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대축일/명절강론

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60 76%
[수도회] 수호 천사
조회수 | 1,982
작성일 | 08.10.14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강함’ 또는 ‘하느님의 사람’이란 뜻이고, 라파엘은 ‘하느님의 치유자’란 뜻이다. 미카엘은 ‘누가 하느님과 같으냐?’란 뜻이다.

주님 앞에 서 있는 일곱 대천사 중의 한 분인 라파엘 대천사는 토비아와 사라를 위하여 하느님께서 파견하셨다. 라파엘은 이 땅을 ‘치유하는’ 천사로 알려져 있다. 요한 5,`1­4에서 보면 “이따금 주님의 천사가 그 못에 내려와 물을 휘젓곤 하였는데, 물이 움직일 때에 맨 먼저 못에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이라도 다 나았다”라고 한다. 이 ‘주님의 천사’가 바로 라파엘 대천사라고 한다.

미카엘 대천사는 외경에 더 많이 등장하는데 주로 천상군대의 장수, 그리스도인의 보호자, 특히 임종자들의 수호자로 나타난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다니엘이 본 환시와 예언을 설명해 준 대천사이며, 즈가리야와 마리아에게 탄생을 알린 하느님의 사자다.

성경에 나오는 천사 이야기는 모두가 하느님께서 갖가지 모양으로 우리에게 관심을 쏟고 계시다는 것을 알려준다. 어릴 때 어머니는 수호천사에게 바치는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 밤늦게 어디라도 가야 할 때나 유난히 잘 넘어지는 나를 지켜주십사 어머니와 함께 드리던 기도는 주님께서 천사를 시켜 나를 지켜주신다는 든든한 믿음이었다. ‘언제나 저를 지켜주시는 수호천사여, 인자하신 주님께서 저를 당신께 맡기셨으니 오늘 저를 비추시고 인도하시며 다스리소서. 아멘.’

--------------------------------------------------------------

박강수 - 재속회 선교사
460 76%
이 시대 천사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경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그리도 자주 불평불만을 털어놓게 될까요?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그렇습니다. 남을 너무 의식하다보니 그렇습니다. 남보다 못한 내 모습이 불만족스럽고, 기대보다 못한 현실이 괴롭다보니 불평불만이 늘어가는 것입니다.

불평불만이 내부를 향해 방향을 바꿔, 스스로를 개선시키는 에너지로 승화되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불평불만은 밖으로 튀어나와 세상과 남을 향합니다. 내 삶에 대한 불만족이 나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문제가 아니라 상대나 세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주장함으로써 내 자존심을 지키려는 미성숙한 자기방어수단이 불평불만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불평불만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적당한 불평불만은 정신건강을 위해 필요합니다. 문제는 그 정도입니다. 어느 정도여야 하는데, 입만 열었다 하면 불평불만이 수돗물처럼 ‘콸콸’ 쏟아져 나오는 분들이 계십니다.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분들과 함께 있으면 에너지 소모가 상당합니다. 스트레스도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닙니다. 계속되는 불평불만에 아무런 응대 없이 가만히 있기도 힘들지 않습니까? 본의 아니게 위로 차 함께 불평불만에 동조합니다. 덩달아 ‘불평꾼’으로 변해갑니다.

반면에 만났다하면 기쁨을 주는 분들이 계십니다. 기쁨의 도구는 바로 칭찬이며 격려입니다. 활짝 핀 미소입니다. 균형 잡힌 유머감각입니다.

요즘 웃음치료가 유행입니다. 자꾸만 웃음을 잃어가는 이 시대, 참으로 바람직한 시도입니다. 웃음을 준다는 것은 건강을 준다는 것입니다. 웃게 한다는 것은 생명을 선사한다는 것입니다. 미소를 짓게 한다는 것은 구원을 주는 것입니다.

이웃들의 얼굴에 미소를 감돌게 하는 사람들, 이웃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사람들, 이웃들의 등을 기분 좋게 두드려주는 사람들, 그들은 어쩌면 이 시대 천사들입니다.

발길 닿는 그 어디든 하느님의 향기를 풍기는 사람, 그 사람 생각만 해도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그런 이웃관계를 조성하는 사람, 맑고, 풍요롭고,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사람, 그들은 어쩌면 이 시대 천사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세분의 대천사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천사란 어떤 존재입니까?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위치한 영적 존재입니다. 천사는 말마디 그대로 하느님의 심부름꾼입니다. 하느님의 사자(使者)입니다. 이 존재의 역할은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인간에게 알리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일입니다.

한 정당의 대변인이 자신의 말만 늘어놓는 것 보셨습니까? 대변인은 오직 당 대표의 말을 전하기만 합니다. 당을 대신해서, 당의 입장에서, 당의 뜻에 맞게, 당을 위해서 말을 전하는 것입니다. 천사는 어떤 면에서 하느님의 대변인입니다. 하느님의 오른팔, 하느님의 분신이 천사입니다.

오늘날 이 천사의 역할은 누구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늘을 아무리 올려다봐도 날개달린 천사는 더 이상 찾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우리에게 천사의 역할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천사의 역할을 요구하지 마십시오. 바로 내가 천사가 되어야 합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 09.28
460 76%
하느님의 천사

일본의 저명한 철학자 이나가키 료스케 교수의 <천사론>(김산춘 역, 성바오로,1999)을 읽어 보면, 천사는 신화나 동화, 혹은 문학이나 예술의 영역에 속한다는 기존의 관념과는 달리 토마스 데 아퀴노의 천사론을 바탕으로 학문적으로 천사론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인간 이해를 위해 원숭이 연구가 버젓이 학문의 세계에 시민권을 취득했는데 천사에 대한 연구가 왜 학문의 대상이 될 수 없느냐는 것이 저자의 반박입니다. 저로서도 별로 생각한 바는 없었지만, ‘신체 없는 정신’ 곧 인간 지성보다는 상위의 지성적 존재로서 순수한 정신적 존재인 천사에 대한 연구가 원숭이에 대한 연구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없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는 천사의 존재가 종종 등장을 하는데, ‘천사’(그리스어로 ‘앙겔로스)라는 말은 ‘사자(使者)’ ‘고지자(告知者)’로 번역될 수 있으며, 하느님 말씀이나 뜻을 전하는 자, 곧 하느님께 봉사하고 하느님의 메시지를 인간에게 전하며 하느님의 명령을 실행에 옮기는 천상적 존재를 가리킵니다.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천사들은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의 계획과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가브리엘(하느님의 사람·영웅·힘이란 뜻) 천사는 루카 복음서 1장에서 요셉의 약혼녀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하는 역할을 하였고, 라파엘(하느님이 고쳐 주셨다는 뜻) 천사는 토비트 5장에서 늙은 아버지 토비트의 명을 받고 메디아로 여행을 떠나는 토비아에게 자청하여 동반자가 되어줍니다.

다니엘서 10장에는 미카엘(누가 하느님 같으랴는 뜻) 천사가 이스라엘인들의 수호자로 나타납니다.

최혜영 수녀
  | 09.28
460 76%
[수도회] 꿈과 열정이 있는 사람은 모두 천사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오늘 대천사들의 축일을 지내며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묵상하다가 보니 천사들이 부지런히 또는 분주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이 마치 영상처럼 그려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천사들이란 오늘 주님의 말씀대로 하느님의 천사들이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절들인데 오늘 주님의 말씀으로는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곧 예수 그리스도께만 보내졌다는 뜻이고, 아버지 하느님과 성자 그리스도 사이만 오가는 존재란 뜻인가요?

제 생각에 사람의 아들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닐 겁니다. 하느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신 그 사람의 아들이기도 하지만 그야말로 사람의 아들들인 우리이기도 하겠지요. 그러니까 우리들 위에는 하느님과 우리 사이를 부지런히 오르내리는 천사들이 있다는 얘기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생각을 또한 합니다. 천사들과 성인들은 근본적으로 다른가? 성인들의 통공의 교리에 비추어볼 때 우리의 성인들이 죽어 천사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가? 그게 아니면 성인은 인간이 거룩하게 된 것이고 천사는 애초부터 사람과 다른 영적 존재인가?

이것을 누가 알겠습니까? 교회도 믿을 교리로 말하는 것은 영적인 세계와 존재가 있으며 영적인 존재로서 천사라는 것을 말할 뿐, 그 이상은 말하지 않으며 천사란 하느님의 전달자 역할을 하는 존재라는 것을 말할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천사들을 생각할 때마다 천사의 존재 문제에 매달리지 않고, 천사의 역할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오늘도 그 역할에 대해서만 생각합니다.

천사란 하느님의 전달자, 사절이고 그래서 그 역할을 하는 존재는 다 천사들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그래서 우리도 사람의 아들들 위에서 부지런히 오르내리는 역할을 하면 다 하느님 천사들이며 그러므로 축일을 지내는 오늘 다른 문제에 매달리지 말고 어떻게 하면 우리가 천사의 역할을 잘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천사들의 역할을 잘 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선 오르락내리락 중에서 오르기를 잘 해야 할 것입니다.

오르지 않거나 오르지 못하는 천사는 날개가 없는 천사지요. 천사 그림을 보면 거개가 날개가 있는데 그러므로 천사에게 날개가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러므로 천사가 되어 천사의 역할을 하려면 날개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날개입니까? 제 생각에 그것은 꿈과 열정입니다. 꿈과 열정이 있는 사람은 신화의 이카로스처럼 하늘까지 오를 겁니다.

다음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세상에로 내려가야 합니다. 더 친절하게 얘기하면 아기의 예수의 성탄 때 목동들에게 나타난 천사처럼 하느님의 위로와 사랑을 더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로 내려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우리가 누구의 천사가 되어야 할까요? 오늘 우리는 누가 더 하느님의 사신을 더 기다릴지, 내가 천사가 되어 오길 누가 더 바랄지 생각해보고 또 찾아가야겠습니다.

▮ 작은 형제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2016년 9월 29일
  | 09.29
460 76%
[수도회]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요한 1, 43-51)

지난번 피정 때 나는 어느 형제분과 인사를 하면서 "아무개 아니냐. 만나서 반갑고 이 피정에 와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였다. 그 형제는 내가 자기를 어떻게 아느냐고 말하면서 매우 놀라는 모습이었다. 사실 그 형제와 나는 한번도 만난 적은 없다. 다만 그 형제가 말씀 학교의 직원이 지도 하는 묵상 나누기에 매우 열심히 나오시고 아주 충실하게 준비하신다는 말을 듣고 나는 나대로 그 형제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기회가 되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리라고 생각했었다.

그 형제에게서는 뜻하지 않았던 일이었던 것이다. 우선 신부님이 자기를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해 놀랬고 그것이 무척 고마웠던 모양이다. 직원의 말에 의하면 지금도 가끔"신부님이 자기를 알아보았다."는 것에 대해 매우 자랑스레 이야기하곤 한다는 것이다.

누가 나를 알아 준다는 것은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인가 보다. 그것도 전혀 예기치 못한 사람이 평소에 자기가 존경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를 알아보고 먼저 인사를 한다는 것은 놀랠만한 일인가 보다. 왜 그럴까? 자기의 존재를 인정받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가 자기를 알아준다는 것은 그 사람한테 사랑을 받고 있고 자기가 그 사람한테 관심의 대상이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우리도 이런 경험을 많이 하였을 것이다. 어느 낮선 곳에 갔을 때 누군가 나를 알아보고 다가 와서 인사를 하거나 반갑게 맞아준 경우 말이다. 아주 어려운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나에게 나가와서 아! 누구시군요, 나는 평소에 선생님을 존경했습니다. 제가 뭐 도와드릴 일이 없나요. 아무튼 누군가가 나를 알아준다는 것은 무척이나 기분 좋은 일이다.

오늘 나타나엘이 예수님한테 처음으로 갔을 때 "보라, 저 사람이야 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라는 칭찬을 듣고 감격하여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예수님께 묻는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라는 말씀을 묵상하자.

나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몇 가지 질문이 일어난다. 예수님이 나타나엘을 보시고 금방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라고 말씀하셨다면 과연 예수님이 아시고 계신 나는 어떤 사람일까? 예수님이 나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단 한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생각해 보았다면 과연 그 때의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는가? 예수님이 나에 대해서 알고 계신다면 나는 과연 예수님에 대해 알고 있는가? 내가 알고 있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나는 나에 대해서 아는가? 내가 나에 대해서 알고 있는 나와 예수님이 나에 대해서 알고 있는 나의 모습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등 여러 가지 질문이 일어난다.

여기서 몇 가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묵상해보자.

누군가가 나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했을 때 반갑고 기분이 매우 좋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또 반대로 두렵고 떨리고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 숨고 싶은 심정일 때도 있을 것이다. 나는 나 말고는 아무도 나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무척 당황스러운 일일 것이다. 내 어두운 과거가 다 드러날까 봐 두렵고, 나만이 고이 간직해왔던 비밀이 탄로 날까 봐 두려울 것이다. 우리는 그럴 때 나도 모르게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당황해하며 질문할 것이다.

이 세상에는 누구에게나 자기 안에 "네 구역"이 있다고 하는데 이것을 Jonari(요나리) 창이라고도 부른다.

첫째는 나에 대해서 나만이 알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부분이 있다.

둘째, 나에 대해서 나는 모르는데 다른 사람이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

셋째, 나도 알고 다른 사람도 아는 부분이 있다.

넷째, 나도 모르고 다른 사람도 모르고 오직 하느님만이 아는 부분이 있다.

이것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나에 대해서 알고 있는 부분이 결코 많지 않다. 어쩌면 나 자신도 나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부분이 더 많은 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내가 나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남을 알겠으며 또 내가 안다고 한들 얼마나 알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양,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양, 말하고 판단한다.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가? 무지한 사람이 용감하다고 했던가?

나는 나에 대해서 정말 얼마나 아는가? 내가 알고 있다고 하는 그것이 정말 나인가? 언젠가 텔레비젼에서 만덕 스님이 일년간 만행을 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한 말이 "다른 사람도 모르는데 내가 나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라는 말이었다. 만행은 불교에서 자기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그렇다. 나는 나 자신을 알 수 없다. 왜 그런가? 내가 나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만들지 않았는데 어떻게 나를 알 수 있는가? 나를 아는 분은 오직 나를 만드신 창조뿐이시다. 따라서 내가 나를 알고 싶으면 나를 만드신 하느님을 알아야 하고 그분을 통해서만이 나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은 나의 원형이시고 나를 만드신 분이시다. 그래서 시편작가는 이렇게 노래한다.

주여, 당신은 나를 샅샅이 보고 아시나이다. 앉거나 서거나 매양 나를 아옵시고, 멀리서도 내 생각을 꿰뚫으시나이다. 걸을 제도 누울 제도 환히 아시고, 내 모든 행위를 익히 보시나이다. 말소리 내 혀 끝에 채 오르기 전에, 주는 벌써 모든 것을 알고 계시나이다.

알으심이 너무나 놀랍고도 아득하와, 내 힘이 미치지 못하나이다. 당신의 얼을 떠나 어디로 가오리까, 당신 얼굴 피해 갈곳 어디오리까 하늘로 올라가도, 거기 주는 계시옵고, 지옥으로 내려가도 거기 또한 계시나이다.

새벽의 날개를 이 몸이 친다 하여도, 저 바다의 먼 끝에 산다 하여도 거기에도 당신 손은 나를 인도하시고, 그 오른손이 몸을 잡아 주시리다. 당신은 오장육부 만들어 주시고, 어미의 복중에 나를 엮어 내셨으니 묘하게도 만들어진 이 몸이옵기, 하신 일들 묘하옵기, 당신 찬미하오니 당신은 내 영혼도 완전히 아시나이다.

은밀한 속에서 내가 지음 받았을 제, 깊숙한 땅 속에서 내가 엮어졌을 제, 당신은 내 됨됨이를 알고 계셨나이다. (시편 138)

▮ 성 바오로회 유광수 신부
  | 09.29
460 76%
[수도회] 신뢰감

잊어야하고 버려야할 것은 많이 있으나 신뢰감만은 잊어서도 안 되고 버려서도 안 됩니다. 작은 말 한 마디 작은 행동 하나가 신뢰를 줄 수도 있고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말의 중요성과 행동의 신중함이 요구됩니다. 아무 말이나 말이면 다 가 아니며 말을 하려는 사람은 사려 깊게 하려면 말하기 전 5분 아니 10분 기다리다가 해야 하며 대중 앞에 나서는 사람은 준비 없는 말이나 생각나는 대로 하는 말이 아니어야 합니다.

사람은 행동에 있어 진실과 사랑이 없는 행동은 신뢰 받지 못합니다.깨끗한 행동, 순진한 행동, 믿음이 있는 행동,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행동이 몸에 배여 나와야 합니다. 우리는 잘된 행위를 거짓말로 덮으려하고 잘못된 말을 행동으로 덮으려 하면 부정과 부조리가 발생 신뢰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신뢰를 주는 말과 행동이 온갖 욕망에서 나오면 그 욕망에 따라 말하고 행동합니다. 말이나 행동은 자신의 깨끗한 양심에서 나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타나엘에게 보여주신 주님의 말씀과 행동은 주님을 신뢰하고 평생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우리도 주위에 신뢰를 주는 말씀과 행동을 보여준 사람을 통하여 주님에게 인도되어 주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지도자나 진, 선, 미로 인도하는 책임을 진 사람은 말에 있어 행동에 있어 신뢰를 주어야 합니다. “나를 믿고 따르라.”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잠에서 깨고 생명력 있는 삶을 살게 하려면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 보고 자기모습을 가다듬어 몸가짐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말에 있어 완전하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 명상의 삶을 살며 진, 선, 미 이신 하느님과 일치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저는 오늘도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룸같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기도합니다.

▮ 분도회 이석진 신부 : 2016년 9월 29일
  | 09.29
460 76%
오늘은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교회는 천사의 존재를 신앙교리로 선언하고 있지만(4차 라테란공의회(1215년), 1차 바티칸공의회(1870년)), 천사의 본질이 무엇인지, 역할이 무엇인지, 혹은 사람마다 수호천사를 가지고 있는지, 여러 계급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등의 학자들의 주장(그레고리오 대종의 천사직무론, 디오니시우스의 9품 천사론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유권적 결정도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천사론>에서 믿어야 할 교리는 한 가지밖에 없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하느님께서 우리의 감각을 초월하는 영의 세계도 창조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천사는 하느님의 사자들이요,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능력들이요, 하느님을 섬기는 영적인 존재들로서(히브 1,14). 자주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축일로 기념하는 미카엘 대천사는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라는 뜻을 지녔으며, 주로 천상 군대의 장수요, 악에 대한 수호자요, 임종자의 수호자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힘’이라는 뜻을 지녔으며, 다니엘이 본 환시와 예언을 설명해 준 대천사이고, 즈가리아와 마리아에게 각각 탄생을 알린 하느님의 사자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라파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치유’라는 뜻을 지녔으며, 토비아를 위해 파견된 천사이고, 맹인들의 수호천사로 큰 공경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천사 이야기는 모두가 하느님께서 갖가지 모양으로 우리에게 관심을 쏟고 계시다는 진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곧 인간을 존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보디가드가 존귀한 것이 아니라, 보디가드를 받는 인간이 존귀한 까닭입니다.

우리가 존귀하기에,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대천사를 보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시는 주님을 찬미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오늘, 우리는 대천사들의 대축일을 지내면서, 하늘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하늘의 이야기를 어디에서 들을까? 하늘은 어디에서 열릴까? 대체, 어떻게 하늘을 만날 수 있을까?

그것은 만남의 신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나타나엘의 만남에서 하늘이 열렸듯이, 예수님의 세례 때 하늘이 열리고 아버지와 아들이 만나셨듯이, 오늘 우리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일이 곧 하늘이 열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하늘이 땅에서 열리는 것은 그분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열고 들어오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을 우리 안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분명, 우리 안에는 당신이 계시니, 우리가 곧 당신께서 계시는 하늘이 됩니다. 그러니, 사실 하늘은 이미 열려 있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마음이 바로 하늘이 열리는 자리요, 우리 일상의 삶이 바로 하늘이 열리는 장소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계시며, 우리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분을 만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대천사 축일을 맞아, 우리의 마음과 일상 안에서 하늘을 열고, 주님의 사랑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 : 2016년 9월 29일
  | 09.29
460 76%
[수도회] 천사적 삶 - 찬미[讚美]와 선행[善行]의 삶 -

천사란 말은 ‘messenger(전달자, 사자, 심부름꾼)’란 뜻입니다. 하느님과 우리 사이, 또는 이웃사이에 선한 다리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런 천사 같은 삶을 사는 이들도 곳곳에 많습니다. 천사란 말만 들어도 위로가 되고 마음이 평화롭습니다. 우선 하루를 마치며 끝기도 때마다 부르는 다음 시편 대목은 더욱 그러합니다.

“주께서 너를 두고 천사들을 명하시어, 너 가는 길마다 지키게 하셨으니 행여 너 돌부리에 발을 다칠세라, 천사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들고 가리라.”(시편91,11-12).

하느님의 자비로운 현존을 상징하는 천사들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있음은 천사들의 보호가 늘 함께 있었기에 가능함을 믿습니다. 오늘 기념하는 천사들은 그 이름에 따라 미카엘은 ‘하느님의 힘’을, 가브리엘은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분’을, 라파엘은 ‘하느님의 치유’를 뜻하며 그 역할이 다 다릅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전능하심을 널리 드러내는 천사들의 존재입니다. 천사신심 역시 우리 영성생활을 풍요롭게 함을 깨닫습니다. 토마스 머튼도 늘 천사가 있는 상본을 가슴에 품고 다녔다 합니다. 오늘 화답송 후렴과 영성체송 시편은 늘 들어도 흥겹고 힘이 납니다.

“주님, 제 마음 다하여 당신을 찬송하나이다. 천사들 앞에서 찬미 노래 부르나이다.”(시편138,1).

이 거룩한 미사시간 위 시편 말씀 그대로 천사들 앞에서 천사들과 함께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 노래 부르는 시간입니다. 언젠가 세기洗器중 수사님이 ‘미사때 제대 주변에서 천사들이 나팔을 부는 것 같다’고 한 말도 생각이 납니다. 요즘 밤새 활짝 하얗게 피어나는 ‘천사의 나팔Angel’s Trumpet’이란 재미있는 이름의 꽃이 있는데 흡사 전례 기도시 찬미시편을 노래하는 수도자들의 모습을 상징하는 이름의 꽃같습니다.

오늘 제1독서 다니엘서에 보다시피 하느님은 역사 속에서 당신 활동을 중개하는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계십니다. 미사 전례 중 다음 천사들과 함께 감사송을 바칠 때는 말 그대로 기쁨의 절정입니다.

“그러므로 저희는 모든 천사와 성인과 함께 아버지의 영광을 찬양하나이다.”에 곧장 이어지는 천사들과의 합창인 ‘거룩하시다’입니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 하늘과 땅에 가득 찬 그 영광! 높은 데서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 받으소서, 높은 데서 호산나.”

말씀의 전례가 끝나면 곧 우리는 성찬전례 시 천사들과 함께 윗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천사의 우선적 역할은 하느님 찬미이며 다음은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선善한 다리역할입니다. 그러니 늘 하느님을 찬미하면서 착하게 사는 이들은 그대로 천사 같은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나타나엘이 그 좋은 본보기입니다. 나타나엘과 예수님의 만남은 늘 읽어도 반갑고 신선합니다.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시간 우리와 주님과의 만남을 상징합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세상에 이보다 좋은 찬사의 말씀은 없습니다. 이런 순수한 사람이 주님을 만나고 찬미와 선행의 삶을 삽니다. 천사들을 보고 천사 같은 삶을 삽니다. 이에 즉시 이어지는 나타나엘의 화답입니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참사람과 참사람의 만남입니다. 참사람과 주님의 만남입니다. 참사람은 참사람이 알아봅니다. 이어 주님은 나타나엘 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현존하심에 따라 ‘하늘이 열리고’(이사63,19;마르1,10;루카2,9-13), 야곱의 꿈이 예고한(창세28,17) 하느님과의 통교가 마음 순수한 믿는 이들에게 항구한 현실이 되었습니다. 아마 우리 마음의 눈이 열린다면 이 거룩한 미사 중 제대 위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육화된 아드님이신 예수님이야말로 하느님과 그의 백성을 잇는 다리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내려오고 그의 백성이 하느님께 올라가는 사다리와 같습니다. 어떤 면에서 예수님은 ‘대천사들 중 대천사[the Archangel of archangers]’이며 하느님의 진리와 사랑의 ‘궁극적 사자[the Ultimate Messenger]’입니다. 그분을 통해서 하느님은 우리에게 오고, 그분을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께 갑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그대로 실현되고 체험되는 진리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을 닮아 천사적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 분도회 이수철 신부 : 2016년 9월 29일
  | 09.30
460 76%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 51)

하느님께서 계시기에 천사가 있습니다. 창조와 구원의 주체가 되시는 하느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 하시고 보호하여 주십니다.

대천사 축일을 통해 창조주의 오묘한 섭리를 사랑 안에서 다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대천사의 역할은 하느님 말씀을 지키도록 우리에게 힘을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헌신해야 할 모든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입니다. 영적인 시각으로 사랑의 신비를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믿음과 희망, 사랑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이름 모두가 하느님을 섬기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영광을 위한 이름이기를 기도드립니다.

대천사들처럼 자기 직분에 최선을 다하는 하느님 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힘으로 하느님 말씀을 전하고 하느님 사랑으로 봉사하는 대천사들 같이 우리 또한 복음의 전달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영적으로 성숙해지는 길은 하느님께 시선을 두는 믿음에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모든 창조의 목적은 하느님 영광과 찬미에 있기 때문입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2016년 9월 29일
  | 09.30
460 76%
날개없는 천사

-------------------------------------------------

한 젊은 부부의 애틋한 사연을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보았을 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숱한 난관이 버티고 있었던 사랑이었지만 사랑의 힘은 더욱 강했습니다. 마침내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지요. 너무나 각별한 사랑이었던지 운명의 여신은 그들을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신혼의 달콤함은 너무도 짧았습니다. 끔찍한 교통사고의 와중에 목숨만 겨우 건진 남편은 기약도 없는 투병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고가 워낙 큰 것이어서 남편은 회복의 희망도 거의 없이 침상에 누워 지내게 되었지요.

만만치 않은 치료비 마련을 위해 아내는 닥치는 대로 일을 찾아야 했고, 만만치 않은 병수발에 신경을 잔뜩 써야만 했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회복되리라는 희망도 없는 상황에서 세월은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청춘의 아내는 점점 시들어갔습니다.

보기가 너무 안타까웠던 주변 사람들은 말도 많았습니다. "젊은 사람이 한 평생 병자 뒤치다꺼리하며 보낼거냐? 7년 동안 했으면 충분하다. 이젠 시댁 쪽에 맡기고 새출발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

그럴 때 마다 젊은 아내의 대답은 한결같았습니다. "어떻게 얻은 사랑인데, 제가 여기서 포기하겠습니까? 만일 제가 침대에 누워있다면 그이도 마찬가지로 절대 저를 포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한번 선택한 이 소중한 사랑을 끝까지 지켜나가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분의 대천사 축일을 경축하고 있습니다. 천사는 어떤 존재를 지칭합니까?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 하느님의 사자(使者), 즉 심부름꾼입니다. 하느님이 우리 인간의 구원을 위해 세상에 보내시는 도우미, 하느님 나라에서 하느님을 영원히 찬미하는 영적인 존재 등등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는 반드시 날개가 달린 천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날개는 없다 하더라도 이 세상에서 소리 없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며 겸손되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또 다른 의미의 천사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는 사람, 하느님 대신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사람들 역시 날개 없는 천사들입니다. 견딜 수 없는 고통 그 한 가운데서도, 꿋꿋이 견뎌내며 희망을 잃지 않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천사들입니다.

오늘 하루 서로가 서로를 진정으로 지지해주고 서로를 위해서 진심으로 기도하는 날개 없는 천사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길 빕니다. 이 세상은 아직 희망을 걸고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란 것을 알게 해주는 서로를 위한 천사로 살아가길 기원합니다.

나로 인해 상대방의 인생이 더욱 의미를 지니고, 빛을 발하게 되길 기원합니다. 나로 인해 이웃들이 새로운 힘을 얻고 다시 한번 힘차게 새 출발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

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 09.28
460 76%
오늘은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교회는
4차 라테란공의회(1215년)와 1차 바티칸공의회(1870년)를 통해, 천사의 존재를 신앙교리로 선언하고 있지만, 천사의 본질과 역할이 무엇인지, 혹은 사람마다 수호천사를 가지고 있는지, 여러 계급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등의 학자들의 주장(그레고리오 대종의 천사직무론, 디오니시우스의 9품 천사론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유권적 결정도 내리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천사론>에서 믿어야 할 교리는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곧 천사는 존재한다는 것과
천사는 우리의 감각을 초월하는 영적존재로서 하는 일은 사자(천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수호천사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톨릭교회가 인정한
성경에 나오는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말고는 다른 위경에 나오는 다른 천사의 이름을 사용하거나 기리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계급적인 9품천사론은 믿어야 할 교리가 아니라, 단지 전승에 불과할 뿐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천사는 하느님의 사자들이요,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능력들이요, 하느님을 섬기는 영적인 존재들로서(히브리서 1장 14절), 자주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축일로 기념하는
“미카엘 대천사”는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라는 뜻을 지녔으며, 주로 천상 군대의 장수요, 악에 대한 수호자요, 임종자의 수호자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힘’이라는 뜻을 지녔으며, 다니엘이 본 환시와 예언을 설명해 준 대천사이고, 즈가리아와 마리아에게 각각 탄생을 알린 하느님의 사자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라파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치유’라는 뜻을 지녔으며, 토비아를 위해 파견된 천사이고, 맹인들의 수호천사로 큰 공경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천사 이야기는 모두가
하느님께서 갖가지 모양으로 우리에게 관심을 쏟고 계시다는 진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곧 인간을 존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천사들은
인간에게 봉사하고, 인간을 보호합니다. 곧 인간인 우리가 존귀하기에,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대천사를 보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복음 1장 51절)

오늘, 우리는 대천사들의 축일을 지내면서,
하늘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하늘의 이야기를 어디에서 들을까?
그리고 하늘은 어디에서 열릴까?

대체, 어떻게 하늘을 만날 수 있을까?

그것은 만남의 신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나타나엘의 만남에서 하늘이 열렸듯이, 예수님의 세례 때 하늘이 열리고 아버지와 아들이 만나셨듯이, 오늘 우리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일이 곧 하늘이 열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하늘이 땅에서 열리는 것은
‘그분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열고 들어오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늘을 우리 안에서 만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분명, 우리 안에는 당신이 계시니, 우리가 곧 당신께서 계시는 하늘이 됩니다. 그러니, 사실 하늘은 이미 열려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바로 하늘이 열리는 자리요, 우리 ‘일상의 삶’이 바로 하늘이 열리는 장소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계시며, 우리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미 그분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대천사 축일을 맞아 우리의 마음과 일상 안에서,
하늘을 열고 주님의 사랑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 오늘 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복음 1장 51절)

---------------------------------------------

주님,
땅에서 열리는 하늘을 보게 하소서.
우리 안에 계신 당신을 보게 하소서.
우리의 마음이, 하늘이 열리는 자리가 되고
우리 일상의 삶이, 하늘이 열리는 장소가 되게 하소서.
우리가 만나는 이들과 우리가 하는 일 안에서
하늘을 열고 주님의 사랑을 만나게 하소서. 아멘.

-----------------------------------------------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2020년 9월 29일
  | 09.30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527   [수도회] 마음의 가난  [7] 2157
526   [서울] 주님, 이런 이야 당신의 얼굴을 찾는 족속이니이다  [4] 2243
525   [청주] 행복론 최고인기  [1] 29
524   [마산]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2] 1783
523   [춘천] “웃으면 복이 와요.”  [2] 1762
522   [수원]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르니…”  [2] 1828
521   [의정부] 행복을 찾아 낸 바보들  [2] 1728
520   [대전] 행복에 관한 복음 말씀  [2] 1945
519   [인천] 나는 행복한 사람일까요? 불행한 사람일까요?  [4] 2400
518   [원주] 행복선언  [1] 13
517   [안동] 성인의 조건  [1] 508
516   [광주] 성인 聖人  13
515   [부산] 행복 선언  [5] 2322
514   [대구]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3] 2518
513   [전주] 그리스도께 희망을 두는 사람  [3] 1924
512   (백)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 독서와 복음 (11월 1일) (참행복 선언)  [11] 1899
511   [수도회] 세상 끝까지 퍼져나가야할 복음  [6] 1827
510   [마산] 신앙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다  [8] 2340
509   [청주] 행복에로의 초대  [2] 502
508   [수원] 선교는 신자들의 진정한 생활의 표양이다.  [9] 2120
1 [2][3][4][5][6][7][8][9][10]..[27]  다음
 

 

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05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