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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평화의 모후
조회수 | 2,858
작성일 | 08.08.13
오늘은 우리 구원의 모델이시며 희망이신 마리아를 하늘에 오르게 하신 하느님의 구원업적을 기리며 경축하는 성모 승천 대축일입니다. 또한 우리 민족이 억압과 압제의 굴레에서 자유와 해방을 누리게 된 것을 기념하며 경축하는 광복절, 곧 우리 민족의 해방절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오묘하게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에 감사드리며 그 의미를 되새겨 보고 새로운 마음으로 살고자 합니다.

마리아는 놀랍고도 엄청난 하느님의 구원역사를 온몸으로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실현될 하느님 나라의 평화를 ‘마리아의 노래(마니피캇)’로 찬미합니다. 그 아름다운 내용이 오늘 복음에 기록되어 우리에게까지 전해오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마리아 개인에게 펼쳐진 해방과 구원을 노래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특별히 개입하신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과 구원, 나아가 당신이 낳고 기르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장차 펼쳐질 하느님 나라의 평화도 함께 노래합니다. 이처럼 ‘마리아의 노래’는 마리아 개인의 노래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 곧 교회의 노래이기도 합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단지 말마디만 고운 노래가 아니라 우리의 역사를 지속적으로 하느님의 자비 안에 살도록 이끌어주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의 노래’는 사제들과 수도자들만이 아니라 성무일도를 바치는 모든 교우들이 매일 저녁기도 때마다 노래하는 뛰어난 찬미기도가 되고 있습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마리아를 ‘평화의 모후(母后)’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바로 하느님 나라의 평화를 이 땅에서 이루신 ‘평화의 임금’ 예수 그리스도를 몸으로 낳으시고 기르신 어머니이시며, 그 평화의 길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시는 어머니이시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구세주의 어머니로서 모든 평화에 ‘장애가 되는 죄’에 물듦이 없이 잉태되신 분이기에 더욱 평화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시키시고 평화를 이룩하신(에페 2,13) 그 십자가 아래 함께 하셨던 마리아(요한 19,25)는 특별히 당신 아들의 평화를 나누어 받으셨습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자들까지 용서하는 아들의 조건 없는 용서와 화해를 똑같이 온몸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평화의 절정에 동참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마리아는 누구보다도 첫 번째로 아들의 부활을 몸으로 누리는 기쁨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마리아는 ‘우리의 평화이신 그리스도’(에페 2,14)를 최대로 누리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교회가 마리아에게 붙인 ‘평화의 모후’라는 칭호는 지극히 자연스런 호칭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마리아는 우리 각자에게 구원과 위로의 희망이 되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가 함께 갈망하고 누려야 할 평화의 전형도 되시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노래’에서 마리아는 당신 자신이 얻어 누렸던 하느님 나라의 평화를 노래합니다. 마리아와 함께 교회 전체가 그러한 평화를 믿고 바라고 있습니다. 이 노래에 나타나는 두 부류의 사람들, 곧 교만한 자들과 겸손한 자들, 권세 있는 자들과 보잘것없는 자들, 배고픈 사람과 부요한 사람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라져서 살게 하시려는 것이 하느님의 의도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오히려 이들 사이에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키시고 하나로 만들어 평화를 이룩하시려는 것’(에페 2,14-15)이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세상에서 실현하시고자 하신 하느님의 구원계획입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느 때보다도 참 평화를 그리워하며 목말라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폭력과 테러와 전쟁이 더욱 더 우리 주변을 위협하고 있고, 우리의 일상은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지 못하거나 갈라져서 대립하는 문화에 심하게 노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는 ‘평화의 모후’이신 마리아와 함께 상처입고 신음하는 이 세상이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평화의 길로 나아가도록 더욱 열심히 노력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에는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모든 사람을 조건 없이 포용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노력하는 일, 온갖 폭력과 테러와 전쟁을 멈추게 하는 일,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대접받는 세상을 만드는 일, 가난하고 소외된 이를 섬기는 일, 어려움에 처한 농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 병든 이를 돌보는 일, 슬퍼하는 이를 위로하는 일, 아직 하느님을 모르는 이를 일깨우는 일, 가는 곳마다 기쁨과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일, 그리고 모든 사물과 사람한테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일 등이 있을 것입니다. 최근의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면서 나는 어느 분야 어느 영역에서 평화를 만드는 일에 헌신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우리 각자가 위에서 말한 것 중 어느 하나라도 실천한다면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마태 5,9)’이 됩니다. 이런 실천을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평화”를 이 땅에 가져오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2004년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에
안동교구 권혁주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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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오르신 성모 마리아

“예수님의 어머니께서는 어느 모로든 하늘에서 영혼과 육신으로 이미 영광을 받으시어 내세에 완성될 교회의 표상이 되시는 것처럼, 이 지상에서 주님의 날이 올 때까지(2베드 3,10 참조)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로의 표지로서 빛나고 계십니다.”(교회 헌장 68항)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늘”에 오르신 성모 마리아를 통해 궁핍과 한계 가득한 우리 인간의 지상 조건을 풍요롭게 채우시고 하늘높이 드높이신 전능하신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립시다. “하늘”에서 영광을 받으신 성모 마리아의 구원을 특별히 노래하고 경축하는 오늘, “땅”에만 집착하고 살아간 나머지 “하늘”의 영광은 꿈도 꾸지 못하고 한없이 망설이는 나약한 우리 인간들을 일으켜 주시기를 천상의 모후이신 마리아와 함께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주님을 가까이 영접하고 뵈옵는 그날, 우리도 마리아처럼 천상의 복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합시다.

오늘 제1독서는 “하늘”에 올라 영광을 받으신 성모 마리아를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묵시 12,1)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교부들은 하느님과 하느님을 닮은 우리 인간의 밀접한 관계를 생각해서 하느님을 태양에, 인간을 달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마치 달이 태양의 빛을 받지 않고서는 아무런 빛을 발할 수 없듯이, 우리 인간 역시 하느님의 빛으로 인도되지 않고서는 결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이런 비유를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태양)와 우리 인간의 온전한 일치를 더욱 잘 표현하기 위해 이런 비유를 사용했을 것입니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으로 묘사된 성모 마리아의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연상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빛으로 인도되시어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시며 하느님의 말씀대로만 평생을 사셨던 성모 마리아를 충분히 연상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시고 낳으시고 기르신 주님의 어머니로서, 그 어느 누구보다도 온전히 주님과 일치를 이루셨던 마리아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열두 개의 별로 된 관을 쓰신’ 모습에서는 성모님이 하느님 백성의 열두 지파를 대표라도 하시듯이, ‘구원된 인간의 전형’(교회 헌장 63항 참조)으로 모든 면에서 우리 인간의 모범이 되신다는 사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복되신 성모 마리아께서 우리에게 언제나 ‘확실한 희망과 위로의 표지로 빛나고 계신다.’고 하니, 우리는 너무 든든하고 고맙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주님의 어머니가 되리라는 엄청난 부름을 받고 마리아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렇게 응답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간단하면서도 너무나 분명한 마리아의 이 응답 말씀에서 우리는 이미 그녀의 삶 전부를 보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마리아의 노래’(루카 1,46-55)에서 우리는 그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먼저 마리아는 비천하고 보잘것없는 자기에게 베푸신 하느님의 은총과 권능의 위대함을 찬양하며 그분께 감사드립니다(46-49). 그리고 이어서 하느님의 이러한 자비가 가난하고 겸손한 자들을 통해 이 세상에 이미 드러났으며 그 자비가 세세 대대로 우리에게까지 미치리라고 노래하며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50-55). 여기서 가난하고 겸손한 자들의 대표로 마리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모 마리아께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우리 신앙인들의 모범으로 우리 곁에 계십니다. 지금 우리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로의 표지로 빛나고 계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오랜 전통 안에서 매일 저녁기도(성무일도)중에 성모 마리아와 함께 ‘마리아의 노래’를 부르면서, 세상과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권능과 자비를 찬양하며 감사기도를 바치고 있는 것입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실제로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성모님께서는 이 구원 임무를 그치지 않고 계속하시어 당신의 수많은 전구로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얻어 주십니다. 당신의 모성애로 아직도 나그넷길을 걸으며 위험과 고통을 겪고 있는 당신 아드님의 형제들을 돌보시며 행복한 고향으로 이끌어 주십니다.”(교회헌장 62항) 우리 모두는 다시 한 번 성모 마리아를 우리 구원의 희망과 모범으로, 그리고 신앙의 동반자로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심한 혼돈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길을 잃고 헤매고 있습니다. “하늘”의 가치는 찾지 않고 너무나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가치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세상 곳곳에서는 억압 받고, 고통 받고, 굶주리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길잡이가 필요합니다. 이정표가 필요합니다. 구원과 자비의 손길이 절실합니다. 오늘 “하늘”에 올라 영광을 받으신 성모 마리아께서 이렇게 어둠 속을 헤매는 우리들에게 몸소 동반자가 되어 주시고 길잡이가 되어 주신다면 세상은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성모님의 전구로 세상이 하느님의 구원과 자비를 입게 될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와 함께, 성모 마리아를 통하여 이러한 세상과 인간 구원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합시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2007년 성모 승천 대축일에,
권혁주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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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파스카

성모 승천 대축일은 마리아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광에 동참하신 것을 기리며 경축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파스카 축제’입니다. 마리아 위에 펼치신 전능하신 분의 팔이 마리아를 구원과 영광의 하느님 나라로 인도하듯, 지상의 나그네로 순례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에게도 그 구원과 영광의 은총이 내려지기를 희망하며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날입니다. 오늘의 본기도에서 이미 우리가 바친 기도 내용을 함께 음미해 보며 그 의미를 우리 마음에 다시 새겨 보는 시간을 가져 봅시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이시며 성자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육신을 그 영혼과 함께 천상 영광에 불러들이셨으니, 저희도 언제나 주님을 그리워하며 그 영광을 함께 누리게 하소서.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천상 영광에 불러들이셨듯이 우리도 그 영광을 함께 누리게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우리는 이 기도를 바칩니다. 마리아와 함께 마리아가 체험한 하느님을 함께 고백합니다. ‘마리아의 노래’에서 마리아가 자신이 체험한 하느님을 노래하듯이 말입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46-49) 마리아에게 엄청난 큰일을 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도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마리아의 하느님이 우리의 하느님이 되시고 마리아의 파스카가 우리의 파스카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성모 승천 대축일을 경축하며 기뻐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하늘에 높이 올림을 받으시고 우리 구원의 희망과 표지가 되신 것은 무엇보다도 마리아가 어떠한 처지에서든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루카 1,45)으로 사셨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몸으로 잉태하시기 전에 이미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잉태하신 분이십니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말씀을 받아들여야 하는 그 순간부터 마리아에게는 이미 말씀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산고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통해 당신 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기로 계획하신 그 순간부터 이미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예고 말씀을 몸으로 직접 받아들이는 순간에 가서는 “말씀”의 잉태가 절정에 이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이렇게 “말씀”을 받아들이신 마리아의 믿음 덕분에 우리는 실재로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시는’(요한 1,14 참조)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말씀”은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고 할 때 그 뜻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리아를 통해 이 세상에 오셨다는 의미입니다.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시고 낳으시고 기르신 마리아께서는 누구보다도 예수님 가까이 계시면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예수님의 전 생애를 함께 하셨습니다. 특별히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당신 아드님과 함께 수난에 동참하시며 아드님의 희생 제사에 어머니의 마음으로 당신을 결합시키셨습니다.(요한 19,25 참조) 마리아께서는 이러한 어머니의 마음으로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따르는 제자들의 어머니가 되셨으며(요한 19,26-27 참조), 우리의 어머니도 되셨습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몸소 이렇게 우리 신앙의 길잡이가 되시고 우리 구원의 확실한 희망과 표지가 되십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고맙게도 마리아가 “주님의 어머니”로서 받아 누리는 특전을 교회에도 주시어 교회가 어머니로서 마리아를 닮아가도록 배려하셨으며 교회의 각 구성원인 우리 자신도 그 여정에 참여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 사도직 활동에서도 당연히 그리스도를 낳으신 마리아를 우러러 보며, 성령으로 잉태 되시어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신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통하여 신자들의 마음 속에도 태어나시고 자라나시기를 바란다.”(교회헌장 65항)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마리아께서 “은총의 세계에서 우리의 어머니가 되셨다.”(교회헌장 61항)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공의회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천주의 모친이시며 사람들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간절한 기도를 바쳐야 한다.”(교회헌장 69항)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특별히 가난한 이들의 하느님을 우리에게 알려주신 마리아와 함께(루카 1,51-53 참조) 오늘의 가난한 이들을 생각하며 다음 기도를 함께 바치도록 합시다.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가진 것이 없어서 일어서기 힘든 사람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통치자들의 잘못된 권력과 부유한 자들의 횡포에서
비천한 이들을 일으켜 주시며
우리 내면 깊은 곳에서
겸손하고 가난한 마음 언제나 샘솟게 하소서.


2008년 성모 승천 대축일에,
천주교 안동교구장 권혁주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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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되신 “주님의 비천한 여종” 마리아 !

하느님께서는 피조물 가운데 가장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자에게 당신의 눈길을 주시어 그를 당신의 종으로 삼으셨습니다.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가난한 여종 마리아를 택하셔서 구세주인 당신 아들의 거처를 마련하시는 놀라운 일을 이루셨습니다. 어떤 이는 마리아의 동정성이란 “아무것도 자신에게서 기대할 수 없고 아무것도 스스로 이룰 수 없는 가난뱅이 무지렁이들을 두루 아우르는”(게르하르트 뮐러)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비천한 여종 동정 마리아를 통해 이루신 구원의 놀라운 업적이 우리에게는 “확실한 희망과 위로의 표지”(교회헌장 68항)가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원의 기쁨을 노래한 마리아의 노래(루카 1,46-55)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안에서 이루신 구원의 역사를 그 내용으로 담고 있으며, 마리아는 구원된 하느님 백성과 일치된 마음으로 자기 자신은 물론 이미 이스라엘에게 베풀어진 구원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마리아는 구원받을 새 이스라엘, 곧 우리 자신들을 위해서도 이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노래는 이스라엘의 메시아 찬가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아 찬가 하나(이사 61,10-11)를 들으면서 마리아와 우리에게 내린 구원의 은총과 기쁨을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봅시다.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이다.
땅이 새순을 돋아나게 하고
정원이 싹을 솟아나게 하듯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민족들 앞에
의로움과 찬미가 솟아나게 하시리라.

이 메시아 찬가는 구원받은 기쁨을 겉옷에 비유함으로써 만백성에게 하느님의 영광이 미리 선포됨을 알리고 있습니다. 마치 ‘주님의 비천한 여종 마리아’를 통해 그 복이 선포되듯 말입니다. 특히 마리아의 노래 앞부분(루카 1,46-49)에서 우리는 마리아의 복된 그 기쁨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이 노래에서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48절)라는 구절에 다시 한 번 귀를 기울여 봅시다. 여기서 마리아는 하느님이 자신을 선택하여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게 하신 은총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단지 “당신 종의 비천함을 돌보셨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만족해합니다. 예수님의 탄생 예고 때처럼 자신을 “주님의 종”(루카 1,28)이라고 고백하면서 그런 은총을 받을 자격이 없는데 하느님이 굽어보셨다고 노래합니다. 하느님이 비천함을 굽어보셨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 오묘한 하느님의 섭리일 따름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라고 하면서 자신에게 내린 구원의 기쁨에 겨워 목청 돋우어 노래합니다.

그렇습니다! 때때로 우리의 존재는 너무나 비참해서 우리 안에는 하느님이 굽어보실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마리아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비참하고 가난할수록 더욱더 굽어보신다는 믿음을 마리아가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비천한 한 여종을 모든 세대가 행복하다고 일컬을 그런 분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마리아 안에서 겸손과 사랑 가득한 당신 여종을 발견하시고 그를 당신의 아들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게 하시어 복된 자로 만드신 것입니다. 마침내 그를 하늘에까지 오르게 하시어 영원한 행복을 맛보게 하시고, 영원한 생명에 들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이 행복이 마리아에게만 머물게 하지 않으시고 지금 우리에게까지 이르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일어난 성모승천의 구원 신비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리아의 노래를 함께 부르도록 초대된 교형자매 여러분, 마리아의 행복이 우리의 행복이 되도록 마리아와 같은 마음으로, 마리아와 같은 믿음으로 마리아의 노래가 우리의 노래가 되도록 그 노래 부르기를 멈추지 맙시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비천함을 굽어보시어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행복하다고 할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집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도 마리아처럼 주님의 겸손한 종이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처지에서든지 주님의 말씀만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함께 이런 신앙을 함께 고백하며 사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이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2010년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에,
권혁주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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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

마리아께서는 말씀을 잉태하시고 낳으시고 기르신 분으로 그 말씀을 이 세상에 전해 주셨습니다. 자기 자신 안에서 말씀이 잉태하고 자라고 열매 맺게 전적으로 자신을 내놓으신 분이십니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이처럼 말씀을 받아들이고 말씀과 함께하신 분은 없습니다. 마리아처럼 이렇게 “말씀으로 하나 되어” 산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말씀의 어머니”(베네딕토 16세), ‘말씀으로 사는 이들의 어머니’라 부릅니다. 마리아의 방문을 받고 엘리사벳이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칩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 45) 마리아께서 행복하신 것은 말씀을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께서는 이 믿음으로 자신의 태중에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시어 그 말씀을 이 세상에 전해 주셨습니다.(「주님의 말씀」, 124항 참조) 하느님께서는 그 말씀의 씨앗이 믿는 이들 안에서도 자라나 열매 맺게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마리아의 노래’(루카 1,46-55)는 성모님께서 얼마나 하느님 말씀에 친밀하게 하나 되어 계신지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마리아의 노래는 그 내용이 “온전히 성경의 실, 하느님의 말씀에서 자아낸 실로 짜여 있습니다. 여기에서 성모님께서 하느님 말씀에 얼마나 익숙해 계신지, 그 말씀들을 얼마나 속속들이 알고 계신지가 드러납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 말씀으로 말씀하시고 생각하십니다. 하느님 말씀이 그분의 말씀이 되며, 그분의 말씀은 하느님 말씀에서 나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모님의 생각이 얼마나 하느님 생각을 따르고, 성모님의 의지가 하느님의 뜻에 얼마나 일치되는지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 말씀에 온전히 젖어 계셨기 때문에 강생하신 말씀의 어머니가 되실 수 있었었습니다.”(「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41항)

오늘 우리는 하늘에 높이 올림을 받으신 마리아의 복된 구원을 기리며 우리도 똑같은 구원의 영광을 누리게 되리라는 희망으로 성모승천 대축일을 함께 경축하고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우리의 희망이요 우리의 길입니다. 우리가 ‘나그넷길을 걸을 때 우리를 고향으로 인도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도록’(교회헌장 62항 참조)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우리 믿음의 모델, 우리 믿음의 중개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마리아를 본받아 마리아처럼 살면 우리도 하늘에 오르는 영광을 차지할 수 있다고 약속하시며, 이 세상에서부터 같은 믿음의 축복과 열매를 나누어 받도록 배려하셨습니다. 또한 교황님은 암브로시오 성인의 말씀을 빌어서, 이러한 믿음의 복된 전통을 교회의 살아 있는 전통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상기시켜 주시고 계십니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우리에게, 신앙을 지닌 모든 그리스도인은 어떤 의미에서 자신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수태하고 출산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육체에 따라서는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단 한 분이시지만, 믿음에 따른다면 그리스도는 모든 이들의 열매이십니다.(루카 복음 해설, 2,19 참조) 그러므로 마리아에게 일어난 모든 것들은 매일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와 성사들을 거행할 때에 우리 각자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주님의 말씀」, 28항)

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주님께서는 일찍이 당신 친히 어머니 마리아와 나누신 영적인 결합에 참여할 자격과 은총을 당신을 믿는 우리에게도 베풀어 주셨습니다.(요한 19, 25-27 참조) 주님께서는 말씀을 잉태하시고 낳으시고 기르신 “말씀의 어머니” 마리아를 우리의 어머니도 되게 하셨으며, “말씀으로 하나 되어” 일상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 각자 안에서도 말씀이 태어나고 자라고 열매를 맺도록 각별히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말씀을 통하여,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친히 곳곳에 현존하시도록 하셨습니다. 말씀이 잉태하고 자라고 열매 맺는 그곳에 그리스도께서 친히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가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의 열매를 맺는다(마태 13, 23 참조)는 주님 말씀의 기적이 지금 이 순간에도 바로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는 땅은 메마른 길바닥 같고, 돌밭 같으며, 가시덤불 속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말씀을 듣거나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말씀 때문에 어떤 어려움이 닥치면 쉽게 포기하고 넘어지며,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그런 나약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마태 13, 18-22 참조) 말씀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말씀을 듣지 않는 것 자체가 죄라고 했습니다.(「주님의 말씀」, 26항 참조) 말씀을 거부하면 결국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거부하는 죄까지 범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말씀으로 하나 되는 삶을 사셨던 성모님을 본받아 말씀을 받아들이고 성장시키고 열매 맺는 삶을 통해 성모님께서 누리셨던 그 영광에 함께 참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합니다.

주님, 저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시고 좋은 땅이 되게 하소서!

2012년 8월 15일
안동교구 교구장 권혁주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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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자비의 어머니” 마리아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자비의 특별희년에 맞이하는 성모 승천 대축일은 더 의미가 깊은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어떻게 인간에게 베풀어지는지 그 오묘한 신비를 마리아를 통해 보다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자비의 특별희년을 선포하고 안내하는 「자비의 얼굴」이라는 칙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의 얼굴”(1항)이라 하시고 ‘우리가 예수님과 예수님의 자비로운 얼굴을 끊임없이 바라보면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는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안내하십니다.(8항 참조) 그리고 특히 ‘하느님 사랑의 신비에 가장 깊게 참여하고 예수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어 당신의 마음 안에 하느님의 자비를 고이 간직한 마리아’와 함께라면 보다 더 분명하게 하느님 자비의 얼굴을 뵙게 될 것이니 마리아와 함께 기도하라고 권고하십니다.(24항 참조)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기꺼이 마리아를 “자비의 어머니”, “자비의 전형”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마리아와 함께 ‘마리아의 노래’(루카 1,46-55)를 부르면서 하느님의 자비를 만나는 여정으로 함께 떠나봅시다.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49-53)

마리아는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자신을 “비천함”에서 들어 높여주신 하느님의 자비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치고 있다고 노래합니다. 그러나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은 흩으신다고 합니다. “비천한 이들”과 “굶주린 이들”은 끝까지 챙겨 주시지만 백성은 돌보지 않고 자기 실속만 챙기는 “통치자들”, 가난한 이들과 나누지 않고 자기 욕심만 채우는 “부유한 자들”은 내치신다고 합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대조되는 삶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하느님을 올바른 두려움으로 섬기지 않고 오로지 자기에게만 몰두하는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의 운명은 어떠한지, 반대로 자신들의 삶이 하느님의 자비와 권능에 달려 있음을 알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들” 곧 “비천한 이들”과 “굶주린 이들”의 구원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베풀어지는지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노래의 목적은 오직 하나입니다.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도 회개하여 “하느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되어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의 자비를 누리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이런 자비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세세대대로 이어지고 미치리라 굳게 믿으며 자기 노래를 끝맺고 있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54-55)

하느님의 자비를 갈망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리스도가 하느님 자비의 얼굴이라면 그리스도인은 당연히 그리스도 자비의 얼굴이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 자비가 드러났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는 그리스도인을 통해 드러나야 합니다. 그리고 자비를 드러내는 얼굴은 일차적으로 글자 그대로 얼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자비의 얼굴들이야말로 하느님 자비를 느끼게 하는 첫 번째 통로가 될 것입니다.’(2015년 4월 19일자 평화신문 사설 참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자비의 얼굴들이 되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먼저 하느님의 자비를 최대로 누리며 그 자비를 당신의 마음 안에 고이 간직하신 성모 마리아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당신의 마음 안에 간직하신 자비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자비의 얼굴」 24항 참조) 우리들 역시 마리아처럼, 마리아와 함께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고 하나가 된다면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현존, 곧 그리스도의 본 모습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자비의 얼굴들이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마리아를 통해, 마리아와 함께, 마리아와 같은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봅시다. 특히 가난한 형제들의 얼굴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얼굴을 알아 뵈옵고 그들이 주님의 자비를 누릴 수 있도록 성모님과 함께 자비를 청하며, 우리들을 통해 주님의 자비가 드러나도록 노력합시다. 또한 성모 마리아와 함께 우리들의 삶이 하느님의 자비와 권능에 달려 있음을 알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들”의 대열에 함께 합시다. 그리고 오로지 자기에게만 몰두하는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도 회개하여 “하느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되어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의 자비에 승복할 수 있도록 하느님의 더 큰 자비를 함께 청합시다.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 - 2016년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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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평화의 모후(母后)”이신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느 때보다도 평화를 그리워하며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남과 북의 긴장 관계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우리 한반도의 평화는 오히려 위협받고 있는 듯 전운마저 감돌고 있는 상황입니다. 남에서는 대화를 제의했는데 미사일 발사로 대응하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리들의 일상은 서로 용서하거나 화해하기보다는 오히려 서로 편을 가르고 대립하면서 갈등문화를 조장하는 듯 정말 평화는 요원하게만 보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상처입고 신음하는 이 세상이 참 평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함께 노력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고 생각됩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마리아를 “평화의 모후(母后)”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바로 하느님 나라의 평화를 이 땅에서 이루신 ‘평화의 임금’ 예수 그리스도를 몸으로 낳으시고 기르신 어머니이시며, 그 평화의 길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시는 우리들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구세주의 어머니로서 모든 평화에 ‘장애가 되는 죄’에 물듦이 없이 잉태되신 분이시기에 더욱 평화의 모후가 되십니다.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시키시고 평화를 이룩하신(에페 2,13) 그 십자가 아래 함께 하셨던 마리아(요한 19,25)는 특별히 당신 아들의 평화를 나누어 받으셨습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자들까지 용서하는 아들의 조건 없는 용서와 화해를 똑같이 온몸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평화의 절정에 동참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마리아께서는 누구보다도 먼저 아들의 부활을 몸으로 누리는 영광을 차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경축하는 성모승천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처럼 마리아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구원과 위로의 희망이 되실 뿐 아니라 우리가 함께 갈망하고 누려야 할 평화의 모델도 되시는 분이십니다.

‘마리아의 노래’(Magnificat)에서 마리아는 당신 자신이 얻어 누렸던 하느님 나라의 평화를 노래합니다. 마리아와 함께 교회 전체가 그러한 평화를 믿고 바라고 있습니다. 이 노래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곧 교만한 자들과 겸손한 자들, 권세 있는 자들과 보잘것없는 자들, 배고픈 자들과 부요한 자들이 그들입니다. 이들은 서로 원수가 되어 갈라져서 살아야 할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서로가 하나 되어 하느님 나라의 평화를 세상에 드러내야 할 사람들입니다. 원래 하느님의 계획이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버리고 그들을 화해시키고 하나로 만들어 평화를 이룩하려는 것’(에페 2,14-15)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남과 북이 서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이 땅에 평화를 이룩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도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며 특히 서로 편을 가르거나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지 말고 평화의 하느님을 섬기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6일 독일 베를린 쾨르버 재단 초청 연설에서 ‘베를린 평화구상’을 발표하고 대한민국 주도적인 역할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할 것과 이를 위한 북한의 비핵화를 주장했습니다. 그 주요 내용을 보면,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 이행, 북한체제 안전을 보장하는 한반도 비핵화 촉구, 항구적인 평화 체제 구축과 남북 합의 법제화 추진, 한반도의 신경제지도 구상, 비정치적인 교류협력사업 추진 등을 내용으로 하는 ‘한반도의 냉전구조 해체와 항구적인 평화정착’을 위한 정부의 정책방향 5가지입니다. 우리가 문 대통령의 ‘베를린 평화구상’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이것이 우리 한국천주교회의 남북관계 해법에 대한 입장과 일맥상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는 지난 6월 1일 ‘한반도 분단, 이제는 평화체제로’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고 북한체제에 대한 존중과 대화, 지속적인 남북 교류, 인위적인 통일 배제의 필요성을 확인한 내용을 봐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정치적인 상황이 어렵더라도 우리 교회는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꾸준한 대화를 하도록 정부에 촉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먼저 이 땅의 평화를 위한 일꾼들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에는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평화의 일꾼들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를 위해 우선 무엇을 구체적으로 할 수 있을지 그 일들을 함께 생각해 봅니다. 그러한 일들에는 모든 사람을 조건 없이 포용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노력하는 일, 온갖 폭력과 테러와 전쟁을 멈추게 하는 일,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대접받는 세상을 만드는 일, 가난하고 소외된 이를 섬기는 일, 어려움에 처한 농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 병든 이를 돌보는 일, 슬퍼하는 이를 위로하는 일, 아직 하느님을 모르는 이를 일깨우는 일, 가는 곳마다 기쁨과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일, 그리고 모든 사물과 사람한테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일 등이 있을 것입니다. 최근의 우리 삶을 돌이켜 보면서 나는 어느 분야 어느 영역에서 ‘평화를 만드는 일’에 헌신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 각자가 위에서 말한 것 중 어느 하나라도 실천하고 있다면 우리는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마태 5,9)입니다. 이런 삶을 통해서 우리는 이미 “하느님 나라의 평화”를 이 땅에서 이루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안동교구 권혁주 주교 - 2017년 8월 15일
  |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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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겸손의 어머니, 성모마리아

우리 구세주의 모친 마리아는 참으로 겸손하신 분이셨습니다.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셨지만 절대로 우쭐한 법이 없으셨습니다. 구세주 탄생이라는 하느님 구원 사업의 가장 큰 협조자로서 뭔가 기대하고 싶을 만도 한데 결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저 한평생 자신 앞에 벌어진 모든 일들을 마음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셨습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찾아 나가셨습니다. 언제나 하느님 앞에서 자신은 작고 보잘것없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은총과 권능의 위대함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찬양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이렇게 특별한 자격이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서 자신이 구세주의 어머니로 선택되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고 이를 신앙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점에서 마리아는 모든 신앙인들의 모범이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이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부른 ‘마리아의 노래’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46-49)

암브로시오 성인은 ‘마리아의 노래’가 “성모님의 ‘완벽한 겸손’을 가장 잘 드러내는 찬가”라고 극찬했습니다. 마리아는 철저하게 자신을 낮춥니다. 자신은 찬미를 받을 자격이 조금도 없는 존재이며 주님의 비천한 종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주님을 찬송하며 주님 안에서 기쁨을 얻어 누리는 것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굽어보셨기 때문이고, 그 굽어보심은 자신이 잘 나서가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이 그에게 베푸신 자비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자기 겸손을 가장하지도 않으며, 하느님께서 베푸신 선물을 거절하지도 않습니다. 그 선물을 받아들이기에 너무나 부족한 자신이지만 이 과분하고 크신 하느님의 은총 앞에서 두려워 도망가지도 않습니다. 마리아는 앞으로 자기 자신에게 돌아올 영광과 위대함이 모두 자신에게서가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이라는 것을 미리부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내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지나친 자신감입니다. 과학이 발전하고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해지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하느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착각에 하느님을 우리 삶의 중심에서 밀어냅니다. 하느님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기에 성모 마리아의 겸손의 덕이 더욱 그립고 아쉽습니다.

성모님을 참으로 많이 사랑했던 베르나르도 성인은 겸손의 덕을 몸에 익히기 위해 스스로 작은 규칙을 하나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새벽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제가 모든 사람 중에 가장 큰 죄인입니다.”하고 외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틈만 나면 자신의 죄를 형제들 앞에서 있는 그대로 고백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누군가 자신의 결점에 대해 말하며 모욕을 준다 하더라도 원망하지 않고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그는 성모님의 겸손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모님의 겸손을 바라보십시오. 성모님은 거룩함을 조금도 잃지 않았습니다. 그분처럼 겸손이 보증될 때만 큰 은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모님처럼 스스로 자신을 낮출 때 은총이 다가옴을 기억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성모님처럼 겸손한 이들에게 은총을 베푸십니다.”

겸손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은 우리 모두에게 참된 겸손이 무엇인지 일깨워주시고 겸손한 신앙생활이 얼마나 복된 삶인지 밝혀주시고 이끌어주십니다.

<참된 겸손은 인간으로부터 시작되지 않고
하느님의 자비로부터 시작됩니다.
참된 겸손은 하느님께서
나를 극진히 사랑하심을 인식함에게 시작됩니다.
참된 겸손은 그 사랑에 힘입어
내가 하루하루 살아감을 고백함에서 시작됩니다.
참된 겸손은 하느님을 떠나 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는 데서 시작됩니다.
참된 겸손은 내가 매일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축복과 은총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인정함에서 시작됩니다.>(양승국 신부, 「성모님과 함께라면 실패는 없다」, 생활성서, 2018, 55쪽)

오늘 우리는 하늘에 높이 올림을 받으신 마리아의 복된 구원을 기리며 우리도 똑같은 구원의 영광을 누리게 되리라는 희망으로 성모승천 대축일을 함께 경축하고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우리의 희망이요 우리의 길입니다. 우리가 마리아를 본받아 마리아처럼 살면 우리도 하늘에 오르는 영광을 차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겸손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는 특별히 겸손의 믿음을 통하여 누리는 복된 길을 미리 보여주심으로써 우리도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겸손의 믿음, 겸손의 덕행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는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라고 불러도 마땅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성모님은 겸손을 자기 신앙으로 사신 분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에게서 배워라.”(마태 11,29) 겸손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안동교구 교구장 권혁주 주교 : 2018년 8원 15일
  |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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