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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순교는 사랑의 증거이다.
조회수 | 2,917
작성일 | 08.07.03
"세상에 한번 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를 알지 못하면 태어난 보람이 무엇인가?" 신부님의 말씀이다. ‘순교'의 본 의미는 ’증거'이다. 성인은 하느님을 우리의 임자로, 주님으로 믿었기에 그분께 대한 믿음과 사랑, 생명을 바쳐 증거하였다.

순교, 바보들의 행진인가?

어떤 본당에서 순교자 성월을 맞아 중․고등부 학생들을 위한 순교 성인들에 대한 특별강론이 있었다, 본당신부님은 김대건 성인의 생애를 설명해 갔다. '1821.8.21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에서 출생, 1836 마카오로 유학, 1845.8.17 한국 최초의 사제로 서품, 선교사 입국의 길을 트려다 1846,6.5 순위도에서 체포, 서양학문을 익힌 최초의 한국인, 외국어(라틴어, 불어, 영어, 중국어)에 능통, 조정에서는 그 재주와 인품이 아까워 죽이지 않으려고 회유도 했으나, 끝내 신앙을 지킴, 1846.9.16 서품된 지 1년 1개월만에 25세의 젊은 나이로 새남터에서, 칼 아래 순교' 강론은 차츰 열기를 더해갔다.

그런데 갑자기 고1 학생이 손을 번쩍 돌고는, "신부님, 저는 솔직히 김대건 신부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속이 답답합니다, 참으로 어렵게 사제가 되어가지고, 사목자라고는 아무도 없는데 신부된 지 1년만에 꼭 그렇게 순교를 해야 했는지? 배교(背敎)하는 척하고 교회를 위해 열심히 오랫동안 일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요?" 하였다, 이러다 보니 '순교자 현양이 아니라, '순교자 규탄대회'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고 한다.

X(신)세대다운 약삭빠르고 영악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모르긴 해도, 많은 사람들의 순교자에 대한 생각이 이 학생들의 태도와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요즘 여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신랑감은 ‘돈 많고 명(命) 짧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철저하게 이해 타산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사람들에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하느님을 위해 생명을 바친 순교자들의 무리야말로 ’바보들의 행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김대건 신부님은 참 믿음의 소유자였다.

신부님은 “세상에 한번 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를 알지 못하면 태어난 보람이 무엇인가? 그를 알아보았으되 배신하면 차라리 이 세상에 아니 난 것만 못하다"하였다, ‘임자'라는 신부님의 표현은, 우리 조상들이 하느님을 ’대군대부(大君大父)'라고 불렀던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임자'란 '주님'과 같은 뜻으로, 하느님은 인간과 세상만물을 창조하시고 절대권을 가지고 계시므로 만물의 주인이며, 아버지라는 신앙의 고백이다."

“하느님이 우리의 '임자요, 주인'임을 알았다면 그분을 배반할 수 없다"는 것이 김대건 신부님의 움직일 수 없는 믿음이었다. 이 믿음이 바로 25세의 젊은 사제 김대건을 순교의 길로 용감히 나아가게 하였던 것이다.

김대건 신부님은 참 희망과 사랑의 소유자였다

김대건 신부님은 1846년 6월5일 체포된 후 6월21일 서울 포도청에 갇힌 후, 7월19일까지 40여 차례의 심문을 받았다. 신부님은 새남터에서 참수되기 전, 8월29일 페레올 주교와 신자들에게 하직편지를 썼다. "나는 하느님을 위하여 죽으니, 내 앞에는 영원한 생명이 시작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사후(死後)에 영원한 복락을 얻으려면 반드시 그리스도교인이 되십시오."

이 마지막 편지를 보면

김 신부님은 하느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굳은 희망을 지닌 분이셨음을 알 수 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즈가리야는 죽으면서 "주께서 굽어보시고 갚으시리라"(2역대 24,22)고 외친다. 김 신부님은 이 지상의 삶이 끝나는 그 시점에서 '임자'이신 하느님께서 당신을 믿고 따르기 위한 모든 고통을 갚아주실 것을 확신하셨고, 그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으로 꽉 차있었다. 죽음 앞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믿음과 희망이 아닐 수 없다.

신부님의 '임자'께 대한 믿음은 신자들에게 대한 완전한 헌신과 사랑으로 나타났다,

1844떤 부제품을 받기 전 조선 입국의 길을 뚫기 위해 두만강을 건너고 장백산을 넘으면서 2000리가 넘는 길을 혹한 속에서 헤매야 했다. 그리고 1845떤 항해 경험이 전혀 없는 11명의 신자와 함께 손수 만든 작은 배를 타고, 신부와 주교를 모셔오기 위해 4월30일 제물포를 떠나 6월4일 상해에 도착하기까지 죽음과 맞선 항해를 하셨다. 김 신부님은 참으로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어낸다'는 것을 온 생애를 통해 보여주셨다,

16세에 부모를 떠나 10년 만에 사제가 되셨고, 1년 남짓 사제로 살다가 25세의 젊은 생명을 산 제물로 바치신 김대건 신부님은, 한국 교회의 꽃이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모든 사제들의 주보인 김 신부님은 사제들을 끊임없이 회개에로 부르시는 은총의 샘이라 할 수 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님, 저희 사제들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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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유영봉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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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 선조들은 스스로 복음의 진리를 깨달아 신앙의 길을 찾았다. 그리고 평신도들의 힘으로 교회를 세우고 키우며 지켰다. 자신의 인생을 걸만한 확신이 없는 우리의 신앙생활은 신앙생활이라기보다 취미생활이 아닌가? 반성해 볼 일이다.

스스로 깨달은 진리

18세기 주자학(朱子學)에 젖어 있던 조선사회는 갖가지 병폐와 한계에 봉착하고 있었다. 새로운 학문과 사조를 갈망하던 학자들은 중국으로부터 들어오는 천주실의(天主實義), 칠극(七克) 등의 서적들을 통해 신앙에 눈뜨게 되었고, 단순히 학문의 차원에서 끝나지 않고 그 가르침을 따라 살기 시작했던 것이다. 초이레, 열 나흘, 스무-하루 등 날짜를 정해놓고, 그 날은 육신 일을 파(罷)하고. 상제(上帝)이신 하느님을 섬기며 기도하고, 이웃에 봉사하며 나름대로 주일을 지키며 살았다, 그들은 교회의 계명을 지키며, 수계생활(守誡生活)에 전념하였다.

'하느님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교회의 가르침은 반상(班常)의 신분 차이가 뚜렷하던 당시의 상황에서는 가슴 벅찬 깨달음이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1784떤 이승훈이 영세하고, 1836떤 프랑스 선교사들이 입국할 때까지 50여년을 중국인 사제 두분이 잠시 사목했을 뿐, 평신도들이 스스로 교회를 일으키고 박해 중에도 신앙을 지켜나갔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순교는 믿음의 증거다
'순교자(martyr)'는 원래 '증거자'란 뜻이다. 자신의 생명을 바쳐 하느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00여년 동안 1만여명의 순교자들이 신앙을 위해 생명을 바쳤다,

우리나라의 두번째 사제인 최양업(토마스)신부의 부친 최영환(프란치스코)은 1839년 7월 아들을 유학시킨 사학죄인으로 체포되어 배교를 강요당하며, 100대가 넘는 곤장을 두번 이상 맞고, 고문을 당한 끝에 장독(丈毒)으로 9윌12일 돌아가셨다. 그 어머니 이성례(마리아)는 최 신부의 동생들인 5명의 자녀들과 함께 옥에 갇혔다.

12세인 둘째 최희정(야고보), 셋째 최선정(안드레아), 넷째 최우정(바실리오), 다섯째 최신정(델네시포로)은 나이가 어려 석방되었고, 세 살짜리 젖먹이(최 스테파노)만 옥에 남았다. 그런데 굶주림과 고문으로 몸이 쇠약해지자 유도(乳道)가 막혀 젖이 나지 않아, 젖먹이가 어머니 무릎에서 굶어죽기에 이르렀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자기 자녀가 무릎 위에서 굶어죽자, 이 마리아는 한때 관장에게 배교한다는 말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수감중인 여러 교우들의 위로와 격려로 다시금 순교의 뜻을 굳힐 수 있었다,

옥에서 풀려 나온 둘째 ‘최 야고보'는 동생들과 함께 푼푼이 동냥한 돈으로 음식을 마련하여 옥중의 어머니를 면회하고, 동생들을 잘 돌볼 것을 약속하며 격려하였다. 순교의 때가 가까이 오자, 어머니 목을 벨 희광이를 찾아가 구걸한 돈을 건네고, 어머니의 모습을 상세히 일러주면서 ’칼을 잘 갈아 어머니가 고통을 많이 받지 않고 죽을 수 있도록' 한칼에 목을 베어주도록 부탁하였다.

이렇게 순교자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혹독한 고통 가운데서도 자신들이 믿는 하느님을 배반하지 않기 위해 생명을 바쳤던 것이다.

취미생활인가? 신앙생활인가?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내놓을 각오로 신앙생활을 하였던 선조들에 비하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신앙생활이라기보다 차라리 취미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더 알맞은 표현일 것이다. 우리 시대엔 똑똑한 사람은 많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자기 진리나 신념을 지닌 사람을 보기는 힘들다. 우리 사회는 어떤가? 이권에 눈먼 철새 정치인,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자를 찬양하기에 바쁜 매스컴, 실직한 남편과 자녀들을 미련 없이 버리고 자기 행복을 찾아 떠나는 여자들이 보여주는 세태는, 신앙을 위해 칼 앞에 목을 내민 순교자들의 대열을 '바보들의 행진'으로 비웃기에 충분하다.

만일 우리나라에 ‘천주교 신자는 자녀를 대학에 보낼 수 없다'든가, ’국가 공무원이 될 수 없다'는 법이라도 있다면, 그래도 성당에 나올 신자가 몇 명이나 될까?

우리와 순교선열들과의 근본 차이는 무엇인가?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살아 계심을 믿는 믿음이 없고, 부활한 예수가 들어간 그 세계, 즉 죽음 후의 영원한 생명을 믿는 믿음도 없다.

이 세상이 전부인 이들이 어떻게 생명을 바칠 수 있겠는가? 구제금융 시기를 맞아 빈부격차가 점점 극심해지고 있는 현실이다,

신앙의 선조들이 순교자들의 자녀들을 자기 친자식처럼 돌보며 어려움을 함께 나누었듯이, 실직과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이웃의 아픔을, 내일처럼 지극 정성으로 함께 나누어보자. 그 안에서 하느님 현존을 체험토록 하자, 그리하여 죽음도 두렵지 않는 참 믿음을 가꾸도록 하자.

유 영봉 몬시뇰
  |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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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지조 있게 살아라.”

갓 신부가 되고서는 김대건 신부님의 축일을 지내는 것이 한국의 최초 신부님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존경과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지냈습니다.

그러나 늘 하는 것이 그렇듯이 김 신부님의 축일도 서서히 시간이 지나면서 특별한 의미가 덜해지고 결국에는 의례적으로 지내는 축일의 하나가 되어 버리고 만 저에게 그분이 살아 계신다면 이런 말씀을 하실 것 같습니다.

“좀 지조 있게 살아라.”하고 말입니다.

사실 우리 삶은 쉽게 만나서 쉽게 헤어지고, 쉽게 받아드리고 쉽게 포기하고, TV 화면처럼 순간순간 변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사회 안에 살고 있기에 지조 있다는 것 자체가 고리타분하게 여겨지도록 요구 받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김 신부님의 삶을 보면 그분 삶 자체가 “지조 있는 삶"이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자신을 만들어 주신 하느님을 당신의 창조주로서 그리고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신 어버이로 믿고 받아드렸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김 신부님은 자신을 하느님에게서 떠나게 만드는 그 어떤 것에서도 흔들림 없었고, 끝까지 하느님께 대한 지조를 지키고 사신 분이었습니다.

그분에게 있어서는 단순히 무엇을 바꾸고 바꾸지 않고 하는 그런 사소한 문제에서가 아니라 “순교할 것인가, 생존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있어서 흔들림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그분의 지조는 하느님을 창조주이며 아버지로 믿고 산다면 자신을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으실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김 신부님의 옥중 서간을 보면 "박해는 하느님이 주시는 시련입니다. 천국 영광을 위하여 재앙을 겁내지 말고 천주를 섬기는데서 물러나지 말고 용기를 잃지 말고 주의 충실한 병사이며 참된 천국 시민임을 증명하여 주십시오. 나도 천국에서 그대들과 가령 만나 영원한 복을 즐기게 될 것을 바라고 있소. 그때 그대들은 정답게 껴안아 주겠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때 그대들을 정답게 껴안아 주시겠다."는 그 애정 어린 말씀 속에서 영원한 삶에 대한 희망이 깊이 배여 있음과 이 희망이 김 신부님을 지조 있는 삶을 살도록 해주고 있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 제2독서에서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라고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되새기게 하고 더 나아가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는 오늘 복음의 예수님 말씀에서 그 희망의 절정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 희망의 말씀이 있기에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즈가리야 예언자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면서 "주님께서 보고 갚으실 것이다."라고 한 것이나, 김대건 신부님을 비롯한 수많은 순교자들이 어떠한 시련이나 고통 속에서도 지조 있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므로 김대건 신부님의 축일을 기념하는 오늘 하느님을 향한 희망 안에서 우리도 얼마나 흔들리지 않는 지조 있는 삶을 살았는가 하는 우리의 모습 바라보고, 그 어느 것에도 흔들리지 않은 지조 있는 삶을 우리 역시도 살아야 하고 살 수 있는 자랑스러운 순교자의 신앙후손임을 깨달아 봅니다.

진선진 신부
  |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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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안드레아) 선배님! 후배 사제 인사드립니다. 저희 교회는 교황 베네딕토의 선포에 의해 특별히 ‘사제의 해’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현 교황님께서는 사제들이 사제의 신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영적으로 더욱 성장해서 많은 신자들에게 귀감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오늘 저희는 이 땅 한국천주교회의 최초 사제이신 당신을 기념하는 대축일을 지냅니다. 특별한 해에 맞이하는 특별한 날에 저 역시도 신부님의 동료로서 같은 사제로서의 삶을 새롭게 인식하고자 합니다.

신부님의 생애를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이미 신부님의 가문에서는 신부님께서 태어나기도 전에 박해 속에서 여러 분의 순교자를 배출하면서도 신앙의 끈을 놓지 않고, 어떻게 신부님마저 그 어린 나이 16살에 예비신학생으로 먼 타국으로 보낼 수 있었나 하는 의문과 더불어 존경심을 가져 봅니다. 물론 거기에는 모방 신부님의 권유와 가문의 기대감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사랑하고 한국 교회를 아끼는 신부님의 자발적인 동참도 큰 역할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 모습에서 하느님의 말씀에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예”하고 순명을 하는 절대적인 믿음의 소유자이신 어머니 마리아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그러면서 저의 모습을 바라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긴 한숨 내쉬어 봅니다. 사실 저는 지금 처음으로 본당 사목구 주임이라는 막중한 책임감을 떠맡으며 안의선교본당이라는 곳에서 사목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함양군 안의면에 위치한 안의공소와 거창군 위천면에 위치한 위천공소 두 곳을 연결고리로 삼아 기존의 본당과는 다른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곳이라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연세 드신 어르신들이고, 젊다고 하면 오륙십 대 신자들이 손발이 되어 움직이고 있는 곳입니다. 지금은 여느 도시 본당 부럽지 않게 열심인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고자 활발한 움직임을 보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도우심과 신자들의 사제를 모셨다는 기쁨, 본당으로서의 지역교회에 큰 도움이 되고자 하는 열정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신자들의 이런 움직임 속에서 사제인 저 혼자만 불가능하다는 두려움과 의문으로 불평과 불만에 가득 찬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존재하시고 하느님께서 주관하시는 일이라는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전제 조건을 놓쳐버린 채 인간의 일을 먼저 생각하고 사제가 중심이 되겠다는 어리석음을 신부님의 생애를 통해 뼈저리게 뉘우치고 가슴 쳐 봅니다.

신부님께서는 어린 나이에 먼 타국으로 함께 동행 했던 동료 최방제의 죽음을 경험하고, 아버지의 순교와 가족들의 억울한 상황을 소식으로 접하면서도 인간적인 감정에 주저앉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을 위하고 한국 교회를 위해서 전 생애를 바쳤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을 위한 온전한 믿음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봅니다. 하지만, 어떻게 된 것이 저는 여전히 주변 상황의 변화와 확인되지 않은 수많은 소문들에 의해 제 판단을 흐리고 맙니다. 이러한 어리석음들이 주님만을 바라고 가는 신자들을 더 힘들게 하며 오히려 신앙 안에서 기쁨을 찾게 하기보다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마태11,28) 라는 주님의 모습과는 달리 그들에게 더 무거운 짐을 져주고 교회를 떠나보내게 하는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 때문에 사람들에게서 박해를 받는 상황이 닥치더라도 어떻게 무엇을 말할 것인지를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때가 되면 하느님 아버지의 영이 다 일러 주실 것이라 하십니다. 그런데 사제인 저는 그 거룩한 영의 기운이 우리 안에 있음을 매번 망각하면서 사제만의 생각과 말과 행위로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인지 아니면 내가 원하는 일인지를 혼돈하고 있습니다. 안드레아 신부님! 이 못난 후배 사제가 당신의 모습을 닮아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제가 될 수 있도록 하느님께 조금만 힘 좀 써주세요. 그리고 이 부족한 사제를 그래도 존경해 주는 우리 신자들이 이 소중한 길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그것 역시 부탁합니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사제의 모습이 상처가 되어 사제를 신뢰하지 않게 된 신자들이 사제 안에 함께하는 주님의 은총을 발견하여 주님마저 포기하지 않도록 그들의 마음을 좀 잡아 주세요. 구차하지만 이 못난 후배가 나서야 할 일을 선배님께서도 함께 도와주십사 이렇게라도 요청하오니 부디 얼굴 찌푸리지 말고 귀엽게 봐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신부님을 위해 우리 신자들과 마음을 모아 기도하고 감사드립니다.

김형렬 요셉 신부
  |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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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안드레아(1821.8. 21.~1846. 9. 16.) 사제는 21통의 편지를 썼다. 서울에서 4통, 상해에서 5통, 옥중에서 3통, 나머지 9통은 마닐라, 만주, 몽골, 요동에서 쓴 것들이다. 편지는 아니지만, 순교자들에게 관한 긴 보고서 한 통도 있다. 라틴어와 한문으로 쓴 편지들이고, 순교하기 직전 옥중에서 마지막으로 교우들에게 보낸 편지는 한글로 쓴 것이다.김대건 신부님이 바오로 사도 시대에 선교사로 활동했더라면, 21통의 편지들은 모두 성경에 포함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구구절절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한국 교회에 대한 걱정과 염려와 애정, 그리고 교우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한 편지들이다. 군문효수軍門梟首로 한강 변 새남터에서 처형되기 직전 옥중에서 쓴 마지막 편지 끝 부분을 인용한다(성 김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 기념 전기 자료집 제1집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서한. 한국 교회사 연구소 1996. 386쪽)

세상 온갖 일이 막비주명(莫非主命 하느님의 뜻 아닌 것이 없다.)이요, 막비주상주벌(莫非主賞主罰 하느님께서 상주시고 벌하시는 일 아닌 것이 없다.)이라. 고로 이런 군난도 또한 천주의 허락하신 바니, 너희 감수 인내하여 위주爲主하고 오직 주께 슬피 빌어 빨리 평안함을 주시기를 기다리라. 내 죽는 것이 너희 육정과 영혼 대사에 어찌 거리낌이 없으랴. 그러나 천주께서 오래지 아니하여 너희에게 내게 비겨 더 착실한 목자를 상 주실 것이니, 부디 설워 말고 큰 사랑을 이뤄, 한 몸같이 주를 섬기다가 사후에 영원히 천주 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 천만 바란다. 잘 있거라.- 김 신부 사정 정표 -

요즘 우리 현실을 생각하면서 이 글을 읽어도 가슴이 찡하다. 하느님 뜻(主命) 아닌 것이 없다 하니, 지금 내가 살아 숨 쉬는 것도 하느님의 뜻이다. 어찌 감사하지 않겠는가. 하느님께서 상주시고 벌하시는 일 아닌 것이 없다 하니, 어찌 말 한마디 손짓 하나라도 조심하지 않겠는가. 사제 김대건은 가시적인 업적業績을 남긴 것이 없다. 26살의 젊음을 하느님 제단에 바쳤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에게서 환한 빛과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것은 어찌 된 일인가. 나도 사제 김대건을 닮고 싶다.

<마산교구 강영구 신부>
  |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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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바이러스 대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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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우 여러분!
우리는 지난 2개월 넘는 기간 동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공동체 전례와 모임을 전면 중단하는 초유의 사태를 지나왔습니다. 텅빈 성전, 주님이 묻혔던 텅빈 무덤을 바라보며 부활을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공허한 시기를 지내왔습니다. 더군다나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이러한 여파는 아직도 진행 중이며 언제 끝날지도 모릅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도 당분간 코로나19 유행은 널뛰기를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코로나19 유행의 근본 원인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저는 그 원인을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전문가들의 정식 명명에서 그 원인과 앞으로의 전망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바이러스는 우리가 사는 지구라는 세상에서 하나의 생명체로 곳곳에서 이미 살고 있었습니다. 곧 그들이 사는 생활환경은 따로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이 바이러스의 환경을 지나치게 침범한 나머지 생명체인 그들도 살아남기 위하여 새로운 숙주인 인간을 필요로 했던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그들도 새로운 숙주인 인간의 몸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변이를 일으키며 계속 다른 사람에게 전염을 유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이 “코로나19” 전염 초기에 전문가들이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명명한 데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코로나19’라는
정식 명칭은 현재 변이를 일으킨 코로나 계열 바이러스가 2019년에 발견된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곧 이러한 바이러스는 계속 변이를 일으킬 것이라는 뜻입니다. ‘…바이러스25’ 등으로 말입니다.

‘데이비드 콰먼’의 책 「인수공통-모든 전염병의 열쇠」를 번역한 강병철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유행이라는 말 이전에 ‘인간 대유행’이 먼저라고 그 원인을 진단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워낙 자연의 영역을 마음대로 침범하여 지구환경을 파괴한 나머지 하나의 생명체인 바이러스도 살아남기 위하여 또 다른 숙주인 인간을 선택하여 그 생명을 유지코자 하는 것이 바이러스 유행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텅빈 성전, 텅빈 무덤을 바라보며 느낀 공허함을 이전과는 다른 삶의 방식으로 채워야 할 것입니다. 그 텅빈 공허함을 우리의 또 다른 희망의 징표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새로운 희망으로 채워지는 나날이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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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이재영 바실리오 신부
2020년 7월 5일 마산교구 주보에서
  |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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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   [수도회] 참 보화를 얻기 위해 썩어 없어지는 밀알  [5] 198
509   [청주/수원] 죽으면 열매를 맺는다  [3] 164
508   [인천/의정부/서울] 이웃과 함께하는 삶  [3] 155
507   (홍)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8월 10일)독서와 복음  [10] 162
506   [대구/전주/춘천] “너는 이것을 믿느냐?”  [3] 1685
505   [수도회] 깨지고 금간 항아리  [8] 1897
504   [수원/부산]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5] 1587
503   [인천/의정부/서울]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간직합시다.  [4] 1580
502   (백) 성녀 마르타 기념일 (7월 29일) 독서와 복음  [10] 1943
501   [수도회] 윗자리는  [11] 1884
500   [전주/대구/부산] 주님을 향한 열정의 사도 야고보  [3] 2368
499   [춘천/수원/청주] 남을 섬길 줄 아는 사람이 될 때 모든 것에서 자유  [6] 1955
498   [인천/서울/의정부] 욕심  [9] 2023
497   (홍) 성 야고보 사도 축일 (7월 25일) 독서와 복음  [10] 1614
496   [수도회] 성인들의 삶은 우리를 성덕으로 부르는 강한 초대장  [6] 1668
495   [부산/마산] 주님의 목소리를 귀 기울려 듣자  [3] 1731
494   [서울/수원/의정부] 예수님을 간절히 사랑했던 여인, 부활의 증인이 되다  [5] 2005
493   [청주/춘천] 사랑의 방식  [6] 1754
492   [대구/전주] 라뽀니 선생님  [4] 1633
491   [인천] '바쁘다’라는 말을 하지 맙시다.  [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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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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