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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의 사상
조회수 | 3,573
작성일 | 08.07.03
김대건 신부님은
1821년 8월 21일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솔뫼)에서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고 울술라 사이에서 출생하셨다.
6살 때 박해를 피해 경기도 용인시 남곡리의 골배마실로 이사를 하고 1836년 은이 공소에서 영세를 하셨다.
그 해 12월 모방 나신부에 의해 최양업 토마와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 유학길에 오르니 16세였다.
1844년 12월 15일 페레올 주교로부터 부제품을 받고 1845년 1월 조국에 몰래 입국하였다가 다시 4월에 주교와 신부를 영입하기 위하여 10여 일의 항해 후 상해에 도착한다.
1845년 8월17일 상해 근처 김가항에서 페레올 주교에 의해 사제로 서품 되니 한국교회 최초의 사제가 되었고 그때 그의 나이 25세였다. 그해 10월 12일 주교와 신부를 모시고 충청도 나바위에 무사히 입국하였다.
8개월 동안 국내에서 사목활동을 하던 중 1846년 6월 5일 몰래 출항하려다 황해의 순위도 부근에서 체포되어 9월 16일 새남터에서 참수되어 군문 효수형을 당하니 그의 나이 26세에 불과하였다.
1925년 비오 11세에 의해 로마에서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2세에 의해 서울에서 성인으로 시성 되었다.

김대건 신부님의 서간을 보면 하느님을 “임자”로 표현하며, 임자사상을 볼 수 있다.

1. 임자사상

이것은 창조주를 임자라 하였고
이 임자에 대하여 孝愛를 다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세상에 태어나 그 임자를 알아보지 못하면, 이 세상에 난 보람이 없고, 한 번 알아본 후 그를 배신하면 차라리 이 세상에 아니 난 것만 못하다.” 김대건 신부님은 孝愛의 모범을 보이신 분이시며, 끊임없이 하느님 임자에 대한 효애를 가르치셨다.

신부님은 교회의 장상들에게,
하느님을 대리하는 장상들에게 죽기까지 순명하셨고, 부모에게도 효성을 드렸다. 그래서 주교님과 친구에게 어머니 울술라를 부탁하시고 순교의 길을 가셨다. 또한 나라에는 종교의 자유를 허락할 것과 외국에 대해 문호를 개방하라고 촉구하심으로써 선각자의 구실도 하셨다. 임자사상은 박해시대의 大君大父思想, 愛主萬有至上的 신심을 대표하며 효애를 다하라고 강조하셨다.

2. 우리 자신의 임자를 제대로 알고 공경하자

1. 창조주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셨다.
또한 하느님의 속성은 사랑이시며, 인간도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사랑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다. 인간은 이제 사랑을 통해서만이 자신의 새로운 모습, 즉 자신의 본 모습을 되찾고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임자를 잘 알고 제대로 공경하는 것은 창조주의 뜻을 따라 새로운 창조 사업을 하는 것으로써 임자의 말씀을 잘 들으며, 그 말씀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효도를 드린다는 것은 여러 가지 표현이 있겠으나, 부모님의 마음을 편하고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며, 자식들이 아름답게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다.

2. 영원으로부터 우리를 초대하시는 분이시다.
예비자 교리 때에 입교의 동기를 물어보면, 1) 종교를 갖는 것이 갖지 않는 것보다 낳을 것 같고 무엇이나 하나는 믿어야 하겠기에; 2) 죽어서 좋은데 가려고; 3) 집안에 우환이 많아서 이것 좀 고쳐보려고; 4) 신자들의 봉사하는 모습에 감동하여 자신도 그런 삶으로(상가 돌봄, 환자 방문, 어려운 사람 돌봄 등) 기쁨을 갖기 위하여; 5) 신앙을 갖고 착하게 살며, 보람 있는 인생을 살려고 입교했다는 동기를 말하고 있다. 이러한 동기는 이제 참된 신앙으로 바뀌어야 한다. 즉 인간의 근본이 무엇이며, 어떻게 태어났으며, 어디로 가야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신앙생활을 통해 알게 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부르신 분이시다. 이제는 우리의 응답만 남아있다.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예정해 놓으시고 인간의 응답을 기다리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우리의 아버지”하며 하느님 당신의 가족이 되기를 원하신다. 이 가족에서 영원한 생명을 간직하도록 항상 당신께 돌아오기를, 회개하기를 기다리시고, 여러 가지 모습으로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신다.

3. 임자께서는 외아들을 주셨다.
인간이 합당한 응답을 드리지 못하여 당신의 뜻을 거스르고 범한 죄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주신 분이시다. 그래서 십자가와 부활 사건으로 인간에게 구원을 주신 분이시다. 여기서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십자가와 부활 사건으로 구원을 주신 분이시다. 여기에 당신의 외아들을 제물로 봉헌토록 하신 분이시다. 성자를 통해 하느님 당신의 뜻을 알려주시고, 그 모든 것이 사랑임을, 사랑으로 완성되어 나가는 것임을 알려주셨다. 사랑의 극치인 아들의 죽음을 통해서이다.

오늘 전례의 말씀은 진리와 신앙을 위해 박해와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열두 제자들의 파견(마태 10,11-16)에 이어 나오는 이 말씀은 당신을 증언하게 될 사람들이 받을 여러 가지 고통과 역경을 설명하신다. 그러나 그런 박해에 제자들을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성령의 도움을 약속하신다.

제1독서의 즈가리야가 우상을 섬기는 왕의 잘못을 지적하고 하느님께로 회개할 것을 요구하고 하느님의 징벌을 이야기하여 죽임을 당했던 것과 같이, 김대건 신부님은 같은 동족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젊음과 생명을 바친 분이시다. 이것은 바로 그분의 신앙이었다.

이 신앙은 제2독서에서 보듯이 믿음이 우리의 구원을 보증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순교자란 하늘의 가치, 진리를 위하여 현실을 뛰어넘어 자신을 던진 사람들을 말한다. 진실만이 참 평화를 가져온다. 예수님과 같이, 순교자들처럼 죽어가면서도 진실과 이웃을 위한 희생의 삶을 보여줄 때 비로소 평화가 실현되는 것이다.

김대건 신부님은 인간의 본 모습을 잘 깨닫고, 알고 사랑한 분이시며, 자신의 목숨을 바쳐 사랑한 죽기까지 효애를 드린 분이시다. 이제 우리는 지혜를 구하도록 하자. 체면 때문에, 손해 보는 것 같아서 못하는 경우도 많다. 믿음과 열렬한 마음을 구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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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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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오래 사셨더라면...

가끔 신부님들을 만나면, 이러한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가장 존경하는 성인은 누구입니까?”

대부분 교구 본당 신부님들이라서 그런지, 주로 본당 사제의 수호성인이신 ‘아르스의 마리아 비안네’라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비안네 성인을 참으로 존경한다. 그분의 고해성사를 통한 은총의 삶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며 가슴 뭉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이 좀 더 오랫동안 사목을 하셨더라면, 비안네 성인을 훨씬 능가하는 훌륭한 성인이 되시지 않았을까 싶다. 그 당시 김대건 성인은 학식과 인품, 영성 모두가 뛰어난 분이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당시 조선 사회는 성인을 26세의 꽃다운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버리게 만들었다. 성인은 1845년 8월 17일에 중국 상해 연안의 김가항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그 이듬해인 9월 16일에 나라에 대한 반역, 사교의 괴수라는 죄목으로 군문효수형을 선고받아 새남터에서 휘광이들의 서슬퍼런 칼에 순교하셨다. 사목 활동은 고작 1년 정도만 하신 셈이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아까운 삶, 억울한 삶을 사신 성인이다. 자신의 사목적인 열정과 포부를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채 순교의 월계관을 일찍 쓰셨기 때문이다.

성인께서는 짧은 사목활동 기간이었지만, 그 당시 박해 상황에 처해 육적, 영적 고통과 굶주림에 시 달리는 신자들에게 미사와 성사의 은총으로 굳건한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또한 체포된 이후에는 몇몇 조정 대신들에게 서양 학문을 일깨워 주고 세계지도를 번역·작성하는 활동을 펼치셨다. 특히, 사형이 선고되기 전에는 ‘옥중서간’을 통해 온갖 두려움과 고통 중에 살아가는 신자들의 가슴에 믿음의 불씨를 활활 타오르게 하셨다.

이러한 성인의 사목적 열정은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라는 오늘 사도 바오로의 제 2독서의 말씀을 가늠케 한다. 또한 오늘 복음 말씀처럼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는 구원에 대한 강렬한 희망이 있었기에, 성인께서는 환난과 핍박, 극심한 박해 앞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는 용기로 당신의 목숨을 주님 손에 기꺼이 맡겨 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짧은 사목활동을 하셨지만 순교의 열정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강한 확신을 심어 주셨다.

우리 한국천주교회의 신자들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성인으로 모시고 있음을 정말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 진정 자랑스러운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성인의 강직하고 고결한 순교 정신을 본받아 세속적인 유혹과 온갖 시련 앞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박석천(안드레아) 신부
  |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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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순교

2007년 8월 17일. 제 꿈이 이루어진 날입니다. 98년 2월에 신학교에 입학해서 그렇게 꿈꿔왔던 사제 서품을 받은 날입니다. ‘사제 서품!’ 신학생이라면 몇 번이나 꿈꿔보고 상상하는 날입니다. 물론, 사제 서품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말입니다.

사제 서품 날짜가 정해진 후, ‘8월 17일’이라는 날짜 자체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랍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날이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님이신 김대건 신부님께서 사제 서품을 받으신 날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왠지 뿌듯한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새로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821년 8월 21일 충청도 솔뫼에서 태어나신 김대건 신부님은 용인의 은이 공소에서 세례를 받으신 후 신학생 후보로 선발 되셨습니다. 마카오에서 공부를 하시고 1845년 8월 17일 상해 연안에 있는 김가항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님에게 사제 서품을 받으셨으며, 1846년 9월 16일에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그후 오랜 시간이 흘러 김대건 신부님께서는 한국 성직자들의 주보로 결정되시고 1984년 시성되셨습니다.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에 대해서 다시금 깊이 생각해보는 날입니다. 25세라는 젊은 나이, 사제로서의 생활은 불과 1년 밖에 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박식한 지식으로 인해 배교만 한다면 높은 지위도 보장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부님은 그러한 세상의 지위가 영원한 삶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기에, 순교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부와 명예를 모두 버린 것은 물론 육신의 고통까지 겪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신부님은 세상이 아닌 예수님을 선택했습니다. 자신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예수님이었고, 예수님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참된 행복을 체험하였기 때문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날 ‘피의 순교’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자랑스러워하고 남들 앞에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 역시 또 하나의 순교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삶을 본받아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갈 것을 다짐해 보게 됩니다.

손용창(베드로) 신부
  |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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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사제

오늘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3년 만에 한국에 오니 정말 좋았습니다. 우리나라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이 한국말로 잘 통하고 시스템도 척척 잘 돌아가고 특히 인터넷이 빨라 좋습니다.

부모님과 식사를 하고 동기 신부가 차를 태워주어서 방학동안 머물 숙소로 오는 중에 감동적인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 신부님은 통일과 북방선교에 관심이 있는 신부님이라 한 번은 탈북자들이 우리나라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을 시키는 '하나원'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신부님께 한 봉사자가 고해성사를 보고 싶어 하는 분이 계시다고 하더랍니다. 보통은 봉사자 중에 가끔 고해를 보기도 해서, 봉사자가 원하는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탈북자 중 한 분이 고해를 보기를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한 할머니께서 들어오셨습니다. 연세가 여든 내외가 되어 보이셨습니다. 그 할머니는 성호를 그으시면서 말씀도 못하시고 계속 우시더랍니다. 그도 그럴 것이 60년 만에 보는 고해성사였던 것입니다.

그 할머니는 유아세례를 받았지만 공산정권 하에서는 종교생활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종교 생활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가톨릭 신자라는 것을 철저히 숨겨야했습니다. 딸과 함께 탈북을 하였는데 그 숨 막히는 긴장을 뚫고 국경을 넘었을 때 할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성호를 그으셨습니다. 딸은 어머니가 하는 것이 무슨 행동인지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60년이 넘게 힘든 일이 있으면 남이 못 보도록 이불을 뒤집어쓰고 성호를 긋고 주님의 기도를 바쳤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의 동기 신부님은 하염없이 흐느끼는 할머니에게 계속해서 "그건 할머니 잘못 아니에요, 그건 할머니 잘못 아니에요..."라고만 되풀이 해 주었다고 합니다. 평생 고해를 못하고 미사를 못 한 것이 어찌 할머니 탓이겠습니까?

그러면서도 평생 믿음을 지켜 오신 그 할머니 앞에 저를 비롯한 모든 현대의 신앙인들은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 할머니는 60년 만에 하는 첫 미사와 영성체의 행복감에 젖어 미사 참례하시는 내내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신부님은, '우리는 왜 그런 첫 마음으로 미사에 참례할 수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맞습니다. 저도 오늘 한국에 들어오면서 공항 표지판이 한글로 되어있고 안내방송이 한국말로 나오는 것 하나에서도 너무 행복해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첫 마음이 얼마나 가겠습니까? 그렇게 먹고 싶은 음식도 한두 번 먹어보면 더 이상 땅기지가 않습니다.

저도 눈물을 흘려 본 경험을 생각해 보니 군대 들어갔을 때 몇 주 미사를 갈 수 없다가 가게 되어 눈물이 났던 적, 또 신학생 때 불만이 쌓여가서 한 이틀 굶어보고 영성체를 했더니 눈물이 났던 때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 땐 미사가 정말 은혜 자체였고 성체 하나로 온전히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험들은 서서히 또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 첫 마음으로 산다면 정말 행복할 수 있을 텐데요.

오늘은 우리나라에 첫 사제 순교자인 김대건 안드레아 대축일입니다. 저는 김대건 신부님의 대축일을 맞이해서 그 분을 빌미로 사제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만약 북한에 단 한 명의 사제만 있다고 해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해를 보고 미사를 하며 소원을 풀 수 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김대건 신부님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사제가 된 분입니다. 물론 그렇게 어렵사리 탄생한 첫 방인 사제이셨지만 채 1년도 활동하시지 못하고 잡히시어 순교하시게 됩니다. 그 때 어떤 신자들은 평생 단 한 번 한국어로 고해성사를 받고 강론을 들었을 것입니다. 한 번 미사를 하기 위해서 부산에서부터 옹기장이 행세를 하며 목숨을 걸고 경기도로 올라온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일 년도 안 되는 시간동안이지만 한국에는 단 한명의 한국말을 쓰는 사제밖에 없었고 신자들에겐 그가 유일한 보물이었습니다. 그건 그분의 성품과는 별개였습니다. 한국말을 쓰는 사제라는 것 하나만으로 그분을 구하기 위해서 많은 신자들이 대신 목숨을 바치겠다고 달려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에게 그 할머니 이야기를 해 준 신부님은 사실 신자에게 멱살도 잡히며 모함도 당하는 등 여러 상처를 받은 분입니다. 물론 사제가 먼저 잘 해야 신자가 잘 해 줄 수 있다고 말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신자들이 그 나라에 마지막 남은 사제라고 생각하고 소중히 여겨준다면 신자들의 마음을 보고라도 더 달라지려하지 않을까요? 어떻게 사제에게 손을 댈 수 있는 정도로까지 사제라는 것이 하나의 보통직장인처럼 여겨지게 되었을까요?

아마 첫 사제를 대하던 마음이 사제가 둘이 생기고 셋이 생기고 더 많이 늘어났기 때문에 그 첫 사제를 대하던 마음이 무뎌져버린 것이 아닐까요? 사제도 물론 첫 모델인 김대건 신부님을 본받아야겠지만 신자들도 우리나라에 단 한 분밖에 없었던 사제를 대하듯이 지금의 신부들을 대하려는 마음을 다시 가져야하지 않을까요?

유럽 교회의 퇴락이 어쩌면 프랑스 혁명 이후 사제들을 하나의 공무원이나 직장인처럼 여겨지게 된 것으로부터 시작되지는 않았을까요? 사제를 존중하지 않으면 하느님은 사제를 보내주시지 않으십니다. 선물은 고맙게 받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제의 품위는 하느님께서 세워주시는 것이고 하느님께서 거룩하게 축성하시는 것입니다. 그 사제가 비록 부족한 점이 많다고 하더라도 미사 드리고 고해성사 드려주는 것만으로도 그런 사제를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사울은 하느님께서 사무엘을 시켜 기름을 부어 축성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입니다. 기름을 부어 축성했던 직책은 사제와 왕과 예언자였습니다. 기름은 성령님을 나타내고 하느님께서는 성령님을 부어 특별한 직무를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으로부터 축성된 사울은 하느님께 죄를 범하게 되고 자신이 받았던 성령님을 잃게 됩니다. 그렇게 되니 마음이 불안하게 되고 다윗을 시기하여 그를 죽이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다윗을 추격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 한 번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었습니다. 사울이 자고 있을 때 다윗이 부하들과 그의 막사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의 부하들은 사울을 죽이고 나라를 차지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느님께서 성별하여 뽑으신 왕을 어찌 인간이 손을 댈 수 있느냐?”며 다만 겉옷자락을 자르고 그의 창과 물통만을 가지고 왔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었고 이젠 하느님도 사실 그에게서 떠난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기름 부어 성별하신 왕이었기 때문에 옷자락을 자른 것만 가지고도 다윗은 큰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나중에 사울의 군사 하나는 전쟁터에서 크게 상처를 입은 사울을 칼로 찔러 죽이게 됩니다. 사울이 상처를 크게 입어서 어차피 죽을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사울이 적군에게 죽기를 원치 않았고 그 신하에게 자신을 찔러 달라고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찌른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앞으로 왕이 될 다윗에게 조금은 아부하는 마음으로 이 일을 아뢰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반응은 예상외였습니다. 비록 자신을 죽이려는 원수였을지라도 하느님께서 성별하신 사람이었는데 그에게 함부로 칼을 대었던 그 군사를 나무라고 즉시 칼로 쳐 죽였습니다.

아무리 형편없다고 생각되는 사제더라도 하느님께서 거룩하게 축성한 몸이고 그 사제를 욕하거나 해를 가하는 일은 그 사람을 뽑아 거룩하게 축성하신 하느님께 대해 죄를 범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죄를 우리는 ‘독성죄’라 부릅니다. 큰 죄 중에 큰 죄입니다.

사제는 김대건 신부님의 온전한 순교정신을 본받아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칠 줄 알아야합니다. 그러나 신자들 차원에서도 사제를 마치 이 나라에 있는 유일한 사제인 것처럼 대할 줄 아는 마음을 갖는 것 또한 적지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 전삼용 신부
  |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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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은총이 가득한 순교의 길”

1845년 무수한 고생 끝에 중국에서 사제품을 받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우리나라 첫 방인 사제로서의 기쁨과 영광도 채 누리기 전, 다시 고국에 돌아와 전교 신부를 입국시키고자 출발하려던 찰나, 순위도 부근에서 관헌에게 체포되어 여러 차례 문초와 형고를 받고 마침내 1846년 9월, 참수의 선혈로써 거룩한 순교의 팔마를 얻게 됩니다. 그때 신부님의 나이는 26세였습니다. 이처럼 김대건 신부님의 거룩하고 고귀한 순교의 피로써,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많은 성직자들이 그 뒤를 이어 복음을 전파하며 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희망적인 말씀은 오늘날 복음화를 위해 희생과 봉사를 아끼지 않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시는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생활하며 신앙인의 정체성을 찾아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혹시 본의 아니게 회사나 학교, 또는 각자의 소임지에서 당당하게 성호경을 긋지 못하고 천주교 신자임을 회피하거나 숨긴 적은 없습니까?

그렇다면 160여 년 전 박해 속에서, 김대건 신부님께서 거룩하게 순교할 수 있었던 힘은 과연 어디에서 나왔을까 생각해 봅시다. 분명 김대건 신부님 역시도 미약한 인간이셨기에 아픔과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을 아셨기에, 당신의 열정이 가득 담긴 사목활동을 접고, 미련 없이 주님의 뜻에 자신의 목숨까지도 맡기셨던 것입니다.

제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기며,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음을 기쁘게 받아들이도록 간청하고 있습니다. 이는 진정으로 의롭게 된 이들의 삶과 희망 안에서 나날이 주님의 은총이 작용하고 있음을 깊이 체험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날마다 순교와 배교의 기로에 서 있는 우리들은 이제 분명히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그래서 이 확실한 결단으로 세상이 가져다주는 즐거움과 쾌락을 뒤로 한 채, 오직 우리를 당신 사랑의 길로 인도하고 계시는 하느님만을 향해 걸어가야 합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전구를 통해 받게 될 하느님의 크신 은총을 깊이 묵상하며, 행복하고 보람 있는 신앙생활이 될 수 있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청해봅시다.

이광휘(미카엘) 신부
  |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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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견디는 이”

저의 동기신부 중의 하나가 탈북자들에게 우리나라 적응을 돕는 시설인 ‘하나원’에 갔을 때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신부님께 한 봉사자가 고해성사를 보고 싶어 하는 분이 계시다고 하더랍니다. 보통은 봉사자 중에 가끔 고해를 보기도 해서, 봉사자가 원하는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탈북자 중 한 분이 고해를 보기를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한 할머니께서 들어오셨습니다. 연세가 여든 내외가 되어 보이셨습니다. 그 할머니는 성호를 그으시면서 말씀도 못하시고 계속 우시더랍니다. 그도 그럴 것이 60년 만에 보는 고해성사였던 것입니다. 그 할머니는 유아세례를 받고 어린시절동안 신앙생활을 했지만 공산정권이 들어오고는 종교생활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종교 생활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가톨릭 신자라는 것을 철저히 숨겨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딸과 함께 탈북을 하였는데 그 숨 막히는 긴장을 뚫고 국경을 넘었을 때 할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성호를 그으셨습니다. 딸은 어머니가 하는 것이 무슨 행동인지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60년이 넘게 힘든 일이 있으면 남이 못 보도록 이불을 뒤집어쓰고 성호를 긋고 주님의 기도를 바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떳떳하게 성호를 그을 수 있고 고해성사를 할 수 있지만 만감이 교차하며 눈물만 하염없이 나왔던 것입니다. 그 분이 60년 만에 성체를 영했을 때의 그 심정은 누구도 감히 헤아릴 수 있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나 쉽게 성사생활을 할 수 있어서 그 고마움을 잘 모르고 냉담까지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이 할머니는 60년간 박해를 당해오셨습니다. 박해란 무엇입니까? 나의 신앙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에 처하면서 바로 시작되는 것이 박해입니다. 이런 외적인 박해도 있지만, 더 가슴 아픈 고통은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할머니는 가족에게까지 성호 긋는 것을 숨기셔야 했습니다. 딸도 이해할 수 없었던 바로 그 혼자서만 외로이 60년을 지켜 오셨어야 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주위에 같은 신앙을 지닌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같은 신앙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너무나도 커다란 은총입니다. 또한 원하기만 하면 고해성사를 보고 성체성사를 영할 수 있습니다. 그 할머니에게 우리의 신앙생활은 과연 어떻게 보일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참으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하여 고독한 가시밭길을 걸어야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저희 사제들의 주보성인이신 김대건 신부님의 생애도 그 할머니처럼 저희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동지사 오가던 길 삼천리 트였건만, 복음의 사도 앞에 닫혀진 조국의 문, 겨레의 잠 깨우려 애타신 그의 넋이, 이역의 별빛아래 외로이 슬펐어라.” ‘외로이 슬펐던 삶’, 이것이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 되는 사람들에게 약속하신 운명입니다. 어쩌면 우리 사제들이나 우리 신자들이 신앙을 통해서 너무 편한 삶만을 바랐던 것은 아닐까요?

김대건 신부님은 또한 아버지 김재준과 어머니 고 우르술라의 장남입니다. 장남이면서 집안은 돌보지 않고 마카오에서 사제가 되는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부모에게 마땅히 해야 하는 효도를 하지 않는 사회의 질타를 받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그의 조국은 더 이상 그를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습니다.

불어, 중국어, 라틴어 등을 구사하고 ‘조선전도’를 그릴 정도로 지리에도 정통한 젊은 인재가 죽기만을 바라는 것이 어리석게만 보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문전걸식하는 어머니를 버려두고 그렇게도 순교를 당하려고 고집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여겨졌을 것입니다. 물론 김대건 신부님도 어머니가 걱정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순교 20일전에 주교님께 이런 서한을 보냅니다.

“저는 감히 주교님께 저의 어머니 울술라를 부탁드리옵니다. 저의 어머니는 10년 동안 못 본 아들을 불과 며칠 동안 만나 보았을 뿐 또 다시 홀연 잃고 말았으니, 주교님께 간절히 바라건대 슬픔에 잠긴 저의 어머니를 잘 위로하여 주십시오.”

관헌으로 압송된 신부님은 극도의 고문을 당하십니다. 사람들 앞에서 옷이 벗겨지는 치욕과 수 천대의 매를 맞았고 조롱을 당했으며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신부님은 그 형벌을 주는 관장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제게 이런 형벌을 주신 관장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관장께서 제게 내리시는 이 형벌을 통해서 저는 더욱 하느님 사랑을 느낍니다. 우리 하느님께서 관장 나리를 더 높은 관직에 올려 주시기를 빕니다.”

그랬더니 관장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큰 소리로 비웃었습니다. 그리고는 여덟 자나 되는 긴 칼을 가지고 와 위협하였습니다. 그 때 김대건 신부님은 그 칼을 잡아 자신의 목에 대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크게 웃으며 재밌어 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을 비롯한 신앙의 모범들은 이 세상에서의 편안함을 찾았던 분들이 아니라,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는 말씀대로 모든 고통을 견디어 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세상에서의 편안함을 약속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몰이해와 멸시, 외로움과 고통을 약속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을 통하지 않고서는 온전한 영광을 누릴 수 없습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막 감옥에 들어온 무기수가 있었습니다. 어둡고 좁은 공간에 던져진 그는 교도소장에게 부탁을 합니다.

“소장님! 교도소 마당 한 귀퉁이에 정원을 가꾸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는 허락을 받고 나서 첫 해에는 손이 많이 가지 않아도 잘 자라는 고추와 양파 같은 것을 심었습니다. 다음 해에는 여러 종의 장미도 심어보고 작은 묘목의 씨앗도 뿌렸습니다. 그렇게 한해, 두해, 그는 정성스레 정원을 가꾸며 보람과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교도소 마당의 작은 땅에 무언가를 심고 가꾸던 그는 27년이 지난 후,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가 출옥할 때 사람들은 그가 아주 허약한 상태로 나올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70세가 넘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주 건강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취재를 하러 나온 기자가 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5년만 감옥살이를 해도 건강을 잃어서 나오는데 어떻게 27년간 감옥살이를 하고도 이렇게 건강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만델라가 이렇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나는 감옥에서 하느님께 늘 감사했습니다. 하늘을 보고 감사하고, 땅을 보고 감사하고, 물을 마시며 감사하고, 노동을 할 때도 감사하고, 늘 감사했기 때문에 건강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흑인의 인권을 위해 노력한 것이 인정되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고, 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남아프리카 대통령으로 당선됩니다. 그가 바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입니다.

넬슨 만델라나 김대건 신부님이나 모든 성인들은 이 세상에서의 고난을 예상한 분들이었고 그 고난이 참 기쁨의 씨앗이 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신 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그런 고난을 이겨내고 영광을 차지할 줄 알았습니다.

성당에서 적지 않은 분들이 세례를 받기 위한 준비기간이나 혹은 세례를 받고 나서 거의 바로 냉담을 하게 됩니다. 집에 조그마한 안 좋은 일이 있더라도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그렇다고 느끼고 성당에 안 다니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닥치고 주위의 몰이해와 비웃음이 돌아온다면 그 때부터 작은 정원을 가꾸기 시작하십시오. 이제 참으로 믿음을 증가시킬 여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끝까지 잘 견디면 그 시련 없이는 절대로 맛볼 수 없는 영광과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하십시오. 그들이 없다면 우리 믿음을 증가시킬 기회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루카 6,23)

수원교구 전삼용 신부
  |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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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金金大建, Andrea, 1821-1846) 사제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어떤 분일까요? 이번 주는 김대건 신부님의 약력을 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이 순교한 나이는 26살, 사제생활 1년…. ‘신부님은 무엇 때문에 당신의 모든 삶을 하느님께 바치셨을까요?’ 그것은 진리이신 하느님을 알았고, 그분 안에 영원히 살리라는 ‘희망’때문이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이 옥중에서 박해와 배교의 유혹을 받는 신자들과 다른 신부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모두 천국에서 만나 함께 영원한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1846년 8월 29일 신자들에게 마지막 인사 편지)

“공경하올 신부님들, 안녕히 계십시오. 머지않아 천국에서 영원하신 아버지 하느님 대전에서 다시 만나 뵙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분의 이름 때문에 묶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형벌을 끝까지 이겨낼 힘을 저에게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1846년 6월 8일 감옥에서 베르뇌 주교와 다른 신부들에게 보낸 편지 내용)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지금의 이 은총을 누리게 되었고, 또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을 안고 기뻐하고 있습니다.”(로마 5,2 참조)라고 말합니다. 그런가하면 김대건 신부님은 참수되기 전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저는 주님을 위해 죽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영원한 생명이 저에게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죽은 뒤에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천주교를 신봉하십시오.” 우리는 예수님 이름 때문에 세상에서 박해와 고통을 받겠지만, 이 희망이 있기에 당당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박해도 유혹도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로마 8,35-39 참조).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또 이런 희망의 말씀을 해주십니다. “끝까지 견디어 내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24,13).

<수원교구 백윤현 신부>
  |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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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사랑 앞에서는 두려움도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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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이든 그것이 ‘진실’이라고 남이 믿게 하려면 그에 합당한 ‘증거’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세상의 창조주이시고 진정으로 살아계신 분’이심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진실’을 넘어서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를 다른 사람들이 믿고 받아들이게 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역시 ‘증거’가 필요할 것입니다.

‘내가 믿으니 너도 믿어보라.’라는 반강제적 권유는 신빙성이 없습니다. ‘일단 한번 믿어보라.’라는 주먹구구식의 설명 또한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어려운 이론을 통한 ‘주입식 해설’은 깊이 있는 믿음으로 발전하지 못하거나 믿음의 단명을 가져다줄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 증거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순교자들의 삶, 특히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삶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온갖 고문과 회유 속에서도 김대건 신부님은 하느님을 섬기는 참된 믿음 안에 지금까지 맛볼 수 없었던 기쁨과 행복이 있음을 증언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유교적 전통과 관료주의 안에서 신부님의 증언은 세상의 근간을 뒤흔드는 사교(邪敎)요 사학(邪學)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신부님은 모든 세대와 시대를 관통하며, 세상 누구도 논박할 수 없는 증거, 즉 ‘순교’의 월계관을 보여주셨습니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박해도 고문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 가운데 황금만능주의와 세속주의가 가장 무섭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목숨보다 더 위에 존재합니다. 세속적 지위와 권력과 명예가 신앙을 뒤로 밀어냅니다.

‘내세는 조금 뒤에 생각해도 될 일이고, 일단 현세가 편안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 생활 속에 드러납니다. 물질적인 것과 세속적인 안위가 보장되지 않음으로 당장 불편함에 직면하는 것이, 나아가 이런 것들을 잃는 것이, 박해와 고문보다 더 무섭습니다.

세상적인 것에 ‘죽기 살기’로 살아가는지도 모르는 채, 신앙의 증거에는 무뎌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결국, 현시대가 우리를 고문하듯이 조목조목 따져물을 것입니다.

‘신앙이 돈을 가져다주는가?’,
‘믿음이 대학을 합격시켜 주는가?’,
‘확신이 진급을 보장해주는가?’,
‘기도가 일상생활의 안위를 보장해 주는가?’

우리도 김대건 신부님처럼 세상의 쓰디쓴 문초에 논박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겠습니다.

“부디 마음을 헛되게 먹지 말고 밤낮으로 주님의 도우심을 빌어, 마귀와 세속과 육신의 3구(三仇)에 맞서서 박해를 참아 받으며, 주님의 영광을 위하고 그대들의 영혼을 위한 큰일을 경영하십시오”(1847년 8월 말 김 안드레아 신부님 옥중편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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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이상용 요한 크리소스토모 신부
2020년 7월 5일 수원교구 주보에서
  |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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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사제로서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1821년 8월 21일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솔뫼)에서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고 울술라 사이에서 출생하셨다.

6살 때
박해를 피해 경기도 용인시 남곡리의 골배마실로 이사를 하고 1836년 은이 공소에서 세례를 받으셨다. 그해 12월 모방 나 신부에 의해 최양업 토마스와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 유학길에 오르니 16세였다.

1844년 12월 15일
페레올 주교로부터 부제품을 받고 1845년 1월 조국에 몰래 입국하였다가 다시 4월에 주교와 신부를 영입하기 위하여 10여 일의 항해 후 상해에 도착한다.

1845년 8월17일 상해 근처
김가항에서 페레올 주교에 의해 사제로 서품 되니 한국교회 최초의 사제가 되었고 그때 그의 나이 25세였다. 그해 10월 12일 주교와 신부를 모시고 충청도 나바위에 무사히 입국하였다.

8개월 동안 국내에서 사목활동을 하던 중
1846년 6월 5일 몰래 출항하려다 황해의 순위도 부근에서 체포되어 9월 16일 새남터에서 참수되어 군문 효수 형을 당하니 그의 나이 26세에 불과하였다.

1925년 비오 11세에 의해
로마에서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서울에서 성인으로 시성 되었다.

복음 : 마태오 10,17-22 : 박해를 각오하여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로운 종류의 싸움을 준비시키신다.
그분 때문에 신앙 때문에 제자들은 부당한 대우와 형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신다.

이것은 선을 위해
악을 참고 견딜 때 승리가 있다는 것을 가르치시는 말씀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령이 정말 가치가 있는 것인지 따져보지 않았다.

그들은 그대로 순종하였다.
그들이 순종한 것은 어떤 무서운 일이 닥친다 해도, 그것을 견디어낼 수 있는 더 많은 은총을 받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17절)

유다인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한 일인 양, 회당에서 그들을 채찍질 할 것이다. 기도와 찬양을 바치고 성경을 읽는 그곳에서 사도들을 처벌할 것이다. 사실 사도들이 겪은 고통은 하느님께 바치는 희생 제물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19-20절)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큰 위안을 주시는 말씀이다. “말하는 이는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라고 하셨다. 즉 사도들은 하느님의 영 없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21절)

한 집안의 가족들이 서로 다툴 것이다.
이것은 꼭 가족들이라는 말이 아니라, 인간은 부모와 친척으로 불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에는 사람들이 일치하고 있었지만, 이 믿음 때문에 사악한 믿음과 충돌한다는 뜻이다. 그 사악한 믿음 앞에서 우리의 신앙을 증언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22절)

앞으로 신앙생활을 해나가면서
만나게 될 사람들은 아마 이러한 사람들이라고 하시는 것 같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시작은 많이 하지만 끝에까지 가는 이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은총으로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끝까지 견디어 낼 수 없다.

영광스러운 것은
어떤 좋은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끝맺는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 끝에 이를 수 있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되었으니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우리의 마지막을 생각하라고 하신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시는 이유이다. 우리의 마지막 순간까지의 신앙을 묵상하고 항구하여야 한다는 말씀이다.

김대건 신부님은
인간의 본 모습을 잘 깨닫고, 알고 사랑한 분이시며, 하느님께 자신의 목숨을 바쳐 사랑한 죽기까지 효애를 드린 분이시다. 끝까지 항구한 분이시다. 우리도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과 같은 항구한 믿음과 온갖 박해도 이길 수 있는 주님의 은총을 청하도록 하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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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2020년 7월 5일
  |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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