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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7월 22일) 독서와 복음
조회수 | 1,530
작성일 | 08.07.20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는 갈릴래아의 ‘막달라’ 출신이기 때문에 ‘마리아 막달레나’ 또는 ‘막달라의 여자 마리아’라 부른다. 창녀라는 전승이 있는 성녀는 자신에게서 일곱 마귀를 쫓아 주신 예수님께 감사하며 예수님을 믿고 따랐다. 성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그 곁을 지켰던 사람들 가운데 한 분이며(마태 27,56),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시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부활하신 날 아침에 무덤에 갔던 세 여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마르 15,47).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뒤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다(요한 20,14-18). 성녀는 성령 강림 후 성모님과 함께 에페소에서 살다가 그곳에 묻힌 것으로 전해진다.--매일미사 2010년 7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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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만나 일곱 마귀에게서 자유롭게 된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따르는 여인 가운데 가장 충실하였다. 막달레나는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있던 여인이며, 부활하신 주님을 가장 먼저 만난 여인으로 묘사되어 있다(루카 8,2; 마르 15,47; 마태 27,56 참조). ‘막달레나’는 갈릴래아 호수 근처 막달라 출신이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그래서 ‘막달라 여자 마리아’ 또는 ‘막달라 출신 마리아’라고 부르기도 한다. 동방 교회 전승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성령 강림 이후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요한 사도와 함께 에페소에서 살다가 그곳에 묻힌 것으로 전해진다.--매일미사 2011년 7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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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의 여러 군데에 나오는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는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루카 8,2)로 소개되어 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는 십자가 밑에(마태 27,56 참조), 예수님의 무덤 곁에 있었던 여인이다(마태 27,61 참조). 또한 마리아 막달레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첫 번째 사람으로(요한 20,11-16 참조),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알려 주었다(요한 20,18 참조).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 시신이나마 모셔 가려 하였던(요한 20,15 참조) 그녀에게서 주님에 대한 극진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에 대한 공경은 12세기부터 시작되어 널리 퍼졌다. ---매일미사 2020년 7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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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3,1-4ㄴ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았네.

신부가 이렇게 말한다.
1 “나는 잠자리에서 밤새도록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아다녔네.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였다네.
2 ‘나 일어나 성읍을 돌아다니리라. 거리와 광장마다 돌아다니며,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으리라.’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였다네.
3 성읍을 돌아다니는 야경꾼들이 나를 보았네. ‘내가 사랑하는 이를 보셨나요?’
4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았네.”

또는

2코린 5,14-17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한 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고 그리하여 결국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우리가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15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살아 있는 이들이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아무도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였을지라도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이해하지 않습니다.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요한 20,1-2.11-18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1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12 들여다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13 그들이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하고 묻자, 마리아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4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15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17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18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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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일곱 마귀에 사로잡혔던 죄 많은 마리아 막달레나를 온갖 죄의 사슬에서 풀어 주시고, 당신의 제자로 받아들이십니다. 그렇지만 그 기쁨도 잠시뿐.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십니다. 그러나 마리아 막달레나는 십자가 곁을 떠날 수가 없었고,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예수님의 무덤으로 갑니다. 그런데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고, 무덤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너무나 놀라서 제자들에게 알립니다. “나는 잠자리에서 밤새도록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아다녔네.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였다네. ……

내가 사랑하는 이를 보셨나요?” 아가에서 사랑하는 이를 찾아 나선 여인의 안타까운 모습과 닮아 있는 마리아 막달레나입니다. 울고 있는 그녀에게 예수님께서는 다정하게 “마리아야!” 하고 부르십니다. 사랑은 이렇게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부활은 이렇게 신비스러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사도들의 모습이 있고, 마리아 막달레나와 같은 모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님을 사랑하느냐, 하지 않느냐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주님을 철저하게 사랑했고, 언제나 그분 안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주님 부활의 첫 증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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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0년 7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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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보듯 마리아 막달레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최초로 만난 여인입니다. 이 여인의 본래 이름은 그때 당시 너무나 흔했던 ‘마리아’인데, 그의 출신 지명을 붙여 ‘마리아 막달레나’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마리아 막달레나가 누구인지 역사 속에서 정확한 신원을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주석가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마리아 막달레나를 예수님의 공생활 동안에 나온 여인들과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매춘부였다가 예수님을 만나 회개한 여인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간음하다 잡힌 여자(요한 7,53), 일곱 마귀가 들린 여인(루카 8,2), 베타니아에서 예수님께 순 나르드 향유를 부은 여인(요한 12,3) 등, 복음 속의 다양한 여인을 대변합니다.

분명한 것은 마리아 막달레나는 세상 온갖 것에 시달리며 순탄치 못한 삶을 산 여인, 죄로 얼룩진 상처와 아픔을 가진 여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고통과 혼란 속에서 주님을 만나, 주님께 은혜를 입었고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한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슬픔, 기쁨, 연민, 사랑, 감사, 회개 등 온갖 종류의 눈물을 다 흘린 ‘눈물의 여인’으로 대표됩니다.

오늘 마리아 막달레나가 주님의 빈 무덤 앞에서 또다시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오늘 마리아가 주님을 향한 그리움으로 흘리는 눈물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서 ‘마지막 눈물’이 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우리의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묵시 21,4 참조).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는 부활의 세계에서, 우리도 언젠가 마리아 막달레나의 얼굴이 되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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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1년 7월 22일
  |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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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전통으로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라자로와 마르타의 동생인 베타니아의 마리아와 동일 인물로 보기도 합니다. 아무튼 확실한 것은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을 따르던 여자이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장 먼저 만났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보다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먼저 나타나셨을까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추측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언제나 예수님의 발치에 있었다’(루카 10,39 참조).

지난 주일의 복음에서 보았듯이, 마리아는 시중드는 데에 분주했던 마르타와 달리 그저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루카 10,42).

여기서 ‘좋은 몫’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깊고 오묘합니다. 그것은 부활 체험의 근본 계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오빠 라자로가 죽었을 때에도 마리아는 예수님을 뵙자마자 그분 발 앞에 엎드려 말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요한 11,32). 또한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카락으로 닦아 드리기도 하였습니다(요한 11,2 참조).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에도 주님 발치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마르 15,40 참조).

그렇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언제나 예수님의 발치에 머물렀고, 심지어는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히신 뒤에도 그 발치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가장 먼저 나타나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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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3년 7월 22일
  |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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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사랑’이 신앙생활에서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싶을 때면 이 여인, 곧 마리아 막달레나가 생각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믿음은 사랑을 통해서만 그 형상을 얻는다.’는 신학 명제를 완성했습니다만, 마리아 막달레나는 사랑만이 죽음마저 이기는 믿음에 이르게 해 준다는 것을 보여 준 생생한 증인입니다.

오늘 제1독서의 말씀은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의 위대함이란 사랑하는 이를 위험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찾으려는 뜨거운 사랑의 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그녀가 사랑한 이는 ‘아무’가 아니라 바로 한 분 ‘주님’이었습니다. 이 사랑은 결코 감상적이거나 유약한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희망이 없어 보이는 곳에서도 그 끈을 놓지 않고, 길을 찾지 못하였더라도 더듬어 끝끝내 찾으려는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은 점점 자라나고 강해지는 사랑이었습니다.

어느덧 마리아 안에는 ‘약함의 힘’이 자라나 있었습니다. 아가의 주인공인, 사랑에 눈떠 사랑이 죽음만큼 강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달은 젊은 여인처럼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가에서 눈물을 흘릴지언정 절망하지 않는 사랑을 알고 있었습니다. 밀라노 대교구장이었던 마르티니 추기경은 아가의 주제를 이렇게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아가는 지칠 줄 모르고 사랑을 찾습니다. 연인의 얼굴을, 그의 현존을, 그 현존의 기쁨을 찾습니다. 아가에서, 우리가 찾는 분이 현존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가 그분을 발견하게 되리라는 흔들림 없는 희망에 기초한 ‘추구’라는 주제를 보게 됩니다. 그 추구에서 생겨나는 ‘기다림’이라는 주제도 보게 됩니다.”

이것은 마리아 막달레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십자가와 돌무덤 앞에서 사랑하는 주님을 어떻게 다시 만날지 그 길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한 번도 놓지 않았습니다. 그 고통, 초조함, 기다림, 슬픔의 시간 동안 주님께서는 그녀의 사랑을 더욱 강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사랑이 얼마나 순수하게 단련되었는지를,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녀를 당신 부활의 첫 증인으로 파견하시는 데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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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4년 7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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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이 곁에 있지 않기에 밤새도록 성읍을 돌아다니며 야경꾼들에게 “내가 사랑하는 이를 보셨나요?” 하고 묻는 여인은 분명 사랑에 눈먼 여인입니다. 아가의 다른 부분에서는 이렇게 길을 돌아다니며 연인을 찾던 여인이 야경꾼들에게 매를 맞고 파수꾼들에게 겉옷을 빼앗기기도 합니다(5,7 참조). 창녀라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여인은 개의치 않습니다. 오로지 사랑 때문입니다!

막달레나 역시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안식일이 지나고 무덤에 찾아갈 수 있는 가장 이른 시간에 예수님을 찾아 나섭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의 부활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리라는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요한 20,9 참조). 이미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았으니, 막달레나에게 예수님은 이제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은 분이시고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부재하시는 예수님을 애타게 찾습니다.

어쩌다가 생각이 나서 한번 보고 싶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순간이라도 곁에 있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마음. 물에 빠진 사람이 공기를 찾고, 목이 타는 사람이 물을 찾는 간절한 마음. 자식의 죽음을 믿지 못하는 어머니의 마음. 이것이 아직 어두운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간 마리아 막달레나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간절함이 있었기에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누구보다 먼저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 들렸던 막달레나가 당신을 스승님이라 부르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당신을 간절히 찾은 그녀를 부활의 증인으로 선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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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5년 7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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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막달레나는 늘 예수님 바로 곁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어 드리고 온전히 죄를 용서받고서는 곧바로 예수님의 시중을 들었던 여인입니다. 예수님께 음식을 대접하는 것보다 그분의 말씀에 더 주의를 기울인 마리아는 주님의 가장 충실한 종이었으며, 부활하신 주님을 제일 먼저 목격한 은총의 여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아버지가 바로 우리의 아버지시며, 예수님의 하느님께서 바로 우리의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예수님께 직접 들은 여인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생애 가장 중요한 순간에 늘 예수님과 함께했으며,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당신 부활의 순간에 그녀와 함께 계셨습니다. 함께 머무는 것은 사랑과 신앙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입니다. 함께 머물러야만 평소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되고, 상대방의 내면적인 모습, 신앙에서의 초월적인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회개의 순간에도 예수님의 발에 값비싼 향유를 남김없이 쏟아 부은 것은 그녀의 전 존재가 담긴 온전한 사랑의 표현이었으며, 그녀의 이런 사랑으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라는 생애 최고의 고백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마음을 돌려서 회개하고, 그분과 함께 머물며 온전히 자신을 바치는 것, 끝까지 실망하지 않고 그분께 최선을 다하는 것, 마리아 막달레나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신앙의 최고 모범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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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6년 7월 22일
  |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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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마리아 막달레나가 점차 예수님을 알아 뵙게 되는 과정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생전에 마리아 막달레나에게서 일곱 마귀를 쫓아내신 적이 있었지요(루카 8,2 참조). 그 뒤 그녀는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며 끝까지 예수님을 지키지 않았습니까?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어 그녀에게 가장 먼저 나타나셨지요. 물론 막달레나는 예수님께서 앞에 계신데도, 알아 뵙지 못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부르시지요.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예수님의 이런 화법은 무엇을 뜻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런 질문을 통하여 상대방이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깨닫게 하시지요. 이어 당신의 정체를 드러내십니다. 이때 요구하시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신앙입니다.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예수님의 질문에 막달레나는 뭐라고 대답합니까?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이처럼 그녀는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예수님께 최선을 다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다른 이들은 모두 도망갔어도 그녀는 예수님에 대한 확신을 버리지 않았지요. 그 결과 예수님의 현존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대하게 되는 그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예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내 앞에 현존하시고 활동하고 계심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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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매일미사 2017년 7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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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막달레나는 갈릴래아의 부유한 고을 막달라 출신 여인이었습니다. 막달레나는 아주 이른 시기부터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로, 전승은 그녀를 ‘사도들을 위한 사도’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주님 부활을 가장 먼저 목격한 여인으로 사도들에게 부활을 증언해 준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었을 때, 주님의 죽음을 목격한 뒤 숨어 있었을 때, 주님을 너무나 사랑하였기에 주님의 무덤으로 나아갔던 마리아 막달레나는 가장 먼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제1독서 아가가 노래하듯이 막달레나는 주님을 잃은 슬픔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밤새도록 사랑하는 이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찾지 못하고 슬피 우는데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슬픔이 앞을 가렸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이 완전히 변화된 몸이었기 때문일까요? 마리아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마리아를 사랑스럽게 부르십니다. “마리아야!” 마리아는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주님께서 부활하셨음을, 그분이 자신 앞에 서 계심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곧바로 제자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립니다.

여인이 처음 부활을 목격하였다는 것은 그 자체로 복음 선포에 약점이 됩니다. 남자 둘 이상의 증언만 인정되던 유다 사회에서 여인의 증언은 아무런 효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는 여인이 부활을 처음 목격하였다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었기에 복음서 속에 마리아의 증언을 담아 두고 있습니다.

마리아에 이어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체험합니다. 그리고 기꺼운 마음으로 자기 목숨을 내어놓았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부활은 제자들의 피를 바탕으로 증언되기 시작합니다. 목숨을 걸고 증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어떤 말보다 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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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염철호 요한 신부
매일미사 2019년 7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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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루카 8,2)는 예수님의 공생활에 함께하였던,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활동에 함께하였을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실 때에도, 예수님을 무덤에 모셨을 때에도 줄곧 함께하였습니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의 삶에서 중요한 때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등장합니다.

또한 모든 복음서가 공통적으로 전하는 것처럼 그녀는 부활의 첫 번째 목격자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가장 먼저 전하는 인물입니다.

이런 내용들을 보면,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충실히 따르던 여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바로 알아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실 때에 그녀는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녀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님 부활을 다른 이들에게 알리는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주님 부활이라는 우리 믿음의 가장 핵심적인 사건은 이렇게 마리아 막달레나를 통하여 전해집니다.

주님 부활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들음’과 ‘기억’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예수님을 기억하고 알아봅니다.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집중할 때,
그분의 말씀을 귀담아들을 때,
비로소 우리 안에 살아 계시고
우리 곁에 서 계신 그분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그 말씀에 응답하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기억해 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로마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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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허규 베네딕토 신부
매일미사 2020년 7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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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3   (백)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9월 29일) 독서와 복음  [9] 2098
502   [수도회] 친교의 삶  [3] 8
501   [수원/전주/부산] 진정한 자유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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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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