어 당신을 공경하라는 명령을 내리시니 그의 배반함은 큰 죄악이라, 임금의 명령이라도 옳은 일이 될 수 없습니다.”라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용감히 증거 했습니다.

참으로 살 때나 죽을 때나 오로지 “예수님 때문에”만 살고, “예수님 때문에”만 죽으셨습니다. 마치 사도 바오로의 고백에서처럼, 살아있을 이유도 핍박을 받고 죽을 이유도, 오직 “예수님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성인의 “옥중편지”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는 고문을 받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관장께서 내가 천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형벌을 당하게 해주시니 관장께 감사합니다.”

이처럼 성인께서는 참으로 “예수님 때문에” 고문을 받으셨고, “예수님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새남터에서의 마지막 강론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의 마지막 때가 왔으니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내가 외국 사람과 통한 건 오직 천주님과 교회를 위함입니다. 나는 죽으나 여기서 영원한 생명이 시작됩니다. 여러분도 죽은 후 행복을 얻으시려면 천주교 신자가 되십시오.”

그리고 참수될 당시, 칼로 여덟 번 목을 친 뒤에야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고 전해지는데, 칼을 든 열두 회자수 망나니가 목을 치기 위해 무릎의 꿇려 머리를 잡아당긴 상황에서 신부님은 말합니다.

“이 모양으로 하고 있으면 칼로 치기가 쉽겠느냐? 자, 준비가 다 되었으니 쳐라.”

성인께서는 예수님께 대한 사랑으로, 오로지 예수님께 희망을 거셨습니다. 참으로, 성인께서는 <제2독서>의 말씀대로,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을 안고 기뻐하시고,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하셨습니다.’(로마서 5,2-3).

이제 우리 역시, 다름 아닌 “예수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예수님께 희망을 걸고서, 매순간을 “순교”로 살아가야 할 일입니다. 우리의 “증거”, 곧 우리의 “순교”가 우리의 삶의 현장과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연속되는 죽음 속에 자리 잡아야 할 일입니다. 일상의 삶 안에서, 나 자신의 뜻에는 스스로 죽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순명해야 할 일입니다.

사실, 내년 2021년은 세계유네스코가 정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기념 해’ 이고, 한국천주교회는 내년을 ‘한국교회의 희년’으로 선포합니다. 그러니 우리도 사도 바오로처럼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의 죽음을 몸으로 경험하고 있지만, 결국 드러나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몸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죽을 몸에 예수님의 생명이 살아있음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고린토2서 4,10-11). 아멘.

- 오늘 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마태오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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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고난과 시련이 당신을 증언할 기회가 되게 하소서.
그 속에서 당신의 능력과 현존을 체험하게 하소서.
오히려 굳세어지고 새로워지게 하소서.
위기의 순간이 아니라 기회의 순간이 되게 하소서.
미움 받고 거부당할 때에도, 박해 받고 배신당할 때에도
당신과 함께 받게 하시고 당신의 영광도 함께 누리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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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2020년 7월 5일
  |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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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아름다운 순교적 삶

-회개, 희망, 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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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 연중 제14주일에 한국 순교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미사를 봉헌합니다.

이미 순교의 죽음을 당하셨지만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살아 계신 것처럼 생생한 느낌을 갖게 하는 순교 성인입니다.

‘늘 옛스러우면서도 늘 새롭게’(ever old, ever new) 느껴지는 성인입니다. 마침 어제 써놓은 산나리 들꽃을 보며 써놓은 글도 생각납니다.

-“늘 거기 그 자리
누가 보아 주든 말든
알아 주든 말든 무슨 상관이랴
하루를 살아도
하늘님 가득 담고 영원을 사는
하늘님만으로 충만한 행복의 들꽃들인데!”-

하느님만으로 충만한 행복을 살았던 순교성인들입니다. 2세기 순교영성의 시대, 참으로 주님 사랑 때문에 순교를 갈망했던 무수한 사랑의 순교자들입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얼마나’의 산 햇수가 아니라 ‘어떻게’ 주님을 치열히 사랑하며 살았느냐가 관건임을 깨닫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은 고작 만25세에 순교하셨으니 얼마나 짧은 생애이셨는지요. 그러나 성인은 영원히 살아 있어 여전히 생생한 감동에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얼마전 고통중에도 깨끗한 죽음을 맞이한 어느 분을 운구한 분의 추도사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몸이 너무 가벼워 나비처럼 자연의 일부가 되어 날아 가신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께서 사주신 밥, 대략 70끼니가 넘는 것 같습니다. 밥값하는 삶을 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빈자리는 무엇으로 메꿔야 합니까?”

죽음은 삶의 요약입니다. 길게 살았던 짧게 살았던 얼마나의 삶의 양이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합니다. 참으로 믿는 이들 누구나의 소원은 잘 죽는 것일 겁니다.

제 간절한 단 하나의 소원 역시 병원에서가 아닌 영적전쟁터인 내 삶의 자리에서 치열히 사랑하며 ‘주님의 전사戰士’로 살다가 영적전투중에 조용히 전사戰死하여 자취없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참으로 전사戰死해야 전사戰士임을 깨닫습니다.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는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의 물음으로 직결됩니다. 얼마전 거룩하게 살다가 선종한 어느 수녀님에 대한 일화도 생각납니다.

‘수녀님은 누가 보고 싶어요?’라고 임종전 어느 수녀가 물었다 합니다.

“하느님이 보고 싶어요!”

평생 하느님만을 사랑하고 찾고 그리워하며 사셨던 분이심이 분명합니다. 그대로 한평생 순교적 삶을 사셨던 분입니다. 최민순 작사, 이문근 작곡의 ‘성 안드레아 김대건 노래’(성가287)는 언제 부르고 들어도 감동입니다. 성인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순교적 삶에 순교의 죽음입니다.

-“서라벌 옛터전에 연꽃이 울어라, 선비네 흰옷자락 어둠에 짙어갈제
진리의 찬란한 빛 그몸에 담뿍 안고, 한떨기 무궁화로 피어난 님이여
한강수 굽이굽이 노들이 복되도다, 열두칼 서슬아래 조찰히 흘리신 피
우리의 힘줄안에 벅차게 뛰노느니, 타오른 가슴마다 하늘이 푸르러라
가신님 자국자국 남긴 피 뒤를 따라, 싸우며 끊임없이 이기며 가오리니
김대건 수선탁덕 양떼를 돌보소서, 거룩한 주의 나라 이 땅에 펴주소서.”

간절한 기도와 같은 성가가 심금을 울리며 우리 모두 순교적 삶을 살도록 북돋아 주며 고무합니다. 성인의 순교직전 마지막 장문의 옥중서간 역시 구구절절 얼마나 감동적인지요. 고작 25세에 이런 편지를 썼다니 참 경이로울 뿐입니다.

임종을 앞뒀던 어느 분의 “인생무상人生無常, 이보다 진실이 없어요!”란 고백도 잊지 못합니다. 바로 인생무상에 대한 유일한 답이 거룩하고 아름다운 순교적 삶임을 깨닫습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거룩하고 아름다운 순교적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첫째, 회개의 삶입니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순교적 삶의 첫째 조건입니다.

오늘 제1독서 역대기 하권에서 착안했습니다. 요아스의 변절과 즈카르야의 살해에 관한 내용이 바로 우리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의 집을 저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다른 우상들을 섬긴 죄로 인해 이들 유다와 예루살렘에 주님의 진노가 내렸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예언자들을 보내셨지만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즈카르야를 죽이기까지 합니다. 즈카르야의 순교 직전의 임종어가 긴 여운으로 남아 우리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너희가 주님을 저버렸으니 주님도 너희를 저버렸다. 주님께서 보고 갚으실 것이다.”

참으로 반복되는 우상숭배의 변절의 인간들이요, 여전히 반복되는 순교의 죽음입니다.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고 계속되는 악순환의 반복입니다. 이렇게 가다간 하나뿐이 공동의 집인 지구도 위태합니다. 이는 생태전문가의 절실한 고백도 생각납니다.

“이 세계를 그냥 이대로 망해가는 대로 내버려 두면 안될 것 같습니다. 너무 아깝습니다.”

참으로 생태적 회개는 물론 전방위적 내외적 영적 혁명의 철저한 회개가 화급, 절박한 때입니다. 멀리서가 아닌 지금 여기 나부터입니다. 생명과 사랑의 하느님께 돌아가는 회개의 삶입니다.

둘째, 희망의 삶입니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순교적 삶의 둘째 조건입니다.

바로 제2독서에서 착안했습니다.

회개할 때 비로소 참사람의 시작입니다. 무엇보다 사랑과 희망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회개를 통해 본래의 사랑과 희망의 회복입니다.

궁극의 하느님께 대한 희망입니다. 이런 희망이 있기에 자발적 사랑의 순교적 삶입니다. 이런 희망이 없어 혼란 복잡한 삶이요 타락에 인간성 상실입니다.

희망이 없는 곳이 지옥이요 사람의 내면은 날로 황폐화되어 인성도 거칠어 지고 사나워집니다. 희망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오늘 바오로의 제2독서 말씀은 오로지 희망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이 바로 궁극의 진짜 참 희망입니다. 이런 희망이 참으로 아름답고 매력적인, 고결하고 기품있는 사람으로 살게 합니다.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부어진 사랑에서 샘솟는 이런 희망입니다.

참으로 예언자들은 물론 성서의 모든 사람들이 희망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새 이스라엘인 우리 모두를 향한 시편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아,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 희망을 두어라.”(시편131,3).

셋째, 인내의 삶입니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순교적 삶의 셋째 조건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착안했습니다.

희망이 있어 인내도 가능합니다. 하느님께 희망을 둘 때 무한한 인내입니다. 참으로 희망이 있을 때 인내의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이 걱정과 두려움중에도 좌절함이 없이, 흔들림 없이 주님의 길을 가게 합니다.

요셉수도원 초장기 때 당시 원장수사와의 대화를 잊지 못합니다. 수도생활에 필요한 덕이 저는 ‘사랑’이라 대답했을 때 당시의 원장 수사는 ‘인내’라 대답했습니다. 정말 마지막 승리는 끝까지 희망을 지니고 기다리며 인내하는 자에게 있습니다.

정주의 인내요 정주의 믿음입니다. 언제나 거기 그 자리의 불암산에서 배운 것도 항구한 인내였습니다.

“불암산이 떠나면 떠났지 난 안 떠난다.” 다짐하며 요셉수도원에 정주한지 32년째입니다.

일희일비 반응하지 않고 담아두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자주 다음 자작시를 되뇌이며 미소짓곤 합니다.

-“산이 산에 가다니요
그냥 있으세요
당신은 산보다
더 좋은 깊고 고요한 산이예요”-

산같은 정주요 인내의 믿음입니다. 인내하며 기다리다 보면 문제의 해결解決이 아닌 저절로 문제의 해소解消임을 깨닫게 됩니다. 지나고 나면 별것도 아닌데 유혹에 빠져 참지 못하고 행위함으로 자초하는 화는 얼마나 많은지요.

성 베네딕도 역시 ‘형제들의 육체나 품행상의 약점들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라’(성규72,5)는 공동체 삶의 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오늘 복음 말씀도 인내로 결론을 맺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오 10,22).

주님은 오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심기념미사 강론을 통해 거룩하고 아름다운 순교적 삶을 위한 귀한 지침을 주셨습니다. 바로 회개의 삶, 희망의 삶, 인내의 삶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렇게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끝으로 아빌라 성녀의 기도의 선물로 강론을 마칩니다.

-“아무것도 너를 어지럽히지 않게(Nada te turbe)
아무것도 너를 놀라게 하지 마라(nada te espante)
모든 것이 다 지나가지만(Todo se pasa)
하느님은 변치 않으시는 분(Dios no se muda)
인내가(la paciencia)
모든 것을 얻게 하리니(todo lo alcanza)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quien a Dios tiene)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nada le falta)
오직 하느님으로 넉넉하도다(solo Dios basta)”-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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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네딕도회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2020년 7월 5일
  | 07.05
459 15.6%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마태오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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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성직자들의 맨 앞자리에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가 있습니다.

성직은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소중한 직분입니다. 불충실한 저의 삶을 아프게 반성합니다. 성직의 길은 휘어진 곡선처럼 굽이굽이 고개를 넘습니다. 사랑에 빚진 삶이 바로 이 땅의 성직자들의 삶입니다. 고단함과 간절함까지 하느님께 내어주는 사람이 성직자입니다.

절박한 희망 안에서 진리를 이야기합니다. 수많은 고민과 아픈 기도와 대답 없는 수많은 물음이 모여 이 땅의 기초가 됩니다. 적당히 살아가는 저에게, 세속과 타협하는 저에게, 진리를 저버리는 저에게, 잊고 살아가는 성직의 본질을 다시 가르쳐주십니다.

삶과 죽음 속에서도 진리를 찾고 진리를 따르는 삶이 성직자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성직자의 의복이 아니라 성직자의 올바른 삶에 목 메이며 울컥하는 이 땅의 목마른 신앙인들의 기도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를 십자가에서 다시 만나는 시간 되십시오.

이 땅의 모든 성직자들을 위해 빌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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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2020년 7월 5일
  |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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