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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진리위해 몸 바치신 분들
조회수 | 2,676
작성일 | 08.07.04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 그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그것을 다시 묻어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마태오 13, 44)

우리나라의 순교 성인들의 생애를 보면 바로 이 성서구절이 그분들에게 딱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당시 철저하게 유교적 사상과 제도 안에서 살았던 그분들이 서양에서 유입된 천주교 서적들을 접하고는 아무 미련 없이 자신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게 되었으니, 이는 분명 그 속에서 무엇인가 소중한 보물을 발견하였음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과연 무엇이었습니까?

창조주 하느님, 인간의 범죄, 구원자 예수,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 영원한 생명 등 그때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가르침이었습니다.

이 뜻밖의 보물을 발견한 신앙의 선조들은 이 보물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자신의 지위나 명예는 물론, 가족과 목숨까지도 내어던졌습니다. 그들은 그 보물이 진리임을 믿었던 것입니다. “아버지, 이 사람들이 진리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곧 진리입니다. 내가 이 사람들을 위하여 이 몸을 아버지께 바치는 것은 이 사람들도 참으로 아버지께 자기 몸을 바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 17, 17-19)

교회의 역사를 보면 예수님의 이 기도가 세계 도처에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경축하는 안드레아 김 신부님도 그중의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 진리를 이 땅에 널리 전파하기 위하여 사제가 되셨고,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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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윤석주 레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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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채워진 삶

신부가 된지 얼마 안 지나서 그런지 아직은 신부로 사는 것이 마냥 즐겁고 행복합니다. 지난 24일 서품식의 감동은 물론이고, 첫 미사며, 다른 신부님들의 도움 없이 혼자서 집전했던 미사며, 성사들이 여전히 제게는 큰 기쁨이고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신부로 살게 될 제 남은 인생이 언제나 행복과 감동으로 가득하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신부로 산다는 것이 녹녹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시기가 올 것입니다. 강론이 어렵고 힘든 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고, 각종 성사와 사목활동이 제게 큰 무게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강론, 성사집전, 각종 사목활동이 신부에게 있어서 기본이 되는 것일 텐데 말입니다.

이는 비단 사제인 저에게만 다가오는 문제가 아니라, 신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볼 법한 일입니다. 처음 성당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느꼈던 감동들, 고해성사 이후 하느님과 가까워졌다는 느낌들을 통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게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저 습관적으로 성당을 왔다 갔다 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보면, 주일미사조차도 짐이며, 숙제처럼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은 우리가 지켜나가야 하는 신앙인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를 잊고, 행위에만 빠져 지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제들이 성사를 집전하고, 강론을 하고 사목을 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함이고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에 미사를 꼬박꼬박 참여하는 것 역시 하느님의 사랑으로 우리 삶을 채우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규칙을 지키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엄격함이라기보다, 규칙의 동기인 사랑을 바라보는데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김대건 신부님의 삶은 우리에게 이러한 모범을 보여줍니다. 신부님께서는 모진 고문과 형벌 속에서도 무엇을 말해야 할지 걱정하지 않으시고, 그들 앞에 서십니다. 그리고 당신을 찾아올 것이 ‘죽음’이라는 어둠임을 아시면서도 당신께 주어진 것이 바로 하느님의 사랑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셨기에 죽음까지도 담대히 받아들이십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일의 원천과 동기가 하느님의 사랑에 있음을 깨달을 때, 비록 내 몸이 조금 귀찮고 불편할지라도, 때로는 그것이 우리에게 말도 안 되는 것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바라보며, 김대건 신부님처럼 피를 흘리는 순교는 아닐지라도, 하느님과 함께 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땀의 순교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아멘

류동렬 펠릭스 신부
  |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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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어떤 꿈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떠한 꿈을 꾸십니까? 좋은 꿈이요. 아니 잠자리 속에서의 꿈 말고... 우리 자신의 내일을 바라보는 그러한 꿈! 15세의 어린 나이로 국외로 나가 이방인으로 온갖 고초를 겪으며, 26세의 짧은 생애를 마감한 한 청년 사제의 꿈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과연 그분은 어떤 꿈을 그리며 불꽃같은 생애를 살았을까? 궁금해집니다.

다국화된 지금도 외국에 나가 살아가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언어의 차이, 문화의 차이 그리고 이방인에 대한 차가운 시선···등등. 그런데 김대건 신부님은 15살의 어린 나이에 가족들과 고국을 뒤로 한 채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찾아갑니다. 그리고 어렵사리 배우고 얻은 그 진리를 안고 돌아오지만, 채 1년도 되지 못하여 체포되어 투옥됩니다. 그 안에서 심한 고문과 회유를 겪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의지를 끝내 굽히지 않아 군문효수형을 얻어 못다 핀 생애를 마감합니다. 그리스도를 배우고 찾으려는 고난한 유학생의 시절, 그리고 그가 얻은 진리를 채 피우지도 못하고 죽음 앞에 이르러서도 그를 꺾이지 않게 한 그의 꿈, 그의 희망, 그의 내일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어두운 박해의 시대, 좀처럼 걷혀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시절에 그는 죽음 앞에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죽음을 넘어서는 그 희망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요?

조국 조선과 조선의 백성이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 저는 그의 희망, 그의 삶의 목표가 그곳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과 하나가 된 세상, 그 세상은 그가 살았고 만났던 세상을 분명 다른 세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참으로 귀하게 여겨 ‘형제와 자매’라고 부르는 세상, 신분의 귀천을 넘어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라고 불리는 세상. 그 세상은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을 깨닫고 그분과 하나가 됨으로서 펼쳐지게 되는 세상입니다.

그 세상에 대한 신념, 바로 그것이 그를 온갖 역경과 위험, 회유 속에서도 그를 세상과 주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게 한 힘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그 희망과 신념이 한국 교회의 모든 사제들이 걸어가야 할 길을 비추기를 바랍니다.

정준한 바르나바 신부
  |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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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퍼렇게 선 칼날이 가볍게 떨리고 있습니다. “시작하라!” 명령이 떨어지자 날카로운 선을 그리며 칼날이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푸른 섬광이 지나가고 백사장에 붉은 피가 날립니다. 그리고 한 젊은이의 목이 떨어집니다. 이 젊은이는 국법을 어기고 국교인 유교가 아닌 서양종교를 신봉하고 선동했다는 이유로 죽음을 맞이한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였던 것입니다. 1846년 9월 16일 한강 새남터 백사장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1821년 8월 21일 충청도 내포지방 솔뫼에서 태어났습니다. 프랑스 파리외방 전교회 소속의 모방 신부님이 일찍이 어린 김대건의 영특함과 깊은 신심을 알아보고 15세 되던 해에 최방제, 최양업과 함께 신학생으로 발탁하여 1836년 마카오로 유학을 보냅니다. 1845년 8월 17일 각고의 노력 끝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상해 금가항 성당에서 사제로 서품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듬해인 1846년 6월 5일 체포되고 9월 16일 한강 새남터 백사장에서 ‘군문효수’라는 형을 받아 순교를 하십니다. 그는 순교하기 전에 “나의 영원한 생명을 이제 시작하려 합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종교의 자유 속에서 편하게 신앙생활을 해 나갈 수 있습니다. 피를 뿌리는 순교의 시기는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도 순교자와 같은 마음가짐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창조해 내실 때 ‘참으로 보기 좋은’ 모습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생각으로 우리의 참 좋은 모습은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더 높고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외치는 수많은 이기적인 주장과 외침 속에서 변치 않는 참 진리인 ‘사랑’을 통해 올바른 인간의 모습을 지켜내려는 노력이 그것입니다. 노력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바로 ‘신앙’입니다.

참 진리를 이웃에게 전할 때 어떻게 전할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일러주실 분은 ...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예수님의 말씀을 굳게 믿을 때 신앙생활은 이미 시작된 것이고, 신앙은 힘을 발휘해 우리를 움직이게 합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우리에게 올바른 신앙의 표양을 당신 목숨을 바쳐서까지 보여주셨습니다. 이 정성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아버지의 영과 함께 뜨거운 사랑으로 이웃을 향해 나아갑시다.

<의정부교구 김유철 신부>
  |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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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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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신통력을 가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특히 그의 여러 재능 중에는 그가 기도하면 반드시 비가 오게 하는 능력이었습니다. 어느 해에는 오랫동안 가뭄이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심한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달려가서 비가 오게 해주십사하고 청하였습니다. 그가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신통하게도 그가 기도를 시작 한지 얼마안 돼 비가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신기해 하면서 그 사람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한 사람이 신통력을 가진 사람에게 그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대답하였습니다. “특별한 방법은 없습니다. 저는 비가 올 때까지 끝까지 기도할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기도 할 때 자신이 먼저 시간과 방법을 정해 놓고 주님께 그때까지 꼭 그것을 해주셔야 한다고 일방적인 말을 늘어놓고서는 사람들 앞에서는 자신은 열심히 기도했으니 잘 될 것이라고 말을 하곤 합니다.

그러나 기도가 그렇게 이루어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기억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우리의 기도는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보다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더 많은 듯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느님의
방법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시간을 우리가 제대로 알아 듣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에는 우리의 한계가 있습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께 실망하여 하느님을멀리하거나 아주 떠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하느님을 멀리하고 떠난다고 자신의 일이 제대로 될리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순교 선열들
역시도 모진 박해와 시련 속에서 얼마나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을까요? 속으로는 여러 가지 생각이 자신을 괴롭혔을 것입니다. 좋은 방법이든 그릇된 방법이든 하느님께서 자신을 무고하게 박해하고 고통 주는 사람들을 없이 해달라고 무수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기도는 결코 이 세상에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 중에 어떤 분은 하느님께 크게 실망하여 배교를 한 분들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끝까지 주님께 대한 믿음을 꺾지 않고 생명을 잃을 때까지 주님께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시고 인내로서 주님의 말씀대로 구원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 허리에 끼워 못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면
하느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잊어버리고 주객이 전도된 말과 행동을 하면서 자신의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무슨 기도를 하든
항상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겸손하게 주님께 여쭤보아야 합니다.

“주님, 제가 이번에 이런 일을 하려고 하는 데 주님의 생각은 어떠하십
니까?”라든지 주님의 뜻을 겸손하게 묵상하고 나서 주님께서 말씀해 주신 주님의 가르침을 성실히 실행하는 겸손함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말씀하신 성모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기념일입니다. 25세의 짧은 생을 사시다가 천국에 가신 김대건 사제, 오직 하느님 한 분만을 바라보면서 주님의 말씀을 겸손히 마음에 간직하고 사신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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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김경모 야고보 신부
2020년 7월 5일 의정부교구 주보에서
  |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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