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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성 김대건 신부의 순교 영성
조회수 | 3,792
작성일 | 08.07.04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1846)는
참으로 놀라운 순교영성으로 사즉생(死卽生), 즉 죽으면 사는 길을 온몸으로 사신 큰 모범을 보이셨다.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가 9,23)라는 성경 말씀대로, 그는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軍門梟首刑)으로 순교함으로써 순교영성의 꽃과 향기를 온누리에 피우셨다.

소년 김대건은 16살 되던 해인
1836년 부활절에 은이공소를 방문한 모방 신부로부터 신학생 후보로 선발되었다. 그의 순교의 여정은 처음부터 예상되었다. 최양업 토마스,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고국을 떠난지 15개월 만의 일이다. 중국 마카오 유학 중에 함께 갔던 동기 최방제 신학생이 열악한 환경에서 열병으로 죽었는데 인정 많던 김대건은 찢어질 뜻 가슴이 아파 목놓아 통곡하여 울다가 실신하기도 하였다.

이후 철학과정을 마치고 신학과정을 마친 1844년,
24살에 김대건은 중국 길림성 큰 도시 장춘에서 서북쪽으로 약 75리 정도에 위치한 소팔가자(小八家子)에서 최양업 토마스와 같이 부제서품을 받았다. 다음 해에 김대건 부제는 25살이 되던 해인 1845년 8월 17일에 중국 상해 연안에 있는 17세기 명나라 숙종 때 중국 화동지역 최초로 건립된 성당인 금가항(金家巷) 천주당에서 페레올(1808-1853) 주교로부터 사제서품을 받았다.

1846년 6월 5일, 26살에
김대건 신부는 지금의 연평도에서 동력선으로 한 시간 걸리는 지금의 해주 서쪽의 순위도(巡威島) 창바위에서 체포되어 해주감영으로 압송되었고 곧바로 서울 포도청으로 이송되었다.
  
결국, 김대건 신부는
40여 차례에 걸쳐 고통스런 문초를 받았는데 8월 말에는 페레올 주교에게 마지막 서한을 보냈다.

"우리 종교는 천주를 공경하라고 가르치고 나를 영원한 행복으로 이끌어 갑니다.… 저희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거룩한 이름을 증명할 힘을 저희들에게 주실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천국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이어서 사흘 뒤, 8월 29일에 김대건 신부는 조선 교우들에게 마지막 하직인사를 하는 편지를 보냈다.

"제발 여러분은 덕을 닦아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납시다.… 이 험한 시기에 쓸데없이 걱정을 하지 마십시오.… 비록 여러 사람일지라도 여러분의 마음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애덕을 잊지 마시고 서로 참고 서로 도우십시오.… (추신) 내 죽음은 물론 여러분에게 타격이 될 것이고 여러분의 영혼은 슬픔 속에 빠질 것입니다.… 너무 슬퍼 마시고… 애덕으로 결합하여 있읍시다. 그러면 죽은 다음에 우리는 영원히 결합하여 있을 것이고 영원히 천주 대전에서 누릴 것입니다."

당시 조선교구장이던 페레올 주교는 순교한 김대건 신부에 대해 "열렬한 신앙심, 솔직하고 진실한 신심, 놀랄 만큼 유창한 말씨는 한 번에 신자들의 존경과 사랑을 그에게 얻어주는 것이었다."고 애도하였다.

오늘 복음에서처럼 김대건 신부는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마태 10, 22)이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충실하셨다. 자신의 모든 것, 즉 이기심에 근거한 집착과 소유욕을 철저히 버리신 참다운 자기비허(自己卑虛, 필립비 2,7)를 실천한 순교영성의 모범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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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서동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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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과 응천의 신앙을 배우자

금세기 최고의 역사학자인 아놀드 토인비 박사는 그의 걸작 『역사의 연구』에서 인류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법칙’으로 설명하고 있다. 인류사를 살펴보면 수많은 문명이 등장했었다. 그런데 잉카문명, 마야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등은 그 흔적도 없이 사라진 반면, 중국을 중심으로 한 극동문명, 인도문명, 에집트 문명 등은 지금도 건재하다는 것을 연구한 결과 그는 자연재해나 외세의 침략 같은 도전을 받지 않은 문명은 스스로 멸망해 버렸지만, 오히려 심각할 정도로 도전을 받았던 문명 등은 지금까지 찬란하게 발전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우리 나라와 이스라엘일 것이다. 두 국가는 공통적으로 대륙의 교두보, 즉 침략의 건널목 역할을 하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는 작은 나라이다. 주위의 강대국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영토와 민족이지만 세계적으로 드문 단일 민족을 자랑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남북으로 분단되어 민족적 시련을 혹독하게 치르고 있지만 이것이 오히려 더 위대한 민족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스라엘도 솔로몬의 통치 이후 약 350년간(BC 932-586년)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왕국으로 분열된 시기가 있었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우리민족의 분단현실(55년) 보다 다섯 배 이상 민족적 시련을 겪었던 이스라엘 민족은 로마제국의 등장으로 역사상에서 영원히 사라질 줄 알았는데 2,000년이 지난 다음 다시 지금의 이스라엘 국가를 재건하는 저력을 발휘하였다. 유대인들이 이렇게 강한 민족이 된 것은 그들이 겪었던 고난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나는 토인비 박사의 이론이 우리의 삶 속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믿는다. 언젠가 샘터라는 잡지에서 읽은 글이 생각난다. 젊었을 때 직장생활을 시작한 사람과, 자기의 사업을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흔히 안정된 직장을 갖는 것은 젊었을 때 성공의 기준이다. 그래서 예쁜 색시도 쉽게 얻을 수 있고 일상생활을 안정 속에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중년이 넘어서도 직장생활은 여전히 계속된다. 여유없는 생활은 젊었을 때나 나이가 들었을 때나 항상 그 타령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사업을 위해서 밤잠을 못 자면서 노심초사 고생하는 사람들은 중년이 지나서는 직장생활한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이 안정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린다는 내용이었다.

오늘 한국인 최초의 신부이신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을 기리는 대축일이다. 신부님은 25세의 꽃다운 나이로 군문효수의 형벌로 순교를 당한 분이다. 어린나이에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죽을 고비를 무릅쓰고 여행을 해서 마카오에서 신학공부를 하였다. 조선인으로 최초로 성직자가 되는 것은 큰 영예를 얻는 것이다. 외국에서 공부를 하였으니 마땅히 금의환향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다 갖추었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은 천주교를 사교(邪敎, 못된 종교)라 하여 박해의 시대였다. 조국에서 마음껏 사목 생활을 했어야 하는 신부님은 복음을 전하기도 전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버렸다.

그분은 25세 밖에 살지 않았고 서품받고 일년도 안되어서 죽었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사람들은 신부님의 신앙과 행적을 그토록 높이 우러러보는 것일까? 가장 주된 이유는 그분이 단지 성직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신부님의 짧은 생애가 고난과 시련으로 점철되었기 때문이다. 그분의 인생은 잠시도 편안할 겨를이 없었다. 마치 예수님 처럼 ’인자는 머리 누일 곳도 없다’는 말씀을 몸으로 살아가신 분이다. 죽음을 넘나드는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이었지만 그분은 이에 굴하지 않고 용감히 응전을 하였다. 그분이 당시 조선 교우들에게 남겨준 편지를 읽어보면 그분의 용감한 신앙을 엿볼 수 있다. 나는 그분이 성직자였기 때문에 그런 위대한 신앙을 갖게 된 것만은 아니라고 믿는다. 신부님의 편지가 25세 밖에 안된 젊은이가 쓴 글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놀랍다. 그것은 어떤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굽힐 줄 모르는 신앙을 갖게 된 것은 닥쳐오는 도전을 피하려고 하지 않고 응전을 하는 신부님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왔다고 생각된다.

요새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힘든 일을 시키지 않는다. 이곳 농촌에서도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에게 일을 시키는 부모가 거의 없다. ’우리 부모는 고생해도 너희들만은 편하게 살아야한다’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자식들을 차로 등교시켜주는 광경은 흔한 일이 되었고, 무엇이든지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준다. 빚을 내어서라도 컴퓨터, 핸드폰을 사주고, 몸을 팔아서라도 과외공부를 시킨다. 집에 들어오면 자기방 걸레질 한 번 시키지 않고, 냉수 한 그릇까지 떠다 바친다. 그리고 공부만 열심히 하라는 주문을 한다.

이것은 미친 짓이다. 자식들을 망치는 것이다. 온상 속에서 키운 작물들은 조금만 비바람이 불면 금방 몸살 앓다가 죽어버린다. 우리 자녀들도 이렇게 키우니 조금만 어려운 시련이 닥치면 금방 가출을 하거나 자살을 택하는 것이다. 모두가 부모 탓이다. 그렇게 키운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서 인성교육을 시켜달라고 하니 될 말인가? 엇그제 부산에서 학부모가 초등학교 여교사를 폭행한 사건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그런 부모에게서 자란 자식이 잘될 일이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의 신앙생활을 뒤돌아 보자. 요새 여름이 좀 덥다고 성당에 에어콘을 켜지 않으면미사참례자가 줄어든다고 한다. 도시에서는 옆 본당에서 에어콘을 시원하게 틀어주면 그리로 몰리는 일도 있단다. 겨울이면 성당에 온풍기를 켜놓지 않으면 춥다고 불평이다. 성당 건물도 잘 지어지고, 신부들이 많아지니 편리한 시간에 언제든지 미사참여할 수 있는 시대이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 있다. 외적인 생활이 편하면 편해질수록 내적인 힘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신앙생활을 하면서 편한 것만 추구하면 김신부님 같은 위대한 신앙에 결코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신부님의 신앙과 삶을 묵상하면서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가슴에 담아두자. "우리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해야 한다. 왜냐하면 고통은 이내를 낳고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고 끈기는 희망을 낳기 때문이다"(로마 5,3-4). 이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신앙인들만이 마침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받는 은총을 누릴 수 있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을 기다릴 수 있다는 바오로 사도의 축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황인찬 베네딕토 신부
  |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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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부님의 열정과 철저한 투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라"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축일입니다. 신부님은 충청도 솔뫼에서 1821년 출생하여, 15세가 되던 1836년 멀리 마카오로 유학해 1845년 8월 17일 서품 되어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사제가 되신 분입니다. 서품된 후 약 8개월 동안 활동하시다 체포되어 서품 된 지 1년 1개월이란 짧은 기간 동안 사제로 계시다가 만 25세의 짧은 생애를 사신 분입니다.

이러한 신부님의 생애를 생각할 때 필자의 머리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열정」과 「철저한 투신」이란 두 단어입니다.

물론 「열정」이라는 말과 「철저한 투신」이라는 말은 때로는 비인간적으로 들릴 수도 있고 항상 선일 수만은 없는 단어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단어들이 지향하는 바가 「공동선」이나 인류가 추구해야할 「보편선」 또는 「하느님」을 지향할 때 이러한 단어들은 참으로 가치있는 말이 됩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이러한 가치 있는 단어들을 살지 못할까요? 아마도 자신의 욕망과 게으름, 그리고 주위의 다른 사람들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고자 하는 마음과 내 안의 유혹과 타협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김대건 신부님도 마지막까지 신부님이 선택한 길을 걷지 못하게 하는 많은 갈등들을 경험하였습니다. 혹독하게 가해지는 육체적 고문이 그것일 수 있고, 신부님에게 당근으로 주어지는 세상의 재물과 권력도 그것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이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욕구가 그것이요,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떠오르는 의심과 갈등도 또 하나의 유혹이었을 것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 신 영복씨도 이런 말을 합니다. 고문보다도 침묵과 내면의 갈등이 더 무서웠다고. 아마 신부님도 감옥 안에서 이러한 내면으로부터 틈새를 비집고 올라오는 인간적이고 본능적인 유혹은 쉽지만은 않은 이끌림이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유혹들은 하나같이 견디기 힘든 유혹이었고, 조금만 한눈을 판다면 넘어질 수밖에 없었던 너무나 무거운 것들이었지만 신부님은 그 모든 것을 이겨냅니다.

그 힘은 신부님만이 가졌던 주님께 대한 열정과 철저하고도 타협 없는 투신의 정신, 그리고 오늘 복음 말씀처럼 걱정하거나 두려워함 없이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신앙의 힘이 적절히 조화된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유혹은 마성을 지니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무슨 의미인가 하면 유혹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혹과 대화를 시작하면 이 유혹에서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의미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유혹을 이기기 위해선 단호한 거절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그 유혹과 대화를 시작하면 대부분은 유혹에 넘어 갈 수밖에 없는 것이 보통 평범한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유혹을 이겨 나가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자세가 김 신부님과 같은 자세일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김 신부님처럼 자신의 길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타협 없는 신앙만이 유혹을 이겨 나갈 수 있는 방법입니다.

물론 이러한 삶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삶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매일의 삶에서 연습과 실습 그리고 실패를 통한 자기반성에서 이루어지는 일이지만 말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을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성인으로 모시는 것도 어쩌면 오늘날 이 땅의 사제들이 사제다운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근본적인 것이 바로 신부님이 가졌던 이러한 정신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사실 현대는 김대건 신부님이 사셨던 시대의 국가 권력처럼 직접적으로 하느님을 방해하는 방해물들은 없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아이러니 한 사실은 오늘날 하느님의 길을 방해하는 적들은 그 어느 시대보다 더 교묘해졌다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아름다움과 선의 모습을 띠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인간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기도 하고 때로는 과학과 학문의 이름을 통해 하느님의 길을 방해합니다. 그러기에 자칫하면 무엇이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인지 구분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시대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러기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김 신부님의 열정과 투신을 본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의 길을 방해하는 오늘의 장애물들을 구별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한 것이고 이와 더불어 자신이 선택한 가치에 대한 때로는 맹목적이다 할 만큼 철저한 투신이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홍금표 신부
  |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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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풀밭은 여전히 푸릅니까?

시카고대학 총장이었던 하퍼 박사가 1903년 입학생들에게 행한 연설은, 가장 짧은 명연설로 유명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지금부터 어른의 길로 출발합니다. 인간은 25세가 되면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를 깨달아야 하며, 30세에는 자기 자신의 인생철학이 확립되어야 합니다. 성서에 나오는 사도 바오로는 20대 초반에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달아, 자신을 살아있는 제물로 바치기로 결정했고, 자신의 철학대로 일생을 살았습니다." 이 짧은 연설이, 젊은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하퍼 박사의 말을 성 김대건 신부께서 들으셨다면 “인생은 한 순간이 소중한 것인데, 어찌 중요한 것을 깨닫는데 25년이나 걸려야 하고, 자기 인생철학에 대한 확립을 30세까지 기다려야 한단 말이오"하고 한 말씀 하셨을 것이다.

왜냐하면 김대건 신부는 15세 나이에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달아 신학공부를 하러 만주와 중국 대륙을 거쳐 마카오, 필리핀 등에서 수학하였으며, 25세의 나이에 자기 인생철학의 결론을 순교라는 죽음으로써 맺으신 분이기 때문이다.

나는 10대 후반 아니 20대까지만 해도 나이 사십을 넘고, 오십, 육십이 된 이들을 보면, ‘저분들은 저 나이가 들도록 무엇을 했나?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어찌 세월들을 마냥 흘려 보냈나!'하는 생각에,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잘못하면 나도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저렇게 될지도 몰라'하며, 새 결심을 하곤 했다.

그리고 40세가 되기 전까지는 어디 가서 강론할 기회가 되면 ‘인생 나이 40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링컨 대통령의 말을 되새기며, 잘난 척 떠들어대기도 수없이 했다. 그러나 이제 젊은 시절 내가 손가락질하던 나이에 들고 보니 ‘아! 이래서 인생이 어려운 것이구나'하는 것을 느끼고 배운다.

정말 무엇이 중요한지 깨달을 때

젊은 시절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배웠고, 생각했고, 결심했으면서도 세파에 시달리며 생활하다보니, 그 옛날 생각했고 결심했던 고귀한 목적과 굵은 인생관은 차차 가늘어져, 이런저런 일에 빠져나가고, 그럴싸한 변명으로 현실과 타협하며, 어느덧 입에 풀칠이나 하면서 그럭저럭 적당히 살아가는 인생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발견한다.

소신학교 시절, 손과 발은 물론 귀에까지 동상이 걸려 진물이 흐를 때도, 눈을 지그시 감고 성인 신부가 되어 보자고 마음먹었던 결심들이, 이제는 나의 우스꽝스러운 추억의 멜로디로만 남아 있음을 발견하면서도 놀라워하지 않는다.

성인이 되어 보겠다는 생각, 용감한 순교자의 삶을 살아 보겠다는 결심이 참으로 많이 무디어졌으며 , 찾아볼 수 얼을 만큼 가늘어져 있는데도, 느헤미야 예언자처럼 시시해지고 무뎌진 영혼을 일으켜 세우려 하지 않는다.

이 고민이 촌구석에서 배운지도 듣지도 못하는 부족한 나 하나만의 고민일까?

신앙을 손가락에 끼우는 반지처럼, 눈에 붙이는 닭털이나 귓불에 매달은 굴렁쇠처럼, 액세서리 취급하여 마음대로 끼웠다 뺏다 해도 되는 듯 착각하는 신앙인이, 어찌 나 하나 뿐이겠느냐는 것이다. 우리 교구 사제연수회 때, 가톨릭 신앙생활연구소에서 발표한 통계를 보니, 신자들의 주일미사 참례율이 전체 교우 숫자의 30% 전후이고, 냉담자 및 행방불명된 이들이 30전후이며, 교적은 성당에 두고 간신히 냉담자, 행불자 신세를 면하고 있는 이가 30% 전후라 한다.

나의 신앙은 어디에 서 있는가

나는 어느 부류에 속하는가 하는 것을 따져보는 소극적인 생각을 갖기 이전에, 가져야 될 자세가 하나 있다. 신앙은 무서운 파도에 자신을 내던지고 사나운 맹수의 이빨 앞에 자신의 몸뚱이를 내놓으며, 모진 박해의 칼날 아래 자신의 목을 들이대는 강인하고 끈질긴 결단을 요구하는 것인데, 지금 그대와 나의 신앙은 어디에서 있는가 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박해가 많았던 아프리카에서는, 교우들 사이에 사용되던 암호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은 ‘당신의 풀밭은 여전히 푸릅니까?’ 하는 것이었다 한다. 이 말은 교우들이 박해 때문에 숲 속에 숨어서 기도를 드리곤 하였는데 '당신은 박해 속에서도 꿋꿋하게 숲 속에 숨어서 하는 기도회에 열심히 다니고 있습니까? 하는 뜻이란다. 이 암호인사에서, 우리는 귀중한 신앙생활의 뜻을 배울 수 있지 않겠는가! '당신의 풀밭은 여전히 푸릅니까?’ 하는 질문을 매순간 자신에게 던지며 말이다,

김영진 신부
  |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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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투신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사제가 되신 성 김대건 신부님은 사제품을 받으신 후 약 8개월 동안 활동하시다 만 25세에 순교하셨습니다. 1년 1개월이란 짧은 기간 동안 사제로 살다 가신 이러한 신부님의 생애를 생각할 때 필자의 머리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열정’과 ‘투신’입니다.

물론 ‘열정’과 ‘투신’이라는 말은 때로는 비인간적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단어들이 지향하는 바가 ‘공동선’이나 인류가 추구해야 할 ‘보편선’, 또는 ‘하느님’일 때 이러한 단어들은 참으로 가치 있는 말이 됩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이러한 가치 있는 단어들을 살지 못할까요?

아마도 자신의 욕망과 주위의 다른 사람들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고자 하는 마음, 유혹과 타협하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게으름 때문일 것입니다. 김대건 신부님도 마지막까지 신부님이 선택한 길을 걷지 못하게 하는 많은 갈등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혹독하게 가해지는 육체적 고문이나, 세상의 재물과 권력, 그리고 인간이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생명에 대한 욕구가 그것이요,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떠오르는 의심도 또 하나의 유혹이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유혹들은 하나같이 견디기 힘든 것이었고, 조금만 한눈을 판다면 넘어질 수밖에 없었던 너무나 무거운 것들이었지만 신부님은 그 모든 것을 이겨냅니다. 주님을 향한 열정적인 신앙과 걱정이나 두려움 없이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신앙이 김대건 신부님의 순교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었으리라 생각해봅니다.

▶ 홍금표 신부
  |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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