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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세 개의 고향
조회수 | 3,086
작성일 | 07.09.24
맛있는 음식 많이 드셨습니까? 요즈음은 옛날 같은 맛갈스러움이 점점 없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이 아주 맛있었고, 또 예전의 우리 인간 관계가 사람을 많이 필요로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 또한 대단히 반가웠지요. 정이 넘쳤던 예전의 그 깊은 맛을 요즘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일년 중에 한가위만큼 맛있는 음식이 넘쳐나고 또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는 날도 없을 것입니다.

󰡐한가위󰡑란 말은 농경 문화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수의 한가운데에 왔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한가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모든 곡식과 풍요로운 결실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 드리는 것이 그 첫 번째 의미이고, 두 번째는 온 가족이 모여서 우리보다 먼저 돌아가신 선조들의 영원한 안식을 비는 것입니다. 덧붙여서 가족이 함께 모여 오랜만에 정을 나누는 것도 큰 의미가 있지요. 한가위에는 이렇게 가족 간의 모임이 이루어지고, 조상께 드리는 감사와 돌아가신 분의 영원한 안식을 비는 제사와 성묘가 함께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추석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습니다. 수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일시에 고향을 찾아가지요. 고향 가는 그 물결은 마치 연어 떼가 태어난 곳으로 수만 리 길을 되짚어 가는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고향에 대한 원천적인 그리움과 향수가 우리들 모두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어른들을 만나고, 또 친지와 옛 사람들을 만나는 그 즐거움이 아무리 고되고 힘들더라도 고향을 찾게 하는 힘이 되지요. 한가위는 특히 추수의 가운데에 있기 때문에 아주 풍요롭습니다. 풍요로우면 나눔도 즐겁지요. 얼마나 한가위가 좋으면 우리말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표현이 다 있겠습니까? 이렇게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고향에 가지 못하거나 갈 고향이 없는 사람은 참으로 안타깝게 보입니다. .

오늘 한가위를 맞아서 저는 여러분에게 세 개의 고향(故鄕)을 가지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떻게 고향이 세 개나 되나?󰡑 하고 놀라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세 고향이란 이렇습니다.
첫 번째, 육신의 고향, 즉 내가 태어난 곳,
두 번째, 신앙의 고향, 즉 하느님을 알게된 곳,
세 번 째, 영원한 고향, 즉 본 고향으로 우리 선조가 가셨고 내가 죽은 후에 가야할 궁극적인 고향입니다. 여러분들이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세 개의 고향을 저는 제안합니다.

첫 번째의 육신의 고향은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아는 고향입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지요. 저도 태어나고 자란 곳이 있습니다. 행주산성 근처 고양시가 제 고향입니다. 많이 변하기는 했습니다만 가보면 옛 모습이 부분적으로 살아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놀던 그 곳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요즈음에 가도 슬며시 기분이 좋아지는 곳입니다. 고향을 찾으면 편안해지는 느낌과 함께 놀던 친구들이 많이도 변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변하기는 제가 제일 많이 변한 것도 같습니다만.

두 번째 고향인 신앙의 고향도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저에게는 육신의 고향보다 더 중요한 신앙의 고향이 있습니다. 바로 능곡 성당입니다. 제가 사제의 꿈을 키웠었고 서품을 받고 첫 미사를 봉헌했던 성당으로 지금은 의정부 교구로 나뉘어졌지요. 신앙의 고향인 그 성당에 가면 신학생 때 신부가 되기 위해서 준비했었던 과정들이 다 살아납니다. 첫 미사를 드렸던 그 제대가 아직도 그대로 있고 다른 모습들도 거의 그대로 있습니다. 고민이 되고 힘들었을 때 혼자 기도했던 기억들, 청년들이나 어른들과 어울렸던 기억들이 떠오르고 첫 영성체 교리를 하면서 초등학교 아이들과 뛰어 놀던 곳들을 보는 순간 말 그대로 쌓여진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짐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본당 신부로 생활하면서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끔은 󰡐저 신자는 이사도 안가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신자가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성당에서는 없지만 힘들게 하는 부분들이 사목 생활을 하다보면 없지 않아 생기는 법이지요. 그럴 때 저는 가끔 제가 서품을 받은 그 성당에 가서 기도합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저를 사제로 불러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기도합니다. 그러면 순식간에 다시 힘이 살아나지요. 그 때 그 첫 마음이 다시 회복이 됨을 느낍니다. 그 힘으로 다시 더욱 열심히 노력하고 어려운 많은 이웃과 함께 하려고 다짐을 하지요. 이렇게 저의 신앙의 고향은 능곡 성당입니다. 신앙의 고향이 주는 행복을 알기에 저는 여러분들에게 신앙의 고향을 가지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럼 신앙의 고향을 어떻게 가질 수 있겠습니까? 쉽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은 곳이 신앙의 고향이 될 수가 있습니다. 또 하느님을 알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기도했던 그 성당이 됩니다. 초등학생들이라면 어렵게 첫영성체를 준비하면서 예수님의 몸을 처음 영했을 때의 그 설레임과 거룩한 체험들을 주던 성당이 신앙의 고향이 되는 것이지요. 또 정말 어렵고 힘들 때 내가 찾아갔던 그 성당, 거기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위로를 받았던 그 성당이 바로 신앙의 고향이 될 수 있습니다. 또 내가 결혼했던 성당이 신앙의 고향이 될 수도 있지요. 그래서 저는 되도록 예식장에서 결혼하지 말 것을 가르칩니다. 성당에서 결혼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성당에서의 결혼은 하느님 안에서의 의무이기도 하지요. 배우자와 일생을 함께 하기를 하느님과 많은 친지들 앞에서 서약하고 맹세했던 그 성당, 그리고 부부 사랑의 결실인 아이를 낳아서 유아 세례를 시켰던 그 성당은 신앙의 고향이 되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살다보면 부부간에 어렵고 힘들고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는 위태로운 순간이 옵니다. 그 때 그 성당에 부부가 가서 혼배 성사를 한 그 자리에서 서서 󰡒하느님, 어렵고 힘든 저희 가정에 인내와 지혜와 은총을 주십시오.󰡓하고 기도해 보십시오. 어찌 가정의 어려움이 극복되지 않겠습니까?

바로 이것이 신앙의 고향입니다. 어려운 시기를 맞았을 때 함께 기도하고 매일 성체 조배했던 곳, 혹은 내 자식이 아프고 어렵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그 시점에 하느님께 기도했던 그 곳이 신앙의 고향일 수 있습니다. 또 사목위원, 구역장, 반장으로서 정말 신자로서 열심히 살았던 그 곳, 바로 신앙의 고향이지요. 특히 우리 신자들에게는 신약성경을 쓰면서 하느님을 체험하고, 또 신심서적 100권을 읽으면서 깊이 하느님을 체험했던 이 성당이 바로 신앙의 고향이 될 것입니다.

육신이 태어난 곳이 나의 고향이라면 내가 신앙으로 하느님을 만나고 새롭게 눈 뜬 곳, 하느님의 은혜를 입었던 곳, 그곳이 바로 신앙의 고향인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고향을 가진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육신의 고향이 있는 것도 행복한데 신앙의 고향을 갖고 있다면 얼마나 더 행복하겠습니까?

그리고 세 번째로 제일 중요한 고향이 있습니다. 영원한 고향, 본 고향이라고 옛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불렀던 고향입니다. 옛날에 많은 신자들은 하느님 나라를 본 고향, 근본적인 고향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느님께로 돌아갑니다. 사람의 숨이 끊어졌을 때 우리는 죽었다고 표현하지 않고 󰡐돌아가셨다.󰡑라고 표현합니다. 왔던 곳으로 다시 간다는 의미이지요. 하느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은 본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하느님이 계신 그 곳, 우리 선조들이 이 세상을 떠나서 돌아간 그 곳, 본 고향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한번 생각을 해보십시오. 이 세상에서 80년을 살고 90년을 살았는데 죽은 후에 갈 곳이 없고 영원을 믿지도 않을뿐더러 하느님을 믿지도 않아서 말 그대로 구천을 떠돌고 헤매며 다닌다면 그 얼마나 비참한 모습이 되는 것입니까? 제일 중요한 곳이 본 고향이라는 겁니다. 신앙인이 돌아가야 할 곳은 하느님 나라입니다. 하느님이 계신 그 곳, 우리의 선조들이 가 계신 그 곳, 우리의 후손들이 앞으로 나와 만날 그 곳이 본 고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 고향을 믿고 희망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본 고향에 돌아가기 위한 조건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떤 탐욕에도 빠지지 말며, 이 세상의 재산이 나를 지켜준다는 어리석은 마음으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위해서 또 자기를 위해서 재산을 모으면서도 하느님께 인색한 사람은 본 고향에 들어가지 못하고 땅에 묻히고 말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과 이웃에게 인색해서는 안됩니다. 영원한 고향을 준비하고 믿는 사람은 하느님과 이웃에 인색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한가위를 지내면서 우리는 고향을 그리워하고 궁극적으로 우리가 가야할 곳이 어딘지 확인하게 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세 개의 고향을 가지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첫 번째 육신의 고향, 두 번째는 신앙의 고향, 세 번째로 본 고향입니다. 이 중에 우리의 선조들이 가 계신 영원한 고향, 본 고향이 제일 중요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예외 없이 다 죽습니다. 고향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듯이 영원한 고향이 있는 사람은 죽음이 두렵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믿기 때문에 이 세상의 삶이 더 행복하고 죽음 후에 더 큰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세 가지 고향을 다 가진 행복한 사람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오늘 한가위를 지내면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조상님들과 부모님께도 감사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본 고향에 가 계신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혹시라도 안식을 누리지 못한다면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고, 또 우리가 그 곳에서 그 분들과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미사 중에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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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이기양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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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12,15-21

오늘은 우리의 先朝들이 조상 대대로 하늘과 祖上님들께 음덕(蔭德)을 기리며 감사의 제사를 드려오던 날이다. 참으로 지혜롭고 아름다운 전통을 남겨주신 祖上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와 추모의 제사를 올려야 할 날이다.

조상 대대로 먼저가신 웃어른들의 영전에 큰절을 올리며 자손들을 잘 지켜 주십사고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참으로 뜻 깊은 행사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유교적인 풍습이지만 조상님들이 어디선가 분명히 살아 계심을 뜻하는 내세가 있다는 유신론(有神論)적 사상이 아닐 수가 없다. 이런 사상은 비단 우리 동양 뿐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찾아 볼 수 있는 것으로서 죽은 이와 산 이의 통교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분명히 예시하고 있는 풍습이다. 그 옛날부터 인간의 역사가 존재하는 한 제사의 흔적은 언제나 분명히 있어 왔다는 것을 볼 때 모든 인간은 죽지만 결코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디엔가 살아있는 영적인 존재임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죽은 이와 산 이의 영적인 교류 즉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라고 읊조리는 사도 신경의 신학과도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먼저 가신 조상님들의 영전에 감사와 추모의 제사를 올리는 이 날에 교회가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은 곡식의 추수와 우리 인간의 마지막 추수 날을 생각게 하는 성서의 말씀이시다. 모든 곡식은 익으면 반드시 고개를 숙이고 주인의 낫에 베여 그 수확량을 셈 바치게 된다. 알찬 곡식과 쭉정이가 분명하게 판가름 나는 날이 추수날인 것이다. 우리 인간도 언젠가는 하느님의 추수 날을 맞이하여 그동안의 공과를 셈 바칠 날이 온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말씀이 오늘 성서 말씀의 핵심이다.
그런데 오늘 복음 말씀에는 한 부자가 추수를 끝내고 만족해하며 그 풍성한 곡식을 어디에 쌓아둘까를 걱정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미 곡식 창고는 가득 차서 더 이상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새 창고를 짓고 거기에 쌓아두어야지 하면서 만족해하는 부자에게 하느님의 말씀이 들려온다. “이 어리석은 자야 바로 오늘 밤 네 영혼이 너에게서 떠나가리라. 그러니 네가 쌓아 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하시는 말씀이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말씀이다. 이처럼 황당한 말씀에는 그 누구라도 놀라지 않을 수 없고 허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생 동안을 땀 흘려 벌어 놓고 이제 좀 여유롭게 살아 볼까 했더니 죽어야 한다니, 참으로 허무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인생이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이러한 순간이 돌아올 것이다. 오늘 복음은 어리석은 부자에게 간담이 써늘한 말씀을 하시고 이어서 우리 모두에게 경고조로 말씀하신다. “이렇게 자기를 위해서는 재산을 모으면서도 하느님께 인색한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이 될 것이다” 자, 여기서 갑자기 하느님께 인색한 사람이란 무슨 뜻일까? 우리가 잘 아는 부자와 나자로의 비유를 보면 잘 알 수 있는 말씀이다. 부자는 살아있는 동안에 자기 혼자만 호화롭고 행복하게 살면서 자기 집 문간에 기대어 식탁에서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만을 주어먹고 사는 거지 나자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바로 이와 같은 부자가 하느님께 인색한 사람이다.

그런데 도대체 우리는 왜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웃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며 애써 번 돈을 나누어야 한다는 말인가...? 이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우주 공동체의 일원으로 태어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은 물론이요, 병원과 의사와 간호사의 도움을 받으면서 또 그들을 뒷받침하는 다른 모든 사람과 또 기계와 도구의 힘에 의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다. 그 중에 무엇이라도 또 누구 하나라도 없으면 안 되는 것이 인간의 탄생 원리다. 그래서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든 이웃들과 연계되어 살게 되어 있다. 아무도 독불장군은 될 수 없다. 서로가 어떤 의미로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서로 도와주지 않으면 인간 공동체는 무너지게 되어 있는 것이 그 구조이다.

그러므로 서로 도와야만 산다. 이 세상에 남이란 있을 수 없다. 모두가 다 나의 형제이며 자매라는 것이 하느님 백성의 기본 사상이고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이다. “하느님께 인색한 사람”이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의 분신인 이웃에게 전혀 나누지 못하는 사람을 말하고, 하느님 사업에 전혀 협력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추석이란 예로부터 풍요로운 추수의 결실을 감사하며 송편을 빚어 서로 나누며 모두가 한결같이 기뻐하는 날이다. 그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조상님을 기억하고 그 은공을 기리면서 서로 나누는 넉넉하고 후덕한 모습이야말로 바로 하느님께서 축복해주시는 인간 세상의 따뜻한 모습이다. 이 날이야 말로 천상의 잔치와 지상의 잔치가 서로 어우러지는 날이다. 이날이 바로 사도신경에서 늘 외우는 '모든 성인의 통공'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날이다. 하늘에 계신 조상님들과 지상에 남아있는 우리들이 서로 영적으로 교류를 이루는 날에 우리는 우리 이웃들과도 함께 손잡고 행복한 나눔의 장을 열어야 할 것이다.

서울대교구 김충수 신부
  |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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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맞이하여, 우리 조상들은 무엇을 하고 놀았나 생각해 봅시다. 열심히 일하기 위해서는 잘 쉬고 잘 놀아야하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의 놀이에 대해 살펴봅시다.

서민들은 '줄타기', '연날리기', '제기차기', '씨름', '소맥이놀이', '널뛰기', '농악' 등을 하면서 놀았고, 양반들은 '바둑두기', '시조·창하기', '자수놓기', '글씨쓰기', '가야금 연주', '투호놀이' 등을 하면서 여가를 보냈습니다.

여자들은 주로 '자수놓기', '그네뛰기', '널뛰기', '강강술래', '놋다리밟기', '투호놀이' 등을 하였고, 남자들은 '줄타기', '고싸움', '소싸움', '씨름', '농악놀이', '바둑두기', '북놀이' 등을 했습니다.

어른들은 '바둑두기', '장기두기', '씨름', '강강술래', '소싸움' 등을 했고, 아이들은 '비석치기', '연날리기', '윷놀이', '제기차기', '말타기놀이', '가마싸움', '팽이치기', '풀각시놀이', '구슬치기', '썰매타기', '달맞이' 등을 했습니다.

혼자서는 '자수놓기', '글씨쓰기', '시짓기', '사군자 그리기' 등을 하였고, 여럿이 모여서는 '놋다리밟기', '고싸움놀이', '줄다리기', '강강술래', '가마싸움' 등을 했습니다.

계절 별로는 봄에는 '풀각시놀이', '꽃생이놀이', '꽃놀이' 등을 했고, 여름에는 '북놀이', '풀묻기', '삼굿', '두꺼비집짓기' 등을 했습니다. 그리고 가을에는 '달맞이놀이', '강강술래' 등을 했고, 겨울에는 '팽이치기', '썰매타기', '자치기', '잉어놀이' 등을 했습니다.

추석 명절에는‘가마싸움’, ‘각시놀음’, ‘강강술래’, ‘강릉단오제’, ‘고싸움’, ‘그네뛰기'’, ‘다리밟기’, ‘닭싸움'’, ‘밀양백중놀이’, ‘반보기’, ‘밭고랑기기’, ‘소싸움’, ‘쇠머리대기’, ‘씨름’, ‘연산백중놀이’, ‘줄다리기’, ‘지신밟기’, ‘차전놀이’ 등을 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놀이를 가나다 순으로 간단히 살펴보면;

‘가마싸움 ’은 일명 가마놀이라고도 하는 학동들의 놀이입이다. 추석전각 서당의 학동중 대표를 뽑고 각기 가마와 기를 만들며 가마싸움 준비를 합니다. 15일이 되면 가마를 끌고 마을을 누비고 다니며 기세를 올리고 나서, 넓은 마당에 나아가 달려가 가마를 부딪혀 부서지는 편이 지게 되는 놀이입니다. 이긴 편에서 그 해에 등과가 나온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강강술래’는 전라남도 남해안 일대와 도서지방에 널리 전승되고 있는 여성들의 집단놀이로서 주로 한가위 밤에만 놀아왔지만 지방에 따라서는 정월 대보름밤을 비롯하여 달이 밝은 밤에 수시로 놀아온 놀이입니다. 이 놀이의 유래는 확실치 않지만, 고대 농경시대의 공동 축제때 노래부르며 춤추던 놀이형태가 계속 이어져 내려오면서 점차로 변화되어 오다가 임진왜란때 이순신 장군이 이 강강수월래를 의병술로 이용해서 왜적이 지레 겁을 집어먹고 스스로 돌아가게 했는데 그것을 계기로 사람들에게 더욱 널리 알려져 내려왔다고 봅니다.

‘반보기’는 옛날 시집간 여자들이 시집살이하면서 마음대로 친정에 갈 수 없자, 추석이 지난 다음 서로 만나고 싶은 사람들끼리 날짜와 장소를 미리 정해서 서로 좋아하는 음식을 장만하여 한나절 동안 회포를 풀었다고 합니다. 중간에서 만나 회포를 다 풀지 못하고 반만 풀었다는 뜻으로 반보기랍니다. 또 이웃 마을의 여인들과 어울려 지내기도 했답니다.

‘밭고랑 기기’는 추석 전날 8월 14일 저녁에 아이들이 밭에 가서 발가벗고 자기 나이 수대로 밭고랑을 기어가는데 이렇게 하면 그 아 이는 몸에 부스럼이 나지 않고 밭농사도 잘된다는 뜻으로 전라남도 진도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이 때에 음식을 마련해서 밭둑에 놓고 하기도 한답니다.

‘소멕이 놀이’는 추석날 차례를 마치고 난 뒤 알맞은 시간에 소놀이가 진행됩니다. 멍석안에 두사람이 들어가 소의 형상으로 꾸며서는 그 소를 끌고 농악대와 마을 사람들은 그 마을에서 가장 부농집이나 그 해에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사람의 집으로 찾아갑니다. 대문 앞에서 '소가 배가 고프고 구정물을 먹고 싶어 왔으니 달라'고 외치면 주인이 나와서 일행을 맞이하고 술과 떡과 찬을 차려 대접합니다. 거북놀이와 비슷하지만 개인이나 가정의 복락을 위한 것이기 보다는 이 놀이에는 풍년을 기원하는 뜻이 깊이 들어 있습니다. 중부지방에 널리 퍼져 있으며 황해도 일부 지역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올게심니’는 추석을 앞두고 잘 익은 벼나 수수 등 곡식의 이삭을 한 줌 베어 기둥이나 대문 위에 묶어 걸어두는 것입니다. 이 것은 다음 해에 풍년이 들게 해 달라 는 기원의 뜻이고, 올게심니한 곡식은 다음 해에 씨로 쓰거나, 떡을 해서 사당에 올렸다가 먹었다고 합니다.

‘원놀이’는 음력 설이나 추석 명절때 청 장년들이 하는 놀이로서 지금으로 말하면 모의 재판 같은 성격의 놀이입니다. 한 사람을 원님으로 선발하고 나머지 학동들은 백성이 되어 사건을 놓고 판결을 받는 놀이입니다. 경북 영양 예천 문경 등지에서 전해 내려오던 놀이이며, 안동에서는 주로 서당 학동들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원님은 사건을 잘 해결하지만 서투른 원님은 백성들의 놀림감이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은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인 추석입니다. 여러분 미사 때 우리 조상들을 기억했듯이, 형제 자매들을 기억하고, 이웃 사촌이라고 하는데 이웃과도 즐거운 한 때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이 명절에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그리고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에 함께하셔서 축복을 내려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 주 하느님께 감사하여 기뻐 뛰어라. 너희 하느님께서 가을비를 흠뻑 주시고, 겨울비도 내려 주시고, 봄비도 전처럼 내려 주시리니, 타작마당에는 곡식이 그득 그득 쌓이고, 독마다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라. 이제 너희는 한껏 배불리 먹으며 너희 주 하느님을 찬양하리라.”(요엘 2,23-24.26)

좋은 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서울대교구 심흥보 신부
  |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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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가위 미사를 봉헌하면서 우리들의 아버지 어머니를 기억해 봅시다.

아버지는 누구인가?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기가 기대한 만큼 아들, 딸의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겉으로는, '괜찮아, 괜찮아' 하지만 속으로는 몹시 화가 나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되어 있다. 그래서 잘 깨지기도 하지만,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서 나가는 장소(그 곳을 직장이라고 한다)는, 즐거운 일만 기다리고 있는 곳은 아니다. 아버지는 머리가 셋 달린 龍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 직장 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다. 아버지란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하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식을 결혼시킬 때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아들, 딸이 밤늦게 돌아올 때에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 번 현관을 쳐다본다. 아버지의 최고의 자랑은 자식들이 남의 칭찬을 받을 때이다. 아버지가 가장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속담이 있다. 그것은 "가장 좋은 교훈은 손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라는 속담이다. 아버지는 늘 자식들에게 그럴 듯한 교훈을 하면서도, 실제 자신이 모범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 점에 있어서는 미안하게 생각도 하고 남 모르는 콤플렉스도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이중적인 태도를 곧잘 취한다. 그 이유는 '아들, 딸들이 나를 닮아 주었으면'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닮지 않아 주었으면'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그대가 지금 몇 살이든지, 아버지에 대한 현재의 생각이 최종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일반적으로 나이에 따라 변하는 아버지의 인상은,

4세때--아빠는 무엇이나 할 수 있다.
7세때--아빠는 아는 것이 정말 많다.
8세때--아빠와 선생님 중 누가 더 높을까?
12세때-아빠는 모르는 것이 많아.
14세때-우리 아버지요? 세대 차이가 나요.
25세때-아버지를 이해하지만, 기성세대는 갔습니다.
30세때-아버지의 의견도 일리가 있지요.
40세때 : 여보.우리가 이 일을 결정하기 전에 아버지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50세때 : 아버님은 훌륭한 분이었어.
60세때 : 아버님께서 살아 계셨다면 꼭 조언을 들었을 텐데...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결코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어우러져서 그 마음을 쉽게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웃음은 어머니의 웃음의 2배쯤 농도가 진하다. 울음은 열 배쯤 될 것이다. 아들딸들은 아버지의 수입이 적은 것이나 아버지의 지위가 높지 못한 것에 대해서 불만이 있지만 아버지는 그런 마음에 속으로만 운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어른인 체를 해야 하지만 친한 친구나 맘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소년이 된다. 아버지는 어머니 앞에서는 기도도 안 하지만 혼자 차를 운전하면서는 큰소리로 기도도 하고 성가도 부르는 사람이다. 어머니의 가슴은 봄과 여름을 왔다 갔다 하지만 아버지의 가슴은 가을과 겨울을 오고 간다. 아버지, 뒷동산의 바위같은 이름이다. 시골마을의 당산나무 같은 크나큰 이름이다.

또 어머니는 누구인가?

어머니는 누구인가?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 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끄떡없는...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 보고 싶으시다고... 외할머니 보고 싶으시다고,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것만 같던...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론... 아! 어머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서울대교구 심흥보 신부
  |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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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나눔의 한가위

한가위입니다. 한국에 있으면 잘 느끼지 못하지만, 외국에 홀로 나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고향이 그립고 가족들이 더욱 보고 싶은 날입니다. 저도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 외로움이 가슴에 파고들어 온몸이 향수로 아파하던 날입니다. 저는 미국 동부에서 공부했는데, 한국과는 지구의 반대편에 위치해 한국보다 약 13시간이 늦습니다. 미국 시간으로 한가위 전날 밤 8시경에 한국의 본가로 국제전화를 겁니다. 한국 시간으로 그 시각이 한가위 오전 9시경이고, 집에서는 차례를 마친 후 가족들 모두가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고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울 무렵입니다.

전화가 올 것을 미리 알고 계신 어머니와 먼저 통화를 합니다. 아버지가 그 전화기를 이어받고, 동생 내외와 막내 동생 내외가 다시 전화기를 이어받습니다. 그리고 저의 조카들이 그 전화기를 바통으로 이어받아 저에게는 익숙지 않은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 줍니다. 그리고 귀에 익은 어머니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들으면서 통화는 끝납니다. 고국과 고향을 그리워하며 기숙사의 방에서 나와 이국 하늘에 떠 있는 둥근 달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달은 이내 보고 싶은 가족들의 얼굴로 차례차례 바뀝니다.

외국에 있다든지, 한국에 있으면서도 고향에 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한가위의 풍경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가족과 친지들의 모임에 참여하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함께, 그 모임 안에서 이루어지는 정겨운 감사와 나눔에 동참하지 못하는 아픔입니다. 우리 전통에서 한가위는 그 해에 거두어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내고, 음식들을 이웃들과 서로 나누어 먹으며 즐겁게 하루를 지냅니다. 한가위에 우리가 맛보는 음식들은 한 해 동안 우리가 땀을 흘린 노동의 대가로 얻게 된 결실입니다.우리가 이러한 결실을 얻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모든 이에게 감사하고, 또한 결실을 다른 이들과 풍요롭게 나누는 날입니다.

한가위는 감사의 명절입니다. 한가위에 지내는 차례의 의미는 무엇보다 풍성한 결실을 주신 하느님께 대한 감사입니다. 우리의 정성과 노력으로 힘들게 수확한 오곡백과는 노동의 대가이기도 하지만, 땅과 비와 햇빛이라는 자연의 도움이 있어야 합니다. 풍성한 결실을 맺는 것은 자연을 지배하시는 하느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감사는 하느님은 물론이고 사람들에 대한 감사로 이어집니다. 차례를 지내면서 우리는 우리 존재의 뿌리가 되는 조상님들의 은혜에 감사드리고, 선조들이 묻힌 산소에 찾아가 성묘를 하며 조상님들을 기억하고 그분들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부모님과 은인들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는 것도 그분들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 위함입니다.

한가위는 감사와 함께 나눔의 명절입니다. 차례상을 물리고 함께 자리한 가족들이 풍성하게 차려진 한가위 음식들을 나눕니다. 한 자리에 모여 앉아 단순히 음식을 나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떨어져서 보지 못했던 가족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들이 살아가는 삶의 정담을 나눕니다. 풍요로운 음식이 나누어지고, 또한 우리가 겪고 있는 삶의 애환이 나누어지는 자리입니다. 한가위가 풍성한 것은 음식이 많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 풍성함을 함께 나누는 마음의 풍요로움이 있는 까닭입니다. 감사와 나눔으로 모두가 하느님을 닮은 풍요로운 마음을 지니는 한가위이기를 기원합니다.

김영춘 베드로 신부
  |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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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의 한가위

보름달, 송편, 귀향, 제사, 성묘, 벌초 등은 추석이면 떠오르는 정감어린 단어들입니다. 추석이 가까워지면 사람들은 마치 연어 떼가 태어난 곳으로 수만 리 길을 되짚어 가듯이 고향을 찾아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가족의 미래를 위해 고향을 등지고 돈을 벌기 위해 빡빡한 타향살이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수십 년 타향살이 동안 재산도 늘어났고 자녀들도 잘 성장했지만 이제 만족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습니다. 고향을 찾은 사람들은 잠시의 쉼을 뒤로 하고 다시 길을 떠나 고단한 삶의 현장으로 돌아갑니다.
 
이렇게 바쁘게 사는 것이 일상이 돼버린 우리에게 오늘 복음은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있지 않다"(루카 12,15)며 탐욕스러운 부자의 삶을 경고합니다.
 
황실 이발사가 유령 붙은 나무 아래로 지나가는데 문득 이런 소리가 들렸습니다.
 
"일곱 황금단지 갖고 싶지, 그렇지?"
 
이발사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아무도 안보이자 욕심이 일어 간절히 외쳤습니다.
 
"그럼요, 갖고 싶고말고요."
 
"그럼 얼른 집으로 달려가 봐. 가보면 틀림없이 있을 테니까."
 
이발사는 단숨에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마당에 단지 일곱 개가 놓여 있고, 단지 안은 금돈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중 하나만은 반만 차 있었습니다. 이발사는 반만 찬 단지를 마저 채우고 싶은 충동을 걷잡을 수 없이 느꼈습니다. 그는 자기 집 패물류를 모조리 금돈으로 바꿔 반만 찬 단지에 쏟아 넣었습니다.
 
그러나 단지는 매양 반 단지일 뿐이었지요. '이런 분통 터질 노릇이 있나!' 이발사는 저축하고, 절약하고, 자기 자신과 식구들의 허리띠를 졸라맸습니다. 그러나 힘껏 애써봐야 헛일이었으니 아무리 금돈을 갖다 넣어도 단지는 그저 반 단지 그대로였던 것입니다.
 
이제 이발사는 임금님께 봉급을 올려 주십사고 간청했습니다. 봉급이 배로 올랐지요. 또 다시 단지 채우기 싸움이 이어졌습니다. 나중에는 동냥질을 나서기조차 했습니다. 그래도 금단지는 금돈을 넣는 족족 삼켜버릴 뿐, 고집불통인양 반만 차 있기는 끝내 매일반이었습니다. 이발사의 여위고 궁상맞은 꼴이 이제는 임금님 눈에도 띄게 되었지요.
 
"무슨 좋지 않은 일이라도 있느냐? 봉급이 적었을 적에는 그다지도 행복하고 흡족한 기색이더니, 봉급이 두 배가 된 이제는 도리어 맥이 축 늘어진 꼴이구나. 혹시 일곱 금단지를 가진 게 아니냐?"
 
이발사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아니, 누구한테서 들으셨사옵니까, 폐하?"
임금님이 껄껄 웃으며 말했습니다.
 
"요즘 네 행색이 영락없이 금단지 받은 자의 증상 그대로가 아니냐. 일찍이 나도 그걸 받은 적이 있었더니라. 그때 난 그 돈을 내가 써도 좋다거나 아니면 그냥 그대로만 저장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했는데, 그랬더니 유령은 그만 두 말없이 사라져버리더구나. 그 돈은 쓸 수 없는 돈이니라. 축적하고 싶은 충동만 따라 다니며 부채질할 뿐이야. 지금 당장 가서 그걸 유령에게 되돌려 주도록 해라. 그러면 다시 행복해질 것이니라."
 
지금도 이런 일곱 황금 단지를 가진 사람들이 세상에 넘쳐납니다. 우리시대의 일곱 황금 단지는 더 넓은 평수를 꿈꾸는 아파트와 통장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족도 없는데 더 큰 평수를 위해 큰돈을 몰아넣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다는 이유로 통장에 돈을 쌓아두지만 그것을 다 쓰고 죽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렇게 허황된 곳에 쏟아 부을 돈 때문에 부모, 형제와 다투고 상처 주며 멍든 가슴으로 지내는 사람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그러나 돈을 잘 쓰면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고 형제들과 화목하며 어려운 이웃을 도와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을 수 있게 됩니다. 추석은 이렇게 바쁜 일상 속에 어리석어질 수 있는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돌아가야 할 곳을 생각하며 하느님과 조상께 감사드리고, 형제들과 사이좋게 지내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과 사람에 대한 경외와 사랑이 내 인생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되면 꼬였던 인간의 문제들도 서서히 풀릴 것입니다.

이기양 신부
  |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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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한가위라고 하면 어릴 적 어머니와 동생들과 함께 송편을 빚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어려서부터 서울에서 살아온 저로서는, 음력 8월 15일에 처음 수확한 과일을 가지고 조상께 차례를 지내고 친척들이 모여서 함께 음식을나눈다는 추석이 오늘날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현재 한국 사회는 농업 사회가 아닙니다. 공업국가도 아닙니다. 정보 산업이 매우 발달한 한국은 수출로 부자가 된 나라입니다. 이런 가운데 오늘날의 추석이 별로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옛날 우리 조상님들이 황금색으로 변해가는 들판을 바라보면서, 처음 수확 과일을 가지고 산소를 찾아보고 돌아가신 부모님과 조상님들에게 차례를 지냈다는 사실은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합니다. 부모님과 돌아가신 분들에게 고마워할 줄 알았다는 것이지요. 요즘 우리는 고마워할 줄 압니까? 부모님께, 조상님들께, 하늘에 대해서도 감사할 줄 모르면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감사할 줄 모르면, 내 자식과 손주들도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닙니까? 과거에는 사람들이 함께 농사를 지었습니다. 대가족을 이루고 살면서 동네 사람들과 함께 품앗이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가지고 혼자 살아갑니다. 가족이 오랜만에 함께 모여 식사하는 시간에도 각자 스마트폰만 들여다봅니다. 몸은 함께 있어도, 마음은 따로 있습니다. 혼자 살 뿐입니다. 함께 살던 옛날이 부럽기도 하다는 생각이 얼핏 스쳐 갑니다.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 한가위 축제를 다시 신나게 지내도록 함께 노력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첨단 산업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한국 사회에서 열심히 일하면서도, 부모님과 조상님들, 또 그 누군가에게 고마워할 줄 아는 민족의 축제를 새롭게 지내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족이라는 특별한 관계는 운명적입니다. 가족 안에서 태어난 우리는 가족부터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요즘처럼 편리한 세상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낯설고 거추장스럽더라도 가족과 친척이 함께 만나서 기쁨과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 축제의 전통을 오늘날 우리가 지혜를 모아 새롭게 시작하여 후손들에게 전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것을 위해 교회가 함께하면서 나름대로 활기를 가져다주는 것이 토착화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부모와 조상께 대한 감사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완성되는 것입니다. 미사에서 함께 천상 양식을 나누는 우리는, 추석 때 가족과 친척이 함께 모여서 음식을 나누는 것에 좀 더 정성을 기울이고 기쁘게 참여하면 더할 수 없이 좋겠습니다.

► 서울대교구 주수욱 신부
  |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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