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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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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한가위 (추석) (음력 8월 15일) 독서와 복음
조회수 | 2,490
작성일 | 08.09.12
▥ 제1독서 : 타작마당은 곡식으로 가득하리라.
▥ 요엘 예언서 2,22-24.26ㄱㄴㄷ

22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마라. 광야의 풀밭이 푸르고,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도 풍성한 결실을 내리라.
23 시온의 자손들아, 주 너희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 주님이 너희에게 정의에 따라 가을비를 내려 주었다. 주님은 너희에게 비를 쏟아 준다. 이전처럼 가을비와 봄비를 쏟아 준다.
24 타작마당은 곡식으로 가득하고, 확마다 햇포도주와 햇기름이 넘쳐흐르리라.
26 너희는 한껏 배불리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한, 주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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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독서 :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리라.
▥ 요한 묵시록 14,13-16

13 나 요한은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은 행복하다.’고 기록하여라.” 하고 하늘에서 울려오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그들은 고생 끝에 이제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14 내가 또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그 구름 위에는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앉아 계셨는데, 머리에는 금관을 쓰고 손에는 날카로운 낫을 들고 계셨습니다.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에서 나와,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께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낫을 대어 수확을 시작하십시오. 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수확할 때가 왔습니다.”
16 그러자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이 땅 위로 낫을 휘두르시어, 땅의 곡식을 수확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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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사람의 생명은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12,15-21

그때에 예수님께서
15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18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19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20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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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사는 것과 ‘잘 못 사는 것’의 구분은 어렵습니다. 재물이 많고 지위가 높다고 잘 사는 것은 아닙니다. 성공한 삶이 될지는 몰라도, ‘잘 사는 것’과는 구분됩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대개는 잘 못 산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앙인은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때 진정 ‘잘 사는’ 삶이 됩니다. 주님께서 그의 삶을 책임져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나오는 부자는 물질적으로 풍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영혼은 메말라 있었습니다. 그에게 있어 삶이란 재물을 모으는 일이 전부였습니다. 육체는 할 일이 많았지만, 영혼은 억눌려 지내야 했습니다. ‘영과 육의 균형’이 맞을 리 없습니다. 결과는 불안과 허무입니다. 영혼이 보내는 ‘목마름’의 신호인 것이지요.

잘 사는 삶이란 ‘감사드리는 삶’입니다. 감사의 시각으로 보면 ‘어느 것 하나’ 고맙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반드시 축복이 돌아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쉽게 불평의 유혹에 넘어갑니다. 잘 살고 있으면서도, ‘다른 이’와 비교해 ‘못 산다’고 생각합니다. 잘생긴 용모인데도, ‘어느 누구’와 비교해 못생겼다고 판단합니다. 상대적 빈곤감입니다. 비교함으로써 ‘스스로’ 가난해지는 모습입니다.
감사드리는 생활을 하면 자신도 모르게 극복됩니다. 그러기에 옛사람들은 추석 명절을 만들어 억지로라도 감사드리게 했습니다. 감사만이 하늘의 기운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2009년 10월 매일미사
  |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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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물론 교무금도 많이 내고 미사도 자주 봉헌하면서 예물을 많이 바치라는 뜻은 아닙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베풀라는 말씀이지요.

루카 복음 12장에는 재산에 관련된 여러 말씀들이 담겨 있습니다. 탐욕을 경계하라는 말씀에 이어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가 소개되고, 33절에는 “해지지 않는 돈주머니와 축나지 않는 보물을 하늘에 마련하여라.”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여기에 담긴 의미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라는 뜻임이 밝혀집니다.

가진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는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이고(12,21 참조),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기보다 하느님 나라를 찾는 사람입니다(12,22-32 참조). 하느님께서는 이런 이들에게 당신 나라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앞날을 위해서만 재산을 쌓아 둘 뿐, 가진 것을 가난한 이들과 나눔으로써 하늘에 보물을 마련하지 않은 사람에게 그 재산은 영원한 생명은커녕 육체적인 생명도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우리 인생은 사나 죽으나 언제든지 하느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한 해 가운데서 가장 풍요로운 날이 바로 오늘, 한가위이지요. 농사를 짓지 않는 이들에게도 한가위는 풍성한 날이고, 가진 것이 넉넉지 않아도 음식을 장만해야 할 것 같은 날입니다.

그러나 이런 날일수록 가난한 이들은 더욱 외롭기만 합니다. 넉넉한 이들끼리 선물을 주고받기보다는, 이 한가위가 더욱 허전한 이들, 소외된 이들을 기억하는 날이 되면 좋겠습니다. 가족과 친지를 비롯해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분들을 잊지 않는 따듯한 날이 되면 좋겠습니다.

► 매일미사 2015년 9월 27일
  |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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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큰 명절 중의 하나인 추석은 중추절(中秋節), 가배(嘉俳),가위, 한가위라고도 합니다. 한해 농사를 끝내고 오곡을 수확하는 시기이므로 명절 중에서 가장 풍성한 때입니다.

①추석의 유래

추석의 유래는 고대사회의 풍농제에서 기원했으며 일종의 추수감사절에 해당합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유리왕(儒理王) 때 6부(六部)의 여자들을 둘로 편을 나누어 두 왕녀가 여자들을 거느리고 7월 기망부터 매일 뜰에 모여 밤늦도록 베를 짜게 했습니다.

8월 보름이 되면 그동안의 성적을 가려 진 편에서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대접했습니다. 이때 “회소곡(會蘇曲)”이라는 노래와 춤을 추며 놀았는데 이를 '가'라고 불렀습니다. 고려시대에도 추석명절을 지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국가적으로 선대 왕에게 추석제(秋夕祭)를 지낸 기록이 있습니다. 1518년(중종 13)에는 설·단오와 함께 3대 명절로 정해지기도 했습니다.

② 가족들이 함께 모여

추석에는 가족들이 모두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함께 정을 나누고, 서로가 서로에게 기쁨을 주게 됩니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바쁘게 살다보면 가족을 잊고 살 때가 있습니다. 추석 명절이 있기에 형제들이 함께 모일 수 있으며, 부모님을 중심으로 함께 모여 정을 나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가정이 화목한 집안은 명절에 가족이 다 모이고, 가정이 화목하지 못한 집안은 명절에 가족이 모이지 않습니다.

불편한 자리를 가지 않으려 하고, 초라한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초라하다고 자식을 반기지 않겠습니까? 부족하지만 있는 그대로 함께 할 수 있어야 하고, 더욱 열심히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명절에 기쁘게 만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③ 조상을 기억하고

추석날 아침에는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갑니다. 조상들의 무덤 앞에서 조상들을 기억하는 이유는 조상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죽은 조상을 기억한다면 살아있는 부모는 당연히 공경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데리고 꼭 성묘를 다녀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들로부터 더욱 공경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내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내 자식들은 나를 공경하지 않게 됩니다.

④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성묘가 끝나면 가족 모두가 성당으로 가서 한해의 수확에 감사하며, 조상들을 위한 미사를 봉헌합니다. 햇곡식을 거두어 먹을 수 있음을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삶의 자리를 마련해 주신 조상들께 감사를 드리는 날이 바로 추석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리는 부모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라는 자녀들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또 부모님께 감사들 드리는 사람이 됩니다.

부모가 감사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자식들은 결코 감사를 모르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외지에서 살아가면서 신앙생활을 소홀히 한 자녀들에게는 고백성사를 통해서 다시금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어야 합니다.

“자식들 길 막힐 텐디 빨리 보내야지유. 그래서 미사에는 못 데리고 가고, 또 나도 뒷정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성당에 못 가유! 조상들을 위해서 미사 예물은 봉헌했지유!”

그렇게 교육을 하면, 이 다음에 그 자식들은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죽은 다음에 자식들이 나를 위해서 얼마나 기도해 해주고, 얼마나 많은 연미사를 봉헌해 줄까요? 자식들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⑤ 추석의 놀이 : 연도

가족이 함께 모였으니 여러 가지 놀이를 하며 밤을 새우기도 합니다. 서로 즐긴다면 어떤 놀이를 하던 간에 기쁨을 줄 것입니다.

지금의 놀이 형태는 몇몇은 즐기고, 나머지는 구경하거나 뒤치다꺼리를 하는 형태입니다. 그러므로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연도”입니다.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추석의 놀이는 “연도”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연도는 놀이가 아닙니다.

하지만 가족 모두가 모여서 연도를 바치며 조상들을 기억하고, 자녀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연도를 가르치며, 조상들을 위해 기도하게 한다면, 아이들에게는 신앙이 생기고, 가풍이 생기며, 조상들에게는 큰 기쁨이 되고, 가족들에게는 한 자리에 모여 일치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므로 추석의 놀이는 반드시 “연도”가 되어야 합니다.

연도를 바치고 가족들이 둘러앉게 되면 서로가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이 됩니다. 손자 손녀들이 요즘 어떻게 살아가는지, 부모님들이 어떻게 살고 계시며, 어떻게 자식들을 키웠는지 자연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 입니다.

▥ 출처를 모름 / 이해하시기를
  |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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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절을 기쁘게 보내기 위하여

명절은 참으로 기쁜 날입니다. 함께 모여서 정을 나누고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조상들을 기억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모이면 일이 생기게 됩니다. 음식을 먹어야 하고, 정리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누구는 하고 누구는 하지 않으면 결국 다투게 되고, 이렇게 어렵게 명절을 지내다보면 명절이 시작되기 몇 주 전부터 고통을 겪게 되고, 명절을 지내고도 후유증을 앓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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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을 기쁘게 지내기 위해서는

① 수고스럽더라도 부모님들은 며느리들을 위해 조금 일찍 준비를 하고

② 며느리들은 힘들더라도 웃는 얼굴로 가족들을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③ 남자들은 자신들의 놀이에만 집중하지 말고 부엌에 들어가 음식을 같이 준비하고, 방청소나 설거지를 도와주어야 하며

④ 아이들은 게임을 하거나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지 말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어르신들의 심부름을 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⑤ 서로가 서로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잊지 않고 해야 하며

⑥ 남편들은 반드시 처갓집에 가서 장인 장모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⑦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 모두 조상들을 위한 미사에 참례하는 것입니다.

▥ 출처를 알 수 없음 / 이해하시기를
  |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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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민족 전체의 명절로

추석, 곧 한가위를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 부릅니다. 음력 8월은 가을의 정점으로 만물이 성숙하는 좋은 결실의 계절입니다. 한가위에 온갖 음식과 과실을 풍성하게 장만하는 것은 그 풍성한 결실을 나누는 우리 민족의 넉넉한 마음과 정서를 보여줍니다.

신라시대에는 8월 보름이 되면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길쌈놀이를 했다고 합니다. 양편의 길쌈 결과물이 많고 적음을 따져 내기에 진 편이 술과 음식을 마련해서 이긴 편에게 대접했습니다. 이기고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길쌈놀이를 하며 서로 땀 흘려 거둔 결실을 축복하고 나누었던 것입니다. 이때 노래와 춤을 추며 온갖 놀이를 즐겼는데, 이를 가배(嘉俳)라고 합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는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민족은 풍요로움 속에서 조상의 은덕을 기리고 밝은 한가위 달과 함께 결실을 노래하는 풍속을 지켜왔습니다.

아직도 우리에게 추석은 큰 명절입니다. 고속도로를 주차장으로 만드는 귀성 인파는 결코 줄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추석은 남쪽에서만 명절입니다. 허리가 잘린 북한에서는 이러한 풍요를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녘의 동포들도 조상의 은덕을 기리며 풍성한 음식을 나누는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하는데 그들은 한가위에도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을 뿐입니다. 물론 그들 자신의 탓입니다. 그러나 한가위를 맞는 우리는 북녘 형제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남쪽 사회가 주님께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으로 책망받지 않는 길일 것입니다.

▥ 변진흥 (새천년복음화연구소 소장)
  |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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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신라 시대부터 내려오는 한가위 명절에 우리 선조들이 표현한 풍요로움과 감사의 마음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한 해 정성껏 가꾸어 거둔 곡식을 함께 기뻐하며, 이 곡식을 얻기까지 나에게 주어진 모든 은총과 사랑에 감사하며, 함께 나누고 즐기는 민족 고유의 명절입니다.

감사의 마음은 무엇보다 먼저 받은 것에 대해서 충분히 만족하고 기뻐하는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만족과 기쁨이 없다면, 내가 드리는 감사도 의미가 반감될 뿐입니다. 그리고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오로지 나 혼자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커다란 은총으로, 그리고 주변에서 함께해 준 모든 이의 협력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아는 것이 감사의 가장 중요한 조건입니다. 또한 감사의 마음은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에, 당연히 그 몫도 함께 나누어야 하고, 그 나눔 안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 감사의 마음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등장하는 부자는 인간의 욕심이 무한함을 보여 줍니다. 그 욕심은 한편으로는 인간의 교만에서 오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에 대한 알 수 없는 불안에서 옵니다. 창고에 가득 쌓여 있는 곡식을 보고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곳간을 지으려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바벨탑이며 하느님에 대한 도전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은 불안을 떨쳐 버리지 못하며, 이것이 또한 탐욕의 출발점입니다. 한가위 명절에 추수한 것을 함께 나누며 감사와 기쁨을 나누는 것은, 나 자신을 돌아보며, 이웃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입니다.

▥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 매일미사 2017년 10월 4일
  |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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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가위입니다. 예로부터 한가위 밤이면 보름달을 보고 소망을 빌곤 하였습니다. 달은 초승달, 상현달, 보름달, 하현달, 그믐달처럼 차고 기울고 사라졌다가는 또다시 나오지 않습니까? 달은 마치 탄생, 성장, 쇠퇴, 죽음, 그리고 또다시 태어나는 것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종교성을 띠게 됩니다.

아울러 한가위에는 한 해의 결실에 감사드리곤 했지요. 우리도 보름달을 바라보며 주님의 풍성한 은총을 떠올렸으면 합니다. 보름달이 어두운 밤길을 비춰 주듯이 하느님께서 우리 삶의 어두운 면을 밝게 비춰 주시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한가위에는 떨어져 살던 가족들을 만나려고 고향으로 갑니다. 이는 새로운 힘을 받기 위함이지요. 신앙인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우리 생명의 근원인 하느님의 품입니다. 하느님 나라입니다. 한가위를 맞아 우리 삶의 근원과 최종 목적지를 묵상했으면 합니다.

또한, 한가위에는 돌아가신 이들을 기리는 시간을 가집니다. 그들을 기억하는 것은 과거 추억만을 회상하는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과거 사건이 지닌 의미를 오늘의 삶 안에서 되살려 내는 것이지요. 그가 나의 마음속에서 새롭게 살아 움직이게끔 힘을 발휘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조상을 비롯하여 먼저 가신 이들을 기억하는 일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고리가 됩니다. 동시에 온 집안을 한 식구로 묶는 구심점도 되는 것이지요. 비록 이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그들이 피운 꽃에 이어 지금 우리가 꽃 피우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또 우리의 다음 세대가 우리를 대신해서 꽃을 피울 것입니다.

►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매일미사 2018년 9월 24일
  |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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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사도가 인도에 선교하러 갔을 때의 일이라고 합니다. 그는 세공과 건축에 뛰어난 기술자였습니다. 그의 명성을 듣고 임금이 자신을 위한 새 왕궁을 지어 줄 것을 청하였습니다. 돈도 다 지불하였지만 토마스는 그 돈을 임금의 이름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화가 잔뜩 난 임금은 토마스 사도를 죽이려 하였습니다.

그때 임금의 동생이 찾아와 말하였습니다. “형님, 어제 꿈에 제가 죽어서 천국에 갔는데 제가 살 집은 매우 초라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늘 나라에서 어디서라도 볼 수 있는 큰 궁궐을 보았는데 천사는 그것이 형님의 것이고 토마스 사도라는 인물이 지어 준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집을 사기도 하고 짓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앙인과 비신앙인은 집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있습니다. 신앙인은 그 집을 하늘 나라에 짓고, 비신앙인은 땅에 짓는다는 것입니다. 땅에 지은 집은 이 세상과 함께 사라지지만 하늘에 지은 집은 영원히 남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곳간을 넓히려는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시며, 그는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이 있다면, 하느님 앞에서 가난한 사람도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가난한 사람이란 이 세상에 큰 집을 짓던 사람입니다. 지상에 큰 집을 지으려고 가난한 이들에게 자비롭지 못하게 되면 하느님 앞에서도 가난한 사람이 됩니다. 하느님과 가난한 이들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한가위에는 모든 것이 풍부합니다. 추수한 것들이 많아 기쁜 날입니다. 이 추수한 것들은 하느님 나라에서 내가 부유하게 살 집을 짓는 건축 자재들입니다. 이것들을 이 짧은 생애를 위하여 소진해 버릴 것인지 영원히 지속되는 집을 짓는 데 사용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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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매일미사 2019년 9월 13일
  |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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