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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전주/춘천] “너는 이것을 믿느냐?”
조회수 | 1,694
작성일 | 08.07.29
놀이터에서 다섯 살짜리 남자 아이와 아빠가 재미있게 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아빠를 향해 뛰어내립니다.
그 순간 아빠는 당황했지만 있는 힘을 다해 아이를 받아냅니다.
아빠는 은근히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아들이 온몸을 던질 정도로
자기를 신뢰하고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기분이 좋아진 아빠는 아이가 평소에 갖고 싶어 하던 장난감을 선물합니다.

아빠를 향해 뛰어내리는 아이를 무모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빠를 완전히 믿고 뛰어내리는 아이의 모습은
아빠에게 기쁨을 줍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은 아빠에게 자신을 완전히 믿고 있는 존재로 다가옵니다.

완전한 믿음이란 그런 것입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아무런 의심 없이 내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길 수 있는 것!
그것이 완전한 믿음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마르타의 이야기에서 완전한 믿음을 봅니다.
오빠의 죽음을 위로하러 온 많은 사람들을 제치고 예수님을 마중 나가는 마르타.
부활 때에 오빠가 다시 살아날 것임을 믿는다고 말하는 마르타.
예수님이 메시아이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마르타.
마르타에게는 오빠의 죽음 때문에 생기는 슬픔과 공허함보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더 컸던 것입니다.

"예, 주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것을 믿습니다."
마르타의 고백이라 불리는 이 장엄한 선언은
오빠의 병 치료가 어긋나 사망한 후에 한 것이기에 그 의미는 더 큽니다.

아빠를 믿고 뛰어내리는 아이의 모습에서 자신에 대한 믿음을 발견한

아빠는 기뻐하며 아이에게 선물을 주었습니다.
오빠의 치료시기가 어긋났기에 주님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죽음을 넘어서 주님을 향한 완전한 믿음의 고백을 드리는 마르타의 모습은
분명 예수님께 기쁨이었고 그녀에게 하느님 나라에서 함께 하는 선물을 주십니다.

이제 우리의 차례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우선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세상 그 무엇보다 믿음을 우선에 둘 수 있는 저희들이 되어야 합니다.
내 모든 것을 내어 맡길 수 있는 완전한 믿음.
그 어떤 조건도 따지지 않는 완전한 믿음.
아빠를 믿고 뛰어내리는 아이와 같은 완전한 믿음.
그것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예, 주님! 믿습니다”라고 즉시 답할수 있는 저희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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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이영탁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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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주님을 위해 온 정성을 다한 성녀 마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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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마르타(‘집안의 안주인’이란 뜻)는
마리아와 라자로의 누이로서 베타니아에서 살았다.

이들은 예수님과 절친한 사이로서 주님께서는 그들을 무척 사랑하셨으며, 주님께서 가실 때에는 대부분 그들의 집에 머무르시곤 하셨다.

이들의 행적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으나, 루카 복음(10장 38절-42절)과 요한복음(요한 11장 1절-45절, 12장 1절-11절

)에 기록되어 있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마리아와 라자로는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에 프랑스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마르타는 요리사의 수호성녀이다.

복음에 따르면
성녀 마르타는 주님께 대한 깊은 믿음을 지닌 분이었다. 그녀는 “주님께서 구하시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하느님께서 다 이루어주실 줄 알았을”(요한 11장 22절) 정도로 주님께 대한 깊은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믿었으며”(11,24)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것을 믿었다”(요한 11,27).

이러한 그녀의 믿음은 가히 절대적이었다.
그녀의 믿음은 다른 어떤 사도들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 그녀는 진정 예수님을 마음속 깊이 주님으로 모셨으며, 성모님처럼 주님의 종으로 살았다.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하여 먼저 주님께 말씀드렸다.

오빠 라자로가
앓고 있을 때에도 그 소식을 멀리 떨어진 주님께 가장 먼저 알려드렸다(요한 11,3). 사람이 겪는 모든 문제는 곧 주님께서 해결해주실 수 있음을 믿었기 때문에 그녀는 누구보다도 먼저 주님을 찾았던 것이다.

먼저 주님을 찾는 것,
그것이 참된 신앙인의 길이다. 자신의 생각과 뜻이나 이웃의 도움을 받기보다 먼저 주님께 말씀드리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자세가 신앙인의 참된 자세이다.

또한 그녀는
주님을 모시기에 온갖 정성을 다했다.

주님께서 베타니아에 오셨을 때에 그녀는 주님을 자신의 집에 모시고 정성을 다해 모셨다(루가 10,38-42). 그녀의 마음속에는 온통 주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여 무엇이든지 주님께서 필요하신 것을 해드리고자 분주히 행했다.

그녀는
주님을 위하여 많은 일에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주님을 위해 너무 신경을 썼기 때문에 여러 가지 걱정을 할 정도였다(루가 10,41). 그렇지만 바쁜 가운데에서도 틈틈이 발걸음을 멈추고 주님과 말씀을 나누었다(루가 10,40). 기도란 곧 하느님과의 대화이다.

마르타는
바쁜 가운데에서도 주님과 말씀을 나누며 기도하기를 잊지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녀에게 무엇이 필요한 것인가를 잘 가르쳐주셨다. “마르타, 마르타,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는 주님의 말씀은 그녀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친절하게 가르쳐주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즉,
주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행하는 것도 소중하지만, 주님과 함께 머무르고 주님의 말씀을 편안히 듣는 것 또한 대단히 소중함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그녀는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한 걸음 더 주님께 가까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주님께서는
주님을 중심으로 살고, 주님께 대한 믿음으로 사는 그녀를 당신의 친형제요, 자매이며, 가족으로서 사랑하셨다. 라자로의 죽음을 보고 눈물을 흘리실 정도로 그녀의 가족을 그처럼 많이 사랑하셨다.

오늘 마르타 축일을 보내면서 마르타처럼
주님을 진정 나의 주로 모시는 종이 되어 주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참된 신앙인이 되자. 바쁜 가운데에서도 가끔씩 발걸음을 멈출 줄 아는 신앙인이 되자.

내가 겪는
모든 문제를 먼저 주님께 아뢰고, 주님의 말씀을 듣는 신앙인이 되자. 내가 무엇을 행함으로써만 주님께 사랑과 정성을 다하기보다, 주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채우며, 주님과 함께 행하는 신앙인, 주님께서 내 안에서 행하시도록 하는 신앙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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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경규봉 신부
  |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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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마르타의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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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많은 교우분들이 사제들에게 요구하는 것 중의 하나가 개신교 방송에 나오는 목사들과 같은 설교를 요구합니다. 물론 강론과 설교가 같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신자들이 원하니 도대체 어떻게 설교를 하길래 우리 신자들이 그런 모습을 원할까 싶어 시간이 나면 가끔 개신교 방송을 봅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유명한 목사님이 하는 설교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마르타와 마리아의 신앙을 비교하면서 설교를 하시는데, 그의 오빠 라자로의 죽음과 연관된 오늘 복음을 가지고 풀이를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예수님께서 마르타가 처음 마중 나왔을 때 라자로를 살리시지 않고, 마리아가 마중 나온 다음에야 살리신 것은 마리아의 신앙이 훌륭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마르타의 신앙은 부족한 신앙이라면서 말입니다.

사실 저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마르타의 신앙, 특히나 공동체에 있어서 마르타의 몫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들이 마리아와 같은 신앙만을 지니려고 한다면 공동체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더욱이 마르타의 오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마르타의 신앙이 부족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습니까? 마리아와 마르타 그들의 신앙은 우열을 따질 수 없습니다. 다만 그들은 공동체에서 자신들이 하는 일의 몫이 다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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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여성국 신부
  | 07.26
461 42.8%
[춘천] 주님께서 함께 계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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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위급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주님, 제발 도와주세요”라고 부르짖는다. 정말 간절히 바라고 간구하면 무엇이든지 들어주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하는데 주님은 이미 모든 것이 이루졌다고 말씀하신다.

오늘 마르타는 오빠의 죽음을 받아들이면서도 주님께서 함께 계셨다면 그 모든 것이 해결되었을 것이라고 자신의 믿음의 상태를 알려드렸다. 우리도 가끔 이렇게 말할 수는 있어도 정말로 믿음의 표현이 뜻 깊은 체험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지, 아니면 막연히 그런 생각만 했는지 그 점이 많이 다르게 드러나게 된다.

매일의 삶 안에서 우리는 예기치 않은 여러 가지 상황을 만나게 된다.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자신만이 이런 아픔을 겪는 것처럼 받아들이기 일쑤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겪는 일이라도 나에게만은 크게 보이고 견디기 어려운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오늘 마르타의 말씀은 ‘늘 주님께서 함께 계셨더라면’ 하는 고백의 마음이 더욱 깊은 심연의 뿌리에서 솟아나오는 생명의 말씀으로 승화하도록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주님을 믿으면 영원한 삶을 얻어 누릴 수 있는 참 진리의 생명이 그 안에 담겨 있는데 우리는 죽더라도 영원히 살 수 있는 그러한 삶의 초대에 얼마나 마음을 열고 있는 것일까? 현실적인 삶의 영위와 안일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주님의 말씀은 고역스럽게만 느껴질 것이다. 오늘 하루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셨더라면 하고 고백하는 마음으로 살기만 해도 생명의 힘을 얻어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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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하화식 신부
  |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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