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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조회수 | 2,944
작성일 | 08.07.03
오늘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이신 김대건 신부님의 축일에 그 분의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보고자 합니다.

1842년 2월 마카오에서 에리곤호를 타고 조선을 향해 가다가 중간 기착지인 필리핀 마닐라에 도착했을 때, "이 여행이 험난할 줄을 알지라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무사히 지켜주시리라 희망하고 있습니다."고 하였습니다.

그해 12월 고국에 입국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게 되자, 요동 백가점에서 "우리로서는 우리의 편의를 위해서가 아니고 다만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것을 계획하고 있으니만큼, 조선에 들어갈 가능성만 있다면 무슨 위험인들 마다하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이듬해인 1843년 1월에 고국에서 보낸 김프란치스코를 만났는데, 그는 국경을 통과하기가 아주 어렵다고 말하면서 오직 유일한 방법은 가난한 나무꾼 행세로만 입국할 수 있을 듯 하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하느님 자비에 의지하고 예로부터 복되신 동정 성모님의 보호하심에 의지하는 자는 아무도 버림을 받지 않는다고 확신하면서 성문을 향해 다가갔습니다."고 하였습니다.

입국실패 후인 1844년 5월 소팔가자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의지하여 모든 것을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고 날마다 입국할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고 하였습니다.

드디어 1845년 초에 입국하게 되는데, "눈이 사방에 깊이 쌓여 산촌이 모두 하얗고 싸늘한데 밤이 되기를 기다리자니 너무나 지루하여 묵주 기도를 수없이 거듭하였습니다. 해가 지고 천지가 어둠에 잠겼을 때, 하느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그곳을 떠나 (의주) 읍내를 향해 가는데, 발자국 소리마저 없게 하려고 신발을 벗고 걸어갔습니다.

강들을 건너고 길도 아닌 험한 곳을 달려갔습니다."고 하였습니다. 그해 3월 배를 타고 중국 상해로 가다가 역풍을 만나 목적지가 아닌 (중국) 강남땅 해안에 도착하여 매우 난감한 처지를 당하게 되었는데, "우리는 이렇게 인간적인 도움의 희망을 잃은 채 오직 하느님의 도우심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고 하였고, "우리의 동정 성모 마리아의 보호로 (해적들이) 감히 우리를 약탈하지 못했습니다."고 하였습니다.

사목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옥에 갇힌 1846년 6월 "저는 그리스도의 힘을 믿습니다. 그 분의 이름 때문에 묶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형벌을 끝까지 이겨낼 힘을 저에게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관리들은 임금의 명에 따라 배교를 명령하였다. 이에 "임금 위에 하느님이 계신데 그 분이 자신을 공경하도록 명하시므로 그 분을 배반하는 것은 임금의 명령이 정당화시킬 수 없는 범죄요"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때 천주교에 관한 질문을 받고 그들에게 하느님의 존재와 그 단일성, 창조와 영혼의 불멸함과 지옥, 창조주를 흠숭할 필요와 이교의 허위함 등을 자세히 설명하기도 하였습니다.

그해 8월 순교를 앞두고 신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부디 착실히 닦아 천국에 가 만나자. 마음 사랑하여 잊지 못하는 신자들에게, 너희 이런 난시(難時)를 당하여 부디 마음을 허실히 먹지 말고 주야로 주우(主佑)를 빌어, 삼구(三仇: 세속, 육신, 마귀)를 대적하고 군난을 참아 받아, 위주 광영하고 여등(汝等)의 영혼 대사를 경영하라"고 하였습니다.

신부님은 귀국 길에, 사목 활동 중에, 옥에 갇혀서도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도 신부님처럼 굳은 믿음을 실제로 사는 삶이길 바라며, 더 더욱 그 분께 의지하는 삶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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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여진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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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풀밭은 여전히 푸릅니까?

시카고대학 총장이었던 하퍼 박사가 1903년 입학생들에게 행한 연설은, 가장 짧은 명연설로 유명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지금부터 어른의 길로 출발합니다. 인간은 25세가 되면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를 깨달아야 하며, 30세에는 자기 자신의 인생철학이 확립되어야 합니다. 성서에 나오는 사도 바오로는 20대 초반에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달아, 자신을 살아있는 제물로 바치기로 결정했고, 자신의 철학대로 일생을 살았습니다." 이 짧은 연설이, 젊은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하퍼 박사의 말을 성 김대건 신부께서 들으셨다면 “인생은 한 순간이 소중한 것인데, 어찌 중요한 것을 깨닫는데 25년이나 걸려야 하고, 자기 인생철학에 대한 확립을 30세까지 기다려야 한단 말이오"하고 한 말씀 하셨을 것이다.

왜냐하면 김대건 신부는 15세 나이에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달아 신학공부를 하러 만주와 중국 대륙을 거쳐 마카오, 필리핀 등에서 수학하였으며, 25세의 나이에 자기 인생철학의 결론을 순교라는 죽음으로써 맺으신 분이기 때문이다.

나는 10대 후반 아니 20대까지만 해도 나이 사십을 넘고, 오십, 육십이 된 이들을 보면, ‘저분들은 저 나이가 들도록 무엇을 했나?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어찌 세월들을 마냥 흘려 보냈나!'하는 생각에,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잘못하면 나도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저렇게 될지도 몰라'하며, 새 결심을 하곤 했다.

그리고 40세가 되기 전까지는 어디 가서 강론할 기회가 되면 ‘인생 나이 40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링컨 대통령의 말을 되새기며, 잘난 척 떠들어대기도 수없이 했다. 그러나 이제 젊은 시절 내가 손가락질하던 나이에 들고 보니 ‘아! 이래서 인생이 어려운 것이구나'하는 것을 느끼고 배운다.

정말 무엇이 중요한지 깨달을 때
젊은 시절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배웠고, 생각했고, 결심했으면서도 세파에 시달리며 생활하다보니, 그 옛날 생각했고 결심했던 고귀한 목적과 굵은 인생관은 차차 가늘어져, 이런저런 일에 빠져나가고, 그럴싸한 변명으로 현실과 타협하며, 어느덧 입에 풀칠이나 하면서 그럭저럭 적당히 살아가는 인생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발견한다.

소신학교 시절, 손과 발은 물론 귀에까지 동상이 걸려 진물이 흐를 때도, 눈을 지그시 감고 성인 신부가 되어 보자고 마음먹었던 결심들이, 이제는 나의 우스꽝스러운 추억의 멜로디로만 남아 있음을 발견하면서도 놀라워하지 않는다.

성인이 되어 보겠다는 생각, 용감한 순교자의 삶을 살아 보겠다는 결심이 참으로 많이 무디어졌으며 , 찾아볼 수 얼을 만큼 가늘어져 있는데도, 느헤미야 예언자처럼 시시해지고 무뎌진 영혼을 일으켜 세우려 하지 않는다.

이 고민이 촌구석에서 배운지도 듣지도 못하는 부족한 나 하나만의 고민일까?

신앙을 손가락에 끼우는 반지처럼, 눈에 붙이는 닭털이나 귓불에 매달은 굴렁쇠처럼, 액세서리 취급하여 마음대로 끼웠다 뺏다 해도 되는 듯 착각하는 신앙인이, 어찌 나 하나 뿐이겠느냐는 것이다. 우리 교구 사제연수회 때, 가톨릭 신앙생활연구소에서 발표한 통계를 보니, 신자들의 주일미사 참례율이 전체 교우 숫자의 30% 전후이고, 냉담자 및 행방불명된 이들이 30전후이며, 교적은 성당에 두고 간신히 냉담자, 행불자 신세를 면하고 있는 이가 30% 전후라 한다.

나의 신앙은 어디에 서 있는가

나는 어느 부류에 속하는가 하는 것을 따져보는 소극적인 생각을 갖기 이전에, 가져야 될 자세가 하나 있다. 신앙은 무서운 파도에 자신을 내던지고 사나운 맹수의 이빨 앞에 자신의 몸뚱이를 내놓으며, 모진 박해의 칼날 아래 자신의 목을 들이대는 강인하고 끈질긴 결단을 요구하는 것인데, 지금 그대와 나의 신앙은 어디에서 있는가 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박해가 많았던 아프리카에서는, 교우들 사이에 사용되던 암호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은 ‘당신의 풀밭은 여전히 푸릅니까?’ 하는 것이었다 한다. 이 말은 교우들이 박해 때문에 숲 속에 숨어서 기도를 드리곤 하였는데 '당신은 박해 속에서도 꿋꿋하게 숲 속에 숨어서 하는 기도회에 열심히 다니고 있습니까? 하는 뜻이란다. 이 암호인사에서, 우리는 귀중한 신앙생활의 뜻을 배울 수 있지 않겠는가! '당신의 풀밭은 여전히 푸릅니까?’ 하는 질문을 매순간 자신에게 던지며 말이다,

김영진 신부
  |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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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와 기쁨과 행복의 전도자로 살다 가신 김대건 신부님

한국 교회의 첫 번째 신부로서 거룩하게 순교한 김대건 신부님, 그는 하느님을 향한 뜨거운 신앙과 조선 교회 그리고 민중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자신을 온전히 불사른 사랑의 순교자였다. 김대건 신부님의 생애와 그분의 순교 이야기는 그동안 많이 또 널리 알려져 왔다. 그러기에 신부님에 대한 역사적인 서술은 생략하고 신부님의 사목 발자취를 찾아보면서 그분의 배려와 기쁨과 행복의 전도자로서의 삶을 살펴보고자 한다.

김대건 신부님은 페레올 주교의 명에 따라 서해 해로를 통한 선교사 입국로를 개척하기 위해 황해도로 떠나기 전, 1845년 11월부터 1846년 4월 13일까지 경기도 용인 은이공소를 중심으로 사목활동을 펼치셨다. 그리고 오늘날 이천 단내성지와 어농성지 가운데 위치한 동산리에서 단내, 골배마실, 은이로 순회하면서 사목하셨다. 정시가사에 의하면 김대건 신부님의 사목활동은 항상 밤에만 이루어졌다. 김대건 신부님은 동산리에서 십리가 채 안되는 단내로 미사 짐도 없이 복사만 데리고 와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를 주고 다시 골배마실로 가서 성사를 주신 후, 은이로 가면 날이 밝았다고 한다.

김대건 신부님께서 교우촌에 도착하면 복사는 작은 목소리로 “김신부님께서 성사 주러 오셨으니 주저하지 말고 나오시오.”라고 알렸고, 신자들은 신부님을 맞이해 곧 고해성사를 받을 준비를 하였다. 벽에 종이 한 장을 붙이고 고상을 그 위에 모셔 걸고 십여 명의 고해자들에게 고해성사를 주신 후 떠났다. 신자들이 전송하려 하면 만류하시며 “내가 이렇게 밤을 타서 교우들을 찾아다니는 것은 내 조심도 하며, 교우들에 대한 외인들의 이목도 조심하기 위함이니 부디 나오지 말고 집안에 조용히 있으시오.” 하고 권면했다고 한다. 이상의 기록에서 보더라도 김대건 신부님은 박해 시대에 신자들의 안전을 위해 얼마나 조심스럽게 행동하셨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안전도 도모하셨는데, 왜냐하면 자신의 한 몸도 자신의 것이 아닌 교회와 신자들을 위한 몸라는 것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한 번 상상해 보자. 당시 오랜 박해로 성직자가 없던 시절, 외국인 선교사가 아닌 얼굴도 같고 말도 감정도 통하는 방인 사제를 만난 신자들의 기쁨이 얼마나 컷던가를…. 또한 그 기쁨과 행복을 밝은 대낮에 맘껏 표현하고픈 신자들의 마음을 헤아리면서도 신자들의 안전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밤에만 활동하셨던 신부님을.

오늘의 신자들은 그 시대의 신자들과는 다르다. 그러나 그 시대나 지금이나 신자들이 바라는 것은 똑같다. 그것은 사제가 진정으로 신자들을 배려하고 헌신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김대건 신부님은 그러한 사목자의 모습으로 사셨고 그리고 순교하셨다.

오늘의 교회도 그래야 되지 않을까? 성당이 고리타분하고 재미없고, 성직자는 권위적이며 엄숙하여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면 어느 신자가 성당에 나오려고 할까. 우리 천주교회가 아무리 좋은 말씀과 참된 진리를 간직하고 있고 예수님께서 세우신 하나뿐인 참된 교회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마태 16,18

정귀철(베네딕토) 신부
  |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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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인의 씨앗

사제의 길

일전에 모 방송국에서 제작한 <차마고도>라는 특집 방송을 시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차와 말을 바꾸기 위한 상인들의 고단하고 위험한 여행은 실로 감동 이상이었습니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죽음을 무릅쓴 여행은 인간 의지의 장한 승리를 보는 듯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172년 전인 1836년 조선의 세 소년(김대건 안드레아, 최양업 토마스, 최방제 프란치스코 사베리오)이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 변문을 넘어 중국 대륙을 횡단합니다. 약 6개월에 걸친 대장정의 길을 15세의 어린 소년들이 걸어간 것입니다. 가족의 부양이 아닌 사제의 길을 걷기 위하여 그 모진 여행을 감행한 것입니다.

1836년 12월 겨울에 출발하여 이듬해 1837년 6월 초여름에 도착하는 죽음을 무릅 쓴 사제가 되기 위한 길, 순교의 길을 걸어간 것입니다. 중국 마카오 신학교에 도착하여서도 사제의 길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음식과 언어, 기후와 풍습 등이 낯선 곳에서 신학 수업을 받아야 했고, 그토록 사랑했던 동료 최방제의 죽음을 지켜보아야 했던 슬픔이 있었고, 마카오 민란으로, 필리핀의 마닐라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공부를 계속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모든 시간과 세월은 그냥 흘러간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조국의 교우들을 위한 피나는 노력의 세월이었던 것입니다.

이승의 시간으로는 너무도 짧았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사제생활, 1845년 8월 17일 사제수품, 이듬해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하시기까지 1년 1개월간의 짧은 사제생활을 위하여 바치신 10년의 세월은 가슴 절절한 아픔이 있는 세월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교우들의 신앙을 위해 선교사 영입 운동, 스승 신부님과 주교님들께 조선 천주교회를 위하여 보낸 많은 서신들 속에 담긴 복음선포의 노력, 후배 신학생들을 위한 애정과 헌신 등, 그리고 많은 순교자들을 위한 조사와 보고는 이 땅에 신앙의 초석을 쌓기 위한 황금 같은 세월이었습니다.

단 하루를 살아도 그리스도 예수님을 닮은 사제, 희생 제사의 제물이 될 사제의 삶을 택하신 거룩한 삶이었던 것입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주님 사랑과 교우들 사랑은 마치 아가서의 말씀을 꼭 빼어 닮았습니다.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고 정열은 저승처럼 억센 것, 그 열기는 불의 열기 더할 나위 없이 격렬한 불길이랍니다. 큰 물도 사랑을 끌 수 없고 강물도 휩쓸어 가지 못한답니다”(아가 8, 6~7).

순교의 길

1984년 5월 6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비롯한 이 땅의 103위 시성식 강론에서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치명자들의 죽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닮은 것은, 그들의 죽음도 새 생명의 시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이 새 생명은 그리스도를 위해 죽음을 당한 그들에게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남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와 증인들의 산 공동체로서의 교회 안에 누룩이 된 것입니다. ‘치명자의 피는 그리스도인의 씨앗’이라는 초창기 그리스도인들의 격언이 우리 눈앞에서 확인된 것입니다.”

제3대 조선 대목구장을 지낸 페레올 주교님의 서한에는 마지막 순교 장면이 생생하게 나옵니다. 새남터의 군문효수 형장에서 김대건 신부님은 큰 소리로 외치십니다.

“‘나는 이제 마지막 시간을 맞이하였으니 여러분은 내 말을 똑똑히 들으십시오. 내가 외국인들과 교섭을 한 것은 내 종교를 위해서였고 내 천주를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천주를 위하여 죽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내게 시작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죽은 뒤에 행복하기를 원하면 천주교를 믿으십시오. 천주께서는 당신을 무시한 자들에게는 영원한 벌을 주시는 까닭입니다.’

이런 말을 한 후 옷을 반쯤 벗기었다. 관례에 따라 그의 양쪽 귀를 화살로 뚫고 화살을 그대로 매달아 두고 얼굴에 물을 뿌리고 그 위에다 회를 한줌 뿌렸다. 그런 다음 두 사람이 그의 겨드랑이에 몽둥이들을 꿰고 그를 어깨에 맨 채 그 원 둘레로 빨리 세 번을 돌았다.

그런 다음 그의 무릎을 꿇리고 머리채를 새끼로 매어 말뚝 대신 꽃아 놓은 창 자루에 뚫린 구멍에 꿰어 반대쪽에서 그 끝을 잡아당겨 머리를 쳐들게 하였다. 칼을 든 군사 12명이 싸움하는 흉내를 내면서 김대건 안드레아의 주위를 빙빙 돌며 제각기 순교자의 목을 쳤다. 머리가 여덟 번째 칼을 맞고야 떨어졌다.”

김대건 신부님은 1846년 6월 5일 체포되시고도 순교 때까지 40여 차례에 걸쳐 문초를 받으셨습니다. 그럼에도 신앙을 지키기 위한 순교의 길을 용감히 걸으셨습니다. 그분 순교의 피가 이 땅에 흘러 소중한 신앙의 꽃이 피어난 것입니다.

배광하 신부
  |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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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소년과의 대화처럼

신학교 입학 동기 중에 ‘산골 소년’이라고 별명을 지어 준 동기생이 있습니다. 그 친구는 수원교구 소속이며 분당에 있는 큰 성당 출신입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시골에서 자란 저도 겁이 나서 하지 못할 일들을 몇 번이나 하여서 저에게 적잖은 충격을 준 적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기숙사 내에 큰 지네가 발견되었습니다. 모두들 두려움에 떨며 지네를 쫓아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는데 산골 소년이 오더니 “약이다!”라고 외치며 어디선가 실을 찾아와 금새 지네를 제압하고 창문틀에 매달아 놓는 것이었습니다. 또 한 번은 그 친구와 등산을 갔는데 우리 앞에 지나가는 뱀이 있었습니다. 이 산골 소년은 그 뱀 역시 그냥 지나치지 못했습니다. 다행이 뱀은 산골 소년의 저력(?)을 느껴서인지 재빠르게 도망을 가고 말았습니다. 그런 그 친구와 언젠가 성소에 대해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친구는 김대건 신부님의 모습에 매료되어 자기도 신부님의 모습처럼 모든 것을 다 바쳐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싶어 사제가 되기로 결심했고, 사제가 된다면 조금이라도 신부님의 모습을 닮은 사제로 살겠노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16세 되던 해에 신학생으로 발탁되어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어렵게 동남아 지역에서 공부를 하고 1845년에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그리운 고국으로 돌아가 목자를 기다리고 있는 하느님 백성과 한국인 최초로 사제가 되어 함께 지낼 수 있을 것이라는 큰 기대와 희망을 안고 배에 오르지만 입국한 지 채 일 년도 못 되어 체포되어 순교의 길을 걸으십니다. 26세의 젊은 나이로, 그 옛날 서른을 갓 넘긴 나자렛 출신 예수라는 청년이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하느님 사랑과 이웃을 향한 복음적 열정으로 불탔던 것처럼 모진 고문과 배교의 유혹을 이겨내고 하느님의 진리를 전하다 순교하셨습니다. 반성해봅니다. 몇 년 전 산골 소년과 나누었던 대화처럼 김대건 신부님을 닮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 사제서품을 받은 지 사 년이 조금 지났지만 과연 사제로 살아오면서 김대건 신부님처럼 열정적으로 신자들을 돌보며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 주려고 했는지 말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이 계셨기에 지금의 우리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분의 헌신적인 노력과 땀이 있었기에 이 땅 한국의 사제들이 있고, 신자들이 있고, 한국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김대건 신부님과 소중한 생명을 버려가며 신앙을 증거했던 한국의 수많은 순교자들처럼, 그분들의 믿음과 용기를 전구하며 세상의 온갖 시련과 유혹을 이겨내고, 주님 사랑의 불꽃으로 우리 마음을 태워 뜨거운 사랑으로 세상에 복음을 증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한국의 모든 순교 성인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김상혁 노르베르토
  |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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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의 믿음·희망 본받자

자유의 선물

‘황금의 입’이라고 불렸던 ‘요한 크리소스토무스’(349-407) 성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상처를 입는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상처를 내는 것이다.” 실로 사도 ‘성 바오로’는 복음 선포를 위하여 수많은 고난을 받습니다. 외적인 모든 역경 속에서도 그는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같이 힘주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로마 8, 35)

실로 믿는 우리 신앙인들도 현세의 삶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적인 여러 여건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수많은 성인 성녀들, 순교자들은 우리에게 삶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느님에게 받은 가장 위대한 선물인‘자유의지’는 세상 그 어떤 고난도 우리를 어쩌지 못하고, 우리가 내적 자유의 중심을 지니고 우뚝 서 있으면 상처 받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엄청난 고난 가운데에서도 그 고난을 오히려 자랑으로 여기게 되었다는 사도 성 바오로의 삶은 이를 또 다시 증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경축하고 있는 한국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1821-1846)의 삶도 그러합니다. 우리가 성인의 삶을 보며 크게 깨달아야 하는 것은 자유의 삶입니다. 김대건 성인과 한국의 모든 순교자들은 박해의 억압 속에서도 자유를 살았습니다. 하느님께서 만든 인간, 하느님에게서 창조된 인간, 참 신앙인은 진실로 자유로우며 외부로부터의 억압과 고통에 좌우되지 않는 해방의 기쁨을 살았던 것입니다. 때문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새남터 사형장에서 목이 잘리는 순간까지도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같은 참된 신앙의 자유를 살았던 김대건 신부에게 사제품을 준 ‘페레올’(1808~1853) 주교는 훗날 김대건 신부를 향하여 다음과 같은 찬사의 글을 썼습니다.

“김 안드레아의 단죄는 그를 위하여는 영광과 명예가 되었고, 그 반면에 사악하고 무지한 재판관들을 위하여는 수치와 불명예가 되었습니다. 무지하고 사악한 재판관들에게 희생된 제물의 영광과 찬미와 명예는 떠오르는 태양처럼 점차 커지고 찬란히 빛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희망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감옥에서 그의 열아홉 번째 편지를 이렇게 끝맺고 있습니다.

“미구에 천당에서 영원하신 성부 대전에서 다시 만나 뵙기를 바랍니다. 저를 대신하여 다른 모든 신부님들께도 인사를 드려 주십시오. 지극히 사랑하는 나의 형제 토마스, 잘 있게. 천당에서 다시 만나세. 나의 어머니 고 우르술라를 특별히 돌보아 주도록 부탁하네. 저는 그리스도의 힘을 믿습니다. 그분의 이름 때문에 묶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형벌을 끝까지 이겨낼 힘을 저에게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이 같은 희망을 성 바오로 사도께서도 굳게 믿었기에 이렇게 가르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당신의 친 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로마 8, 32)

우리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주 현세의 여러 어려움 앞에 이 희망을 저버리고 살곤 합니다. 그리하여 절망을 살았고, 끊임없이 원망과 한탄 속에 자신을 학대하고 상처를 주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상의 모든 박해와 상처를 이겨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삶을 묵상하며 믿음 안에 그가 끝까지 지녔던 희망을 또다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고 하신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을 끝내 저버리지 않으셨던 김대건 신부의 믿음과 희망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이에 다시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성인은 이같이 말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상처 내지 않는 사람은 설사 온 세상이 그를 상대로 험한 전쟁을 일으킬지라도 상처받을 수 없다.”

진정 주님 은총 안에 믿음의 중심을 갖고 깨어 사는 사람은 세상이 주는 여러 시련과 고통에 상처 입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그 같은 삶을 분명히 사셨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그의 마지막 편지에서 또다시 우리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격려의 말을 남깁니다.

“이런 황황한 시절을 당하여, 마음을 늦추지 말고 도리어 힘을 다하고 역량을 더하여, 마치 용맹한 군사가 병기를 갖추고 전장에 있음 같이 하여 싸워 이길지어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

배광하 신부
  |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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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사제 성화의 날, 지역의 신부님들이 함께 모여 미사를 했습니다. 강론을 맡은 신부님께서는 혜화동 신학교 ‘목자의 길’ 초입에는 적혀있는 “평신도가 바라는 사제상”을 하나하나 읊조리며, 사제의 모습을 함께 반성하고 사제들이 바르게 살 수 있도록 기도하자고 제안하셨습니다. 진지함과 웃음소리가 오가는 가운데, 가끔씩 신자 분들이 “맞아, 맞아!” 맞장구를 치시기도 했습니다.

그 내용은 다 잊어도, 맨 마지막 사제상은 이렇습니다. “죽기까지 사제직에 충실한 사제!” 사제라는 직무에 대해서도, 성실하고 바른 사제로서도, 하느님께서 원하시고 많은 교우들이 원하는 사제의 모습으로 이 땅의 많은 사제들이 죽기까지 잘 살아가길 마음 모아 기도합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이후, 2012년 통계상으로 4,754명의 사제가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세례를 준 신부님도 있고, 혼인성사를 집전해 주신 분도 있습니다. 고해성사를 통해 만난 분도 있고, 상담이나 영적 대화를 통해 은총을 받은 분도 있습니다. 멋있고 사는 모습이 좋아 동경했던 분, 상처받고 미워, 꼴도 보기 싫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본당에서 어쩔 수 없이 만난 신부님도 있고, 오가는 손님으로 잠깐 와 있던 분이 마음에 더 와 닿을 수도 있습니다. 교육이나 피정을 통해 만난 신부님도 있겠지요. 과연 나는 몇 분이나 떠올리며 마음으로부터 감사의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사제는 신자들의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이고, 교회 공동체의 기도와 정성으로 길러낸 사람입니다. 또 평신도와 함께 살아가며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미사와 전례를 거행함으로써 교회 공동체 안에 필요한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저 어린 신부가, 저 별 볼 일 없는 신부가, 저 손가락질 받는 신부가, ― 비록 나에게는 아닐지라도 ― 누군가에게는, 어떤 사람의 마음속에 존경과 감사의 대상일 수 있습니다.

내 본당 신부님이 아니라고 해서 그냥 스쳐가거나, 나와 인연이 없어 만나지 않았다고 해서 그냥 무시할 사람은 아닙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제의 모습, 내가 바라는 사제의 모습, 참으로 닮았으면 좋겠다는 그분의 모습으로 사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손가락질 받기보다는 칭찬과 감사와 존경의 대상이 되도록,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뒤를 잇는 우리의 사제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내 인생에서 만날 수 있는 신부님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내가 살면서 은총을 받고, 하느님을 알게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면, 그렇게 이끌어주신 분께 잠깐 시간 내어 기도해 보심도 과히 손해는 아닐 것입니다.

<춘천교구 엄기선 신부>
  |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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