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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행복하십니다, 마리아여!
조회수 | 2,986
작성일 | 08.08.13
오늘은 우리 신앙과 구원의 모델이시며 희망이신 마리아께서 하늘로 들어높임을 받으신 성모 승천 대축일이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 마리아를 통해 드러난 구원의 영광이 우리를 통해서도 드러나기를 간절히 희망하면서 어머니 마리아의 승천을 경축하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이렇게 칭송한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천사 가브리엘의 방문을 받았을 때부터 마리아는 하느님의 엄청난 계획과 약속이 미천하기 그지없는 자신을 통해 이루어지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이렇게 마리아는 오로지 주님께서 우리 인류에 대한 당신 구원 계획을 실현하실 수 있도록 철저한 믿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셨기에 하늘에 올림을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이다.

마리아가 친척 엘리사벳을 방문해서 부른 ‘마리아의 노래’에서 스스로를 “주님의 비천한 종”이라고 고백하면서 자신의 선택된 삶이 하느님의 은총 덕분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한다. 그리고 지금 자기 영혼이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으로 충만해 있다는 것을 설레는 마음으로 노래하면서 우리를 그 기쁨에 초대하고 있다. 마리아의 노래처럼 이 세상에서 정말 행복한 사람은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분 섭리에 온 삶을 의탁하는 믿음을 지니며, 그래서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다. 마리아의 행복, 그것은 하느님의 뜻과 부르심에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은총인 것이다.

따라서 성모 승천 대축일은 우리에게도 커다란 위안과 희망을 안겨주는 날이다. 하느님은 아무리 보잘것없는 자라 할지라도 믿음 위에 굳건하게 서 있는 사람을 통하여 당신의 큰 능력을 드러내시고, 당신의 도구로 쓰시어 영광을 주신다는 사실을 성모 승천을 통해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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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김흥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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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렸을 때, 명절 때만 되면 저희 집에는 많은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손님들이 때로는 선물도 들고 오셨는데, 그 선물 중에서 최고의 선물은 바로 ‘종합선물과자세트’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때만 해도 과자가 귀한 시절이었고, 그래서 먹고 싶은 과자도 얼마나 많았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종합선물과자세트에는 과자뿐만 아니라, 사탕, 영양갱, 젤리, 껌 등……. 그리고 운이 좋을 때에는 조그마한 장난감까지 이 선물세트 안에 들어있었으니, 이 선물세트가 들어오길 얼마나 기다렸을까요? 따라서 종합선물과자세트를 가지고 오시는 손님이 너무나 멋지고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었었지요.

하지만 이 종합선물과자세트의 포장을 뜯은 뒤에는 항상 아쉬움이 남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큰 종합선물박스인데, 그 안에 들은 내용물은 생각보다 너무나 적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과자는 그렇게 많지도 않았습니다. 절대로 돈 주고 사먹지 않는 과자가 그 종합선물세트 안에 들어있으니 실망도 컸지요.

어쩌면 우리들은 이런 종합선물과자세트만을 추구했었던 것은 아닐까요? 겉은 크고 화려해 보이지만 풀어 놓으면 별 것도 아닌데, 그렇게 겉으로만 그럴싸한 삶이 최고라는 어리석은 생각만 가졌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오히려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과자 한 봉지에 더 큰 기쁨과 행복을 얻는 것처럼, 비록 겉으로는 초라하고 작아 보이지만 그것이 나를 이 세상에서 살게 하는 커다란 버팀목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종합선물과자세트를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단번에 겉만 크고 화려한 인생 안으로 들어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단번에 주어진 인생이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줄까요? 오히려 더 큰 실망감으로 인해서 힘들지 않을까요?

오늘은 성모 승천 대축일입니다. 바로 주님의 어머니이신 동정 마리아께서 하느님에게서 받으신 영광을 찬미하는 날입니다. 이런 성모님이 부럽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받아 승천까지 하셨으니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이러한 영광이 단 한 번의 결과로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잉태 순간부터 예수님의 죽음 때까지 성모님께서는 엄청난 고통을 당신의 가슴으로 안으셔야만 했습니다. 그러한 모든 고통과 시련 끝에 성모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부러움을 받을 수 있는 영광을 얻을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성모님의 삶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면서, 성모님과 같은 고통과 시련을 이겨낼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던져 봅니다. 그리고도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을까요? 그러한 순간에도 성모님처럼 하느님 아버지께 찬양과 기쁨의 찬미를 드릴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종합선물세트를 받을 수 있는 영광이 주어질 것입니다.

조명연 신부
  |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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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가톨릭교회의 4대축일 중 하나인 성모승천대축일을 맞아 성모님의 따스한 사랑과 축복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가득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한국인에게 성모승천대축일이 더욱 경사스러운 이유는, 36년간 일제하에서 고생하던 한 민족이 해방을 맞이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 중에 계시면서도 마리아께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하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요한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19,27)

이 말씀이 얼마나 중요하면 그 고통의 순간에, 어머니께 그리고 요한에게 말씀하셨겠습니까? 손과 발 그리고 머리에서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피로 인해서 이미 말할 힘을 다 잃어버린 상태였지만 힘을 다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말씀하셨지만 요한만을 위하여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를 위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는 성모님을 어머니로 얻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사람, 특히 고아들은 언제나 고향 같은 어머니를 그리워합니다. 성모님은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그분은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시고, 걱정하고 계시고, 사랑하고 계십니다. 고난의 순간에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졌을 때에, 예수님 곁에서 함께 걸으시며 위로와 힘이 되어 주신 성모마리아는 지금도 우리들의 곁을 지키십니다. 예수님의 부탁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고통 속에서 걸을 때, 우리를 평소에 지지하던 사람들, 좋아하던 사람들이 다 떠나갈지라도 성모님은 묵묵히 우리와 걸으시며 함께 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모님을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1965년 12월 8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마치면서 하신 폐회 연설에서 바오로6세 교황님은 성모님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우리는 공의회를 마치면서 지극히 거룩한 마리아, 그리스도의 어머니, 하느님의 어머니, 우리의 영적 어머니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원죄없으신 거룩한 동정녀, 즉 더럽힘이 없는 놀랄만하게 완전한 분이십니다. 성모님은 이상적임과 동시에 현실적인 참다운 여성, 하느님의 완전한 모습이요, 모든 피조물에게 있는 더러움을 갖지 않으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 겸손한 여성, 우리의 자매, 하늘의 어머니, 천상의 모후, 무한한 아름다움의 신성한 거울인 이 여인을 바라보면서 공의회를 마치며, 나의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공의회 후의 일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원죄 없으신 마리아의 아름다움은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모범, 감미로운 희망이 아니겠습니까?” 참으로 성모님께 대한 찬사를 아름답게 표현한 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황 바오로6세는 진정 성모님을 사랑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공의회 제 3회기 폐회연설을 하실 때에도, 몇 페이지에 걸쳐 성모님께 관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중 몇 부분을 인용하면 “성모님의 영광과 우리의 위안을 위해, 나는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 즉 신자들과 사목자들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를 믿는 백성의 어머니로 선언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백성이 지극히 감미로운 이 칭호를 갖고 앞으로 더한층 성모님을 숭경하고 성모님께 탄원하기를 희망합니다.”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로 선언함으로서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되심을 다시 천명합니다.

교황님들이 다 그러하시지만 바오로6세 교황님은 늘 성모님의 보호에 의탁하며 사신 분입니다. 우리도 성모님을 사랑하며 상경지례로 높이 받들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간략하지만 분명하게 성모승천을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침내, 원죄의 온갖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시어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는 지상생활의 여정을 마치시고, 육신과 영혼이 하늘의 영광으로 올림을 받으시고, 주님께 천지의 모후로 들어 높여지시어, 군주들의 주님이시며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자이신 당신 아드님과 더욱 완전히 동화되셨다. 거룩한 동정녀의 승천은 당신 아들의 부활에 특별히 참여한 것이며,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을 앞당겨 실현한 것이다.”(966항) 성모승천의 핵심적인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비잔틴 전례, 성모영면 축일 마침기도에서는 “오 천주의 성모님, 당신은 출산 때에도 동정을 보존하셨으며, 돌아가시면서도 세상을 떠나지 않으셨나이다. 살아 계신 하느님을 잉태하셨고 기도로써 우리를 죽음에서 구해주신 당신은 생명의 근원에 결합되셨나이다.”(966항)라고 성모님의 승천을 기도합니다.

성모님은 우리의 변호자이시고 원조자, 협조자, 중개자가 되십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모님께 간구하여 그 응답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흠숭 받으셔야 할 주님의 영광을 훼손하면서까지 사람들의 영광을 얻고자 원하지 않으십니다.

성모님은 겸손한 분,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성모님을 통해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얻으려 해서도 안 되며, 남의 이익을 훼손하며 자신의 이익이 되는 일을 위해서 성모님을 이용하려 해서도 안 됩니다.

성모님은 가톨릭신앙의 핵심이 되고자 원하지 않으시고, 그 핵심을 위하여 헌신하고자 하십니다. 그 핵심이란 하느님이십니다. 곧 성부 성자 성령이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매 주일 신앙고백을 할 때도 성부, 성자, 성령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모님을 사랑할 때 성모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알고 그분의 뜻을 채워드리고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성모님은 죽음을 이기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아들을 낳으신 분, 그러므로 원죄의 물듦이 없으셨기에 죽음의 골짜기를 가실 이유가 없었습니다. 성모마리아는 이미 천국에서 하느님을 모시고 영원히 사십니다.

우리도 언젠가 성모님을 모시고 살 그 때를 기다립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토록 성모님과 함께 할 그 기쁨을 미리 맛보는 성모승천대축일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007년 성모승천대축일에
최기산 보니파시오 주교
  |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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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낮이었습니다. 제 방을 둘러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게 돼지우리야, 사람 사는 곳이야?”

너무나도 지저분한 저의 방. 책상 위에는 빈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책들이 널려 있고, 또한 쓰레기들도 곳곳에 놓여 있는 이 방을 보면서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창밖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어서, 오늘 낮 시간 동안은 방청소 및 정리를 하겠다고 다짐했지요. 커다란 박스를 갖다놓고서 버릴 것들을 분류해서 넣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양이 너무나 대단합니다.

이제 저녁이 되었고, 저녁미사 때문이라도 방 정리를 그만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조그마한 방에, 그리고 나 혼자 사는 이 살림에 왜 이렇게 정리할 것이 많은 지……. 정리할 것은 아직도 많았지만, 나중에 다시 하겠다는 생각으로 마무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쓰레기가 자그마치 커다란 박스 2개에 가득 찹니다.

쌓여 있는 쓰레기를 보면서 참으로 신기하더군요. 이 쓰레기들을 과연 어디에서 나왔는지……. 왜냐하면 이렇게 많은 쓰레기를 버림에도 불구하고, 방이 아주 깔끔하고 정리정돈이 잘 되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녁미사로 인해서 완전하게 방 정리를 끝내지 못했고 또한 제가 정리를 잘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의 쓰레기를 버리면 엄청난 변화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가 못하다는 점이 너무나 신기하더군요. 아마도 완전히 집을 뒤집어 놓아서 청소하지 않고서는 깨끗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정리정돈을 잘하는 습관을 들이자라는 다짐도 갖게 됩니다.

이렇게 방 정리를 하면서 문득 우리들의 죄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커다란 박스 2개의 쓰레기를 버려도 방이 별로 깨끗해지지 않는 것처럼, 우리들의 죄 역시 웬만큼 뉘우치지 않고서는 내 마음이 깨끗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변화, 완전한 뉘우침이 있을 때에야 누가 봐도 깨끗한 내가 될 수 있으며, 죄 많이 짓고서 한 번의 고해성사를 통해서 사죄 받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평소에 주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성모님께서 하늘에 오르심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성모님께서 이러한 영광을 받으신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바로 항상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려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께 대한 믿음을 놓지 않았으며, 온갖 고통과 시련의 순간에서도 우리들처럼 불평과 불만을 터트린 것이 아니라 더욱 더 주님께 대한 신뢰를 보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한 깨끗한 마음이 바로 성모님의 영광을 가져오게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성모님의 모습을 기억하기 보다는, 단순히 하느님의 어머니로써만 그리고 하늘로 올림을 받는 영광의 순간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영광은 고통과 시련 없이는 있을 수 없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죄로부터 자유로우신 성모님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마음도 정리 정돈해야겠습니다. 죄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말이지요.

조명연 신부
  |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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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항아리가 되지 않게 도와주세요"

오늘은 한국천주교회가 수호자로 모시고 있는 성모님 승천 대축일이며 또 우리 민족이 해방을 맞이한 날이기도 합니다. 이 뜻 깊은 날을 맞이해 성모님 은총과 축복이 모든 교우들의 가정에 가득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마리아의 노래' 서문은 주님 잉태 기별을 받은 순간부터 마리아가 경험한 신앙체험으로 시작합니다. 마리아는 주님을 찬송하는 이유가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48)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마리아는 자신을 주님의 종으로 표현합니다. 마리아는 고통스런 종의 처지를 돌보시는 주님의 사랑에 감사드리고 있으며, 자신의 삶을 인도하시는 분이 누구신지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마리아는 과거의 삶을 딛고 일어나 미래의 희망을 고백합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48-49).
 
마리아는 자신만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그 행복이 모든 사람들에게 펼쳐지게 된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삶만 바라보는 이기적인 마음을 넘어서, 주님의 모든 백성과 구원의 역사를 함께 조명하고 있습니다. 주님 은총을 깨닫게 된 마리아는 지금 주님이 얼마나 위대한 사랑으로 당신 자녀들을 사랑해 주셨는지, 그 신비를 밝힙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루카 1,51-53).
 
우리는 여기서 마리아가 깨달은 주님 마음을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주님 마음이란 거룩하신 분으로만 여겨져, 우리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주님께서 당신 자녀들의 고통스런 처지를 결코 버려두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고통스럽고 낮은 모습으로 사셨지만, 주님께서 그분을 들어 높이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모 승천의 진정한 의미일 것입니다.
 
요한 23세 교황님의 「영혼의 일기」에 이런 기도가 적혀있습니다.
 
"오, 주님. 제가 물을 담아두지 못하는 깨진 항아리가 되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현세의 좋은 것들을 즐기느라 눈이 멀지 않게 하시고, 가난한 이들, 병자들과 고아들의 절박한 외침이 제 마음을 그냥 지나치지 않게 해주십시오."
 
깨진 항아리는 내면의 삶과 외면의 삶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고 봅니다. 깨진 항아리는 마음이 갈라져 자신의 실제 모습을 허황되게 평가해 진실에 눈멀게 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결정과 행동만이 옳다고 생각해서, 그러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미워하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물을 담지 못하는 깨진 항아리가 된다면, 자신의 실제 모습을 외면하게 돼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눈을 가리게 될 것입니다. 온전한 사랑의 마음이 둘로 갈라졌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도 이렇게 증언합니다.
 
"어둠 속에서 빛이 비추어라 하고 이르신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비추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2코린 4,6-7).
 
항아리나 질그릇은 모두 깨지기 쉬운 것들입니다. 곧 우리의 영적 내면이 걸려 넘어지게 하는 세상의 유혹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깨지기 쉬운 항아리나 질그릇 속에 주님을 식별하는 빛을 주신 것입니다. 그 빛은 세상의 유혹을 이기고 생명의 원천이 되게 하는 주님의 놀라운 힘인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부서지기 쉬운 존재임을 아시면서도, 우리에게 희망의 빛을 주십니다. 성모님도 똑 같은 희망을 주십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모님께 간구하여 그 응답을 얻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모님이 인간적 고뇌와 고통을 갖고도 주님의 부르심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응답했다면,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신앙은 수동적 응답이 아니라,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라고 하신 성모님처럼 능동적 응답이 필요한 것입니다. 삶에 어려운 시련이 닥치더라도 성모님께 기도하면 기대 이상의 것을 주십니다. 그러기에 성모님은 우리들의 어머니가 돼어려움과 시련에서 우리들을 보호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뜻깊은 성모 승천 대축일에 성모님께 기도드려봅니다.
 
천주의 성모여 당신의 보호에 우리를 맡기오니, 어려울 때에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지 마시고, 모든 위험에서 항상 우리를 구하소서. 영화롭고 복되신 동정녀여!

홍승모 신부
  |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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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성모님

사목을 하면서 정확하게 숫자를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성모님을 주제로 미사 강론이나 훈화를 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만큼 성모님에 대한 더 많은 자료를 찾아보게 되는데, 성경이나 전승기록을 뒤져봐도 성모님의 행적에 대해서는 아주 적은 정보밖에는 찾을 수 없습니다. 신학생 때는 물론 사제로 살고 있는 지금도 성모님의 이와 같은 ‘숨어 계심’의 특징은 저에게 많은 의문을 던져 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대단히 공경하고 기억하는 성모님이 왜 역사 안에서는 당신의 모습을 꼭꼭 숨기고 계실까?

성모님은 예수님의 어머님이라는 사실 말고는 알려진 삶이 별로 없습니다. 그나마도 조연급도 안 되는 수준입니다. 루카복음에 나오는 성모님의 일화는 아마 성모님을 조금 더 알고 싶어 하는 신자들의 갈망을 채워주기 위해 편집된 이야기 같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특별히 배려하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사도 요한이 성모님을 모시고 지금의 터키(에페소)지역으로 가서 오랫동안 함께 사셨다고 하는데 장수를 누렸을 것이라고 추측되는 전설과는 달리 성모님에 관한 자료는 너무 단편적이고 제한적이라 이야기의 틀 속에서 엮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성모님의 일생은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심’, ‘침묵함’으로 밖에는 이해할 길이 없습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만 봐도 조금 인기 있고 유명한 사제들의 경우 많은 신자들이 그 사제의 부모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소위 모십니다. 그래서 때론 어느 사제 엄마가 이랬다저랬다 하며 공동체의 가십이 되기도 합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의 어머니로서 좀 화려하게 역사의 무대에서 조명을 받고 아들 후광을 입고 가끔 폼나게 한 말씀 하셨을 수도 있었을 텐데 성모님으로부턴 속된말로 코딱지만큼도 그런 기미를 찾아낼 수가 없습니다.

사제로 살면서 저는 이 보이지 않는 성모님에게서 점점 더 매력을 느낍니다. 보이지 않는 성모님이 더 많은 말씀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분의 침묵이 오히려 더 큰 무게로 다가오고 삶의 책임감을 어깨에 지어주는 것 같습니다.

요즘 저를 비롯해서 교회의 많은 봉사자들을 보면 마치 세상을 향해 “나 좀 봐줘, 나를 알아줘”하고 부르짖는 것 같습니다. 작은 것도 드러내려 하고, 사실보다 과장하고, 남과 비교해서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려고 합니다. 따지고 보면 비천할 뿐인 자신을 왜 그렇게 화려하게 기억하고 기념하려고 하는지….

성모승천 대축일인 오늘 교회의 봉사자들은 우리들 삶의 바로미터인 성모님의 일생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소박, 겸손, 가난, 침묵, 헌신. 오늘날 우리 교회가 잃어가고 있는 가치인 것 같습니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자신을 한껏 드러내고 온갖 하고 싶은 욕구를 다 채우면서 하느님을 이야기하기가 점점 어려운 시대인 것 같습니다.

정병덕 라파엘 신부
  |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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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상 위에 뚜껑으로 가려져 있는 항아리를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지나가는 사람 두 명에게 “이게 무엇이오!”하고 물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이 항아리를 자세히 살펴보더니만 대답합니다.

“청자 항아리군! 꽤 오래된 골동품이네요. 값이 제법 나가겠는데요?”

두 번째 사람은 항아리의 뚜껑을 열어서 속을 들여다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또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을 맛도 봅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술이 담겨 있는 청자 항아리입니다.”

누가 더 그 항아리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야기했을까요? 당연히 두 번째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두 번째 사람의 모습보다는 첫 번째 사람과 같이 겉모습만 보고서 판단하고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 방법이 훨씬 쉬우니까요. 그러나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속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앞서 항아리를 정확하게 이야기하기 위해 뚜껑을 열어 냄새도 맡아보고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을 맛도 보는 수고로움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의 삶을 정확하게 알 수 있게 해주는 수고로움을 피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수고로움을 너무나도 싫어하는 우리들입니다. 특히 사람에 대해서 그렇지요. 저 사람의 또 다른 모습은 보는 수고로움은 생략한 채 그냥 판단하고 단죄할 때가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주님의 자리는 사라지고 맙니다.

수고로움이 없는 행동은 제대로 바라볼 수 없는 것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도 경직되게 만들어 아무것도 못하게 만듭니다. 제가 학창 시절에는 운동을 꽤 한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습니다. 축구, 야구, 농구, 족구, 탁구……. 어느 것 하나 못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지요. 그런데 지난 본당 캠프 때 편을 갈라서 축구를 하면서 ‘예전의 날렵했던 나는 어디 갔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을 발에 제대로 맞출 수가 없는 것은 물론 조금만 뛰었는데도 숨이 목까지 차오르면서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신부가 된 후 축구를 한 적이 거의 없었고 그래서 이렇게 몸이 굳어 버린 것이지요.

사람들에 대한 사랑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사랑의 노력도 하지 않으면 이렇게 딱딱하게 굳어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약간의 수고로움은 경직된 나를 부드럽게 해주는 것은 물론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직접 보여주셨던 사랑의 실천을 할 수 있는 원천이 됩니다. 그 결과 이 세상 곳곳에 계시는 주님을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이하면서, 성모님을 떠올려 봅니다. 성모님은 당신에게 주어진 수고로움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의 외아들을 잉태했음에도 불구하고 편한 길로 가려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 세상의 영광보다는 고통과 시련이 가득한 수고로움의 연속인 그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 결과 오늘 우리가 기념하듯 영광의 자리에 오르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내 앞에 놓인 수고로움을 피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 수고로움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면서 그 길을 힘차게 걸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으며, 사랑을 이 세상에 뿌리 내리도록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랑이 뿌리 내릴 때 우리 역시 성모님처럼 영광의 자리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조명연 신부
  |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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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갑곶순교성지에서 생활할 때의 일 하나가 떠올려 집니다. 처음에는 신자도 없고 또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없어서 많이 힘들었었지요. 아무튼 갑곶성지로 발령받은 뒤,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밤에 잠을 자고 있는데 ‘쾅’ 소리가 나 놀라서 깼습니다. 워낙 외진 곳에 위치하고 근처에 사람도 없는 아주 조용한 성지였기 때문에 이런 소리가 들릴 이유가 없었거든요. 순간 긴장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도둑이 들어온 것 같았거든요. 가슴이 콩닥거리며 숨이 막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문득 경당에 놓여 있는 성체가 생각났습니다. 혹시 열쇠로 잠겨있는 감실을 보고서 값비싼 보물이 들었을 줄 알고 뜯으면 어떻게 할까 싶었지요. 그래서 일부러 사람이 많은 것처럼 라디오를 크게 틀어 놓고, 소리를 지르면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밖으로 나간 저는 혼자서 웃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도둑이 들어온 것이 아니라, 제가 창문을 열어 놓아 바람에 의해 화분이 넘어져 깨진 것이었습니다. 별 것도 아닌 것을 혼자서 생각하고, 혼자서 결론 맺고, 혼자서 떨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생각이 나의 감정과 행동을 지배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가가 중요합니다. 즉, 행복한 생각을 하면 행복해지고, 불행한 생각을 하면 불행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행복한 생각을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행복한 말을 하는 습관이라고 하더군요. 사실 뇌는 한번 들었던 소리를 기억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답니다. 겉으로는 아닌 것 같지만, 무의식이라는 이름의 창고 속에 모두 저장되어 들었던 내용들이 필요할 때 툭 튀어나온답니다. 따라서 행복한 말을 하고, 행복한 소리를 들을 때 정말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성모 승천 대축일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이 지상 생활을 마치신 다음 하늘로 부르심을 받아 당신이 직접 오르신 것을 기념하는 날인 것이지요. 그런데 성모님께서 이런 영광을 받으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간적으로 객관적으로 볼 때 성모님의 삶은 정말로 행복한 삶이었다고 말하기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행한 삶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모님의 말과 생각은 항상 행복과 연결되어 있어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말씀과 행동을 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엘리사벳을 만나서 ‘성모찬송’이라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십니다. 아직 어린 나이, 또한 미혼모가 될 수도 있는 상황, 불안한 미래를 간직할 수밖에 없는 순간에서도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십니다. 왜냐하면 항상 하느님과 함께 하시고 하느님의 뜻을 찾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모승천이라는 큰 영광도 얻으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을까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과연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것일까요? 하느님과 가까울수록 행복이라는 것도 내게 가까이 다가올 것입니다.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08.15
449 3.6%
어제는 몇몇 신부님들과 함께 옛 은사 신부님을 찾아뵈었습니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오랜만에 신부님의 주옥같은 말씀을 많이 듣게 되었지요. 특히 우리들을 향해 “열정을 가지고 살라”는 말씀이 지금까지 제 마음 깊숙이 울립니다. 신부님께서는 성경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이 열정이 있었던 사람이었음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특히 병자들, 세리, 창녀 등등 당시에 손가락질을 받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난 뒤에 뜨거운 열정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엘리트였던 바리사이, 율법학자, 대사제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기득권만 누리려고 했을 뿐 열정이 없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엘리트를 당신의 제자로 뽑은 것이 아니라, 못나고 부족해도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뽑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사제들이 이 열정을 잊어버린 것 같다고 하십니다. 편하고 쉬운 것을 선택하며 합리적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가진 기득권만을 유지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보다는 편하고 쉬운 일을 선택하려 했으며, 낮은 자리에서 겸손하게 살기 보다는 높은 자리에 있고 싶어 하는 교만이 생겼을 때도 분명히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열정 없이 그냥 시간의 흐름에 내 몸을 맡기고 말았을 때가 있었음을 반성합니다.

오늘 성모승천 대축일의 주인공이신 성모님을 묵상해 봅니다. 성모님 역시도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사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 굳은 믿음을 가지고 받아들이셨습니다. 예수님을 잉태하리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천사의 말을 듣고 이집트로 피신하였을 때, 성전에 예수님을 봉헌하시면서 예언자 시메온으로부터 가슴 아픈 말을 들었을 때, 예수님을 성전에서 잃어버렸을 때, 예수님이 미쳤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찾아뵈었을 때,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죽음을 직접 목격해야 했을 때 등등.... 이 모두가 포기하고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은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굳은 믿음으로 이겨내시지요. 웬만한 열정 없이는 불가능한 상황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오늘 우리들이 기념하듯, 하늘로 승천하시는 커다란 영광을 얻으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어떠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고통과 시련 가운데에서도 희망과 기쁨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요즘처럼 더운 여름날에 자전거를 타면 사람들은 이상한 눈으로 쳐다봅니다. 가만히 있어도 더운데 왜 저렇게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자전거를 타느냐는 것이지요. 그러나 정작 자전거 타는 사람은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 기쁘고 즐겁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열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그저 제3자가 되어 바라만 볼 뿐입니다. 그에 반해서 열심히 직접 행하는 사람은 뜨거운 열정으로 인해 어렵고 힘들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어떤 사람이 되겠습니까? 열정이 있어야 이 세상을 쉽게 살 수 있습니다.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08.15
인천교구 민경덕 신부 1 7.2%
군종신부로 살고 있을 때,
목사님과 법사님 그리고 저까지 셋이서,
함께 법당에서 점심을 먹고, 성당 사제관에서 차를 나눈 일이 있습니다.

법당의 스님이 제 사제관을 둘러보면서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우리네 관음보살님과 참 많이 닮아있죠?"

저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예~ 성모님은 고통도 많으셨고, 불행도 많은셨는데,
마지막은 참으로 아름다우셨습니다.
하느님이 그 분을 하늘나라로 불러올리셨거든요"

목사님은 가만히 저희의 대화를 듣고 계시다가,
"성당이랑 법당이랑은 비슷한게 많네요"라고 말을 했습니다.

숨은 의미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살짝 표현한 것입니다'

그 순간 법사님이 해맑게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교회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별로 낭만이 없으신 분이신가 봅니다.

불교의 웬만한 분들은 거의 구름을 타고 있고,
성당도 성모님이 구름 위에 서계신데,
교회는 현실주의가 강한가 봅니다.

순간적으로 분위기가 어색해져서,
웃으며 말했습니다.

하느님이 사람하나 들어올렸다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더군다나 사랑하는 어머니를 당신의 나라로
멋지게 모신 일일텐데요~라고.

그리고나서 한동안 같이 밥먹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 하나 하늘로 불러오셨다는 것이
그리도 믿기가 어려운 일일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1950년 비오 12세 교황님에 의해서 성모승천 대축일은
믿을교리로 선포가 되었습니다.
이는 교회의 권위로 선포된 것이지만,
실상 교회 안에 널리 퍼져있던 신자들의 신앙을,
교회가 재차 확인 시켜주신 것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참으로 많은 것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 보이지 않는 것,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유독 믿는 것을 꺼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예수성심의 신자여러분,
믿지 않는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고,
믿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제인 저는 똑똑하기 보다는
행복한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 행복이 하느님과 성모님에 대한 것이라면,
바보의 행복이라도 좋습니다.

오늘 성모승천 대축일에 우리도 승천할 수 있는
길이 열렸음에 기뻐하며,
저와 함께 행복한 바보가 되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중에 복되시나이다" 아멘
  | 08.15
449 3.6%
코끼리를 꼼짝 못하게 묶어두는 것은 엉성하기 짝이 없는 조잡한 쇠사슬이라고 합니다. 4톤이 넘는 거대한 코끼리입니다. 따라서 힘들이지 않고 이 사슬을 끊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이 사슬에 묶여 있었던 까닭에 코끼리는 사슬을 끊어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물론 어렸을 때 코끼리는 자신을 구속하는 사슬을 끊으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힘이 없기 때문에 번번이 실패했고 결국 시도 자체를 중단한 것입니다. 즉, 코끼리는 ‘이 사슬은 내가 절대로 풀 수 없어.’라고 스스로를 조건화 시킨 것입니다.

우리 인간 역시 이 코끼리와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내 안에 담겨있는 두려움을 과대평가하며, 두려움을 떨쳐내려는 노력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내 삶에서 최고의 순간을 마음껏 즐기지 못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이 세상에 왜 보내셨을까요? 삶이 제공하는 모든 가능성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곧 자유의지를 가지고서 기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시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왜 스스로 이 삶을 내게서 밀어내고 있습니까? 바로 두려움 때문입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가 생각납니다. 사실 저는 낯선 환경이 너무나 두려워서 교실 안에 들어가는 것이 정말로 싫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두려움을 계속 갖게 되었을까요? 아닙니다.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또 함께 놀면서, 딱 하루 만에 두려움은 사라지고 가장 재미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두려움은 이렇게 내 자신이 정면으로 마주해야지만 극복할 수 있습니다. 피하려고만 한다면 삶이 내게 주는 즐거움을 느낄 수 없게 하고 이로 인해 행복할 수도 없습니다.

성모님께서 지상 생애를 마치신 다음 하늘로 불러 올라가신 날을 기념하는 성모승천 대축일인 오늘, 성모님의 삶을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성모님의 삶은 그 자체로 두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처녀의 몸으로 예수님의 잉태했을 때, 예수님을 낳을 때, 예수님과 함께 피난을 갔을 때, 성전에서 예수님을 잃어버렸을 때,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배우자인 요셉 성인의 죽음을 맞이했을 때,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아들인 예수님의 죽음을 직접 맞이해야 할 때... 두려움이 성모님의 삶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당신의 몸으로 이 모든 두려움을 극복하셨습니다.

모든 두려움을 극복하신 성모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어머니로 내어주셨습니다. 이는 곧 우리 역시 성모님의 모습을 따라서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신 배려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라면서 철저하게 순명하신 성모님의 모습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역시 두려움에서 벗어나서 주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주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2017년 8월 15일
  |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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