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대축일/명절강론

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9 15.6%
[서울] 교회는 끊임없이 파견되어야 한다.
조회수 | 2,819
작성일 | 08.07.03
오늘은 최초의 한국인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경축하는 날이다. 김대건 신부는 1821년 8월 21일 충청도 솔뫼에서 태어나 1836년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중국 마카오로 건너가게 된다. 드디어 1845년 8월 17일에 사제로 서품되어 그 이듬해 6월 귀국하여 사목 활동을 하다가 관가에 잡혀 1846년 10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김대건 신부는 짧은 인생 동안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봉헌으로 민족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삶을 불태웠다. 김대건 신부는 파견된 사목자 그리고 예언자였다. 복음의 불모지에서 스승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전생애를 송두리째 바쳤던 것이다.

교회의 존재 목적인 선교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이(마태 28,19) 바로 교회의 사명이다. 따라서 교회는 끊임없이 파견되어야 한다.

마태오 복음의 이른바 선교적 담화문은 이렇듯 ‘말씀’과 ‘행위’로 드러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권위가 완성되는 것으로 소개된다. 예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실제적으로 다가온 하느님 나라의 실재(實在)인 것이다. 여기서(마태오 복음에서) ‘기적’은 인간 역사 안에서 끊임없이 역사(役事)하시는 예수님과 모든 삶을 투신하는 신앙의 행위 속에서 주님을 맞아들이고 예수님을 주님으로서 인식하는 인간의 만남이다.

따라서 기적이 표명하고자 하는 것은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증거가 아니라. 사도 바오로가 기술하듯, 그것을 통해 나타나는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디도 3,4 참조)이다. 그리스도에 의한 파견, 나아가 ‘선교’는 목자 없는 양들처럼 지쳐서 풀이 죽어 있는 군중을 보시고 측은히 여기신(마태 9,36 참조) 그리스도의 마음에서 출발된다.

마태오 복음에서 제자들의 파견 이야기는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제자들의 사명을 보여 주는 동시에 무엇보다도 우선 예수님의 사명을 강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마르코(6,12-13 참조)나 루가(9,6; 10,1 참조)와는 달리 마태오에서는 선교 사명을 받은 제자들이 선교를 위해 떠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여기서 선교를 위해 떠나는 것은 제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이시다(11,1 참조).

세례를 받고 성체성사에 참여하는 모든 신앙인은 모두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 옛날 열두 제자에게 부여되었던 예언자적 사명은 현대의 신앙인인 우리에게도 똑같이 부여된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께 예언직의 사명을 받은 것이다. 이에 따라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능력에 따라 복음을 전하고, 복음의 빛으로 자신의 주위를 밝히며 증거자의 생활을 해야 한다. 이러한 예언자적 임무가 바로 교회가 그 본질로 삼는 ‘선교’의 임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다.

복음적 생활의 증거만으로 그리스도인의 예언자적 임무는 완성될 수 없다. 아무리 훌륭한 증거라 하더라도 다른 이들에게 설명되고 납득되지 못하면 온전한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여러분이 간직하고 있는 희망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라도 답변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십시오.”(1베드 3,15)라고 하는 사도 베드로의 말처럼 생활의 증거로써 선포된 ‘기쁜 소식’은 생명의 말씀이 주는 빛으로 그 의미가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말씀은 매순간 예수님의 뜻을 선택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행위와 결단을 필요로 한다. 말씀의 선포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부분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신자는 선교를 위해서도 성서 말씀에 친숙해야 한다. 선교는 행동뿐 아니라 말로도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예언자적 임무는 충실한 그리스도인이 시대의 징표를 분별하고 해석하며, 공동체의 참된 평화를 위해 모험을 무릅쓰고 결단을 내리게 한다. 예언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은 비겁하고 불의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스승 예수님과 같이 바로 오늘의 역사적, 정치적, 종교적 일상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모든 불의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예언자의 눈으로 오늘의 불의와 부정을 비판하고 고발하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이 ‘공허하고 타협적인’ 현상 유지의 평화를 권유하고 확산시킨다면 그는 거짓 예언자일 것이다(예레 6,13-14 참조).

예언자의 메시지는 심판이고 고발인 동시에 희망이고 약속이다. 그리스도인은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좌절하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이웃에게 그것을 전하는 사람이다.

김대건 신부의 축일을 보내면서 우리의 예언자적 소명을 다시 한번 묵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과연 예언자로서의 길을 충실히 가고 있는가?

----------------------------------------------

서울대교구 허영엽 신부
459 15.6%
아! 미리내

1845년 8월 17일, 상하이해 근교에 있는 교우촌 진쨔샹에서 마침내 신자들이 기도와 눈물로 고대하던 한국인 최초 사제가 탄생했습니다. 바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입니다.
 
1846년 9월 16일, 한강변 백사장 새남터에서 한국인 최초 사제는 수품된 지 1년여 만에 대역 죄인이 되어 처형됩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 대신 눈에 보이는 사목자에게 희망을 가졌던 박해 시대 신자들에게 이 사건은 얼마나 큰 시련이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통곡하며 원망했을 것이고, 세상 사람들의 눈에 김대건 신부의 죽음은 그들이 믿는 하느님이란 것이 헛것이었음을 드러내는 표지처럼 보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렇게 큰 비극적 시련 앞에서도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크게 동요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극한 시련 중에도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관원들에게 술을 사주고 잠들게 한 뒤에 시신을 파내어 등에 업고 150리 험한 산길만을 통과하며 자기 고향인 미리내에 안장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이민식 빈첸시오 형제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이치가 그렇듯이 이렇게 헌신적인 신자들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서울의 '삼성산 성지'는 앵베르 범 주교님과 모방 나 신부님, 샤스탕 정 신부님의 유해가 묻혔던 곳입니다. 우리나라 초대교회에 없어서는 안 되었던 이 분들은 김순성 요한이라는 한 신자의 밀고로 붙잡혀서 모진 박해 끝에 처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김순성 요한은 그밖에도 200여 명이나 되는 신자들을 밀고하여 순교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을 증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대다수 신자들 사이에도 밀고자들이 끼어 있어서 더욱 혼란과 불신으로 한치 앞을 예측 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지만 그 모진 박해 속에서도 훌륭한 사목자와 헌신적인 신자들이 있었기에 신자들은 늘어나고 교회는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한국인 최초의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는 10년 공부의 꿈도 피워보지 못하고 안타깝게 26살의 젊은 나이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태어나신 솔뫼, 그분이 돌아가신 새남터, 그분이 묻히신 미리내는 모두 거룩한 성지가 되었고, 지금도 그분의 신앙을 본받기 위해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는 1925년 7월 5일 복자 반열에 올랐고, 1949년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로 선포됐으며,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됐습니다.
 
한국천주교회는 100여 년의 박해시기를 은총과 성숙의 시기로 승화 시켰고, 선조들이 보였던 신앙의 모범은 신자들의 마음 안에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한 본당의 사목자로 있으면 장맛비를 두드려 맞는 벌판의 나무처럼 은총과 시련의 시기를 고스란히 맞게 됩니다. 오래 전에 보좌신부로 있었던 본당에서의 경험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신자들 간에 주임신부에 대한 여러 말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옆에서 지켜봐도 너무 심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하기 좋아하는 신자들의 체감이야 훨씬 컸을 것입니다. '신부님께 따지자, 교구청에 투서를 하자' 등등 불만의 목소리가 가라앉지를 않았습니다.
 
몇몇 사람이 신자들 간에 영향력이 있는 전임 회장에게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앞장서 주길 요청했습니다.
 
전임 회장께서는 "사제에게 무슨 짓이냐! 우리가 할 일은 신부님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다"고 야단치시며 그들을 돌려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신부님께서 등산을 좋아하시는 것을 아시는 회장님께서는 함께 등산을 하시며 그분과 많은 대화를 하셨습니다. 물론 신부님께서는 많은 아쉬움을 남겼지만 무사히 임기를 마치시고 그 본당을 떠나 다른 본당으로 가셨습니다.
 
신자들은 사제를 존경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신심이 자라고 깊어지며, 사제 역시 하느님의 사람으로 나날이 성화될 것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이 목숨 바쳐 사제를 지키고 사랑했듯이 우리 역시 그리합시다. 사제들에게는 하느님과 신자들이 생의 모든 것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든 사제들이 김대건 신부님처럼 하느님과 신자들만을 위해 살아가도록 더욱 기도합시다.

이기양 신부
  | 07.04
459 15.6%
"영원한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이탈리아 어느 일간지 앞으로 편지 한 통이 배달되었습니다.
 
"나는 지난 30년 동안 성당에 다니면서 3000번 가량 강론을 들었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억나는 것이 하나도 없소! 그러니 그동안 시간 낭비만 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소! 그런 면에서 사제들 역시 헛수고만 한 셈이오."
 
편지를 받아든 편집국장은 다음 날 '독자 투고'란에 실었고 예상대로 그 내용은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여러 주에 걸친 논쟁 끝에 마침내 쐐기를 박는 글이 들어왔습니다.
 
"나는 지난 30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해왔고 그 동안 아내는 3200번 가량 식탁을 차렸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무수한 식단 가운데 기억나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나는 이것만은 잘 알고 있다. 그 모든 음식이 영양분이 되어 내게 필요한 힘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만일 아내가 식사를 차려 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미 죽고 없었을 것이다."
 
이후 강론에 대한 논쟁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매주 혹은 매일 강론을 듣지만 기억나는 내용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 내 신앙의 바탕임은 말할 것도 없는 사실입니다. 그나마 소홀히 한다면 더 큰 혼란에 빠져버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도 열심히 말씀과 강론에 귀 기울여야 할 이유입니다. 많은 성직자들이 분주한 일상 중에서도 강론 준비에 크게 마음을 쏟는 것은 세 끼 식사처럼 말씀과 강론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성인의 축일은 일반적으로 돌아가신 날을 기념하지만 김 안드레아 신부는 복자품에 오른 7월 5일을 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한국인 최초 사제입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1821년 솔뫼에서 태어나 15살 젊은 나이로 최양업 토마스,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신학생으로 뽑혀 신학을 공부하러 파리외방전교회 극동지부가 있는 마카오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온갖 시련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1845년 8월 17일 상해 김가항 성당에서 10년 만에 사제로 수품합니다. 그리고 김 안드레아 신부는 꿈에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와서 1년여 간 성무를 집행하며 신자들을 사목합니다.
 
그러나 많은 신자들을 사목하기에는 신부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고 페레올 주교의 명으로 선교사 영입을 위한 새로운 뱃길을 알아보려고 연평도 백령도 부근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순위도에서 관헌에 체포됩니다. 사십 차례 이상 문초와 배교를 강요받았지만 거부하고 마침내 군문효수형을 받습니다.
 
김 안드레아 신부는 1846년 9월 16일 한강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신 지 40여 일이 지나 시신을 수습해서 150리 길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메고 간 신자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이민식 빈첸시오입니다. 그는 김 안드레아 신부 유해를 모시고 사람이 아무도 안 다니는 험한 산길만을 밤에만 걸어 일주일 만에 고향인 미리내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한국인 최초 신부는 미리내에 안장되었습니다. 놀라운 신자의 신심이고 놀라운 김대건 신부의 마지막이었습니다.
 
김대건 신부 죽음은 그 당시는 한갓 대역무도한 한 인간의 죽음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제 그분이 태어나신 솔뫼, 그분이 돌아가신 새남터, 그 분이 묻히신 미리내는 모두 거룩한 성지가 되었습니다. 거룩한 성지는 하느님의 승리를 되새기는 장소가 되었고, 인간의 뜻과 하느님의 뜻이 전혀 다름을 나타내는 표징이 되었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성인으로 모시고 대축일로 경축하는 것은 한국 최초의 사제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하느님과 신자들을 위해 자신의 전 생애와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바치셨기 때문입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는 말씀대로 사셨던 신부님의 삶이 있었기에 지금도 그분의 뒤를 따르는 사제들이 한국에만도 4000여 명이 있고 그들이 한국 천주교회를 이끌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삶을 따르는 사제들이 그분처럼 하느님과 신자들을 위해 살기를 기도하는 대축일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영원한 사제이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뒤를 따를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이기양 신부
  | 07.04
459 15.6%
매일 순교의 삶을 사는 신앙인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이다.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는(1821-1846) 하느님을‘임자’로 불렀다. 그는 하느님은 세상과 인간의 임자이기 때문에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면 세상에 난 보람이 없다고 신자들에게 가르쳤다.

1821년 충청도 솔뫼에서 태어난 성인은 어려서부터 뛰어난 신앙심과 총명함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최양업, 최방제와 함께 1836년 12월 마카오로 떠난다. 인고의 세월을 잘 견디고 1845년 8월 17일 상해에서 사제품에 오른다. 김대건 신부는 그해 10월 12일 귀국하여 용인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1846년 6월 5일 관헌들에게 체포되었다. 40여 차례의 혹독한 문초를 받고 9월 15
일 반역죄로 사형이 선고되어 다음날인 16일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그의 나이 26세였다.

그는 사목자로서의 사명을 충실하게 실천했고 죽음으로 자신을 완전하게 봉헌했다. 김대건 신부는 사형 집행 전 큰 소리로 마지막설교를했다.“ 나의마지막때가왔습니다. 나는 천주를 위해 죽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죽은 후 행복을 찾으려면 천주를 믿으시오.”설교가 끝난 후 관리들은 김 신부의 웃옷을 벗기고 두 귀에 화살을 꿰고 얼굴에는 물을 뿌리고 흰 회를 발랐다. 무릎을 꿇리고 밧줄 한 가닥으로 머리칼을 동여매고 머리를 하늘로 향하게 했다. 그때 김대건 신부는 태연하게 “자,이렇게 하면 나의 목을 쉽게 자르겠느냐?”라고 했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던 기백과 용기는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라고 하신다. 박해를 당하고 때로는 부모나 형제로부터 배척을 받고, 친척이나 가까운 이웃으로부터 반대와 박해를 당할 수도 있다고 하신 것이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박해와 고통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면 왜 신앙인은 박해를 당하는가?

세속에서 그리스도의 진리는 커다란 걸림돌이 된다. 왜냐하면 세상이 추구하는 행복과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시다. 따라서 죄와 어둠의 세력은 빛을 거부하고 두려워한다. 어둠의 행위가 빛 속에서 낱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세상 속에서 신앙의 삶을 충실히 사는 것 자체가 미움과 박해를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순교는 본래 증거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신앙의 삶 자체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길이며 동시에 순교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오늘날에는 하느님을 믿는다고 옛날처럼 순교를 당하는 일은 없다. 그래서 일상적인 신앙생활이 순교의 삶이 되었다.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바로 훌륭한 순교이다. 어쩌면 현대의 삶 속에서 충실하게 증거의 삶을 사는 것이 과거의 순교 못지않게 어렵고 힘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순교 성인들의 후예답게 이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에 신앙의 빛을 전하고, 복음을 증거하는 참 신앙인이 되도록 한층 더 노력해야 하겠다.

“순교자 김대건 사제와 한국의 순교성인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허영엽 신부
  | 07.04
459 15.6%
무엇을 위한 삶인가?

오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을 맞아 우리는 첫째 독서에서 즈카르야라고 불리는 한 순교자를 만납니다. 그는 하느님을 저버린 요아스 임금을 비난하다가 결국 돌에 맞아 죽고 마는 비운의 예언자입니다. 그에 대한 많은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주님께서 보고 갚으실 것이다.” 이 구절을 좀 더 직역해 본다면 “야훼께서 보시고 물을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야훼께서 즈카르야의 죽음을 보시고, 그가 왜 죽게 되었는지에 대해 (그를 죽인 사람들에게) 물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만약 그를 죽인 사람들이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벌을 받을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주위에서 많은 죽음을 접합니다. 어떤 사람은 병에 걸려 죽고, 어떤 사람은 사고를 당해 죽습니다. 어떤 사람은 먹을 것이 없어 죽고, 어떤 사람은 너무 많이 먹어서 죽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절망 가운데에 죽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신념과 희망을 지키기 위해 죽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의 순교라는 사건은 한국사와 한국교회사에서 매우 다르게 평가될 수 있는 사건입니다. 당시의 국가적 입장에서만 본다면 그의 행위는 엄연한 범법행위입니다. 하지만 그가 지녔던 종교적 신념과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으로부터 본다면 그의 죽음은 어느 누구의 죽음보다도 숭고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와 같은 신념과 희망을 오늘의 로마서 독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그 희망은 바로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임을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에서 힘주어 강조합니다.

그리고 사도 바오로의 그 희망이 바로 사제 김대건의 희망이었음을 우리는 조선의 첫 사제가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옥중에서 남긴 서신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간과 장소는 달랐지만 바오로 사도와 안드레아 사제는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고, 따라서 무엇을 위해 죽을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안드레아 사제의 그 희망이 아마도 오늘의 교회의 희망이기에 오늘 우리는 그의 죽음을 순교라는 이름으로 기념할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희망을 지키고 간직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울 것인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오늘의 복음에서 예수는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이 받을 박해를 예고하십니다. 하지만 더 나아가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는 희망도 역시 남기십니다. 이 말씀은 박해와 구원을 시간적으로 배열하고 있지만, 즈카르야 예언자와 바오로 사도 그리고 안드레아 사제를 기억해 보면 그들은 이미 죽음의 굴레로부터 해방된 구원을 살고 있었음을 느끼게 됩니다.

언젠가 그날이 오면 우리도 역시 그 마지막 길을 가야함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하느님께서 “보시고 물을” 것입니다. 너희는 무엇을 위해 살았느냐고… 아니 안드레아 사제를 기억하며 읽는 오늘의 말씀안에서 벌써 우리에게 묻고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또 죽어가고 있냐고.

▶ 최승정 신부
  | 07.03
459 15.6%
지난 5월 제주교구로 성지순례 갔다가 용수성지에 들렸습니다. 성지 마당에는 작은 목선 하나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이 배는 길이 13.5미터, 너비 4.8미터로 한국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신부님이 타고 입국하신 라파엘 호를 복원한 것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1845년 8월 17일에 중국 상해 금가항 성당에서 조선교구 3대 교구장이신 페레올 주교님에게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주 후에 주교님을 비롯한 13명의 일행과 함께 라파엘 호를 타고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그런 작은 배로 망망대해를 건넌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모험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김 신부님 일행은 40여 일의 항해 도중, 여러 번 폭풍우를 만나 침몰의 위기를 넘기면서 9월 28일에 제주도 용수리 해안에 표착하였습니다.김 신부님은 불과 몇 달 전에도 조선에서 구입한 라파엘 호를 타고 상해로 가는 길에서 그런 고생을 하였습니다. 라파엘 호는 1845년 4월 30일에 제물포를 출발하여 6월 4일, 상해에 도착하였는데, 사흘 동안 밤낮으로 계속된 큰 폭풍우 때문에 김대건 신부님과 동행한 신자들은 죽을 고생을 하였던 것입니다. 신부님은 공포와 절망에 사로잡혀 어찌할 줄 모르는 신자들에게 성모님 상본을 보이면서 믿음을 잃지 말라고 계속 격려하셨다고 합니다.

사실 성 김대건 신부님의 생애는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1836년 4월, 15세의 나이로 모방 신부님에게 세례를 받고 신학생 후보로 선발되어 그해 12월 고국을 떠나 다음해 6월, 마카오에 도착하여 사제수업을 시작한 이래로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실 때까지 수고와 어려움으로 점철된 삶을 사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처형 직전에도 군중을 향해 이렇게 호소하였습니다. “나는 천주를 위해 죽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죽은 후 행복을 찾으려면 천주를 믿으시오.”

고난으로 점철된 삶에서도 김 신부님의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조선교회에 대한 사랑은 결코 꺾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굳건한 믿음과 사랑은 성령의 선물입니다. 성령께서는 믿는 이들의 마음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주시어 환난 중에도 인내와 끈기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게 해주십니다.(제2독서) 또한 예수님께 대한 충실 때문에 박해받는 이들에게 해야할 말을 일러주십니다.(복음) 지금 우리는 과거처럼 박해를 두려워할 필요 없이 신앙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에 대한 도전은 황해의 노도처럼 거세고, 온갖 유혹은 보이지 않는 오랏줄처럼 우리를 옭아매고 있습니다. 한국의 사제들이 더욱더 성령께 의탁하면서 김대건 신부님께 전구를 청하여 굳건한 믿음과 사랑으로 무장하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서 신앙을 위협하는 거센 파도와 힘차게 싸우고 교묘한 유혹의 올가미를 결연하게 벗어던지며 주님의 복음을 확신 있게 선포하면 좋겠습니다.

<서울대교구 손희송 신부>
  | 07.06
459 15.6%
[서울] 착한 목자 성 김대건 신부님

---------------------------------------------

예수님은 ‘양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놓는’(요한 10,11) 착한 목자이십니다. 그분은 당신을 닮은 목자를 보내주시어 교회를 보살펴주십니다. 착한 목자는 주님께 대한 굳건한 믿음에서 그분의 사랑을 신자들에게 전합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도 그런 착한 목자셨습니다.

김 신부님은 1836년 4월에 15세의 나이로 모방 신부님에게 세례를 받고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그해 12월 고국을 떠나셨습니다. 먼 길을 걸어 다음 해 6월 마카오에 도착, 사제 수업을 시작하여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실 때까지 수고와 어려움으로 점철된 삶을 사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오늘 제1독서의 즈카르야 예언자처럼 하느님께 대한 굳건한 믿음과 충절로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믿음을 지키려는 이들을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성령을 통해 도움을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믿는 이들의 마음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주시어, 환난 중에도 인내와 끈기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게 해주십니다(제2독서). 또한 성령께서는 주님께 대한 충절 때문에 박해받는 이들에게 해야 할 말을 일러주십니다(복음).

김대건 신부님도 성령의 도움으로 그때그때 필요한 말씀을 하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혹독하게 문초하는 이들을 미워하지 않고 축복을 빌어주셨습니다.

“관장께서 내가 천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형벌을 당하게 해주시니 관장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 천주님이 이런 은공을 갚고자 당신을 더 높은 관직에 올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처형 직전에는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의 길로 이끌려는 마음에서 이렇게 호소하셨습니다.

“나는 천주를 위해 죽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죽은 후 행복을 찾으려면 천주를 믿으시오.”

주님께 대한 믿음과 충절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사랑을 실천했던 김대건 신부님은 모든 신자들, 특별히 그분을 주보로 모시는 사제들에게 모범이 되십니다.

현대인들은 자아성취에는 열을 올리지만, 자신을 내어놓고 바치는 것은 많이 꺼립니다. 그래서 자신을 내어놓은 사랑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본보기가 어느 때보다 필요합니다. 사제들이 그런 본보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성인 교황 바오로 6세가 1970년에 자신의 사제 수품 50주년을 맞아 바친 기도를 함께 바쳐 봅니다,

“오소서 성령님,
하느님의 백성을 돌보는 사제들에게 넓은 마음을 주소서.
침묵 가운데 힘차게 타이르시는 주님의말씀을 귀담아들으며,
온갖 불미한 야심과 덧없는 인간 경쟁을 전혀 모르는 마음,
거룩한 교회만을 걱정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 보려는 넓은 마음을 주소서.
어떠한 희생이 요구되더라도 끝까지 항구하며,
그리스도의 심장과 고동을 같이하고,
겸손과 충실과 용기로 천주의 뜻을 실천하며,
거기서 유일한 행복을 찾는 넓고 강한 마음을 주소서.”

-------------------------------

서울대교구 손희송 주교
2020년 7월 5일 서울대교구 주보에서
  | 07.03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510   [수도회] 참 보화를 얻기 위해 썩어 없어지는 밀알  [5] 198
509   [청주/수원] 죽으면 열매를 맺는다  [3] 164
508   [인천/의정부/서울] 이웃과 함께하는 삶  [3] 155
507   (홍)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8월 10일)독서와 복음  [10] 162
506   [대구/전주/춘천] “너는 이것을 믿느냐?”  [3] 1685
505   [수도회] 깨지고 금간 항아리  [8] 1897
504   [수원/부산]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5] 1587
503   [인천/의정부/서울]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간직합시다.  [4] 1580
502   (백) 성녀 마르타 기념일 (7월 29일) 독서와 복음  [10] 1943
501   [수도회] 윗자리는  [11] 1884
500   [전주/대구/부산] 주님을 향한 열정의 사도 야고보  [3] 2368
499   [춘천/수원/청주] 남을 섬길 줄 아는 사람이 될 때 모든 것에서 자유  [6] 1955
498   [인천/서울/의정부] 욕심  [9] 2023
497   (홍) 성 야고보 사도 축일 (7월 25일) 독서와 복음  [10] 1614
496   [수도회] 성인들의 삶은 우리를 성덕으로 부르는 강한 초대장  [6] 1668
495   [부산/마산] 주님의 목소리를 귀 기울려 듣자  [3] 1731
494   [서울/수원/의정부] 예수님을 간절히 사랑했던 여인, 부활의 증인이 되다  [5] 2005
493   [청주/춘천] 사랑의 방식  [6] 1754
492   [대구/전주] 라뽀니 선생님  [4] 1633
491   [인천] '바쁘다’라는 말을 하지 맙시다.  [4] 1806
1 [2][3][4][5][6][7][8][9][10]..[26]  다음
 

 

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05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