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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전주] 라뽀니 선생님
조회수 | 1,640
작성일 | 08.07.20
우리를 올바로 살게 가르치고 진리를 알도록 이끄는 분을,
우리는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선생님이라는 그 호칭을 글자 그대로 보면 ‘나보다 먼저 나신 분’이라는 뜻이 됩니다.
따라서 선생님은 나보다 먼저 태어나시고 나를 올바로 살게 가르치고
진리를 알도록 가르치는 분입니다.

오늘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마리아의 신앙고백이다.
마리아는 단순히 라뽀니,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 당신은 죽음을 이기시고 나보다 먼저 살아나신 분이시고
나도 다시 살리실 분이고, 나를 올바로 살게 가르친 분,
그리고 진리 즉 하느님께로 나를 이끄실 분이시라는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우리가 고백해야 할 신앙을 모두 요약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 주님, 스승님, 그분의 이름을 열렬히 불러야 하겠습니다.
그 이름 안에 그분께 대한 신앙이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이 신앙고백에 바로 응답하십니다.
내 형제들을 찾아가서, 나는 내 아버지이며 너희의 아버지
내 하느님이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고 전하여라!

당신을 배반한 제자들을 같은 형제로 여기시는 말씀입니다.
비천한 제자들을 거룩한 당신과 같게 여기시고
못난 제자들이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것을 분하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우리보다 못한 이와 같아지거나, 같은 수준으로 평가받으면,
내 자존심이 상하고, 내가 받을 것을 빼앗겼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몹쓸 짓을 한 사람들과 우리가 같아지면 우리는 분해서 못견딜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언제나 우리와 같아지시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수난을 받아들이시고, 수난 당할 때 기도하셨고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것입니다.
당신의 권능을 자랑하시려고 돌아가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과 우리는 그분이 강생하실 때 같아졌고,
그분이 수난 당할 때 이미 같이 수난 당했으며
그분이 죽으실 때 같이 죽은 것입니다.
이 기막힌 사실을 우리는 나중에야 깨닫습니다.
늦게야 이 사실을 깨달은 우리는, 즉 제자들과 신앙의 선조들은
이제는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우리를 위해서 죽었다고 다시 살아나신 그분을 위해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분과 자기들이 한 형제임을 깨닫고 감격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되어 오셔서 , 극진한 사랑을 베푸신 그분을 수난 당하게 하고,
수난을 당할 때 도망치고
그분의 죽음에 대해 마리아처럼 슬퍼하기 보다는 낙담하고,
그분의 부활을 믿지 않은 그런 사람들에게
오늘 예수님께서 다시 한번 희망의 말씀을 주십니다.
우리도 우리 아버지 우리 하느님께로 올라갈 것입니다.
우리 형제이신 예수님께서 그 길을 틔워주셨습니다.
그분이 우리 손을 잡아끌어 같이 올라가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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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전세혁 예로니모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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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 마리아 막달레나입니다. 모친 마리아도 계시고 제자들도 많이 있는데, 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처음 나타나셨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것은 거기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있었으니까 예수께서 그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께 실망하고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는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회개한 후 줄곧 예수님 주위에서 맴돌았습니다. 운명하실 때도 십자가 아래에서 울면서 지켜보고 있었고, 일요일 새벽에 향을 가지고서 무덤에 제일먼저 간 사람도 그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시신을 찾고 있었습니다. 마리아의 예수님을 찾는 집념은 대단하였습니다. 사도들에게 “누군가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다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요한 20,2)라고 하였고, 천사에게 꼭 같은 말로 주님을 찾았고, 동산지기로 보이는 예수님에게도 “당신이 그분을 옮겨갔거든 어디에 모셨는지 알려주세요.”(15)라고 말하였습니다. 대단한 열정으로 시신이라도 찾으려 하였습니다. 이것은 주님께 대한 사랑입니다.

우리도 집념과 열성을 가지고 그분을 찾아야 합니다. 결혼생활에도 권태기가 있듯이 영성생활에도 리듬(밤과 낮)이 있습니다. 성녀 소화 데레사는 수녀원에 들어가는 날부터 죽는 날까지 한 번도 주님의 위로를 받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주님께 대한 열성이 내려갈 때 덜 내려가게 하고 올라갈 때 더 많이 올라가게 하기를 되풀이하면 영성생활이 크게 발전하고, 나아가 완덕에 도달할 것입니다. 내려갈 때 더 내려가지 못하게 붙잡고, 올라갈 때 더 오르도록 박차를 가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의지력이 필요합니다. 성령에게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도우심을 바라면 가볍게 올라갈 것입니다.

김경식 몬시뇰
  |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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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주님을 사랑해야만 주님을 체험할 수 있다.

루카복음(8,2)을 보면 “악령이나 질병으로 시달리다가 나온 여자들도 따라 다녔는데 그들 중에는 일곱 마귀가 나간 막달라 여자라고 하는 마리아”를 포함하여 여러 여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자기 재산을 바쳐 예수님의 일행을 도왔다고 한다.

마귀가 하나만 있었어도 힘들었을 터인데, 마귀가 일곱이나 있었으니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그녀의 삶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까? 일곱 마귀에 시달려 마귀의 종노릇을 하며 지내야 했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삶을 겨우 살았을 것이다. 그러한 그녀가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하여 마귀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찾았으니 얼마나 컸을까?

그녀는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 예수님이 그녀에게 제 2의 인생을 살도록 하신 것이다. 그녀는 새로 얻은 제 2의 인생을 온전히 예수님께 바치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았다.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는 마귀 들린 여인에서 세세대대로 모든 그리스도인으로부터 존경받는 성녀가 되었다.

사람들로부터 비난받고 손가락질 당하던 마귀 들린 여인이 어떻게 존경받는 성녀가 되었을까?
루가복음에 따라서 먼저 그녀는 마귀로부터 해방된 다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예수님을 따랐고, 예수님을 힘껏 도왔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사셨다. 따라서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분명 십자가의 길이며, 고난의 길이다.

그녀는 십자가와 고통을 마다하지 않고 예수님을 따랐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재산을 바쳐 예수님을 도와드렸다. 마치 키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진 것처럼 마리아도 예수님과 함께 고난의 십자가를 나누어 진 것이다.

둘째로 그녀는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했다.

안식일 다음날 이른 아침 그녀는 예수님의 시신에 바를 향유를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다. 4복음서가 이 사실을 똑같이 전할 정도로 예수님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컸던 것이다. 특히 요한복음을 보면 빈무덤을 보고 마리아는 슬피 울면서 주님을 찾는다. 자신이 주님의 시신을 모셔가겠다고 청한다. 주님께 대한 사랑이 얼마나 컸으면 시신을 모셔가겠다고 말하겠는가!

일반적으로 사람은 죽음을 싫어하고 기피하기에 시신을 꺼려한다. 율법에 따라 시신을 만지면 부정을 탄다. 그런데도 시신을 모시려고 할 정도로 그녀의 사랑은 컸다. 그리고 주님께 대한 그녀의 사랑이 컸던 그만큼 그녀는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성모님이나 12제자들에게 먼저 나타나시지 않고, 마리아에게 먼저 나타나셨다.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는 우리로 하여금 여러 가지 점을 묵상하도록 한다.

먼저 하느님은 우리를 어느 한 순간의 죄와 악행으로 판단하지 않으신다는 점이다. 그녀가 마귀 들린 상태에 있을 때 그녀는 죄와 악행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녀를 내치지 않으셨다. 하느님께서는 그녀가 변할 줄 믿고 기다리셨다.

주님을 만남으로써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도록 하셨다. 죄인이 성녀가 되게 하신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비록 우리가 지금 죄와 악행에 물들어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를 벌하시지 않고 기다리신다. 하느님은 우리 모두가 성인성녀가 되기를 기다리시는 하느님이시다.

또한 성인성녀가 되려면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을 힘껏 도와야 함을 가르친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가야함을 가르친다. 비록 고통스럽고 힘들다할지라도 십자가의 길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님을 사랑해야만 주님을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을 가르친다. 주님을 사랑하는 그만큼 주님을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을 가르치고 있다

<전주교구 경규봉 신부>
  |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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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마귀들린 여인에서 주님을 모신 성녀로 거듭난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일곱 마귀가 나간 막달라 여자라고 하는 마리아”(루가 8,2)라고 전해지는데, 그녀는 자기 재산을 바쳐 예수님의 일행을 도왔다고 한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그 밑에 서 있었다(요한 19,25).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일요일 이른 아침에 가장 먼저 막달라 여자 마리아에게 나타나셨다(마르 16,9). 또한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알린 사람이다(요한 20,11-18). 교회는 루가복음에 기록된 “용서받은 죄 많은 여자”(루가 7,36-50)가 곧 마리아 막달레나라고 생각하여 통회와 관상의 이상적인 모델로 믿어왔으며, 성령 강림 후 마리아 막달레나는 성모님과 성 요한과 함께 에페소에 가서 전교하다가 그곳에 묻혔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기 전의 마리아의 삶은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일곱 마귀에 시달리며 살아야 하는 그녀의 삶은 처절한 것이었다. 주위 사람들도 모두가 그녀에게 손가락질 하며 아무도 그녀와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녀만 보면 슬금슬금 피해 달아났고,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는 부정을 쫒는다고 소금을 뿌리며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마귀에게 시달릴 때, 그녀 자신도 도무지 어찌할 수 없었다. 죽고 싶어? 죽을 수도 없었다. 마귀가 죽을 수도 없게 했던 것이다. 일곱 마귀에 사로잡힌 그녀는 온전히 마귀의 노예가 되어 매일 시달려야만 했다. 어쩌다가 제 정신이 들면 마음과 정신이 몽롱하여 사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한 그녀가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다가오셨을 때, 자신 안의 마귀는 악을 쓰며 주님을 거부하고, 그녀로 하여금 발광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주님께서 한 마디 말씀으로 호령하시자 마귀는 언제 그녀 안에 있었는지도 모르게 도망쳐버렸다. 그리하여 그녀는 마귀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찾았다. 그녀는 이제 비로소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지금부터 그녀가 사는 삶은 오직 주님께서 주신 삶이며, 때문에 그녀는 오직 주님을 위해 살고자 결심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바쳐 주님을 도우며 주님을 따랐다. 주님의 제자들까지도 모두가 도망쳤지만, 그녀만은 결코 도망치지 않고 주님의 어머니 성모님과 함께 주님의 십자가 밑에서 주님을 지켰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무덤에 묻히셨을 때에도 결코 주님을 포기하지 않고 주님의 시신을 찾아갔다. 마귀가 나간 그녀의 마음에는 오직 주님만이 가득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는 마귀 들린 여인에서 주님을 마음속 깊이 모신 성녀로서 세세대대로 모든 그리스도인으로부터 공경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녀를 그처럼 사랑하시어 사람들로부터 비난받고 손가락질 당하던 마귀 들린 여인이 존경받는 성녀가 되도록 하셨던 것이다. 그녀가 일곱 마귀에 시달리고 있을 때 그녀는 분명 죄와 악행에 빠져 있었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녀를 벌하지 않으셨다.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그녀를 불쌍히 여기셨다. 그리하여 그녀가 주님을 만남으로써 온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도록 하셨다. 마음속에 마귀를 가득히 담았던 죄인이 주님을 가득히 담은 성녀가 되게 하시고, 마귀가 시키는 대로 행했던 여인이 주님의 일을 적극적으로 돕는 여인이 되도록 변화시켜주신 것이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일곱 마귀에 사로잡힌 그녀를 주님께 사로잡힌 성녀가 되도록 변화시켜주셨던 것처럼 우리를 변화시켜주시는 하느님이시다. 우리의 한 순간의 죄와 악행을 물어 벌하시지 않으시고, 참고 기다리시며 우리가 주님 안에서 새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주시는 하느님이시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가 지금 죄 속에서 헤매고 있다할지라도 결코 실망하지 말자. 우리를 이끄시는 주님을 믿고, 주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함으로써 우리 모두 주님의 은총으로 성인성녀가 되자.

<전주교구 경규봉 신부>
  |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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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사랑> (요한 20,1-2.11-18)

마리아 막달레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첫 번째로 만난 사람으로서,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한 첫 번째 증인으로서 중요한 인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마리아를 부활의 첫 증인으로 삼으셨을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예수님은 누구를 더 편애하시는 분이 아니라고 믿는다면,
마리아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마리아의 사랑이 그 이유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마리아가 사도들보다 더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가장 먼저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간 첫날 이른 아침'에 무덤으로 간 것,
시신이 없어진 것을 알고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던 것,
예수님의 시신을 찾아서 자기가 모시려고 한 것 등이
예수님에 대한 마리아의 지극한 사랑을 나타냅니다.
(사랑한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런 행동들이 마리아의 사랑을 나타낸다는 뜻입니다.)

'사랑'이란 '늘 함께 있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예수님과 늘 함께 있고 싶어 했을 것이고, 실제로 늘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실 때에는 예수님을 따라다녔고(루카 8,2),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는 십자가 곁에 있었고(요한 19,25),
아리마태아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모시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마태 27,61).
예수님을 처음 만났던 때부터 마지막까지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루카복음에는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
라고 표현되어 있어서(루카 8,2),
예수님 덕분에 일곱 마귀에게서 풀려났기 때문에
마리아가 예수님을 사랑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란 '... 때문에'가 아닙니다.
사랑은, 특히 예수님에 대한 사랑은
그런 단서나 조건을 붙이지 말아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ㅡ 아버지와 예수님 사이의 사랑은 사랑 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는 사랑이고,
사랑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는 사랑입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으로부터 뭔가를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사랑하신 것도 아니고,
예수님께서 아버지로부터 뭔가를 받았기 때문에
아버지를 사랑하신 것도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ㅡ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도 사랑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는 사랑입니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ㅡ 이 말씀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나를 사랑하여라.' 라는 호소입니다.

제자들 가운데 예수님의 이 말씀을 가장 잘 실천하신 분이
마리아 막달레나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시신을 찾아서 모시려고 하는 그 사랑에 무슨 사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무슨 대가를 바란 것도 아니고,
다른 사도들에게 자신을 내세우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예수님에 대한 사랑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확대되어야 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조건 없이 사랑하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9)."
라는 말씀과 연결됩니다.
자기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데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은
이웃 사랑은 사랑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는 사랑이어야 한다는 말씀이 됩니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의 축일을 맞아서
예수님에 대한 마리아의 사랑을 묵상하고,
또 모든 사람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도 묵상하면서,
우리는 지금 사랑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를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뭔가를 받았기 때문에 고마워서 사랑한다면,
받지 않았다면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이 되기 때문에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뭔가를 받기를 바라고 사랑하는 것도 사랑이 아닙니다.
바오로 사도는
'사랑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라고 표현했습니다(1코린 13,5).
(현세적인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의 시신을 찾아서 모셔간다고 해서
무슨 이익이 있었겠습니까?
당시의 상황에서는 이익을 얻기는커녕
박해를 받고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릅니다.
마리아의 그 사랑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놓은 큰 사랑'이었습니다(요한 15,13).

<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
  |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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