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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받을 것이다
조회수 | 2,504
작성일 | 08.07.04
‘나비효과’라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쪽에서 나비의 날개가 팔랑거리면 세상 저쪽에 태풍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것이 군대에서도 행군을 하면 앞에서는 좀 빨리 걸을 뿐인데 뒤에서는 계속 뛰게 되는 것입니다.

또 고속도로에서도 막히는 지점도 아니고 차도 많지도 않은데 어느 부분에서 정체가 되는 경우, 그 이유는 그 전에 어느 차가 한 순간에 속도를 늦춘 것에 대한 결과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세상은 서로 유기체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 사람의 고통이나 또는 행복은 단지 그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위에 많은 사람의 고통과 희생과 또는 기도와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는 천주교의 교리는 이런 자연법을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까지 연결시킨 영적인 법칙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김대건 신부님의 순교라는 이 결과는
자신의 공로나 의지의 결과가 아닌 여러 사람의 합동작품임을 말하고 싶습니다. 특히 그 사제의 부모님의 기도와 희생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이 자라는 곳은 진정 가정이며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이에게 하느님을 가르쳐주는 첫 번째 교사이기 때문입니다.

아들 대건을 15세에 떠나보낸 어머니인 우르술라는 거지처럼 살았다고 했습니다.
아버지 제준 이냐시오도 옥에서 순교했습니다. 즉, 김대건 신부님의 이 열렬한 신앙심과 죽음과 고통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그 마음은 아마도 어머니 아버지의 열렬한 기도와 희생의 역할이 톡톡히 했다고 확신합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김대건 신부님의 영광과 성공(?)을 찬양하지만 그 뒤에는 신부님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었던 부모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마치 아우구스티누스 성인 뒤에 어머니 모니카 성녀의 기도가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뒤에는 예리한 칼에 마음이 찔린 동정 마리아의 순결한 눈물이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전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녀들에게 신앙을 가르쳐주십시오. 만약 우리가 믿는 바대로 그리고 교회가 가르치는 대로 죽었는데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우리의 자녀들에게 천국을 주는 사람도 부모요 지옥으로 이끌 수 있는 것도 부모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부모님들은 일 순위가 공부인 듯합니다. 공부를 위해서라면 신앙은 잠시 접어두는 것이 당연시 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만약 죽었는데 정말 우리가 믿는 대로 지옥이 있다면 그리고 나의 부주의와 소홀한 탓으로 내 자녀가 거기로 가게 된다면 ‘미안하다. 얘야. 정말 지옥이 있을 줄은 나도 몰랐다. 나도 긴가 민가 했는데 정말 있을 줄 몰랐네.’ 이렇게 말할 것입니까? 정말 천국이 있다면 그 천국을 주는 사람은 예수그리스도가 아니라 다름 아닌 그의 부모일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를 잘 만나야 된다는 말이 맞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과 고통을 견디는지는 부모를 해본 사람이 더 잘 알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모님의 구원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닌가도 생각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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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이승제 세례자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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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견디는 자 구원을 얻는다

김대건 신부님은 한국인 최초의 사제요,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성인이십니다. 그분께서 어디에서 태어나셨고, 어떻게 사셨으며, 어떻게 돌아가셨고, 어떻게 성인이 되셨는지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서 순례를 떠납니다.

그분은 어디에서 태어나셨을까요? 그분은 1821년 8월 21일에 충남 당진의 솔뫼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의 아버지는 김제준(이냐시오)이었고, 그분의 어머니는 고 우르술라입니다. 그분의 가족들은 종조부 때부터 신앙을 받아들였으며, 그분은 신앙인의 가정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분은 어디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셨을까요? 그분은 골배마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셨습니다. 그분이 7살 되던 해인 1827년에 정해교난이 일어났습니다. 박해를 계기로 그분의 가족들은 골배마실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1836년 4월에 용인의 은이공소에서 모방 신부님에게 세례를 받으셨고, 7월에 모방 신부님에게 신학생 후보로 선발되셨습니다.

그분은 어디에서 공부하셨을까요? 그분은 마카오와 마닐라에서 공부하셨습니다. 모방 신부님은 1836년 12월 3일에 김대건(안드레아), 최양업(토마스), 최방제(프란치스코)를 선발하여 정하상(바오로) 등에게 부탁하여 마카오에 있던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로 보냈습니다. 그들은 1837년 6월 7일에 마카오에 도착합니다. 마카오에서 민란이 일어난 탓에 두 번에 걸쳐 필리핀 마닐라에서 생활한 것을 제외하면 마카오에서 신학공부를 하셨습니다.

그분은 어디에서 사제품을 받으셨을까요? 그분은 만주에서 부제품을 받으셨고,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은 1844년 12월 15일에 부제품을 받고, 세 차례나 조선에 입국했으며, 1845년 4월 30일에는 선교사 영입을 위해 현석문(카를로) 등 11명의 교우들과 함께 제물포를 출발하여, 6월 4일에 상해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8월 17일에 금가항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님에게 사제품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은 사제가 되어 어디로 들어오셨을까요? 그분은 나바위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분은 사제품을 받고, 1845년 8월 31일에 페레올 주교님, 다블뤼 신부님과 11명의 교우들과 함께 상해를 출발하셨습니다. 그리고 거센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9월 28일에 제주도의 해안에 닿게 되셨고, 10월 12일에는 강경부근 나바위라는 교우촌에 닻을 내리게 되셨습니다.

그분은 어디에서 체포되셨을까요? 그분은 순위도에서 체포되셨습니다. 그분은 주교님의 지시에 따라 서해 해로를 통한 선교사 입국로를 개척하기 위해 1846년 5월 14일에 교우들과 함께 마포를 출발하여, 해주 연평도로 가서 중국 배에 서한과 지도를 전달하고 오다가, 6월 5일에 순위도 등산진에서 체포되셨습니다.

그리고 6월 9일에는 해주 감영으로 압송되셨고, 6월 21일에는 서울 포도청으로 이송되셨습니다.

그분은 어디에서 순교하셨을까요? 그분은 1846년 9월 16일에 한강물이 굽이쳐 흐르는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그분은 돌아가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천주를 위하여 죽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내게 시작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죽은 뒤에 행복하기를 원하면 천주교를 믿으십시오.” 그분은 구원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그분은 어디에 묻히셨을까요? 그분의 시신은 왜고개에 가매장되었고, 후에 미리내로 이장되었습니다. 순교 후 서 야고보 등이 시신을 홑이불로 싸서 왜고개에 가매장했다가 40일 후에 이민식(빈첸시오)에 의해 미리내로 이장되었습니다.

그분의 유해는 어디에 모셔졌을까요? 지금 그분의 유해는 성직자들의 요람인 혜화동 가톨릭대학교 성당에 모셔졌습니다. 1901년 5월 21일에 무덤을 발굴하여 그 유해를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로 옮겨 안치했습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1950년 9월 28일에는 밀양성당으로, 1951년에는 혜화동 소신학교로, 1960년 7월 5일에는 혜화동 가톨릭대학교로 옮겨졌습니다.

그분은 어디에서 성인이 되셨을까요? 여의도공원에서 성인으로 선포되셨습니다. 그분은 순교한 지 11년 후인 1857년 9월 23일에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가경자 칭호를 받게 되셨고, 1925년 7월 5일에는 복자위에 오르게 되셨으며, 1984년 5월 6일에는 여의도공원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으로 선포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의 첫 자리에 올렸습니다.

아픔을 참고 견디는 영혼은 아름답습니다. 그러기에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마태오 10,22) 크게 참는 사람만이 큰사랑을 할 수 있고, 큰사랑을 하는 사람만이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머무셨던 자리가 거룩한 땅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성지를 순례하며 그분의 큰 뜻을 기립니다.

손용환 신부
  |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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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오늘 왜 모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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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고 당부하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걱정을 머리에 이고 살아갑니다. 아플까
걱정이고, 재산이 많아도 걱정이며, 혹시나 불행이 찾아들까 걱정합니다. 요즘에는 나라 걱정, 코로나19 걱정, 거기다가 야구 걱정까지, 온통 걱정뿐이니 참으로 큰일입니다. 이는 우리가 사랑이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간다는 본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음, 음식의 본질이 뭘까요? 플레이팅일까요, 아니면 맛일까요? 당연히 맛이지요.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보면 자꾸 화를 내는 백종원 씨를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그 사람은 스스로 요리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유명한 조리학과를 나오지도 않았지요. 그런데도 음식에 대한 한 마디 한 마디에서 뭔가 신뢰가 느껴집니다. 그건 그가 살아온 삶의 태도 때문입니다. ‘음식=맛’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본질을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맛만 따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의 삶도 그러합니다. 신부님은 오직 이 땅에 예수님의 사랑이 퍼져나가는 것에만 전념하셨습니다. 솔직히 우리 기준에서 마냥 행복한 삶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신부님이 이 고단한 삶을 기꺼이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이 나라 조선팔도에 예수님의 사랑이 가득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사랑 한마디를 남기기 위해 당신의 목숨까지 기꺼이 바치셨던 주님의 삶, 그 본질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주님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자신을 사랑할 줄 압니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세상을 사랑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행동합니다. 김대건 신부님을 비롯한 우리 신앙의 선조들 역시 보다 좋은 세상을 위해 이 땅에 주님의 사랑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사명이 우리에게로 이어졌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이 귀한 휴일에 성당에 왜 모이셨습니까?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걱정을 떨쳐버리고 싶어서? 아닙니다. 사랑이란 한마디 말을 당신의 온 삶을 통해 보여주신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서입니다.

아직 사랑이란 말이 어렵다면, 그저 좋은 말을 건네는 것, 그리고 남들이 꺼리는 일을 웃음 지으며 행하는 것,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자랑스러워하고 언제 어디서든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 이것이면 충분합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본질 안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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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김안식 세례자 요한 신부
2020년 7월 5일 군종교구 주보에서
  |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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