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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천주를 위해 나는 죽습니다.
조회수 | 2,890
작성일 | 08.07.03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주일은 연중 제 14주일입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7월 5일(화요일)에 지내는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을, 오늘 주일로 이동하여 경축하도록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나라의 첫 사제이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순교정신을 본받고, 우리나라의 모든 신부님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1821년 충청도 당진군 솔뫼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신부님은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주와 강인한 성격과 진실한 신심을 보였습니다. 신부님은 15세에 중국 마카오에 가서 신학을 공부하셨습니다. 1845년 1월에 온갖 고생을 겪고 압록강을 건너 조국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서울에 도착하여
건강이 매우 나빠서 두 주일을 병석에서 보내다가, 전교 신부님들을 이 땅에 인도하려고 병이 다 낫기도 전에 작은 목선을 타고 중국 상해로 떠났습니다. 풍랑을 만나 고생하다가 마침내 상해에 이르러, 1845년 8월 17일에 사제로 서품되셨습니다. 다시 조국에 돌아와 전교 신부님들을 입국시키려고 편지를 중국배에 전하고 돌아오다가, 순위도 부근에서 관헌에게 붙잡혀 여러 차례 문초를 받았습니다. 신부님은 우리나라 지도인 조선전도를 만들었고, 22편의 서한과 기해박해 순교 자전기 등을 남기셨습니다. 그러다가 1846년 9월 16일, 마침내 서울 한강변의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1925년 7월 5일에
교황 비오 11세께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비롯한 79명의 순교자를 복자위에 올리셨습니다. 그리고 1949년 11월 25일에 교황 비오 12세께서는 복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한국에서 전교하는 모든 성직자의 특별 수호자로 선정하셨습니다.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서울에 오셔서 복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포함하여 103위 복자들을 시성하셨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제 2독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시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믿음 때문에 고통을 받으면서도 기뻐한 이유를 "성령이 마음 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주셨기 때문"(로마 5, 5)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음 말씀은
우리에게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왕들에게 끌려가 재판을 받으며 그들과 이방인들 앞에서 나를 증언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잡혀갔을 때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하고 미리 걱정하지 마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성령이시다"(마태 10, 18-20).

형제 자매 여러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모진 핍박과 고문 속에서도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하셨습니다. 신부님의 삶은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생활 안에서 복음을 선포하며 신부님의 순교정신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느님께 용기와 지혜를 청해야 합니다. 주님 때문에 순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주님의 영광에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의 믿음은
어떠한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또한 이 시대가 요구하는 나 자신의 순교는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묵상해 봅시다. 갖은 고난과 핍박을 이겨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온전한 신앙과 모범을 닮을 수 있는 용기를 주님께 청합시다. 다음은 순교 직전에 하신 신부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나의 마지막 때가 왔습니다. 여러분 귀를 기울여 들어주십시오. 내가 외국사람과 통한 것은 오직 천주교를 위해서였습니다. 천주를 위해 나는 죽습니다. 여기서 영원한 생명이 시작됩니다. 여러분들도 죽은 다음 영원한 행복을 얻고자 생각하시면 천주교 신자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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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전장호 프란치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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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1년 충남 당진의 소나무가 많은 동네에서 태어나신 김대건 신부님은 부모님의 신앙을 물려받아서 깊은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증조부 김진후(비오)와 부친 김제준(이냐시오)는 순교로 신앙을 증거하신 분이시기도 합니다. 신앙 뿐 아니라 총명하기도 하셨던지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신부님에 의해서 1836년 최방제(프란치스코), 최양업(토마스)와 함께 사제가 되기 위해 중국 마카오로 보내지는 신학생으로 발탁되었습니다. 최방제(프란치스코)는 중간에 병사하고, 25세 되던 무렵 파리 외방 선교회가 조선 교구를 담당하여 주교와 신부를 조선에 입국시켜 전교하고 있는 중이었으나, 조선이 외국과 수호조약을 맺지 않아 종교자유가 없었음으로 프랑스 루이 필립 왕이 파견한 함대의 세실 제독이 그 계획을 실행하겠다고 나섰고 김대건 신부님은 세실 제독의 통역관이 되어 조선이 들어갈 메스트르 이 신부와 함께 에리곤 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실 제독이 갑자기 조선 항해를 중지하게 되어 김대건 신부님은 혼자 의주 변문을 거쳐 입국하게 됩니다. 하지만 중도에서 본색이 탄로 날 위험이 생겨 다시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돌아가게 되십니다. 그 후 백가점(白家店)과 소팔가자(小八家子)에 머물며 메스트르 신부로부터 신학을 배우고, 1844년 12월 15일 페레올 고 주교로부터 부제품을 받고, 다시 입국을 시도하여 고 주교와 함께 변문으로 왔으나 김대건 신부님 혼자만 1월 15일 서울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1845년 4월 주교와 신부를 맞이하기 위하여 상해에 갔다가 그 해 8월 17일 상해로부터 20리가량 떨어진 김가항(金家港)에서 페레올 고 주교 집전으로 사제 서품을 받았고, 그곳의 만당(萬堂) 소신학교에서 첫 미사를 드림으로써 조선교회의 첫 사제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1845년 10월 12일에 충청도 나바위라는 조그마한 교우촌에 상륙하여 선교활동에 힘쓰는 한편, 만주에서 기다리는 메스트르 이 신부를 입국시키려고 애썼으나, 의주 방면의 경비가 엄해서 바닷길을 알아보기 위해 백령도 부근으로 갔다가 순위도에서 1846년 6월 5일 밤에 체포되시고 사제생활 1년 1개월만인 1846년 9월 16일에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순교하시게 됩니다.

첫 한국의 사제이시기도 하지만 김대건 신부님의 신앙심과 한국교회에 대한 애증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습입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헤어져서 멀리 이국땅으로 떠나야했던 아픔을 이겨내고 또 목숨이 풍전등화처럼 늘 위태로운 이국땅으로 가는 험난한 여정을 극복하고, 말도 통하지 않고 음식도 맞지 않는 타국에서 10년을 보내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조선 교회에 성직자를 영입하기 위해서 이억 만 리 걸음도 마다 않으시는 노력과 관헌에 체포 되신 뒤에도 당신의 뛰어난 학식이 탐이 나서 참수하기 보다는 나라의 인재로 쓰고자 하는 수많은 회유에도 굴복 않으시고 짧은 사제의 삶을 마감하신 김대건 신부님의 삶은 우리 한국교회가 가진 큰 자랑이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김대건 신부님의 삶을 더욱 공경하여 오늘날 한국교회에도 김대건 신부님 같은 뛰어난 인품과 학식과 열정 그리고 신앙을 삶을 살아갈 많은 사제들이 탄생할 수 있도록 기도와 관심을 아끼지 않아야겠습니다. 그리고 또한 오늘날 우리의 신앙이 신앙선조 순교자들의 노력임을 잊지 않고 그분들께 감사하며 신앙선조들이 이루어놓은 이 뿌리 깊은 신앙을 잃지 않도록 세속적인 음주향락이나 나태, 외향적이고 외적인 것에 치우치지 않도록 우리의 삶을 늘 성찰하여 순교의 삶을 오늘날에도 계속 이어가도록 노력해합니다.

▶ 정도영 베드로 신부
  |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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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형 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김대건 신부님은 한국인 최초의 사제요,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성인이십니다.
신부님은 1821년 8월 21일에 충남 당진의 솔뫼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의 아버지는 김제준(이냐시오)이고, 그분의 어머니는 고 우르술라입니다. 신부님은 15살(1836년 4월)에 용인의 은이공소에서 모방 신부님에게 세례를 받았고, 7월에 신학생 후보로 선발되었습니다.

신부님은 마카오와 마닐라에서 공부하였습니다. 모방 신부님은 1836년 12월 3일에 김대건(안드레아), 최양업(토마스), 최방제(프란치스코)를 선발하여 정하상(바오로) 등에게 부탁하여 마카오에 있던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로 보냈습니다. 그들은 1837년 6월 7일에 마카오에 도착합니다. 마카오에서 민란이 일어난 탓에 두 번에 걸쳐 필리핀 마닐라에서 생활한 것을 제외하면 마카오에서 신학공부를 하였습니다.

신부님은 1844년 12월 15일 만주에서 부제품을 받고, 세 차례나 조선에 입국했으며, 1845년 4월 30일에는 선교사 영입을 위해 현석문(카를로) 등 11명의 교우들과 함께 제물포를 출발하여 6월 4일에 상해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8월 17일에 금가항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님으로부터 사제품을 받으셨습니다. 이때가 신부님의 나이 25세였습니다.

그 후 신부님은 1845년 8월 31일에 페레올 주교님, 다블뤼 신부님과 11명의 교우들과 함께 상해를 출발하였습니다. 거센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9월 28일에 제주도의 해안에 닿게 되었고, 10월 12일에는 충청도 강경부근 나바위라는 교우촌에 닻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신부님은 주교님의 지시에 따라 서해 해로를 통한 선교사 입국로를 개척하기 위해 1846년 5월 14일에 교우들과 함께 마포를 출발하여, 해주 연평도로 가서 중국 배에 서한과 지도를 전달하고 오다가, 6월 5일에 순위도 등산진에서 체포되었습니다.

신부님은 26살이 되던 해인 1846년 9월 16일에 한강물이 굽이쳐 흐르는 새남터에서 순교하였습니다. 그분은 돌아가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천주를 위하여 죽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내게 시작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죽은 뒤에 행복하기를 원하면 천주교를 믿으십시오.” 그분은 구원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습니다.(2010년 7월 가톨릭신문 참조)

김대건 신부님의 일생을 간략히 살펴보았습니다. 주님의 품에 안식을 얻기 전까지 참으로 어렵고 모진 삶을 사셨습니다. 15살의 어린 나이에 7개월이라는 긴 여정을 이겨내고 마카오에 도착하십니다.(지금은 비행기로 3시간이면 갑니다). 국경을 넘어야 하니 겨울에 출발합니다. 여차하면 도망을 가야하니 짐을 많이 챙길 수도 없습니다. 추위와 배고픔, 싸늘한 잠자리를 어떻게 그 어린 나이에 견딜 수 있었을까요? 그 힘든 여정을 견디고 마카오에 도착했다는 사실만 봐도 기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서품을 받아 사제가 되어 한국에 오신 뒤의 삶 또한 고되고 고된 삶이었습니다. 오로지 이 땅에 주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서품 후 1여년 만에 순교하십니다. 그 중에 감옥 생활이 3개월이나 됩니다. 오늘날 사제 생활에 비하면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험난한 삶이었습니다. 용기 있는 삶이었습니다. 오로지 하느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이겨낸 삶이었습니다.

교형 자매 여러분!
우리에게 하느님을 전해주고 한국인 사제로서 첫 시작을 열어주신 김대건 신부님을 생각하면서 조용히 두 손을 가슴에 얹고 눈을 감아봅시다. 그리고 감사합시다. 하느님과 김대건 신부님께!!

안동교구 장현준 에프렘 신부
  |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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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1821년 충청도 솔뫼에서 태어난 성인은 어려서부터 뛰어난 신앙심과 총명함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신학생으로 선발된 성인은 최양업, 최방제와 함께 1836년 12월 마카오로 떠나, 1845년 8월 17일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습니다. 그 해 10월 12일 귀국하여 사목활동을 하던 김대건 신부님은 주교님의 명을 받아 선교사 입국로를 개척하기 위한 활동을 하다가 1846년 6월 5일 관헌들에게 체포됩니다. 그리고 40여 차례의 혹독한 문초를 받고 9월 15일 반역죄로 사형이 선고되어 다음날인 16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열다섯 살에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떠난 유학길, 오랜 기간 힘들게 사제수업을 받은 후 감격적인 사제수품, 그러나 고국에 돌아와 펼치고자 했던 사목활동은 불과 8개월 뿐이었고, 그 후 3개월은 옥중에서 고문을 받아야했으며, 사제가 된 지 1년 1개월 만에 스물 여섯이라는 나이로 지상에서의 삶을 마쳐야 했습니다. 아무리 하느님과 교회를 위해 자신을 바치고자 했던 다짐이 있었다 해도 그동안의 꿈이 무너지는 절망 또한 있었을텐데, 오히려 신부님께서는 그 아쉬움을 순교 정신으로 이겨내신 분이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께서는 돌아가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천주를 위하여 죽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내게 시작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죽은 뒤에 행복하기를 원하면 천주교를 믿으십시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생애를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본다면, 출중한 재능은 갖추었지만 그에 비해 세상 복은 없는 실패한 인생이었습니다. 가지고 있던 능력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인생이었고,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지 못하고 너무 곧게 살려고만 하다가 부러져버린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김대건 신부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의 꿈, 오랜 세월의 준비, 그 모든 것이 무너지는 상황 속에서도 지나온 시간과 과정을 아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처형이라는 무서운 형벌 앞에서도 세상의 힘보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하느님께 의지하셨던 분이었습니다. 삶과 죽음,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 하느님 나라 안에서 이루어지고 옮겨가는 삶의 과정임을 알고 계셨고 그렇게 바라보며 걸어가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현실이라는 세상 안에 사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 안에서 세상을 이기신 분이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이라는 틀 속에 사셨지만 그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삶을 추구하신 김대건 신부님을 닮아가야 하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이라는 조건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하느님 나라를 향해서라면 현세를 거스를 줄 아는 지혜와 용기를 지녀야 합니다. 물질문명과 세속주의가 점점 더 사람과 하느님의 자리를 위협하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재물과 능력과 성공 여부로만 평가받는 세상입니다. 인간 사회의 숭고한 가치들이 무시당하고 자연과 생명도 경제적인 가치로만 따지는 현실입니다. 경쟁에서 승리만이 살 길이 되고 법을 어기는 자들이 성공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나 혼자 하느님을 찾아본들, 복음정신을 찾아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이런 현세를 거슬러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나 힘겹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의 생각과 삶의 변화가 답답한 세상의 새로운 삶의 길이 되어가야 합니다. 나눔과 희생, 자비와 사랑, 정의와 평화를 향하는 삶으로 새롭게 열리는 세상의 빛을 밝혀가기를 희망해야 되겠습니다. 순교자들, 특별히 오늘 우리가 기리는 김대건 신부님의 삶을 닮아가야 하겠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에 충실한 세속의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을 찾고 그분의 나라를 향한 길을 내딛는 신앙인이 됩시다.

<안동교구 안영배 신부>
  |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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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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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죽고 난 뒤에
제자들이 겪을 고통들에 대해서 미리 예언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들 특히 가장 가까운 형제, 자매, 부모로부터 배척받고 배신 당할 것을 알려주십니다. 그러나 이런 고난 중에도 믿음을 포기하지 말라 하십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 하느님을 맘에 품고 고난의 끝에 닿을 때 받게 될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일 우리들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를 기념하며 미사를 봉헌합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최초의 한국인 사제로서 한국 모든 사제들의 선배이십니다. 어린 시절 다른 두 명의 소년과 함께 중국 마카오로 건너가 사제가 되기 위해 공부한 뒤 무수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당시 박해가 심했던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1846년 6월 선교 사제들의 입국을 돕다 관아에 잡혀 고초를 격게 됩니다. 여러 차례의 모진 문초에도 신부님의 신앙과 기개는 흔들림이 없었다고 전해집니다.

신부님의 굳은 의지는
그가 옥중에 쓴 편지에서 잘 드러납니다. 배교하라는 관장의 호통에 ‘나는 천주교가 참된 종교이므로 받듭니다. 나를 영원한 행복으로 인도하기에 내게 배교하라고 하는 것은 쓸데 없는 짓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또한 형장에서는
‘내가 죽는 것은 그분을 위해서입니다. 나를 위해 영원한 생명이 바야흐로 시작되려 합니다. 여러분도 사후에 행복하려면 천주를 믿으시오.’라고 말한 뒤 주님을 위한 향기로운 제물이 됩니다.

자랑스러운 순교자들의 후예인 우리들도
이 같은 올곧은 믿음을 배워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걱정하지 말고 아버지의 영께 믿고 맡기라고 가르치십니다. 자신의 가르침대로 제자들을 위해서, 세상을 위
해서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매답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성인의 발자국을 따라 세상 속에 하느님의 정의를 세우는 노력을 해나갑시다.

예수님과 김대건 신부님께서 알려주는 하느님의 나라는
다른 물질도 아닌 성령을 통하여 우리들 마음에 부어주신 사랑으로 만들어집니다. 세상의 많은 유혹과 환난을 끝까지 견디는 인내와 수양을 실천합시다. “끝까지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지금도 예수님의 말씀은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고 참됩니다. 오늘 기념하는 김대건 안드레아 순교 사제와 함께 기도하며 먼 훗날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나누기를 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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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송정현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2020년 7월 5일 안동교구 주보에서
  |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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