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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바쁘다’라는 말을 하지 맙시다.
조회수 | 1,827
작성일 | 08.07.20
아주 열심히 사는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일에 있어서 열심이었지요. 일에 대한 열심뿐만 아니라, 주님께 대한 신앙도 열심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열심한 생활을 보면서 사람들은 커다란 존경을 그에게 보냈고, 그 역시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지나가던 손님이 그를 찾아온 것입니다. 그는 그 손님에게 자기 품안에 있는 ‘열심’을 자랑했지요. 그러자 손님이 그 열심을 보여 달라고 말합니다. 그는 자기 품에서 열심 덩어리를 꺼내 주었습니다. 손님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저울로 그것을 달아보더니 100근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100근이나 된다고 하자 그는 더욱 더 기뻐했지요.

그런데 손님은 그 열심 덩어리의 구성 분자를 분석해서 이렇게 평가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열심 덩어리는 야심이 20%, 의심이 19%, 명예심이 30%, 기타가 28%이나, 예수님께 대한 사랑은 단 3%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열심’이란 것 안에 이렇게 다른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고 하네요.

우리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이야기합니다. 솔직히 대화를 나누다보면 열심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거든요. 하긴 저 역시 늘 ‘바쁘다, 바뻐~’를 외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바쁘게 살면서, 즉 이렇게 열심히 산다고는 하지만 그 열심의 내용이 주님께 대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드러내기 위한 이기적인 ‘열심’은 아니었을까요?

오늘 우리들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기념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으로부터 커다란 은총을 받은 뒤, 예수님만을 따르면서 삽니다. 그 열심은 다른 사람이 따르기 힘들 정도였지요.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도 두려워서 도망갔던 수난의 순간에도 예수님과 함께 그 길을 힘들게 걸어갑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어도, 제자들처럼 골방에 숨지 않습니다. 대신 오늘 복음에도 나오듯이 아직 어두운 이른 새벽에 예수님 무덤을 찾아가는 충성을 보여줍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어두운 새벽에 무덤을 찾아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마리아 막달레나는 여자가 아닙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대한 사랑이 너무나 열심했기에, 그 결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처음 뵙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된 것이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열심’은 100% 오로지 예수님뿐이었습니다. 우리처럼 3%의 열심만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지요. 그래서 그런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열심’은 과연 어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까요?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으면서도, 이 세상 것에만 ‘열심’이 맞추어져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요?

이제는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주님께 초점이 맞추어진 ‘열심’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 곁에 계시는 주님을 뵐 수 있을 것입니다. ‘바쁘다’라는 말을 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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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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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저는 사랑의 본질을 수행의 바탕으로 삼은 한 여인을 만납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사랑했을 터입니다. 그녀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저도 사랑하는 이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어쩌다 눈길을 돌리면 저는 어쩔 줄을 몰라합니다. 마치 사랑이 떠나간 것같이 호들갑을 떠는 통에 마음을 다치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현실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상처와 두려움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여인도 처음부터 예수님을 알아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 여인이 저처럼 호들갑스럽지도 않은데 말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스스로 당신을 보여주기 전에는 아무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여인은 아마도 예수님을 떠나 보내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음이 있어야 부활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어내지 못하면 이별 후에 찾아오는 기쁨을 맛볼 수 없습니다. 그뒤에 비로소 찾아오는 새로운 만남도 이룰 수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슬픔과 아픔만 있을 뿐입니다.

그 여인이 무덤을 찾게 한 힘은 슬픔과 아픔이 주는 사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사랑은 바로 거기서 시작되었습니다. 크고 작은 아픔과 거친 감정의 파도를 겪어내는 수행을 한 후에 찾아오는 사랑이 있었기에 바로 옆에 있는 사랑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을 그 여인과 함께 체험합니다.

정운영 님(인천교구 답동 성당)
  |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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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는 하나의 꿈을 꾸면서 살고 있습니다. 올 여름에 자전거 여행을 하겠다고 결심했거든요. 그래서 어제는 서점에 가서 우리나라 대형 지도도 하나 구입을 했답니다. 그리고 어제 저녁 시간 내내 지도를 보면서 여행 코스를 잡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기분이 좋더군요. 아직 출발도 하지 않았는데, 아직 짐도 꾸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벌써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네요.

그런데 문득 이런 걱정이 앞서는 것입니다. 제가 사실 길치거든요. 그러다보니 지도를 가지고 간다고 할지라도 ‘길을 잘못 들어서면 어떻게 하지? 엄청나게 고생할텐데…….’라는 걱정이 생기네요. 그래서 혹시 차량용 내비게이션이 있듯이, 자전거용 내비게이션이 없을까 라는 생각으로 인터넷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있는 것입니다. 자전거용 GPS 기계가 번듯이 판매가 되고 있더군요.

‘구입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곧바로 그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하고 구입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갈등이 생겼습니다. 결재 내역이 나오면서 가격을 보게 되었는데(이런 기계가 있다는 기쁨에 가격은 보지도 않았었습니다), 글쎄 백만 원을 훌쩍 넘는 고가의 장비였던 것입니다.

‘그냥 질러? 말아?’

오랫동안의 갈등 끝에 문득 ‘내가 왜 여행을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전거 타는 것 자체가 즐거워서 여행을 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라면, 길을 제대로 못 찾아서 목적지와 다른 길로 간다고 한들 그것이 자전거 여행 자체의 기쁨을 퇴색시키는 것은 아니거든요.

저는 길치라는 생각 하나 때문에 자전거 여행의 원 목적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섣부른 판단을 하면서, 목적지에 제대로 가는 것이 원 목적인 것처럼 착각했던 것이지요.

우리의 삶에서도 이런 모습을 취했을 때가 참으로 많았던 것 같습니다.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서 원 목적을 잃어버리고 엉뚱한 모습과 행동을 취할 때가 얼마나 많았나요? 아마 주님에 대해서도 이랬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의 편함을 추구하다보니 이 세상 것들만을 생각했었고, 그래서 우리의 삶 안에서 활동하시는 주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면서 세상 것들만 바라보면서 살았던 것 같네요.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 막달레나가 등장합니다. 그는 비천한 자신을 용서해주신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하고 존경했지요. 그런데 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직접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셔서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하고 물으셨지만, 그녀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너무나 사랑해서 십자가형에 처해서 묻히신 예수님을 찾아갈 정도였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오히려 따지듯이 말합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바로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 날 수 없다’는 잘못된 고정관념 때문이 아닐까요? 즉, 예수님께 대한 섣부른 판단으로 인해서 바로 사랑하는 예수님이 앞에 있음에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지요. 아무리 사랑한다고 할지라도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으면 제대로 알아볼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은 무엇인가? 무엇이 주님을 제대로 못 보게 하는가?”

조명연 신부
  |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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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소를 만드시고 소한테 말씀하시기를 “너는 60년만 살아라. 단 사람들을 위해 평생 일만 해야 한다.” 그러자 소는 60년은 너무 과하다면서 30년은 버리고 30년만 살겠다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로 개를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너는 30년을 살아라. 단 사람들을 위해 평생 집을 지켜라.” 그러자 개 역시도 30년은 너무 과하다면서 15년은 버리고 15년만 살겠다고 말했습니다.

세 번째, 원숭이를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너는 30년을 살아라. 단 사람들을 위해 평생 재롱을 떨어라.” 그러자 원숭이도 15년은 버리고 15년만 살겠다고 말했습니다.

네 번째, 사람을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너는 25년만 살아라. 단 너한테는 생각할 수 있는 머리를 주겠다.” 이 말에 사람은 앞선 동물들이 버린 시간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가지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그래서 하느님께 말하기를 “그럼 소가 버린 30년, 개가 버린 15년, 원숭이가 버린 15년까지 다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25살까지는 주어진 시간을 그냥 살고요, 소가 버린 30년으로는 26살부터 55살까지 소 같이 일만 하고, 개가 버린 15년으로 퇴직하고 개처럼 집 보기로 살고요, 원숭이가 버린 15년으로는 손자손녀 앞에서 원숭이처럼 재롱을 부린다고 하네요.

우스갯소리인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인간들의 욕심을 꼬집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정말로 우리들은 많은 욕심을 가지고 있지요. 심지어 갖지 말아야 할 것까지도 가지려 하기에 이 세상에 싸움과 다툼이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특히 사람에 대한 욕심은 우리들이 반드시 피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몇 년 전부터 그러니까 새벽을 열며 묵상 글이 알려지면서 이상한 분들을 많이 만납니다. 새벽 묵상 글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쓰인 글이라고 말하고, 새벽 방송에 틀어드린 노래가 자기를 생각하면서 제가 특별히 선곡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저는 새벽 묵상 글과 새벽 방송을 누구 한 사람을 염두하고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하면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만의 언어로 이해하기 때문이지요.

자기만의 사람으로 만들려는 욕심입니다. 물론 사랑이라는 이유를 대지요. 그러나 욕심은 결코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기념일입니다. 막달레나는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한 사람이었지요. 그는 정말로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고 한없이 울고 있었지요. 그 순간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인간적인 사랑을 내세워서 예수님을 구속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지요. 바로 세상에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임을 말씀하셨고, 이를 깨달은 성녀는 곧바로 제자들을 비롯해서 세상에 기쁜 소식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내 안에 가지고 있는 욕심을 떠올려 봅니다. 특히 사람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그를 구속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요?

조명연 신부
  |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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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심각한 우울증에 걸리신 분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이 분은 제게 “신부님, 저는 행복을 느낄 수가 없어요.”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어느 순간부터 희로애락의 감정을 느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주 심각한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라고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들 역시 일이 잘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또 성취감도 느끼고 자신감도 갖습니다. 단지 우울증 환자들은 그러한 정서를 오랫동안 간직하지 못하는 것이랍니다. 즉, 즐거운 감정은 금세 잊어버리고, 우울한 감정은 길게 끌고 가는 것이 우울증에 빠진 환자들의 특성입니다. 그래서 이 우울증 환자에게 가장 좋은 치료가 우울한 감정을 줄이고 대신 좋은 감정이 드는 횟수를 늘려 나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감정을 간직하는 시간이 적을 뿐이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사회가 복잡 다양해짐에 따라 이러한 정신적인 아픔을 겪는 분들이 많아집니다. 어쩌면 위의 방법, 다시 말해 좋은 감정이 드는 횟수를 늘려 나가는 것이 이렇게 정신적인 아픔을 겪는 분들에게 반드시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의 대부분은 “다 필요 없어.”라고 자포자기식의 말씀을 하십니다. 즉, 들으려하지 않고 또 행동하려고 하지 않으니 자신의 병이 치료가 될 수 없습니다.

듣는 것은 이처럼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중요한 순간이 있을 때 항상 한적한 곳에 가셔서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셨지요. 공생활 시작 전에 혼자 광야에서 40일간 단식기도를 하셨고, 12제자를 선택하실 때에도 홀로이 기도하셨습니다. 또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직전에 겟세마니 동산에서도 기도하셨습니다.

중요한 순간이 있을 때마다 가장 먼저 행하셨던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 바로 기도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떤가요? 주님도 하신 기도를 제대로 하지 않으려는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는 세상의 일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들이 축일을 맞이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으로부터 특별한 은총을 받은 여인으로 알려져 있지요. 그래서 더욱 더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예수님께서 죽어 무덤에 묻히게 되었지요. 무덤에서 예수님의 시신을 발견할 수 없어 울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라고 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를 못합니다.

무덤 속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누군가 훔쳐갔을 것이라는 세상의 판단만을 내세웠기에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판단만을 내세울 때,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을 수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데 최선을 다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홀로이 조용한 곳을 찾아가 주님께 기도하고 주님과 함께 할 때,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귀한 사명을 받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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