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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한국 순교 성인의 특성
조회수 | 3,756
작성일 | 07.10.04
오늘은 103위 한국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한국 교회는 순교자들을 공경하고 그 행적을 기리기 위해 1940년부터 9월을 '복자 성월'로 지내오다가 1984년 복자들이 모두 시성되던 해에 '복자 성월'을 '순교자 성월'로 변경하였습니다. 순교자 성월은 한국 교회만의 고유한 성월로 신자들이 순교자들의 정신과 삶을 본받아 시대가 요구하는 순교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순교는 자기가 믿는 종교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행위로 어느 종교에서나 최고의 가치로 인정받고 있지만, 한국 교회가 특별히 순교자 성월을 지정하고 신자들에게 순교 정신을 이어받도록 권고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한국의 순교 성인들이 자신의 문화적 배경 위에서 자발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이고 그 신앙에 삶을 일치시킴으로써 순교에 이르게 되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즉 프랑스 선교사를 제외한 한국의 순교 성인들은 선교사들의 오랜 신앙 교육의 결실이 아니며, 격동기의 시대적 변화에 따른 부산물로서 발생한 순교자들이 아니란 것입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이 살아온 그 시대의 삶의 가치관에 천주교 신앙을 접목시켜 시대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야를 발견하고 기쁜 마음으로 확신에 차서 목숨을 바쳤던 것입니다. 그들도 물론 천국을 바라는 희망이 있었고, 하느님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다는 의식이 분명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의(義)를 위해 목숨을 초개(草芥)같이 여기는 전통적인 선비들의 기상(氣像)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순교자 성월에 자주 부르는 '순교자 찬가'에 나오는 '충절(忠節)'이라는 말이 한국 순교 성인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 임금에 대한 절개(節槪)와 의리(義理)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충신을 선비의 이상으로 여기던 시대에 순교자들은 충신이 지녔던 마음으로 하느님을 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순교의 순간에 마치 충신이 자기가 섬기던 임금을 위해 목숨을 바치듯이 이렇게 말하며 순교했던 것입니다. "천지신인(天地神人)이시며, 만물을 조성하시고 상선벌악(賞善罰惡)하시는 대군대부(大君大父)이신 천주를 결코 배반할 수 없습니다."

배운 사람이든 배우지 못한 사람이든 박해시대의 순교자들이 한결같이 자신의 신앙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당당히 주장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신앙이 지식이 아니라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보여줍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이땅의 천주교 신앙은 중국으로부터 한문으로 된 천주교 서적을 전해 받은 유학자들이 그 서적을 학문적 관심으로만 덮어두지 않고 강학회를 통해 토론하고 생활로 실천하는 가운데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농은 홍유한 선생은 한국 교회가 탄생하기 전에 세례를 받지 않았음에도 천주교 전례력에 따라  스스로 신앙생활을 실천한 유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선생은 신앙과 생활이 분리되고 있는 오늘의 신앙인들을 향해 천주교의 교리는 지식이 아니라 실천해야 할 생활지침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깨닫게 해 주시는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순교자 성월에 신앙선조들의 순교정신을 기리면서 자신이 처한 삶의 환경 안에서 신앙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신앙의 자세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처럼 돌 틈을 비집고 자라나는 잡초의 생명력으로 진리를 갈망하며, 먼저 자기를 수양하고 그 수양한 것으로 사회를 유익하게 한다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자세로 살아간다면,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하느님께 대한 충절로 일관된 삶을 살 수 있고, 항상 기쁘고 떳떳하게 신앙생활을 실천하는 자랑스러운 순교자의 후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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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권용오 마티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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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生命) 바꾸기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성 안드레아 김대건과 성 바오로 정하상과 동료순교자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교회의 반석이 된 103위 순교 성인들의 후손들입니다. 우리 신앙 선조들이 무엇 때문에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지키셨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아마도 자기 자신의 생명(목숨)일 것입니다. 그런데 때때로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희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나 뉴스를 접하게 됩니다.

몇 년 전 포항공대 학생 하나가 어린 여자아이를 구하다가 트럭에 치여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은 태어날 때부터 언청이어서 주위 사람들의 놀림을 수없이 받으며 자랐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그 학생의 어머니는 자기 잘못이 크다고 하시며 여러 번 비싼 수술을 하게 했습니다. 마침내 그 학생의 입은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고 공부도 잘해서 포항공대에 입학하게 된 것입니다. 그 학생이 사고가 나기 바로 직전에 서울에 계신 어머니가 어떤 불안한 예감에 가슴이 조이는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고가 났던 그날은 어머니의 생신을 몇 일 앞두고 있었던 날이었고, 그 생신은 또한 그 학생의 생일이기도 했습니다. 아들에게 늘상 미안했던 어머니는 그날까지 한 번도 생일을 지내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몇 일 후 죽은 아들과 자신의 생일을 맞게 된 어머니는 아들이 죽기 전에 예약배달을 시킨 수백송이의 꽃을 죽은 아들의 편지와 함께 받게 되었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생일 선물을 받게 된 것입니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죽은 그 학생은 벌써 몇 년째 장애 아동들을 위한 후원금을 정기적으로 보내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의 동생이 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학생이 자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던 것은 무엇일까요? 차가운 사회의 시선과 놀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 안에 소중하게 간직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 순교 성인들은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쳤으며 또한 부모와 자식의 고통과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아픔을 맛보았습니다. 그 소중한 것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그들은 기꺼이 그 고통을 감수하고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었겠습니까?

오늘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소리 높여 말씀하십니다.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혹 위험이나 칼입니까?”(로마 8,35)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바쳐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보장해 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우리 순교 성인들은 그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기꺼이 고통을 받아 안고 육신의 생명을 바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로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드러나고 또 우리 안에 깊이 새겨 집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기 위하여 감수해야할 고통과 인내는 바로 우리 안에 하느님의 사랑(생명)을 더욱 분명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줍니다. 우리는 그것을 잘 알기에 사람들이 바보스럽다고 놀릴지라도 자신을 희생하며 이웃을 사랑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느낀 사람들은 기꺼이 그것을 얻기 위하여 타인을 위해 희생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순교 성인들이 그랬듯이, 또 자신을 희생하여 아이의 생명을 구한 포항공대 학생이 그랬듯이, 우리도 기꺼이 이웃을 위해 생명을 내어놓을 수 있습니다. 그것으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 것이다.”(루가 9, 23-24)

안동교구 이재학 레오비노 신부
  |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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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꾸만 살고 싶다.' 라는 책을 쓴 안효숙 씨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이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 놓았습니다. 자신의 삶이 너무나 힘들고 고단해서 펑펑 소리를 내서 울고 있으면 자기 딸이 와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엄마, 사람은 슬퍼서 우는 게 아니고 울어서 슬픈 거래. 사람은 기뻐서 웃는 게 아니고 웃어서 기쁜 거래. 그러니까 엄마도 웃어, 그럼 기뻐지니까." 실로 일리가 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요즘 인도에서 운동 삼아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 유행한다고 합니다. 일터에서 가정에서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웃는 운동을 하는데 누군가가 큰 소리로 웃기 시작하면 따라 웃기만 하면 된답니다. 우리도 소리 내서 한번 웃어봅시다. 하하하하하하!!!

아주 예전에 '웃으면 복이와요' 라는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프로그램 이름처럼 웃음이 복을 가져올 만큼 좋은 것이라면 돈도 안 들고 건강에도 좋은 것이니 한번 실천해 볼만한 일입니다. 실제로 웃음이 건강학적으로 좋다는 보고는 여러 가지 실험과 결과들이 입증해 주는 바입니다.

예전에 우리의 신앙 선조들이 그렇게 사셨습니다. 무서운 박해와 고난의 시간들 안에서도 그분들은 웃으며 신앙을 사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도 그분들은 웃으며 천상복락을 기다리면서 휘광이의 칼을 맞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 우리가 웃을 수 있는 최고의 원천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웃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비록 우리네 삶이 웃을 수 없는 여건이고 웃을 거리가 없다 하더라도 예수님 때문에 기뻐하고 웃으며 사셨던 신앙의 선조들, 우리의 순교자들, 성인들을 기억하며 그렇게 살아가도록 합시다. 우리의 순교 성인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어떤 난관과 고통 앞에서도 웃으며 사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일곱 가지 행복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 Happy Look(부드러운 미소) 미소는 모두를 기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둘째, Happy Talk(칭찬하는 대화) 덕담은 좋은 관계를 만드는 밧줄이 된다고 했습니다.
셋째, Happy Call(명랑한 언어) 명랑한 언어를 생활화하면 자신과 상대를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넷째, Happy Work(성실한 직무) 자기가 맡은 바 직무들 안에서 열심과 최선을 다하십시오.
다섯째, Happy Song(즐거운 노래) 조용히 흥겹게 늘 마음 안에서 노래하십시오.
여섯째, Happy Note(아이디어 기록) 떠오르는 생각들을 기록하십시오. 여러분을 풍 요로운 사람으로 만들 것입니다.
일곱째, Happy Mind(감사하는 마음) 불평 대신 감사를 말하십시오.

이것이 일반인들이 말하는 일곱가지 행복입니다. 이런 내용들은 요즘 인터넷을 통해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말이지만 늘 볼 때마다 새롭고 자신을 각성시키는 계기가 되곤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이런 일곱 가지 행복을 누리며, 또 찾으며 살아야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일곱 가지의 행복 위에 최고의 행복을 늘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바로 우리의 하느님께서 계시고 우리의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늘 마음에 두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을 잊어버린다면 아무리 좋은 것도 아무리 좋은 말씀도 우리에게는 모두 다 쓰레기 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순교자들이 그러하셨듯이 웃으며 하느님 안에서 행복을 누리며 사셨듯이, 우리도 그분들의 신앙후손답게 살아갑시다.

오늘 제 1독서에서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라고 지혜서는 전합니다. 또 사도 바오로는 제 2독서에서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라고 말씀합니다. 지치고 힘든 시간들, 외롭고 고통스러운 시간 안에 우리의 주님께서 함께 하여 주심을 믿으며 힘을 내고 웃으면서 주님께서 주시는 행복을 바라보면서 살아갑시다. 그런 우리에게 시편은 이런 격려의 말을 전해 줍니다.

"눈물로 씨뿌리던 이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아멘.
안동교구 차호철 세례자 요한 신부
  |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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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증인들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입니다. '순교'란 말은 '증거'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순교자는 그리스도를 온전히 본받고 증거하기 위해 자기를 바쳐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에 동참한 이들을 말합니다. 한국천주교회는 순교성인 103위 중 33위가 9월에 순교하신 사실을 기억하면서 9월을 순교성월로 삼아 경건한 마음으로 보내고 있고, 특히 오늘을 한국순교자 대축일로 삼으면서 이 땅의 순교자들이 보여주신 놀라운 증거의 삶을 본받고 살아가기를 다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순교자들을 생각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친히 하느님의 외아들로서 아버지를 증거하고 그분께 당신 자신을 바치셨기 때문입니다. 순교가 증거라는 뜻을 지녔다면 예수님은 하느님을 증거(요한 5, 36)하러 오신 분이시며 또한 그분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심으로써 순교의 원형이 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당신 수난을 통하여 보여주신 모습은 모든 순교자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순교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며 공통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자유로운 희생입니다. 순교자들은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봉헌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예수께서 "누가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바치는 것이다"(요한 10, 18)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순교자들은 자유로운 마음으로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바쳐 봉헌하였습니다.

둘째로, 순교자들은 하느님의 뜻을 藍?찾고 그분의 말씀에 의지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수난이 임박하였을 때 겟세마니 동산에서 "아버지,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루가 22,42)라고 기도하시면서 아버지의 뜻을 먼저 찾았습니다. 순교자들 역시 하느님의 말씀인 진리에 온전히 자신을 내어 맡기고 의지하였습니다.

셋째로, 순교자들은 그 어떤 모욕과 고통 속에서도 박해자들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도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 전에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루가 23,34)라고 말씀하시면서 오히려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는 순교의 모범을 보여 주심으로써 모든 순교자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도 순교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나를 박해했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다"(요한 15,20)라는 말씀처럼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 그리고 그 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고 순교하였습니다. 200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만여 명의 신자들이 순교하였고, 그 중에 시성된 성인이 103위가 있습니다. 이 땅의 순교자들도 주님과 마찬가지로 자발적으로 희생의 길을 택하였고, 그 희생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증거하였으며, 온갖 수모와 고통 속에서도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축복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비록 피 흘려 증거하지는 않지만 순교자들을 본받을 수는 있습니다. 우리도 자발적으로 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할 수 있으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따라 기쁘게 살 수 있고, 이웃의 잘못과 실수를 너그럽게 용서하고 기도해 줄 수 있습니다. 이런 삶이 오늘날에 있어 증거의 삶이 아니겠습니까?. 순교는 은총 덕분입니다. 아무나 순교할 용기를 가지지는 못합니다. 육적으로든 심적으로든 자신을 죽이는 일은 하느님의 특별한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만큼 자신을 죽이는 일은 특별한 은총의 결과이며 또한 그 은총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매일 자신을 죽이는 순교적 삶을 통해 하느님의 은총을 드러내는 복된 삶이 되길 다짐해 봅시다.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 것이다."

권상목 요한 신부
  |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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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아버려라

어느 공소에 공소회장님 한 분이 사셨습니다. 뿌리 깊은 천주교 집안에서 자라나 깊은 신심을 가지고 열심히 교회에 봉사하며 살아가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공소회장님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낭떠러지로 굴렀습니다. 구르다가 운 좋게 나무 가지 하나를 겨우 잡아서 낭떠러지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불안하기도 하고 무서운 마음이 들었지만 용기를 내어서 살려달라고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평소에는 기도를 해도 아무런 목소리도 들려주지 않던 하느님께서 공소회장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무 가지를 네 손에서 놓아버려라.” 순간 공소회장님은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말씀을 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나무 가지를 놓는 순간 나는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을 텐데 어찌 나무 가지를 놓으라고 하신담. 그런 생각에 한참을 고민하다가 공소회장님이 다시 하늘을 보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거기, 다른 분은 안 계세요?!” 그 때 갑자기 나무 가지가 부러지면서 공소회장님이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깊은 줄 알았던 낭떠러지가 별로 깊지 않아서 공소회장님은 아무데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공소회장님은 그제서야 하느님께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탁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어떤 것도 믿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낮은 곳에 매달려 하느님을 찾던 공소회장님에게 하느님께서 하셨던 말씀은 “나무 가지를 네 손에서 놓아버려라.”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그 말씀보다는 자신의 판단과 어리석음을 믿었기에 하느님 앞에서 부끄럽게 된 것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셨고, 섭리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가 부끄럽게 여길 때 우리 역시 하느님께서 영광스럽게 오실 때 부끄러운 사람이 되리라는 말씀을 떠올리게 됩니다.

우리 신앙 선조들의 삶은 “놓아버려라.” 하는 하느님의 말씀에 충실하게 응답했던 삶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천주님이시며, 세상의 주인이심을 믿는다는 이유로 많은 박해와 멸시를 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끝까지 하느님과 그분의 말씀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말없이 죽음을 당했던 순교자들이 천상 교회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제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것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에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생명을 주시는 분도, 거두시는 분도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우리가 믿을 때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드리는 기도에 하느님께서는 항상 응답해주십니다. 우리가 끝내 놓지 못하고 발버둥 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시고, 하느님은 “놓아버려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내 눈에는 그것마저 놓아버리면 살지 못할 것 같고, 행복하지 않을 것 같지만 놓아버릴 때 참으로 하느님 앞에서 기쁘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김요한 요한 신부
  |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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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으로 불태운 삶

사랑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한가위 추석은 잘 보내셨는지요? 온 가족이 모여 명절을 지내는 추석은 고유한 그 정신만 남고 가족행사가 되는 것이 요즘의 세태인 듯합니다. 좀 더 가족 간의 정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추석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입니다. 순교자들의 삶은 우리의 신앙여정에 커다란 본보기를 보여줍니다. 또한 그분들의 삶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분들의 삶을 더욱 가까이 하여 하느님의 발자취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의인들의 영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순교자들의 삶이 그렇게 보일 듯합니다. 순교자들의 삶은 현실적으로 참으로 비참하고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독서의 말씀처럼 ‘사람들이 보기에는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지혜 3,4) 있었습니다. 순교자들의 고통은 참으로 큰 고통이었습니다. 그 고통은 승화되거나 치환되지 않습니다. 고통은 고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통도 인간의 희망과 의지 앞에서 넘어설 수 있는 것으로 등장합니다. 그래서 고통스러운 고문과 옥살이를 하였지만, 그들의 눈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희망으로 빛났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순교자들의 삶은 충만하고 복되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는 제2독서의 바오로 사도의 말씀으로 더욱 확신을 가지게 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로마 8,35) 결국 세상의 모든 시련과 아픔은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사랑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확신을 가지게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누리게 될 진정한 삶을 알게 된다면, 순교자 한 분, 한 분의 삶이 얼마나 위대하고 숭고한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인생을 소비하는 사람도 있고, 인생을 충만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복음은 그러한 충만한 삶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24)

하느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세상에 태어날 수 있도록 생명을 주셨고, 세상에서 당신을 찬미할 수 있도록 식견을 주셨으며, 당신을 참으로 인격적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결코 이 세상에 머물러 자신의 안위를 위하여 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사랑을 배워 알아 그 사랑으로 세상을 살아가라는 당신의 뜻에 기초하여 마련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러한 사랑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한국 순교자들의 축일을 지내는 우리는 그분들의 삶을 통하여 전해지는 삶의 열정을 지녀야할 것입니다. 그분들이 생각과 말과 행위로서 불태운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그것을 기억하며 우리 자신의 삶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으로 충만하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이희복 미카엘 신부
  |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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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입니다. 순교자들 대축일을 맞으면서 김대건 신부님의 가계족보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지난 2002년 9월 15일, 김대건 신부님이 태어나신 솔뫼에서 김신부님 집안 신자후손들이 주축이 되어 ‘김해김씨 안경공파’에서 분리 독립하여 ‘천주교성인공파’를 창립했습니다. 천주교성인공파의 파조로는 김진후 비오를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김진후 비오와 김대건 신부님은 어떤 관계일까요? 인터넷 상에서 검색을 해보면 김신부님의 고조부라 하는 곳도 있고, 증조부라고 나오는 곳도 있습니다. 그러나 김신부님의 가계족보를 들여다보면 김진후 비오는 김대건 신부님에게 증조부가 되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1739년에 태어난 김진후 비오는 슬하에 4형제를 두었는데 그 형제들이 김대건 신부님의 조부가 되시는 종현, 택현, 한현, 희현 형제들입니다. 이 형제들 중 둘째 택현에게서 제봉, 제린, 제철 3형제가 태어나는데, 둘째 제린이 바로 김대건 신부님의 부친 되시는 제준 이냐시오입니다. 제준 이냐시오에게서 지식과 난식이 태어나는데 지식이 바로 김대건 안드레아이고, 난식 방지거는 김대건 신부의 동생 되는 분이십니다.

김진후 비오의 족보상 이름은 ‘운조’로 되어 있으며, 김진후 비오가 신앙을 접하게 된 것은 아들들 때문이라고 합니다. 종현, 택현, 한현, 회현 등이 차례로 입교했지만 관직에 있던 운조는 입교를 미루다가 50세 이후 1788년에 ‘비오’라는 영세명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는 1791년 신해박해와 1801년 신유박해 때 여러 차례 체포되었다가 풀려났는데, 마침내 1805년 체포되어 해미로 압송된 후 10년 동안 옥살이를 하다가 1814년 12월 1일 옥중에서 순교하시게 됩니다.

택현은 김대건 신부님의 조부가 되시는 분으로, 내포의 사도로 불리는 ‘이존창’의 형님의 딸 이 멜라리아와 혼인하여 제봉, 제린, 제철 3형제를 낳으셨는데, 고향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1827년 정해박해 때 가족을 데리고 서울 청파동으로 가서 살았습니다. 후에 경기도 용인 한덕골 신자촌으로 피난하여 글방훈장으로 생계를 유지하다, 1830년 잡혀가 매를 많이 맞고 풀려난 후 산중에서 헤매다가 돌아가셨다 합니다.

김제린(제준 이냐시오)은 김대건 신부님의 부친이 되는 분이신데, 택현의 3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셨습니다. 1835년경 박해를 피해 고향 솔뫼를 떠나 경기도 용인 땅 골배 마실에 이주하여 살았습니다. 아버지 택현이 죽은 후 김제준은 노모를 모시고 부인과 함께 농사지으며 살던 중, 서양 선교사가 정하상의 집에 묵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상경하여, 거기서 샤스탕 신부님을 만나 ‘이냐시오’라는 영세명으로 세례를 받게 됩니다. 후에 은이 공소에 와서 회장직을 맡아 교우들을 돌보았습니다. 그 후 1836년 나 모방 신부님이 남부 지방에 가는 길에 은이 공소를 들러서 15세 된 아들 지식(대건 안드레아)을 간택하여 마카오로 신학수업을 보내게 됩니다. 나중 이 사실이 드러나 중죄목이 더해져 심한 고문을 받게 되자 신앙이 흔들렸지만 신자들의 훈계를 듣고 뉘우친 후 마침내 서소문 밖에서 참수치명을 당하게 됩니다. 이 때 그의 나이 44세였습니다.

그 다음 난식 방지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난식 방지거는 형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 후 어머니 고 우술라를 모시고 경기도 용인 골배 마실에서 어렵게 살았습니다. 1864년 모친이 돌아가시고 이어 부인 안동김씨 마저 죽은 후,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이미 큰집 형제들이 가서 살고 있는 전라도 정읍 산내면 먹구리에 가서 혼자 살다가 1873년 자녀 없이 죽게 됩니다.

또 한 가지 우리 안동교구 신자들이 분명히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김진후 비오의 셋째 아들 한현이라는 분이 우리교구 지역 일월산 골짜기 우련전에 와서 신앙생활하다가 잡혀가 순교하신 김종한 안드레아이며 그분이 바로 김대건 신부님의 종조부가 되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족보를 들여다보았는데, 순교자로 이어지는 김대건 신부님의 가계는 그 가문의 영예이자 그 순교자들의 후예로 신앙인이 되어 살고 있는 한국 천주교 모든 신자가정에게 귀감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김 신부님의 가계를 본받아 우리도 우리 가족과 친인척 가운데서 천주교 신자들이 많이 생겨나도록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김 신부님 가계에 대한 묵상이 우리 모두에게 가족과 친인척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래봅니다.

안동교구 김학록 신부
  |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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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들의 유산 : 자유, 평화, 화해

찬미예수님! 형제자매 여러분, 지난 한 주간도 안녕하셨습니까? 9월 순교자 성월을 지내고 있는 교회는 오늘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기념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만여 명이 넘는 순교자들이 계시지만 오늘은 그 중에서도 1984년에 요한바오로 2세 교황님에 의해 성인품에 오르신 103위 순교성인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번 순교자 성월은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의 시복의 은총 속에서 지내는 성월이라 더욱 뜻 깊은 것 같습니다.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은 내년부터 5월 29일에 기념하게 됩니다.

지난 여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124위 순교자들의 시복미사에서 “순교자들의 유산은 선의를 지닌 모든 형제자매들이 더욱 정의롭고 자유로우며 화해를 이루는 사회를 위해 서로 화합하여 일하도록 영감(靈感)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순교자들이 남겨주신 풍요로운 유산을 정의, 자유, 화해 세 가지로 정리를 해 주신 것입니다.

흔히 정의란 ‘그 사람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정당하게 돌려주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나 여러 차원의 자유, 평화, 평등 등 그것이 정신적인 가치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누군가의 몫을 정당하게 인정해주고 보장해주는 것이 정의라는 것입니다. 정의의 뜻이 그러하다면 우리 순교자들은 누구보다도 정의로운 분들이셨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바로 세상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할 몫을 온전히 하느님께 바치셨기 때문입니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마태 22,21)라는 예수님 말씀처럼 순교자들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을 가장 완전한 방법으로 하느님께 돌려드린 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순교자들은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바칠 준비가 되어있었기에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순교자들을 박해하던 이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그들을 회유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재물과 권력에 대한 유혹, 타협과 안락함의 유혹, 심지어 부모들에게는 어린 자녀의 목숨까지 회유의 미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제2독서) 순교자들의 영혼을 옭아맬 수 없었습니다. 순교자들은 참으로 자유로웠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위주치명(爲主致命 ; 주님을 위해 생명을 바친다)”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순교자들을 유혹하던 그 달콤하고도 치명적인 유혹들은 세상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그런 유혹들에 얽매여 헉헉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 순교자들이 얼마나 자유로웠는지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순교자들은 참 화해를 사신 분들이셨습니다. 순교라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것이 아니기에 순교자들 못지않게 배교자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배교자들 때문에 모진 고초를 겪고 목숨까지 버린 이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순교자들은 그 처절한 고통 속에서도 아무도 원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목숨을 다하는 순간까지 남겨진 이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들을 보시며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루가 23,34)라고 기도하신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순교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용서의 기도, 찬미의 노래로 세상과 화해하시고 하느님과 화해하신 분들이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순교자들이 보여준 정의와 자유와 화해의 삶이야말로 이 시대가 지키고 따라야할 유산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갖가지 고통을 만들어 내고 있는 온갖 불의와 얽매임과 증오를 극복해 낼 수 있는 힘이 바로 순교 영성에 있으니, 우리 모두가 “위주치명(爲主致命)”의 마음으로 서로 화합하여 일해야 한다는 초대와 격려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또 피로써 신앙의 유산을 남겨주신 순교 선조들 앞에서 결코 부끄럽지 않는 후손들이 되도록 합시다. 이 땅의 모든 순교 선조들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싸움 치열한 현세의 나그네인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안동교구 김종길 제오르지오 신부>
  |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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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조상님들, 존경합니다.

얼마 전 환자들이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고 편안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호스피스 병동 전문의가 쓴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에 “만약 오늘 밤에 죽음을 맞이한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만약 24시간 만의 삶이 주어진다면 지금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저자는 “평소처럼 맛있는 것을 먹고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만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고 잠을 자듯이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하고 의미 없는 결론이라고 생각했지만, 저도 곧 저자 생각에 동의하게 됐습니다.

아마 책을 통해 이런 고민을 접하지 못했다면 제게 24시간이 남았을 때 용서, 화해, 감사의 인사 등 너무나 많은 것을 정리하려다가 아쉬움과 공포만 느끼며 죽음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이제는 매일 밤마다 죽음을 맞이하고, 아침에는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체험합니다. 이러한 생각이 저를 여유롭고 너그럽게 생활하도록 변화시켰으며, 욕심과 두려움을 내려놓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아마도 신앙 선조들도 이런 삶을 체험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하느님과 만남을 통해 영원한 삶을 믿고 기쁘게 살았을 것입니다. 정하상 바오로 성인께서 쓰신 「상재상서」에는 “옛 군자가 법을 세워 금령을 펼 때 반드시 그 이치가 어떠하고 해(害)됨이 있는가를 알아보았습니다. 무릇 의리에 맞는 것이라면 비록 나무꾼의 말이라도 성인이 반드시 받아들여 내버리면 안 되는 말로 되어 있거늘, 우리나라의 천주성교(天主聖敎)를 금하시는 것은 그 뜻이 어디 있습니까?”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성인의 확고한 신념과 진리에 대한 자신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실 「상재상서」를 자세히 읽기 전에는 우리 신앙 선조들이 죽음의 고통을 당하면서까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은 건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도 있지 않았나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신학문을 통해 사회 지배 계층으로 진출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배경이 있었습니다. 박해 시대가 끝나자 조선 가톨릭 교회는 제주도 신축교난(이재수의 난)에 침묵했고, 또 일제 강점기 동안 제국주의 선교사들과 함께 일제의 침략 행위에도 목소리를 내지 않았으며, 독립운동에 적극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단순하게 한 개인의 삶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성인ㆍ복자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익명의 많은 신앙 선조들은 믿는 바를 실천하기 위해 문명의 이기, 사회적 성공이라는 유혹을 극복하고 외진 산골에서 생활했습니다.

제가 지금 생활하는 경북 상주시 사벌면 퇴강리 지역은 1899년도에 3명의 성인 남자가 세례를 받으면서 신앙촌이 형성된 곳입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2000년도까지 마을 입구 도로가 포장되지 않았던 시골 지역입니다. 앞에는 낙동강이 흐릅니다. 나지막한 야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 사람들이 왕래하기 쉽지는 않은 지역입니다. 하지만 사제 40여 명과 수많은 수도자를 배출한 ‘성소 성지’입니다.

농촌 고령화로 인해 지금은 70명의 주민이 생활하는 조그만 시골 마을이 됐습니다. 주민의 80%가 가톨릭 신자라 마을 잔치는 바로 본당 잔치가 되고 전례 시기에 따라 마을의 행사와 농사가 이뤄집니다.

이곳에서 저는 너무 행복합니다. 페루 산골 지역에서 선교사로 생활할 때는 혼자 미사 준비를 하고(성당 청소, 성가준비 등),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해야 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기쁨과 환희 그리고 주님의 사랑에 대한 감동이 함께해야 하는 미사 시간이 매 순간 고민을 하는 시간이 됐습니다.

이곳에서는 그런 고민과 걱정이 없습니다. 순교 성인들의 후손인 본당 신자분들이 스스로 성당을 청소하고 기도를 바치십니다. 그리고 성사생활을 충실히 하며 떳떳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가십니다. 세상의 성공과 명예라는 가치를 초월하신 교우 분들을 보며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립니다. 순교 성인 조상님들, 존경합니다.

► 2015년 9월 20일 평화신문
► 안동교구 박재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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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새로운 가치를 선택하십시오!

한국천주교회는 18세기말 이벽을 중심으로 한 진보적인 실학자들의 학문적연구를 시작으로 자발적으로 탄생하였습니다. 중국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이 중국의 복음화를 위해 한문으로 쓴 성서와 교리서 또는 윤리와 신학 서적들이 그 당시의 외교 관계를 통해 자연스럽게 조선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서양의 학문과 문물들은 진리를 찾던 조선의 선량한 사람들에게 구원의 빛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생 교회는 신앙의 뿌리를 채 내리지도 못했고 교리교육도 충분하지 않았으며 초기 50년간 성직자 없는 평신도들만의 신앙공동체였습니다. 그러나 초기 교회는 당시의 유교적 국가의 질서와 풍습 및 정치적 불안 등으로 사회적 가치와의 마찰을 빚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1785년부터 1882년 한미수교가 이루어지기까지 100년 이상 계속된 박해로 일만여 명이 순교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은 혹독한 시련과 고통의 칼날과 죽음에도 굴하지 않고 굳건하게 신앙을 지켰습니다. 간난고초 중에도 창조주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유교의 부모 공경과 임금에 대한 충성심에 비교하기도 하며 교회의 가르침을 용감하게 설파하였습니다.

오늘 한국 순교자들의 대축일을 지내면서, 우리도 현대적인 순교자로서 살아가야겠다는 결의를 다졌으면 좋겠습니다. 단지 신앙 때문에 죽었다는 측면에서의 순교자가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선택함으로써 조선시대의 세상 풍조와 다르게 살았던 순교자들의 삶의 모습처럼 살아야겠다는 것입니다. 그 가치가 바로 하느님 나라의 가치인 복음입니다. 한국의 순교자들은 조선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고 꿈을 꾼 새로운 인간의 모범이었습니다. 현세에 갇혀서 살아가지 않고 현실의 그 어려움을 극복해내며 어떤 상황에서도 늘 하늘의 뜻을 찾고 흠숭하며 감사하게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마태오 릿치를 통해 중국에 전래된 가톨릭신앙을 중국인들은 천주님(天主), 곧 하늘의(天) 주인(主)이신 하느님의 뜻인 천명(天命)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순종을 통하여 이루어졌다는 신앙의 신비로 이해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의 뜻을 세상에 펼치시는 천자(天子), 곧 하느님의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조선의 왕은 천명을 받들고 백성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 땅에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실현하는 성인군자(聖人君子)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는 왕권쟁탈전과 탐관오리들의 수탈, 사회적 신분질서의 고착, 탁상공론식의 유학자들의 논쟁 등으로 백성들의 생활은 곤궁하고 절망적이었습니다. 당시의 천주신앙은 선조들에게 있어서는 목마른 사람에게 샘물과도 같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여는 기쁜 소식이었고 새로운 인생관과 세계관을 확립할 수 있었던 꿈을 이룰 희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참 회심자, 곧 참 신앙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복음은 늘상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합니다. 우리는 매일 십자성호를 긋습니다. 무슨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일까요? 자기의 이기적인 욕망과 가치를 버리고 하늘의 뜻을 찾고 행하는데 필요한 십자가를 짊어지라는 말씀이 아닐까요? 그래서 그 십자가는 참 신앙인이 되어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순교자들의 영성이 아닐까요?

우리도 지금 이 시대에 새로운 가치, 곧 하늘나라의 가치를 추구하는 새로운 신앙인이 되어야겠습니다. 비록 갖가지 어려움에 부딪히고 유혹에 빠질 수 있다 하더라도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식별하고 실천하는 하늘나라의 삶을 미리 앞당겨 이 세상에서 살아내는 희망의 신앙인이 되어갑시다.

▮ 안동교구 정 일 가브리엘 신부 : 2016년 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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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일상의 삶 속에서 주님을 증거하며 삽시다.

오늘은 한국의 첫 사제요 순교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동료순교자들을 기리며 경축하는 날입니다. 순교의 삶을 산다는 것은 자신을 버리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는 가시밭길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1)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이 바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비롯한 우리의 신앙선조들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15세 때 프랑스 선교사 모방신부님께 영세를 받았으며, 모방 신부님은 똑똑해 보이는 김대건을 최방제, 최양업과 함께 중국 마카오 신학교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7개월 만에 2만2천리 거리인 마카오에 도착했습니다. 언어가 다르고 음식이 다른 나라에서 8년을 수련 받고, 24세의 젊은 나이에 꿈에 그리던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어서 빨리 고국에 가서 가련한 양들을 돌보고 싶었지만, 육로나 바닷길이나 다 위험한 상황이어서 기회를 엿보다 어렵게 작은 배 한척을 구해서 그저 바람이 가는대로 몸을 맡겼는데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제주도에 도착했습니다.

전국 각지를 걸어서 순방하며 비밀리에 미사와 성사를 주면서 열심히 사목활동을 하시다가 선교사의 입국과 비밀항로 개설을 위해 백령도 부근을 답사하다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아깝고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서품 받은지 1년 만에 잡혀버렸습니다. 배교의 달콤한 유혹을 받았지만, 끝까지 순교로 믿음을 지켰습니다.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지혜 3,3-5)는 말씀처럼 신부님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고 순교의 월계관이라는 큰 은혜를 받으셨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을 비롯한 우리의 순교자들은 당당히 순교의 길로 나아가셨습니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루카 9,26)

배교의 말 한마디면 살 수도 있었겠지만, 끝까지 주님을 버리지 않았고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포졸들이 “너 천주학쟁이지!”하고 물으면 순교자들은 자신 있게 “예!”라고 당당히 대답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교우여러분! 우리는 얼마나 당당하게 “예”라고 대답하며 살고 있습니까? 주님을 부끄러워하지는 않았습니까? 자신 있게 천주교 신자로서 누구에게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성호를 긋고 있습니까? 누가 볼까봐 옆으로 살피고 난 뒤에 재빨리 긋고 있지는 않습니까?

미사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빠지는 것도 우리의 신앙선조들을 욕뵈는 일입니다. 그분들은 일 년이 미사 한 번 참례하는 것이 크나큰 기쁨이었고 행복이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고해성사 한 사람을 주기 위해 수백리길을 밤새도록 걸어가서 한 마을에 한 두 명뿐인 신자에게 고해성사를 주고 미사를 드리곤 했습니다.

미사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신앙생활을 편한 것만 찾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일을 찾아서 희생과 봉사를 할 수 있어야 하고,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피를 흘리는 순교는 할 수 없지만, 일상의 삶 안에서 순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원한 것을 위해 내 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신자답게 봉사하며 사랑하며 살면서 주님을 증거하는 것이 일상의 삶 안에서의 순교입니다.

우리를 주님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5.39)

그 어떠한 것도 주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면서, 가시밭길을 걸어가신 김대건 신부님과 동료순교자들의 순교정신을 본받으며, 일상의 삶 속에서 주님을 증거하며 세상 안에서 순교하며 살아갑시다.

▥ 안동교구 허춘도 토마스 신부 - 2017년 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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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순교자들의 후손답게 삽시다.

중국에서 들어온 천주교 서적을 읽으며 함께 모여 공부하던 지식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 중 이승훈이 중국 북경에 가 세례를 받고 귀국하여 이벽, 권일신 등 함께 공부하던 이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이로써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습니다. 1784년의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신앙 공동체가 형성된 이 해를 한국 천주교회의 출발점으로 봅니다. 그렇게 보면, 한국 교회는 234년의 역사를 지닙니다. 비록 짧은 역사지만 한국 교회는 특히 초기 역사에 있어 놀랍고 자랑스러운 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한국 교회는 우리 선조들 스스로 복음을 받아들여 시작되었습니다. 세계 대부분의 교회는 선교사들에 의해 복음이 전해지고 그 바탕 위에 교회가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선교사들의 도움 없이 구도자들에 의해 복음이 받아들여졌고 성장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하느님의 섭리이며 은총입니다.

둘째, 한국 교회는 평신도들에 의해 기초가 다져지고 자라났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이들은 양반들이었지만 차차 일반 백성에게, 그리고 천민이라고 불리던 이들에게까지 복음이 퍼져나갔습니다. 당시에는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 자체가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으로 비쳐졌습니다. 다른 신분의 사람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한 자리에 모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제사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습니다. 중국 교회에서 제사를 미풍양속이 아니라 미신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할 때 이 땅에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신자들은 당연히 제사를 거부하였으며 이것이 박해의 또 다른 빌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갖가지 비난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복음이 전해진 지 6년 후에는 신자수가 4천명을 넘어섰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초기 신자들은 한동안 사제 없이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제 없이는 신앙생활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는 사제를 영입하는데 힘을 쏟았습니다. 그 결과 한국 교회가 북경교구에 속하게 되고, 1795년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은밀히 서울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지 11년 만에 사제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 6년 후인 1801년 신유년에 대대적인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때 주문모 신부와 3백여 명의 신자들이 순교하였습니다. 그러나 박해는 복음을 더욱 널리 퍼뜨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박해를 피해 각처로 흩어진 신자들은 피난처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 지역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이에 따라 박해도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그 후 다시 사제를 영입하기 위해 힘을 쏟았는데 앞장서서 애쓴 이가 바로 정하상 바오로입니다. 평신도 지도자 역할을 했던 그는 사제를 영입하기 위해 중국 북경을 아홉 차례나 내왕하였으며, 교회 부흥 운동을 펴나갔습니다. 그 결실로, 1831년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께서는 조선 교구를 설정하고 프랑스 선교사들의 모임인 파리외방전교회에 한국 교회를 맡기셨습니다. 복음이 전해진 지 47년만입니다. 그리하여 1836년 프랑스인 모방 신부가 입국하여 한국인 사제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바로 그해 김대건 등 세 명을 뽑아 사제의 길을 걷도록 중국 마카오로 보냈습니다. 그후 엥베르 주교와 프랑스인 신부들이 입국하였으나 박해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초기 50년 동안은 중국인 신부가 잠시 사목활동을 했을 뿐 1836년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들이 입국할 때까지 사제 없이 평신도들만으로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고 교회를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중국인 신부, 그리고 파리외방전교회 주교와 신부들이 있었다 해도 다들 외국인이고 박해 시기였으므로 평신도들의 협력이 없이는 활동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한국 교회는 평신도들에 의해 기초가 다져지고 자라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 한국 교회는 순교자의 피로 자라난 교회입니다. 초기 약 100년간 크고 작은 박해가 지속되었는데 그 중 전국적인 큰 박해가 네 번 있었습니다. 박해로 인해 목숨을 잃은 분은 만여 명이 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분들 중 103분이 성인으로, 124분이 복자로 선포되었으며 지금도 시성 시복 운동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이같이 자랑스러운 초기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103위 순교 성인들의 축일인 오늘, 특히 평신도 순교 성인들의 신앙을 되새겨 보고 본받도록 합시다. 박해 시대는 아니지만, 신앙을 목숨보다 귀한 가치로 여기고 신앙을 삶으로 증거하는 순교 정신만큼은 우리 안에 살아 있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올해는 평신도 희년입니다. 하느님께서 이 시대 우리 평신도들에게 어떻게 살고 어떤 역할을 수행하기를 바라실지 생각해 보고, 순교자들의 후손답게 기쁘고 떳떳하게 삽시다.

▦ 안동교구 이성길 프란치스코 신부 : 2018년 9월 23일
  |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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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순교자들의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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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순교자들의 삶을 기리며 순교 정신을 본받고 다짐하는 날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자신은 물론 가족들도 순교로서 신앙을 증거 한 순교자 집안입니다.

평신도인 정하상 바오로
역시 가족들이 신앙의 증거자이고 박해 때문에 사제가 순교하자,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투신하신 분입니다. 역관의 종으로 위장하여 조선과 북경을 9차례 왕래하였고, 의주 변문까지는 11차례 왕래하며, 주교님과 사제들을 조선으로 데리고 오셨습니다. 조선이 독립 교구가 되기를 바라며, 교황청에 청원도 하였습니다. 결국 그 뜻을 이루어 모셔온 사제들을 자신의 집에 모셨습니다.

동료 순교자분들
역시 하느님을 주인으로 섬겼고 그 증거로 자신의 삶과 생명을 봉헌하신 분들입니다.

생명을 잃었다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으로 주님을 증거한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한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박해 시대 자신의 삶으로, 생명으로 주님을 증거한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지혜서 3,9) 말씀처럼, 주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되뇌이는 사람은 주님의 사랑과 현존을 체험합니다. 순교자분들이 간직한 힘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말씀을 끊임없이 되뇌이고 외웠습니다.
생활 속에서 말씀을 늘 묵상하다 보니, 주님께 대한 신뢰와 하느님 나라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 깊게 형성됩니다. 이것이 복음화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한순간에
순교로 주님을 증거한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끊임없이 단련되었습니다. 그 단련으로 내 마음의 첫 자리에 주님이, 내 마음 첫 자리에 주님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순교의 상황은 거의 없습니다.
지금은 일상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살아가는 것이순교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라 우리는 말합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신앙인들도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상적인 가치에 신앙을 오히려 타협하는 것은 아닐까?

자신에게 다가올 이익과 사람들의시선 때문에 신앙도 편리하게 재해석합니다. 또 하나의유혹일 수도 있겠습니다.

미사에 대한 절실함이 얼마나 클까?
기도의 삶은?
어떤 일을 선택할 때, 주님 안에서 생각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고민하게 됩니다.

신앙의 삶은 또 하나의 문화생활처럼 생각되어지기도 합니다.
활동적인 무엇이 아니라, 선조들이 지켜오고 물려준 신앙의 정신을 더 깊이 되새겨 보아야 할 때이며, 그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 현시대에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비대면의 시대로 흐르고 있습니다.
주님과의 관계 안에서 스스로 찾아가지 않으면 어려운 시대입니다. 순교자분들의 삶을 되새기며, 말씀으로 끊임없이 단련된 그분들의 신앙의 삶이 우리에게도 깊어지기를... 이 부분을 자신의 삶 속에서 스스로 그리고 함께 고민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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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윤성규 바오로 신부
2020년 9월 20일 ‘안동교구 주보’에서
  |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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