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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나 때문에…
조회수 | 3,267
작성일 | 08.07.03
언젠가 몇 몇 신부들과 함께 정동진에 기차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출퇴근 기차 안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전교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 행동이 조금 이상하고 지나쳐서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고 있는 상황이 우리 코앞에서 벌어졌다. 옆 칸의 기(氣)를 전하는 도사와도 한판 붙은 모양이었다. 기차에서 내려서도 음식점에 가서 전교했는지, 그 주인에게 핍박 받는 걸 보았다.

자세한 내용을 엿듣지는 못했지만,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주기는 커녕, 삶에 지장을 주는 것 같았다. 그는 아마도 하루를 마치면서 오늘 복음 “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를 음미하며 오늘도 핍박을 주심에 감사 기도를 드릴지도 모르겠다.

그런가 하면 요즘 류상태 목사님의 책이 항간에 화제다. 학교에서 20여 년간 교목을 맡고 계시던 중, 학교내 종교자유의 문제로 불거진 이른 바 ‘강의석 군 사건’을 옹호하다 결국 목사직을 반납하신 분이다. 이제는 홀홀단신 노점상에 나선 류 목사님은 아직도 학생들의 예배선택권을 위해 노력하고 계신데, 아마도 움직일 때마다 사람들의 반대와 부정에 부대끼시는 것 같다. 그 학교 입장에서는 그 목사님 한 분 때문에 얼마나 복잡했을까 싶기도 하다.

두 경우 모두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경우다. 오늘 기리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비롯한 한국의 많은 순교자들 역시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았다. 아니 예수님 스스로 당시의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았다. 당시 조정의 입장에서는 천주학쟁이들이 얼마나 골치덩어리였을까, 또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에게 예수님은 얼마나 불편한 분이었겠는가?

단순히 미움을 받는 문제로만 따진다면 똑같지만, 미움을 받는 원인은 경우마다 다르다. 나의 입장과 명분이 나를 위한 명분인가, 아니면 예수님(진리)을 위한 명분인가? 나 때문인가, 예수님 때문인가를 매 순간 되짚어보지 않으면, 나조차도 내 주장에 동의할 수 없는 순간이 들이닥칠지도 모른다.

예수님께야 ‘나 때문에’겠지만, 우리에게는 ‘예수님 때문에’가 되어야 함에도, 복음을 그대로 인용해 내게도 역시 ‘나 때문에’가 되어버린다면 큰 착각 중의 착각 아니겠는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지 않으려면 아무 일도 안 해야 한다. 복지부동(伏地不動) 해야 한다. 안주해야 한다. 내 일이 아니라 생각하고, 모든 일에서 끊임없이, 죽어라 발을 빼야 한다.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사랑을 온 몸에 받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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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김종성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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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의 믿음과 희망

희광이가 휘두른 칼날 아래로 선혈이 치솟더니 젊은이의 목이 떨어졌다. 한강 새남터 백사장은 어느새 피로 물들고 피를 본 희광이의 눈은 미친 사람처럼 광기가 가득한 채, 막걸리를 사발로 들이켰다. 목이 떨어진 젊은이의 이름은 김대건이었다. 그의 죄목은 국법을 어기고 국교인 유교가 아닌 서양종교를 신봉했다는 것이었다. 가여운 젊은이! 그가 이 시대에 태어났던들 그렇게 참혹하게 세상을 등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월을 잘못 만난 탓일까? 그것은 아니다. 그는 얼마든지 호의호식할 수도 있었다. 말 한마디만 하면 되었다. “나는 하느님을 배반하오.” 이 한마디를 할 수 없었기에 그는 군문효수형을 받았다.

생애 김대건 신부는 1821년 8월21일 충청도 내포지방 솔뫼에서 태어났다. 그의 증조부는 김진 후 였는데 그 지방의 관료로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고 있었다. 김진후는 50세에 세례를 받고 열심한 신자가 되고자 관직에서 물러나 오직 신앙생활에만 전념하였다. 그러던 중 1814년 2월20일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될 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데 이미 할아버지부터 순교자가 되었던 것이다. 김대건 신부의 아버지인 김제준(이냐시오)은 고 우술라와 결혼하여 솔뫼에서 살다가 1839년 9월26일 체포되어 순교했다.

할아버지가 순교하였으니 경제적으로도 가난하게 살았을 것은 뻔한 일이다. 남편을 잃은 우술라는 아이를 데리고 경기도 골배마실이라는 동네로 이사갔다. 이사라기보다는 친척집에 가서 더부살이를 한 셈인데 천주학쟁이 과부를 누가 좋아했겠는가? 천덕꾸러기로 살아갔을 것이다. 골배마실을 방문한 모방 신부는 15세의 소년 김대건의 영특함을 알아보고 그를 신학생으로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후 김대건 신부는 최방제, 최양업과 함께 1837년 6월7일 마카오에 도착하였다. 산설고 물설은 이국 땅에서 어린 학생들은 얼마나 고향생각을 했을까? 음식도 맞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해, 사랑하는 친구 최방제는 병마와 싸우다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갔다. 최양업과 김대건이 얼마나 친구를 얼싸안고 울었을까?

1844년 오랜 각고 끝에 부제품을 받은 그는 9년의 외국생활의 지친 삶을 잠시 접고 조선으로 돌아와 국내 상황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국내에 돌아온 기간동안 김대건 신부는 어머니를 만나고자 했으나 그의 어머니는 거지처럼 떠돌이 생활을 했기에 만날 수가 없었다.

그는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 다음해인 1845년 8월17일 상해 김가항 성당에서 사제로 서품 되었다. 사제가 된 뒤 서둘러 조선에 들어와서 전도하기 시작했으나, 이 시기에 천주교에 대해 박해가 너무 심했다. 그는 혼자 몸으로는 도저히 성무집행을 다할 수 없어 중국교회에 선교사 파견을 청하러 가다가 1846년 6월5일 순위도 앞에서 그만 체포되고 말았다.

그는 여러 외국어와 지리에 대해서도 능통하여 감옥에 있으면서도 지도를 그려주었다. 이러한 그의 능력을 아까워한 정부는 좋은 집을 주겠다, 높은 지위를 주겠다, 예쁜 부인을 맞게 하겠다 등등의 회유를 해보았으나 도저히 그의 마음을 바꿀 수 없음을 알고 처형하기로 결심하였다.

김 신부는 그해 9월16일 한강 백사장 지금의 새남터 상당터에서 군문효수라는 형을 받아 처형되었다. 군문효수란 목을 쳐서 장대 높이 달아놓는 것으로 그것을 보는 이들에게 다시는 천주학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소위 본때를 보이는 형집행이었다.

그의 사상 그는 죽기 전에 ꡒ나의 영원한 생명을 이제 시작합니다ꡓ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에게는 바오로 사도의 ꡒ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ꡓ(필립비 1,21)라는 말씀이 언제나 가슴깊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주님을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사랑했다. 그는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주님을 위해 내놓았다. 그가 우리에게 주고 간 교훈은 이 세상은 잠시 지나가지만 하느님 나라는 영원하기에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하라는 것이다.

복음의 메시지 오늘 우리 신자들은 김대건 신부를 닮는 사제를 원한다. 세속적인 것에 가치를 두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사제를 원한다. 그런 사제가 나오기 위해서는 가문의 분위기가 중요하다.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아버지도 순교하였고 자식을 위해서 거지처럼 살아갔지만 언제나 기도해주었을 어머니의 굳은 믿음이 김대건 신부를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게 했다.

죽어서 백사장에 아무렇게나 묻혀있었을 그를 신도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경비병에게 술을 사주고 잠이 든 뒤 시신을 파내어 미리내까지 메고 갔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믿음이다. 그런 신도들이 있었기에 김대건 신부같은 훌륭한 사제가 있었을 것이다. 오늘 우리는 교회 안에 많은 문제들이 있음을 직시하고 있다. 신도들은 영적으로 꽉 찬 신부를 원하고 신부들은 그야말로 순종 잘하고 열심한 신자, 헌신적인 신자를 찾고 있다.

과연 내가 이 시대에 한강 백사장에 묻힌다면 그 누가 썩은 내 육체를 거두어 등에 메고 150리 길을 달려갈 수 있을까? 김대건 신부보다 곱절의 인생을 살았으면서도 그가 깨달았던 심오한 신앙의 의미를 아직도 도반으로서 깨달아 가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안도현 시인의 시 중 이런 구절이 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김대건 신부는 주님께 뜨거운 사랑을 드린 사람이다. 나는 어떤가? 뜨거운 사람인가?

최기산 주교 | 인천교구장
  |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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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순교의 삶

오늘은 한국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여러분들께선 그동안 많은 신부님들의 강론을 통하여 성 김대건 신부님에 대한 말씀을 들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김대건 신부님에 대한 영웅담을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첫 방인 사제이자 순교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께 순교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 순교란 바로 하느님을 위하여 내 모든 것을 포기하는 순간 나에게 다가오는 영광입니다. 또한 순교는 하느님을 위해 내 모든 것을 벗어버릴 때, 내 모든 것을 하느님께 온전히 내어드릴 때에 가능하게 됩니다. 따라서 신앙은 우리에게 순교를 필연적으로 요구합니다. 이 모든 것을 몸소 실천하여 우리에게 모범이 되어주신 분이 바로 성 김대건 신부님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김대건 신부님을 통하여 얻어야 하는 신앙의 교훈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순교의 정신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그토록 율법을 생명처럼 여겼던 이유는 바로 율법이 하느님께서 직접 내려주신 말씀이자 명령이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수 많은 예언자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여 율법을 지키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쳤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오늘 1독서의 즈카르야 예언자입니다. 이렇게 예언자들은 하느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벗어버렸고, 모든 것을 온전히 내어주었습니다. 바로 영광된 순교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고 계십니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과연 그랬습니다. 우리 한국교회의 과거 역사 속에서 이 말씀은 현실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수 많은 순교자들이 이 말씀을 자신들의 생명으로 증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 안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바로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한마디의 말씀이 모든 순교자들에게 또 다른 생명의 희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오로 사도 역시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에게 무슨 순교가 있겠느냐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박해보다 더 무서운 박해가 우리 주위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마음속에서 우리를 나약하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물질의 풍요로움 속에서 다가오는 마음의 나태, 그리고 그 풍요로움 속에 안주하려는 내 마음.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개인이기주의의 팽배, 나만 즐거우면 된다는 쾌락의 추구 등 수 많은 것들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혹들로부터 나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내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온전히 하느님께 내 모든 것을 내어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또 다른 의미의 순교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작은 희생들입니다. 이 작은 희생들이 모여 우리를 하느님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 순교자로 만들어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줄 것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아멘.

문용길 아론 신부
  |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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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들은 정장 차림으로 끌러지(clergy) 셔츠에 로만칼라를 합니다. 그런데 이 끌러지 셔츠의 색깔은 생각보다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검은색을 많이 입지만, 때로는 흰색이나 회색 등의 색깔도 많이 입습니다. 저 역시 지금은 다양한 색깔의 끌러지 셔츠를 가지고 있지만, 한때 모든 끌러지 셔츠의 색깔이 검은색이었답니다. 그래서 환한 색깔인 흰색 끌러지 셔츠 한 벌을 맞추었습니다. 너무나 마음에 드는 색이었지요. 그러다보니 그냥 막 입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은 마음에 들지 않는 검은색 끌러지 셔츠를 입고, 특별한 날이나 의미 있는 날에 흰색 끌러지 셔츠를 입겠다는 생각으로 옷장에 넣어두었습니다.

갑곶성지에서 간석4동 성당으로 이동하는 날, 저는 옷장을 정리하다가 옛날에 특별한 날이나 의미 있는 날에 입으려고 구입했던 흰색 끌러지 셔츠를 발견했습니다. 아낀다고 한 번도 입지 않은 것이지요. 그래서 이동하는 날이 특별한 날이고 의미 있는 날이니까 한 번도 입지 않은 이 흰색 끌러지 셔츠를 꺼내 입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옷을 벗을 수밖에 없었지요. 왜 그랬을까요?

그 동안 살이 너무 찐 것입니다. 어깨도 좁게 느껴졌고, 목도 쪼여서 너무나 답답한 것이었지요. 비싼 돈 내고서 맞춘 끌러지 셔츠였는데, 특히 마음에 드는 끌러지 셔츠였는데……. 한 번도 입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입지 못하는 옷을 보면서, 지금 할 수 있는 좋은 것은 지금 당장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특별한 날, 의미 있는 날을 따지면서 뒤로 미루다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삶을 생각해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 정말로 짧은 삶입니다. 25세라는 젊은 나이, 사제서품을 받은 지 1년 만에 주님을 증거하다 순교를 하십니다.

사실 상해에서 사제서품을 받고서 종교의 자유가 없는 우리나라로 돌아간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만 가능했지요. 그렇지만 김대건 신부님께서는 주님께서 지금 당장 원하시는 일이 조선으로 돌아가 목자 없는 양들을 보살피는 것임을 알았던 것이고, 지금 당장 그 일을 실천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면 죽음의 위협도 두려워하지 않고 지금 당장 실천하는 김대건 신부님을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지금 당장 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좋은 말을 지금 당장 해야 하고, 좋은 행동을 지금 당장 실천해야 합니다. 이웃을 향한 사랑을 지금 당장 해야 하고, 이웃을 위한 기도를 지금 당장 바쳐야 할 것입니다. 미움보다는 사랑을 지금 당장 간직하고, 다툼보다는 용서를 지금 당장 행해야 합니다.

물론 세상의 모습이 아닌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기에 때로는 세상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바로 그때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힘차게 지금 당장 사랑을 실천했으면 합니다.

조명연 신부
  |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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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을 닮은 착한 목자 되게 하소서!

[사제의 해,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에 보내는 특별 서한]

친애하는 사제, 수도자, 평신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한국교회의 첫 사제로서, 사제 본연의 직무인 가르치고, 성화시키고, 다스리는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다가 장렬히 순교하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대축일을 거룩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특히 금년의 이 대축일이 더 의미 있는 이유는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 지난 6월 19일(예수성심대축일)부터 내년 6월 19일까지 “사제의 해”로 특별히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교황님께서는 전 세계 성직자의 수호자이신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의 선종 150주년을 맞아 그분의 영성을 본받자며 ‘사제직무의 효력이 달려있는 영적완덕을 향한 사제들의 노력을 북돋우고자 사제의 해를 선포한다’고 하셨습니다. 교황청 성직자성과 인류복음화성은‘사제의 해’가 사제직과 각 사제의 아름다움과 중요성을 새롭게 발견하고 하느님 백성 전체가 사제직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해로 지낼 것을 당부하는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렇게 사제의 해는 사제직무의 고귀함을 일깨우고 한 생을 오롯이 주님을 위해 바치겠다는 열의에 찬 많은 성소자들을 격려하고자 마련된 해인 것입니다.

전 세계 가톨릭교회에 불어 닥친 성소자 결핍 상태는 심각합니다. 유럽과 미주지역은 물론이고 아프리카 지역 역시 심각합니다. 다른 나라들도 사제가 되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형편입니다. 직무사제직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더구나 영적인 가치보다는 물질적인 가치가 우세한 이 시대에, 주님을 위해 한 생을 아낌없이 바치겠다는 젊은이들의 결단은 점점 힘들게만 여겨집니다.

사제는 누구입니까? “모든 대사제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뽑혀 사람들을 위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하도록 지정된 사람입니다.”(히브 5, 1) 이렇게 사제는 수많은 사람 중에 주님께서 필요하시어 특별히 뽑으신 존재입니다.

교황 요한바오로 2세의 사도적 권고 “현대의 사제 영성”(p10)에는 “만일 사제들이 없다면 교회가 인간 역사 안에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자 가장 핵심이 되는 교회의 사명을 실천할 수가 없을 것이다. 즉,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마태 28, 19ㄱ) 그리고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 19;Ⅰ코린 11, 24 참조)고 하신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를 수가 없을 것입니다.”라며 사제직의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제는 결국 주님과 일치하여 살아야 하며 주님만을 바라보고 그분에게서 사랑도 희망도 얻어내야 합니다. 사제는 예수님의 마음을 닮을 때 이 세상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교황님은 ‘사제의 해’ 개막예식을 주재한 강론에서 “교회는 거룩한 사제,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증거하고, 사람들이 이 사랑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 사제를 필요로 합니다. 이 같은 삶을 실천하며 살았던 사제가 바로 아르스의 성자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입니다. 성인의 심장은 늘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올랐고 사목적 열성과 사랑으로 가득찼습니다. 오늘의 모든 사제들도 그런 삶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는 한국 사제들의 모범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을 지내며 그분의 삶을 생각합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어떻게 하면 주님의 기쁜 소식을 더 많이 전할 수 있는지, 그 길을 찾기 위해 늘 고심하시던 중에 선교사 신부님을 모시기 위해 중국으로 가시던 길에 인천 앞바다에서 잡혀 압송되고 결국 새남터에서 군문효수라는 극형을 받고 순교하셨습니다. 한국 사제의 선구자로서 용감히 목숨 바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선교열정과 그분의 믿음 그리고 영성은 후배 사제들에게 길이 빛날 보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친애하는 수도자와 교형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사제들을 사랑하고, 믿어주고, 기도해주며, 지켜주셔야 합니다. 사제를 함부로 대하거나, 인생의 경륜을 강조하며 사회적인 상식에 못 미치는 언어와 행동을 보여서도 안 될 것입니다. 사제들을 유혹으로 이끌어서도 안 되며 잘못되는 길로 안내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성 정하상 바오로 회장은 사제들을 영접하기 위해서 온갖 고초를 다 겪으며 고난의 길을, 수천 수만리 길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여장부 강완숙 성녀는 주문모 신부를 자신의 나무 광에 숨겨둔 채 열성을 다해 보살피다가 체포되어 순교하였고 그분의 고귀한 신앙은 지금도 빛나고 있습니다. 평신도들의 이러한 성직자 사랑이 이 땅에 복음을 꽃피우는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평신도들이 훌륭할 때 사제들도 훌륭할 수 있습니다.

사제는 매일 예수님을 대리하여 성체성사를 거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이다.’하고 말하며 예수님을 대리합니다. 고해성사로 예수님을 대리하여 죄를 사해주고 있습니다. 사제의 영적인 가치가 훼손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제가 사랑을 받을 때 성소도 증가할 수 있음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수도자, 평신도들이 사제직의 가치를 귀히 여겨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훌륭한 사제가 있을 때, 훌륭한 평신도가 자라나는 것이고, 훌륭한 평신도가 있을 때 또한 훌륭한 사제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제의 해를 맞으며 사제들은 사제들대로 주님께서 맡겨주신 고귀한 직분에 최선을 다해야 하며 평신도들도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님께서 맡겨주신 임무인 복음 선포의 대열에 사제와 함께 힘차게 나서야 하겠습니다.

사제의 해를 맞아 모든 사제들이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을 본받아 성화되고 거룩해지고 직무에 충실한 삶을 산다면, 그리고 평신도들의 헌신적인 봉사와 사랑이 어우러지게 되면 1년 뒤 우리 교회는 더욱 성화된 모습으로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축복을 기원하며 성모 마리아의 뜨거운 사랑의 손길을 청합니다.

2009년 7월 5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에,
천주교 인천교구 교구장 최기산 보니파시오 주교
  |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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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동창신부 모임을 저희 본당에서 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떤 신부가 “원자폭탄이 쎌까? 아니면 수소폭탄이 쎌까?”라는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의견이 분분했지요. 저는 남들 몰래 인터넷 검색을 했습니다. 검색을 하면 쉽게 답을 알 수 있으니까요. 지식 검색의 첫 번째 항을 보니 원자폭탄이 더 세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원자폭탄이 더 세다고 박박 우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수소폭탄이 원자폭탄보다 10배 이상 세다는 것입니다.

또 어제는 시청이 토요일에도 근무를 하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왜냐하면 재발행한 여권을 찾으러 가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평일에 가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했습니다. 어떤 분이 쓴 답변을 보니, 토요일에도 1시까지는 근무를 한다고 합니다. 저는 자전거를 끌고서 시청을 향해서 힘차게 달렸습니다. 왜냐하면 1시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요. 그러나 저는 여권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시청은 토요일에 근무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터넷 검색 결과를 믿었는데, 그 믿음이 저를 크게 실망시키는 것도 부족했던지 고생까지도 시키더군요. 그러면서 인터넷 안에서는 거짓 정보도 많이 떠돌고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믿었던 내 자신이 잘못이라면서 스스로 자책을 했습니다.

정말로 그렇지요. 인터넷 안에 많은 정보가 있지만, 그 정보는 진실도 있지만 거짓도 그에 못지않게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그 거짓 정보를 진실로 착각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지요. 저처럼 말입니다.

결국 이 세상의 진리라는 것은 이렇게 제한적이고 우리의 올바른 판단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시는 진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무조건 옳은 것이며,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만 있다면 주님께서 주시는 진리의 기쁨을 맛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는 바로 세상의 진리보다는 주님께서 주시는 진리만을 쫓았던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명도 주님을 위해 기꺼이 내어 놓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만큼 주님께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을 살고 있는 내 자신은 과연 어떤 것 같습니다. 나는 과연 주님의 진리를 세상에 증거하기 위해 나의 목숨까지도 내어 놓을 수 있을까요? 닥치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쉬운 결정은 분명히 아니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만큼 나의 믿음이 부족하다는 증거이기겠지요. 따라서 우리들은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그 믿음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아까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시대는 피의 순교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순교자의 길을 따라야 하는 순간은 너무나 많습니다. 내가 신앙인이길 드러내기가 쑥스러운 순간에도 용감하게 드러낼 수 있다면,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세상의 유혹을 따르기보다는 주님의 길을 따른다면, 남을 미워하고 판단하고 단죄하는 이 세상에서 나만이라도 주님처럼 사랑을 실천하는데 최선을 다한다면.. 이러한 모습들이 현대의 순교자 모습인 것입니다.

현대의 순교자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남이 아닌 바로 내가 되어야 하는 길입니다.

조명연 신부
  |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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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향한 내 마음의 색

지난 6월 거리는 월드컵 열풍으로 온통 붉은색이었다. 붉은 옷을 입은 응원단, 그 모습만으로도 열정적인 인상을 주었다. 시각적으로 가장 직접적인 메시지를 주는 것은 ‘색’이라고 하는데, 좋아하는 색을 통해 그 사람의 성향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는 색은 무엇일까? 지금 주님을 향한 내 마음은 무슨 색일까?’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이다. 오늘 미사를 드리는 사제들의 제의와 영대는 붉은색이다. 붉은색은 피와 사랑 그리고 열정을 상징한다.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님, 16세에 고국을 떠나 온갖 어려움을 다 겪은 후 사제생활 1년 만인 26세의 나이로 순교하셨다. 아마도 그분의 마음은 주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으로 한없이 붉었으리라 생각된다. 주님을 위해 한 송이 붉은 꽃으로 생애를 마치신 성인을 기리며, 내 마음의 색을 점검하고 빛바랜 주님 사랑을 다시 한 번 붉게 물들이고 싶은 바람이다.

진실이 왜곡되고 이기주의가 팽배하여 회색빛이 만연한 이 세상에 붉은 마음이 절실하고 열정적인 사랑이 목마르게 그리운 세상이다. 사랑은 감상이 아니다. 희생과 실천이 밑받침될 때 진실한 사랑이라 할 수 있다. 바로 붉은 마음이다. 주님 사랑에 몸 바쳤던 순교 성인의 희생과 붉은 피, 바로 오늘 사제들의 붉은색 제의와 영대가 상징하는 바이다.
인생은 ‘얼마나’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양이 아니라 질이 중요함을 다시금 인식하게 한다. 짧더라도 열정적으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김대건 신부님은 26세 꽃다운 나이에 100%의 삶을 사셨다. 건강 지상주의와 몸보신에 급급한 오늘날의 우리들을 부끄럽게 한다.

다시 한 번 ‘지금 내 마음은 무슨 색을 띠고 있는지?’, ‘하느님을 향한 내 사랑의 색깔은 얼마나 붉은지?’를 자문하며, 죽음을 앞둔 옥중에서 교우들에게 보낸 김대건 신부님의 편지 일부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사랑하는 교우들이여, 천주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들 인간을 당신의 모습대로 만드셨습니다. 그 목적, 그 의향이 밤낮으로 천주의 도우심에 의하여 세 가지 적, 세속과 마귀와 육신을 무찌르신, 천주의 영광을 위하여 박해를 힘차게 참으며 살아있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일하도록 힘쓰시오. 박해는 천주께서 주시는 시련입니다. 재앙에 겁내지 말고, 용기를 잃지 말고, 천주를 섬기는 데서 물러나지 말고, 오로지 성인들의 자취를 밟아서 성교회의 영광을 늘리고, 주의 충실한 병사이며 참된 시민임을 증명하여 주시오. 비록 당신들은 수가 많다하여도 마음은 하나로 되어 주십시오. 사랑을 잊지 마시오.’ <예수를 위하여 옥에 갇힌 탁덕 김 안드레아>

▶ 정광웅 마르코 신부
  | 07.03
459 15.6%
어제 아침, 새벽 묵상 글을 올리고서 아침 운동을 위해 복장을 갈아입었습니다.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가는데 하늘이 너무 흐리더군요. 비가 오지 않을까 싶어서 얼른 휴대전화로 날씨를 검색했습니다. 오전 중에는 흐림으로만 되어 있고, 오후가 되어야 비 올 확률이 60%로 늘어나더군요. 그래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에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갈등이 생겼습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원래 생각했던 목적지까지 갈 것인가? 더군다나 분명히 하늘은 곧바로 비가 쏟아질 기세였거든요.

잠시 동안 망설이다가 저는 원래의 목적지까지 다녀오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일기예보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요. 그러나 설마 잠시 뒤의 예보도 맞지 않을까 싶었고, 저는 잠시 뒤의 일기예보를 믿었습니다. 결과는 약간의 빗방울을 맞았을 뿐, 별 무리 없이 즐겁고 기분 좋게 아침 운동을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만 있으면 매순간 즐겁고 기분 좋은 시간들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불평불만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일기예보도 잠시 뒤의 예보는 정확하다는 믿음이 필요하듯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늘 좋은 것을 주신다는 굳은 믿음만 있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좌절과 절망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어제 낮 2시에 미사가 있었습니다. 저는 점심식사 후에 미사 전까지 책을 볼 생각으로 방에 갔지요. 책을 보다가 깜빡 졸았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시끄럽게 울리는 전화벨에 깜짝 놀라서 얼른 전화를 받았지요. 보험 가입하라는 스팸 전화였습니다. 신경질이 나더군요. 그런데 시계를 보는 순간 정말로 깜짝 놀랐습니다. 글쎄 오후 1시 50분인 것입니다. 미사 시간까지 10분밖에 남지 않은 것이지요. 만약 이 스팸 전화가 없었다면 어떠했을까요? 짜증나는 전화가 아주 감사한 전화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에게 좋은 것만을 주시는 하느님이라는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면 말이지요.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방인 사제였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우리 후손들에게 굳건한 믿음을 보여주셨지요. 그래서 사제서품을 받은 지 1년도 되지 않아 체포되었지만 믿음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서품을 받은 뒤에 하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사제서품을 받기가 쉽지 않다는 것, 또 한국교회에 사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였기에 잡혔을 때 많은 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잠시 배교한 뒤에 더 큰 일을 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셨겠지요. 그러나 주님을 증거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했기에, 그러한 욕심을 뒤로 하고 굳건한 믿음을 세상에 보여줍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떠한가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을 배신하지 않을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 보여주신 믿음을 주님께 청해 봅니다.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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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컴을 통해 여러 재주꾼이 등장하는 오락 프로그램을 접하다 보면, 어린아이와 청소년들의 고난도 묘기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처음에는 기술 연마가 힘들었지만, 반복훈련을 통해 실력이 늘어가면서 훈련하는 것도 좋아졌다고 합니다. 좋아지니까 더욱 많이 즐기게 되고, 반복하는 동안 실력은 고도로 발전해서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가운데 어느덧 선구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세인들의 동경을 받으며 이곳저곳에 초대되어 실력을 자랑하고 여러 사람을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그동안 무얼 했나? 내가 정말 내놓고 자랑할 만한 것은 무엇인가?’ 하고 자문하게 됩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갈라 6,14).”라고 말하며 예수님의 낙인을 당신 몸에 지니고 있음을 든든히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에게서 십자가를 빼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 많은 경우 우리에게 있어 십자가는 부담스런 존재이고 가급적이면 십자가를 배제한 채 살려고 하며, 십자가 없이 편하기만 한 것이 인생의 성공인 양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의 기도 내용을 보면, 내가 희생하게 해주시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남에게 많이 베푸는 사람이 되게 해주시며, 다른 사람 대신 기꺼이 고통받게 해달라는 각오는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의 목표는 오로지 아프지 않거나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십자가는 그냥 피하고 싶은 고통이 아니라 사랑의 모습입니다. 사랑하기에 목숨까지 바치는 숭고한 사랑. 이 십자가가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우리 삶에 주어진 십자가를 회피하거나 소홀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참된 신앙인이 되는 것은, 비록 어려운 삶이지만 자신만의 삶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그분처럼 남을 사랑하며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우리의 삶을 적극적으로 사랑하며 살게 만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구원의 목적이며 방법이신데 그분을 통하는 방법이 십자가라면 우리에게서 십자가는 불가분의 관계일 뿐만 아니라 우선적이어야 합니다. 바로 거기서 사랑의 역사가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외모지상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오늘도 주님께서는 삶의 십자가를 지고 힘겹게 가는 우리와 함께 가고자 하십니다.

<인천교구 이윤하 신부>
  | 07.06
459 15.6%
매스컴을 통해 여러 재주꾼이 등장하는 오락 프로그램을 접하다 보면, 어린아이와 청소년들의 고난도 묘기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처음에는 기술 연마가 힘들었지만, 반복훈련을 통해 실력이 늘어가면서 훈련하는 것도 좋아졌다고 합니다. 좋아지니까 더욱 많이 즐기게 되고, 반복하는 동안 실력은 고도로 발전해서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가운데 어느덧 선구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세인들의 동경을 받으며 이곳저곳에 초대되어 실력을 자랑하고 여러 사람을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그동안 무얼 했나? 내가 정말 내놓고 자랑할 만한 것은 무엇인가?’ 하고 자문하게 됩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갈라 6,14).”라고 말하며 예수님의 낙인을 당신 몸에 지니고 있음을 든든히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에게서 십자가를 빼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 많은 경우 우리에게 있어 십자가는 부담스런 존재이고 가급적이면 십자가를 배제한 채 살려고 하며, 십자가 없이 편하기만 한 것이 인생의 성공인 양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의 기도 내용을 보면, 내가 희생하게 해주시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남에게 많이 베푸는 사람이 되게 해주시며, 다른 사람 대신 기꺼이 고통받게 해달라는 각오는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의 목표는 오로지 아프지 않거나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십자가는 그냥 피하고 싶은 고통이 아니라 사랑의 모습입니다. 사랑하기에 목숨까지 바치는 숭고한 사랑. 이 십자가가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우리 삶에 주어진 십자가를 회피하거나 소홀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참된 신앙인이 되는 것은, 비록 어려운 삶이지만 자신만의 삶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그분처럼 남을 사랑하며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우리의 삶을 적극적으로 사랑하며 살게 만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구원의 목적이며 방법이신데 그분을 통하는 방법이 십자가라면 우리에게서 십자가는 불가분의 관계일 뿐만 아니라 우선적이어야 합니다. 바로 거기서 사랑의 역사가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외모지상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오늘도 주님께서는 삶의 십자가를 지고 힘겹게 가는 우리와 함께 가고자 하십니다.

<인천교구 이윤하 신부>
  |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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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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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신부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본당 아이들과 마당에서 신명나게 뛰어놀았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열심히 땀을 훔치며 놀고 나서는 사제관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아이들에게 건네주었더니 한 아이가 이러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님, 저는 음료수보다 시원한 물 한잔 마시면 갈증이 가셔요.”, “아니 너희들이 좋아하
는 달콤한 음료수와 탄산수도 있는데, 이걸 시원하게 마시면 갈증이 해소될 텐데.”라고 했더니 아이가 이런 말을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님, 저는요. 음료수를 마시면 더 갈증이 나요. 그래서 생수 한 모금이면 충분해요.”라고 말하길래 왜냐고 물었더니 그 아이의 대답을 듣고서는 제 자신이 어찌나 부끄러웠는지......! 그 아이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신부님, 음료수는 사람이 만들었는데, 생수는 하느님이 만드셨잖아요. 그러니 사람이 만든 음료수를 마시면 갈증이나고, 하느님이 만드신 생수를 마시면 갈증이 사라져요.”

이 말을 들으니 사제관에서 음료수를 가져온 제 손이 어찌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그 아이에게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들었던지 이루 말할 수 없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의 기억을 생각해 보니 지금도 그 느낌은 아직도 생생할 정도입니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오 10,20)”

그 아이의 말을 들으면서 지금까지 기억이 생생한 것은 그 아이의 영이 얼마나 맑고 밝았는지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기에 그러합니다. 물론 그 아이가 부모에게 신앙 교육을 받았는지 교리교사에게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며 하느님과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만큼은 변함이 없습니다. 창세기를 읽다보면, 하느님의 손길이 안 간 곳이 한군데도 없습니다. 창조하시면서 늘 말씀하시는 것이 “보시니 좋았다.”라는 것입니다.

과연 오늘을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손길을 얼마나 느끼고 살고 있는가? 보시니 좋은 모습대로 살고 있는가?

많은 순교자의 기록들 중에는, 아주 연약한 여인이나 천진한 어린이들까지도 초자연적인 지혜에 가득찬 답변을 하여, 재판관들을 당황케 한 이야기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 오늘 축일인 김대건 신부님 역시 ‘내 안에 계시는 아버지의 영(靈)’으로 온갖 박해도 이겨내셨고, 기꺼이 목숨까지도 내어놓으셨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편지들 역시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靈)”이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마치 보좌신부 때 제가 그 아이의 답변을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그 아이도 ‘그 아이 안에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靈)’이 하시는 말씀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버지의 영(靈)’은 아버지를 알아보게 이끌어주십니다. 세상 만물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껴보라고 하십니다. 아버지가 함께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은 바로 그 ‘내 안에서 계시는 아버지의 영(靈)’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들도 ‘내 안에 계시는 아버지의 영(靈)’으로 인하여 하느님을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느끼며 지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을 느끼며 하느님과 함께 지낸다면 그것이 바로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靈)”에 귀 기울여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살기를 기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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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어경진 안스가리오 신부
2020년 7월 5일 인천교구 주보에서
  | 07.03
459 15.6%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형편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우리말은 무엇일까요? 답은 ‘철부지’입니다. 이 단어를 유심히 보면 농경시대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농경시대에 계절(철)의 변화와 흐름을 제대로 알지 못해(부지 不知) 농사를 망치는 사람을 ‘철부지’라고 한 것입니다. 농경시대의 이 단어가 지금에까지 전해져서 삶의 변화와 흐름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을 의미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농경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절의 변화와 흐름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이를 알지 못하면 농사를 망쳐서 쫄쫄 굶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변화와 흐름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이 세상을 기쁘고 힘차게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 삶의 변화와 흐름은 항상 좋은 길로 이끌어 주시는 주님과 함께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게 될 때 얻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보다 세상을, 그분의 뜻보다는 내 욕심과 이기심이라는 뜻을 채우는데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우리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우리 모두 철부지일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 그 철부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는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를 기억합니다. 한국 최초의 사제로 1845년 8월 17일 사제서품을 받고서 그 다음해 9월 16일 한강 새넘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당시의 나이가 서른이 되지 않았으니, 너무 젊었고 또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라 할 수 있는 나이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해의 칼날 앞에서도 의연할 수 있었던 것은 세상 것에 뜻을 뚜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주님께만 뜻을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삶의 변화와 흐름을 주님께 맡길 수 있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주님 말씀에 굳은 믿음을 가지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지요. 그러나 우리의 모습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철부지처럼 끊임없는 걱정 속에서만 살아가고, 조금이라고 어렵고 힘들면 쉽게 포기하고 좌절했던 것은 아닐까요? 더군다나 자기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 주님께 불평불만을 던지면서 주님 곁을 떠나는 것을 손바닥 뒤집듯이 했던 것이 아닐까요?

더는 철부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향하는 진정한 변화를 이룰 수 있도록 이 세상의 모든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을 멀리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대신 철저히 주님 뜻에 맞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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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2020년 7월 5일
  |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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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   [수도회] 깨지고 금간 항아리  [8] 1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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