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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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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조상들의 기도
조회수 | 2,720
작성일 | 08.07.04
1801년 신유박해는 나라와 교회의 발전을 위해 크게 쓸 큰 인물들을 잃은 박해였습니다. 폐허나 다름없이 된 한국교회는 1811년 교회재건을 시작합니다. 신자들은 교황청에 선교사 파견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기로 하고 먼저 북경주교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그 편지에 이런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세상에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철부지 어린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셨나이다.”라고 말씀하셨나이다. 이 성경 말씀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증명되고 있습니다.」

‘편지’의 성경 말씀은 예수님의 기도였지만 우리 조상들이 예수님을 생각하며 바친 기도였습니다. 조상들은 예수님처럼 하느님을 항상 자기와 함께 살고 계신 부모처럼 믿었습니다. 그런 믿음이 조상들 믿음의 전부였습니다.

효자이신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사랑과 베품과 섬김의 삶을 살으셨습니다. 조상들은 하느님을 지식으로 믿지 않고 예수님의 삶에 감동하여 그 모범을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조상들은 어린 아이처럼 순수하고 맑은 마음으로 부모이신 하느님을 믿고 신뢰하며,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삶을 실천한 효자들이었습니다. ‘편지’는 외교인들이 신자들의 생활에 모두가 하나같이 감동하며 감탄한다고 누누이 말합니다.

김대건 신부의 1845년 4월 6일자 편지에는 조선사회가 천주교를 칭찬하고 있다고 합니다. 포졸들까지 인내와 온유와 겸손을 신자들의 본분으로 알고 있다고 합니다. 아집에서 벗어나지 않고서야 그런 마음이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호랑이 새끼도 호랑이입니다. 우리는 신앙선조들이 남긴 뜻을 계승해야 하는 후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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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김진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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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충신의 죽음

성삼문(1418-1456)은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처형당한 사육신 가운데 하나다. 혹독한 고문을 가하면서 성삼문을 직접 신문하고 처형케 한 세조조차 그의 충절에 감탄하여 “일대의 죄인이요 만고의 충신이다”고 토로하였다. 그러나 만고의 충신 성삼문의 죽음은 그 자신에게는 쓸쓸하고 허망하기 그지없었다. 형장에서 망나니의 칼에 떨어지기 전에 그가 남긴 시 한수를 보면 알 수 있다.

울리는 저 북소리는 목숨을 재촉하는데
돌아보니 해는 서산에 걸렸구나
저승길에는 주막도 없다는데
오늘밤에는 뉘 집에서 묵었다 가리

성삼문이 죽은 지 400여년이 지난 뒤 똑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서 촉망받는 스물 다섯의 한 젊은이도 목숨을 잃었다. 우리가 오늘 축일로 지내며 하느님께 대한 그 충절을 기리는 조선인 첫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1821-1846)이시다.

성인을 취조하던 형리들이 그의 재능이 아까워 하늘의 임금을 배반하기만 하면 조정에 품하여 큰 벼슬을 얻도록 주선하겠다고 약속하였으나 일언지하에 거절 당하였다. 새남터 백사장에서 희광이의 칼을 목에 받기 직전에 그의 죽음을 지켜보기 위해 모인 수많은 사람들에게 성인이 남긴 마지막 말의 요지는 이랬다.

오늘 죽음을 맞는 내 앞에는 영생 영복의 길이 열립니다. 여러분도 나처럼 영생을 누리고자 원하거든 천주께 충성하고 천주교를 믿으시오.

땅 임금에게 바치는 충성과 하늘 임금에게 바치는 충성은 그 끝이 이렇게 다르다. 남왕국 유다의 임금 요아스(기원전 835-796) 시절에 임금이 강요하는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하늘 임금님께 충성한 죄로 처형당하게 된 사제 즈가리야는 죽기 직전에 이렇게 외쳤다. “주님께서 굽어보시고 갚으시리라”(2역대 24,22). 예수님은 당신 때문에 미움과 박해를 받게 될 제자들을 두고 이렇게 약속하셨다.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 어떤 임금의 충신이 될 것인지는 자명하다.

전주교구 주보에서
  |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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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롬보이에서 만난 성 김대건 신부님

필리핀에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주보성인으로 모신 롤롬보이라는 동네가 있다. 이 마을이 성인을 모시게 된 것은 김대건 신부님과 최양업 신부님이 신학생으로 마카오에서 유학할 당시에 민란을 피해 머물렀던 수도원이 있었던 곳으로 밝혀지면서 부터였다. 롤롬보이 본당에서는 해마다 성인의 축일에 맞추어 성대한 축제를 벌이고 성인의 순교신앙을 기리고 있다. 그곳에는 어린 나이에 이국에서 죽음을 넘나들며 성소를 키워가던 신학생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삼키던 ‘망향의 망고나무’가 말없이 서서 역사를 지키고 있다.

필리핀에서 지내는 동안 그곳에서 신부님의 자취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이 나에게는 큰 위안이고 힘이 되었다. 나는 사제가 되자마자 낯선 땅에서 살며 겪어야했던 어려운 시간들 속에서, 사제의 삶을 선택하고 그 선택에 충실하기 위해 견디어 내야 했던 신부님의 인간적인 고통과 고뇌를 생각하며 그 분이 가신 길을 함께 가고 있는 내 자신을 추스를 수 있었다. 지금도 나는 롤롬보이 본당에서 만든 신부님의 상본을 지니고 있다. 그 상본을 바라볼 때마다 사제 이전에 신앙인으로서, 신앙인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천주님을 알아 공경할 줄 아는 삶을 살아갔던 신부님의 삶을 닮게되기를 청하며 산다. 모진 시련 속에서도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영’을 향한 오롯한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영적인 힘을 고하며 산다.

교황님께서는 지난 한 해 동안 바오로 사도를 따라 걸어왔던 영적 여정을 마치며 새로운 한 해를 ‘사제의 해’로 선포하고 사제들의 성화를 위해 기도하고 정진하자고 초대하셨다. 아르스의 본당신부님이셨던 성 요한 비안네 신부님을 사제들의 모범으로 제시하시며 모든 사제들이 비안네 신부님의 삶을 본받기를 권고하신다.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이신 성 김대건 신부님의 축일을 지내며 신부님께서 지니셨던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 모든 사제들의 마음에도 함께 하기를 기도한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김영수 신부
  |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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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님은 1821년 8월 21일 충청도 내포에서 태어나, 만 15세가 되던 1836년 7월 11일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로 떠났으며, 만 24세가 되던 1845년 8월 17일에 상해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그해 10월 배로 나바위에 상륙하여 조선에 입국했다. 그리고 겨우 일 년도 되지 않은 1846년 5월 12일 순위도에서 잡혀 9월 16일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님은 이렇게 겨우 1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을 사제로 사셨는데, 그나마 2개월은 조선에 입국하기 위해 서해 바다에서 보냈고 또 4개월은 감옥에서 지내다 순교했다.

이처럼 사제로서 김대건 신부님의 삶은 짧았다. 그러나 그분의 삶과 말씀은 신자들의 영혼 안에 면면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이는 신부님의 삶이 예수님을 닮았기 때문이다. 신부님은 죽음이 임박한 때에 짧지만 굵은 당신의 삶을 담은 유언의 말씀을 신자들에게 남겨 주셨다. 이는 당시 신자들에게 등불 같은 말씀이었다. 신부님은 유언의 편지에서 교우들을 벗이라 부르며 다음과 같은 내용을‘생각하고 또 생각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벗아,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사람이란 무엇보다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사람을 당신 모상으로 만드신 하느님의 뜻을 생각해야 하며, 우리를 이 세상에 있게 하신 하느님을 알아야만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태어난 의미가 없고 삶은 쓸모없는 일이 될 것이다. 또한 주님의 은총으로 영세 입교하여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하더라도 하느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 이 또한 주님의 은혜만 입었을 뿐 삶은 주님을 배신하는 꼴이 되니 차라리 아니 태어남만 못하다. 농부가 밭을 갈고 씨를 뿌려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은 튼실한 결실을 맺기 위한 것이요 튼실한 결실에 농부는 수고를 잊고 기뻐하듯, 은총과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기르시는 하느님께 마땅한 결실을 맺어 드려야 한다. 그 결실을 맺는 과정에 온갖 어려움이 많겠
지만 이 또한 하느님의 뜻 아닌 것이 없다는 것과 세상의 어떤 풍파든 하느님을 이겨본 것이 없으며 하느님께서 환난 중에 우리와 한 몸이 되어 돌보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환난과 고난의 시기에 오히려 마음을 늦추지 말고 힘을 다하고 역량을 더하여 용맹한 군사가 병기를 갖추고 전장에 있듯이 힘껏 싸워 이겨야 한다. 또한 환난의 시기에 신자들 간에 우애하는 일을 잊지 말고 서로 도와주고 격려해가며 주님의 영광을 위해야 한다.”

당신과 똑같은 환난 속에 있던 그 당시 신자들에게 하신 김대건 신부님의 이 유언의 말씀은 세속의 환난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똑같은 의미와 희망을 주는 말씀이다.“할 말이 무수하되 거처가 타당치 못하여 못한다. 모든 신자들은 천국에 만나 영원히 누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 입으로 너희 입에 대어 사랑을 친구(親口)하노라.”

<전주교구 이영춘 신부>
  |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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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님은 1821년 8월 21일 충청도 내포에서 태어나, 만 15세가 되던 1836년 7월 11일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로 떠났으며, 만 24세가 되던 1845년 8월 17일에 상해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그해 10월 배로 나바위에 상륙하여 조선에 입국했다. 그리고 겨우 일 년도 되지 않은 1846년 5월 12일 순위도에서 잡혀 9월 16일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님은 이렇게 겨우 1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을 사제로 사셨는데, 그나마 2개월은 조선에 입국하기 위해 서해 바다에서 보냈고 또 4개월은 감옥에서 지내다 순교했다.

이처럼 사제로서 김대건 신부님의 삶은 짧았다. 그러나 그분의 삶과 말씀은 신자들의 영혼 안에 면면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이는 신부님의 삶이 예수님을 닮았기 때문이다. 신부님은 죽음이 임박한 때에 짧지만 굵은 당신의 삶을 담은 유언의 말씀을 신자들에게 남겨 주셨다. 이는 당시 신자들에게 등불 같은 말씀이었다. 신부님은 유언의 편지에서 교우들을 벗이라 부르며 다음과 같은 내용을‘생각하고 또 생각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벗아,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사람이란 무엇보다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사람을 당신 모상으로 만드신 하느님의 뜻을 생각해야 하며, 우리를 이 세상에 있게 하신 하느님을 알아야만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태어난 의미가 없고 삶은 쓸모없는 일이 될 것이다. 또한 주님의 은총으로 영세 입교하여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하더라도 하느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 이 또한 주님의 은혜만 입었을 뿐 삶은 주님을 배신하는 꼴이 되니 차라리 아니 태어남만 못하다. 농부가 밭을 갈고 씨를 뿌려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은 튼실한 결실을 맺기 위한 것이요 튼실한 결실에 농부는 수고를 잊고 기뻐하듯, 은총과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기르시는 하느님께 마땅한 결실을 맺어 드려야 한다. 그 결실을 맺는 과정에 온갖 어려움이 많겠지만 이 또한 하느님의 뜻 아닌 것이 없다는 것과 세상의 어떤 풍파든 하느님을 이겨본 것이 없으며 하느님께서 환난 중에 우리와 한 몸이 되어 돌보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환난과 고난의 시기에 오히려 마음을 늦추지 말고 힘을 다하고 역량을 더하여 용맹한 군사가 병기를 갖추고 전장에 있듯이 힘껏 싸워 이겨야 한다. 또한 환난의 시기에 신자들 간에 우애하는 일을 잊지 말고 서로 도와주고 격려해가며 주님의 영광을 위해야 한다.”

당신과 똑같은 환난 속에 있던 그 당시 신자들에게 하신 김대건 신부님의 이 유언의 말씀은 세속의 환난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똑같은 의미와 희망을 주는 말씀이다.“할 말이 무수하되 거처가 타당치 못하여 못한다. 모든 신자들은 천국에 만나 영원히 누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 입으로 너희 입에 대어 사랑을 친구(親口)하노라.”

<전주교구 이영춘 신부>
  |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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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교우들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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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는 감옥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신자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써서 보냈다. 이 편지는 21통에 이르는 김대건 신부의 편지 가운데 유일한 우리글 편지이다. 그는 교우들이 돌려가면서 읽어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옥중에서 이 편지를 썼다. 이 편지의 원래 제목은 ‘교우들 보아라.’라는 제목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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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잘 생각하여 주십시오.

우리들의 주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내려오사 스스로 헤아릴 수 없는 고난을 참아 받으셨습니다. 그 고난으로써 성교회는 세워지고, 이 성교회도 십자가와 많은 고난 속에서 발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성서에 의하면 천주는 우리들의 머리털까지도 일일이 헤아리고 계시어서 한가락이라도 허락하심이 없이는 빠져 떨어져 버리는 일이 없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천주의 뜻에 따라 우리들의 머리 위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편이 되어 세속의 마귀에 대해서 항상 싸워 나갑시다.

이러한 시끄럽고 어지러운 세상이오니, 용감한 군사와도 같이 씩씩하게 무장하고 전장에 뛰어나가 분투하여 승리를 거둡시다. 특히 서로와의 사이에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돕고 서로 베풀어서 천주께서 당신들에게 자비를 내리시고 당신들의 기도를 들어주실 때를 기다립시다.

재앙을 겁내지 말고, 용기를 잃지 말고 천주를 섬기는 데서 물러나지 말고 오로지 성인들의 자취를 밟아서 성교회의 영광을 높이고 주의 충실한 병사이며 참된 시민임을 증명하여 주시오. 사랑을 잊지 마시오.

서로 참고 도와서 천주가 당신들을 불쌍히 여기실 때를 기다리시오. 쓰고 싶은 것은 많으나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생각대로 되지 않으오.

사랑하는 교우들이여!
나도 천국에서 그대들과 같이 만나 영원한 복을 즐기게 될 것을 바라고 있소. 그대들을 정답게 껴안아 주겠소.

다시 한마디 하고자 하오. 이 세상의 일은 모두 천주의 명령에 말미암은 것이오니, 어떻게 보면 상이냐 벌이냐 하는 것 뿐이오. 박해라는 것도 천주의 허락하심이 없이는 일어나는 게 아니오. 마땅히 천주를 위하여 힘차게 참아주시오. 오직 성교회에 평화를 주십사고 눈물로써 탄원하시오.

나의 죽음은 당신들에게 확실히 뼈아픈 일일 것이오. 당신들의 영혼은 슬픔에 잠길 것이오. 그러나 얼마안가서 주께서는 나보다도 훨씬 훌륭한 목자를 주실 것이 틀림없으니 그리 몹시 슬피 마시고 큰 사랑을 가지고 천주를 섬기도록 힘쓰시오.

없음으로써 한 몸 한마음이 됩시다. 그렇게 하면 죽은 후 영원히 주의 앞에서 서로 만나 끝없는 즐거움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요. 나는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이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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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김안드레아 신부
2020년 7월 5일 전주교구 주보에서
  |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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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박해와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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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마태오 10,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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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조심하여라.”라는 말씀은, “사람들의 박해 때문에 신앙을 잃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라는 뜻인데, 오늘날의 상황에 맞추어서, “사람들의 유혹 때문에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라고 바꿔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캉스 철이라서 놀러 가자는 유혹이 많을 것입니다. 놀러 가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닌데, 그날이 주일이라면 죄를 짓게 만드는 유혹이 됩니다. 한 번 정도는 주일을 안 지켜도 괜찮지 않느냐는 유혹, 나중에 고해성사를 보면 된다는 유혹, 주일을 지키지 않는 것이 그렇게 큰 죄는 아니라는 유혹...

“채찍질할 것이다.”라는 말씀은, “고문하거나 협박하면서 신앙을 버리라고 강요할 것이다.”라는 뜻인데,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신앙생활을 뒤로 미루라고 유혹하고, 그래도 신앙생활이 가장 중요하다고 방어하면 조롱하고 비웃고 모욕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증언할 것이다.”라는 말씀은, “박해가 오히려 신앙을 증언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는 “박해를 받으면 오히려 그것을 신앙을 증언하는 기회로 삼아라.”라는 뜻인데,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신앙생활을 뒤로 미루라는 유혹과 압박을 받을 때가 오히려 신앙생활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증언하는 기회가 된다는 말씀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놀러 가더라도 나는 신앙생활을 먼저 하겠다는 강한 태도를 보이면, 비웃음과 모욕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런 일에 굴복하면 안 됩니다. 신앙은 신념이기도 합니다. 그런 일에 꺾이는 신념이라면, 그 신념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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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오 10,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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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부정하고 비웃는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신앙생활을 깎아내릴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에 인간적인 말재주로 대응하는 것은 함정에 빠지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유혹하는 자들은 온갖 궤변과 세속의 이론을 동원해서 신앙인들의 논리를 무너뜨리려고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걱정하지 마라.”라는 말씀은, 세속 사람들의 거짓 이론에 말재주로 맞서지 말라는 뜻입니다. 성령께서 일러 주실 것이라는 말씀은, 이론이 아니라 ‘삶’으로 박해와 유혹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면 성령께서 도와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론보다는 ‘삶’입니다. 신앙은 생활입니다. 우리가 철저하게 신앙인답게 살면, 세속의 어떤 이론도 우리를 공격하지 못합니다. 반대로 신앙인답게 살지 않으면서 말재주로만 대응하면, 헛된 이론과 궤변들을 동원하는 세속의 공격에 금방 무너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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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마태오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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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들이 전부 다 모여서 함께 놀러 가는 상황에서 주일을 지킨다는 이유로 혼자서만 그 모임에서 빠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도 어떻든 주일을 지켜야 한다면서 혼자서만 빠졌을 때, 식구들에게서 받는 공격은 박해 때의 공격보다 더 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박해 때보다도 더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식구들과 함께하면서 신앙생활도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조금만 더 수고할 각오를 한다면 방법은 많습니다. 식구들보다 먼저 일어나서 새벽미사 참례를 할 수도 있고, 피서지 근처의 성당에 갈 수도 있고...... 육신의 편안함을 조금만 포기하면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영혼의 평화를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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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오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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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 것은 박해 가운데에서 가장 큰 고통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박해가 아니라 유혹을 받더라도, 그 유혹을 끝끝내 물리치면 모든 사람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것은 사실상 박해와 같습니다. (유혹도 일종의 박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고 약속하십니다. (이 말씀은 “내가 구원해 주겠다.”라는 약속입니다.)

여기서 ‘끝까지’는 ‘죽을 때까지’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이만큼 했으면 나도 할 만큼 했다.”라고 판단하고 중간에 멈추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립니다. 끝까지 가지 않은 사람은 처음부터 가지 않은 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폭력적인 박해가 없는 지금이라고 해서 신앙생활을 하기가 박해시대보다 더 쉬운 것은 아닙니다. 박해가 있든지 없든지 간에 신앙생활은 늘 어려운 생활입니다. 신앙인을 넘어뜨리려고 시도하는 ‘악의 힘’이 끊임없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니에서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한다(마태오 26,41).”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몸이 따르지 못한다.’라는 말은, 의지가 약해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뜻하는 말인데, 예수님의 뒤를 따르려는 마음은 간절해도 의지가 약해서 실천하지 못하면, 온갖 유혹에 대해서 무방비 상태가 됩니다.

몸이 마음을 따르게 하려면, 즉 간절한 마음 그대로, 강한 의지로 실천하기를 바란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깨어’ 있는 것은 유혹에 대해서 경계하는 것이고, ‘기도’는 성령의 도움을 받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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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
2020년 7월 5일
  |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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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1   [인천] '바쁘다’라는 말을 하지 맙시다.  [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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